40년에 걸쳐 무역에 종사한 경험과 금융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현상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저자의 최대의 미덕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는 현재의 투자전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괜찮은 내용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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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1971년 닉슨쇼크로 금과 달러의 고리가 떨어져 나간 이후 미국은 근원인플레이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달러를 무제한으로 발행해 왔다. 이로 인해 노동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GDP보다 금융자산으로 부를 늘리는 자산소득이 서너 배 앞서가는 금융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와 부를 주도해 왔다.

 1970년만 해도 세계 금융자산의 규모는 세계 총생산 규모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0년 마다 2배씩 증가하여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금융자산 규모가 세계 총생산 규모의 거의 4배에 육박했다. 심지어 헤지펀드가 주로 운영했던 파생상품 중 신용부도스와프 시가총액은 2007년 말에 62조 달러에 달해 당시 세계 총생산액 54조 달러보다도 커졌다. 인간의 속성이 투기로 치달아 단일 파생상품의 규모가 세계 총생산액보다도 커진 것이다. 이로 인해 터진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은 약효가 떨어진 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폭증하자 투기 거래가 급등했다. 2017년 연말 기준 세계 파생상품 시가총액은 무려 544달러에 달해 세계 총생산액 규모 78조 달러, 세계 주식시장 규모 81조 달러, 세계 채권시장 규모 215조 달러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 인간의 탐욕, 특히 월가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p43

 '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60년에서 1970년대 공중화장실마다 붙어 있던 안내문이다. 학교, 예비군 훈련장, 버스터미널 등의 남자 화장실에는 이런 안내문과 함께 흰색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바로 오줌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의 오줌 속에 있는 우로키나아제라는 성분은 뇌졸증 치료제를 만드는 주원료다. 당시 우로키나아제는 1kg에 2,000달러였다. 마땅히 수출할 길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오줌을 모아 화학처리를 한 뒤 일본에 팔아 돈을 벌었다. 그 돈은 1973년에는 50만 달러, 1974년에는 150만 달러에 달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1,000달러 남짓하던 시절, 우로키나아제는 상당히 매력적인 고가의 수출품이라 수집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었다. 훌륭한 수출품이었던 소변은 88올림픽으로 화장실 대부분이 수세식으로 바뀌며 수거하기 어려워졌다.

 참고로 우리 녹십자의 경우 중국 소변을 수입해 약을 만들었으나 품질이 낮아 북한 평양에 합작 공장을 설립해 문제를 해결했다. 북한은 에이즈 등 비뇨기성 질환이 거의 없어 좋은 품질의 소변이 수거되었다.

 

p45

 이런 일화도 있다. 담배의 국내 소비를 조금만 줄이면, 그러니까 담배 길이를 1cm만 줄이면 잎담배 1,400만 달러를 수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길이를 1cm를 줄이면 국내 소비자가 싫어한다는 의견에 결국 7mm만 줄여 6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한 적도 있었다.

 

p62. 비극의 시작 '자이테크', 일석삼조 돈놀이

 일본 기업의 기세는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출보다는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일본 기업들은 '자이테크'라는 자산운용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자이테크 수익이 크니 자연히 영업에는 소홀하게 되었다.

 자이테크 투기가 본격화된 것은 일본 기업들이 역외시장인 런던 유로본드 시장에 접근하면서부터였다. 역외시장이란 자국의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시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표적인 역외시장으로는 유로통화시장과 유로채권시장이 있다.

 1981년 일본 대장성은 금융자유화 조치의 하나로 일본기업들이 유로본드시장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란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채권을 말한다. 일본 기업들은 자사 주가가 오를수록 BW채권 값이 따라 올랐기 때문에 아주 낮은 이자율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엔화 가치 상승이 지속되는 점을 이용해 달러 표시 BW를 발행한 뒤, 스와프(swap)시장에서 엔화 표시 채무로 바꾸어 엔화 자금을 일본으로 끌어들였다.

 '통화스와프'는 만기에 계약 당시 환율로 원금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매매하는 거래이다. 이에 따라 가치가 떨어지는 달러 대신 가치가 올라가는 엔화를 조달해 만기시점에 환차익까지 덤으로 얻었다. 그리고 통화스와프는 통화의 교환 외에 금리의 교환도 수반되어 양국 간의 금리 차이를 계산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자금 조달 과정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이자를 지급했다. 곧 돈은 돈대로 빌리면서 오히려 이자를 받았다. 더 나아가 조달할 자금을 주식시장이나 연 8%를 보장하는 증권사 투금 계정에 투자해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돈을 빌리면서 되레 이자까지 받고 또 빌린 돈을 예치하고 이자를 받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었다. 더구나 만기 때 엔화를 달러로 바꾸어 갚으니 환차익까지 남았다. 일석삼조였다.

 게다가 당시 미국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대의 고금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일본 우대금리인 6%보다 3배나 높았다. 일본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국 채권에 투자하면 일본에서보다 3배 이상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이로써 일본 기업가들 사이에선 돈 놓고 돈 먹는 일명 '자이테크' 열풍이 분 것이다.

 재테크로 번 돈은 다시 일본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투자되어 활황 장세를 이루었다. 그러자 자산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버블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수출로 번 돈을 기업에 재투자하지 않고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마침내 일본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1987년 미국을 앞섰다. 땅값도 마찬가지였다. 버블이 한창일 당시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었다. 1988년이 되자 세계 10위권 은행은 모두 일본 차지가 되었다.

 버블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누구도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이렇게 형성된 거품이 붕괴하면서 시작됐다.

 

p95

 '워싱턴 컨센서스'는 1990년 전후로 등장한 미국의 경제체제 확산전략이다. 한마디로 외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빗장을 강제로라도 열어 미국 자본의 활동무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외환위기 같은 위기발생을 제3국의 구조조정 기회로 삼아 미국식 시장경제체제인 신자유주의를 심겠다는 미 행정부와 IMF, 세계은행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의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거세경제안정화, 경제자유화, 사유화, 민영화'가 그 뼈대이다. 개발도상국들이 시행해야 할 구조조정 내용은 '정부예산 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인하,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 우량기업 합병/매수 허용, 정부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등이다.

 그런데 이런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이를 방치함으로써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관철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3세계의 외환위기를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아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조지 소로스조차 이를 '시장근본주의'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그때부터 유럽과 동남아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각개격파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는 미국의 해외시장 개척의 선발대가 되었으며 특히 헤지펀드가 그 선봉장 노릇을 했다. 소로스 등 헤지펀드가 중남미를 시발로 1992~1993년 유럽통화 위기 때 핫머니로 유럽 중앙은행들을 유린하고, 1997년 7월 아시아 외환위기 때 먼저 태국을 초토화시켰다.

 

p140

 무자본 특수법인인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는 달리 연준(FRB)은 자본금이 있는 주식회사로 그 지분은 민간은행들이 나누어 갖고 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유대계 은행들이 대주주라는 것이 통설이다.

 제이피모건을 위시해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 로스차일드 가문의 런던과 베를린의 로스차일드은행, 그리고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의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도 연준의 주요 주주다. 그 외에 파리의 라자르브라더스은행, 이탈리아의 이스라엘모세시프은행, 그리고 연준 창립위원장을 역임한 폴 워버그 가문의 바르부르크은행 등이 연준의 주주로 알려져 있다. 1917년 제정러시아를 대체할 새로운 임시정부가 결성되는데 2,000만 달러를 지원했던 쿤뢰브은행도 연준의 주주로 알려져 있다.

 다행스럽게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주무하는 기관의 대주주는 세계 각국에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

 

p142

 미국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연준 본점에는 이를 대표할 7명의 이사진을 선출해 여기서 추대된 대표 1명에게 관리책임을 맡겼다. 연준 본점에 있는 7명의 이사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에서 인준하도록 되어 있다. 임기는 14년 단임이고, 일단 임명된 이사와 대표는 누구도 해고할 수 없다. 이는 이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새 이사의 임명 터울은 2년이다. 창립 초기 이사진에는 미국 재무부장관과 감사원장이 7명 이사에 속했다. 그러다 그나마도 민간이사로 교체되면서 연준은 미국 정부와는 완전 별개의 독립적인 기구가 되었다.

 연방준비은행이 생기기 전에는 뉴욕의 은행가들이 뉴욕 지역의 자금만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 전체의 은행 준비금을 주관할 수 있게 되었다.

 

p166

 미국은 전통적으로 채무국가다. 그들은 호황기에는 빚을 내서 소비하고 수입해 즐긴다. 그리고 빚이 턱밑에 차오르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누적된 외상값, 곧 국제 채무의 대대적 탕감으로 덕을 본다. 이렇든 남의 빚으로 살아가는 국가는 약달러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빚 탕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의 고민이 있다.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달러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강달러란 돈의 실질 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국제 결재 통화로서 강한 지배력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이 달러를 요구하게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특히 위기의 징후가 보이면 세계의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달러로 회귀하는데, 유럽 재정위기가 좋은 예이다.

 미국 곧 세계 기축통화국의 입장에선 세계 경기 위축과 통화 경색을 막기 위해 우선 달러를 많이 풀어야 한다. 그래야 기축통화의 장악력이 유지된다. 미국이 유럽의 재정위기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이유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의 권력이 주는 엄청난 시뇨리지 효과를 양보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내 재정정책상의 약달러 정책과 국제 기축 통화로서의 강달러 정책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어느 나라가 약한 통화를 외화보유고로 보유하겠는가? 이 모순된 딜레마를 가능한 한 눈치채지 못하도록 끌고 나가는 과정이 '교묘한 달러 곡예의 역사'이다. 이 모순이 바로 암호화폐가 화폐혁명의 불을 지피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2008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

p212. 과도한 주택 경기 진작 정책

 

 미국은 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 내외로 소비가 활발하게 살아나야 성장하는 나라다. 따라서 역대 정권들이 가장 손쉬운 부동산 경기 진작을 통한 경기부흥에 열을 올렸다.

 자기 집을 갖는 것은 모든 미국인의 꿈이었다. 소득세가 도입된 이래 주택 모기지 이자는 소득세 공제대상이라 혜택이 컸다. 그래서 대부분 급여생활자는 소득세와 주택임차료 대신 이를 모기지 이자로 활용해 집을 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자동차 구입과 신용카드 대출이자에 대한 소득세 공제는 폐지하면서 주택 모기지 이자만은 소득세 공제를 유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주택을 담보로 모기지를 얻어 자동차 등을 사는 편법을 쓰기 시작해 1994년 주택담보의 68%가 자동차 구입 등 다른 목적에 사용되었다.

 게다가 1997년 빌 클린턴 정부는 경기부양의 하나로 주택건설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부부 합산의 경우 50만 달러 한도로 양도소득세를 폐지했다. 그러자 그때부터 미국인들은 주택을 투기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2001년 IT 거품 붕괴와 9/11 테러 이후 연준은 불황을 우려해 금리를 열세 차례나 급격하게 내려 2001년 6.5%였던 기준금리를 2003년 7월까지 1%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저금리 정책의 지속은 당연히 유동성 과잉을 불러왔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대출을 늘렸다. 그러자 부동산 수요가 늘면서 주택 가격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p213. 돈 한 푼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4년 10월 재선운동에서 연거푸 내집 마련을 강조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정책지원이 뒤따랐다. 주택이 투자대상으로 떠오르자 2005년에 구입한 주택의 40%는 1가구 2주택이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종잣돈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50만 달러짜리 집을 사기 위해서는 적어도 10~15만 달러 정도의 자기 돈이 있어야 했지만 2006년 이런 규정 자체를 아예 없애버려 보증금 없이 집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은행은 집값만 올라가면 된다는 이유로 주택구매자의 신용조사도 약식 처리하거나 생략했다.

 

p214.  대출채권의 증권화로 거의 무한대의 대출 여력이 생기다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풍부한 은행권은 대출경쟁에 혈안이 되었다. 게다가 장기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한 주택담보부증권(MBS)이 개발되었다. 이는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로써 은행들은 주택대출자금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대출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이러다 보니 소득, 직업, 재산이 없어도 대출이 되는 NINJA(No Income, No Job or Asset)대출, 이른바 '묻지마 대출'이 기승을 부렸다.

 

p215. '묻지마 대출'을 부추긴 파생상품의 등장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하든 데다 금리가 낮아 중산층과 서민들이 내 집 마련 대열에 대거 동참해 여러 해 동안 주택건설 호황으로 이어졌다. 이때 머리 좋은 유대금융인들이 대출은행의 불안을 덜어줄 파생상품을 개발했다.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신종 파상생품이었다.

 제이피모건의 블라이드 마스터스가 1995년 발명한 신용부토스와프는 금융시장 지형을 바꿔놓았다. 그녀가 개발한 신용부도스와프는 금융시장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 곧 돈 떼이는 두려움을 해소시킨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한 금융사가 한 기업의 회사채를 구입한다고 치자. 문제는 리스크다. 기업이 망하기라도 하면 채권매입 금융사는 막대한 손실을 본다. 이럴 때 다른 보험사나 은행이 보험료를 받고 원금을 보장해주는 상품이 바로 신용부도스와프이다.

 집값이 계속 올라가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떨어지면 연쇄적으로 대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은행들은 위험을 덜어 주는 파생상품 덕분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단지 그 위험을 떼어내어 위험에 투자하는 제3자에게 전가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파생상품 덕분에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지자 은행들은 앞다투어 신용등급이 낮은 사라들, 즉 프라임급 이하 비우량급에 해당하는 '서브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에게까지도 담보가치 100%로 주택 대출을 해주었다. 이로써 수요가 폭증하면서 투기로 이어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 나타나 5년 사이에 집값이 무려 75%나 올랐다.

 

p216. 급격한 금리인상의 부작용, 서브프라임 사태

 

 그때서야 연준은 무언가 시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졌다. 과잉유동성에 의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게 된 연준은 2004년 6월 이후 정기적으로 금리를 올려 2006년8월 5.25%까지 인상했다.

 금리를 내릴 적에도 쫓기듯 서둘렀는데, 이번에도 단기간에 급격하게 끌어 올렸다. 이것이 실책이었다. 당연히 부작용이 뒤따랐다.

 먼저 시장이 놀라 기준 금리 인상 이상으로 모기지 금리가 올라 주택 수요가 줄어들며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출받아 주택을 사서 다시 팔아 이윤을 얻으려 했던 사람들이 대출금조차 갚을 수 없을 만큼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낮았던 서브프라임 대출에서부터 문제가 터졌다.

 

p217. 파생상품 남발이 일으킨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도화선에 불붙인 건 파생상품이었다. 2007년 장외거래 파생상품 중 신용부도스와프 거래 규모만도 약 62조 달러로 무려 그 무렵 세계 GDP 총액 54조 달러보다도 많았다. 이를 그린스펀은 점잖게 '비이성적' 과열이라 불렀으나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장외에서 거래되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얼마나 팔았는지 알 수 없어 금융기관 간에 불신으로 돈거래가 막혔다. 곧 신용경색이 일어나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이 금융위기의 첫 단계였다.

 

-2008년 신용위기의 실체, 과잉유동성

 모든 금융위기의 원인은 '과잉유동성'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부르는 용어만 조금씩 달랐다. 1907년 공황의 원인은 '과잉자본' 때문이라 했고, 1929년 대공항 원인은 과도한 '통화팽창' 정책의 결과라 했다. 결국 과잉유동성이 버블을 불러 도가 지나치자 터진 것으로 '과잉유동성'은 1907년, 1929년, 2008년 공황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또 유동성으로 막았다.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못하고 돈을 살포해 봉합한 것이다. 금융권에 돈을 풀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 자산 가격을 부풀려 나락에 떨어졌던 부실한 은행들과 한계기업들을 구해낸 것이다.

 

p24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선진국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통화량을 증가시켜왔다. 또한 각국 금리도 사상 최저수준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이 풀렸음에도 물가가 안정되어 있었고, 일본과 유럽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했다.

 양적완화 곧 금융권을 통한 돈 풀기는 담보력이 있는 상위계층에게 흘러들어가 자산 가격을 올린 반면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는 흘러가지 않아 소비자 물가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경제위기에는 더 많은 유동성이 풀렸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화폐수량설'로 물가변동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물가수준은 결국 화폐량과 유통속도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생산품 가격을 P, 생산품 거래총량을 T, 화폐량을 M, 화폐유통 속도를 V라 한다면, 'MV=PT'라는 것이다.

 지금은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한 돈이 중앙은행 금고나 은행에서 자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좋아지면 문제는 달라진다. 잠자고 있는 돈들이 투자처를 찾아 쏟아져 나오면 통화량의 유통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면 시중 유동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여기에 놀라 중앙은행이 급격한 계단식 금리인상을 서두르면 탈이 날 수 있다.

 그때는 기업부채 등의 부도사태가 터지면서 시장이 망가지거나 아니면 인플레이션의 쓰나미가 밀려올 가능성이 있다.

 

p251

 이란이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란의 핵보유 의지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다. 이는 이스라엘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또한 이란에 이러한 기술개발을 공여할 수 있는 나라로 북한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 역시 악의 축으로 불렸던 이유이다. 미국의 북한 견제는 이스라엘 측의 사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p256

 지난 10여 년 중국의 M2 공급량은 세계 최고였다. 그들의 GDP 대비 M2 비중은 2.1배에 달하지만, 미국은 제로 금리에 이어 4차례나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풀었음에도 0.9배에 불과하다. 중국이 얼마나 많은 돈을 풀었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지금의 중국 경제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의 고민이 있다. 인민은행은 2019년 초부터 버블이 만연해 있는 중국 사회의 '거품' 빼기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고 공격적인 긴축정책을 펴왔다. 그러던 차에 무역전쟁이 터지자 순식간에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지 않아도 긴축으로 인한 자금난에 수출마저 급감하게 되자 상당수 기업이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최근 인민은행이 정책을 바꾸어 시중 은행에 기업들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적극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한 것은 중국 정부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무역전쟁이 격화되자 중국 대기업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중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신용등급이 무려 AAA였던 '상하이화신국제' 회사도 부도를 냈다. 중국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이 관세 폭탄으로 사실상 시장을 축소하자 상당수 중국 기업이 자금 압박에 휘청거리다 부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p261. 워싱턴 컨센서스의 목표, 중국의 온전한 개혁

 무역전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은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한 말 그대로 무역전쟁인줄 알았다. 그런데 무역전쟁이 진행될수록 전선이 다각도로 펼쳐지는 걸 보고서야 이게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중국 시장을 자유경제체제 곧 개방경제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의도와 더불어 중국 굴기의 꿈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패권전쟁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을 온전한 자유 시장체제 곧 개방경제로 바꾸어 놓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WTO 가입 때 약속했던 사안들을 포함해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와전개방이 미국의 목표다.

 우선 미국은 보복관세율 부과로 2019년 중국 수입품을 600억 달러어치 줄인 데 이어 올해는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 제조업에 미국 시장을 맡기지 않고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귀환 독려와 더불어 제조기지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이의 추진이 더 빨라지고 있다.

 이뿐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인터넷 개방 요구 등 중국의 민주주의를 고양시켜 자유민주주의 사회체제로의 전환을, 군사적으로는 중국의 팽창전략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중국의 공산당 1당 독재 체제를 끝장내고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것이 목표다.

 

p278

 금융자산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화폐의 본원적 기능인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폐 수요 증가보다는 투기적 수요가 많이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일 평균 외환거래액이 2004년 3조 달러가 넘어섰다. 이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의 무역거래와 장기투자에 필요한 외환은 하루 300억 달러로 1%에 불과했다.

 

p307. 연준의 간접 통화정책

  유동성을 줄이더라도 가능한 일반인들이 눈치 못 채게 연준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시중 은행들로 하여금 국채를 사들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지금 연준이 하고 있는 일을 반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연준의 자산 곧 본원통화 발행액은 6월 10일 7조 1,689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오히려 줄고 있다.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약한 양적완화를 안하는 것은 아니다. 매월 국채와 모기지 증권을 사들이고는 있으나 그 보다 더 많은 돈을 레포 시장과 외국 중앙은행 계좌로부터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긴축으로 돌아섰다면, 인플레이션 진행과 달러 하락세가 멈춰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다, 연준은 지금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동성을 늘리고 있다. 대형 은행들로 하여금 시중에 돈을 풀게 하는 방법이다.

 연준에는 은행들의 지불준비금이 보관되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법정 지불 준비금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준이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이를 '초과지급준비금리'(IOER)라고 한다. 이를 기준금리 범위 내에서 운용하고 있다. 지금 연준은 현재 초과지급준비금리를 0.1%로 낮게 운용하고 있다. 은행들이 그 이상의 수익을 원한다면 돈을 연준에 쌓아두지 말고 밖으로 들고 나가 수익을 거두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연준은 대형은행들의 위험 감수를 억제하는 '보충적 레버리지 비율(SLR)' 곧 자본요건을 2021년 3월31일까지 1년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연준은 이를 완화해주면서 한마디 보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돈으로 자사주 매입 등 엉뚱한 곳에 쓰지 마라.'는 경고였다. 즉 초과지불준비금으로 국채를 사라는 이야기다. 실제 위 그래프에서 보듯 대형 은행들이 6월 이후 초과지불준비금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시중에 돈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p320. 레이 달리오의 추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이런 상황을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레이 달리오는 지금 단계에서 "현금은 쓰레기."라고 단언하며 '물가 연동체와 금 그리고 원자재'에 나누어 분산투자 할 것을 권한다.

 

p349

 이래저래 투자자들은 혼란스럽다. 지금은 유동성 장세인 만큼 주자자들은 연준의 다음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달러 가치 하락, 광의의 통화 M2의 가파른 상승, 인플레이션 예상, 외환시장 우려, 버블 붕괴의 위험, 연준의 애매한 스탠스 등'의 혼란 속에서 투자자들은 자기 자산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포트폴리오에 안전 자산인 금, 은을 필히 추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p375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금과 은은 쓰임새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금은 장식용 수요가 전체의 절반이고 투기용 수요는 24% 정도, 산업용 수요는 10% 안팎이다. 그런데 은은 산업용 수요가 절반을 넘는다. 전기 전달능력이 뛰어나 컴퓨터, 전자부품, 의료기기 등의 재료로 쓰인다. 항균 능력도 뛰어나 항균제 성분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경기불황이 예상되면 산업용은 수요가 줄어들어 은값이 금값보다 더 빨리 내리고 경기회복이 예상되면 반대로 더 빨리 올라간다. 그래서 은값은 금값보다 가격 변동성이 크다.

 

p398

 듀크대 캠밸 하비 교수는 "비트코인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돈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며 종이화폐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거래 내역이 정부의 블록체인에 기록될 수 있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돈을 숨기거나 세탁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이야 말로 국가 암호화폐의 장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방코인을 "연방정부가 모든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디지털화폐"라고 정의하면서 초기에 자유주의자들이 정부통제를 벗어날 수단으로 생각했던 블록체인기술이 국민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p405

 각국 중앙은행이 추진 중인 디지털화폐는 추적 가능한 중앙집권형 화폐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계좌가 추적 당한다고 생각하면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은 디지털화폐의 운영체계를 이원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곧 중앙은행에서 상업은행으로 디지털화폐를 보낼 때는 추적 가능한 디지털화폐를 보내지만, 상업은행과 개인 또는 기업 간 거래에는 추적 불가능한 익명성이 보장된 암호화폐 시스템과의 연동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주도 블록체인 서비스 네트워크(BSN)에 '허가형' 블록체인 하이퍼레저 패브릭과 이더리움, 이오스 플랫폼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화 시스템을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앙은행이 초당 30만 건 이상 거래되는 소매시장까지 관여할 경우 통화관리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액 거래에서 개인의 익명성을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다만 이는 무제한의 익명성 보장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익명성' 보장을 의미한다. 곧 일정액 이상의 큰 금액의 거래는 실명 전자지갑을 통해 거래되어야 하며, 마약, 도막 등 불법거래 자금으로 의심될 경우 정부는 영장을 발부받아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 정부는 가능한 국민들의 거래 익명성을 최대한 존중하지만 필요시에는 개인의 거래내역을 추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빅브라더 사회의 본격적 도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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