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질투의 법칙 : 연예, 결혼, 섹스 이다.

제목처럼 연예, 결혼, 섹스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의 끄적임이다.

아마 제목을 원제와는 별 상관없이 한 이유는 그의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의 유명세를 어느 정도 감안한 타이틀인 듯 하다.

일본에서는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예능인(영화감독, 작가, TV엔터테이너)이다. 일본에서는 굉장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에 반한적 발언으로 이슈가 됐는데 이 부분은 일본인의 한계라고나 할까? 글로벌한 마인드라든가 역사의식은 부족하다. 일본 사회나 정치의 폐쇄성을 볼 때 개인적 노력이 없이는 글로벌한 마인드가 제대로 박혀있는 일본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선 일본인들이 가장 잘 쓰는 변명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근성이라는 측면에선 지극히 일본적인 인물이며, 영화든 책이든 엄청난 다작을 쏟아내는(요즘은 영화는 좀 뜸하지만 책은 꾸준히 내고 있다) 인물이다.

 잡론에 가까운 에세이인데 그의 생각이 일반인과는 좀 동떨어진 스펙트럼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칠지만 굉장히 번뜩이는 지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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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신주쿠 같은 데서 중년 회사원을 상대로 성매매를 해서 돈을 버는 여고생이 있다. 그 아이에게는 고등학생 남자 친구가 있는데, 그 남자 친구한테는 뽀뽀는커녕 '손도 못잡게' 한다고 한다.

 "우리 사랑은 순수하니까."라면서

 잘은 모르겠지만, '순수한 사랑' 어쩌고 할 만큼 남자 친구를 좋아한다면 뒤에서 절대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되지 않나?

 

 

p36

 흔히 아이들을 보고 순수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떤 것에 대한 반응을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걸 보면 두 눈이 반짝거린다든가, 용돈을 받으면 곧바로 입이 찢어진다. 그러다가 자랄수록 점점 사회가 규정한 틀과 관습에 얽매여 자신을 억제하는 행동이 늘어간다. 음식을 쩝쩝 소리 내어 먹는 사람은 아주 천박한 느낌이 든다. 볼이 미어터지게 먹는 모습 역시 꼴불견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게 먹는다. 햄버거든 밥이든 뭐든 하지만 어른들은 먹으면서도 주위를 둘러본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그저 먹는 데만 집중한다.

 

p127. 죽어도 좋을 만큼 좋은 것

 '평범한 사고방식'으로 '평범한 삶'을 산다면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평범하지만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한 '수단'.

 그런고로 나이가 들면 결혼해야 한다는,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더 대단한 정열이나 힘이 필요하다. 

 어중간한 노력을 하느니 결혼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수단이 되는 결혼관 따위 없앨 정도의 뭔가를 인생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쪽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반드시 죽어도 좋을 만큼 좋은 것을 발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살면서 "어떻게 하면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라든가 "어떻게 하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증거를 마음껏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낸다. 결국 죽음에는 아무런 준비도 매뉴얼도 없고, 아무도 '잘 죽는 법'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나는 이게 가장 큰 낭패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 떠올려보라. '와, 살아 있네.' 하는 느낌이 절로 들 정도로 장관이다.

 그런데 힘겹게 도착한 녀석들은 산란하자마자 바로 죽는다. 그 노력이란 것이 녀석들에게 '죽어도 좋을 만큼 좋은 것'이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과연 내게 그런 건 뭘까?

 

==>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긴 한데, 끝에 비유가 그렇게 좋진 않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도중에 곰, 인간들에게 잡히는 위험과, 마지막에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강의 상류에 와서 알을 낳고 죽는 것 자체가 모두 생존과 번식의 본능때문이다. 결혼은 사회적 관습이기도 하지만 궁극의 목적은 결국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있다. 연어도 태어나서 먼 바다로 가 성체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간이 인생의 전부이듯이, 인간도 태어나서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평생(요즘은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아이 양육 후에도 20,30년 정도의 인생을 더 살긴 한다) 기르고 결국은 죽음을 맞는다. 

결혼 적령기 이전에 자기의 생의 목적과 목표에서 결혼을 하지 않아야 겠다는 결심이 설 정도는 '신부(사제)'와 '중' 정도의 종교적 이유 외에는 현실적으로 찾기 힘들다. 아마도 결혼이 늦어지거나 때를 놓쳐서 현실적으로 결혼을 못하게 될때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사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대개는 치열한 삶보다는 그저 외로운 삶을 살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p155. 누가 보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겠지만

 

 우리 가족은 설날이나 명절에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다들 고향에 가서 부모나 형제자매들을 만나는데, 우리 가족은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설날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일러두었더니 다들 그러려니 한다.

 대신 여름 방학이나 봄 방학 때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바람을 쏘인다. 하지만 방학 때도 애들을 데리고 고향에 내려가진 않는다.

 고향에서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였던 적이 있기는 하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입원했을 때, 그때 단 한 번 뿐이었다. 우리 집은 위아래로 대부분 남자 형제들이라서 다들 자기 부인과 자식들을 끌고 왔는데, 대식구가 다 모이니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욱이 다 모여서 한다는 얘기가 고작 유산 문제에 관련된 것이었다. 형제고 뭐고 없이 다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얘기를 하는데, 얼마나 볼썽사납고 한심했는지. 게다가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데 만일을 대비해 장례식 이야기까지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

 제일 큰형이란 작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땅은 누가 가질 거냐?" 이따위 소리나 해댄다.

 내겐 "넌 돈 많이 버니까 필요 없지?" 따위의 말을 날리면서. "너는 불효만 했으니까 권리가 없어." 하고, 자체 판단까지 내린다. 이에 질세라 나도 반격한다.

 "그 묘지는 내가 샀어."

 "부엌은 내가 고쳤어."

 이런 소니라 해대고 있으니 거, 참 추한 형제들이다.

 

p282. 상당3 : 매일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진력이 나요.

 

 Q / 저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직장을 옮겼습니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 모두 대우도 나쁘지 않았고, 옮기는 곳마다 환영도 받았습니다.그런데도 어느 정도 일을 배우고 나면 의욕이 사라집니다. 매일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진력이 납니다. 지금은 새로운 회사에서 노력하고 있는데, 언제 또 이직 버릇이 고개를 들지 몰라 불안합니다.

 

A / 아직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이직해도 괜찮다. 당신은 기계적인 작업이 싫은 것이다. 처음에는 모르는 걸 배우니까 재미있이서 열심히 하는데, 다 배우고 나면 지루해진다. 그러니까 얼른 그만두고 싶다. 당신에게 그 일이 평생을 걸 만한 일이 아니어서 그렇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직하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지출 전표를 정리하는 단조로운 사무라면 앞으로 그 일이 진화할 가능성은 제로다. 들어온 전표를 체크하는 일 말고는 할 것이 없다. 그게 싫으면 역시 그만두는 편이 낫다.

 내 직업관에 따르면, 그 직업에서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이차적인 문제다. 선택한 분야에서 전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만족스러운 직업이 있다. 나는 처음 코미디계로 뛰어들었을 때 아사쿠사의 코미디언으로 만족했다. 인기가 없어도 좋았다. 성공하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객사하더라도 좋았다. 오히려 목숨을 걸고 싶은 직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불쌍했다.

 어쨌든 그 일에서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고, 제일 중요한 건 그 일에 대해 만족하는가다. 선택한 직업에 대한 만족감, 그게 무엇보다 우선이다.

 단순히 취직하는 것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의 돈을 받으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과도한 노동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게 아무리 싫더라도.

 내가 아사쿠사에서 코미디언을 하던 시절에는 밥벌이를 못해서 아르바이트로 육체노동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코미디언을 할 때는 돈을 못 버는 게 당연했다. 인기도 전혀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돈을 못 벌어도 괜찮았다.

 사람들은 돈과 보람을 동시에 생각하려고 하니까 골치 아픈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면, 대가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좋아하는 일을 찾고 도전해서 점점 팔릴 만한 가치가 생기면 돈도 벌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 할 수 있는 한도의 일에서 능력을 파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는 건 좀 그렇다. 먼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용돈에 불과한 돈을 버는 일이라도 좋다. 그러면 그 일을 질리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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