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한정훈 씨는 물리학 박사로, 전공은 물질에 대한 위상적 특성이다.

이 분야의 대가로 노벨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사울레스의 제자이다. 스승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계기로 대중강연과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하였다고 본문에 나온다.

물질의 위상적 특성에 대한 관점에서 물질의 양자적 특성에 대한 탐구의 역사를 정리했다.

비전공자에게도 양자적인 감(感)을 갖기에 상당히 유용하며, 전공자들에게는 이 분야의 히스토리와 전체의 그림과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는 참고서적으로의 활용도가 높다.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뒤로 갈수록 어렵다. 2,3번은 읽어야 어느 정도 익숙해질 듯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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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0

 불과 28세의 나이에 이 권위 있는 교수 자리를 물려받은 톰슨은 재미있게도 그의 수학적 재능이 아니라 실험적 업적인 '전자의 발견'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지금 그의 소용돌이 고리 상호작용 이론을 기억하는 물리학자는 아무도 없다). 음극관 실험을 통해 톰슨은 원자보다 1천 배 이상 가볍고 음의 전하를 띤 어떤 입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이 입자는 오늘날 전자로 불린다.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원자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전자와 반대의 전하를 띤 또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나머지 구성 요소에 대한 수수께끼를 해결해준 인물은 톰슨의 제자이면서 맥스웰-레일리-톰슨에 이어 네 번째로 캐번디시 연구소장을 지낸 러더퍼드였다. 톰슨이 전자의 존재를 발표한 1897년으로부터 14년 뒤인 1911년, 러더퍼드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전자와는 반대 부호의 전하를 가진 원자핵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했고, 이로써 현대적 원자 모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조각을 거의 다 찾게 된다. 남은 한 조각, 즉 중성자의 존재는 이번엔 러더퍼드의 제자 채드윅이 증명한다.

 

p83

 전자의 배타성 때문에, 전자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유동성을 잃어버린 셈이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대부분의 물체는 전기를 통하지 않는다. 전자의 배타성 덕분이다. 우리가 24시간 전기에 감전되는 끔찍한 상황을 피해 생활할 수 있게 해준 전자의 배타성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이렇게 까칠한 전자들이 모인 사회에 유동성을 부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투숙객의 숫자를 조금 줄이면 된다. 방은 1층에 3개, 2층에 7개 있는데 투숙객은 남녀 합해 다섯 쌍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손님을 방에 채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생긴다. 한 방법은 1층에 세 쌍의 전자가 들어가고, 나머지 두 쌍은 2층의 방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남전자, 여전자가 모두 독방을 쓰는 경우 등, 다양한 가능성이 수학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 물질에 해당하는 파울리 호텔에서는 전자들이 기를 쓰고 아래층의 방부터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전자 손님을 배치하는 방식도 대단히 간단해진다. '에너지 최소화'라는 전자 세계의 비밀이 작동하는 덕분이다.

 

p126

 그럼 초전도체는 어떤가. 초전도 물질 내부에서 전자기파가 거동하는 방식을 잘 따져 그 운동방정식을 적어보니, 본래의 맥스웰 방정식이 아니라, 약간 변형된 꼴의 파동방정식을 만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변형된 방정식에도 파동의 입자의 이중성 원리를 적용해볼 수 있다. 그럼 흥미롭게도 보통 금속을 지나가는 전자기파, 즉 광자는 질량이 없는 입자의 방정식에, 초전도체를 지나가는 전자기파는 질량이 있는 입자의 방정식에 해당된다는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본래 질량이 없는 입자였던 광자가 초전도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질량이 유한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왜 광자는 초전도체 속에서 몸이 무거워지는걸까?

 

 이 질문은 물리학의 가장 원초적인 질문 중 하나, 즉 '질량의 근원'에 대한 질문과 서로 일맥상통한다. 본래 질량이 없던 광자가 초전도체 속에서 질량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온 우주에 있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같은 입자가 질량을 갖게 된 이유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초전도체라는 맥락에서 앤더슨이 제공한 답은 무엇이었는가 살펴보자.

 BCS 이론(Bardeen-Cooper-Schrieffe theory, 초전도체를 이론적으로 설명)에 따르면 초전도체를 표현하는 파동함수, 즉 BCS 파동함수에는 금속의 파동함수에는 없는 새로운 숫자 하나가 등장한다. 이 새로운 숫자의 의미를 잘 따져보면 금속에는 없는 새로운 상태, 그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난부-골드스톤 Nambu-Goldstone 상태 또는 입자라고 부르는 것이 초전도체에는 존재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초전도체 밖에서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광자는 난부-골드스톤 입자를 만나 서로 상호작용한다. 그 결과는? 광자가 무거워진다.

 

p133

 일단 액화된 물질은 온도를 더 내리면 계속 액체로 남아 있든가, 아니면 고체로 굳어져야 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절대온도 4도 근방에서 한번 액화된 헬륨은 절대온도 2도 근방에서 또 다른 액체 상태로 바뀐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액체헬륨이 차가워져 고체가 되는 게 아니라 제2의 액체로 변했다. 굳이 물리학적 훈련을 받지 않아도 기체와 액체가 서로 다른 상태이고, 액체와 고체는 또 다른 상태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같은 헬륨 원자가 만들어낸 액체에 두 종류가 있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당시 최고 수준의 물리학자들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일단 절대온도 2~4도 사이에 존재하는 액체헬륨을 헬륨1, 그리고 절대온도 2도 미만에서 발견된 새로운 액체를 헬륨2라고 이름지었다. 두 액체의 물성 차이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때마침 1936년, 레이던의 실험실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찾아냈다. 헬륨2가 헬륨1에 비해 열전달을 훨씬 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액체 한쪽 끝의 온도를 다른 쪽보다 살짝 높이면 한쪽에서 뜨거워진 액체가 차가운 쪽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열을 전도한다. 열전도가 뛰어나다는 말은 헬륨2가 헬륨1에 비해 훨씬 유동성이 좋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유동성이 과연 '몇 배' 좋은가이다. 러시아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카피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고안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관을 만들어 그 속에 액체헬륨을 통과시키는 실험이었다. 그가 발견한 사실은 놀라웠다. 헬륨1은 관을 통해 몇 분 흐르다가 멈추었는데, 헬륨2는 그 흐름이 1천 배 이상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 마치 벽과의 마찰이나, 헬륨 원자끼리의 충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카피차는 초전도 상태의 금속에서 전류가 회로를 따라 지속적으로 흐르는 현상과 그가 발견한 현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걸 눈치채고, 헬륨2를 과감하게 초액체 Superfluid라고 이름지었다.

 

p268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 중에는 이렇게 외부에서 주는 자극이 한참 쌓여야 비로소 변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런 더딤은 보는 이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회현상, 자연현상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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