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테드 창의 중단편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에 포함된 80페이지 길이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Arrival(그 영화의 감상도 본 블로그에 있다. http://lachezzang.tistory.com/592?category=773782)의 원작이며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관심이 생겨서 보게 되었다.

테드 창(Ted Chiang)은 1967년 생으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중국인으로 중국이 공산화될때 대만으로 건너갔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브라운 대학의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으며, 졸업후 테크니칼 리뷰와 소설 창작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미국 벨베뉴, 워싱턴에 거주중이다.

1990년 졸업후 거의 동시에 등단했으며, 첫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네뷸러 상을 수상했다. 현대 SF계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이다.

본인은 SF영화는 즐겨보지만, 소설은 거의 보지 않은 탓에 잘 몰랐지만 이 작품으로 꽤 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감상)

 영화 Arrival의 뼈대가 되는 내용은 거의 같다.(세부 설정과 등장 인물의 이름이 약간씩 상이한 부분이 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강의하고 언어 전문가인 루이스 뱅크스 교수에게 어느날 군인인 웨버 대령과 물리학자인 게리 도널리 박사가 찾아온다.

 얼마전 지구 궤도상에 정체 불명의 외계 우주선이 내려왔고, 지구 곳곳의 목초지에는 그 외계 우주선의 출현과 동시에 높이가 10피트(3미터 정도), 너비가 12피트(3.6미터 정도) 되는 반원형의 거울과 같은 구조물이 나타난다. 이 구조물을 지구에선 체경(looking glass)라 명명했다.- 정확히는 미국에서 9군데, 전 세계적으로는 112개가 있다라는게 소설의 설정이다.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정부기관은 외계인과 접촉하면서 언어적인 소통 문제에 접하자, 112군데의 체경 각각에 언어전문가와 물리학자라는 조합으로 모든 체경을 상대로 컨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주로 이야기는 루이스 뱅크스와 게리 도널리 박사가 맡은 site에서 이루어지는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외계인은 Arrival 영화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7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지구에서는 이들을 편의상 헵타포드(7개의다리)라 부른다. 그들과의 대화를 위해 루이스 교수는 외계인을 대상으로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고 가르치려는 과정을 진행한다. 그를 통해 그들의 음성언어(소설에서는 이를 헵타포드 A라 한다)와 그들의 글자언어(헵타포드 B) 2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통 우리의 언어(우리는 글을 써놓고 그것을 그대로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된다.)와 달리 그들의 음성언어와 글자언어의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자언어, 즉 헵타포드 B는 일종의 상형문자같은 그림의 형태이나 그 형태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뜻을 나타낸다고 하는 가정이 깔려있다.-소설에서는 작가는 이를 지구의 수학, 음악의 음표와 같은 것이라 설명하지만 수학이나 음악이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표기법이라고 할때 그들의 헵타포드 B는 더 범용적인, 즉, 일반적으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범용의 형태 표기법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상징문자로 표현되는 헵타포드 B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헵타포드 B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면에서 볼때, 통시적이면서 공시적인 사건의 모든 면을 전달하는 언어라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외계인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외계인과의 교류를 통해 습득해나가면서 사고의 구조가 변하고 이를 통해서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된다. 그 각성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는 루이스는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연결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사실 그것을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그 언어를 깨달음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데이타의 분석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라고해야 할지..인데 말로 설명하긴 그리 쉽지 않다. 소설을 보면 그 부분은 그냥 그런 설정으로 되어 있다.)

 이런 설정을 통해서 쉽게 '우리가 이미 미래를 알고 있을때, 그 미래는 과연 미래라고 할 수 있나?', '혹은 알려진 미래를 위해 우리가 개입한다면 미래를 변하게 될 것인가?' 같은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소설은 이러한 의문을 공기중에서 물로 입사될 때의 빛의 굴절(스넬의 법칙) 현상을 통해 이를 현상론적으로 보는 가, 아니면 페르마의 원리처럼 빛의 입장에서 목적론적으로 보는가에 차이라는 견해를 보여준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내용은 맥락적으로는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물리학 분야에서 다루어졌던 과학철학적 딜레마와 그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불거졌던 내용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작가가 브라운 대학교 물리학과를 잠시 다닌 경력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이 소설을 보면 꽤 흥미진진한 부분이 있다.

한,두번 더 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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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발췌)

p176.

세 번째 가설, 헵타포드들이 진정한 문자로서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비선형적 체계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었다.


p177.

 군은 체경이 있는 지점 부근에 우리의 사무실 공간이 들어가 있는 트레일러 하나를 설치해놓았다. 나는 트레일러를 향해 걸어가는 게리를 보고 달려갔다. 

 "의미표시 문자였어요." 그를 따라잡자마자 내가 말했다.

 "뭐라고요?" 게리가 되물었다.

 "와요, 직접 보여줄 테니." 나는 게리를 내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나는 칠판으로 곧장 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사선을 그어 반으로 나눴다. "이게 무슨 뜻이죠?"

 "출입금지?"

 "맞아요." 나는 칠판에 '출입금지'라는 단어를 썼다. "이것도 같은 뜻을 전달하죠. 하지만 둘 중에서 실제의 발화를 나타내고 있는 건 하나뿐이에요."

 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언어학자들은 이런 글자를-" 나는 이렇게 말하며 내가 쓴 글자를 가리켰다. "입으로 한 말을 표현한다고 해서 '음성표시' 문자라고 칭해요. 인간의 문자언어는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가죠. 하지만 이 기호는-" 나는 원과 사선을 가리켰다. "발화와는 전혀 무관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의미표시' 문자라고 해요. 이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특정한 음성과 아무런 조응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헵타포드의 문자는 모두 이런 거란 뜻인가요?"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그래요. 그림문자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훨씬 복잡해요. 문장을 구성하는 자체적인 규칙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음성언어의 구문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시각적 구문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시각적 구문법?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중략)

 이건 본질적으로 2차원적 문법이에요.

 게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문자 체계에서 이것과 조금이라도 닮은 것이 있나요?"

 "수학의 방정식이나 음악과 무용의 표기법이 있죠.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극히 전문화되어 있어요. 그런 것들을 써서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를 기록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주 잘 알게 된다면 이 대화를 헵타포드의 문자 체계를 써서 기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들의 언어는, 언어로서 완성된 하나의 범용 그래픽 언어라고 생각해요."


p203.

 '헵타포드 B'를 습득하는 동안 나는 그에 못지않게 이질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나의 사고가 도형의 형태로 코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이따금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져, 나의 사고가 마음속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신,, 유리창에 서리가 끼듯이 생겨나는 어의문자로 대체되는 광경을 마음속 눈으로 보곤 했다. 

 내가 이 언어를 점점 더 유창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이 의미표시 형태들은 완성된 형태로 나타났고, 나는 복잡한 개념들까지도 일거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 나의 사고 과정이 예전보다 빨라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앞을 향해 질주하는 대신, 나의 마음은 어의 문자들의 기반을 이루는 대칭성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부유하고 있었다. 어의문자들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선 무언가처럼 보였다. 거의 만다라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명상 상태에 빠져 전제조건과 결론을 호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숙고하고 있다는 사실 퍼뜩 깨달을 때도 있었다. 각 명제들 사이의 관게에 고유한 방향성은 없었고, 특정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사고의 맥락'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유에 관여된 모든 요소의 힘은 동등했고, 모두가 동일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p209

 보르헤스풍의 우화적 이야기를 통해 반론을 전개해보겠다. 과거와 미리에 걸친 모든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세월의 책>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다고 치자. 원본을 작게 복사한 것이지만, 이 책은 여전히 거대하다. 한 손에 확대경을 든 이 여자는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티슈처럼 얄따란 책장을 넘긴다. 자신이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을 기록한 대목을 찾아낸 그녀는 다음 대목으로 넘어간다. 그곳에는 그날 그녀가 나중에 하게 될 일들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녀가 책에서 읽은 정보를 바탕으로 경주마인 '될 대로 되라'에 100달러를 걸고 스무 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정말 그렇게 할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청개구리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탓에 그녀는 경마에 돈을 걸지 않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월의 책>은 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의 시나리오는 어떤 사람이 가능한 미래가 아닌 실제의 미래에 관한 지식을 제공받는다는 전제에 입각해 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 비극이었다면 운명을 회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반 사정에 의해 결국 그 운명에 따라 행동한다는 식으로 얘기가 흘러갈 것이다. 어차피 그리스 신화의 예언은 모호하기로 악명이 높다. 이에 비해 <세월의 책>은 극히 명확하고, 책에 명시된 식으로 그녀가 경주마에 돈을 걸도록 강용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겨난다. <세월의 책>은 절대 옳아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이 뭐라든지 그녀는 그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두가지 사실을 양립시킬 수 있을까?

 양립할 수 없다. 가 통상적인 대답이다. <세월의 책>은 논리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위에서 언급한 모순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조금 관대한 입장을 취해, 독자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한 <세월의 책>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특별 컬렉션의 일부이고, 이것을 열람할 권리는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일까? 미래를 아는 경험이 사람을 바꿔놓는다면? 이런 경험이 일종의 절박감을. 자기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p212


 The rabbit is ready to eat. 이 문장에 관해 생각해보자. 여기서 rabbit을 eat의 목적어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저녁식사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문장이 된다. 그러나 rabbit을 eat의 주어로 본다면 이것은 이를테면, 어린 소녀가 퓨리나사의 애완용 토끼사료 봉지를 열 작정임을 자기 어머니에게 알리는 경우에 맞는 암시에 해당한다. 이 둘은 완전히 상이한 언술이다. 사실 한 가정 안에서 이 두 언술이 공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타당한 해석이다. 문맥이 이 문장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할 뿐이다. 

 빛이 한 각도로 수면에 도달하고, 다른 각도로 수중을 나아가는 현상을 생각해보자. 굴절률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고 설명한다며, 이것은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당신은 헵타포도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해석이다.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한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인류와 헵타포드의 조상들이 맨 처음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 양측은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다. 하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세계관의 궁극적인 상이함은 이런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p218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었따.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미래를 아는 지금, 내가 일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행위를 포함해서, 나는 결코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세월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p218

 나는 헵타포드들이 이 대화의 최종적인 결말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열성적으로 이 대화에 임했다. 

 만약 아직 진상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가 이 광경을 묘사했다면, 이런 질문이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헵타포드들이 자신이 말하거나 들은 얘기를 이미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다면, 그들이 언어를 사용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타당한 의문이다. 그러나 언어란 단지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어는 행위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언어행위이론에 의하면 "당신은 체포되었습니다." "나는 이 배를 이렇게 명명하노라" 혹은 "약속하겟어" 따위의 서술문들은 모두 수행문이다. 발화자가 이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 말을 입 밖에 내서 말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행위의 경우, 앞으로 어떤 말이 나올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결혼식 하객들은 누구나 "이제 이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 목사가 그 말을 할 때까 결혼의 의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수행문적 언어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는 것과 등가인 것이다.

 헵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 그렇다. 어떤 대화가 됐든 헵타포드들은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p223

 보통 '헵타포드 B'는 단지 내 기억에만 영향을 끼친다. 나의 의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시간 선을 따라 기어가듯이 전진하는 가느다란 담뱃불이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억의 재가 뒤뿐만 아니라 앞쪽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진짜로 타오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따금 '헵타포드 B'가 진정한 우위를 점하면서 일별의 순간이 올 때, 나는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경험한다. 나의 의식은 시간 밖에서 타다 남은 반세기 길이의 잿불이 된다. 이런 경험을 할 때 나는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한다. 이것은 나의 남은 생애와 너의 모든 생애를 포함하는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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