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권으로 이루어져있으며, 1권 현현하는 이데아, 2권 전이하는 메타포 모두

굉장히 직접적인 부제를 갖고 있다.


전작인 해변의 카프카, 태엽감는새, 1Q84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면서도 차별화되는 부분은

주인공이 하나이며,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되는 점이다. 

그의 대부분의 전작이 2인(때로는 3인)의 복수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병렬 진행하다가,

그 스토리가 어떤 순간에 이어지는 구성을 사용하기 때문에 보통 소설을 1번만 읽어서는 그 구조와 스토리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화자인 주인공 한 명이 스토리를 이끌고 가므로 그러한 병렬구조상에서 이야기가 이어지기 전까지는

그 흐름을 놓치기 쉬운 세부적 스토리때문에 재독이 필요한 부분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그래도 이 소설도 

2번 정도 봐야 명확해지는 부분이 역시 있다.)


또한 그의 특징인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세부묘사가 더욱 명징해진 탓에(또한 소설의 이야기가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진행되는 부분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전작에 비해 쉬우며

그리 꼬인부분이 없어서 쉽게쉽게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이데아로 표현되는 기사단장, 그리고 이어서 2권에 이어지는 긴얼굴이라 불리우는 메타포는 

무라카미 소설의 특징인 환상적인 상징을 표현하는 하나의 양식인데 그 치환되는 의미는 매우 다중적이긴 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몇 가지의 카테고리로 압축된다.


인상적인 부분은 1Q84에서 아오마메(실질적인 주인공)가 아기를 임신한 상태로 허구의 세계를 덴고와 탈출하는데,

이번편에서는 축복의 의미로 주인공의 아내인 유즈가 무로라는 아이를 출산하는 결말이다.


이 소설은 국내 발매전에 일본 현지에서 소설속에 묘사했던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때문에 이슈가 되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리 이슈될 게 없다고 보이는 면도 있지만, 군국주의 시대 일본이 타국민들뿐 아니라 군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자국민들까지도 얼마나 차별하고 괴롭혔나하는 야만의 모습이 생생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일본의 과거

치부를 드러낸 면이 물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대동아전쟁(2차 대전)이후, 그 내부적으로 몰락을 자초하는 리스크가 존재해 왔다. 그 리스크는 다름 아닌

과거에 대한 부정과 역사에 대한 왜곡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개인)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인간은 실수를 통해서 발전한다. 실수와 잘못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인간은 성숙해지고, 발전하며 개인이 아닌 사회와 국가 세계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나가게 된다.

일본은 그러한 사회적, 국가적 성숙이 없이 2차 대전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패전시킨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주변국들의

상황(6.25 전쟁,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미국간의 냉전)의 틈바구니속에서 수 십년간 경제부흥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한때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무역대국으로 오르기도 했다.(지금도 일본은 세계 3,4위의 무역대국이다.)

하지만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왜곡과 부정 그리고 세계 속에서 그만한 경제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세계 사회에서의

기여도를 보여주지 못해서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멸시적 용어까지 들어야만 했다.

(이 소설에 대한 감상에서 더 이상 이 곁다리로 나가기는 어려우니 그만하고)


또한, 이 소설의 말미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려는 작가의 따스함이 말미에 어느 정도 드러난다.

(전작인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서 고베 대지진에 대한 작가의 위로가 포함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기대했던 작품이었던 탓인지, 전작과의 차별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미 그도 세계적인 거장으로서 나이가 든 탓이리라. 그래도 작품속에 녹아든 노작가의 따스함은 더욱 상냥해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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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요약)

주인공인 나(주인공의 이름은 소설 전체를 통해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미대 출신으로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간다. 

조그마한 사무실을 다니는 아내인 유즈와는 6년전에 결혼을 해서 도쿄 시내의 맨션에서 살고 있다.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직업이지만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갉아먹으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봄비가 내리던 3월말의 일요일 아침, 아내인 유즈는 그에게 더 이상 당신과 살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나는 잠시 유즈와 대화를 나눈 후 그대로 차에 몇 가지 짐을 싣고 집을 나온다. 그후 도쿄 시내를 하루 종일 방황하다가,

그대로 일본 동북부와 훗카이도 지역을 2달여에 걸쳐 방랑을 하는 생활을 한다.

방랑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와 미대 동기인 아마다 마사히코를 만나서 지금의 사정을 이야기한다.(마사히코는 아내인 유즈와도 아는 사이이다)

마사히코의 아버지인 아마다 도모히코는 유명한 일본의 화가로서 오다와라의 산속의 저택에 거주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부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으며, 치매 증상이 나타나 이즈의 고급요양원에 입소한 상태이다.

그래서 비게 된 오다와라의 주택에 살지 않겠느냐는 마사히코의 제안에 나는 오다와라의 도모히코 저택에서 지내게 된다.

도모히코의 저택은 산속에 위치해 있어서 차가 없으면 접근하기가 어려우며, 도모히코의 저택이 있는 산등성이와 건너편에는

고급관료와 자산가들의 오래된 고급 저택과 별장들이 드문드문 있는 지역이며, 산과 산 사이로 드러난 남쪽의 좁은 틈으로는

태평양이 보이기도 한다.


오다와라에 살게 되면서, 마사히코의 부탁으로 시내 미술학원의 강사를 맡게 되어 일주일에 두 번 시내의 미술학원에 출강을 하게 된다.

어느날 저녁 집안 천장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천장을 올라가는 문을 발견하게 된 나는, 천장에 올라가 

하얀 수리부엉이와 하얀 천에 쌓여진 체 천장 구석에 놓여있던 캔버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 캔버스에는 오래된 색바랜 라벨이 하나

붙어있었고, 거기엔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団長殺し)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그림의 내용은 모짜르트이 오페라 돈지오반니의

초반부의 내용으로 기사단장이 딸인 안나의 애인에게 칼로 찔리는 장면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으며, 도모히코는 그 내용을 일본 아스카

시대를 배경으로 일본화시켜 놓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돈지오반니의 내용대로 기사단장, 딸인 안나, 그의 애인이자 기사단장을

칼로 찌르는 젊은이, 그리고 젊은이의 시종(하인)의 4인이 등장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림 구석에서 땅밑에서 뚜껑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이 장면을 몰래 쳐다보는 존재도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감탄하면서도 모종의 호기심-이 훌륭한 그림을 왜 도모히코씨는

천장에 숨겨뒀을까? 그리고 이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을 느끼게 된다. 


오다와라에서 지낸지 1달여가 지난 어느날 예전 초상화를 그리던 시기, 작업의뢰를 하던 도쿄의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누군가 나에게 초상화 의뢰를 해왔던 것이다. 유즈와의 결별 이후 방랑을 시작하던 초기에 이미 초상화를 더 이상 그리지 않겠다는

의사를 에이전시에 밝혔기에 다시 정중하게 거절을 하려 했지만, 초상화를 의뢰했던 이는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제적 이유와 호기심(누가 왜 그리 큰 돈을 들여서 나에게 초상화를 그리려 하는 것일까?)때문에 그 의뢰를 수락하게

된다. 


의뢰를 수락한 다음날 도모히코의 저택을 어느 남자가 재규어 세단을 타고 방문한다. 그의 이름은 멘시키(免色, 색을 면하다. 이 캐릭터에 

대한 느낌은 마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에서 다자키 츠쿠루가 순례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나이를 먹었을 때를

연상케 한다.)

IT관련 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지금은 오다와라의 숲속 저택(도모히코의 저택에서 마주보는 반대편 산등성이에 하얀 대저택)에서 홀로

살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성이다. 그는 내 초상화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됐고, 그 이후 내가 그린 초상화 몇점을 수소문해서 보고 난 후

나에게 초상화를 의뢰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후 몇 번에 걸쳐 멘시키씨를 만나면서 나는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멘시키씨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새벽녁에 정체 불명의 방울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게 된다. 그 이튿날 새벽에도 같은 시각

방울소리가 나고, 난 집밖으로 나가서 그 방울소리의 근원을 찾아간다. 방울소리는 저택 뒤 공터에 있는 자그마한 사당의 뒷편 돌무더기

아래에서 나고있었다. 그 다음날 나는 이 사실을 멘시키씨에게 상담하게 되고, 그는 방울소리가 나는 새벽시간에 맞춰 우리집으로 

오겠다고 한다.

멘시키씨는 12시 조금 넘어서 우리집으로 왔고, 같이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새벽 2시가 되자 다시 방울소리가 들린다.

멘시키씨 역시 방울소리를 듣고, 그와 함께 사당뒷편의 소리가 나는 위치를 재확인한다. 멘시키씨는 주변에 아는 조경업자에게 의뢰하여

중기계와 인부들을 불러서 소리가 나는 사당뒷편의 돌무더기를 치우고 난후 지름 1미터 정도의 깊이 3미터가 되는 동그란 구멍을 발견한다.

구멍속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방울만이 발견된다.


사당뒤 구멍속에서 방울을 가져온 후, 더 이상 방울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인 나에게 간혹 무슨 사람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간혹 들리는가 싶더니 토모히코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칼에 찔린 기사단장(피는 흘리지 않고 칼도 찔리지 않은)을 한 형상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기사단장은 자기를 이데아라고 소개하며 사당뒷편에 돌무더기를 치워준 덕분에 자신이 해방되었다고 한다. 

기사단장은 하루에 1시간 정도로 형체화할 수 있으며, 그 후로 간혹 가다가 내 앞에 나타나곤 했다. 나는 이 사실을 멘시키씨 뿐 아니라 그 누구에

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멘시키씨의 초상화를 완성하는데 그것은 여태까지 내가 그렸던 일반적인 초상화와는 다른 매우 추상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멘시키는 그 그림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며 그것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서 자신의 서재에 걸어두게 된다.


어느날 멘시키는 자기의 30대 시절 만나다가 헤어진 여자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여자는 자신과 헤어진 후 멘시키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나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그 여자아이가 바로 현재 미술학원에서 내가 가르키는 아키가와 마리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멘시키는 나에게 마리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하게 된다. 이후 학원에서 스케치 실습을 핑계로 마리를 모델로 칠판에

스케치를 하게 된 나는 그녀의 내면에서 어떤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마리가 실종되고, 마리의 실종이 기사단장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예감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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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적다보니 확실히 느끼는 것은 무라카미 소설의(아마도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겠지만) 힘은 디테일에 있는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스토리를 적다보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이야기가 밋밋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 소설을 읽어보면 이렇게 스토리가 밋밋하지는

않다. 아주 조용한 가운데서도 긴장감이 있는 곳은 긴장감이 있고, 무언가 나올것 같은 예감이 들고,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러한 것은 역시 작가의 문체와 디테일의 힘일 것이다.


(감상) - 당연히 스포일러 포함.

전작 1Q84에서 서문은 소설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작품 역시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명확히 드러내는 장치로서 서문이 존재하는 듯 하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구절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마지막 구절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잠든 딸 무로(室)를 보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사단장은 정말로 있었어." 나는 옆에서 곤히 잠든 무로를 향해 말했다. "너는 그걸 믿는게 좋아"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핵심적인 개념은 "희생"이다. 기사단장으로 표현되는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적 표현에

의하면 순수한 이상으로서의 기사단장과 현실에 발을 딛고 육신을 통해 실제의 삶을 사는 현실의 2 개체의 "희생"과

긴 얼굴의 메타포가 안내하는 지난하고 위험한 길을 통과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노력"의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라는

주제를 드러내려는 것이 작가의 주된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다.

무라카미는 소설 내에서도 이것은 무엇도 무엇도 아니다 라던가와 같은 불명확한 비유를 통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느낌을 어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드러내려는 의도를 소설에서 많이 드러낸다. 이것은 사실상 작가 개인의 내밀한 경험들의

축적에 의해 어느 순간 팟하고 떠오르는 계시와 성찰같은 것이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그것을 100% 명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한것이다.

(아마 그것은 작가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도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성찰과 계시를 경험하지만 그것을

쉽게 몇 마디 말로는 표현하기 불가능한 것 처럼)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그의 스타일과 그간의 경험을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되면 생기는 상호주관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그게 무엇인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해변의 카프카, 태엽감는 새, 1Q84로 이어지는 무언가 그만의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아마

그의 애독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듯 하다.


소설의 프롤로그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파악하는 바는 이렇다.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부분은 일반적인 자연법칙과 같은 의미이다. 어떠한 일이든 당연히 과정에서 결과에 이르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 뒷 문장인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간의 흐름에 인간인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당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의미이며 시간의 경과를 따르기는 하지만 그 경과속에 무언가

자신의 흐름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그것은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자신의 어린 딸을 보면서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는 맥락적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이런 것과 같다.

"산타클로스는 정말로 있었어. 너는 그걸 믿는게 좋아.", 여기에 산타클로스는 그 다음의 그 무엇도 좋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팅커벨, 루돌프 사슴코.. 등등. 우리는 찬란한 꿈들과 신비한 동화 그리고 사랑과 모험으로 가득찬 동심의

꿈나라로부터 시기와 질투, 경쟁과 탐욕, 권태와 이기로 가득찬 세상으로 내동댕이치는 거대한 폭력을 경험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그 삶의 장면장면을 거치면서 우리는 삶의 진실을 알아간다고 여기지만 실상 남는 것은 끝간데 없는 암흑과

그 암흑을 끝없이 직시할 수 밖에 없는 공포스러운 현실속에서 점점 육신과 영혼을 갈아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러한 어른으로서의 보기에는 평화롭지만 그 내면에는 여러가지의 허무와 권태등의 보이지 않는 악덕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결혼생활 6년차의 어느날, 아내의 예기치 않은 외도로 인해 급작스럽게 아내로부터 결별통보를 받는 주인공은

약 1년간의 별거생활을 하게 된된다. 이 별거생활동안 생긴 에피소드를 통해 주인공이 깨달은 삶의 중요한 메시지를 그는

어린 딸에게 몇 년후에 "기사단장은 정말로 있었다."라는 말로 전해준 것이다. 


전작 1Q84에서 작가는 이상(ideal)혹은 꿈에 대해서 인간의 의지적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부분 역시 1Q84의 서문으로 쓰인 paper moon의 가사일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즉, 이것이 실제든 허상이든 상관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본인의 의지와 믿음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한발 더 나아가서, 그것을 믿는 것이 더 좋다라는 작가의 의견을 피력했다고 본다. 

일단 소설은 전작에 비해서 훨씬 읽기 쉽고 재밋다. 아마도 그것은 단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단선적 구조인 탓이 클 것이다. 해변의 카프카 이후로 주로 2명의 이야기가 평행하게 나아가면서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병렬적 구조인 탓에 줄거리나 은유등에 대해 앞의 내용을 다시 참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해 이번 편은 거의 한번만에 줄거리가 확실히 정리가 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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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가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자유도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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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은 나치독일에 의해 흡수되어 멸망하는 오스트리아, 그리고 돈 조반니는 나치, 안나는 도모히코의 오스트리아 애인 정도로

치환해서 보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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