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실망한 작품은 '테넷'이다. 사실 실망이라기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망이고 뭐고 언급 자체가 의미가 없는 지경이다. 이 영화 보고 재밋다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내 머리가 나쁜가보다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덩케르크(Dunkirk)와 같은 논픽션이지만 덩케르크가 대사를 극도로 절제하고 드라이하면서도 장엄한 전쟁 액션에 중점을 둔 영화였다면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로서의 오펜하이머와 전쟁 후 그의 사상검증 청문회의 내용에 촛점을 맞춘 영화다. 그래서 영화 첫장면부터 대사량도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메멘토(Memento)처럼 처음부터 대사를 제대로 쫓아가지 않으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물론 원작이 되는 오펜하이머 전기 - 어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를 읽어보고 가면 아마도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쉬울 것으로 본다. 난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오펜하이머와 개인적, 사회적, 과학적 친분을 가진 모든 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등장 배우도 엄청 많고(그 많은 배우가 대부분 네임드라는 것이 더 놀랍다. 배우 출연료만으로도 엄청난 제작비가 쓰였을 것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도 상당수이기 때문에 그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해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영화 예고편과 영화 제작과정에서도 바이럴을 엄청 했듯이 원자폭탄 실험 장면을 CG없이 TNT를 이용(놀란은 진짜 핵폭탄을 터뜨릴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사람이지만 어떤 영화사도 그리고 미국 정부도 허락을 안했을 거기 때문에)해서 실제 핵폭발처럼 보이게 했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건 개뻥이다. 하지만 CG없이 그 정도의 폭발 장면을 찍은 건 대단하다고 까진 할 수 없지마 그럭저럭 봐줄만했다 정도일 것 같다.
이 영화는 음악과 사운드가 큰 몫을 하는 영화다. 그러므로 영상보다는 사운드가 좋은 돌비관 같은데서 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돌비관에서는 다 내려간 상태라 지금은 볼 수 없다.
개인적으론 오펜하이머의 부인역으로 나온 에밀리 블런트와 애인역의 플로렌스 퓨가 기억에 남는 배역이다. 두 여인 모두 정신적으로 좀 불안한 면을 보이는데 그래도 부인인 키티 오페하이머(에밀리 블런트 분)는 평생 그의 곁을 지키면서 잘 살았던 것으로 보이고, 애인인 진 터틀록(플롤네스 퓨 분)은 오펜하이머와 결별 이후 얼마 있다가 자살을 한다.
영화에서도 진 터틀록의 자살 장면에 잠시 스쳐지나듯 나오지만 진 터틀록의 자살은 미국 정보기관이 혹은 타 세력이 개입된 타살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오펜하이머의 스토리가 재미있는건지 아니면 놀란의 솜씨인 건지 어쨌든 영화는 매우 재밋다. 돌비관에서 다시 열리면 한번 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