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컨텐츠의 뒷 부분에 게임이 나오는데, 터키 속담을 소개하고 이 속담의 의미를 맞추는 내용이다.

의외로 이런 방식의 게임이 재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서 첫번재 터키 속담은 이렇다.

1. 불 없는 곳에서 연기가 안나온다.

이에 딱 떠오르는 한국 속담은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이다.

일렘이 설명한 것도 한국 속담의 뜻과 다르지 않다. 이게 글로 보면 별거 아닌 내용으로 재미가 있나 할 수 있는데, 영상 속에서 일렘과 김민재 선수의 주고받는 대화는 약간의 오해와 뉘앙스의 차이, 설명의 미숙함등이 겹쳐지면서 별거 아닌 내용일 수 있는데 의외로 재미를 준다. 아마 이런 재미는 일렘이 터키사람이라 사고방식이 다르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만 깊은 용법적 해석에 있어서는 약간 서투른(속담이 사실 그 나라 말의 용법을 배우는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분에 의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렘이라는 분이 귀엽고 예쁜 여자라는 점도 작용하긴 할거다.

2번째는 볼펜이 칼보다 날카롭다. 이건 말할 것도 없이 펜은 칼보다 강하다이고, 이 속담은 동서양 모두 공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3번째는 손이 손보다 위에 있다. 이건 애매했는데 의미를 보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의미다.

마지막은 빠르면 악마가 들어온다. 이건 내가 생각하기엔 두 개 정도의 정답이 있을 것 같다.

이 영상 보면서 이런 퀴즈를 외국패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 속에서 하나의 코너로 만들면 재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21/2021032100116.html

 

美 연준, 은행권 자본규제 1년만에 종료…금리 불확실성 확대

연준 "이달 말 SLR 면제 조치 예정대로 종료"은행들 보유 국채 매각에 국채금리 더 오를 듯10년물 국채금리 1.75%까지 올라…증시 흔들미국..

biz.chosun.com

이 기사의 내용 중 SLR은 보충적 레버리지 비율(Supplementary leverage Ratio)이라는 의미이다. 풀어 써봐도 일반인들은 이게 뭔 소린지 알기 힘들다.

그러나 기사를 자세히 보면 SLR이 뭔진 몰라도 이 조치의 목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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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일부)

SLR은 총자산 2500억달러 이상인 대형은행이 국채를 포함한 위험 자산을 추가로 매입할 경우 자기 자본을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하도록 한 제도다. 연준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당시인 지난해 4월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SLR을 면제해줬다. 은행들의 국채 추가 매입을 유도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려는 목적이었다. 만료 시한은 이달 3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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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SLR 면제라는 것은 연준히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SLR을 면제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히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을 회수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작년 코로나 이후로 엄청난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해왔다. 이제 슬슬 거둬들일 시점이 도래했다는 의미이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움직임을 연준이 감지했다는 뜻이고 실제 전세계적인 유동성 폭발로 상당한 자산 인플레가 일어났다(대한민국의 지난 1년간의 주가와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이 조치가 당장 큰 변화를 초래하진 않을 것이다(그렇게 정책을 펼치면 대공황이 일어난다). 다만 유동성을 줄이는 조치가 일어났다는 것은 전세계 자산 인플레이션의 움직임이 조만간 둔화될 수 있다는 신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하지만, 나중에는 습관으로 옮겨 가는게 우리의 일상입니다.

Memento Mori → 절박함이 새로고침(reset)의 첫 번째 단계이다.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놓이게 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전략이다. → 유학 等

-정재승, 열두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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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를 느끼는 게 가장 우선적인 단계, 필요에 따른 목표를 세우면 습관화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을 수행해서 습관화까지 이루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에너지 투입이 없이는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과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해도,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조차도 내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데 말이다. 

"의식을 통제하는 것은 제도화될 수 없다. 이것이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의 한 부분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칙센트미하이, 몰입: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체득(體得)되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그 생각과 행동의 작동상태를 들여다보면 모두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그런 미묘한 차이를 우리는 말로 잘 표현하진 못하지만 사람들간의 그러한 차이를 통틀어 '개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하고, 오랜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서로의 반응의 그러한 미묘한 차이에 대해, "원래 얘는 그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그렇다고 여기는 어떠한 광의의 범주(category)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을 통해 선악과 호오(好惡)를 구별하는 것에는 미세한 혹은 꽤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특히나 종교와 정치적 주제가 그런 경향이 큰 것 같다)

예를 들어, 김연아 같은 초일류의 경우, 후배 일류급 선수들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잘 안풀릴 때, 그녀만의 체득된 경험을 통해 주는 원포인트 레슨이 후배가 초일류로 도약하는데 어떤 실마리를 줄 수도 있긴 하지만, 그가 초일류가 되는 깨달음은 그 후로도 수 많은 시행착오를 통한 반복된 실패와 성공의 줄다리기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실제로 아무리 스승이 좋아도 제자의 노력과 자질이 모자라면 청출어람이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모방해서 그 수준에 미치는 것만해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 수준에 도달한 후 또 한번 뛰어 넘는 것은 미지의 영역이며 리스크를 감당할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극한의 노력과 의식을 쏟아부어 무언가를 깨닫고 희열에 이르는 순간을 우리는 간혹가다가 드물게 맛보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깨달음은 휘발적(Volatile)이다.

인간이 하나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그에 해당하는 뇌 부분의 뉴런들이 활성화 되면서 뉴런간의 시냅스 연결이 이루어지고 습득의 반복(보통 암기과정)을 통해 시냅스의 연결이 강화되어 장기적이며 동시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수준으로 도달하게 된다.

체득이라는 과정은 이런 뉴런간의 연결이 인체의 신체부위와의 상호작용이 동시적인 수준까지 이른 레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영선수가 물에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하고, 축구선수가 극한의 중요한 돌파순간에 마르세이유턴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위대한 시인과 음악가가 시상/악상을 천상의 언어와 음악으로 표현하듯이-

그렇기에 어떠한 제도와 사회적 노력으로도 천재와 초일류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되지도 않을 일-예를 들어 과학분야에서의 노벨상 프로젝트 같은거-에 괜한 돈을 쓰는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을 만들지 않는 것도 명심할 일이다.

즉, 사회의 융통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좋은 일은 그것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무언가 캠페인을 벌이는 것 같은 쓸데 없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를 위해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수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자.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이 한국화된 중국음식이 원조의 나라에서 먹힐까라는 것이 관심사였다면,

이번 미국편은 우리나라의 대표음식이자 소울푸드가 된 짜장면(물론 탕수육도 있고, 후에 딤섬등이 추가된다)이 과연 현재 서양문화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어느 정도의 반응을 얻을까 하는 것이 관심사였다.

실제 미국의 손님들이 짜장면을 서투룬 젓가락질로 먹으면서도 짜장면 맛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 이 프로가 중요한 민간외교의 역할을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 대통령의 영부인이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걸고,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 100억인가 200억인가의 국가 재정을 낭비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많은 돈이긴 하지만 그 돈을 썼어도 떡볶이라는 한국적인 음식을 세계인들의 가슴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었다면 그것은 절대로 낭비일 수가 없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될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을 일이 있다. 음식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 일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국내 최고의 셰프와 인기 연예인들이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플레이스에서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으로 미국 대중들과의 소통을 꾀한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이 기획은 반쯤의 성공을 예약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밥을 같이 먹는 것 만큼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이 없고,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 것 만큼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행위도 없다.

이 프로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손님으로 나오는 미국인들의 생생한 대화를 통해서 얻는 현지의 정서와 한국에 대한 관심등은 기분좋은 보너스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김영선 2018, 中 인용>

 <토요타의 어둠>을 쓴 와타나베 마사히로도 과로사가 1980년대부터 두드러진 사회적 현상임을 지적한다. 이 시기 토요타는 생산과정 내 모든 비용의 최소화를 목표로 적기 생산 방식(Just in Time, JIT)을 도입해 한 때 '세계 경영의 교과서'로 거론됐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 방식은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 노무관리로 악명이 높았고, 과로로 인한 사망사고가 심각했다. 전현직 직원들은 토요타를 '작은 북한'이라고 비하할 정도였다. 노동과정의 변화와 노동자 건강의 변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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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무렵, 회사에서 토요타 생산방식(TPS, Toyota Production System)에 대한 4박5일의 연수를 가게 되었다.

 첫째날에는 나고야의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을 견학하고, 이틀째부터는 나고야에서 1시간 거리의 토요타의 협력업체인 기후차체공업(岐阜車体工業)이라는 기후현 카카미가하라시(各務原市) 소재의 차체(샤시) 생산 업체에서 3박4일간의 연수를 실시하는 일정이었다.

 이 연수는 전사(全社) 차원에서 혁신부서의 스탭 전체와 개발/설계/제조/QA/자재의 중견(주임 및 선임급)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차수당 인원은 20명 정도로 총 50차(총 인원 1,000명 수준) 정도로 추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회사는 새로운 CEO의 취임과 함께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토요타의 JIT의 물류/제조 방식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활용되는 눈에보이는 관리기법인 간판(看板)방식을 벤치마킹해서 현장에 접목하려는 시도중이었으며, 사무기술직에게는 JIT의 실시간 물류관리의 핵심인 시간관리기법을 적용하기 위해 낭비제거라는 슬로건을 걸고, 사무기술직의 실시간 업무시의 단위시간별 시간표(time table)을 주고 업무시간, 회의시간, 담배피러 가는 시간, 식사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철저하게 분석하게 하는 시간측정(?)이라는 무시무시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 이 부분은 프로세스가 확립되어 있고, 작업이 구체화되는 생산 활동 부문에서 낭비요소를 제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기법이다. 하지만, 사무/기술직과 같이 주로 머리속에서 추상적 프로세스를 통해 업무가 이루어지는 이들에게는 아마 굉장히 황당한 요구였을 것이다. 물론 난 CEO가 그런 터무니없는 지시를 직접 지시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까라면 까는 회사의 문화와 융통성 없는 중간 관리자들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수직적,획일적 비효율 구조가 만들어낸 웃지 못하 해프닝일 것이다. 하지만 이 해프닝이 무려 1년이나 지속되면서 조직에 씻을 수 없는 낭비를 안겨주고 혁신활동에 대한 고급인력들의 마음 속에 깊은 반감을 심어준 것은 뼈아픈 일이다.-

 어쨋든 1일차 토요타 산업 기술관에서는 토요타 설립자의 자동차에 대한 사랑과 그의 업적에 대한 시청각 자료를 견학하고, 토요타의 첫번째 차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라인업과, 당시로서는 첨단인 로봇을 구경하면서 가볍게 일정을 스타트했다. 

 첫째날을 나고야에서 묶고, 이튿날 아침 식사 후에 단체버스를 타고 카카미가하라로 향했다. 중간에 강을 가로지르는 꽤 큰 다리를 지나서 기후차체 공장에 도착하고는 곧바로 3박4일간의 연수가 시작되었다. 

 이 동네는 그리 크지는 않은 마을로 토요타 차체 정공이라는 토요타 계열의 회사와 우리가 방문한 기후차체공업에 상당한 수의 주민들이 다니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은 토요타라는 회사에 의해서 운영되는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마치 포항이 포항제철로, 기흥이 삼성전자로 먹고사는 것을 생각하면 될 듯)

 기후차체에서는 TPS를 벤치마킹해서 GPS(Gifu 차체 Production System)이라는 이름의 혁신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듣기론 이 회사의 사장등의 고위직들도 모두 전임 토요타 직원으로서 기후차체가 토요타의 협력업체로 선정되면서 토요타의 생산방식을 도입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 회사로 파견 혹은 이직한 케이스가 많다고 했다. 

 3박4일간의 일정은 오전에는 GPS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통한 설명을 통해, 이론과 실례를 듣고 오후에는 설명으로 들은 예들을 라인에서 실제로 견학하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4일째는 그간 연수의 소감과 연수의 결과를 한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현업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 공장을 둘러보는 것은 이틀이었다.

 벌써 10년 정도가 지났기 때문에 당시 연수과정에서 보고 들었던 실무적 부분이 구체적으론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직도 내 뇌리에서 또렷이 기억나는 한 가지가 있다.

 TPS의 가장 핵심적인 작업효율화 방식은, (주로 컨베이어 벨트방식과 같은 일관작업에 적용되는) 작업을 쪼갤 수 있는 단위로 모두 쪼갠 후 그 단위작업들에 대해 최대의 효율화를 디자인 하는데 있다. 효율화 기법은 몇 가지 대표적인 것이 있는데 1) 없애는 것 2) 합치는 것 3) 순서를 바꾸는 것 등을 통해 동선을 최소화하고 낭비를 없애는 것이 기본적인 사상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작업방법도 오랜 기간을 걸쳐서 이러한 효율화와 낭비제거의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단위작업들을 쪼개고 그것을 분석한다 해도 쉽게는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을 엔지니어와 작업자가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해서 이리저리 안을 짜내고 변경을 시도해서 효과를 분석하고 실행해나가는 과정이 지리하게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기존의 작업시간을 절반정도로 줄이는데 성공한 공정 하나를 견학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차의 골격이 오면 거기에 부품 하나를 붙이는 공정이었는데 작업자는 한 명이었고, 기존의 작업시간은 10분(사실 정확한 작업시간은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예를 드는 정도로 이해하자.) 정도였다. 하지만 작업대를 재설계하고 작업자의 동선과 회전반경을 최소화시켜서 그 시간을 5분으로 줄이는데 성공하면서, 전후 공정과의 tact time을 일치시키면서 2명이던 작업자를 한 명으로 줄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참고로 견학 당시는 야간작업이 없어 작업자는 주간근무(8시부터 5시)만 수행했으며, 오전 2시간 근무후 휴식 10분, 점심시간 1시간, 오후 2시간 근무후 휴식 10분으로 휴식시간이 정해져있었다.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기억이 나는 것은 작업장에서 담배를 피러 외부로 나갈 경우 10분의 휴식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작업장 가까운 곳에 재떨이와 음료수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고, 작업자는 휴식시간 10분 동안 충분히 담배 1대 정도는 여유있게 필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었다.(일본은 여전히 한국보다 담배에 대한 혐오가 거의 없는지 매우 인심이 후하다. 식당에서도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담배를 필 수 있는 곳이 많다. )

 개선된 작업시간 5분, 시간당 12대의 차체가 지나가면서 작업자는 동일한 작업을 반복한다. 충분히 동선의 효율화를 꾀했고 작업자의 숙련도도 높기 때문에 언뜻 보면 그렇게 바쁘게 지나가는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를 인솔했던 강사가 설명을 하면서 우리 팀 20명이 그 작업을 지켜보던 한 20여분간 4대의 차가 지나가면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그의 작업을 지켜보다가 난 문득 이상하게도 슬퍼졌다. 아마도 그 슬픔은 그 작업을 내가 하고 있으면 어떨까라는 감정이입이 무심결에 되면서 생겨났던 거였을거라고 짐작한다.(실제 그 작업자는 그 작업을 좋아할 수도 있을거고, 곧 있을 점심시간 혹은 퇴근후 만날 애인 생각에 신이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무심히 지나가는 차에 자신이 해야하는 공정의 부품을 달고, 볼트를 죄고, 제대로 조립되었는지를 검사하는 일련의 과정을 무표정하게 진행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무언가 적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전후의 작업자와는 꽤 거리가 멀고 소음도 상당하기 때문에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주변 작업자와 이야기나 소통을 할 방법이 거의 없다. 다만, 비상시 자기 자리에서 잡아당길 수 있는 끈이 매달려 있는데 이 끈을 당기면 모든 작업이 중단되고 즉시 엔지니어가 호출된다. 즉, 작업이 궤도에 오르면 그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끈 하나밖에는 없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최대 선은 부가가치의 창출이고 비즈니스 주체는 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입력을 최소화하고 출력을 최대화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산업의 고도화가 이루어지면서 현대의 산업은 인간을 위협하는 비인간적 요소 역시 개선해나가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 고도화를 통해 인간의 물리적,육체적 생존을 위협하는 눈에 보이는 요소들은 제거되어가고 있으나, 그간 우리가 겪지 못했던 소외요소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바로,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서 겪게 되는 권태, 주변과의 소통의 부재를 통해 겪는 외로움등이다. 권태와 외로움은 북적대는 대도시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절실하게 와닿는 감정중 하나이다. 모두 같이 일을 하지만, 모두가 남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칸막이가 되어 있는 소외의 파티션속에서 모두가 자신만의 권태와 외로움과 고군분투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대강적인 모습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날것 그대로의 금속의 검은 은빛의 차체와 씨름을 하고 있는 그 작업자의 모습이 아직도 나에겐 슬프게만 느껴진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렇기에 예술보다는 인생이 100만배 소중한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타파<Sutta Nipāta>’에 나와있는 운문의 유명한 후렴구이다. 성경의 공관복음(共觀福音, 마태오,마르코,루카의 3복음서)이 예수님의 말씀의 구전을 모았듯이, ‘숫타니타파도 부처님의 말씀 구전의 모음집이다.

 

 무소의 뿔 부분은 파격과 큰 깨달음을 주는 내용으로, 31개의 절구이며, 그 시작과 끝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씀들은 불교의 핵심교리인 해탈을 위해 끊어야 하는 온갖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홀로 정진하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출가를 하여 스님이나 신부님(혹은 수녀님)이 걷는 구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게 아니라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가족을 이루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런 일상인으로 무작정 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184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당시 임산부들은 아이를 낳고 산욕열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많았다. 제멜바이스의 병원은 일반외과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이 나뉘어져 있었다. 때로는 산부인과 병동이 인원이 차게 되면, 일반외과 병동에 산부인과 환자(주로 임산부)가 입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와중에 제멜바이스는 일반외과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의 입원 환자들의 산욕열 발생률이 차이가 나는 걸 알게 되었다. 제벨바이스는 이 사실에 주목하여, 일반외과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조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외과병동과 달리 산부인과 병동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손을 자주 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세척이 감염을 막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제멜바이스는, 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몇가지의 방법으로 손세척을 시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물보다는 클로르 석회수가 산욕열 예방에 효과가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곧 제멜바이스는 병원내에서 환자를 진료/치료하기 전에 손세척을 의무화하였고, 그 결과로 산욕열 발생율이 18%에서 1.2%로 감소하였다.

 

 제멜바이스는 이 사실을 곧 의사동료들에게 알려주었고, 모든 병원에서 진료전 손씻기를 할 것을 제안하였다. 현대의 우리로서는 일견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제안에 대해 당시 의사동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제멜바이스의 발견에 사용된 방법과 데이터의 의문을 제기하였고, 어떤 이들은 상류사회의 신사들인 의사들이 손이 더럽다는 가정 자체가 인격을 모독하는 비도덕적인 비열한 행위라며 제멜바이스를 비난했다. 이와 같은 동료들의 반발과 비난에도 제멜바이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동료의사들은 그를 돌팔이로 매도하고 의료계에서 추방했다. 이 충격으로 제멜바이스는 끝내 1865년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그곳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하게 된다.

 

 1859년 파스퇴르는 연구를 통해 공기중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균)의 존재를 예견하였다.

 

 1865년 영국의 외과의사 조셉 리스터는 파스퇴르의 연구로부터, 외과적 수술에 의해 발생한 상처의 부패와 화농화가 공기중에 있는 작은 미생물이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미생물이 상처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그 미생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시행착오 끝에 석탄산으로 세척하는 방법이 상처의 부패와 화농화를 막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척방법을 수술에 적용후에 외과 수술후 수술부위가 썩어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게 되었다.

 

 1875년 영국의 존 틴달이 세균의 존재를 실험으로 증명함으로써 의료분야에서 소독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었다.

 

 이후 제멜바이스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그는 현대의학에 있어서 수술전 손세척의 개척자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참고적으로 병원의 현대적인 손세척 과정(베타딘을 이용하고 손세척시 가운을 착용하는 표준 프로시쥬어를 사용하는)1970년이 되서야 미국에서 확립되었다.

 

 제멜바이스의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그가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외롭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긴 했지만 그에 따른 리스크를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대의 상식으로 보면 제멜바이스의 사례는 명확히 제멜바이스가 옳은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발견은 당시의 관습과 상식에 반하는 것이 많고 대부분 역풍을 맞게 된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반대하거나 의문시하는 주장은 공격을 받기 마련이다.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이순신, 세종대왕, 마틴루터, 그리고 예수님과 부처님이 그렇다. 그리고 예로 든 이 모든 이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면서 겸비했던 덕목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근성이었다. 그들은 용기있게 주장했고, 반대에 부딪혀도 근성있게 버텨냈다.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가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고, 이순신 장군께서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며 역사를 바꾸는 근성을 보이셨다.

 

 강한자가 남는 것이 아니라, 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그 어떠한 순간에도 밀고나가는 용기와 멈추지 않을 근성이 필요하다.

 

 현대는 패러다임 파괴의 시대이다. 오늘의 패러다임이 내일은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낡은 것이 되고 폐기된다. 세상은 점점 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만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 시대의 상식과 관습은 우리에게 멈추라는 경고를 한다

 그러기에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이들이라면 더욱 <용기>와 <근성>을 가지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만 한다.


대부분의 이들이 잘 알다시피 비행기를 발명한 이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이다. 라이트 형제는 1899년부터 비행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여 1903년에 세계최초로 동력을 이용한 유인 비행에 성공한다. 이후 1908년에 최초의 상업비행을 성공함으로 인해 세계인들에게 비행기의 발명자로서 그들의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 시기에 비행기에 대한 연구개발을 수행한 이들은 라이트 형제만이 아니었다. 특히 근대에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무인 비행을 최초로 성공시킨 이는 사무엘 랭리(Samuel Langley)이다.

현재에는 아는이가 거의 없는 사무엘 랭리는 대학시절 건축, 토목학을 전공하고 이후 천문학과 물리학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에 펜실베니아의 웨스턴 대학의 천문학 및 물리학 교수와 스미소니언 협회 회장을 역임한 당대의 최고 엘리트였다.

그는 60살이 넘은 나이에 당시 기술의 발전으로 당시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 비행기의 실용화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연구개발에 뛰어들어 1896년에 세계최초로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무인 비행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와 발명가(라이트 형제를 포함)는 치열한 개발경쟁을 벌였고(라이트 형제도 초기에 비행기의 개발에 사무엘 랭리로부터 설계개념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등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미국와 유럽에서 몇 십차례에 걸친 시험비행을 여러 연구개발팀이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를 거듭해왔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최초로 유인 비행을 성공하였으며, 1년여의 개발성공에 대한 논란을 거쳐서 라이트형제가 세계최초로 유인비행을 성공시킨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사실 당시 과학계에서는 세계최초의 비행을 성공시킬 이로 사무엘 랭리를 대부분의 사람이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미 전단계인 무인 비행을 성공시켰고, 천문,물리학의 박사에다가 저명한 대학의 교수이자, 미국의 저명 과학아카데미인 스미소니안 협회의 회장이라는 배경에 일반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시골의 촌뜨기인 라이트형제는 오직 하늘을 날고 싶다는 어린시절의 꿈에서 촉발된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의 노력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개선을 거듭하면서 결국 세계최초로 유인 비행에 성공하게 된다.

사무엘 랭리는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비행을 성공하자, 이후 비행기 개발에 대한 열정을 잃는다.(사실 나이도 많이 들었다.) 
그에겐 세계 최초의 비행기 개발자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기에 더 이상의 개발동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라이트 형제는 5년간의 추가 개발을 거쳐, 유인 비행기의 안정성(세계 최초의 비행 이후, 검증 비행에서 몇 차례 사고가 나면서 인명사고가 발생한다.)을 높이면서 1908년에는 최초의 대중공개 비행에 성공하면서 전세계에 비행기 발명자로서 라이트 형제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또한 1909년 세계 최초로 상업비행기 회사를 설립하고, 1910년에는 비행기를 이용한 상업화물의 운송비행을 시작하고, 1910년부터 1916년 사이에 라이트 형제 비행기 훈련학교에서 115명의 비행조종사들을 배출한다.

랭리와 라이트 형제와의 차이는 비행기 개발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었다. 랭리는 세계 최초의 비행기 개발자라는 명성이 필요했고,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비행기 개발은 하나의 작은 목표였다는 점이다.

진정한 꿈이란 나를 바꾸고, 주변을 바꾸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당신의 꿈은 어떠한가?


1990년대 초반, 전세계적으로 히트되면서 맥컬리 컬킨을 전세계적인 아역 스타로 만들어준 나홀로 집에는 전세계적인 히트를 하며 5억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그에 따라 당시 12살이었던 맥컬리 컬킨도 전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동시에 백만장자로 올라섰다.  

이후 2개의 속편까지도 전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면서 맥컬리 컬킨은 귀여움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마이클 잭슨과는 나이를 뛰어넘어(마이클 잭슨도 어린시절부터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나이에 맞는 또래와의 사귐이 없었으며 연예인중 대표적인 피터팬 증후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랜동안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행운에 가난했던 부모(아버지는 성당의 잡일을 도와주는 사무원, 어머니는 전화교환수, 7남매를 뒀으며, 컬킨은 셋째였다)는 미성년인 컬킨의 수입과 양육에 대한 문제를 두고 의견의 대립을 가졌으며, 이혼 소송에 이르게 된다. 이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여야 했던 컬킨은 1994년에 모든 연예생활을 중단한다. 이후 1996년 부모는 수 년간에 걸친 이혼소송끝에 결별했고, 컬킨은 이후 어머니와 함께 뉴욕에서 생활한다. 

컬킨은 그 후 1997년인 17살에 연기학교 시절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2년후에 이혼을 했으며, 그 이후 알콜과 마약중독등으로 인해 폐인과 다름 없는 생활을 몇 년간 하게 된다. 너무나 어린 시절에 성공한 것때문에 도리어 유년시절에 가족이 해체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유명인이 되어 공인이 된 탓에 40이 다 되가는 지금까지도 대중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는 공황증세에 시달린다고 알려져있다.

10대 이후 20여년 이상을 방황하면서 불행했던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끈임없이 자신을 위한 성찰의 시간을 보내오면서 최근엔 서서히 정신적으로도 성숙하고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어릴 적의 케빈을 기억하는 수 많은 팬들도 그가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나홀로 집에(Home Alone)는 시카고에 사는 중산층인 맥칼리스터 가족이(영화내에서 이 가족도 대가족이다, 삼촌과 고모의 아이들까지 합쳐 11명의 사촌들이 휴가전에 케빈 집에 모여있는 설정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파리로 휴가를 떠나기 전날에 시작한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가족들은 시카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가게 되고, 케빈은 몇 가지의 실수와 우연이 겹쳐져 홀로 집에 남게 된다. 

마침 이 동네 2인조 도둑이 있어, 이들은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을 노려 빈집을 털려고 하며, 이를 우연히 알게 된 케빈이 이 도둑들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한 내용들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때로는 아이다운 순진함과 유머 그리고 어떨때는 어른을 뛰어넘는 지략을 보여주며 숨쉴틈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덕분인지 이 영화는 그해 전세계 최고흥행을 기록하게 되었다.

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간혹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보게 된다. 이번에는 아마 한 5,6년만에 영화를 보게 되면서 이전에는 그리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에서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했던(또는 이 영화를 자꾸만 보게 되었던 핵심적인 부분이랄까?) 의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다음은 그 부분에 대한 편집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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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 내가 여기 온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손녀의 노래를 듣는거야? 오늘 밤엔 올 수 없거든

케빈 : 바쁘세요.

말리 : 아니. 난 불청객이거든.

케빈 : 교회에요?

말리 : 교회엔 언제든 올 수 있어. 내 아들이 싫어한단다.

       네가 이 동네에 오기 몇 년 전인데 아들과 다퉜단다.

말리 : 다른 건 몰라도 두려움엔 어른이 따로 없단다.

케빈 : 맞아요. 난 지하실이 무서웠어요. 어둡고 이상한게 많아요. 냄새도 희안하고

       난 그런 게 싫었거든요.

말리 : 지하실은 다 그래.

케빈 : 근데 빨래 땜에 가 보니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불을 켜니까, 그런게

       아무것도 아니지 뭐에요.

말리 : 요점이 뭐냐?

케빈 : 아들에게 전화 하시라고요.

말리 : 전화를 안 받으면?

케빈 ; 최소한 더 이상의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을 거에요. 난 아무리 바빠도

       휴가 땐 아빠에게 전화 할텐데

말리 : 난 모르겠다.

케빈 : 해봐요. 손녀를 위해서도요. 할아버질 그리워 할거에요. 선물도요.

말리 : 고만 집에 가보는게 좋겠구나. 내 얘기 잘 새겨들으렴.

케빈 : 저도요. 할아버진요?

말리 : 나?

케빈 : 예 아들이랑요.

말리 : 두고봐야지. 메리 크리스마스

케빈 : 메리 크리스마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다시 가족들이 케빈의 집에 돌아오고 창문으로 본 옆집에서도 말리 할아버지가 아들의 가족들과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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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표현에 서투르게 되는 것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이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뒤돌아서서 후회하면서도

쓸데없는 생각과 쓸데없는 자존심에, "미안하다.",  "사랑해."와 같은 한 마디 말을 할 기회를 수 없이 놓쳐버리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이다.

해봐야지, 해봐야지 하면서 결국에 느는건 후회와 나이뿐인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해봐야지라는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만다.


스타워즈에서 그랜마스터 요다는 젊은 루크 스카이워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하든지 하지 않든지 둘 중에 하나야. '해본다'는 없어."


2천년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의 이브의 밤이 깊어가고 있고, 2017년이 이제 몇 일 남지 않았다.

더 늦기전에 해보고 싶던 것들을 하는 마무리가 되기를 바라며.

2017년에 많이 미안했고, 많이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

진리는 단순하며 거짓은 복잡하다. 이 말은 오캄의 면도날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알고 있다.

14세기 영국의 수도사였던 오캄은 논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 많은 것들을 필요없이 가정해서는 안된다.


"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 보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단순성의 원리라고도 하며, 모든 조건이 같다면 단순한 쪽이 최선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로 요약된다.

이 비유는 특히 서양의 과학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진리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왔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보시고, "너희가 진실로 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지 않으면, 천국에 가기 힘들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어린아이는 순진한 것 같고 비논리적인 것 같지만, 그 전후의 맥락을 잘 살펴보면 이슈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는 적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한 사물의 핵심을 파고드는 인사이트의 중심에는 바로 '단순함'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의 대부분은 거짓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거짓은 그 거짓을 덮기 위해 다시 거짓을 낳고, 또 거짓을 낳고.. 

그 거짓들이 계속되다 보면 내용은 핵심이 없어지고 거짓을 숨기기 위한 가식과 위선만이 난무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가식과 위선의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피하거나 외면하지만, 종국에는 그러한 거짓들은 

되풀이되면서, 거대한 악이 되어 선한자든 악한자든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한 알에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태산을 옮기는 기적을 낳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기도 하지만, 

고작 이정도야 하는 교만함으로 인해 댐이 무너지고, 다리가 부서지며, 나라가 망하는 것 역시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복잡함 속에서 출구를 찾을 수 없을때, 멈춰서 단순함을 생각해야 한다.


1993년 삼성의 이건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모든 삼성의 임원진을 모아놓고, 처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화두로 삼성의 모든 것을 바꾸는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였다. 그 덕분인지 20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부동의 1위이며, 세계적으로도 100대 기업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기업의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약방의 감초격으로 삼성의 이 에피소드가 나오곤 한다.

혁신이란 개인으로 이야기하면 다이어트와 비슷한 것이다. 운동선수가 살이 너무 찌면,  몸이 둔해져서 운동에서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운동선수는 기술 이전에 경기의 모든 시간 내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것이 기술습득 이전에 선결될 제1의 과제이다. 

혁신이란, 가죽을 벗겨 몸을 새롭게 한다라는 그 의미처럼, 경쟁이 치열해져가는 환경에 기업의 대응속도를 높이고, 그러한 쉬임없는 대응을 유지하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적/시스템적인 효율을 극대화하는 개선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도 혁신 또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라는 화두가 기업경영에 있어서 대중가요 히트곡의 후크처럼 되버린 것이 이미 20년정도 된 것 같다. 

회사의 규모가 크고 작고를 떠나서, 모든 회사들은 연말과 연초가 되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세우기 위해 혁신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그 방안에 대해 실천계획을 세우며, 그에 대한 관리를 최소한 분기에 한 번씩 실시하고 그 모니터링 결과를 구성원들에게 공유하며, 결과가 좋으면 더 좋게 하자고 더욱 분발을 촉구하고, 결과가 나쁘면 나쁜데 대한 책임을 묻고, 그것에 대해 반성하며 이를 만회하기 위한 비상계획까지 세우며 이미 숨이 턱 밑까지 차있는 구성원들에게 더 힘을 내자는 개소리를 지껄여댄다.

헬스대회를 나가는 보디빌더들도 대회 전 6개월 정도 극한의 운동과 식이요법을 시행하면서 그러한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한 멘탈 관리를 한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나면 그러한 긴장상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일주일 정도는 운동도 쉬어가면서 푹 휴식을 취하는 기간을 가지며, 이러한 기간이 없으면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정신적인 긴장감이 풀어지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끊어져서 심각한 멘탈 디스오더(예를 들어 burn-out)가 발생하기도 한다.

혁신을 끊임없이 한다는 말 자체가 개소리인게, 어떠한 조직과 인간도 1년 내내 유지되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러한 과도한 스트레스는 도리어 퍼포먼스 향상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잘 노는 인간이 일도 잘한다라는 말도 있지만, 일의 스트레스가 끝나고 나면 그 스트레를 제대로 발산해서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1년 내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보다는, 1년에 몇 일 날을 정해놓고 이날만은 내가 원하는데로 먹는다와 같은 중간의 휴식지점을 가져가는 사람의 퍼포먼스가 훨씬 난 것은 이런 연유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는데서 효율이 나는 법이다.

머리가 좋은 이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이를 이길 수 없으며, 즐기는 이는 미친 이를 이길 수 없고, 미친놈도 결국은 운좋은 놈을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보통 운좋은 놈들은 보면 잘 노는 놈들이 많다. 잘 놀다보면 좋은 에너지가 발산되서 운도 좋아지는 법이다. 

어떻게 하면 잘 놀까를 궁리하는 것, 이것이 가장 윗길이다.

4. 그러면 왜 우리는 한사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일본의 전쟁시 침략행위(한국인 징용 전사자,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해야 하는가?

- 일본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과 한일기본조약이라는 것을 맺게 되며, 그 조약내에 과거 대동아 전쟁시의 일본의 모든 행위에 대해 6억달러(무상 3억달러, 정부 차관 2억달러, 민간 차관 1억달러, 즉, 쉽게 말해서 3억달러는 배상금으로 주고, 3억달러는 빌려주겠다.)로 퉁친다는 계약을 하게 된다. 일본의 주장은 1965년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정부와 이미 배상에 대한 협약을 했는데 왜 니네들은 정권만 바뀌면 계속 말을 바꾸느냐 하는 것이다.(이게 어찌 생각해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다음 기회에 적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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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가간의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4번 항목에 대해 약속을 어긴 것은 대한민국이지 일본이 아니다. 고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보다는 대한민국에 책임이 크다. 이것이 소위 보수(원래 보수란 것은 좋은 뜻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보수란 친일파를 그 원류로 하고 북한을 빌미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약화시키고, 자기들의 친일 전력에 대한 어두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집단을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고 있는데, 나쁜 새끼들이 온갖 좋은 이름은 다 갖다 쓰고 있다.)라는 인간들이 내세우는 논리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일제가 조선과 조선민족에게 행한 일은 일방적인 폭행과 같은 극히 야만적인 행위이다. 인간과 인간의 기본관계에서 만약 어떤 인간이 한 인간을 일방적으로 폭행하여 사망 혹은 병신에 이르게 하면 벌을 받는다. 이것은 물론 민사적으로 위자료로 어느 정도 형을 감형할 순 있지만 민사의 합의가 아무리 이루어져도 인적인 손실(사망,장애)에 이르게 될 경우는 형사적으로 처벌을 받고 징역 혹은 사형과 같은 물리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1950년 세계 2차 대전의 종전 이후에도 나치에 부역하며 유태인 학살에 가담했던 전범들중에 체포되지 않았던 인간들을(예를 들어 아이히만같은 이), 유태인이 세운 국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에서는 수 십년의 세월이 지난후에도 하나하나 집요하게 추적/체포하여 이스라엘로 송환해서 전범 재판을 치루게 하였다.

대한민국은 해방이후 김구를 위시한 임시정부 인사들이 주도가 되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들을 처단하기 위해 반민특위를 결성하지만, 도리어 이들은 이승만과 미 군정을 통해 경찰과 군대에서 실권을 장악한 악질 친일파(노덕술 같은)에 의해 도리어 숙청당하고,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지사들이 북한으로 망명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북한으로 망명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사들-김원봉 같은-도 결국 북한에서 김일성에 의해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숙청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친일파 숙청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도리어 친일파가 득세를 하게 되고, 결국에는 4.19의거 이후 혼란해진 틈을 타 군부에서 힘을 기르던 최고의 골수 악질 친일파 박정희(박정희는 일본 육사 출신이며, 또한 그의 형 박상희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한때 가졌고 공산당으로도 활동했다.)가 5.16쿠테타를 통해 대한민국의 실권을 장악하는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말 그대로 다시 친일파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연출하였다.(이승만도 부정부패로 얼룩진 쌩양아치긴 하지만 그도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전력이 있고 일본을 누구보다 미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면서 김종필을 대표로 보낸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일제강점기에 조선민족에게 행해졌던 반인륜적이며 야만적인 모든 행위에 대해 박정희는 6억달러의 껌값으로 일본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

이것은 3남3녀를 가진 아버지가, 남자 1명은 징용나가서 총알받이로 죽고, 1명은 광산에서 탄을 캐다가 죽고, 1명은 그냥 일본놈이 때려죽이고, 딸 1명은 위안부로 끌려가서 죽고, 또 한명은 독립운동했다고 고문당해 죽고, 또 한명은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모진 고생을 하고 살아남았지만 화냥년이라고 대한민국에서도 외면당하면서 쓸쓸하게 살다가 죽었는데, 이것에 대해 일본에 항의하다가 돈 몇 푼 쥐어주니 그래 없던걸로 하자고 하면서 희희낙낙하는 꼴과 다를바가 없는, 양심과 도덕이라는게 있는 인간이라면 피가 끓고 눈이 뒤집힐 비인륜적이면서도 만인이 공로할 잔악무도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2차 대전후 독일은 연합군에게 무조건 사과와 무제한의 배상을 약속하였으며, 독일 자국에서는 나치와 같은 비인륜적 집단이 나오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서 정확히 가르치며, 그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아우슈비츠와 같은)을 그대로 보존하고 이를 국민들의 역사교육의 장소로 활용한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헤이트(hate)행위라고 명명되는 나치찬양과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법으로 금지하고 그에 대해 사법적인 책임을 묻는다. 그러한 뼈저린 반성을 통해 독일은 다시 유럽의 하나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고 주변국들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왔으며, 지금은 유럽연합의 주축으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그러한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2차 대전이후 미국의 보호와 곧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전쟁 덕분에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단기간에 이루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서방에서 당시의 일본은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조롱섞인 말로 불렀던 것 처럼, 그 위치에 맞는 국가의 모랄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패전 당시의 일본 정부인사들이 당시의 천황 히로히토만은 지키기 위한 노력(2차 대전 당시 일본은 천황제의 국가이며, 천황이 모든 권력을 갖고 있던 나라이다. 당연히 전쟁의 책임은 히로히토에게 있고, 1급 전범으로서 히로히토는 사형당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과 히로히토를 면담했던 맥아더가 히로히토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면서, 가장 큰 책임이 있던 천황가가 살아남게 되었으며, 당시 일부 내각의 총수와 군장성 몇몇만이 전범으로 사형을 당했을 뿐, 전쟁에 책임이 있는 제국주의계열의 수 많은 인사들이 그대로 일본의 전후 내각에 포진하게 되어, 현재의 자민당 아베 총리의 체제까지 그 이념과 철학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상태이다.

즉,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내각제의 민주주의 사회이긴 하지만, 사실상 그 내부의 핵심을 파고 들어가면, 아직도 전쟁 이전의 천황제와 그 천황에 충성하는 내각과 대다수의 국민들의 정서는 변화한 것이 거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변하지 않는 구성과 그로부터 나오는 자세들에서 아시아의 국가들은 말로는 사과를 하지만, 실제의 속내로는 전혀 사과를 하지 않고 있고, 도리어 그 옛날 대동아 공영권을 구상했던 그 시절의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마저 꿈꾸는 일본의 정치인들을 보면, 아시아인들은 그 예전 일제강점시대의 악몽이 근 미래에 다시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인들도 불행하지만, 결국 일본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를 부활하여 아시아에 위협요소가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물리적,군사적 충돌을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충분하며, 현재 아시아에 있는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만으로도 이 지역의 초토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그를 통해 일본 국민들의 계몽, 그리고 일본 정치체제의 각성과 변화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아시아의 평화란 것은 보장될 길이 없다. 아시아 각국의 일본에 대한 사과 요구는, 우리가 예전에 맞았고, 다쳤고, 죽었으니 그 억울함에 대해서 너희는 반성하라는 과거사에만 얽매인 그런 찌질한 것이 아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진정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그 위치에 걸맞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일본은 그에 걸맞는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일본은 왜놈, 쪽발이같은 비하의 표현을 더 이상 듣지 않고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와(和)를 실천하는 1등 국가와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되지 않는 한, 일본은 제 아무리 잘나봤자 비열한 쪽발이 새끼들일뿐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를 촉발시킨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이 2가지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개발한 초창기의 이유는 단순한 작업 혹은 인간이 하기에 위험한 작업에 로봇과 인공지능을 사용한다는 작업의 카테고리상 인간이 하기에 어렵고 힘든 일에 적용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해당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젠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고도로 복잡한 작업의 수행이 가능해지면서, 각 분야별로 인간을 대체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상향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게, A.I가 탑재된 로봇을 통해 인간을 대체하게 되면, 그 다음은?


블레이드 런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와 같은 아주 음울한 미래를 연상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로봇으로 대체한 미래를 생각해보면 그리 유쾌하진 않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거리를 보면, 로봇 청소부, 로봇 운전사, 로봇 경비 등등등. 혹시라도 회사에 가게 되면 웬만한 일은 로봇이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CEO정도와 그 비서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임원진 몇 명만 있으면 구글과 삼성같은 회사는 일년에 꾸준히 몇 십조의 매출과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하고 힘든, 도전정신이 필요한 모든 일들은 로봇의 차지가 될 것이고, 인간은 몇 년전 본 헐리웃드 애니메이션처럼 로봇의 시중을 받으며 살만 피둥피둥 찌는 배부른 돼지가 되 있을지도 모른다.


SF에 많이 등장하듯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로봇에게 지능이 구현되어 생물학적 DNA에 의한 진화에서 전자와 네트워크를 통한 진화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면 인간이란 종은 신인류(지능을 탑재한 메카닉)로 퓨전되든지 아니면 신인류에게 말살되든지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리라는 예상은 지구의 생명의 역사를 돌아볼 때 전혀 허황된 생각이라 할 수 없다.


아마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하에서 사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지구 역사 45억년동안 그 어떤 생물도 가져보지 못한 먹이사슬의 범접할 수 없는 최상층에 인간을 올려놓았지만, 이젠 그 시스템 자체가 인간의 생존을 위한다기보다는 시스템 자체의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협약이 경제적 문제로 인해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역시 위험요소를 안고 있지만 원자력 발전은 지속되고 있고, 지구를 100번 이상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원자탄 및 수소탄, 그리고 지구인 전체를 한방에 절멸할 수 있는 생화학 무기등이 개발되고 제조되는 바탕에는 자본주의의 힘이 알게 모르게 숨겨져있다.


부모는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밤을 새워 일하고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사고, 아이에게는 좋은 장난감과 좋은 책, 그리고 좋은 학교를 보내준다. 하지만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부모의 따뜻한 품과, 관심어린 대화, 가족이 모여 저녁 한끼를 먹는 정겨움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배려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내가 갈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줄 로봇 운전사라기보다는 내 하소연을 들어줄 경륜이 있는 운전사일수도 있고, 음식점에서 내가 시킨 음식만을 정확히 날라다 주는 로봇 메이드보다는 반쯤 남은 소주 한병을 슬며시 건네주는 투박한 함바집 아줌마일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 라기보다는 2017년과 다가올 1년, 1년후의 근미래의 사회와 과학등의 발전 속도는 이제 가늠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속도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초고속 롤러코스터와 같은 압도적이고 회피불가능해보이는 기술의 발전에 대해 인간과 인류의 미래의 행복을 위한 합목적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따위는 일견 사치로 보일 만큼 집단간, 국가간의 사활을 건 각축은 치열하다.


봉준호의 설국열차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열차가 종국에 정지한 후 열차를 나온 2명의 여자아이. 그러한 미래를 위해 쎄가 빠지게 인류가 달려가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우울하고 쌔드(sad)한 개그가 있을까?


 일본의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뉴스가 몇 일 전에 있었다. 

현재의 일본 총리인 아베를 비롯한 일본 내각이 8월15일(한국의 광복절이 일본에게는 종전기념일이다.)

극우계열인 아베(자민당이라는 당 자체가 극우보수이다)는 총리대신으로 취임한 첫해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해하고,

그 이후부터는 중국,대한민국등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반대를 의식하여 공식적으로 참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나 본인이 신사 참배를 못하는데 대해 죄송한 마음과 양해를 구하고, 사비로 매년 신사에 공물을 바치고 있다.

즉, 매년 가고 싶은 마음이나 공인으로서 국가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는 입장이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1. 야스쿠니 신사의 배경.

야스쿠니 신사는 다른 일본의 신사와 달리, 일본의 대동아전쟁(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군인들을 군신으로 승격시켜서 신사에 모시고 있다.야스쿠니는 전통적으로 천황가에 소속된 신사로, 천황가는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단군왕검이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의 창조신인아마테라스(태양신) 이후, 일본을 지배한 천황가는 일본국민으로부터 살아있는 신으로 받들여졌으며, (내가 일본의 역사에 그리 밝지 않고, 일본인을 잘 알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으나), 내각제인 현재의 일본에서도 일본의 천황가는 영국의 왕가보다 더욱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한 일본이 패전후, 연합국은 당연히 전쟁의 주범인 천황 히로히토를 전쟁의 책임을 물어 사형에 처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천황을 살리기 위해 당시 일본의 모든 관리들은 연합국의 사령관인 맥아더를 위시한 승전국의 주요 장교들에게 필사적인 로비를 전개하였고(이 로비에는 일본의 관리들중에 20대의 딸을 가진 자들은 모두 자기 딸을 연합국 장교들을 접대하는 자리에 술시중을 드는 기녀 대신으로 차출하였다.

-즉,첩이라는 의미로-이 고급각료들의 딸들은 연합국 장교들과 함께 밤자리를 하면서 영어로(이 여자들은 당연히 일본 최고의 집안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 인력이다.) 천황은 꼭두각시일뿐이며, 일본의 내각의 관료들과 전쟁광인 일부 대장들이(별 4개)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 호도한다.


또한, 히로히토를 직접 만난 맥아더는 예상외로 유약한 모습의 히로히토에게서 연민의 정마저 느끼며 미 본국에 히로히토는 이러한 큰 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단지 꼭두각시였을 뿐이다라는 보고를 통해, 결정적으로 히로히토가 전범에서 제외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주범인 천황 히로히토는 연합국의 전범 재판에서 아예 열외되고, 우리가 알다시피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등 주요 내각과 사령관등이 A급 전범으로 처형되었다. 원래 A급 전범으로 처형된 자들은 미국의 관리하에(당연히 미국이 관리했다) 화장되어 그 뼈가루가 도쿄만에뿌려졌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졌으나, 이 과정에서  처형되었던 전범인 고이소 구니아키의 변호사가 화장장의 인부들을 매수하여 골분을 몰래 빼돌려보관하였다가,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2차 대전중 사망한 일본의 모든 군인들과 함께 일본을 지킨 군신(軍神)으로 격상하여 합사하게 되었다.


일본은 만신을 모시는 국가로, 종교적인 똘레랑스(tolerance, 관용, 보통 불어로 사용하면 어떤 사항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의 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가 지극히 높은 나라이다. 예를 들어 불교가 오면 불교도 좋고, 기독교가 오면 기독교도 좋고, 신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어느 면에서는과거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인 국가종교로 선포하기 이전의 로마인과 비슷한 종교관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말해서 이는 어떤 하나의 종교가 이니셔티브를 잡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의 신사는 바로 이러한 일본의 만신(万神)을 모시던 사당이 발전한 형태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그 신사중에서도 중요한 이유는 천황가의 직속 신사로서 천황가와 천황가를 모시는주요한 충신들이나 장군들은 죽은 후 모두 신으로 승격되어 이 야스쿠니에서 합사(合祀) 하게 된다. 

단지, 일본 패전후에는 야스쿠니는 더 이상 권력이 없는 천황가와 분리하여 표면적으로는 민간사찰로 남게 되지만, 여전히 천황가의 주요한 행사와 천황가와 관련된 주요한 모든 신들을 모시는 중추적 임무를 여전히 수행하며, 국가적으로 엄청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이 후 글은 아래 기사 뒤에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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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 납부…여야의원 집단 참배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김병규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의 종전기념일(패전일)인 15일 오전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대리인인 시바야마 마사히코(柴山昌彦) 총재특별보좌를 통해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시바야마 총재특별보좌를 통해 공물의 일종인 다마구시(玉串·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료를 봉납했다.

아베 총리가 2012년 말 총리 취임 후 패전일에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것은 5년 연속이다.

이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한 데다 다음 달 국교 정상화 45주년을 맞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고려한 것으로 일본 언론은 전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행렬
야스쿠니 신사 참배 행렬[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6년 4월 야스쿠니(靖國)신사의 봄 제사에 맞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보낸 공물인 '마사카키'(眞신<木+神>) [교도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울러 매년 참배를 해온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상은 측근을 통해 올해는 참배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내년 자민당 총재선거에 나가 차기 총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한국,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 수십 명은 이날 오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로 했다.

이들은 매년 종전기념일과 야스쿠니 신사 봄ㆍ가을 제사 때 신사를 참배해왔다. 지난해 종전기념일에는 70명가량이 이 신사를 찾았다.

또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이 회장을 맡고 있는 집권 자민당의 보수파 그룹 '전통과 창조회'도 야스쿠니 신사를 찾을 예정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아베 총재특보, 야스쿠니에 공물료 대리 납부
아베 총재특보, 야스쿠니에 공물료 대리 납부(도쿄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일 오전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대리인인 시바야마 마사히코(柴山昌彦) 총재특별보좌를 통해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했다. 사진은 야스쿠니신사에 도착한 시바야마 총재특보. jsk@yna.co.kr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약 246만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곳에는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판결에 따라 교수형 당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를 비롯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아베 일본 총리
아베 일본 총리[AP=연합뉴스 자료사진]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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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는가?

야스쿠니 신사에는 위에서 얘기했듯이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서 2차 세계대전의 책임자이며, 조선의 식민지배와 내선일체라는 명분으로 식민지배하의조선민족을 무자비하게 전쟁터에 내몰며,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총알받이로 여자들은 일본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착취한 범죄자가 신으로 승격되어서 그 제사를 지내는 것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의미이다.


이것은 쉽게 설명하자면, 조선을 포함하여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국민에게는 유영철이나 조두순같은 극악무도한 살인마보다 훨씬 질적으로 나쁜 인간을 일본의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이니 대한민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국민으로서는 그 역사를 안다면 기가 차고도 코가 막힐 말 자체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3. 그러면 왜 일본은 이러한 아시아 전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유지하고 또한 주요 정치인들이 중요한 때만 되면 가서 꼭 참배를 하는가?


한국도 해방이후 임시정부의 적통인 김구와 박헌영 같은 민족지도자 계열의 인물이 정권을 잡지 못하고, 남한은 이승만, 북한은 김일성이라는양아치가 권력을 쥐게 된다. 또한 이 양아치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잡기 위해 또한 권력을 잡은 후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그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게 되는데,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바로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을 주로 공산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했다는 이유로 일제시대 친일파를 척결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반민특위를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에 속해있던 애국지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게 되며, 이로 인해 수 많은 애국지사들이 친일파에 손해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일부는 이러한 남한의 상황에 환면을 느껴 북한으로 넘어가나(박헌영, 김원봉 등), 역시 김일성에게 이용당한 후 북한에서도 숙청을 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일본은 2차 대전의 패전을 미국을 주도로 한 연합군이 들어가서 그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바로 그 전쟁을 일으킨 세력들이 일부의 대가리들만 전범으로 몰고, 주요한 몸체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연합군의 비호아래 그 전쟁세력이 다시 정권을 이어가게 된다. 이것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독일이 패전후에 괴링과 몇몇 장성이 처단당하고, 히틀러가 다시 정권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의 꼬라지인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일본국민의 가슴에 그 당시까지도(지금까지일지도 모른다) 천황은 신이라는 전근대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2차대전 종전이라는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에서도 구체제가 붕괴되고 신체제로 넘어가야 할 그 시기에 구체제가 단지 신체제라는 표피만을 걸치고 총리대신이 법적인 국가의 수반이라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론 천황의 권위가 살아있는 그런 신체제이지만 구체제의 핵심은 그대로 살아있는 이상한 균형을 72년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한 균형하에서 일본은 특유의 국민성과 독재와 다름없는 정권의 방향성 그리고 미국의 보호아래에서 전쟁의 폐허속에서 눈부신(말 그대로)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일본도 좌익이 없지는 않다. 공산당까지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기때문에 진보좌파적인 공산당에서는 다른 아시아국가와 마찬가지로 야스쿠니 신사와 천황이 존속에 대해 반대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대동아 전쟁때의 일본의 비인륜적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과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소수이며 일본의 민주주의 수준이 아직까지 경제수준에 비해 낮기 때문에 영향력이 크지 않다.

또한 일본국민들은 정권의 의도적인 역사지우기로 인해 사실상 일본이 행한 과거의 비인륜적 행위 자체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또한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과거의 일에 얽매이는 것은 쿨하지 않다는 젊은이들의 치기와 어울려 과거를 올바로 아는 제대로 된 일부 식자층의 입지는 좁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설자리가 없는 상황이고, 관심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우경화는 당연한 상황이고(대한민국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을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이 망해도 새누리당을 뽑는다는 TK 35%나 텐노 반자이를 외치는 일본의 보수세력이나 나라만 다를 뿐 정신세계는 같은 부류이다.), 자민당은 자기당을 지지하는 일본의 보수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는 당연히 천황과 야스쿠니 신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4. 그러면 왜 우리는 한사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일본의 전쟁시 침략행위(한국인 징용 전사자,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해야 하는가?

- 일본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과 한일기본조약이라는 것을 맺게 되며, 그 조약내에 과거 대동아 전쟁시의 일본의 모든 행위에 대해 6억달러(무상 3억달러, 정부 차관 2억달러, 민간 차관 1억달러, 즉, 쉽게 말해서 3억달러는 배상금으로 주고, 3억달러는 빌려주겠다.)로 퉁친다는 계약을 하게 된다. 일본의 주장은 1965년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정부와 이미 배상에 대한 협약을 했는데 왜 니네들은 정권만 바뀌면 계속 말을 바꾸느냐 하는 것이다.(이게 어찌 생각해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다음 기회에 적기로 하자.)

왜냐하면 죽음은 인생의 유일한 최고의 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변화의 대리인입니다. 젊은이를 위하여 노인은 사라집니다.

-스티븐 잡스, 스탠포드 졸업 연설중-

구글이 2013년 설립한 Calico라는 회사의 비젼은 '죽음(death)에 대한 모든 것'이며 목표는 '죽음의 극복'이다.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이런 목표는 만화나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우린 이미 구글의 다른 자회사인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바둑의 최고수인 이세돌을 1년전 4:1로 이기고, 그 1년후인 올해 현재 인간계 랭킹 1위인 커제를 3:0으로 바르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기 때문에 마냥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회사의 설립을 비현실적인 하나의 해프닝만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회의적 사고와 그로부터 연역되는 서양의 사상체계가 그와는 또 다른 사상의 체계로서 평행하게 수천년을 이어온 동양의 지혜와의 자웅속에서 근대를 열어가는 질적인 우위를 점한 유일한 이유는 무지속에서 현상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추출하며 그 의미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학적 방법론을 발견한데 있다.

그로부터 3천여년의 시간이 흘러 뉴톤과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 보어, 허블, 괴델, 비트겐슈타인 등 수 많은 세기의 천재들의 등장에 힘입어 21세기 인류의 지혜는 물리적으로 무한의 우주와 초미세의 쿼크들의 세계를 아우르게 되었고, 상상의 산물인 지적구조에 이르러서는 추상적으로는 이미 그 끝간데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현실적으로 이용되기에는 이제 인간의 사고의 알고리즘을 벤치마킹하여 알파고와 같은 유사인간적 사고를 하는 결과물까지 내놓기에 이르렀다.

근대의 과학의 발전은 결국 신을 절대적 위치에서 끌어내렸으며, 과학과 인본주의의 결합을 통해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하지만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는 오만해진 우리 인간들에게 유일한 진리중 하나인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인류가 지구상에서 자신을 인지하기 시작한 수십만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화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사실이 깨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비쳐지는 사건이 한번이라도 인류에게 목격되는 날(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이긴 당일을 한번 되돌아보자)이 온다면, 그것은 인간세상에 어떤 의미에서 말세가 도래한 것과 같은 두려움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될 것이다.

Catastrophe 혹은 Armageddon이라 불리웠던 이벤트, 또는 현재 Singularity라 정의되어지는 것은 어쩌면 같은 사건에 대해 그 의미를 다르게 두는 용어일지도 모른다.


작년 이세돌과의 대국 이후, 1년만에 중국 기사 커제와 알파고간의 대국이 최근에 있었다. 특히 마지막 3국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커제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1975년생인 이창호는 1984년에 당대 최고의 현역기사였던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되어 고향인 전주를 떠나 연희동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내제자가 된 이후 이창호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면서 1990년에 스승과의 3번째(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도전기에서 3:2로 스승의 제국(당시 조훈현은 국내의 거의 모든 기전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을 허물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창호와 조훈현의 공식기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은 198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최고위전 결승 1국이다. 이 시합에서 당시 14살의 이창호는 불과 50여수만에 돌을 던졌다. 당시의 대국상황을 볼때 이창호가 약간 포석에서 밀리긴 했으나 스승 조훈현에 비해 그렇게 비세는 아니었기때문에 돌을 던질 정도는 아니었다라는 것이 당시 대국을 검토하던 다른 전문기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당시의 대국 현장에 있던 원로 기사의 "창호가 스승에게 첫 공식대국을 둔 문안인사가 아니었겠나?"라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 조훈현 9단은 이창호와의 최고위전뿐 아니라 다른 타이틀 방어를 위해 연일 대국을 이어가고 있던 때였으며, 당시 몸살감기가 심하여 컨디션도 안좋던 시절이었다. 어린 이창호는 그런 스승의 건강이 염려스럽기도 하고, 스승과의 첫번째 공식대국이기도 한 것을 고려해 50 수 정도의 지도만 받고 스승에게 예를 갖추었던 것이다.

인간을 교육함에 있어서, 재능과 기술보다도 인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동양의 교육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아무리 재능과 기술이 뛰어나도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끈기, 성실, 존중, 명예와 같은 인성의 부분이 훨씬 삶에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대목이다.

이후 1990년 이창호가 스승에게 첫 타이틀전을 획득했을때 복기하는 현장의 모습은 이랬다. 피곤한 얼굴로 장미 담배를 힘없이 물고 바둑판 위를 손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면서 혀를 차는 조훈현 9단앞에서, 이창호는 마치 죄를 지은 어린이마냥 무릎을 꿇고 귀가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이창호가 패자로 착각할만한 모습이었다.

인간다움이란 것은 언뜻 이성적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기고서도 기쁘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졌지만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대견하기도 한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들. 사실상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1+1=2라는 이성적인 결론보다는 1+1=3이되고 10이 되는 비이성적인 대응이 훨씬 중요할때가 많은 법이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이성적인 틀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이리도 복잡다단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커제에게 무뚝뚝하게 오로지 착실하고 비정하게 이기는 수만을 뚜벅뚜벅 두어가는 알파고를 보면서,
아! A.I가 인간을 알아가려면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인간을 닮는 것이 A.I의 완성이라 한다면, 한방울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때야말로 A.I가 완성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단세포로부터 지능이 있는 생명에 이르기까지 진화의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유기적 생명체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이제 우주라는 다음 목적지로 인간의 탐색의 장(場)을 넓히기 위해서 현대적인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A.I와 로봇기술의 발전과 인간이 우주로 또한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 A.I, 로봇, 인간의 융합이 어느시점에선가는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무기질로 둘러싸인 지적존재는 그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뛰어넘어, 인류가 무한한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 DNA에 의한 진화의 역사는 끝나고, 인류의 의지를 통한 지적설계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아마도 그 흐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 만 것이 아닐까 싶다.

인류는 결국 지적능력과 그 정신적 구조물을 통한 바벨탑을 세우든가, 아니면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초월하든가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까지의 인류의 발전의 원동력은 도덕, 윤리, 사랑과 같은 가치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호기심-미지에 대한 열망, 두려움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험정신이 발전의 선두에서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 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는 탓이다.

호모 데우스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소설과 영화에서 봐오던 SF세계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0년 예루살렘 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당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인 가자 지구에 행한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1천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양민이 죽은 사건으로, 이 상을 수상해야 하느냐라는 문제로 일본 국내에서 꽤 논란이 있었다.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상을 수상하기로 수락하고, 예루살렘에서 상을 수상후 알과 벽이라는 주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였다.

 수상 소감은 개인적으로 감명이 깊었으며, 그 주제는 힘없는 인간 개개인은 알과 같이 연약한 존재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벽(사회, 국가와 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의미)에 의해 연약한 인간이 벽에 부딪혀 다치고 죽어가는 아이러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 개개인은 알과 알로서 서로의 소통을 통해 우리가 만든 벽에 부여한 비인간적 요소들을 타파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갈파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이야기하는 성경의 제1의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글귀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고도화된 문명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벽들로 이루어진 유형과 무형의 공간속에서 있으며, 그러한 벽이 없이는 사실상 생존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미 우리는 돌아갈 자연을 잃어버린 실낙원의 세계를 영원히 살아가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라카미는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틀려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라면서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 약자의 편, 인간의 편에 서겠다는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이미 알에 대해 벽은 절대적인 강자이며, 그 벽에 부여된 권위와 힘에 의해 알을 언제라도 깨뜨려버릴 수 있는 절대성에 의해 아무리 선한 의지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인간의 위협이 될 수 있기때문에 자신은 무조건 알 편에 서겠다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적 의지를 갈파했다.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알'이며, 무엇이 '벽'인지에 대해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구분된다고 해서 자신있게 '알'의 편에 설 수 있을까?

 100 여년전 이 땅에, 팽창하는 제국주의의 기치 아래, 서구 열강을 위시한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었으며,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을사오적과 같은 일제의 힘이란는 '벽'에 무릎을 꿇은 일단의 조선의 힘을 갖고 있던 기득권 세력의 '알'들에 의해 500여년을 이어온 조선이 이땅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조선이라는 거대한 '벽'에 의해 보호되던 무수한 선량한 '알'들이 희생되었다.


 영화 밀정을 보면 위대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모델로 한 독립운동가 리더인 정채산(이병헌 분)의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할지라도, 그 희생을 우리는 계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희생을 통해 다른 잠자는 '알'들을 깨워서 우리가 만들어올린 이 부조리하고 잘못된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내가 만약 저 시대에 태어나, 도저히 깨기가 불가능한 '벽'에 도전하는 '알'이 되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과연 내가 자신있게 전 '알'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회의적이다. 나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그 불가능한 일을 했기에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의를 오늘날까지도 기리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무수한 희생과 희생을 통해 임시정부의 대의가 점점 한민족의 대중에게 스며들고, 기회가 무르익는 시기에 미국의 참전과 러시아의 가세로 급속하게 세를 잃은 독일과 일본의 연합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은 임시정부와 독립군의 주체적인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 이후 2차 대전의 승전팀인 연합군의 힘의 논리에 의해 남과 북은 양분되고, 남한의 정부는 미국의 간택을 받은 친일세력으로 수립되면서, 수많은 한민족의 구심점이 되었던 '알'의 편에 서있던 주체적인 독립 세력은 일제라는 '벽'의 편에 서던 기회주의적 '친일'세력에 의해 도리어 숙청되는 잔인하지만 슬픈 역사가 70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역사의 주된 줄거리이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인간으로서 '벽'이 가진 힘이 '알'에게 횡포와 잔인함이 될때 그것에 맞서려고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인지상정이 행동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내가 인간이라는 자각과 그 인간성을 지키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내가 비록 '벽'에 항거하다가 깨질 수 있는 '알'이지만, 그것이 내가 '알'로서 가져야 할 인간의 숙명이며 그것이 내가 인간이라는 자각을 가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깨달을 때만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대비되는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인간사회에서도 흔치 않은 '형이상학적'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용기 있는 행동을 바람직하고 옳은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매트릭스에서는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약은 진실된 현실, 파란약은 매트릭스에서의 삶이라고 하면서 선택하라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자유며, 자신이 주는 것은 단지 진실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네오는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빨간약을 먹었지만 우리 모두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실제로 사이퍼는 그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스미스요원에게 자신을 다시 매트릭스로 넣어달라며 딜을 하기도 한다.

 내가 네오인지, 아니면 사이퍼인지를 알기 위해선 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무엇이 '벽'인지 그리고 무엇이 '알'인지를 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혜 뒤에 비로서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알'로서의 자각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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