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은 처음에 1970년 리타 쿨리지(Rita Coolidge)에 의해 발표된 곡이다. 원곡은 상당히 늘어지는 재즈풍의 발라드였다.

 카렌은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을 자주 들어서 이미 이곡을 알고 있었다. 리차드가 투나잇쇼(Tonight show)에서 베트 미들러(Bet Midler)가 이곡을 커버하는 것을 듣고는 이 곡의 포텐셜을 감지하고 바로 편곡을 하여 1971년에 발표하여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라간다. 

 세가지 버전을 모두 들어봐도 카펜터스의 수퍼스타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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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ago, and, oh, so far away
I fell in love with you before the second show
Your guitar, it sounds so sweet and clear
But you're not really here, it's just the radio

오랜 전, 그리고 저 멀리에서
난 그에게 첫눈에 반했어요
당신의 기타소리, 너무나 달콤하고 깨끗해요
하지만 실제로 당신은 여기에 없죠, 그저 라디오일 뿐이에요


Don't you remember, you told me you loved me, baby?
You said you'd be coming back this way again, baby
Baby, baby, baby, baby, oh baby
I love you, I really do

기억나지 않아요? 당신은 나에게 사랑한다 말했죠.
당신은 다시 이 길로 돌아온다 했어요.
내 사랑...
난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요.


Loneliness is such a sad affair
And I can hardly wait to be with you again
What to say to make you come again? (Baby)
Come back to me again (baby)
And play your sad guitar

외로움은 너무나 슬픈 일이에요
난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당신이 돌아올  수 있을까요?
다시 내게로 돌아와줘요.
그리고 그 슬픈 기타 소리를 들려줘요.


Don't you remember, you told me you loved me, baby?
You said you'd be coming back this way again, baby
Baby, baby, baby, baby, oh baby
I love you, I really do


Don't you remember, you told me you loved me, baby?
You said you'd be coming back this way again, baby
Baby, baby, baby, baby, oh baby
I love you, I really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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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

 불환화폐(신용화페)라는 (중앙)은행권은 금 대신 정부가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채권)이다. 왕이나 오늘날의 대통령 등이 아닌 정부의 경제력이 보증하는 것이다. 국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정부는 마르지 않는 샘에 해당하는 조세권이라는 경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 대신 사회 전체 생산물 중 사회몫에 해당하는 생산물이 금의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국민이 함께 만든 생산물로 불환화폐의 가치를 보증하여 (보유금의 양에 의해 제한되었던) 은행에게 돈놀이의 장애물을 제거해주었기에 (영란등 중앙)은행의 설립 목표를 '공공선과 인민의 이익The public Good and benefit of our People 촉진'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처럼 불환화폐의 가치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생산 중 사회몫으로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는(생계에 필요한 최소소득을 사회소득으로 배분받을 권리가 있듯이) 최소한의 신용 이용에 대한 기본권리를 갖는다.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금융' 개념은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모두 함께 불환화폐 가치를 보증했기에 불환화폐의 혜택인 이른바 '사회금융' 혹은 '공공금융'을 누릴 권리를 갖는 것이다.

 

<정부 부채는 이자만 갚아나가도 괜찮은 이유 - 근거, 사례 및 설명?

p41.

 한국은행법을 보면 제1장 총칙이 시작되기 전에 해당 기관을 관할하는 상위 정부조직이 표기된다. 한국은행법에는 '기획재정부(거시정책과)'가 표기되어 있고 해당 기관의 전화번호(044-215-2831)도 옆에 기재되어 있다. 이것은 정부 조직법 가운데 행정각부의 역할을 규정한 제4장의 (기획재정부 역할을 규정한) 27조 ①항에서 화폐에 관한 사무를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기획재정부장관은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수립, 경제/재정정책의 수립/총괄/조정. 예산/기금의 편성/집행/성과관리/화폐/외환/국고/정부회계/내국세제/관세/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경제협력/국유재산/민간투자 및 국가채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즉 화폐 발행의 원천적 권한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부라는 이야기이다.

 한국은행법 제5절은 정부 및 정부대행기관과의 업무를 설정하고 있는데 정부와의 업무를 72조부터 75조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 대해 돈을 빌려주는 업무를 규정한 제75조(대정부 여신 등)의 ①항에서 "한국은행은 정부에 대하여 당좌대출 또는 그 밖의 형식의 여신을 할 수 있으며,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③항에서 "제1항에 따른 여신에 대한 이율이나 그 밖의 조건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다"고 되어 있다. 즉 한국은행은 정부가 원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돈을 빌려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공통 요소이다.

 

p43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국민이 부여한 임무(예:물가안정)를 정치적 잣대에 휘둘리지 말고 수행하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p44

 세계에서 정부 부채가 가장 많은 일본의 경우 <그림1>에 따르면 1990회계년도의 일본 정부가 상환해야 할 국채 규모는 166조 엔이고 이자부담액은 10.8조 엔이었다.

https://www.mof.go.jp/english/policy/budget/budget/fy2023/02.pdf

<그림1. 위 링크 22페이지>

 

2010회계년도에는 각각 636조 엔과 7.9조 엔이었다. 그리고 2022회계년도에는 각각 1,043조 엔과 7.3조 엔으로 정부 부채는 급증했는데 이자 부담액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1990년과 2022년 사시에 정부가 상환해야 할 국채 규모는 877조 엔이나 증가했는데 이자 부담액은 오히려 3.5조 엔이 줄어든 것이다. 국채 평균 조달 금리가 6.1%에서 0.8%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IMF <글로벌 부채 보고서Global Debt Monitor>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일본의 중앙정부 부채가 214.27%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견디는 이유 중 하나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엔화가 준기축통화라서가 아니라 국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오히려 줄어들어 재정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는 일본이 인플레이션과 엔저 속에서도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즉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어떨까? <그림2>에서 보듯이, 2011~2021년의 10년간 국고채 발행 잔액은 340.1조 원에서 843.7조 원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자 부담액은 13.5조 원에서 15.1조 원으로 12%도 증가하지 않았다. 

일본처럼 초저금리는 아니지만 한국도 조달금리가 낮아진 것은 마찬가지이다. 세계적 인플레와 금리 인상에 따라 조달금리가 다시 3%대로 올라간 2022년의 경우 국고채에 대한 이자 부담액이 약 30조 원으로 2021년에 비해 약 2배로 증가했다. 이처럼 정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정부 채무의 절대 규모보다 이자율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는다.

 물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외국자본의 갑작스러운 유출에 따른 충격도 고려해야만 한다. 국고채를 매각하고 철수할 때 환율 급등을 포함한 외환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기준 외국인은 219.5조 원 규모의 국고체를 보유하고 있다. '1달러=1,300원'을 기준으로 할 때 약 1,688억 달러 규모에 해당한다. 참고로 일본은 2022년 12월 말 기준 외국인이 약 165.3조 엔 규모의 일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1달러=140엔'을 기준으로 할 때 약 1조 1,800억 달러 규모에 해당한다.

 2023년 12월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201억 달러,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 2,950억 달러 정도이니 한국이 상대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엔화 하락을 막으려면 달러를 매각하여 엔화를 사들여야 한느데 외환보유액 사정으로 달러를 적극적으로 시장에 풀기 어렵다. 금리도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달러 투입도 어렵다 보니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정부 채무는 기본적으로 이자를 상환할 수 있으면 지속 가능하다. 이자 지급액은 세금 등 정부 수입에 달려 있고, 정부 수입은 조세율이 변하지 않을 경우 경제성장률에 크게 의존하기에 정부 채무의 지속 가능성을 따질 때 정부의 자금조달 금리(국채 발행 이자율)와 성장률을 비교하는 이유이다. 물론, 외국인의 갑작스러운 자금 유출을 대비해 외국인 보유 규모를 고려한 외환 방어벽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크루그먼이나 아베 등이 정부 채무의 원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이유는 맞는 말이다. 이는 영란은행 설립 과정에서 보듯이 중앙은행의 설립 이유가 정부 재정 공급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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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1. 국가채무는 원금의 상환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이자상환능력을 통해 국채를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2. 국가채무가 자국통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외국인이 투자한 금액은 외국인이 투자를 외수할 경우 언제든지 외환(보통 달러)으로 유출될 수 있으므로 국가채무 중 외국인 투자분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외환보유고 방어벽이 필요하다.

3. 민간채무가 과도하여 소비위축등 경제적 패닉이 발생할 때는 국가가 재정확대를 통해 민간채무를 흡수하여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면서 민간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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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1원 1표 원리, 즉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만 남고, 사회는 극단적 불평등을 향해 치닫고 결국 붕괴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최소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자본주의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기본적으로 불평등 심화의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p55

 '돈의 흐름'을 의미하는 금융을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사회는 순식간에 야만화되고 그런 사회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불환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른바 화폐경제 시대의 경제 문제는 '돈의 배분' 문제로 귀착한다. 함게 생산한 생산물은 대부분 화폐로 표현되고, 그 생산물의 배분은 결국 돈의 배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생산한 사회적 생산의 화폐적 배분을 어떻게 시장에만 맡길 수 있다는 말인가.

 공공금융의 복원은 좌파적이거나 진보적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시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출발했고, 양축이 균형을 맞추었기에 번영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근대 사회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공공영역에서 금융을 분리하여 시장(민간)금융 중심으로 바꾼 것이 (사회 전체를 금융 자본의 논리로 재구성한) 이른바 금융화였고,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공공영역의 축소로 이어졌다. 재정 지출 최소주의, 감세, 작은 정부,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불평등의 심화 및 가계 부채와 정부 채무의 급증 등이 그 산물들이다.

 

p59

 은행은 불환화폐를 도입 및 사용할 때부터 엄청난 특혜를 입었다. 게다가 가장 낮은 금리(비용)의 불환화폐를 이용한다. 그런데 그 불환화폐가 통용될 수 있도록 실질적 가치를 공동 보증한 일반 납세자 국민은,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층은 중앙은행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공공선과 모든 인민의 이익을 촉진시킨다"는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이 사문화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실종된 결과이다.

 

p60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유명하여 한국 부유층의 롤모델로 불리는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인의 선의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양란 후 삼남(三南 : 충청,경사,전라도의 총칭)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인 1671년, 경주 최부자 최국선은 곳간을 헐어 모든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고, 헛벗은 이에게는 옷을 지어 입히도록 했다. 경주 부자 최국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들에게 서궤 서랍에 있는 담보서약 문서를 모두 가지고 오게 한 후 "돈을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없더라도 갚을 것이요, 못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있어도 여전히 못 갚을 것이다. 이런 담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겠느냐. 땅이나 집문서들은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우라"고 했다. 오늘날 은행금융 자본이라면 죽음과 절망에 놓여 있는 없는 사람을 상대로 부를 엄청나게 증식할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경주 최부자 집이 10여 대 300년 동안 만석군의 부를 현명하게 지켜내며 어려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게다가 조선 말기 다산 정약용 등 많은 토지개혁 사상가들이 그렇게 노력을 기울였ㅈ만 조선은 폭동과 민란과 농민전쟁 등을 피할 수 없었고, 끝내 망국의 길을 가지 않았는가.

 

p71

 공공금융의 해체로 재벌 자본에 더해 '월가 자본의 아바타인 금융 자본'이 시장 권력을 더욱 공공화했다. 돈의 힘은 사람들을 욕망의 포로로 만들고, 민주주의가 고개를 들 때마다 무참히 짓밟았다. 돈의 힘이 통제되지 않는 한, 정치는 돈의 힘에 좌우되고, 민주주의의 자리는 금권 과두정이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금융은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에 사회를 구성하는 민주주의와 시장 중 민주주의가 죽으면 시장만 남게 되고, 시장만 남은 사회는 죽어갈 수밖에 없다.

 

p73

 공공금융의 사망은 대한민국을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으로 변화시켰다. 재벌 자본의 건설회사와 금융 자본의 부동산 금융이 결합한 산물이었다. 공공선과 국민 이익의 촉진은 뒤로 밀려났다. 그 결과가 세습성이 강한 부동산자산 중심 경제 구조의 등장이었다. 2000년대 20년(2001~2021년)간 국내  GDP는 약 1,373조 원 증가한 반면 국내 부동산자산은 이보다 약 9배 많은 1경 1,845조 원 증가했다. 가계로 국한해도 마찬가지이다. 가계의 처분가능 소득이 706조 원 증가하는 동안 가계 부동산 자산은 약 10배 많은 6,969조 원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를 스스로를 보수라 지칭하는 보수정권에서나 진짜(?) 보수정권인 민주당 정권에서나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시절 글로벌 유동성의 폭발과 맞물려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더욱 고착화됐다. 참고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 멕시코, 튀르키예, 이란 다음으로 외화 신용이 많은 나라이다. 경제 성장률은 2001~2007년간(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연평균 7.5%에서 2008~2016년간(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연평균 5.3%, 그리고 다시 2017~2021년간(문재인 정부 기간) 연평균 3.6%로 하락하는 동안 부동산자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14.0%, 5.0%, 8.3%로 민주당 정권에서 부동산자산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크게 앞질렀다. 가계 소득과 부동산자산을 비교해도 차이가 없다. 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6.1% → 4.9% → 3.7%로 하락했지만 부동산자산 증가율은 연평균 14.4% → 4.5% → 8.7%로 소득 증가율을 2배 이상 앞질렀다.

 노무현 정권 때는 일본은행의 제로금리와 양적완화(2001.3~2006.3) 그리고 미국 연준의 1% 초저금리(2003.7~2004.6)가 맞물려 글로벌 유동성이 폭발하며 글러벌 주택시장에 붐이 있었고, 문재인 정권 때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 주요국이 초금융완화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내면서 부동산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시장에 붐이 일었던 기간이다.

 

p75

 글로벌 유동성의 폭발이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모두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이는 국내 가계 신용의 영향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가계 신용은 팬데믹 직전 2년간 연 평균 6.5% 증가한 반면, 팬데믹 기간 2년간은 8.3% 증가했다. 국내 신용증가율이 글로벌 신용증가율보다 높았다. 반면 노무현 정권 때는 상대적으로 글로벌 신용증가율(연 16.4%)보다 국내 신용증가율(연 10.4%)이 낮았다. 문재인 정권에서의 부동산 자산가치 급등은 국내 신용에 대한 통제 실패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주요국 모두가 가격 폭등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IMF가 발표하는 58개 국가의 전체 주택의 실질가치 변화율을 보면 2021년에 12개 국가는 변화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11.7%로 8번째로 높았다. 폭등을 겪었던 미국의 10.6%, 캐나다의 9.8% 등보다 높았을 뿐 아니라 독일, 싱가포르, 일본 등의 6%대 상승률이나 프랑스의 3%대보다 크게 높았다. 

 이는 (앞에서 일부 언급한) 부동산 투기에 적합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혁파하지 못한 대가는 고스란히 무주택자나 정부를 믿고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면 손해를 볼 것처럼 계속 강조했지만, 대통령 말을 믿고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지 않은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른바 '벼락 거지'였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 2020년과 2021년 2년간 그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2년간 시중 통화량은 700조 780억 원이나 풀렸다. 그리고 정부 채무도 2478조 5,000억 원이 증가할 정도로 정부가 푼 돈 역시 사상 최대였다. 그런데 시중에 풀린 돈 중 실물경제로 들어간 돈은 시중 통화량의 22%에 불과한 155조 7,000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결과 국내 부동산자산은 2년간 GDP의 약 12배에 해당하는 1,845조 9,000억 원 증가했다. 가계의 경우는 더 끔찍했다. 소득은 80조 원 증가한 반면 부동산자산은 소득의 20배가 넘는 1,658조 원 이상이 증가했다. 생존 위기로 내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부동산 투기를 외면하고 열심히 땀 흘리며 살던 무주택자들에게는 날벼락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을 해체하지 않은 산물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돈이 가장 집중되는 곳은 부동산이 되었고, 따라서 대한민국의 가장 강한 힘들은 부동산(돈)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고인물 사회를 만든다.

 

p77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 주요국 중 최악의 자산 불평등 국가로 만들었다. 자산 불평등이 가장 심한 선진국 중 하나인 미국의 경우 팬데믹 기간에 주식 자산가치 증가가 부동산 자산가치 증가보다 약 3배 컸던 반면, 한국은 정반대였다. 부동산자산은 주식자산보다 불로소득 성격이 강하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고, 그 결과 정부와 기업과 가계 모두가 부동산의 인질이 되었다.

 1995~2022년간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에 해당하는 기업 영업잉여(=영업이익+감가상각비-금융비용)는 208조 원 증가한 반면 기업의 부동산자산 가치는 15배가 넘는 3,020조 원이나 증가했다.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어도 계속 증가하는 이유나 건설회사의 부실을 정부가 나서서 막아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부양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건설경기에 대한 높은 의존과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이 가져올 가계 부채 충격 등으로 인해 부동산 자산가치를 떠받쳐야만 사회와 경제가 생존할 수 있는 지경이 된 것이다.

 문제는 저금리 시절에는 높은 가계 부채의 이자 부담이 은폐됐지만, 고금리의 장기화는 모르핀으로 연명한 부채 모래성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현재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이 진퇴양난 상황에 놓여 있듯이 내부적으로 개혁하지 못한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의 운명은 자명하다. 경제성장(소득 증가)과 인구 증가등이 떠받치는 부동산 가치 증가는 정당성을 확보하지만 유동성이나 가계 부채 증가 등으로 밀어 올린 부동산 가치 증가는 가계의 소득(과 일자리) 증가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계 부채 증가가 가계의 소득과 소비를 억압하여 성장의 둔화 및 정체, 가계 소득(일자리)의 정체로 이어지면서 시한폭탄 같은 가계 부채의 위험성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p85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예산 부문을 재정경제부에서 분리했지만 (모피아 사고에 젖어 있는) 경제관료가 장악하는 한 공공금융에 대한 사고를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균형재정' 신화에 갇혀 있는 '(경제)관료에 포획'되어 예산을 장악하지 못한 후회를 퇴임 후 토로한 배경이다.("이거 하나는 내가 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오히려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버리고, '여기에서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그래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해서..." 노무현 <진보의 미래> 중에서)

 그 결과가 오늘의 공룡 기재부이고, '사실상 기재부의 나라'가 된 것이다.

 

 오늘날 기재부는 사실상 정부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중장기 국가발전전력 수립이 바로 정부 주도 개발을 추진한 군부 권력의 경제기획원 권한이고, 예산 편성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기획예산처 권한이다. 또한 내국세제 권한으로 부동산 관련 세제를 매개로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정책에 개입하고, 화폐 업무로 한국은행을 관리하고, 외환 업무 포함 국제금융 사무와 (사실상 국무조정실장의 코치를 받는 국무총리의 통제를 받고 기재부 차관이 당연직 금융위원회 의원인) 금융위를 사실상 관리한다. 한국은행이 모피아의 '남대문 출장소'로, 금융위-금감원이 '여의도 출장소'로 불리는 배경이다. 그리고 산하에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 4개나 되는 청을 갖고 있는 부서이다.

 막대한 권한으로 경제 관련 부서의 장도 쉽게 차지한다.

 

 심지어 예산 배분 권한으로 정부 조직의 숱한 기관장 자리까지 차지하곤 한다.

 

 기재부의 권한은 일반 국민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산 심의를 하는 국회의원들도 지역구 예산 배정을 결정하는 기재부 권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실 경제비서관이나 정책실도 기재부 사정권에 놓여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어공'인 홍장표 경제수석이 2018년 6월 사실상 경질된 후 윤종원/이호승/안일환 등 경제관료(늘공)가 경제수석을 장악했듯이 경제관료 조직은 사실상 선출 권력조차 좌지우지한다.

 

p88

 모피아는 퇴직 후에도 금융계와 정치계 등을 넘나든다. 특정 정당 및 정권과도 관계없다. 김진표는 그 상징이다.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재정경제부 차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노무현 정권의 인수위 부위원장,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국회 진출을 위해 열린우리당 정책위 위장을 거쳐 18대부터 국회에 진출한 그는 문재인 정권에서 국정기획자문위원히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거치고 21대 국회 후반기 의장까지 차지하고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 정권에서 부동산정책이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윤석열 정권의 국무총리인 한덕수는 김대중 정권의 경제수석과 노무현 정부의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초대 기재부 장관을 역임한 추경호는 김대중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을 한 후 김대중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비서관실과 정책기획수석 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이처럼 "정권은 유한하지만, 모피아는 영원하다"

 

 물리력으로 통치하던 군부독재 시대에는 시장(자본)이 전근대적 방식인 물리력으로 통제되었다. 그런데 군부독재의 종식과 더불어 시장(자본)에 대한 통제 자체가 해체되었다. 물리력에 기초한 통제 방식을 (공공금융 성격이 더 강화되는) 사회적(민주적) 통제 방식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김영삼 정권의 역사적 과오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본인 입으로 시인했듯이 경제에 문외한이었을 뿐 아니라 금융에는 문맹 수준이었다. 오히려 노태우 정권에서도 최대한 늦추려 했던 금융 자유화와 자본시장 개방을 적극 추진하면서 재벌 자본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자청해서 대한민국을 월가 자본의 먹잇감으로 바쳤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전통 산업들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있었으나, 역시 금융에는 문외한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 가계 부채 사태인 '카드 사태'가 김대중 정권의 작품인 배경이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팀이 선택한 (신용)카드는 '내수 부양책'으로 포장됐지만, 그 내용은 가계가 빚을 내서 소비하고 집을 사게 하는 '부채주도성장' 방안이었다. 

 당시 길거리에서 카드 모집인이 상환능력이 거의 없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카드를 발급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당시(2000년) 김대중 정권의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이헌재표 내수부양책'이었다.

 내수부양책으로 카드활성화 정책과 더불어 부동산 규제 완화가 2000년에도 확장되었고, 심지어 1가구 다통장 보유 기능과 각종 세제 혜택 등이 추가되었다. 그 결과는 380만 명의 신용불량자 양산과 부동산 가격의 급등이었다. 특히 2002년 한 해 동안 아파트값은 서울 45%, 신도시 25.1%, 수도권 23% 등 전국적으로도 22.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1999년 말 GDP 대비 45.1%(267조 원)였던 가계 부채는 2002년 말에는 64%(502조 원)까지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정부 채무는 GDP 대비 9.3%에서 9.7%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공공금융의 역할 없이 가계 희생으로 재벌 건설 자본과 금융 자본의 배를 불려려준 것이다.

 2003년 카드 사태는 노무현 정권에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2003년 1분기 성장률은 직전에 비해 반토막이 나고 3분기까지 자유낙하 하듯이 하락했다.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던 유명 인사(?)는 당시 카드 사태는 김대중 정부에서 반든 것인데 노무현 정부가 뒤집어썼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런데 카드 사태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양날의 검이었다. 2000년 9.1%에서 2001년 4.9%로 급갑했던 성장률은 가계 부채 기반의 부양책 덕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7.7%로 반등하며 노무현 후보 당선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었고, 부양책 후유증(카드 사태)으로 임기 첫해 3.1%로 성장률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카드 활성화 대책이나 부동산/건설 경기 부양 모두 금융 및 재벌 자본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가계 부채는 부동산 카르텔의 숙주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p93

 모피아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헌재와 강만수 등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주요 정책을 좌우했듯이 권력의 성격과 모피아는 관계없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기재부장관인 추경호가 김대중 정부 출범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이자 김대중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의 윤증현은 노무현 정부의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후 김앤장에 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전략을 만들었던 김동연과 홍남기가 문재인 정부의 전후반 기재부 장관을 지냈고, 한덕수가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수석,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부 장관을 지내고 김앤장에 머물다가 윤석열 정권에서 다시 돌아왔다. 민주당 정권이나 국민의힘 정권이나 핵심 경제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모피아는 심지어 공적 자원의 사유화에도 거리낌이 없다. 다음은 2022년 8월15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내용이다.

새 정부 들어서 공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기획 재정부가 나서서 공공 기관들의 경영이 방만하니까, 
가지고 있는 사옥 건물이나 땅을 팔라고 압박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기획 재정부가 공공 기관들에게 자산을 팔라고 했고, 
실제로 한국석유공사가 사옥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누가 샀는지, 이 거래로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 
저희가 취재를 해 봤더니, 기획 재정부 관료 출신들이 만든 
부동산 투자 회사였습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규성은 김대중 정부의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등용된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2001년 일종의 사모펀드인 코람코(KORAMCO, 한국부동산자산관리회사) 설립을 주도한다. 코람코의 회장을 장기간 역임하는 중에도 이규성은 2004년 노무현 정부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도 역임한다. 2010년에는 코람코자산운용사도 설립한다. '작은 정부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 들어 공공기관 민영화가 추진되며 박근혜 정부의 기재부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패로 부채가 급증한 석유공사 매각을 추진한다. 석유공사 매각은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넘어 스스로 공적 자원을 사유화하는 모피아의 탐욕을 보여준다.

 

 석유공사는 본사 건물을 2,000억 원에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부채 상환에 사용하지도 않고 사업비와 정기예금 등으로 운용했다. 건물 매각 후 임대하며 지불한 임대료율은 4.87%였다. 그런데 석유공사가 자금이 필요해 조달할 때의 조달비용, 이른바 석유공사 채권 이자율은 2.67%에 불과했다.

 

p100

 불환화폐(신용화폐)의 가치는 정부가 보증하는 것이다. 정부 보증의 힘은 정부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정부 경제력은 세금 수입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국민 전체가 불환화폐의 가치를 함께 보증한 것이다. 즉 오늘날 사용하는 법정화폐는 그 사회의 국민 전체가 함께 보증한 신용이다. 출범 때부터 영란은행을 공공선과 인민 이익의 촉진을 위한 정부 은행으로 성격을 못 박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재정 자원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은행시스템의 기본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는 이유이다. 소득과 금융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공금융은 생산과 금융에서 사회몫을 의미한다. 사실 근대 화폐경제에서 생산과 금융은 분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공금융을 '재정'으로 번역한 것은 생산측면으로 좁혀 잘못 부르는 것이다. 금융을 민간금융만으로 축소한 금융 자본의 이해를 반영한 개념이다.

 

p104

 정부 채무 겁박론은 국가 채무의 실상을 왜곡한다.

https://www.seoul.co.kr/news/economy/2023/04/04/20230404500151

 

나랏빚 첫 1000조 돌파, 文정부 5년 새 408조 급증… 국민 1인당 빚도 2000만원 돌파

정부, 2022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 의결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 117조 ‘사상 최대’ 국가채무 1068조, 국가부채 2326조 ‘최대’ 고금리 여파에 국가 자산 가치 30조원 감소, 지난해 나랏빚이 사

www.seoul.co.kr

 

 

IMF 기준을 따르는 기재부의 'e-나라지표'에 소개되어 있듯이, 정부 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순채무 합으로 구성된다. 기재부는 정부 채무를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로 나누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정부 채무액 약 1,069조 원은 적자성 채무 678조 원과 금융성 채무 391조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106

 

지표서비스 | e-나라지표

국가채무 : 정부가 직접적인 상환의무를 부담하는 확정채무(IMF기준)로서, 국채, 차입금, 국고채무부담행위, 지방정부순채무로 구분 (국가채무 = 국채 + 차입금 + 국고채무부담행위 + 지방정부 채

www.index.go.kr

 

이 두 채무의 성격을 기재부가 해당 사이트에 소개하고 있는 내용 그대로 소개해보자. '적자성 채무'는 "조세 등 국민 부담으로 상환해야 하는 채무"인 반면, '금융성 채무'는 "정부가 상환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채무"로 국민 부담이 없는 채무이다. 예를 들어,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나 국민주택채권 발행에 의한 금융성 채무는 정부가 확보한 외환 자산 매각이나 융자금 회수 등으로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2년 말 기준 국민이 부담할 '진짜' 채무액은 1,069조 원이 아니라 678조 원에 불과한 것이다. 대통령과 언론, 여당 등이 미래 세대를 겁박한 1,000조 원은 391조 원이나 과장한 수치인 것이다.

 

p115

 이처럼 여러 문제를 갖고 있는 재정 운용 기준은 한 나라의 정부가 도입하는 것은 (국민이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하여) 막대한 공공자금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법제화 조치는 바로 대통령 등 선출 권력조차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세하는 '제2의 검찰'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막강한 공적 권한의 사유화는 지금보다 더한 부정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층에 집중된다.

 

p118

  재정관리를 관리수지로 변경한다고 하여 정부 채무 증가 속도가 멈추거나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표6>에서 보듯이 2002년보듯이 200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했던 2020년 이전까지 관리수지의 적자 규모가 GDP 대비 -3%를 초과한 경우는 금융위기 때밖에 없었다. 즉 관리수지가 -3% 이내에서 관리가 되었어도 정부 채무가 지속해서 증가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2년간의 대규모 재정 적자는 대부분 주요국이 겪었던 것으로 불가피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관리수지를 기준으로 재정을 관리한다고 해서 정부 채무 증가가 멈춘다는 보장도 없고, GDP 대비 정부 채무 60% 이내 관리도 어렵다. 무엇보다 관리수지 적자를 -3% 이내로 해서 정부 채무를 60%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권 18개월 동안의 관리수지는 131.3조 원으로 이는 GDP 대비 3.9%의 규모이다. 그 결과 문재인 정권이 사실상 종료됐던 2022년 4월 중앙정부 채무 비중(GDP 대비 %) 47.5%도 2023년 10월 50.1%로 증가했다.

 문제는 자신들이 공언한 관리수지 목표를 지키려다 보니 지출을 무리하게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써야 할 돈이라며 국회로부터 승인까지 얻어낸 예산조차 쓰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10개월 동안 지난해보다 77.8조 원 규모의 지출을 축소했고, 이는 GDP의 3.5%가 넘는 규모이다. 최근 1년간(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연간 성장률이 1.1%로 추락한 배경이다. 모피아의 욕망(재정준칙 법제화)이 재정수지 관리도 망치고, 성장률은 후퇴시키고, 다시 재정수지와 정부 채무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p120

 이제 재정건전성 논리가 기초하는 '재정 지출 최소주의'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재정 지출 최소주의는 '과학'이 아닌 '이데올로기'이다. 앞에서 인간 사회의 구성과 운영 원리를 말했다. 사회가 지속하려면 민주주의와 시장, 즉 정치와 경제의 상호견제와 균형이 필요하지만, 자본의 탐욕은 끊임없이 정치와 민주주의를 약화하려 하고, 심지어 제거하고 싶어 한다. 역으로 자본의 탐욕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작동한다. (셜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경험했듯이) 시장을 통제하고, 정부가 직접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의 과잉'이 그것이다. 정치의 과잉은 시장이 만들어내는 경제 활력을 약화하고 심지어 (인민독재로 위장한) "또다른 독재'로 이어지곤 한다. 자본 탐욕은 극단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경제위기를 낳는다. 사회 붕괴와 경제위기가 동전의 앞뒷면인 이유이다.

 

p122

 앞에서 보았듯이 재정준칙이 설정한 재정 적자 관리로는 한국의 정부 채무 증가를 막을 수 없다. 재정준칙을 동원해도 정부 채무 증가를 막을 수 없다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하나는 경제성장률을 현재보다 높게 만들거나, 아니면 정부 수입을 늘리는 길이다. 그리고 정부 수입을 늘리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지출 최소주의가 재정 파탄을 가져온 이유도 증세는커녕 감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리한 재정 지출 축소로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연구개발R&D 예산까지 줄이면서 성장률 둔화와 재정 파탄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핑계로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재정건전성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피아가 재정준칙을 도입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모피아가 대변하는 금융 자본의 이해를 생각하면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모피아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정부 채무 증가를 막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포장해 재정건전성 논리를, 정부의 재정 운용 및 서비스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 정서를 이용하여 재정 지출 최소화 논리를, 그리고 재정 지출을 줄일 것이기에 감세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재정 지출 최소화는 모든 부분에 균등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무원 보수 등 경직성 비용은 줄이기 어렵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힘이 있는(?) 부서보다 사회경제적 약자층 지원과 관련된 부서의 예산이 일차적인 조정 대상이 된다. 둘째, 공공자금의 지원이 축소되면 그에 비례해 민간금융에 대한 의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높은 이자 놀이를 하는) 금융 자본의 먹잇감으로 던지는 것이다. 셋째, 감세는 고소득층일수록 혜택이 크고, 특히 금융 고소득층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게다가 재정 지출 최소화에 따른 재정 적자를 정부 차입(국채 발행)으로 해결하고, 그로 인해 정부 채무를 증가시킨다. 역설적으로 재정 건전성이 재정 악화를 낳는 것이다.

 

 

p125

 2021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720원이었다. 이를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2,187만 원이다. 그런데 2021년 소득활동자 중 상위 60% 선이 최저임금 수준의 연소득보다 낮은 2,180만 원이었다. 하위 41%의 규모는 약 1,040만 명에 해당한다. 이들의 평균 소득은 980만 원에 불과했다. 약 2만 5천명에 해당하는 상위 0.1%의 평균 소득은 18.5억 원이니 하위 41%의 평균 소득에 비해 188.8배나 되는 규모이다. 상위 0.1%의 총소득 46.9조 원은 29%에 속하는 745만 4천명의 총소득 46.7조 원보다 많은 규모이다. 약 2만 5천명의 소득이 745만 4천명의 소득보다 많은 사회인 것이다.

 자산 불평등은 더 극심하다. 지난 거의 한 세대(1995~2022년) 간의 대한민국 전체 소득(GDP)은 437조 원에서 2,205조 원으로 1,768조 원이 증가했는데 부동산자산은 2,205조 원에서 1경 2,506조 원으로 1경 301조 원이나 증가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보다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그 결과 부동산자산의 핵심인 토지 소유의 불평등은 정말 끔찍하다. (약 2,371만 세대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2022년 개인의 토지 소유를 보면, 전체의 38%가 넘는 901만 세대는 땅을 한 조각도 갖고 있지 못하는데 약 1.2%에 해당하는 29만 세대는 약 1,258조 원 가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의 토지소유액은 땅이 있는 나머지 62%에서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약 52%인 1,220만 세대의 토지 소유액(1,263조 원)과 비슷한 규모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니계수가 0.8이 넘으니 토지 소유가 집중되었던 조선왕조 말기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사회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사회란 무엇인가? 사회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먹을 것을 나눠 먹고, 비바람을 함께 피하고, 아프면 서로 돌봐주고,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갖지 않게 해주는, 더불어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찬바람이 부는 집 밖 허허벌판에 버려진 사람이 있고, 홀로 고립되어 죽어가는 이른바 고독사가 청년층에까지 확산하고 있고, 집 안에서조차 소수만이 아랫목을 차지하는 그런 '가짜 집'이다. 모두가 참여해서 사회적 생산액(GDP)을 만들었는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집은 함게 사는 집이 아니다. 그리고 아파도 돌봄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함께 사는 집이 아니다. 사회 속에 살면서 혼자라는 느낌을 준다면 사회라 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사회가 실종된 나라이고, 사회가 붕괴한 나라이다.

 

p129

  최소 소득은 시혜가 아니고 누구나 법적으로 보장받을 권리이고, 이는 (사회 전체 생산액의 배분 방식의 하나인) 세금으로 해결해야만 하고, 특히 출발선의 차이를 만드는 유산에 대해서는 최대한 세금으로 환수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자본주의가 하나의 사회 체제로 출발할 때부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적 상식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런 상식조차 작동하지 않는 사회이다. 이렇게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상속세 완화나 폐지를, 그것도 저출산 대책으로 거론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저출산은 낮은 결혼율에서 찾고, (경제이론과 한국은행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낮은 결혼율은 임금 불평등과 주거비, 그리고 자녀 교육비 등의 순서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확인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결혼율 차이는 그동안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대다수 국민의 사회소득을 늘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증세와 (전통적인 취약계층 중심의) 소득 이전 정책은 많은 중산층이 거부감을 갖는다. 소득이 극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기계적으로 구분된) 중산층조차 많은 사람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편하게 중산층을 설정하는 하위 30%에서 상위 30% 사이의 소득 규모를 보면 (2021년 국세청 소득활동자 자료를 기준) 세전 평균 소득은 1,500만 원에서 4,192만 원 사이의 소득계층이다. 개인 소득이라도 중산층이라기에는 너무 적은 소득 수준이다. 자신도 지원받아야 할 소득계층에게 더 어려운 극빈층 지원을 위해 세금을 더 납부하라 하면 거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식은 사회소득을 모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모든 소득활동자에게 사회소득 100만 원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재원은 약 25.4조 원이다. 이를 현재의 소득세율을 기초로 25.4조 원을 배분할 때 추가 세금 부담은 상위 16%에 국한된다. 2021년 모든 소득활동자 기준 세전 소득이 18.5억 원(세후 소득 11.94억 원)인 상위 0.1%는 추가로 약 2억 원의 세금을 더 부담한다. 그리고 상위 16%선에 있는 소득활동자의 경우 2021년 세후 소득이 6,052만 원인데, 추가로 2만 원만 더 부담하면 된다. 이 정도의 추가 세금으 객관적으로 볼 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반면, 하위 50%는 최소한 91만 원에서 1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앞에서 하위 41%까지는 연소득이 최저임금 수준보다 작다고 말했다. 2023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380원을 인상해야 하고, 1년간 95만 1,000원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소득 100만 원을 지급하면 최저임금 대상자의 시간당 1만 원 소득은 쉽게 달성된다.

 여기에 (2022년 기준 약 98만 2,500개의) 법인을 대상으로 소득활동자 모두에게 100만 원을 지급할 25.4조 원을 배분하면, 세후수입이 3조 1,367억 원인 0.1%의 법인은 추가로 154.5억 원을 부담하고, 세후 수입이 543억 원인 10% 선의 법인은 추가로 2억 3,541만 원을 부담한다. 세후 수입이 34억 원인 상위 20% 선에 있는 법인이 추가로 부담할 세금은 808만 원, 세후 수입이 4.7억 원인 50% 선의 법인은 추가로 171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것으로 모든 소득활동자에게 사회소득 1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할 수 있다. 개인소득보다 법인소득, 그리고 소득보다 토지 등 자산 집중이 더 심한 상황이기에 자산에 대한 사회소득 재원 확보는 소득보다 저항이 더욱 적고,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 계층의 경제적 부담도 적다.

 이렇게 사회 생산이나 사회 자산에 대한 사회몫에 해당하는 사회소득을 사회 구성원에게  배분하게 되면 국민의 80% 이상이 현재보다 최소 수백만 원 이상의 추가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재분배와의 차이라면 사회소득세를 거두어서 바로 현금 혹은 (일부는) 지역화폐로 배분한다는 점이다. 관료가 배분을 (결정)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저소득층일수록 배분받는 사회소득이 크고 초고소득층에게 세금 부담이 집중되기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클 뿐 아니라 (대다수가 혜택을 받기에) 조세 저항도 크지 않고,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전으로 돌려 놓기가 쉽지 않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줄어들게 된 국민 80% 이상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145

 싱가포르는 경상수지 흑자와 더불어 유입된 외국자본을 외환보유액Official Foreign Reserves, OFR으로 축적하여 이를 싱가포르통화청MAS, 싱가포르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싱가포르투자청Government of Singapore Investment Corportation, GIC, 싱가포르 국책투자 사업을 수행하는 테마색Temasek Holdings이 활용해 재정에도 지원하고 있다. 사실,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액이 1조 달러에 달하는데 현재 외환보유액은 4,201억 달러(2023년 12월 기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외환보유액 축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일부에서 과도한 외환보유액 축적은 (외화보유 확충에 따라 풀리는 국내 여신을 흡수하기 위한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에 따른 제반 비용인) 불태환 개입비용 부담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하지만, 싱가포르의 경우 축적한 외환으로 더 높은 투자 수익을 만들고 있고, 또한 높은 신용등급으로 기업들은 해외자금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때처럼) 외국인 자금의 갑작스러운 유출 상황에서 금융 및 외환시장의 방어벽 역할을 한다.

 2023년 12월 기준 한국의 국고채에 대한 외국인 보유액은 약 219.5조 원(약 1,688억 달러, 1달러 = 1,300원 기준)에 달한다. 외국인 보유 국고채가 모두 일시에 처분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주식시장 유입액(약 5,085억 달러, 2023년 12월 8일 기준)이나 단기 외화차입액(1,416억 달러, 2023년 3분기 기준), 3개월 수입액(2,438억 달러, 2022년 수입액 기준)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결코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IMF가 제시하는 적정외환보유액 기준에 미달하는 배경이다.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원화가 가장 취약한 통화로 전락하는 이유이다. 해외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는 이유도 국제금융시장 환경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외환 불안정석에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중앙은행 총재 시절) 라구람 라진이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이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때 신흥국 경제는 산업경쟁력에 필요한, (과도한 통화가치 절상 방지 등) 자국의 화폐가치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대외적 양적완화(Quantitative External Easing. QEE)'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자신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버냉키 화법을 사용해) 라잔 역시 신흥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신흥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고, 신흥국의 경제성장은 선진국 경제에도 기여한다는 점에서 외환시장 개입이 '근린궁핍화' 정책이 아니고, '근린부유화' 정책이라고 받아쳤다.

 이처럼 해외 지식인들이 화폐 주권을 당연시하는 풍토와 달리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으로 사고하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이익 추구는 '사치'에 불과하다.

 

p148

 <그림7>은 대한민국 경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간은 지난 30년(1992~2023년 2분기)이다. 지난 30년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일치하는 기간이다. 그림의 곡선은 현재의 시장 가치와 자국 화폐 단위로 평가한 세 나라의 GDP(명목 GDP 혹은 경상 GDP)를 해당국의 시중 유통 전체 통화량으로 나눈, 이른바 '화폐유통속도'이다. 사전적으로 화폐유통속도는 화폐 한 단위가 일정 기간 동안 경제 구성원들의 상품 거래 혹은 소득을 창출하는 거래에 평균적으로 몇 회 사용되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예를 들어, 2023년 3분기(9월말) 기준 대한민국의 명목 GDP는 약 2,205조 원이고, 총통화량은 약 3,818조 원이다. 이는 3,818조 원 중 2,205조 원만이 소득창출과 관련 있는 상품 거래에 연결되었음을 말한다. 나머지는 수익을 좇아 자산시장으로 대부분 흘러 들어간다.

 그런데 한국은 외환위기 충격 이후 1값 밑으로 떨어져 계속 하락해, 자산시장 거품 붕괴 충격 이후 1값 밑으로 떨어진 일본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중이다.

 경제 내용상으로 사실상 한국 경제 역시 '잃어버린 30년'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2023년 3분기 기준 연간 성장률은 1.1%였는데 이는 일본의 1990년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1992~2001년)의 연평균 성장률 수준이다. 이 값이 내려가면 돈을 풀어도 새로운 가치 창출보다는 자산 불평등의 심화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30년(1992~2001년) 사이에 한국의 명목 GDP는 약 1,725조 원 증가했는데, 국내 부동산자산은 약 9배에 달하는 1경 4,710조 원이나 증가했다. 가계로 국한해도 마찬가지 모습이 확인된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약 928조 원 증가했는데, 가계의 부동산 자산은 약 8배에 달하는 7,077조 원 증가했다. 비금융법인이 만든 부가가치, 이른바 영업잉여는 약 208조 원 증가했는데 비금융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자산은 약 15배에 해당하는 3,020조 원 이상 증가했다. 다른 기준으로 비교하면, 유가증권 이른바 코스피 상장기업 매출액은 2004~2022년 사이에 약 2,075조 원 증가했는데 비금융기업의 부동산자산은 2,311조 원 이상이 증가했다. 지난 30년의 가계와 기업, 국가 경제 모두에서 부동산은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선진국 중 가장 자산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보다 불평등이 더 심하면서 내용이 좋지 않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주식자산이 부동산자산 증가를 압도한다. 한국은 그 반대이다.

 게다가 돈을 빨아들이는 부동산자산의 핵심 원천인 토지자산 소유 상태를 보면 정말 끔찍하다. (2,370만 5,814세대로 구성된) 2022년 대한민국에서 상위 0.62%에 해당하는 14만 6,952세대가 보유한 토지가액 943.4조 원은 전체 세대의 (38%의 땅이 한 평도 없는 901만 세대를 포함) 85%(약 2,018만 세대)의 토지보유액 949.7조 원과 맞먹는 규모이다. 오죽하면 필자가 전정田政 문란과 토지개혁 등으로 채색된 조선왕조 말기보다 오늘날의 토지 소유가 더 집중되었다고 하겠는가.

 두 번째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경향이 지난 30년간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구조는 대한민국의 힘의 역학 구조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돈을 중심으로 세력의 이해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회 일각에서 대한민국을 '부동산 공화국'이라 부르는 배경이다. 또한 오래전부터 시중에 회자하는 말이 "권력은 유한한데 자본(모피아)은 영원하다"이다.

 

p152

 흥미로운 점은 김대중 정권에서 (GDP대비) 가계 소비 비중이나 성장률의 하락폭이 가장 컸다는 사실이다.

이는 외환위기 충격도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2000~2002년 3년간 기준으로 가계 부채가 역대 최고로 증가한 사실에서 비롯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3년 간 18.9%p의 가계 부채 증가는 문재인 정권에서의 2018년 3분기~2021년 3분기까지의 3년간 14.5%p보다 높았고, 1년 기준으로도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던 시기를 기준으로) 김대중 정권의 2001년 3분기 이후 2002년 3분기까지의 10%p 증가가 문재인 정권의 2020년 1분기 이후 2021년 1분기까지의 8.8%p 증가보다 높았다. 이는 '평화적 정권 교체' 및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6.15 공동선언)등 민주주의와 남북 관계에 이정표를 세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알맹이인 공공금융의 '사실상' 해체의 산물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래 가계 부채의 증가는 가계 소비를 억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GDP 대비 가계 부채가 10%p 상승할 때마다 GDP 대비 가계소비는 2.4%p 감소했다. 그리고 가계 소비 감소는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정권에서의 연평균 8% 성장률은 문재인 정권에서의 연평균 2.4%까지 하락했다. 약 60%에 달했던 GDP 대비 가계 소비 비중이 46%까지 하락한 결과였다. 가계 소비 비중이 1%p 하락할 때마다 성장률은 0.87%p씩 하락한 것이다. 내수의 핵심인 가계 소비의 둔화는 수출 의존도를 높이고, 이는 다시 국민총소득에서 가계 소득의 비중을 낮추었다.

 결과적으로 GDP 대비 가계 부채 10%p 증가는 (국민총소득에서) 가계 처분가능소득 비중을 2.3%p 감소시켰다. 특히, 내수 의존도가 절대적인 자영업자에 타격을 입혔다. 임금노동자 1인당 평균 소득 대비 자영업자 1인당 평균 소득의 비중은 (가계 소비와 가계 소득을 감소시킨) 가계 부채 증가에 따라 하락했다. 가계 소득과 가계 소비가 1%p 하락할 때마다 (임금노동자 소득 대비) 자영업자의 상태 소득에 각각 -4.1%p(가계 소득)와 -3.6%p(가계 소비)의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오래전에 격차 사회가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의 소득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 소득 격차, 그리고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소득 격차가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소득 격차가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소득 격차인 데 이 격차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1인당 자영업자 평균 실질소득이 2001년 정점을 찍고 최근까지 계속 하락하고 있고, 물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명목소득도 2011년 이후 계속 하락하는 배경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격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소득 격차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에 40%가 무너졌다. 작은 충격만 받아도 자영업자가 폐업에 내몰리는 배경이다. 절대적인 소득 취약성으로 가계 부채 못지 않게 자영업 부채가 급증하는 배경이다. <표9>에서 보듯이 자영업자 1인당 명목소득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0.7%씩 줄어들어왔다. 실질소득 기준으로 보면 지난 20년 넘게 연평균 2.3%씩 하락해왔다.

 

 

p166. 사회 소득을 위한 세율 조정 방안.

 

p170

 지금까지 간단히 소개한 사회소득만 강화해도 대부분 가계는 최소 연 300~400만 원의 사회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엄청나다. 첫째, 가계의 소비 여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성장뿐 아니라 가계의 소득과 일자리 증가 등에도 기여한다. 둘째, 소득 불평등의 개선, 특히 불평등 발생의 최대 용인인 토지 부동산자산에 대해 과세와 소득이 낮을수록 많은 배당을 받는 소득 이전으로 불평등을 크게 개선하게 된다. 셋째, 부동산 투기에 따른 기대 불로소득이 낮아짐으로써 투기를 완화한다. 넷째, 세금을 거둔 후 그 세금을 바로 국민에게 배당해줌으로써 재경 관료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국민 주권 강화의 효과가 있다. 다섯째, 사회소득이나 토지배당 등의 일부를 지역화폐로 나누어 주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자영업자 소득 개선에도 기여한다. 여섯째, 저소득층이 가장 큰 혜택을 입음으로써 저소득층의 최저임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그 결과 사회 경제적 약자들인 을과 을 사이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일곱째, 설사 보수정권으로 바뀌어 사회소득세 및 토지배당세를 이전으로 환원시키게 되면 대다수 국민의 소득 감소로 이어져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기 때문에 감세가 불가능한 불가역적 증세 방식이다. 여덟째, 노동소득 이외의 추가 소득이 발생하면 많은 국민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으로는 혁신 활동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사회금융까지 결합할 경우 창업 활성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주저앉는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려면 가계 소득 강화와 혁신 활성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회소득 강화와 사회금융 복원이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이다.

 

나카시마 미카의 14번째 싱글로 발표된 곡. 오리콘 차트 5위에 올랐다(그녀의 대표곡이자 빅히트곡인 <눈의 꽃 雪の華>도 오리콘 차트 3위까지 밖에는 못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2명의 가수가 리메이크를 했고, 일본에서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했다. 개인적으론 오리지널인 나카시마 미카 버젼이 압도적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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桜色舞うころ 私はひとり
押さえきれぬ胸に 立ち尽くしてた

연분홍(벚꽃잎이 한창 흐드러질 때는 표현)이 한창일 때면 나는 홀로
두근거리는 마음에 겨워 서 있을 뿐이죠


若葉色 萌ゆれば 想いあふれて
すべてを見失い あなたへ流れた

연록색이 움터 오면 추억에 젖어
모든 것을 잊고 당신께 흘러가요


めぐる木々たちだけが
ふたりを見ていたの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만이
우리 두 사람을 지켜보아요


ひとところにはとどまれないと
そっとおしえながら

한곳에만 머물수는 없다며
살며시 속삭이면서


枯葉色 染めてく あなたのとなり
移ろいゆく日々が 愛へと変わるの

단풍색으로 물들어가는 당신의 주변에서
퇴색해가는 나날들이 사랑으로 변해가요 


どうか木々たちだけは
この想いを守って
もう一度だけふたりの上で
そっと葉を揺らして

부디 이 나무들만은
이 추억을 간직해주길
꼭 다시 한번만 우리 둘에게
살며시 잎사귀를 흔들어주길


やがてときはふたりを
どこへ運んでゆくの
ただひとつだけ 確かな今を
そっと抱きしめていた

이윽고 이 계절은 우리 둘을
어디로 데려다 줄까요
단지 확실한 지금 이 순간을
살포시 안고 있어요

雪化粧 まとえば 想い はぐれて
足跡も消してく 音無きいたずら
どうか木々たちだけは
この想いを守って
「永遠」の中ふたりとどめて
ここに 生き続けて

눈으로 뒤덮이면 추억은 멀어지고
발자국마저 지워진 채 소리없는 희롱
부디 이 나무들만은
이 추억을 간직해주길
영원 속에서 우리와 머물러
여기서 계속 살아 주기를

めぐる木々たちだけが
ふたりを見ていたの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만이
우리 두 사람을 지켜보아요


ひとところにはとどまれないと
そっと おしえながら

한곳에만 머물수는 없다며
살며시 속삭이면서


桜色舞うころ 私はひとり
あなたへの想いを かみしめたまま

연분홍이 한창일 때면 나는 홀로
당신과의 추억을 되내일 뿐이에요.

 제로에서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수준이 낮지는 않다. 현재의 사회,경제,정치적인 이슈를 기반으로 자본론의 현대적 의의와 적용방안에 대해서 저자가 고민한 바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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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한 남자가 동독에서 시베리아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자산의 편지를 검열관이 읽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호를 정해 두자. 만약 내 편지가 파란 잉크로 쓰였다면, 편지의 내용은 진실이다. 하지만 만약 빨간 잉크로 쓰였다면 그것은 가짜다." 한 달 후 그의 친구가 편지를 받았을 때, 모든 것이 파란색 잉크로 쓰여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매우 훌륭하다. 맛있는 음식도 많다. 영화관에서는 서양의 재미있는 영화를 상영한다. 집은 넓고 고급스럽다. 여기서 살 수 없는 것은 빨간 잉크뿐이다."

 

이 농담은 소련의 '사회주의'를 다뤘지만, 자본주의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바로 이 파란 잉크로 쓰인 편지의 세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빨간 잉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번은 버린 <자본론>이 바로 그 빨간 잉크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자본론>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 사회의 부자유를 정황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p19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남쪽 섬에 사는 어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왜 너는 매일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거야. 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라."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뭘 할 건데?"
 "돈 많이 벌어서 은퇴하면 느긋하게 낮잠 자고 낚시하며 살고 싶으니까."
 "어, 나는 벌써 그렇게 하고 있어."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매일매일 힘들어하면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을까요?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아니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 그렇다면 위 이야기의 어부는 도시에 사는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p20

 인간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연에 작용하여 다양한 것을 만들어 내면서 이 지구상에서 삶을 영위합니다. 의식주 등을 얻기 위해 인간은 적극적으로 자연에 적용하고 그 모습을 변화시키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합니다.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마르크스는 생리학 용어를 사용하여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라고 말했습니다.

 

p21

 이 책은 물질대사론을 바탕으로 <자본론>을 읽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필자는 마르크스를 따라 '노동'이라는 행위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조절하는 통제하는 행위가 바로 '노동'입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노동'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우선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 즉 인간이 자신의 행위로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고 제어하는 한 과정이다.

 

p24

 우리의 삶과 사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모습은 우리가 자연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 작용 방식을 크게 잘못하면 사회와 자연은 황폐해집니다. 그래서 노동은 인간의 자유와 번영을 위해 매우 중요한 활동인 것입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가 '노동'이라는 개념에 주목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착취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물질대사라는 인간과 자연의 본원적 관계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막연하게만 파악한다면 어느 시대든 인간은 자연과 물질대사를 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구체적 모습은 시대와 지역마다 크게 다르죠.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즉,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적이고 합목적적인 활동인 '노동'이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결정적 변화가 있음을 밝히고, 거기서 자본주의의 특수성에 접근한 것입니다.

 

p28

 화폐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풍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풍부한 상태, 그것이 바로 사회의 '부'입니다.

 

p33

 사회의 '부'가 '상품'으로 변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가격표가 붙은 '매물(賣物)'이 된다는 뜻입니다.

 

p37

 마르크스에 따르면 '상품생산이 전면화된 사회', 즉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물건을 만드는 목적, 즉 노동의 목적이 다른 사회와 크게 다릅니다.

 

p39

 왜 이런 상황(부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자본을 늘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자본주의는 이윤추구를 멈출 수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서점을 없애는 등 사회의 '부'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는다 해도 눈앞의 돈벌이를 멈출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입니다.

 

p40

 생산 활동의 주요 목적이 '인간의 욕구 충족'에서 '자본을 늘리는 것'으로 바뀌면 당연히 생산방식도, 생산되는 물건도 달라집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사람들의 삶에 정말 필요핮ㄴ지, 정말 중요한지보다 얼마나 비싸고, 얼마나 팔리겠는지, 당시 말해 얼마나 자본을 늘리는 데 기여하는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돈이 되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 마르크스는 '상품'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는 '사용가치'라는 얼굴입니다. '사용가치'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유용성), 즉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는 힘입니다. 물에는 갈증을 해소하는 힘이 있고, 식료품에는 굶주린 배를 채우는 힘이 있습니다. 마스크에도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사용가치'가 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사용가치'가 바로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생산의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의 또 다른 얼굴인 '가치'입니다.

 

p44

 '사용가치'를 위해 물건을 만들던 시대는 말 그대로 인간이 '물건을 사용하던' 시대였지만, '가치'를 위해 물건을 만드는 자본주의에서는 입장이 역전되어 인간이 물건에 휘둘리고 지배당합니다. 이 현상을 마르크스는 '물상화(物象化)'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이 노동에서 만든 물건이 '상품'이 되는 순간, 신비한 힘으로 인간의 삶과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p47

 그와 동시에 광고업과 마케팅이 늘어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소비자들도 바보가 아니라서 자신이 쓰레기를 샀다는 것을 금새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상품의 마법이 풀려서 싫증이 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제품을 바꾸고, 새로운 쓰레기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해야 하는 것입니다.

 

p48

 '상품'의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물상화의 힘은 강해지고, 인간은 점점 더 물건에 휘둘리게 됩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경쟁 원리가 작동해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한 이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물상화의 힘을 강화한 결과,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부조리와 비효율, 독점을 낳고 있습니다.

 

 민영화라고 하면, '독재적'이고 비효율적이던 공영/국유사업이 민간의 손에 의해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운영된다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어의 마술입니다. 원어인 프라이비티제이션(privatization)은 직역하면 '사유화'입니다. 프라이빗(private)의 어원은 '빼앗기다' '분리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관리하던 '코먼'을 빼앗긴 상태라는 뜻이죠. 민영화의 실체는 특정 기업의 권리 독점이며, '상품'의 영역을 넓히는 현대판 '울타리 치기'입니다.

 시장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을 가진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공영/국유이던 시절에는 접근이 가능했던 의료나 교육 같은 공공서비스에서 많은 사람이 배제되었습니다. 

 또 시장에서는 '이익'이 우선하기 때문에 수익성 없는 물건이나 서비스는 가차 없이 삭감됩니다. 예산도, 인력도 삭감됩니다. 정말 쓸모없는 것은 당연히 줄여야 하지만, '사용가치'를 무시한 효율화는 꼭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까지 삭감하거나 질을 떨어뜨려 사회의 '부'를 빈약하게 합니다.

 

p54

 가치 논리의 내면화를 보여 주는 잘 알려진 예가 바로 '가성비(코스파, cost performance)'의 사고입니다. 모든 일의 수익률을 추정하고 그에 따라 효율화를 꾀하는 태도죠.

 

 이렇게 가사나 육아는 외주화,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서비스산업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성비 사고에 더 깊이 빠져들면 돈이 되지 않는 주민 회의나 축제, 학부모/교사 모임(PTA), 노동조합 등에 참여하는 일이 모두 가성비가 나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가족이나 지인을 돕는 것조차 말이죠. 결국 공동체는 점점 더 말라비틀어지고, 끝내는 붕괴됩니다.

 물론 집안일을 모두 여성에게 맡기거나, 동네 모임에서 '장로'가 거드름을 피우던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상품화하지 않더라도 가사나 육아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있고, 커뮤니티의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대신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남는 시간을 점점 더 돈벌이에 바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풍요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이 역설을 미하일 엔데가 쓴 <모모>의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간 은행'에 홀린 이발사 푸지는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는데도 전혀 여유가 없습니다.

 

 푸지 씨는 점점 더 흥분하고, 침착하지 못한 사람으로 변해 간다. 한 가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절약한 시간은 사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마술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푸지 씨의 하루하루는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점 더 뚜렷하게, 그리고 조금씩 사라져 갔다.

 

가성비를 더 높이고 시간을 절약한다고 해서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압니다. 오히려 여가가 점점 줄어들고, 가족이나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여유도 없어집니다. 그리고 조금의 낭비도 용납하지 못하는 짜증 나는 인간들만 가득한 사회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p82

 노예는 단지 외부의 두려움에 의해 노동하지, 자신의 생활(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보장되어 있는)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자유노동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노동한다. 자유로운 자기결정, 즉 자유에 대한 의식과 그에 따른 책임의 감정은 자유노동자를 노예보다 훨씬 더 나은 노동자로 만든다.

(마르크스, <직접적 생산과정의 결과들>)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일자리를 잃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두려움보다는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자부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무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깁니다. 실제로 취업 면접에서 "무슨 일이든 죽기 살기로 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받으며 마지못해 일하는 노예와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노동자는 억지로 일하는 노예보다 더 일을 잘하고, 더 좋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실수하면 자신을 탓합니다. 불합리한 명령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몰아세웁니다. 이는 자본가가 바라지도 않았던 바입니다. '자본가에게 유리한' 사고방식을 노동자가 스스로 내면화함으로써 자본의 논리에 편입되는 것입니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이를 가리켜 '영혼의 포섭'이라고 말했습니다.

 본래 끝없는 가치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가의 이해관계와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롭고 자발적인 노동자는 자본가가 원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마치 자신이 지행해야 할 모습, 인간적으로 우수한 모습인 양 착각하게 됩니다. 고도성장기의 '모레쓰 사원(猛烈社員)'이나 버블경제기에 유행한 영양 음료의 캐치프레이즈 "24시간 싸울 수 잇습니까"가 그 좋은 예일 것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자발적 책임감, 향상심, 주체성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다고 마르크스는 경고했습니다.

 

p86

 노동운동이나 노사 교섭에서도 '임금인상'은 가장 큰 쟁점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마르크스는 임금인상보다 '노동일 제한(단축)'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당시 임금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는데도 말입니다.

 노동일의 제한은, 그것 없이는 모든 해방의 시도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선결 조건이라고 우리는 선언한다. (319/410)

 

 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장시간 노동이 해소되지 않으면 으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본가가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이면 분명 착취는 완화됩니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자본주의사회의 노동자는 "그럼 우리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기업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사태입니다. 임금을 조금만 올려 주고 그 대신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해 준다면 잉여가치, 즉 자본가의 이윤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가의 목적은 노동력이라는 '부'를 '상품'으로 가둬 두는 것입니다. '상품'으로 가둬 두는 것은 자유 시간을 빼앗는 것입니다. 임금인상에 따른 장시간 노동이 임금노예 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임금이 조금 오른다 해도 시간을 빼앗긴 노동자에게는 아이와 놀거나 취미를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일하다 지쳐서 책을 읽거나 인생이나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바빠서 직접 요리할 시간이 없게 되면 외식이라는 '상품'이 팔립니다. 빨래를 해도 건조할 시간이 아깝게 되면 세탁기와 건조기가 팔립니다. 자동 청소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는 가사 대행 서비스도 유행입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한 서비스가 우리를 여유롭게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노동시간이 점점 늘어날 뿐입니다. 이렇게 노동일을 '무제한'으로 만들면 '상품'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자본가들의 사업 기회가 확대됩니다.

 

p98

 자본주의는 엄청난 부를 가져다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생활은 오히려 여유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욕구와 감성이 메마르고 빈곤해졌습니다. 180년 전, 20대 중반의 젊은 마르크스는 이 상태를 '노동의 소외'라고 불렀습니다. 소외된 삶에 대해 마르크스는 분노를 담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빛, 공기 등 가장 단순한 동물적 청결도 이간에게 욕구된 것을 중지한다, 더러움, 인간의 이 퇴폐, 타락, 문명의 하수구의 오물(이것은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이 인간의 생활 기반이 된다. 완전히 부자연스러운 황폐, 부패한 자연이 인간의 생활 기반으로 된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 철학 초고>)

 

p101

 상품을 값싸게 하기 위해, 그리고 상품을 값싸게 함으로써 노동자 자체를 값싸게 하기 위해 노동생산력을 증대하는 것은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자 끊임없는 경향이다. (338/436)

p102

 임금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일본은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임금은 전혀 오르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생활하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하루 일하고 지친 노동자는 먹고 자고 다음 날도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상품'인 노동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력의 재생산'이라고 표현했는데,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려면 얼마나 일해야 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필요'의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합니다. 음식, 집세, 의복, 여가 비용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요금도 포함될 것입니다. 지방에서는 자동차도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자녀 교육비, 노후 자금 등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합니다.

 한편, 지금까지는 일당 1만 엔을 받아야 살 수 있었지만, 생산력이 높아지면 패스트패션과 패스트푸드 덕분에 예를 들어 8,000엔으로도 이전과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일당을 8,000엔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비저유직 등을 늘려서 비용 절감을 할 수 있습니다.

 생산력이 높아져 싸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이 노동자가 한 시간 노동으로 창출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한 시간에 2,000엔인 가치를 창출한다고 가정할 때, 노동시간이 이전과 같은 여덟 시간이라면 일당 감소분 2,000엔은 고스란히 자본가의 잉여가치가 됩니다.

 이처럼 노동력가치의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상대적잉여가치'라고 했습니다.

 왜 '상대적'일까요? 앞 장에서 살펴본 '절대적잉여가치' 생산에서는 노동일의 절대 길이가 연장됨으로써 하루에 생산되는 가치 자체가 증가했습니다. 반면 '상대적잉여가치' 생산에서는 노동일의 길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생산되는 가치의 합계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노동력의 가치가 낮아짐에 따라 이윤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p105

 자본가들이 생산력을 높이는 기술혁신, 즉 이노베이션에 기대하는 것은 '가치'의 증식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또 다른 목표, 그것은 노동자에 대한 '지배' 강화입니다. 오히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생산력 증대에 대해 마르크스가 가장 문제 삼은 점입니다.

 자본가는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고자 상품을 최대한 싸게 만들려고 노동자가 '효율적으로' 일하게 하려고 합니다. 즉, 생산성을 높이려는 것이죠. 이때 효율성은 노동자의 '쾌적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요구되는 것은 노동자를 중노동이나 복잡한 일에서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기술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단결근도 하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고, 지시하는 대로만 일하도록 하는 혁신, 즉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는 기술입니다. 이런 '일하는 방식의 개혁'이 현대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에 케인스의 예상이 빗나간 것입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생산력이 높아질수록 노동자는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포섭'되어 자율성을 잃고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도대체 왜 생산력의 상승이 자본의 지배 강화로 이어질까요?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1장 서두에서 소개한 '물질대사'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인간이 '의식적이고 합목적적인' 노동을 통해 자연과 물질대사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의식적이고 합목적적인 노동과정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상'과 '실행'입니다['구상'과 '실행'이라는 정리는 마르크스 본인이 아니라 해리 브레이버맨이라는 뛰어난 마르크스 연구자가 <노동과 독점자본>이라는 책에서 <자본론>을 연구하면서 쓴 말입니다]

 

p110

 그렇다면 '구상'과 '실행'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생산공정을 세분화하여 노동자들에게 분업을 시키는 것입니다. 옹기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각 공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어떤 두고와 방식으로 진행하는지, 몇 분이 걸리는지 등을 자본가가 관찰하고, 직인이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하는 작업을 획일적인 단순 작업으로 분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도 직인만이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품들은 애초에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요구되지 않습니다. 자본가들이 만들고 싶은 것은 수작업으로 만든 예술적인 옹기가 아니라, 싸고 나름대로 튼튼한 물건입니다. 깨지거나 부서지면 언제든 저렴한 가격으로 교체할 수 있는 대량생산품입니다. 그런 것들은 직인 한 명이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분업해서 흐름작업으로 만드는 것이 효율도 좋고, 싸게 많이 생산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가격경쟁의 물결에 휩쓸려 길드는 해체되어 갔습니다. 장사가 안되는 직인들은 폐업하거나 생계를 위해 자본가들의 분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길드의 힘은 약해지고, 그만큼 자본가의 힘은 강해졌습니다.

 그 결과 18~19세기 영업의 자유 원칙을 내세운 각국의 입법에 의해 길드의 특권은 폐지되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조국 독일에서도 1869년 길드제의 역사는 막을 내렸고, '규칙 없는 자본주의'는 이렇게 해서 형성되었습니다.

 

p112

 애초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자본가에게 팔아야 햇던 이유는 물리적 생산수단, 즉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업이라는 시스템에 편입됨으로써 무언가를 만드는 생산능력마저 잃게 되었다고 마르크스는 갈파했습니다.

 몇 년을 일해도 단순 작업만 할 수 있는 노동자는 분업 시스템 안에서만 일할 수 있습니다(더 이상 자기 혼자로는 완제품을 만들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본의 지휘 감독과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분업과 협업은 이렇게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재편되어 노동자의 주체성을 빼앗아 갑니다.

 게다가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이기 때문에 공장 밖에는 나를 대신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면 꿈을 포기하고 불평불만을 꾹꾹 눌러 참으며 할당량을 달성하기 위해 묵묵히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자본가와의 주종 관계가 강화됩니다. - 자유로운 재량의 여지가 사라진 일터야말로 노동이 고통으로 되는 소외의 원인입니다.

 

p113. 인간다움을 앗아 가는 테일러주의

 구상과 실행을 철저하게 분리한 사례로 20세기 초의 '테일러주의'를 소개하겠습니다. 테일러주의는 미국의 기술자이자 <과학적 관리법의 원리>의 저자 프레더릭 테일러가 주장한 관리법입니다. 테일러는 기계공장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기계공, 기술 부장을 거쳐 컨설턴트가 된 인물로, 지금은 미국 경영학의 원조로 여겨집니다.

 테일러는 먼저 생산공정을 세분화하여 각 공정의 동작과 절차, 소요시간을 분석해 공정별 표준 작업시간을 확정해습니다. 작업의 낭비를 철저히 없애기 위해 동작에 따라 체형과 능력 등을 고려해 재배치하고, 전용 공구를 개발하고, 공구와 부품의 위치까지 세밀하게 정했습니다. 즉, 생산의 기술적 조건이 자본가에 의해 근본적으로 바뀐 것입니다.

 또 생산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사람과 실제 작업하는 사람을 완전히 분리했습니다. 이는 실제 작업을 하는 사람의 의식을 '정해진 시간 내에 자신의 업무를 완수하는 것'에만 집둥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시간 내에 일을 끝내지 못하면 벌금을 물거나 해고하고, 일정량 이상의 일을 해낸 사람에게는 보상을 하는 차별성과급제도도 도입해 경쟁심을 부추기며 단순노동에 매진하도록 했습니다.

테일러가 이런 일을 한 이유는 그가 제철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초창기, 부하인 현장 공원들이 그의 명령을 조금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테일러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이 '공원들의 지식과 손재주의 총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요컨대 공원들은 그를 우습게 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테일러는 공원들의 지식과 손재주, 즉 구상과 실행을 철저하게 해제하고, 모든 공원이 자신의 지시에 따라 '최대의 노력, 최고의 근면 성실'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고안하고 이를 체계화했습니다.

 테일러는 경영의 개념을 정립한 '과학적 관리법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테일러주의는 생산에 관한 노동자들의 지식이라는 '코먼(공유재산)'에 울타리 치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생산에 관한 지식과 노하우를 자본이 독점하고, 자본의 편의에 따라 재구성된 생산시스템에 노동자를 강제로 복종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일시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져 실적 상승의 혜택을 노동자들도 임금인상이라는 형태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조 측도 자본에 구상을 빼앗기는 것을 용인해 왔습니다.

 하지만 고도 경제성장 시대가 끝나면 자본은 더 이상 노동자에게 그런 '덤'을 주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입지는 점점 약해지고, 임금도 낮아지고, 노동시간도 쉽게 연장됩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높이면서 노동자의 자율성도, 인간다운 풍요로운 시간도 사정없이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생산력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케인스가 예견한 여가사회는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p116

 1장에서 인간이 상품의 '가치'에 휘둘린다는 이야기를 했고, 2장에서는 '자본의 운동'에 휘둘린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대공업 시대의 노동자는 더 나아가 '기계'에 휘둘립니다. 기계라는 사물과 노동자의 입장이 역적, 전복된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바로 생산과정의 '물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산과정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것은 기계이고, 기계는 "살아 있는 노동력을 지배하고 빨아들이는 죽은 노동"(446/571)이 됩니다. 이렇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에 기반한 자본의 지배가 완성됩니다.

 

 기계 노동은 신경계를 극도로 피곤하게 하는 한편, 근육의 다면적 작용을 억압하고 심신의 모든 자유로운 활동을 봉쇄힌다. 심지어 노동의 완화조차도 고통의 원천이 된다. 왜냐하면 기계는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내용에서 해방하기 때문이다. (445~446/571)

 

 흥미롭게도 이 구절에서는 기계로 인해 노동이 쉬워지는 것조차 노동자에게는 고통의 원천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계가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내용'에서 해방하는 것, 즉 내용 없는 단순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기쁨도, 성취감도, 충실감도 없는, 한마디로 소외된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용이 없으니 언제, 누구와도 대체가 가능하고 노동자의 힘은 점점 약화되는 것입니다.

 자본의 지휘/명령, 즉 경영자의 의도에 따라 노동이 실현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마르크스는 '자본의 전제(專制)'라고 불렀습니다.

 자본의 전제가 완성되면 비약적으로 향상된 생산력도 모두 자본가의 것으로 나타난다고 마르크스는 말햇습니다. 실제로는 노동자들이 '협동'하여 수행한 노동이 생산력을 높였지만, 그것은 '노동자의 생산력'으로 나타나지 않고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자율적으로 협업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자본 아래 모여서 그것의 지시에 따라 일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지휘와 명령 없이는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생산력이 증대될수록 자본의 지배는 오히려 강화된다고 마르크스는 비판한 것입니다.

 

 

p120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한편으로 노동일의 무제한적 연장에 새로운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고, 이 경향에 대한 저항을 분쇄하는 방식으로 노동 양식 자체와 사회적노동 유기체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 중 이전에 자본의 손이 닿지 않던 계층을 편입시키고 또는 기계가 쫓아낸 노동자들을 하는 일 없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과잉 노동인구를 만들어 낸다. (430/551)

 

 기계가 육체노동을 대신하게 되면 비숙련노동자뿐 아니라 여성과 어린이 등 '이전에 자본의 손이 닿지 않던 계층'도 일할 수 있게 됩니다. 트랙터와 경운기 등의 도입으로 농업의 공업화는 농촌에 과잉인구를 만들어 많은 젊은이가 도시로 향하게 됩니다. 이들을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면 상대적 과잉인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공장 밖에서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겠다'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일하겠다' '어쨌든 일하게 해 달라'는 사람이 늘어나면 공장 안의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더 오래, 더 성실하게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들이 필사적으로 일할수록 생산력이 높아져 자본가들이 '그렇게 많이 일해 준다면 지금은 100명 체제로 생산하는데 80명 정도면 되겠네'라고 생각하여, 상대적과잉인구는 더 증가하고 맙니다.

 

 노동자계급 중 취업자들의 과도 노동은 예비군 대열을 팽창시키는 반면, 예비군이 경쟁을 통해 취업자들에게 가하는 압박의 강화로 취업자는 과도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665/866~867)

 

 이러한 상황은 실업자와 취업자의 분열을 낳고, 단결할 수 없는 노동자는 자본 앞에서 더욱더 힘이 약화됩니다. 힘이 약해지면 저항할 수 없게 되고, 더 많은 '과도 노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끝없는 악순환의 내막과 문제점을 마르크스가 강한 어조로 비판한 것이 다음 대목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는 방법은 모두 개별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며, 생산을 발전시키는 모든 수단은 생산자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환되어 노동자를 부분적 인간으로 불구화하고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며, 노동의 고통으로 노동 내용을 파괴한다. 그리고 과학이 자립적 역능으로 노동과정에 합체될수록 노동과저의 정신적 역능은 노동자로부터 소원해지게 된다. 또 이러한 방법과 수단은 노동조건을 왜곡학로, 노동과정에서 극히 비열하고 혐오스뤙 전제 지배에 노동자를 복종시키며, 그의 생활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키고, 그의 처자를 자본이라는 저거너트의 수레바퀴에 던져 넣는다. (674/878~879)

 

p127

 애초에 사회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 당사자조차 의미 없다고 느끼는 고임금 일자리는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불쉿 잡(bullshit job)'이 광고업과 컨설팅업을 중심으로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쓸데없는 회의, 서류 작성, 쓸데없는 캐치프레이즈 만들기, 매너 교육, 모두 '불쉿 잡'입니다. 이는 생산력이 너무 높아져 무의미한 노동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엘리트들이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환경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간다는 반증입니다. 즉, 케인스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는 자본주의가 무의미한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레이버의 주장입니다.

 무익한 고임금 불쉿 잡이 넘쳐 나는 반면,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합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의 현실입니다. 보람 없는 무의미한 노동도, 가혹한 장시간 노동도 삶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p128

 인간이 모든 노동에서 해방되어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원한 것은 인간을 대신해 무엇이든 해 주는 기계나 로봇을 우리가 맥구 한잔 마시며 멍하니 바라보는 그런 미래 사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반복해서 보았듯이, 그가 무엇보다 문제 삼은 것은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어 자본의 지배 아래 사람들의 노동이 무내용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동이라는 풍부한 '부'를 회복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극복하고 노동의 자율성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가혹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보람 있고 풍요롭고 매력적인 노동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즉, 로봇이나 AI로 '노동' 자체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문제의 소재를 잘못 짚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상상하는 미래 사회의 노동자는 '전면적으로 발달한 개인'입니다. 나사만 조이고 돈만 버는 개인이 아니라, 구상과 실행 모두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개개인이 자신의 노동력이라는 '부'를 활용하면서 사회 전체의 '부'를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면서 자율적으로 살아갈 능력과 감수성을 되찾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소외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습니다.

 

p142

 자본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부를 빈곤하게 한다고 마르크스는 말했습니다.

 

p144

 자본주의의 끝없는 운동은 일부 국가의 일부 사람에게 유리한 독점적 형태('대토지 소유')로 전 세계를 상품화합니다. 세계화의 결과, 한 국가의 '도시와 농촌의 대립'은 국경을 넘어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가치 증식을 '무한'하게 추구하지만, 지구는 '유한'합니다. 자본은 항상 비용을 '외부화'하는데, 지구가 유한한 이상 '외부'도 유한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 세계화가 점점 가속되면서 환경 위기 또한 세계화되었고, 이 위기와 무관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가 지구에는 더 이상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기후 위기와 영향이 슈퍼태풍과 폭염으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질대사의 균열'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고 있습니다.

 

p147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움직여 온 기존의 생산관계, 또는 그 법칙 표현에 불과한 소유관계와 모순된다. 이러한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 형태에서 그 질곡으로 전화한다. 이때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전집> 제13권 6쪽)

 

 자본주의는 지구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는 이미 생산력을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사적소유와 이윤추구 아래 약탈을 반복하는 시스템에서는 누구의 것도 아닌 지구환경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관리할  수 없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더 나은 사회발전에 '질곡'이 된 상태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 사이의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문명을 파괴하기 전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켜 다른 사회 시스템으로 이행해야만 한다고 마르크스가 생각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p164

 자유투자사회에서 우리는 모든 행위와 선택을 '투자'로 간주하게 됩ㄴ다. 그런 사회의 귀결은 궁극적인 가성비 사회입니다. 결혼의 가성비? 육아의 가성비? 문화의 가성비? 민주주의의 가성비?

 당연히 인생에서 행위 대부분이 자산 형성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성비 사고를 철저히 하게 되면 소통, 문화, 정치 참여, 세상의 많은 활동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커뮤니티와 상호부조는 쇠퇴하고 사회의 부는 점점 더 앙상하게 됩니다.

 인생의 가성비를 따지자면 "당장 관 속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요로 다케시(養老孟司, 1937~)는 비꼬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 따위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본주의에 의한 '영혼의 포섭'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p174

 그 사회가 자본주의인지 아닌지는 정부의 규모나 국유 비율과는 무관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을 늘리기 위한 잉여가치의 착취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작아지고 시장에 맡기면 더 자본주의적으로 된다는 '신자유주의' 발상은 일면적입니다. 실제로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중국은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국가입니다.

 

p176

 자본주의의 본질은 상품의 등가교환 이면에 숨은 노동자 착취에 의한 잉여가치 생산에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사유에서 국유로 소유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착취를 둘러싼 문제를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로만 보고 노동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면, 소련과 같은 과오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착취 없는 자유로운 노동의 존재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p177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데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의 탈취나 정치체제의 변혁이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 이 물상화의 힘을 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렵게 느낄 수도 있지만, 요컨대 상품과 화폐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에서 선택의 여지를 넓혀 가는 것입니다.

 

p178

 독일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사람이 적고, 6년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유학 초기에, 박사과정까지 포함하면 20년 정도 학생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왜 그런 일이 가능하냐면, 학비가 무료이기 때문이죠. 그뿐 아니라 한 학기 2만 엔 정도면 전철과 버스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정기권이 붙은 학생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생증만 있으면 학식도 몇백 엔으로 먹을 수 있고, 미술관이나 콘서트 할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베를린 필의 콘서트도 15유로(약 2000엔)로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기숙사비는 한 달에 3만 엔 정도로 저렴하고요.

 대학 등록금뿐만이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의료도 원칙적으로 무료이고, 간병 서비스도 후합니다. 실업수당, 직업훈련 등도 충실합니다. 그래서 육아에도 돈이 들지 않고, 노후까지 2000만 엔을 모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싫은 일을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버텨야 한다는 압박감이 약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복지국가 연구자인 괴스타 에스핑아네르센이 '탈상품화'라 부른 상황입니다. 즉, 생활에 필요한 재화(주거, 공원)와 서비스(교육, 의료, 대중교통)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을수록 탈상품화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화와 서비스는 필요한 사람에게 시장에서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의료나 교육 등의 형태로 직접 현물급부됩니다.

 현물급부의 결과, 우리는 화폐를 얻기 위해 일할 필요가 줄어들게 됩니다. 복지국가는 물론 자본주의국가입니다. 하지만 탈상품화가 물상화의 힘에 제동을 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p179. 국유화보다 어소시에이션이 선행했다.

 소련도 교육, 의료 등을 무상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복지국가와 차이점을 알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국유화가 먼저 선행되었죠. 반대로 복지국가의 경우, 물상화의 힘을 억제하려는 사회운동이 선행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마르크스는 '어소시에이션'이라고 불렀습니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노동자 정당, 모두 다 어소시에이션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NGO나 NPO도 해당됩니다. 마르크스가 지행한 것은 소련과 같은 관료 지배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발적인 상호부조와 연대를 기초로 한 민주적 사회였습니다.

 어소시에이션의 중요성은 복지국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업보험은 노동자 스스로가 임금의 일부를 모아 만든 것입니다.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노동운동의 대오는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일정 수준 이하의 임금으로 일하지 않도록, 실직한 노동자들의 삶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사회보험이나 연금부터 공공도서관, 공공의료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발단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동조합, 이웃 상호부조 조직, 협동조합 등의 실천이 있습니다. 자본의 힘 앞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상호부조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요컨대 이 모든 것이 탈상품화를 위한 어소시에이션 운동이었으며, 그것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노동자들 자신이 아니라 국가가 세금을 사용해 보편적 형태로 국민에게 제공하게 된 것입니다. 즉, 어소시에이션 운동은 국유화를 당과 관료가 추진했던 국가자본주의와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보편적 서비스로서 국유화는 어소시에이션이 발전한 다음에 이루어졌습니다.

 어소시에이션이 경제의 기초에 있기 때문에 생활보장의 모든 것을 국가의 관리나 개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최근까지 전국적이고 일률적인 법정최저임금이 없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노동조합이 일본처럼 기업별이 아닌 산업별로 조직되어 있습니다(금속산업노조는 IG금속, 서비사업은 ver,di처럼). 이 산별노조가 각 기업과 산업별로 노사 협정을 맺어 일정한 최저임금을 지키도록 하기 때문에 굳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물상화와 탈상품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복지국가는 마르크스가 생각한 비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소시에이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동조합운동을 금지하고 국유화 아래 관료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국가'보다 자본주의 복지국가가 마르크스의 생각에 더 가깝습니다.

 

p182. 기본소득이라는 '법학 환상'

 '국가자본주의'와 '법학 환상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오늘날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상은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이 침체되고 어소시에이션이 약화되는 가운데, 국가의 강력한 힘을 이용한 자본주의 개혁안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기본소득(BI, Basic Income)은 '법학 환상'의 상징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화폐를 나눠 주는 법을 만들면 된다는 BI의 발상은 언뜻 보기에 매우 대담합니다. 충분한 돈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유 시간도 늘어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BI는 마치 기사회생의 특효약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월 2~3만 엔을 지급받는 대신 연금이나 사회보장비를 삭감당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한편, BI로 매월 10만 엔 정도를 전 국민에게 지급하려면 재원으로 대기업과 부유층에 상당한 부담을 지우게 됩니다.

당연히 자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러한 증세에 저항할 것입니다. 글로벌기업들은 일본 정부가 BI를 위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회사를 접고 세금 부담이 적은 해외로 도피하겠다고 협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수는 줄고, 주가는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의 위협, '자본 파업'입니다.

 자본은 국가를 넘어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것에 투자할 자유를 갖고 있으며, 이 자유가 이동하지 못하는 노동자와 국가에 대한 자본의 권력과 우위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자유를 방패 삼아 '자본 파업'을 발동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BI를 도입하려면 국가가 이 자본 파업을 이겨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의 사회운동이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사회운동 진영에 그 정도의 강력한 힘이 있다면 국가가 화폐를 나눠 주는 것 외에 다른 사회변혁의 길을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료, 고등교육, 보육, 돌봄, 대중교통 등을 모두 무상화하여 탈상품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BI라는 제안이 나온 배경에는 노동운동이 약화되고,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에 의존할 수 없으니, 그 대신 국가가 화폐의 힘으로 국민의 삶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 BI입니다.

 물론 매달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늘어나면 노동자들의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노동자계급의 힘이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생산의 존재 방식에는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가진 힘을 약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BI를 요구하는 세력이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자본 파업에 맞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BI에 담긴 사고방식은 화폐가 힘을 가진 현재의 상황을 상당히 소박하게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BI를 도입한다 할지라도 상품과 화폐의 힘에 계속 휘둘리지 않을까요? 물상화의 힘은 전혀 약화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물상화의 힘을 억누르려고 한 마르크스는 화폐와 상품이 힘을 갖지 않는 사회로의 변혁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물론 이 목표는 화폐의 힘을 아무리 사용해도 달성할 수 없습니다. 화폐의 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화폐 없이 살 수 있는 사회의 영역을 어소시에이션의 힘으로 늘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p184. 피케티와 MMT의 사각지대

 BI와 비슷한 '법학 환상'은 <21세기 자본>의 저자이자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의 세제 개혁안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피케티도 최근 들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데, 그의 방식은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세를 대폭 인상해 과감한 재분배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득세와 상속세의 최대 세율을 90퍼센트 올리고, 이를 재원으로 삼아 모든 성인에게 일천수백만 엔씩을 지급하자고 제창합니다. 물론 그런 재분배가 이루어지면 서민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증세를 싫어하는 자본 측이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피케티의 설명에는 BI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본 파업에 맞서 이런 대담한 개혁을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불분명합니다.

 결국 피케티와 같은 양심적인 엘리트들이 사회 전체를 위한 제도를 톱다운방식으로 설계한다는 '법학 환상'은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본 파업을 이겨 낼 수 있는 어소시에이션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피케티가 제안하는 세제 개혁을 지지하는 운동이 애초에 어떻게 일어날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근 '반긴축파'의 이론으로 주목받는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 에도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MMT는 자국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정부는 재정적자를 확대해도 채무불이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재정적자일지라도 국가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출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MMT가 주장하는 과감한 재정지출은 정부가 최저임금으로 일자리를 마련하고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보장 프로그램'과 한 세트로 생활을 보장합니다. 이를 통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일자지를 적극 창출하면서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면 잘될까요? 적극적 재정이라 하더라도 공적 투자로 비중이 이동하여 어디에 투자할지를 정부가 결정하는 것은 자본이 여전히 싫어할 것입니다. 투자 여부의 자유로운 판단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 자본이 가진 권력의 원천이고, 그 힘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입니다.

 하지만 MMT에서 공적 투자에 의한 자본 관리는 중요합니다. 만약 화폐를 마구잡이로 뿌리는 형태가 되면 사회보장이나 친환경적 일자리뿐 아니라 군비나 불필요한 공공사업에 사용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화폐를 뿌리는 과정에서 이권이 생겨 대기업만 이득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정부의 시장개입이 커지고 탈탄소, 인권보호 등 규제를 강화할수록 자본의 반발도 거세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본이 국내 투자에서 철수하기 시작하고, 통화가치가 하락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증세나 금리인상을 통한 경기 긴축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본 파업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MMT의 경제정책에는 없습니다.

 결국 톱다운식으로 대담한 정책을 실행하려고 해도 국가가 자본 파업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어소시에이션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때 어소시에이션에 요구되는 것은 노동자들이 무엇에 투자할지, 어떻게 일할지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생산의 실권을 쥐여 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생산 영역의 개혁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과 임금노동의 힘의 균형을 바꾸는 근본적인 과제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어소시에이션을 만드는 관점이 BI에도, 피케티에게도, MMT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계급투쟁이 없는 시대에 톱다운으로 할 수 있는 정치개혁이 BI이고, 세제 개혁이고, MMT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정책이나 법의 논의가 선행되는 '법학 환상'에 갇혀 있습니다.

 이에 반해, 물상화, 어소시에이션, 계급투쟁이라는 마르크스의 독자적 관점을 이러한 정치개혁에 도입하는 것은 사고와 실천의 폭을 크게 넓혀 주며, 이러한 대담한 정책 제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p187. 상향식 사회변혁으로

 이사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는 위로부터의 설계만으로 사회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버렸습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소시에이션을 통한 탈상품화를 전략의 중심에 두는 것은 러시아혁명 이미지가 강한 20세기형 사회변혁의 비전에 큰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톱다운' 방식에서 '상향식' 으로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마르크스 자신의 혁명관 변화에서도 드러납니다. 마르크스 역시 아직 젊었던 <공산당선언>(1848년) 단계에서는 공황을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자본론>에서는 논의의 초점이 크게 달라집니다. <자본론>에서 그런 공황 대망론은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오히려 이 책의 2장과 3장에서도 보았듯이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기능 훈련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혁명의 책인데도 강조한 것은 자본주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소시에이션에 의한 개량입니다.

 이러한 강조점 변화의 배경에는 마르크스가 혁명의 어려움을 인식한 점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는 노동자의 궁핌화와 공황으로 머지않아 혁명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1848년 혁명에서 노동자 봉기는 실패로 돌아갔고 자본주의는 되살아났습니다. 1857년 시작된 공황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본주의의 끈질긴 생명력 앞에서 마르크스는 그 힘의 원천을 탐구할 필요성을 통감했습니다. 그것이 마르크스를 경제학 비판으로 이끌었고, 그 연구 성과인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낙관적인 변혁 비전을 버리고 혁명을 향한 자본주의 수정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이때 마르크스는 임금인상보다 노동시간 단축을 중시했는데, 이 역시 물상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시급을 올리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더 오래 일해 화폐를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노동자들은 해방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점점 더 화폐에 의존학 됩니다.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구 복지국가는 노동시간 단축을 체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노동시간이 주 35시간입니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 여가가 생기게 합니다. 하지만 여가가 생겨도 일요일에 모든 가게가 문을 연다면, 결국 자본주의에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식당이나 미술관 등을 제외하고 백화점, 쇼핑몰, 슈퍼마켓 등은 원칙적으로 문을 닫는 것입니다.

 가게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소비활동을 아예 할 수 없게 됩니다. '윈도쇼핑'은 일본에서 흔히 오해되듯이 돈이 없어 가게 밖에서 브랜드 상품을 구경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요일에 가게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구경하는 것입니다.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에 여가를 보내는 다른 방법이 필연적으로 생겨납니다. 카페에서 독서하고,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포츠 침에서 축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원이나 농장을 가꾸어도 좋습니다. 시위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탈상품화와 결합된 여가는 비자본주의적 활동과 능력 개발의 터전을 마련해 줍니다. 그것이 또 다른 어소시에이션의 발전과 탈상품화의 가능성을 넓혀 가는 것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리하여 가성비 사고로 회수되지 않는 사회적 부의 풍요가 양성될 수 있습니다. 

 

p201

 자연과학과 공동체를 동시에 연구하던 마르크스는 자연의 '지속가능성'과 인간 사회의 '평등'의 강력한 연관성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가 편재하면 거기에서 권력과 지배-종속 관계가 생겨나고,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에서 약탈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자원이 고갈되면, 이번에는 서로 탈취하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사회의 번영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p237

 마르크스에 따르면 변화의 담당자는 '프롤레타리아트'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하면 남성 공장 노동자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자본주의 아래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피폐해진 필수 노동자, 일자리가 불안정해서 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시장 논리, 경쟁 원리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우리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입니다.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분단을 낳고, 약자들로부터 더 빼앗아 왔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화폐가 없는 사람들을 배제합니다. 이 때문에 상품화의 힘을 약화하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주의 영역을 경제 영역에까지 확대하자고 마르크스는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의 '상품화(commodification)'에서 모든 것의 '코먼화(commonification)'로의 대전환을 향한 코뮤니즘의 투쟁입니다.

 

p240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전염병, 전쟁, 기후 위기 등 만성적 긴급사태의 시대에는 강한 국가가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이 만성적 긴급사태를 방치한다면 국가의 힘이 점점 더 강해져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나아갈 것입니다. 스탈린이나 히틀러의 재림은 물론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런 '야만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불평등과 착취, 전쟁과 폭력, 식민지지배와 노예제 등의 문제를 직시하고 국가의 폭주에 저항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가능성을 필사적으로 사고했던 사상가들의 지혜와 상상력에서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자본론>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총선 이후 인터넷 상에 한동훈의 과거 비리 의혹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총선 직후 한동훈 특검을 언급하면서 대중들이 과거 한동훈의 비리 이슈들에 대하 다시 관심을 가지면서 알고리즘 상위에 랭크되는 것 같다.

해당 이슈들이 눈에 띌 때마다 스크랩을 해두려고 한다.

 

(2022.04.22. 한동훈 위장전입 이슈)

 

(2022.05.26, 한동훈 장인 진형구 주가조작 연루 정황)

 

(2024.02.21, 한동훈 장인 진양구 파업유도 협의 구속)

 

(2021.02.18, 한동훈 처남 진동균 전직 검사 후배 여검사 성추행 징역형)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10218/105472897/1

 

檢조사단 기소한 ‘후배 성추행’ 前검사 징역 10월 확정

현직 시절 후배 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전직 검사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18일 법원 등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진모씨(44…

www.donga.com

 

https://www.amn.kr/47269

 

≪서울의 소리≫ 한동훈 처남 진동균 검사 성추행사건 누가 덮었나했더니…

 ◼ 2015년 진동균 성추행 터지자 감찰무마 후 사표수리◼ 2019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수사로 유죄 판결 받아◼ 2015년 감찰

www.amn.kr

 

(2024.03.05, 한동훈 딸 입시 비리 의혹)

https://n.news.naver.com/article/079/0003870580?cds=news_edit

 

조국 "한동훈도 예방…성사되면 따님 입시비리 물을 것"

핵심요약 ■ 방송 : 전남CBS 라디오 <시사의 창> FM 102.1/89.5(순천) (17:00~17:30) ■ 진행 : 최창민 보도팀장 ■ 제작 : 전남CBS 보도제작국, 이세영 작가 ■ 대담 : 조국혁신당 조국

n.news.naver.com

 

https://itssa.co.kr/free/3482206

 

잇싸 - 미주맘 서명운동...MIT는 Alex Han의 입학을 재고하라

MIT shouldn't be a playground for cheaters Miju Moms started this petition **To signers: your small donations to this petition are a great way to help Change.org operate smoothly, but please note that we petitioners do not request or receive any monetary

itssa.co.kr

https://www.reddit.com/r/ApplyingToCollege/comments/12xqcex/parents_petition_mit_to_revoke_admission_of_s/?rdt=36646&onetap_auto=true&one_tap=true

 

From the ApplyingToCollege community on Reddit: Parents petition MIT to revoke admission of S. Korean minister’s dau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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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0350

 

'허위스펙 혹은 천재' 한동훈 딸 MIT 합격…미주 교포들의 분노

[서울=뉴스프리존] 고승은 기자= 미국에 거주 중인 동포들이 세계 최대의 청원사이트 '체인지(change)'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영어이름 알렉스 한)의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입학 반대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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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6.14. PD수첩, 한동훈 장관 일가의 '스카이캐슬' 논란)

 

(2022.05.09. 한동훈 장녀 알렉스 한 논문 공저자는 온라인 과외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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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빨간 알사탕 하나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모시 손수건에 싸 꼬옥 품고 온 빨간 알사탕 한 알을 입에 넣어주셨다.

 "와아 달다 할무니, 겁나게 다요. 세상에서 젤 달고 맛있다아."

 볼이 불룩한 알사탕을 빨며 나는 황홀감에 소리쳤다.

 처음 먹어 본 알사탕의 단맛은 며칠이 지나도록 내 입 속과 몸 안을 굴러다녔다. 할머니가 잘 익은 대추알을  줘도, 붉은 홍시랑 몰캉한 다래알을 입에 넣어줘도 "아 거시기 알사탕 참 달고 맛있었는디라" 온통 알사탕 생각뿐이었다.

 신식 알사탕의 강렬한 단맛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혓바닥을 물들인 빨간 색소만큼이나 진득하니 나를 끌어당겼다. 

 흰 눈이 내리고 문풍지 바람이 차운 밤, 처마 아래 매달은 대바구니에서 인절미를 꺼내 화롯불에 구워 호호 불어 조청에 찍어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가 그랬다.

 "아가 맛있냐. 수수조청 맛이 어떠냐."

 "달고 맛나요, 근디요 알사탕이 더 달고 맛나요. 최고랑께요."

 문득 할머니가 침묵하는 걸 느끼며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챈 순간, 알사탕 맛을 본 이래의 내 말과 일련의 일들이 스쳐갔다.

 그랬다. 할머니는 곶감이든 떡이든 엿이든 어디선가 선물 받은 그 달고 맛난 것들을 자기 입에 넣지 않고 품고 와 내 입에 넣어주셨는데, "근디 알사탕이 더 달고 맛난디라. 그 빨간 알사탕이..." 흘린 듯이 말해왔던 나는 그만, 구수한 인절미와 달근한 수수조청을 씹으며 울먹였다.

 다른 때 같으면 "아가 울지 마라" 품에 안아주실 텐데, 울먹이는 나를 기냥 두고 구부정히 마주 앉아 아무 말도 없는 할머니가 낯설고 멀어지고, 할머니와 나 사이의 어떤 끈이 끊어져 버린 듯 아득했다.

 이윽고 할머니가 "아가, 이리 오니라" 울먹이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물그릇을 들어 마시게 했다.

 "평아,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제. 유순하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야아, 할머니, 알겠어라."

 "우리 평이는 겨울이면 동백꽃을 쪼옥 쪼옥 빰시롱 '달고 향나고 시원하게 맛나다' 했는디, 올해 동백꽃 맛은 어쩌드냐아. 나는 말이다, 아가. 네 입에 넣어줄 벼꽃도 깨꽃도 감자꽃도 아욱꽃도 녹두꽃도 오이꽃도 가지꽃도 다 이쁘고 장하고 고맙기만 하니라. 이 할무니한텐 세상에서 우리 평이가 젤 이쁘고 귀한 꽃이다만 다른 아그들도 다 나름으로 어여쁜 꽃으로 보인단다. 아가, 최고로 단 것에 홀리고 눈멀고 그 하나에만 쓸려가지 말그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 품에 꼬옥 안겼다.

 다음 해 문풍지 우는 화롯불 곁에 할무니, 우리 할무니는 아니 계셨다. 나는 돌아가신 할무니가 그리워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하얀 눈 위에 작은 내 발자국이 총총히 따라왔다.

 

 동백나무 아래 붉고 선연한 동백꽃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으스스 떨면서 언 손으로 동백꽃을 한 줌 가득 주워 쪼옥 쪼옥 빨아먹으며 눈길을 걸었다.

 "아가, 맛이 어떠하냐?"

 "순하고 맑고 시려요. 달고 향그럽고 맛나요, 할무니."

 

p54

 성서는 복음서라는데, 나에게 성서는 울음의 책이었다. 호세 신부님과 함께 더듬더듬 성서를 읽어나갈 때 내 가슴에 박히는 건 눈물과 탄식과 수난과 죽음이었다. 그랬다. 세상의 큰 울음을 통하지 않고는 복음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울음이야말로 복음이었다. 눈물이야말로 은총이었다.

 가난하고 불운하고 슬픈 눈을 가진 예수. 그는 고난받으면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사랑이 처음이자 전부라고,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었다. 애통하고 분노하고 울면서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다 이루었다' 기꺼이 죽어간 예수가 좋았고, 눈물의 사제인 호세 신부님이 좋았다.

 

p57. 빗속의 등불들

 가을비를 앞두고 다들 벼 수확에 쫓겨서 부지깽이도 나설 만큼 분주한 때였다.

 일손을 구하지 못한 어머니는 혼자 겨우 벼를 베어 논바닥에 뉘어놓고는 묶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급히 저녁을 지어 먹고 다시 논으로 나가 볏단을 묶어 세우는데, 꾸물거리는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애써 베어 둔 벼가 빗물에 잠겨 들고 있었다. 탈진한 어머니는 벼를 묶어 세우느라 안간힘이었다.

 들녘은 어둡고 빗줄기는 거세고 발은 푹푹 빠지고 나락은 젖어 무겁기만 했다. 애가 탄 나는 어찌해 볼라고 볏단을 붙들고 힘을 써 봤으나 이렇게 작고 약한 내가 원망스럽고 아부지 없는 서러움이 차갑게 파고들었다.

 그때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일렁였다. 불빛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자 나는 도깨비불인가, 더럭 겁이 났다. 어둠 속에 점점 커지는 불빛 사이로 "가스파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쏟아지는 빗발을 뚫고 등불과 낫을 든 흰옷의 행렬이 보였다. 동강공소에 다니는 저 건너 마을 형 누나들과 어른들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친척들도 이런저런 나름의 일들로 도울 여력이 없었는데,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신자들이 비가 쏟아지자 서로 소식을 들리고 의견을 모아 여기 먼 마을까지 나선 것이다.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젊은 엄니가 이 작은 논 세마지기에 다섯 아이 생계를 걸고 사는 걸 알기에, 자기들 수확을 뒤로 한 채 십리 밤길을 달려온 것이다.

 어머니와 신자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인사를 나누고 일렁이는 횃불 아래 비에 젖은 얼굴들이 빛나고 있었다.

 "하이고 장해라. 엄니랑 벼를 다 베어놓았구나이."

 그러더니 논바닥의 나락을 세워 짚으로 묶고, 볏단을 지고 논두렁에다 옮겨 둥글게 쌓고, 함께 성가를 부르며 날랜 손길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었다.

 차가운 빗속에 몸에 돋는 소름과 하얀 입김, 가슴을 데우는 뜨거운 온기, 어둠 속에 일렁이는 등불과 노동의 춤사위 같은 긴 그림자, 빗소리를 타고 울리는 성가 소리...

 일을 마치고 어두운 밤길로 점점이 멀어져 가는 등불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나는 빗줄기 속에서 성호를 그었다.

 

p75. 나의 첫 요리

 나의 첫 번째 요리는 여덟 살 때, 그러니까 그날 정오에, 느닷없이 해버렸다.

 모내기를 앞두고서 동네 일손을 구해 우리 논에 써레질을 하는 날이었다.

 "일손은 잘 멕여아지야. 작은아들, 오늘 나 좀 도와주시제."

 엄니가 뜨끈한 가마솥에 쌀밥을 안쳐두고 매콤새콤한 서대회 감을 손질해 살강(선반)에 올려두는 사이, 나는 동강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다 찬물에 담가두고, 갯벌 바다가 어부네에 가서 갓 잡은 커다란 갯장어 두 마리를 대바구니에 담아  끙끙 이고 왔다.

 "애썻다. 인자 아궁이에 불을 지피그라. 불티 안 날리게 은근히 때야 쓴다이."

 "걱정 마시씨요. 싸릿가지랑 솔잎으로만 곱다시 불 땔께라."

 엄니는 부뚜막 위에 된장 한 그릇, 조선파 한 다발, 어슷이 썬 무우, 여린 호박잎이랑 들깨 순이랑 토란 줄기, 절구에 굵게 빻은 고춧가루랑 마늘이랑 생강, 부엌 시루에서 기른 숙주 한 바구니를 가지런히 준비해 두고선 큰 도마를 꺼내 내 다리만큼이나 굵은 갯장어를 다듬고 토막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갯장어가 꿀틀, 한순간에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엄니의 손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몸서리가 치고 난 얼어붙어 버렸다.

 으음, 엄니가 신음을 토하더니 한참이나 감은 눈을 번쩍 뜨고 작으나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평아, 정신 차리자. 바가지에 물을 떠라. 여기 손에 부어라. 잘혔다. 방에 가 횟대에 걸어둔 옷 내오니라. 이 치마랑 저고리 벗기고 입혀라. 되었다."

 "엄니.... 얼굴에 피..."

 나는 엄니가 쓴 머릿수건을 풀어 후다닥 물에 적셔 이마와 볼에 튄 피를 닦았다. 엄니 얼굴빛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파랗게 떨려 더럭 겁이 났다. 엄니는 피 흐르는 손을 감싸 위로 치켜든 채 우뚝 서너디 말했다.

 "평아, 내 말 잘 들어라. 물이 끓으면 이 장어를 넣어라. 솥뚜껑이 들썩이고 김이 오르면 여그 된장과 파를 넣고 호박잎과 야채를 넣어라. 마지막에 고춧가루랑 양념을 넣어라. 간을 잘 잡아야 쓴다. 서대회는 고루 잘 무치고 막걸리 식초는 논에 가져가서 마지막에 넣어라. 알겄냐. 다들 일 나갔을 테니 논밭에 가서 작은 엄니나 아랫집 순덕이 누나를 찾아라. 엄니가 급한 일로 출타했다 허고 늦지 않게 일손들 밥 내가그라. 알았지야, 평아, 해낼 수 있겄지야?"

 나는 아직 부들부들 떰시롱 애써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았어라, 다 해낼께라. 근디 엄니 혼자 가실라고라..."

 엄니는 팔꿈치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움켜쥔 채 날랜 걸음으로 마당을 질러 멀리 떨어진 면 소재 의원으로 가는 것이었다.

 혼자 남겨진 나는 겁에 질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귓속에서 잉잉잉 벌이 날고 가슴에 우두두 말이 달리고 엄니의 피 묻은 얼굴만 아른거렸다. 나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시고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타닥타닥 가마솥이 끓을 때, 엄니가 불러준 순서대로 기억을 불러내며 장어 요리를 시작했다.

 "하이고 하느님, 울 엄니 살려주씨요. 울 엄니가 안 불쌍하요. 아부지 델꼬 가 불더니 울 엄니까지 뭔 죄다요. 좀 살려주시씨요."

 울며 기도하며 엄니가 맡긴 요리를 마쳤다. 그러고는 숨이 차도록 달려나가 아랫집 순덕이 누나를 찾았다.

 "누나 얼러 씼으씨요. 바쁘요이."

 나는 논흙투성이인 누나에게 두레박 물을 막 부어주며 재촉했다. 부엌으로 와서 국 맛을 본 누나가 둥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옴마야, 간이 딱 맞네. 맛나게 끓였네잉. 엄니가 한 거보다 평이가 더 맛있게 해부렸네이."

 누나는 속도 모르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밥 늦겄소. 싸게싸게 챙기잔께라."

 누나와 나는 고봉밥을 담고 김치를 썰고 국통과 그릇을 날래게 챙겨 논가 키 큰 버드나무 아래 밥을 차리고 일손들을 불렀다.

"엄니는 으디 가고 평이랑 순덕이냐?"
"아 공소에 신부님이... 그 눈 파란 신부님이 급하게 불러서라."

 나는 애써 둘러댔다.

 "하야, 귀헌 장어국이네. 나가 오늘 뭔 복이다냐아."
 "하이고야 맛나네. 간도 딱 맞고 입에 착착 감기네잉."
 "흐미, 요 새콤매콤 달근한 서대회 맛 좀 보소. 씨원한 동강 막걸리랑. 이 맛에 나가 여그 살제잉. 아 행복지다."
 "하여튼 니 엄니 음식 솜씨는 천하제일이여."

 나는 엄니가 빈 자리에 마치 내가 우리 집안의 가장이나 되는 양 뒷짐을 지고 힘을 담아 말을 했다.

 "맛나게들 많이 많이 드시씨요. 우리 논에 정성 좀 많이 들여 주씨요잉."

 어른들이 하하하 웃으면서 나를 놀리고 순덕이 누나도 "아따아따, 쫌 있으면 장가 보내달라겄다야" 호호호 웃음을 날렸다.

 나는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마치고 엄니를 기다렸다. 해가 저물녘에야 엄니가 핼쓱한 얼굴로 작아져서 돌아왔다. 기름 떨어진 호롱불처럼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평아, 이른 대로 했느냐?"
 "예, 걱정 마씨요. 다 잘 되었써라."

 나는 잽싸게 방으로 달려가 요를 펴고 베개를 놓았다. 그리고 핏자국이 말라붙은 옷저고리를 벗겨주었다. 자리에 누운 엄니가 눈을 감고 신음하더니 하얗게 마른 입술로 더듬거렸다.

 "손은 붙였다. 스무 바늘쯤 꿰맸다. 피를 많이 흘려 도중에 어질했으나 다 잘되었다. 감사하다. 오 하느님, 성모님..." 그러고는 스르르 잠에 들었다.

 나는 살금살금 들락거리며 내가 아파 누웠을 때 엄니가 해준 것들을 떠올리며 수건을 적셔 이마의 땀을 닦고 따끈한 물로 발을 닦고 팔 자루를 데워 배 위에 얹었다. 그리고 엄니의 낡은 기도문을 펼쳐 읽으며 울먹였다.

 엄니가 깨어났을 때 솥 안 더운 물 위에 놓아둔 장어국과 밥을 내왔다. 벽에 기대앉아 상을 받은 엄니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많이 컸네..."하셨다. 나는 머쓱한 데다 시린 마음이 들킬세라 "아따 얼른 수저나 뜨씨요" 해버렸다.

 엄니는 따끈한 장어국을 맛보더니, 밥을 말더니, 점점 빠르게 드시는 거였다.

 "맛나네, 잘했네. 아들 밥상을 다 받아보네... 속없이 맛있네."

 밥을 다 드신 엄니는 또 잠이 들었다.

 울 엄니가 크게 베인 손을 움켜쥐고 핏방울 떨구며 홀로 먼 황톳길을 걸어가던 꿈같이 어질하고 절박했던 그날 이후, 나에게 요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어느 날, 준비도 연습도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 울며 기도하며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주어지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꼭 해내야만 하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그날 정오에 시작되었다.

 생각할 때마다 아뜩하고 목이 메이는 나의 첫 요리, 내 인생의 첫 요리.

 

 

… The road is long
With many a winding turn
That leads us to who knows where, who knows where

길고 긴 여정 앞에,
많은 굴곡들이 있을테지만,
그 길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무도 모르죠.


But I'm strong
Strong enough to carry him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하지만 나는 강해요.
그와 함께 갈만큼 강하죠.
그는 (나에게) 버겁지 않아요, 그는 나의 형제니까요.


… So on we go
His welfare is of my concern
No burden is he to bear
We'll get there

그렇게 우리는 함께 가죠.
나는 그의 행복을 바란답니다.
그는 (내가) 참아내야 할 짐이 아니에요.
우리는 (함께) 그곳에 다다를 거에요


… For I know
He would not encumber me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나는 알아요.
그가 내게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지 않으리란 걸.
그는 (나에게) 버겁지 않아요, 그는 나의 형제니까요.


… If I'm laden at all
I'm laden with sadness
That everyone's heart
Isn't filled with the gladness
Of love for one another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단 하나는,
내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차는 것 뿐이에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서로에 대한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차지 않아서요.


… It's a long, long road
From which there is no return
While we're on the way to there
Why not share?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멀고 먼 길 위에서,
우리는 왜 서로 함께 나누지 않을까요?


… And the load
Doesn't weigh me down at all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그 길은 조금도 나에게 짐이 되지 앟아요.
그는 나에게 조금도 버겁지 않아요, 그는 나의 형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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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에 발표된 이 곡은 처음에 Kelly Gordon에 의해 불려졌고, 이후에 The Hollies에 의해 불려져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다. 가사도 그렇고 가수의 이름에서도 가스펠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이 곡의 제목인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의 유례는 1884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출간된 '예수 우화(The Parables of Jesus)'라는 책에 나온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어떤 어린 소녀가 덩치가 큰 아기를 업고 가는 모습을 본 누군가, "아이야 힘들지 않니?"라고 물어보자, 놀랍게도 그 소녀는 "아니에요, 얘는 무겁지 않아요, 얘는 내 동생인걸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후 유럽을 거쳐 미국에까지 계속 전승, 변형되어 왔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대공황과 2차 대전 이후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류의 도시 우화들이 이어져왔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319161600001?input=1195m

 

민주 '정봉주 낙마' 서울 강북을 경선 박용진 탈락…조수진 공천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더불어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 재선 박용진 의원이 19일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 취소로 공석이 된 자신의 지역...

www.yna.co.kr

(발단, 2024.03.19) 정봉주 전 의원이 '목함지뢰' 발언으로 이슈가 되면서 민주당에서 강북을 정봉주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고, 이로 인해 강북을에서 박용진과 조수진의 경선이 진행됨. 이 경선에서 조수진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어서 강북을 후보가 됨.

https://www.yna.co.kr/view/AKR20240322003100001?input=1195m 

 

'성폭력 피의자 변호' 논란 민주 강북을 조수진, 후보직 사퇴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현역 박용진 의원을 꺾고 4·10 총선 강북을 후보로 결정된 조수진 변호사가 22일 후보...

www.yna.co.kr

(진행. 2024.03.22) 경선에서 조수진 후보가 결정되자마자, 보수 언론에서 조수진 변호사가 '성폭력 피의자 변호' 이력을 문제삼고 이를 물어뜯기 시작. 후보가 된 후 3일간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에서 수백건의 의혹성 기사를 쏟아내며 집중 포화. 이에 조수진 변호사는 민주당에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서 후보를 사퇴함. 민주당은 후보 등록 마감이 임박해서 재경선을 하지 못하고 당직자인 한민수를 전략공천하여 강북을의 최종 후보는 한민수 후보로 결정됨.

 

https://www.news1.kr/articles/?5359028

 

[단독]민주, '아동 성폭행범 변론' 조수진 사퇴 촉구 연서명…동참 행렬 후끈

(서울=뉴스1) 윤다혜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아동 성폭행범 변론' 논란에 휩싸인 조수진 변호사(서울 강북구을 후보)의 공천 취소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2일

www.news1.kr

조수진 변호사가 후보를 사퇴하게 된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민주당 내부에서 여성당원이 조수진의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던 사실이다.

이 연판장을 돌렸던 이는 이재정 여성리더십 센터 부소장이라는 사람이다. 수박들이 어느 정도 축출된 민주당에서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소위 페미들인데 이 세력은 민주당의 암덩어리들이다. 지난 대선때 이재명에게 20대 남성들이 등을 돌린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페미 세력들의 탓이 크다.

 

 

https://www.seoul.co.kr/news/politics/national-assembly-election-2024/2024/04/04/20240404500158?wlog_tag3=naver

 

아동 성폭행범 변호 논란 조수진 “아버지 가해자 주장한 적 없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후보로 나섰다가 물러난 조수진 변호사가 과거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가 성폭행당해 성병에 걸린 사건에서 피해자의 아버지로부터 당했을 수도 있다고 변호했다는

www.seoul.co.kr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586660_36438.html

 

"논란의 변론, 제 발언 아냐" 조수진 반박‥일부 언론 '정정보도'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후보로 나섰다가 '성범죄 변호' 논란 등이 거세지자 사퇴한 조수진 변호사.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가장 큰 논란이 됐던 부분은 '조 변호사가 아동...

imnews.imbc.com

후보를 사퇴한 조수진 변호사는 약 2주의 시간동안 그간 언론에 보도된 의혹성 기사의 팩트체크 및 반박자료들을 준비하고 가짜뉴스등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예고. 언론사에는 정정보도를 요구함.

 

https://www.etoday.co.kr/news/view/2347310

 

[정정보도문] 조수진 전 민주당 강북을 후보 관련 보도를 바로잡습니다

본지는 지난 3월 21일 온라인에 라는 제목으로 “조 변호사는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A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은 체육관 관장

www.etoday.co.kr

조수진 변호사의 강경대응에 겁먹은 꼴보수의 조무래기 언론 하나가 마지못해 정정보도를 함.

 

(조수진 변호사는 현재 해당 이슈에 대해 법정 대응 준비 중)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후보(경기 수원정)가 과거에 한 말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다.

논란이 되는 발언 내용은 하기와 같다.

김 후보는 2022년 8월 유튜브 ‘김용민TV’에서 “전쟁에 임해서 나라에 보답한다며 종군 위안부를 보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이라며 “미 군정 시기에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 장교에게 성상납시키고 그랬다”고 발언했다.

 

김활란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했던 인물로 아래 사진처럼 생긴 인물이며, 이화여대 내에 동상도 있다.

 

 

김활란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대표적 친일매국노의 한 사람이다. 특히 태평양 전쟁시 조선여성을 정신대(위안부)로 모집하여 차출하는데 앞장 선 인물이다.

김활란은 야마기 가쓰란(天城活蘭)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1941년 12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주최의 ‘임전보국단 결전 부인대회’에서 여성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였다. 1942년 1월 조선총독부는 조선임전보국단 산하에 부인대를 신설하여 여성 동원을 강제하였는데 김활란은 지도위원으로 이 단체에 참여하였다. 일제가 전쟁에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하여 1942년 징병제 실시를 발표하였을 때 김활란은 징병제를 맞이하는 조선 여성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다.

...국가를 위해 즐겁게 생명을 바친다는 정신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내 남편도 내 아들도 물론 국가에 속한 것이다. 국가에 속한 남편이나 아들 또한 내 생명이 국가에서 요구될 때 쓰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출처: 「여성의 무장」, 『대동아(大東亞)』, 1942년 3월 발행 )

이러한 친일, 전쟁협력의 와중에 김활란은 1939년 이화여전의 교장이 되었다.

 

해방후 김활란은 미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이화여전을 이화여자대학교로 승격시키고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다.

 

1995년 중앙일보에서 아래와 같은 기사를 게재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003746?fbclid=IwAR0eshfbjq24IKLVlbyssI82mzbIKztXrZdLSmlB4Z9E5POd9ntGcXMIs5E_aem_ASEdt-sbt7dJG6IbcZSjZB5nDaR_bYxDU2gLi8bHpnaFpmEXwUeoS3q3IoBi6GQ2_ABP40MzuXLmjPhHgDKPL3TI#home

 

이승만정부 외교사절.미군등에 "樂浪클럽"이용 정보빼냈다 | 중앙일보

정부 수립 직후인 48년무렵부터 6.25가 끝나가는 52년까지 한국의 여대(女大)출신 여성들로 조직돼 주한외교사절.미국 고위관리.미군 고위장성 등을 파티에 초대,접대하고 정보를 빼냈던 「낙랑(

www.joongang.co.kr

 

일명 '모윤숙 파일'이라고 하는 미국 정부 기밀문서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는 한국의 여대생들이 미군 고위장성들에게 정보를 빼내기 위한 목적등으로 접대부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당시 모윤숙은 이화여자대학의 강사였다. 그리고 이때 모집된 여대생들에게 외국인 접대의 매너를 교육했던 이가 총장인 김활란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모윤숙.

 

그러면 이때 모집된 여대생들이 어느 대학 학생이었을까? 합리적으로 이화여자대학생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준혁 후보가 여론에 밀려 사과발언을 했지만, 쌩판 허위사실을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추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comment/047/0002428731?sid=100

 

비밀해제된 문서에 담긴 김활란과 낙랑클럽 [김종성의 '히, 스토리']

▲ 김활란 ⓒ 위키미디어 공용 경기도 수원정에 출마한 민주당 김준혁 국회의원 후보자가 초대 이화여대 총장인 김활란에 관해 언급한 것이 논란을 일으켰다. 김 후보는 2022년 8월 '김용민 TV'에

n.news.naver.com

오늘 오마이에서 이와 관련된 기사가 나왔다.

 

이동형 작가가 이에 대해 한마디 했다.

 

(4.8. 이화인 공동 성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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