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를 촉발시킨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이 2가지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개발한 초창기의 이유는 단순한 작업 혹은 인간이 하기에 위험한 작업에 로봇과 인공지능을 사용한다는 작업의 카테고리상 인간이 하기에 어렵고 힘든 일에 적용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해당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젠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고도로 복잡한 작업의 수행이 가능해지면서, 각 분야별로 인간을 대체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상향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게, A.I가 탑재된 로봇을 통해 인간을 대체하게 되면, 그 다음은?


블레이드 런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와 같은 아주 음울한 미래를 연상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로봇으로 대체한 미래를 생각해보면 그리 유쾌하진 않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거리를 보면, 로봇 청소부, 로봇 운전사, 로봇 경비 등등등. 혹시라도 회사에 가게 되면 웬만한 일은 로봇이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CEO정도와 그 비서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임원진 몇 명만 있으면 구글과 삼성같은 회사는 일년에 꾸준히 몇 십조의 매출과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하고 힘든, 도전정신이 필요한 모든 일들은 로봇의 차지가 될 것이고, 인간은 몇 년전 본 헐리웃드 애니메이션처럼 로봇의 시중을 받으며 살만 피둥피둥 찌는 배부른 돼지가 되 있을지도 모른다.


SF에 많이 등장하듯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로봇에게 지능이 구현되어 생물학적 DNA에 의한 진화에서 전자와 네트워크를 통한 진화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면 인간이란 종은 신인류(지능을 탑재한 메카닉)로 퓨전되든지 아니면 신인류에게 말살되든지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리라는 예상은 지구의 생명의 역사를 돌아볼 때 전혀 허황된 생각이라 할 수 없다.


아마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하에서 사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지구 역사 45억년동안 그 어떤 생물도 가져보지 못한 먹이사슬의 범접할 수 없는 최상층에 인간을 올려놓았지만, 이젠 그 시스템 자체가 인간의 생존을 위한다기보다는 시스템 자체의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협약이 경제적 문제로 인해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역시 위험요소를 안고 있지만 원자력 발전은 지속되고 있고, 지구를 100번 이상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원자탄 및 수소탄, 그리고 지구인 전체를 한방에 절멸할 수 있는 생화학 무기등이 개발되고 제조되는 바탕에는 자본주의의 힘이 알게 모르게 숨겨져있다.


부모는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밤을 새워 일하고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사고, 아이에게는 좋은 장난감과 좋은 책, 그리고 좋은 학교를 보내준다. 하지만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부모의 따뜻한 품과, 관심어린 대화, 가족이 모여 저녁 한끼를 먹는 정겨움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배려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내가 갈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줄 로봇 운전사라기보다는 내 하소연을 들어줄 경륜이 있는 운전사일수도 있고, 음식점에서 내가 시킨 음식만을 정확히 날라다 주는 로봇 메이드보다는 반쯤 남은 소주 한병을 슬며시 건네주는 투박한 함바집 아줌마일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 라기보다는 2017년과 다가올 1년, 1년후의 근미래의 사회와 과학등의 발전 속도는 이제 가늠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속도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초고속 롤러코스터와 같은 압도적이고 회피불가능해보이는 기술의 발전에 대해 인간과 인류의 미래의 행복을 위한 합목적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따위는 일견 사치로 보일 만큼 집단간, 국가간의 사활을 건 각축은 치열하다.


봉준호의 설국열차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열차가 종국에 정지한 후 열차를 나온 2명의 여자아이. 그러한 미래를 위해 쎄가 빠지게 인류가 달려가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우울하고 쌔드(sad)한 개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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