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세돌과의 대국 이후, 1년만에 중국 기사 커제와 알파고간의 대국이 최근에 있었다. 특히 마지막 3국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커제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1975년생인 이창호는 1984년에 당대 최고의 현역기사였던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되어 고향인 전주를 떠나 연희동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내제자가 된 이후 이창호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면서 1990년에 스승과의 3번째(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도전기에서 3:2로 스승의 제국(당시 조훈현은 국내의 거의 모든 기전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을 허물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창호와 조훈현의 공식기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은 198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최고위전 결승 1국이다. 이 시합에서 당시 14살의 이창호는 불과 50여수만에 돌을 던졌다. 당시의 대국상황을 볼때 이창호가 약간 포석에서 밀리긴 했으나 스승 조훈현에 비해 그렇게 비세는 아니었기때문에 돌을 던질 정도는 아니었다라는 것이 당시 대국을 검토하던 다른 전문기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당시의 대국 현장에 있던 원로 기사의 "창호가 스승에게 첫 공식대국을 둔 문안인사가 아니었겠나?"라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 조훈현 9단은 이창호와의 최고위전뿐 아니라 다른 타이틀 방어를 위해 연일 대국을 이어가고 있던 때였으며, 당시 몸살감기가 심하여 컨디션도 안좋던 시절이었다. 어린 이창호는 그런 스승의 건강이 염려스럽기도 하고, 스승과의 첫번째 공식대국이기도 한 것을 고려해 50 수 정도의 지도만 받고 스승에게 예를 갖추었던 것이다.

인간을 교육함에 있어서, 재능과 기술보다도 인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동양의 교육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아무리 재능과 기술이 뛰어나도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끈기, 성실, 존중, 명예와 같은 인성의 부분이 훨씬 삶에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대목이다.

이후 1990년 이창호가 스승에게 첫 타이틀전을 획득했을때 복기하는 현장의 모습은 이랬다. 피곤한 얼굴로 장미 담배를 힘없이 물고 바둑판 위를 손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면서 혀를 차는 조훈현 9단앞에서, 이창호는 마치 죄를 지은 어린이마냥 무릎을 꿇고 귀가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이창호가 패자로 착각할만한 모습이었다.

인간다움이란 것은 언뜻 이성적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기고서도 기쁘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졌지만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대견하기도 한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들. 사실상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1+1=2라는 이성적인 결론보다는 1+1=3이되고 10이 되는 비이성적인 대응이 훨씬 중요할때가 많은 법이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이성적인 틀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이리도 복잡다단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커제에게 무뚝뚝하게 오로지 착실하고 비정하게 이기는 수만을 뚜벅뚜벅 두어가는 알파고를 보면서,
아! A.I가 인간을 알아가려면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인간을 닮는 것이 A.I의 완성이라 한다면, 한방울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때야말로 A.I가 완성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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