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제시하는 대한민국이 경제적 민주주의로 가는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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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

 불환화폐(신용화페)라는 (중앙)은행권은 금 대신 정부가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채권)이다. 왕이나 오늘날의 대통령 등이 아닌 정부의 경제력이 보증하는 것이다. 국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정부는 마르지 않는 샘에 해당하는 조세권이라는 경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 대신 사회 전체 생산물 중 사회몫에 해당하는 생산물이 금의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국민이 함께 만든 생산물로 불환화폐의 가치를 보증하여 (보유금의 양에 의해 제한되었던) 은행에게 돈놀이의 장애물을 제거해주었기에 (영란등 중앙)은행의 설립 목표를 '공공선과 인민의 이익The public Good and benefit of our People 촉진'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처럼 불환화폐의 가치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생산 중 사회몫으로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는(생계에 필요한 최소소득을 사회소득으로 배분받을 권리가 있듯이) 최소한의 신용 이용에 대한 기본권리를 갖는다.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금융' 개념은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모두 함께 불환화폐 가치를 보증했기에 불환화폐의 혜택인 이른바 '사회금융' 혹은 '공공금융'을 누릴 권리를 갖는 것이다.

 

<정부 부채는 이자만 갚아나가도 괜찮은 이유 - 근거, 사례 및 설명?

p41.

 한국은행법을 보면 제1장 총칙이 시작되기 전에 해당 기관을 관할하는 상위 정부조직이 표기된다. 한국은행법에는 '기획재정부(거시정책과)'가 표기되어 있고 해당 기관의 전화번호(044-215-2831)도 옆에 기재되어 있다. 이것은 정부 조직법 가운데 행정각부의 역할을 규정한 제4장의 (기획재정부 역할을 규정한) 27조 ①항에서 화폐에 관한 사무를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기획재정부장관은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수립, 경제/재정정책의 수립/총괄/조정. 예산/기금의 편성/집행/성과관리/화폐/외환/국고/정부회계/내국세제/관세/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경제협력/국유재산/민간투자 및 국가채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즉 화폐 발행의 원천적 권한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부라는 이야기이다.

 한국은행법 제5절은 정부 및 정부대행기관과의 업무를 설정하고 있는데 정부와의 업무를 72조부터 75조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 대해 돈을 빌려주는 업무를 규정한 제75조(대정부 여신 등)의 ①항에서 "한국은행은 정부에 대하여 당좌대출 또는 그 밖의 형식의 여신을 할 수 있으며,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③항에서 "제1항에 따른 여신에 대한 이율이나 그 밖의 조건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다"고 되어 있다. 즉 한국은행은 정부가 원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돈을 빌려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공통 요소이다.

 

p43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국민이 부여한 임무(예:물가안정)를 정치적 잣대에 휘둘리지 말고 수행하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p44

 세계에서 정부 부채가 가장 많은 일본의 경우 <그림1>에 따르면 1990회계년도의 일본 정부가 상환해야 할 국채 규모는 166조 엔이고 이자부담액은 10.8조 엔이었다.

https://www.mof.go.jp/english/policy/budget/budget/fy2023/02.pdf

<그림1. 위 링크 22페이지>

 

2010회계년도에는 각각 636조 엔과 7.9조 엔이었다. 그리고 2022회계년도에는 각각 1,043조 엔과 7.3조 엔으로 정부 부채는 급증했는데 이자 부담액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1990년과 2022년 사시에 정부가 상환해야 할 국채 규모는 877조 엔이나 증가했는데 이자 부담액은 오히려 3.5조 엔이 줄어든 것이다. 국채 평균 조달 금리가 6.1%에서 0.8%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IMF <글로벌 부채 보고서Global Debt Monitor>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일본의 중앙정부 부채가 214.27%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견디는 이유 중 하나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엔화가 준기축통화라서가 아니라 국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오히려 줄어들어 재정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는 일본이 인플레이션과 엔저 속에서도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즉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어떨까? <그림2>에서 보듯이, 2011~2021년의 10년간 국고채 발행 잔액은 340.1조 원에서 843.7조 원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자 부담액은 13.5조 원에서 15.1조 원으로 12%도 증가하지 않았다. 

일본처럼 초저금리는 아니지만 한국도 조달금리가 낮아진 것은 마찬가지이다. 세계적 인플레와 금리 인상에 따라 조달금리가 다시 3%대로 올라간 2022년의 경우 국고채에 대한 이자 부담액이 약 30조 원으로 2021년에 비해 약 2배로 증가했다. 이처럼 정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정부 채무의 절대 규모보다 이자율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는다.

 물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외국자본의 갑작스러운 유출에 따른 충격도 고려해야만 한다. 국고채를 매각하고 철수할 때 환율 급등을 포함한 외환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기준 외국인은 219.5조 원 규모의 국고체를 보유하고 있다. '1달러=1,300원'을 기준으로 할 때 약 1,688억 달러 규모에 해당한다. 참고로 일본은 2022년 12월 말 기준 외국인이 약 165.3조 엔 규모의 일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1달러=140엔'을 기준으로 할 때 약 1조 1,800억 달러 규모에 해당한다.

 2023년 12월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201억 달러,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 2,950억 달러 정도이니 한국이 상대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엔화 하락을 막으려면 달러를 매각하여 엔화를 사들여야 한느데 외환보유액 사정으로 달러를 적극적으로 시장에 풀기 어렵다. 금리도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달러 투입도 어렵다 보니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정부 채무는 기본적으로 이자를 상환할 수 있으면 지속 가능하다. 이자 지급액은 세금 등 정부 수입에 달려 있고, 정부 수입은 조세율이 변하지 않을 경우 경제성장률에 크게 의존하기에 정부 채무의 지속 가능성을 따질 때 정부의 자금조달 금리(국채 발행 이자율)와 성장률을 비교하는 이유이다. 물론, 외국인의 갑작스러운 자금 유출을 대비해 외국인 보유 규모를 고려한 외환 방어벽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크루그먼이나 아베 등이 정부 채무의 원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이유는 맞는 말이다. 이는 영란은행 설립 과정에서 보듯이 중앙은행의 설립 이유가 정부 재정 공급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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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1. 국가채무는 원금의 상환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이자상환능력을 통해 국채를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2. 국가채무가 자국통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외국인이 투자한 금액은 외국인이 투자를 외수할 경우 언제든지 외환(보통 달러)으로 유출될 수 있으므로 국가채무 중 외국인 투자분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외환보유고 방어벽이 필요하다.

3. 민간채무가 과도하여 소비위축등 경제적 패닉이 발생할 때는 국가가 재정확대를 통해 민간채무를 흡수하여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면서 민간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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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1원 1표 원리, 즉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만 남고, 사회는 극단적 불평등을 향해 치닫고 결국 붕괴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최소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자본주의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기본적으로 불평등 심화의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p55

 '돈의 흐름'을 의미하는 금융을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사회는 순식간에 야만화되고 그런 사회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불환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른바 화폐경제 시대의 경제 문제는 '돈의 배분' 문제로 귀착한다. 함게 생산한 생산물은 대부분 화폐로 표현되고, 그 생산물의 배분은 결국 돈의 배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생산한 사회적 생산의 화폐적 배분을 어떻게 시장에만 맡길 수 있다는 말인가.

 공공금융의 복원은 좌파적이거나 진보적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시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출발했고, 양축이 균형을 맞추었기에 번영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근대 사회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공공영역에서 금융을 분리하여 시장(민간)금융 중심으로 바꾼 것이 (사회 전체를 금융 자본의 논리로 재구성한) 이른바 금융화였고,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공공영역의 축소로 이어졌다. 재정 지출 최소주의, 감세, 작은 정부,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불평등의 심화 및 가계 부채와 정부 채무의 급증 등이 그 산물들이다.

 

p59

 은행은 불환화폐를 도입 및 사용할 때부터 엄청난 특혜를 입었다. 게다가 가장 낮은 금리(비용)의 불환화폐를 이용한다. 그런데 그 불환화폐가 통용될 수 있도록 실질적 가치를 공동 보증한 일반 납세자 국민은,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층은 중앙은행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공공선과 모든 인민의 이익을 촉진시킨다"는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이 사문화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실종된 결과이다.

 

p60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유명하여 한국 부유층의 롤모델로 불리는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인의 선의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양란 후 삼남(三南 : 충청,경사,전라도의 총칭)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인 1671년, 경주 최부자 최국선은 곳간을 헐어 모든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고, 헛벗은 이에게는 옷을 지어 입히도록 했다. 경주 부자 최국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들에게 서궤 서랍에 있는 담보서약 문서를 모두 가지고 오게 한 후 "돈을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없더라도 갚을 것이요, 못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있어도 여전히 못 갚을 것이다. 이런 담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겠느냐. 땅이나 집문서들은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우라"고 했다. 오늘날 은행금융 자본이라면 죽음과 절망에 놓여 있는 없는 사람을 상대로 부를 엄청나게 증식할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경주 최부자 집이 10여 대 300년 동안 만석군의 부를 현명하게 지켜내며 어려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게다가 조선 말기 다산 정약용 등 많은 토지개혁 사상가들이 그렇게 노력을 기울였ㅈ만 조선은 폭동과 민란과 농민전쟁 등을 피할 수 없었고, 끝내 망국의 길을 가지 않았는가.

 

p71

 공공금융의 해체로 재벌 자본에 더해 '월가 자본의 아바타인 금융 자본'이 시장 권력을 더욱 공공화했다. 돈의 힘은 사람들을 욕망의 포로로 만들고, 민주주의가 고개를 들 때마다 무참히 짓밟았다. 돈의 힘이 통제되지 않는 한, 정치는 돈의 힘에 좌우되고, 민주주의의 자리는 금권 과두정이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금융은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에 사회를 구성하는 민주주의와 시장 중 민주주의가 죽으면 시장만 남게 되고, 시장만 남은 사회는 죽어갈 수밖에 없다.

 

p73

 공공금융의 사망은 대한민국을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으로 변화시켰다. 재벌 자본의 건설회사와 금융 자본의 부동산 금융이 결합한 산물이었다. 공공선과 국민 이익의 촉진은 뒤로 밀려났다. 그 결과가 세습성이 강한 부동산자산 중심 경제 구조의 등장이었다. 2000년대 20년(2001~2021년)간 국내  GDP는 약 1,373조 원 증가한 반면 국내 부동산자산은 이보다 약 9배 많은 1경 1,845조 원 증가했다. 가계로 국한해도 마찬가지이다. 가계의 처분가능 소득이 706조 원 증가하는 동안 가계 부동산 자산은 약 10배 많은 6,969조 원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를 스스로를 보수라 지칭하는 보수정권에서나 진짜(?) 보수정권인 민주당 정권에서나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시절 글로벌 유동성의 폭발과 맞물려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더욱 고착화됐다. 참고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 멕시코, 튀르키예, 이란 다음으로 외화 신용이 많은 나라이다. 경제 성장률은 2001~2007년간(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연평균 7.5%에서 2008~2016년간(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연평균 5.3%, 그리고 다시 2017~2021년간(문재인 정부 기간) 연평균 3.6%로 하락하는 동안 부동산자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14.0%, 5.0%, 8.3%로 민주당 정권에서 부동산자산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크게 앞질렀다. 가계 소득과 부동산자산을 비교해도 차이가 없다. 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6.1% → 4.9% → 3.7%로 하락했지만 부동산자산 증가율은 연평균 14.4% → 4.5% → 8.7%로 소득 증가율을 2배 이상 앞질렀다.

 노무현 정권 때는 일본은행의 제로금리와 양적완화(2001.3~2006.3) 그리고 미국 연준의 1% 초저금리(2003.7~2004.6)가 맞물려 글로벌 유동성이 폭발하며 글러벌 주택시장에 붐이 있었고, 문재인 정권 때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 주요국이 초금융완화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내면서 부동산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시장에 붐이 일었던 기간이다.

 

p75

 글로벌 유동성의 폭발이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모두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이는 국내 가계 신용의 영향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가계 신용은 팬데믹 직전 2년간 연 평균 6.5% 증가한 반면, 팬데믹 기간 2년간은 8.3% 증가했다. 국내 신용증가율이 글로벌 신용증가율보다 높았다. 반면 노무현 정권 때는 상대적으로 글로벌 신용증가율(연 16.4%)보다 국내 신용증가율(연 10.4%)이 낮았다. 문재인 정권에서의 부동산 자산가치 급등은 국내 신용에 대한 통제 실패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주요국 모두가 가격 폭등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IMF가 발표하는 58개 국가의 전체 주택의 실질가치 변화율을 보면 2021년에 12개 국가는 변화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11.7%로 8번째로 높았다. 폭등을 겪었던 미국의 10.6%, 캐나다의 9.8% 등보다 높았을 뿐 아니라 독일, 싱가포르, 일본 등의 6%대 상승률이나 프랑스의 3%대보다 크게 높았다. 

 이는 (앞에서 일부 언급한) 부동산 투기에 적합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혁파하지 못한 대가는 고스란히 무주택자나 정부를 믿고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면 손해를 볼 것처럼 계속 강조했지만, 대통령 말을 믿고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지 않은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른바 '벼락 거지'였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 2020년과 2021년 2년간 그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2년간 시중 통화량은 700조 780억 원이나 풀렸다. 그리고 정부 채무도 2478조 5,000억 원이 증가할 정도로 정부가 푼 돈 역시 사상 최대였다. 그런데 시중에 풀린 돈 중 실물경제로 들어간 돈은 시중 통화량의 22%에 불과한 155조 7,000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결과 국내 부동산자산은 2년간 GDP의 약 12배에 해당하는 1,845조 9,000억 원 증가했다. 가계의 경우는 더 끔찍했다. 소득은 80조 원 증가한 반면 부동산자산은 소득의 20배가 넘는 1,658조 원 이상이 증가했다. 생존 위기로 내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부동산 투기를 외면하고 열심히 땀 흘리며 살던 무주택자들에게는 날벼락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을 해체하지 않은 산물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돈이 가장 집중되는 곳은 부동산이 되었고, 따라서 대한민국의 가장 강한 힘들은 부동산(돈)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고인물 사회를 만든다.

 

p77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 주요국 중 최악의 자산 불평등 국가로 만들었다. 자산 불평등이 가장 심한 선진국 중 하나인 미국의 경우 팬데믹 기간에 주식 자산가치 증가가 부동산 자산가치 증가보다 약 3배 컸던 반면, 한국은 정반대였다. 부동산자산은 주식자산보다 불로소득 성격이 강하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고, 그 결과 정부와 기업과 가계 모두가 부동산의 인질이 되었다.

 1995~2022년간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에 해당하는 기업 영업잉여(=영업이익+감가상각비-금융비용)는 208조 원 증가한 반면 기업의 부동산자산 가치는 15배가 넘는 3,020조 원이나 증가했다.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어도 계속 증가하는 이유나 건설회사의 부실을 정부가 나서서 막아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부양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건설경기에 대한 높은 의존과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이 가져올 가계 부채 충격 등으로 인해 부동산 자산가치를 떠받쳐야만 사회와 경제가 생존할 수 있는 지경이 된 것이다.

 문제는 저금리 시절에는 높은 가계 부채의 이자 부담이 은폐됐지만, 고금리의 장기화는 모르핀으로 연명한 부채 모래성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현재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이 진퇴양난 상황에 놓여 있듯이 내부적으로 개혁하지 못한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의 운명은 자명하다. 경제성장(소득 증가)과 인구 증가등이 떠받치는 부동산 가치 증가는 정당성을 확보하지만 유동성이나 가계 부채 증가 등으로 밀어 올린 부동산 가치 증가는 가계의 소득(과 일자리) 증가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계 부채 증가가 가계의 소득과 소비를 억압하여 성장의 둔화 및 정체, 가계 소득(일자리)의 정체로 이어지면서 시한폭탄 같은 가계 부채의 위험성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p85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예산 부문을 재정경제부에서 분리했지만 (모피아 사고에 젖어 있는) 경제관료가 장악하는 한 공공금융에 대한 사고를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균형재정' 신화에 갇혀 있는 '(경제)관료에 포획'되어 예산을 장악하지 못한 후회를 퇴임 후 토로한 배경이다.("이거 하나는 내가 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오히려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버리고, '여기에서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그래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해서..." 노무현 <진보의 미래> 중에서)

 그 결과가 오늘의 공룡 기재부이고, '사실상 기재부의 나라'가 된 것이다.

 

 오늘날 기재부는 사실상 정부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중장기 국가발전전력 수립이 바로 정부 주도 개발을 추진한 군부 권력의 경제기획원 권한이고, 예산 편성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기획예산처 권한이다. 또한 내국세제 권한으로 부동산 관련 세제를 매개로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정책에 개입하고, 화폐 업무로 한국은행을 관리하고, 외환 업무 포함 국제금융 사무와 (사실상 국무조정실장의 코치를 받는 국무총리의 통제를 받고 기재부 차관이 당연직 금융위원회 의원인) 금융위를 사실상 관리한다. 한국은행이 모피아의 '남대문 출장소'로, 금융위-금감원이 '여의도 출장소'로 불리는 배경이다. 그리고 산하에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 4개나 되는 청을 갖고 있는 부서이다.

 막대한 권한으로 경제 관련 부서의 장도 쉽게 차지한다.

 

 심지어 예산 배분 권한으로 정부 조직의 숱한 기관장 자리까지 차지하곤 한다.

 

 기재부의 권한은 일반 국민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산 심의를 하는 국회의원들도 지역구 예산 배정을 결정하는 기재부 권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실 경제비서관이나 정책실도 기재부 사정권에 놓여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어공'인 홍장표 경제수석이 2018년 6월 사실상 경질된 후 윤종원/이호승/안일환 등 경제관료(늘공)가 경제수석을 장악했듯이 경제관료 조직은 사실상 선출 권력조차 좌지우지한다.

 

p88

 모피아는 퇴직 후에도 금융계와 정치계 등을 넘나든다. 특정 정당 및 정권과도 관계없다. 김진표는 그 상징이다.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재정경제부 차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노무현 정권의 인수위 부위원장,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국회 진출을 위해 열린우리당 정책위 위장을 거쳐 18대부터 국회에 진출한 그는 문재인 정권에서 국정기획자문위원히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거치고 21대 국회 후반기 의장까지 차지하고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 정권에서 부동산정책이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윤석열 정권의 국무총리인 한덕수는 김대중 정권의 경제수석과 노무현 정부의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초대 기재부 장관을 역임한 추경호는 김대중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을 한 후 김대중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비서관실과 정책기획수석 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이처럼 "정권은 유한하지만, 모피아는 영원하다"

 

 물리력으로 통치하던 군부독재 시대에는 시장(자본)이 전근대적 방식인 물리력으로 통제되었다. 그런데 군부독재의 종식과 더불어 시장(자본)에 대한 통제 자체가 해체되었다. 물리력에 기초한 통제 방식을 (공공금융 성격이 더 강화되는) 사회적(민주적) 통제 방식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김영삼 정권의 역사적 과오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본인 입으로 시인했듯이 경제에 문외한이었을 뿐 아니라 금융에는 문맹 수준이었다. 오히려 노태우 정권에서도 최대한 늦추려 했던 금융 자유화와 자본시장 개방을 적극 추진하면서 재벌 자본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자청해서 대한민국을 월가 자본의 먹잇감으로 바쳤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전통 산업들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있었으나, 역시 금융에는 문외한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 가계 부채 사태인 '카드 사태'가 김대중 정권의 작품인 배경이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팀이 선택한 (신용)카드는 '내수 부양책'으로 포장됐지만, 그 내용은 가계가 빚을 내서 소비하고 집을 사게 하는 '부채주도성장' 방안이었다. 

 당시 길거리에서 카드 모집인이 상환능력이 거의 없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카드를 발급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당시(2000년) 김대중 정권의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이헌재표 내수부양책'이었다.

 내수부양책으로 카드활성화 정책과 더불어 부동산 규제 완화가 2000년에도 확장되었고, 심지어 1가구 다통장 보유 기능과 각종 세제 혜택 등이 추가되었다. 그 결과는 380만 명의 신용불량자 양산과 부동산 가격의 급등이었다. 특히 2002년 한 해 동안 아파트값은 서울 45%, 신도시 25.1%, 수도권 23% 등 전국적으로도 22.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1999년 말 GDP 대비 45.1%(267조 원)였던 가계 부채는 2002년 말에는 64%(502조 원)까지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정부 채무는 GDP 대비 9.3%에서 9.7%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공공금융의 역할 없이 가계 희생으로 재벌 건설 자본과 금융 자본의 배를 불려려준 것이다.

 2003년 카드 사태는 노무현 정권에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2003년 1분기 성장률은 직전에 비해 반토막이 나고 3분기까지 자유낙하 하듯이 하락했다.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던 유명 인사(?)는 당시 카드 사태는 김대중 정부에서 반든 것인데 노무현 정부가 뒤집어썼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런데 카드 사태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양날의 검이었다. 2000년 9.1%에서 2001년 4.9%로 급갑했던 성장률은 가계 부채 기반의 부양책 덕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7.7%로 반등하며 노무현 후보 당선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었고, 부양책 후유증(카드 사태)으로 임기 첫해 3.1%로 성장률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카드 활성화 대책이나 부동산/건설 경기 부양 모두 금융 및 재벌 자본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가계 부채는 부동산 카르텔의 숙주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p93

 모피아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헌재와 강만수 등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주요 정책을 좌우했듯이 권력의 성격과 모피아는 관계없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기재부장관인 추경호가 김대중 정부 출범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이자 김대중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의 윤증현은 노무현 정부의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후 김앤장에 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전략을 만들었던 김동연과 홍남기가 문재인 정부의 전후반 기재부 장관을 지냈고, 한덕수가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수석,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부 장관을 지내고 김앤장에 머물다가 윤석열 정권에서 다시 돌아왔다. 민주당 정권이나 국민의힘 정권이나 핵심 경제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모피아는 심지어 공적 자원의 사유화에도 거리낌이 없다. 다음은 2022년 8월15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내용이다.

새 정부 들어서 공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기획 재정부가 나서서 공공 기관들의 경영이 방만하니까, 
가지고 있는 사옥 건물이나 땅을 팔라고 압박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기획 재정부가 공공 기관들에게 자산을 팔라고 했고, 
실제로 한국석유공사가 사옥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누가 샀는지, 이 거래로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 
저희가 취재를 해 봤더니, 기획 재정부 관료 출신들이 만든 
부동산 투자 회사였습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규성은 김대중 정부의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등용된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2001년 일종의 사모펀드인 코람코(KORAMCO, 한국부동산자산관리회사) 설립을 주도한다. 코람코의 회장을 장기간 역임하는 중에도 이규성은 2004년 노무현 정부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도 역임한다. 2010년에는 코람코자산운용사도 설립한다. '작은 정부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 들어 공공기관 민영화가 추진되며 박근혜 정부의 기재부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패로 부채가 급증한 석유공사 매각을 추진한다. 석유공사 매각은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넘어 스스로 공적 자원을 사유화하는 모피아의 탐욕을 보여준다.

 

 석유공사는 본사 건물을 2,000억 원에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부채 상환에 사용하지도 않고 사업비와 정기예금 등으로 운용했다. 건물 매각 후 임대하며 지불한 임대료율은 4.87%였다. 그런데 석유공사가 자금이 필요해 조달할 때의 조달비용, 이른바 석유공사 채권 이자율은 2.67%에 불과했다.

 

p100

 불환화폐(신용화폐)의 가치는 정부가 보증하는 것이다. 정부 보증의 힘은 정부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정부 경제력은 세금 수입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국민 전체가 불환화폐의 가치를 함께 보증한 것이다. 즉 오늘날 사용하는 법정화폐는 그 사회의 국민 전체가 함께 보증한 신용이다. 출범 때부터 영란은행을 공공선과 인민 이익의 촉진을 위한 정부 은행으로 성격을 못 박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재정 자원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은행시스템의 기본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는 이유이다. 소득과 금융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공금융은 생산과 금융에서 사회몫을 의미한다. 사실 근대 화폐경제에서 생산과 금융은 분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공금융을 '재정'으로 번역한 것은 생산측면으로 좁혀 잘못 부르는 것이다. 금융을 민간금융만으로 축소한 금융 자본의 이해를 반영한 개념이다.

 

p104

 정부 채무 겁박론은 국가 채무의 실상을 왜곡한다.

https://www.seoul.co.kr/news/economy/2023/04/04/20230404500151

 

나랏빚 첫 1000조 돌파, 文정부 5년 새 408조 급증… 국민 1인당 빚도 2000만원 돌파

정부, 2022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 의결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 117조 ‘사상 최대’ 국가채무 1068조, 국가부채 2326조 ‘최대’ 고금리 여파에 국가 자산 가치 30조원 감소, 지난해 나랏빚이 사

www.seoul.co.kr

 

 

IMF 기준을 따르는 기재부의 'e-나라지표'에 소개되어 있듯이, 정부 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순채무 합으로 구성된다. 기재부는 정부 채무를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로 나누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정부 채무액 약 1,069조 원은 적자성 채무 678조 원과 금융성 채무 391조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106

 

지표서비스 | e-나라지표

국가채무 : 정부가 직접적인 상환의무를 부담하는 확정채무(IMF기준)로서, 국채, 차입금, 국고채무부담행위, 지방정부순채무로 구분 (국가채무 = 국채 + 차입금 + 국고채무부담행위 + 지방정부 채

www.index.go.kr

 

이 두 채무의 성격을 기재부가 해당 사이트에 소개하고 있는 내용 그대로 소개해보자. '적자성 채무'는 "조세 등 국민 부담으로 상환해야 하는 채무"인 반면, '금융성 채무'는 "정부가 상환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채무"로 국민 부담이 없는 채무이다. 예를 들어,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나 국민주택채권 발행에 의한 금융성 채무는 정부가 확보한 외환 자산 매각이나 융자금 회수 등으로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2년 말 기준 국민이 부담할 '진짜' 채무액은 1,069조 원이 아니라 678조 원에 불과한 것이다. 대통령과 언론, 여당 등이 미래 세대를 겁박한 1,000조 원은 391조 원이나 과장한 수치인 것이다.

 

p115

 이처럼 여러 문제를 갖고 있는 재정 운용 기준은 한 나라의 정부가 도입하는 것은 (국민이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하여) 막대한 공공자금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법제화 조치는 바로 대통령 등 선출 권력조차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세하는 '제2의 검찰'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막강한 공적 권한의 사유화는 지금보다 더한 부정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층에 집중된다.

 

p118

  재정관리를 관리수지로 변경한다고 하여 정부 채무 증가 속도가 멈추거나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표6>에서 보듯이 2002년보듯이 200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했던 2020년 이전까지 관리수지의 적자 규모가 GDP 대비 -3%를 초과한 경우는 금융위기 때밖에 없었다. 즉 관리수지가 -3% 이내에서 관리가 되었어도 정부 채무가 지속해서 증가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2년간의 대규모 재정 적자는 대부분 주요국이 겪었던 것으로 불가피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관리수지를 기준으로 재정을 관리한다고 해서 정부 채무 증가가 멈춘다는 보장도 없고, GDP 대비 정부 채무 60% 이내 관리도 어렵다. 무엇보다 관리수지 적자를 -3% 이내로 해서 정부 채무를 60%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권 18개월 동안의 관리수지는 131.3조 원으로 이는 GDP 대비 3.9%의 규모이다. 그 결과 문재인 정권이 사실상 종료됐던 2022년 4월 중앙정부 채무 비중(GDP 대비 %) 47.5%도 2023년 10월 50.1%로 증가했다.

 문제는 자신들이 공언한 관리수지 목표를 지키려다 보니 지출을 무리하게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써야 할 돈이라며 국회로부터 승인까지 얻어낸 예산조차 쓰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10개월 동안 지난해보다 77.8조 원 규모의 지출을 축소했고, 이는 GDP의 3.5%가 넘는 규모이다. 최근 1년간(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연간 성장률이 1.1%로 추락한 배경이다. 모피아의 욕망(재정준칙 법제화)이 재정수지 관리도 망치고, 성장률은 후퇴시키고, 다시 재정수지와 정부 채무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p120

 이제 재정건전성 논리가 기초하는 '재정 지출 최소주의'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재정 지출 최소주의는 '과학'이 아닌 '이데올로기'이다. 앞에서 인간 사회의 구성과 운영 원리를 말했다. 사회가 지속하려면 민주주의와 시장, 즉 정치와 경제의 상호견제와 균형이 필요하지만, 자본의 탐욕은 끊임없이 정치와 민주주의를 약화하려 하고, 심지어 제거하고 싶어 한다. 역으로 자본의 탐욕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작동한다. (셜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경험했듯이) 시장을 통제하고, 정부가 직접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의 과잉'이 그것이다. 정치의 과잉은 시장이 만들어내는 경제 활력을 약화하고 심지어 (인민독재로 위장한) "또다른 독재'로 이어지곤 한다. 자본 탐욕은 극단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경제위기를 낳는다. 사회 붕괴와 경제위기가 동전의 앞뒷면인 이유이다.

 

p122

 앞에서 보았듯이 재정준칙이 설정한 재정 적자 관리로는 한국의 정부 채무 증가를 막을 수 없다. 재정준칙을 동원해도 정부 채무 증가를 막을 수 없다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하나는 경제성장률을 현재보다 높게 만들거나, 아니면 정부 수입을 늘리는 길이다. 그리고 정부 수입을 늘리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지출 최소주의가 재정 파탄을 가져온 이유도 증세는커녕 감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리한 재정 지출 축소로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연구개발R&D 예산까지 줄이면서 성장률 둔화와 재정 파탄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핑계로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재정건전성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피아가 재정준칙을 도입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모피아가 대변하는 금융 자본의 이해를 생각하면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모피아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정부 채무 증가를 막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포장해 재정건전성 논리를, 정부의 재정 운용 및 서비스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 정서를 이용하여 재정 지출 최소화 논리를, 그리고 재정 지출을 줄일 것이기에 감세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재정 지출 최소화는 모든 부분에 균등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무원 보수 등 경직성 비용은 줄이기 어렵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힘이 있는(?) 부서보다 사회경제적 약자층 지원과 관련된 부서의 예산이 일차적인 조정 대상이 된다. 둘째, 공공자금의 지원이 축소되면 그에 비례해 민간금융에 대한 의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높은 이자 놀이를 하는) 금융 자본의 먹잇감으로 던지는 것이다. 셋째, 감세는 고소득층일수록 혜택이 크고, 특히 금융 고소득층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게다가 재정 지출 최소화에 따른 재정 적자를 정부 차입(국채 발행)으로 해결하고, 그로 인해 정부 채무를 증가시킨다. 역설적으로 재정 건전성이 재정 악화를 낳는 것이다.

 

 

p125

 2021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720원이었다. 이를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2,187만 원이다. 그런데 2021년 소득활동자 중 상위 60% 선이 최저임금 수준의 연소득보다 낮은 2,180만 원이었다. 하위 41%의 규모는 약 1,040만 명에 해당한다. 이들의 평균 소득은 980만 원에 불과했다. 약 2만 5천명에 해당하는 상위 0.1%의 평균 소득은 18.5억 원이니 하위 41%의 평균 소득에 비해 188.8배나 되는 규모이다. 상위 0.1%의 총소득 46.9조 원은 29%에 속하는 745만 4천명의 총소득 46.7조 원보다 많은 규모이다. 약 2만 5천명의 소득이 745만 4천명의 소득보다 많은 사회인 것이다.

 자산 불평등은 더 극심하다. 지난 거의 한 세대(1995~2022년) 간의 대한민국 전체 소득(GDP)은 437조 원에서 2,205조 원으로 1,768조 원이 증가했는데 부동산자산은 2,205조 원에서 1경 2,506조 원으로 1경 301조 원이나 증가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보다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그 결과 부동산자산의 핵심인 토지 소유의 불평등은 정말 끔찍하다. (약 2,371만 세대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2022년 개인의 토지 소유를 보면, 전체의 38%가 넘는 901만 세대는 땅을 한 조각도 갖고 있지 못하는데 약 1.2%에 해당하는 29만 세대는 약 1,258조 원 가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의 토지소유액은 땅이 있는 나머지 62%에서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약 52%인 1,220만 세대의 토지 소유액(1,263조 원)과 비슷한 규모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니계수가 0.8이 넘으니 토지 소유가 집중되었던 조선왕조 말기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사회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사회란 무엇인가? 사회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먹을 것을 나눠 먹고, 비바람을 함께 피하고, 아프면 서로 돌봐주고,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갖지 않게 해주는, 더불어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찬바람이 부는 집 밖 허허벌판에 버려진 사람이 있고, 홀로 고립되어 죽어가는 이른바 고독사가 청년층에까지 확산하고 있고, 집 안에서조차 소수만이 아랫목을 차지하는 그런 '가짜 집'이다. 모두가 참여해서 사회적 생산액(GDP)을 만들었는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집은 함게 사는 집이 아니다. 그리고 아파도 돌봄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함께 사는 집이 아니다. 사회 속에 살면서 혼자라는 느낌을 준다면 사회라 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사회가 실종된 나라이고, 사회가 붕괴한 나라이다.

 

p129

  최소 소득은 시혜가 아니고 누구나 법적으로 보장받을 권리이고, 이는 (사회 전체 생산액의 배분 방식의 하나인) 세금으로 해결해야만 하고, 특히 출발선의 차이를 만드는 유산에 대해서는 최대한 세금으로 환수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자본주의가 하나의 사회 체제로 출발할 때부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적 상식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런 상식조차 작동하지 않는 사회이다. 이렇게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상속세 완화나 폐지를, 그것도 저출산 대책으로 거론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저출산은 낮은 결혼율에서 찾고, (경제이론과 한국은행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낮은 결혼율은 임금 불평등과 주거비, 그리고 자녀 교육비 등의 순서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확인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결혼율 차이는 그동안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대다수 국민의 사회소득을 늘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증세와 (전통적인 취약계층 중심의) 소득 이전 정책은 많은 중산층이 거부감을 갖는다. 소득이 극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기계적으로 구분된) 중산층조차 많은 사람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편하게 중산층을 설정하는 하위 30%에서 상위 30% 사이의 소득 규모를 보면 (2021년 국세청 소득활동자 자료를 기준) 세전 평균 소득은 1,500만 원에서 4,192만 원 사이의 소득계층이다. 개인 소득이라도 중산층이라기에는 너무 적은 소득 수준이다. 자신도 지원받아야 할 소득계층에게 더 어려운 극빈층 지원을 위해 세금을 더 납부하라 하면 거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식은 사회소득을 모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모든 소득활동자에게 사회소득 100만 원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재원은 약 25.4조 원이다. 이를 현재의 소득세율을 기초로 25.4조 원을 배분할 때 추가 세금 부담은 상위 16%에 국한된다. 2021년 모든 소득활동자 기준 세전 소득이 18.5억 원(세후 소득 11.94억 원)인 상위 0.1%는 추가로 약 2억 원의 세금을 더 부담한다. 그리고 상위 16%선에 있는 소득활동자의 경우 2021년 세후 소득이 6,052만 원인데, 추가로 2만 원만 더 부담하면 된다. 이 정도의 추가 세금으 객관적으로 볼 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반면, 하위 50%는 최소한 91만 원에서 1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앞에서 하위 41%까지는 연소득이 최저임금 수준보다 작다고 말했다. 2023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380원을 인상해야 하고, 1년간 95만 1,000원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소득 100만 원을 지급하면 최저임금 대상자의 시간당 1만 원 소득은 쉽게 달성된다.

 여기에 (2022년 기준 약 98만 2,500개의) 법인을 대상으로 소득활동자 모두에게 100만 원을 지급할 25.4조 원을 배분하면, 세후수입이 3조 1,367억 원인 0.1%의 법인은 추가로 154.5억 원을 부담하고, 세후 수입이 543억 원인 10% 선의 법인은 추가로 2억 3,541만 원을 부담한다. 세후 수입이 34억 원인 상위 20% 선에 있는 법인이 추가로 부담할 세금은 808만 원, 세후 수입이 4.7억 원인 50% 선의 법인은 추가로 171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것으로 모든 소득활동자에게 사회소득 1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할 수 있다. 개인소득보다 법인소득, 그리고 소득보다 토지 등 자산 집중이 더 심한 상황이기에 자산에 대한 사회소득 재원 확보는 소득보다 저항이 더욱 적고,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 계층의 경제적 부담도 적다.

 이렇게 사회 생산이나 사회 자산에 대한 사회몫에 해당하는 사회소득을 사회 구성원에게  배분하게 되면 국민의 80% 이상이 현재보다 최소 수백만 원 이상의 추가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재분배와의 차이라면 사회소득세를 거두어서 바로 현금 혹은 (일부는) 지역화폐로 배분한다는 점이다. 관료가 배분을 (결정)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저소득층일수록 배분받는 사회소득이 크고 초고소득층에게 세금 부담이 집중되기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클 뿐 아니라 (대다수가 혜택을 받기에) 조세 저항도 크지 않고,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전으로 돌려 놓기가 쉽지 않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줄어들게 된 국민 80% 이상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145

 싱가포르는 경상수지 흑자와 더불어 유입된 외국자본을 외환보유액Official Foreign Reserves, OFR으로 축적하여 이를 싱가포르통화청MAS, 싱가포르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싱가포르투자청Government of Singapore Investment Corportation, GIC, 싱가포르 국책투자 사업을 수행하는 테마색Temasek Holdings이 활용해 재정에도 지원하고 있다. 사실,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액이 1조 달러에 달하는데 현재 외환보유액은 4,201억 달러(2023년 12월 기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외환보유액 축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일부에서 과도한 외환보유액 축적은 (외화보유 확충에 따라 풀리는 국내 여신을 흡수하기 위한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에 따른 제반 비용인) 불태환 개입비용 부담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하지만, 싱가포르의 경우 축적한 외환으로 더 높은 투자 수익을 만들고 있고, 또한 높은 신용등급으로 기업들은 해외자금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때처럼) 외국인 자금의 갑작스러운 유출 상황에서 금융 및 외환시장의 방어벽 역할을 한다.

 2023년 12월 기준 한국의 국고채에 대한 외국인 보유액은 약 219.5조 원(약 1,688억 달러, 1달러 = 1,300원 기준)에 달한다. 외국인 보유 국고채가 모두 일시에 처분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주식시장 유입액(약 5,085억 달러, 2023년 12월 8일 기준)이나 단기 외화차입액(1,416억 달러, 2023년 3분기 기준), 3개월 수입액(2,438억 달러, 2022년 수입액 기준)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결코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IMF가 제시하는 적정외환보유액 기준에 미달하는 배경이다.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원화가 가장 취약한 통화로 전락하는 이유이다. 해외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는 이유도 국제금융시장 환경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외환 불안정석에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중앙은행 총재 시절) 라구람 라진이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이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때 신흥국 경제는 산업경쟁력에 필요한, (과도한 통화가치 절상 방지 등) 자국의 화폐가치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대외적 양적완화(Quantitative External Easing. QEE)'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자신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버냉키 화법을 사용해) 라잔 역시 신흥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신흥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고, 신흥국의 경제성장은 선진국 경제에도 기여한다는 점에서 외환시장 개입이 '근린궁핍화' 정책이 아니고, '근린부유화' 정책이라고 받아쳤다.

 이처럼 해외 지식인들이 화폐 주권을 당연시하는 풍토와 달리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으로 사고하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이익 추구는 '사치'에 불과하다.

 

p148

 <그림7>은 대한민국 경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간은 지난 30년(1992~2023년 2분기)이다. 지난 30년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일치하는 기간이다. 그림의 곡선은 현재의 시장 가치와 자국 화폐 단위로 평가한 세 나라의 GDP(명목 GDP 혹은 경상 GDP)를 해당국의 시중 유통 전체 통화량으로 나눈, 이른바 '화폐유통속도'이다. 사전적으로 화폐유통속도는 화폐 한 단위가 일정 기간 동안 경제 구성원들의 상품 거래 혹은 소득을 창출하는 거래에 평균적으로 몇 회 사용되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예를 들어, 2023년 3분기(9월말) 기준 대한민국의 명목 GDP는 약 2,205조 원이고, 총통화량은 약 3,818조 원이다. 이는 3,818조 원 중 2,205조 원만이 소득창출과 관련 있는 상품 거래에 연결되었음을 말한다. 나머지는 수익을 좇아 자산시장으로 대부분 흘러 들어간다.

 그런데 한국은 외환위기 충격 이후 1값 밑으로 떨어져 계속 하락해, 자산시장 거품 붕괴 충격 이후 1값 밑으로 떨어진 일본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중이다.

 경제 내용상으로 사실상 한국 경제 역시 '잃어버린 30년'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2023년 3분기 기준 연간 성장률은 1.1%였는데 이는 일본의 1990년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1992~2001년)의 연평균 성장률 수준이다. 이 값이 내려가면 돈을 풀어도 새로운 가치 창출보다는 자산 불평등의 심화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30년(1992~2001년) 사이에 한국의 명목 GDP는 약 1,725조 원 증가했는데, 국내 부동산자산은 약 9배에 달하는 1경 4,710조 원이나 증가했다. 가계로 국한해도 마찬가지 모습이 확인된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약 928조 원 증가했는데, 가계의 부동산 자산은 약 8배에 달하는 7,077조 원 증가했다. 비금융법인이 만든 부가가치, 이른바 영업잉여는 약 208조 원 증가했는데 비금융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자산은 약 15배에 해당하는 3,020조 원 이상 증가했다. 다른 기준으로 비교하면, 유가증권 이른바 코스피 상장기업 매출액은 2004~2022년 사이에 약 2,075조 원 증가했는데 비금융기업의 부동산자산은 2,311조 원 이상이 증가했다. 지난 30년의 가계와 기업, 국가 경제 모두에서 부동산은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선진국 중 가장 자산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보다 불평등이 더 심하면서 내용이 좋지 않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주식자산이 부동산자산 증가를 압도한다. 한국은 그 반대이다.

 게다가 돈을 빨아들이는 부동산자산의 핵심 원천인 토지자산 소유 상태를 보면 정말 끔찍하다. (2,370만 5,814세대로 구성된) 2022년 대한민국에서 상위 0.62%에 해당하는 14만 6,952세대가 보유한 토지가액 943.4조 원은 전체 세대의 (38%의 땅이 한 평도 없는 901만 세대를 포함) 85%(약 2,018만 세대)의 토지보유액 949.7조 원과 맞먹는 규모이다. 오죽하면 필자가 전정田政 문란과 토지개혁 등으로 채색된 조선왕조 말기보다 오늘날의 토지 소유가 더 집중되었다고 하겠는가.

 두 번째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경향이 지난 30년간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구조는 대한민국의 힘의 역학 구조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돈을 중심으로 세력의 이해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회 일각에서 대한민국을 '부동산 공화국'이라 부르는 배경이다. 또한 오래전부터 시중에 회자하는 말이 "권력은 유한한데 자본(모피아)은 영원하다"이다.

 

p152

 흥미로운 점은 김대중 정권에서 (GDP대비) 가계 소비 비중이나 성장률의 하락폭이 가장 컸다는 사실이다.

이는 외환위기 충격도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2000~2002년 3년간 기준으로 가계 부채가 역대 최고로 증가한 사실에서 비롯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3년 간 18.9%p의 가계 부채 증가는 문재인 정권에서의 2018년 3분기~2021년 3분기까지의 3년간 14.5%p보다 높았고, 1년 기준으로도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던 시기를 기준으로) 김대중 정권의 2001년 3분기 이후 2002년 3분기까지의 10%p 증가가 문재인 정권의 2020년 1분기 이후 2021년 1분기까지의 8.8%p 증가보다 높았다. 이는 '평화적 정권 교체' 및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6.15 공동선언)등 민주주의와 남북 관계에 이정표를 세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알맹이인 공공금융의 '사실상' 해체의 산물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래 가계 부채의 증가는 가계 소비를 억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GDP 대비 가계 부채가 10%p 상승할 때마다 GDP 대비 가계소비는 2.4%p 감소했다. 그리고 가계 소비 감소는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정권에서의 연평균 8% 성장률은 문재인 정권에서의 연평균 2.4%까지 하락했다. 약 60%에 달했던 GDP 대비 가계 소비 비중이 46%까지 하락한 결과였다. 가계 소비 비중이 1%p 하락할 때마다 성장률은 0.87%p씩 하락한 것이다. 내수의 핵심인 가계 소비의 둔화는 수출 의존도를 높이고, 이는 다시 국민총소득에서 가계 소득의 비중을 낮추었다.

 결과적으로 GDP 대비 가계 부채 10%p 증가는 (국민총소득에서) 가계 처분가능소득 비중을 2.3%p 감소시켰다. 특히, 내수 의존도가 절대적인 자영업자에 타격을 입혔다. 임금노동자 1인당 평균 소득 대비 자영업자 1인당 평균 소득의 비중은 (가계 소비와 가계 소득을 감소시킨) 가계 부채 증가에 따라 하락했다. 가계 소득과 가계 소비가 1%p 하락할 때마다 (임금노동자 소득 대비) 자영업자의 상태 소득에 각각 -4.1%p(가계 소득)와 -3.6%p(가계 소비)의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오래전에 격차 사회가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의 소득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 소득 격차, 그리고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소득 격차가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소득 격차가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소득 격차인 데 이 격차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1인당 자영업자 평균 실질소득이 2001년 정점을 찍고 최근까지 계속 하락하고 있고, 물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명목소득도 2011년 이후 계속 하락하는 배경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격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소득 격차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에 40%가 무너졌다. 작은 충격만 받아도 자영업자가 폐업에 내몰리는 배경이다. 절대적인 소득 취약성으로 가계 부채 못지 않게 자영업 부채가 급증하는 배경이다. <표9>에서 보듯이 자영업자 1인당 명목소득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0.7%씩 줄어들어왔다. 실질소득 기준으로 보면 지난 20년 넘게 연평균 2.3%씩 하락해왔다.

 

 

p166. 사회 소득을 위한 세율 조정 방안.

 

p170

 지금까지 간단히 소개한 사회소득만 강화해도 대부분 가계는 최소 연 300~400만 원의 사회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엄청나다. 첫째, 가계의 소비 여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성장뿐 아니라 가계의 소득과 일자리 증가 등에도 기여한다. 둘째, 소득 불평등의 개선, 특히 불평등 발생의 최대 용인인 토지 부동산자산에 대해 과세와 소득이 낮을수록 많은 배당을 받는 소득 이전으로 불평등을 크게 개선하게 된다. 셋째, 부동산 투기에 따른 기대 불로소득이 낮아짐으로써 투기를 완화한다. 넷째, 세금을 거둔 후 그 세금을 바로 국민에게 배당해줌으로써 재경 관료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국민 주권 강화의 효과가 있다. 다섯째, 사회소득이나 토지배당 등의 일부를 지역화폐로 나누어 주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자영업자 소득 개선에도 기여한다. 여섯째, 저소득층이 가장 큰 혜택을 입음으로써 저소득층의 최저임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그 결과 사회 경제적 약자들인 을과 을 사이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일곱째, 설사 보수정권으로 바뀌어 사회소득세 및 토지배당세를 이전으로 환원시키게 되면 대다수 국민의 소득 감소로 이어져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기 때문에 감세가 불가능한 불가역적 증세 방식이다. 여덟째, 노동소득 이외의 추가 소득이 발생하면 많은 국민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으로는 혁신 활동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사회금융까지 결합할 경우 창업 활성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주저앉는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려면 가계 소득 강화와 혁신 활성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회소득 강화와 사회금융 복원이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이다.

 

p173

 2023년 (금리인상으로 가처분소득의 감소로 이자를 감당못해 자산가치 붕괴 조짐이 생기는) '민스키 모멘트'가 도래하자 정부가 정책주택금융 지원으로 붕괴를 일시적으로 막았다. 실제로 2008년 이후 2022년까지 정책주택금융의 분기당 증가율은 3.2%였으나 2023년 3분기 동안 증가율은 4.2%로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주택금융으로 주택 거래의 일시적 회복을 자극했으나 가계의 소득 감소와 식비 축소까지 진행될 정도로 가계 부채가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정책주택금융으로는 방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 결과가 태영건설 워크아웃이다.

 본질적으로 태영건설 워크아웃은 수십 년간 진행해온 부동산 부채 모래성 쌓기의 결과로 인한 건설업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경제관료들은 해외사례 베끼기, 그것도 실패한 일본 사례 베끼기를 하고 있다. 금융지원으로 부실기업 연명시키기, 정부의 대규모 토목건설 사업으로 건설사 수입 만들어주기, 금리 인하로 주택시장 부양하기 등이 그것이다.

 

 일본은 이와같은 잘못된 정책으로 1990년대 10년 동안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 1999년부터 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한다. 

 일본의 구조조정이 성공했더라면 '잃어버린 20년' 혹은 '잃어버린 30년'은 없었을 것이다. 통·폐합에서는 성과를 거둔 반면 창조산업 육성은 처참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창조산업 육성이 처참히 실패한 이유는 제조업과 전혀 다른 창조산업을 제조업 육성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태영건설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2015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처리할 때가 연상된다. 당시 2,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 수혈이 산업은행 주도로 추진됐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에 도입한 것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일본의 1999년 '산업활력재생특별법'을 베낀 것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상징인 '창조경제' 육성도 일본의 '창조산업' 육성의 베끼기였다. 그리고 지금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과 건선 부문의 부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자산시장 거품이 꺼지자 일본 정부가 내놓은 대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가게 소빙, 기업 설비 투자, 그리고 수출 등 성장 에너지가 악화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자산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소비의 추가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수준으로 성장률이 하락한 상태에서 부동산 시장 침체가 더해지면 향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일본의 1990년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으려면 가계 구제에 초점을 맞춘 '한국적 양적완화'가 불가피하다. 주택금융공사가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을 인수한 후 주택금융공사가 매입한 주택을 장기공공임대로 전환하는 것이다. 주거 불안을 겪는 많은 세입자의 주거 문제를 아넝화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주거시설을 확보할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게다가 주택 매물 압력은 완화할 것이고 주택 소유를 포기한 가계도 여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채 상환 부담에서 해방되고 소비 여력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차기 정권의 과제이다.

 

p184

 대개 산업화 혹은 공업화로는 1인당 소득 1만 달러까지 도달한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흔히 압축성장이라 부르듯이 한국은 '압축적 공업화'를 이루어냈다.  1만 달러 이후 한국은 탈공업화가 일본에 비해 2배나 빠를 정도로 압축적으로 진행됐고, 그 결과 많은 노동력이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으로 이동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영업이고, 오늘날 플랫폼 노동자가 21세기형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 종사자들이다.

 그런데 AI와 로봇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의 노동력조차 소멸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배경이다. 이로 인해 의사나 변호사처럼 일부 고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의 진입장벽이 높은 일자리를 들어가기 위한 교육 경쟁이 극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디지털 생태계에 필요한 인간상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은 학생은 대개가 스스로 문제를 찾아낼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과 협력을 만들어내는 데도 익숙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조업 생태계와 디지털 생태계가 전혀 다른 인간상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산업혁신이 가능하다. 교육 혁명과 더불어 국민의 경제 기본권들을 구현할 때 새로운 집을 위한 최소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p191

 1980년대 이후 금융화가 새롭게 부상한 금융 자본의 지배력을 상징하듯이 화폐 권력에 변화가 발생했다. 금융혁신이라 불리는 '증권화'는 금융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증권화'란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현금화하는 기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이다. 주택은 대부분 대출이 포함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는 원리금을 회수할 때까지 대출금을 채권  형태로 보유했다. 이 대출 채권은 대출 만기까지 온전히 현금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유동성이 낮은 자산이다. 또 다른 대출을 하려면 추가 예금을 확보하거나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리고 추가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기본적으로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 통화량의 크기에 의존한다. 그러나 주택을 담보래 대출해 준 채권 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만들어 매각하면 현금이 확보되고 이 현금으로 또 다른 대출을 만들 수 있다. 이 증권이 바로 주택저당증권MBS 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자동차 대출금, 신용카드 사용 채권, 학자금 대출금, 공장 대출금 등에서부터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로열티까지 다양한 비현금성 자산을 증권화하게 되었고, 이를 통용해서 자산담보증권Asset-Backed Securities ABS이라 부른다.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모아 현금 흐름을 만들고, 이를 통해 유동성 낮은 자산의 가치를 높이고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더 낮은 차입비용을 제공하고, 투자가에게는 고품질 고정수입이라는 매력적인 수익률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은 이를 최대 혁신으로 평가했다. - *2008년 금융위기가 바로 이 MBS가 부도처리 되면서 발생한 것임.

 

 자산담보증권은 출현하자마자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2021년에 자산담보증권의 시장 규모는 2조 1,371억 달러에 달했다. 자산담보증권의 출현은 금융회사가 자금을 시장에서 직접 조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시중의 통화량 공급은 중앙은행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른바 중앙은행의 통화공급 독점력이다. 그런데 금융 자본이 중앙은행의 자금 지원 없이도 상당한 자금을 조달할 길이 열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금융의 외생성外生性에서 내생성內生性으로의 진화라 부른다. 중앙은행의 화폐공급 독점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화폐공급이 달라지면서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통화량 중심에서 이자율 중심으로 변경한 배경이다.

 

p202

 '제재'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미국이 러시아를 해외 금융거래를 위한 달러화 결제시스템, 이른바 스위프트SWIFT,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 에서 퇴출시킨 조치를 말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탈달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즉 스위프트는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국제금융결제망으로 '글로벌 공공재'에 해당한다. 러시아 경제의 파산을 의도했지만, 기대한 목적은 달성되지 못하고 오히려 탈달러의 모멘텀으로 작용했다. 미국으로서는 자기 발등을 찍은 겨이 되었다. 

 게다가 뒤이은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국 단체/개인에 대한 제재인 세컨더리 보이콧 등과 더불어 인플레 불을 붙이면서 탈달러와 미국채 파동은 시작되었다. 2024년 새해가 시작하며 브릭스BRICs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식 가입함으로써 탈달러는 가속 페달을 밟게 될 것이다. 이란과 아랍에미리트 등이 브릭스에 합류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면 이들의 석유공급은 전 세계의 약 42%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p209

 많은 전문가는 금융위기 이후부터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경험했던 저물가와 그에 기초한 초저금리 시대는 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의 '이지 머니' 공급에 의한 자산시장 부양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한다. 사실 이는 저임금 중국 경제의 세계 시장 편입으로 상징되는 세계화와 기술진보 등이 가져다준 저물가로 가능했다.

 

p210

 이러한 대응 방식은 기본적으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미국채 공급 과잉 우려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공급되는 미국채 규모는 금융위기 이전(2001~2008년)에는 연 6,795억 달러(GDP 증가분의 120%)씩 증가하다가 금융위기 이후부터 코로나 팬데믹 이전(2009~2019년)까지는 연 1조 1,365억 달러(GDP 증가분의 171%)씩 증가해왔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2020~2022년)에는 연 3조 1,485억 달러(GDP 증가분의 210%)씩 증가하고 있다.

 

 이는 미국채 가격의 안정성 악화가 '상수'가 되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달러 힘의 약화를 의미한다. 앨런이 "준비금의 자연스러운 다변화 욕구"를 미국이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p214

 현재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 등)가 분산과 공유와 개방 등을 속성으로 갖고 있는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임에도, 즉 국가와 금융 자본이 독점하던 화폐 권력을 해체하는 화폐시스템의 혁명임에도, 실질 가치를 만들어내는 플랫폼 사업모델이 뒷받침되지 않아 새로운 화폐시스템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일부 논자들은 암호화폐는 실질 가치가 없고 버블에 불과하다고 말하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분산과 개방과 공유의 특성을 실현한 블록체인형 암호화폐는 디지털 생태계의 특성에 부합하는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라는 가치를 갖는다. 단지, 디지털 생태계에서의 신용 역시 실질가치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화폐로서보다 자산으로서 자리매김되는 배경이다.

 

p216

 미국은 금융위기의 대외적 원인으로 '글로벌 불균형=글로벌 과잉 저축'에 돌리며 미국 이익을 위해 '나머지 세계'에 희생을 강요했다. 경제 주권의 충돌이다. 경상수지 흑자 축소를 둘러싼 미국과 주요 교역국들 간의 갈등, 더 나아가 미·중 간 경제패권을 둘러싼 갈등 등이 화폐 권력을 둘러싼 갈등인 이유이다. '통화정책 독립성의 약화'라는 미국 화폐 주권의 손상은 기본적으로 중심통화가 달러와 경제력 다원화의 미스매치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자신의 화폐 주권을 위해 나머지 세계에 경제력 신장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외환위기에 대한 자기 보험 차원이든, 경제 주권의 차원이든 간에 나머지 세계의 달러 축적을 막을 권리가 미국에는 없지 않은가.

 결국 준비금의 다원화가 하나의 대세라면 국제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한 국제 협력은 선택을 넘어 필수 사항이다. 문제는 패권주의 사고에 젖어 있는 미국이 준비금의 다원화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 도래할 때까지는, 먼저 모두의 경제 주권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 블록화나 독자적 공급망 구축 등으로 나타나는 세계 경제의 지정학적 파편화Geo-economic fragmentation는 그 산물에 불과하다.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처럼 준비금의 다원화 역시 시대적 대세임에도 준비금 권력을 독점하려는 달러의 힘으로 인해 국제통화시스템 및 국제금융 시스템 모두 이행기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적어도 21세기 전반부는 불확실성과 혼란 등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사회혁신들을 만들어내는 길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그것은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인간 사회가 직면한 공동 과제를 푸는 일이 정치이고,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p219

 불평등과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며 또한 양극화된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지 세력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면서 정치가 극단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것은 많은 연구로 밝혀졌는데, 사실 이는 연구 이전에 상식의 문제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증오, 심지어 폭력 등으로 이어진다. 관용과 사랑 등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이렇게 망가지 이유는 한국 사회와 경제가 '부동산 카르텔'이 만들어낸 사실상의 세습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부동산으로 인해 경제 활력도 잃어버렸고, 인구도 축소되고, 급기야 사회가 사실상 붕괴되었다. 그리고 이제 부동산 모래성이 무너질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소비, 투자, 수출, 소득 등이 모두 마이너스 행진을 하며 지난 2023년의 스테그플레이션은 조만간 디플레이션으로 전활될 가능이 크다. 낡은 집(사회질서)이 무너진 후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장하준 교수의 전작인 '나쁜 사마리안'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읽다가 말았는데 이유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재미없는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 때문에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 책은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주제로 넘어가는 현란한 기술에 깜빡 속아넘어가는 덕분인지 재밋게 읽었다.

 이 책 덕분에 현대의 주류경제학이 미국이고 미국의 주류경제학은 신고전학파라는 사실도 리마인드하게 됐고, 저자는 이러한 획일주의적 경제학이 싫어서 다양한 경제학 담론이 살아있던 시대의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그간 경제학에서 알게 모르게 선입견처럼 가지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장하준 교수의 다른 책도 다시 한번 시도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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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많은 이론에서 필수 사회 서비스로 간주하는 의료, 교육, 상하수도, 대중교통, 전기, 주거 등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다면, 그 이론은 '1인1표'라는 미눚 사회의 원칙을 축소하고 '1원1표'라는 시장 논리를 확장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p75

 지난 150여 년에 걸쳐 자본주의가 좀 더 인간적이 된 거은 오로지 자유 시장적 시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신성불가침으로 여겼던 자산 소유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는 자산 소유자들의 경제적 자유가 대중의 정치적/사회적 자유와 충돌할 때 후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민주 헌법, 인권법, 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법적 보호 등이 그 예다. 자산 소유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수많은 법 - 노예 제도와 연한 계약 노동의 금지, 노동자의 파업 권리 보호, 복지 국가 설립, 공해 물질을 배출할 자유 제한 등 - 을 도입했다.

 

p88. 가난의 근본적 원인

 이처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면 그들의 빈곤이 근면성 부족 때문일 수가 없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이들이 부자 나라 국민보다 인생의 훨씬 더 긴 기간, 훨씬 더 오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그만큼 높지 않아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성이 낮은 것은 교육 수준, 건강 등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나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 노동력의 질은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생산성의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적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점은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이민 온 사람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민을 왔다고 갑자기 없던 기술이 생기거나 건강이 급격히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 그들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더 양질의 사회 기반 시절 infrastructure(전기, 교통, 인터넷 등)과 더 잘 기능하는 사회적 체제(경제 정책, 법률 체계 등)를 기반으로 해서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공장, 사무실, 가게, 농장 등)에서 더 나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당나귀를 타고 애를 쓰던 기수가 갑자기 좋은 혈통의 경주마를 타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기수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누가 경주에서 이기는가는 만흔 부분 기수가 탄 말이 결정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왜 덜 생산적인 테크놀로지와 사회 체제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낮은 생산성밖에 달성하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를 이 짧은 장에서 만족스럽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부가가치 1차 상품 생산에 특화된 구조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 식민주의 역사의 잔재, 만성적 정치 분열, 엘리트 계층의 무능력(비생산적인 지주, 역동적이지 못한 자본가 계급, 비전 없고 부패한 정치 지도자), 부자 나라에 유리하도록 편성된 국제 경제 체제 등은 굵직한 이유들 중에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역사적/정치적/테크놀로지적 문제 때문이고, 이는 그들이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열심히 일할 마음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p99. 페루의 번영을 이끈 작은 생선

 멸치는 풍부한 맛뿐 아니라 한때 풍부한 부를 가져다주는 고마운 생선이기도 했다. 이 작은 생선은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원인이었다. 페루가 멸치를 수출해서 돈을 번 건 아니었다. 당시 페루는 바닷새의 구아노guano(마른 새똥)을 수출해서 국가적 번영을 누렸다. 구아노는 질산염과 인이 풍부하고 냄새가 그다지 역겹지 않아서 인기 높은 비료였을 뿐 아니라 화약의 핵심 재료인 질산칼륨이 들어 있어서 화약 제조에도 사용되었다.

 페루의 구아노는 태평양 연안의 섬들에 모여 사는 새들인 가마우지와 부비booby(얼가니새)의 배설물이다. 이 새들의 주된 양식은 생선, 특히 칠레 남쪽에서부터 페루 북쪽을 잇는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의 영양소 풍부한 훔볼트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멸치들이다. 훔볼트 해류는 프로이센 왕국의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훔볼트는 1902년 에콰도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침보라소 화산(6262미터)을 올라 당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을 뿐 아니라 페루산 구아노의 장점을 최초로 유럽에 알린 사람들 중 하나다. 구아노가 페루 경제에서 너무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경제사를 다루는 사람들은 '구아노기'(1840년대~1880년대)라는 용어를 쓴다.

 구아노가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는 페루만이 아니었다. 1856년 미국 의회는 '구아노제도법Guano Islands Act'을 통과시켜서 아무도 살지 않고 다른 나라 정부의 관할 아래 있지 않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구아노가 있는 섬은 미국 시민이 점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 덕분에 미국은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100개가 넘는 섬을 점거해서 페루산 구아노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영국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도 구아노가 쌓인 섬들을 점거했다.

 구아노로 인한 페루의 경제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황이 시작된 지 30여 년쯤 지나자 과다 채취로 인해 구아노 수출이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870년 대규모 칠레 초석(질산나트륨)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구아노 수출의 쇠락으로 인한 영향이 한동안 상쇄되었다. 초석은 비료, 화약 제조에 사용될 뿐 아니라 육류 보전에까지 쓰이는 질산염이 풍부한 광물질이다. 그러나 페루의 번영은 초석전쟁Saltpetre War이라고도 부르는 남아메리카 태평양전쟁(1879~1883년)과 함께 끝이 났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볼리비아 해안 지역 전부(그 결과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되었다)와 페루 남부 해안 지역의 절반 가량을 점령했다. 그 지역에는 대량의 초석이 매장되어 있고 구아노도 많아서 칠레는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190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에서 질소를 분리하는 기술을 발명했다. 고압 전류를 사용해 암모니아를 만들고 거기서 인공 비료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말하자면 하버가 글자 그대로 허공에서 인공 비료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 덕에 그는 19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독가스를 개발한 일로 악명이 높아서 그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점잖은 자리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하버가 발명한 기술은 또 다른 독일의 과학자 카를 보슈에 의해 상용화되었다. 보슈가 일하던 '바스프BASF'는 '바덴에 있는 아닐린과 소다 만드는 공장'이라는 뜻의 바디셰 아닐린 운트 소다 파브리크Badische Anilin und Soda Fabrik의 약자로, 하버가 개발한 기술을 사들인 회사다. 오늘날 '하버-보슈법'이라 부르는 이 기술은 인공 비료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해서 구아노를 비료계의 황제 자리에서 추출하고 말았다. 구아노보다 더 중요한 질산염의 공급원인 초석 또한 가치가 없어졌다. 구아노와 초석에서 추출한 칠레의 천연 질산염 생산량은 1925년 250만 톤이었던 것이 1934년에는 불과 80만 톤으로 줄어들었다.

 

p107

 역사를 살펴보면 높은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산업화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혁신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된 근원인 제조업 분야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산업화를 통해 생산 능력을 더 높이면 자연이 우리에게 가하는 제약을 '마법처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칠흑처럼 새까만 석탄에서 선명하기 그지없는 새빨간 염료를 뽑아내고, 허공에서 비료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않고도 땅을 몇 배로 늘리는 것이 마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기에 더해 이런 능력을 갖추고 나면 긴 기간 동안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초석과 같은 재생 불가능한 광물 천연자원, 또는 멸치를 먹고 사는 새들의 분비물로 만들어진 페루의 구아노처럼 재생 가능하지만 과잉 채취로 결국 늘 '바닥이 나고야 마는' 천연자원과는 달리 한번 습득한 기술이나 능력은 고갈되지 않기 때문이다.

 

p116.  싱크 최대 수출국 일본은 어떻게 경제 강국으로 거듭났을까

 현대에 들어서면서 최대 실크 생산국은 한때 일본이었다. 일본은 7세기에 한국에서 양잠술을 도입한 이래 매우 긴 견직물 방적 역사를 지니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 이 부문을 크게 키웠다. 1950년대 일본은 세게 최대 실크 수출국이었고, 실크 관련 상품은 일본의 최대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인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 전자를 비롯한 기타 '선진' 공업 부문에서도 대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기술 면에서 뒤쳐진 일본이 그런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경쟁을 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높은 관세, 다시 말해 수입품에 높은 세금을 물리는 한편, 보호 사업 부문에서는 외국 기업들이 일본 내에서 영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법으로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국내 제조업자를 보호했다. 이에 더해 당시 정부의 엄격한 규제 아래 있던 은행들로 하여금 수익성이 좋은 주택 담보 대출이나 소비자 금융, 또는 이보다는 수익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실크 산업 부문보다 '선진' 공업 부문의 국내 기업들에 우선적으로 대출하도록 만들었다.

 일본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이런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본은 철강이나 자동차 같은 건 수입으로 조달하고 실크를 비롯한 방직 산업처럼 이미 잘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지적했다. 비효율적인 부문의 기업들, 가령 토요타나 닛산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산 차에 관세를 부과하면 소비자는 더 나은 외국산 차를 사기 위해 국제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품질이 낮고 미운 일본산 차를 사야 하는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자동차 생산 기업처럼 비효율적인 산업 부문에 은행 대출을 하도록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을 하면 실크 산업처럼 더 효율적인 부문에 돈을 투자해서 같은 자본으로 훨씬 더 큰 이윤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흠 잡을 데가 없이 맞는 주장이다. 한 나라의 생산 능력을 고정된 것이라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나라든 생산 능력은 변화할 수 있고, 현재 잘하지 못하는 것을 나중에는 잘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지만 - 더 나은 기계, 노동자의 기술 습득, 테크놀로지 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일본의 자동차, 철강, 전자 등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어났다. 1950년대에는 국제 시장에서 경쟁할 꿈도 꾸지 못했던 산업 분야 중 많은 수가 1980년대에 들어설 무렵에는 세계 1위에 등극해 있었다. 한 나라의 생산 능력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는 데는 적어도 20여 년이 걸린다. 이 말은 자유 무역 환경에서는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없다는 뜻이다. 자유 무역 체제에서는 신생 산업 부문의 비효율적인 초보 기업들이 우월하고 규모가 큰 외국 경쟁 업체들에 순식간에 전멸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p120

 그렇다고 해서 유치 산업 보호 정책이 반드시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유치 산업 또한 잘못 키우면 '성숙'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과도한 보호 정책을 쓰는 바람에 국내 기업들이 태만해졌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보호 정책을 줄이지 않아 생산성을 향상시킬 동기 부여를 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유치 산업 정책을 가장 기술적으로 운용한 일본과 한국 같은 나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호 정책을 단계적으로 줄여서 그런 위험을 피했다. 자녀가 성장해 감에 따라 보호의 손길을 차차 거두고 더 많은 책임을 자녀에게 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치 산업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한때 경제적 새우였던 나라들 - 18세기의 영국과 19세기의 미국, 독일, 스웨덴, 20세기의 일본, 핀란드, 한국 - 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고래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p230

 복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나라의 시민(그리고 장기 거주자) 모두가 동일한 보험 패키지를 대량 구매를 통해 싼값에 에 구입한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을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바로 부자 나라 중 보편적 공공 의료 보험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과 다른 부자 나라들의 의료 비용을 비교해 보면 된다.

 GDP에 대한 비율로 볼 때 미국인은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부자 나라 시민에 비해 적어도 40퍼센트 이상, 많으면 2.5배 정도를 의료비에 더 쓴다(미국은 GDP 대비 17퍼센트인데 반해 아일랜드는 6.8퍼센트, 스위스는 12퍼센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건강 지표는 선진국 중 최악이어서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미국에서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비용이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이유 한 가지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조각조각 분산되어 있어서 의료 제도가 더 잘 통합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공동 구매를 통해 얻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 전체 시스템을 통한 '대량 구입' 디스카운트를 받는 대신 모든 병원은 개별적으로 약과 의료 장비를 구입해야 하며, 의료 보험 회사들은(이윤 추구 기업이므로 더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데 더해) '규모의 경제' 혜택을 볼 수 있는 통합된 시스템 대신 각각 시스템을 운영하는 비용을 들여야 한다.

p246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개인의 필요와 역량은 무시한 채 결과와 기회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이다.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반면에 우파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 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균등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것은 부모 세대가 상당한 정도로 결과의 평등을 누려야 가능한데, 그렇게 되려면 소득을 (하향) 재분배하고,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

 채식주의자에게 닭고기 기내식을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하는 항공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객들의 여러 가지 취향과 필요를 모두 맞추어 주는 다양한 기내식을 제공하지만 표가 너무 비싸서 극소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 또한 원치 않는다.

 

p255

 가장 널리 쓰이는 경제 척도인 GDP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만 포함한다.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모든 측정법과 마찬가지로 GDP도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극도의 '자본주의적' 관점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뭔가가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결정할 때 시장에서 어떤 가격에 거래가 되는지를 기준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시장활동만을 계산하는 관행은 경제 활동의 엄청나게 큰 부분을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농업 생산물의 큰 부분이 계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농민이 가지가 기른 작물을 팔지 않고 일정량을 소비하는데 농산물 생산량에서 이 부분은 시장에서 교환되지 않으므로 GDP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행해지는 돌봄 노동 역시 이런 식으로 시장에 기초해 생산량을 측정하면 부자 나라와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그들의 학습을 도와주고,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며, 음식을 만들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그에 더해 가정을 꾸려 나가는 일(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슨 대민저Allison Daminger가 '인지 노동cognitive labour'이라고 부르는 활동) 말이다. 이런 활동을 시장 가격으로 환산하면 GDP의 30~40퍼센트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GDP에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다.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도 시장 밖에서 벌어지는 돌봄 노동을 경제 활동으로 치지 않는 관행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2명의 엄마가 자녀를 교환해서 상대방의 아이를 돌봐 준 다음 베이비시터에게 지불하는 금액을 서로에게 지불한다면(같은 금액을 주고받는다면) 두사람의 재정 상태와 아이 돌보는 시간에는 아무 변화가 없지만 GDP는 올라갈 것이다. 개념적으로 생각해도 돌봄 노동 없이는 경제는 말할 것ㄱ도 없고 애초에 인간 사회 자체가 존재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보수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 중에는 여성이 큰 비율을 차지한다. 따라서 돌봄 노동을 경제 활동으로 계산하지 않으면 여성이 우리 경제 - 그리고 사회 - 에 하는 공헌이 과소 평가될 수밖에 없다.

 

p281. 시장이나 개인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모든 기술적 가능성과 모든 생활 방식 변화를 실현하더라도 지방 정부, 중앙 정부, 국제기구가 지역적/전국적인 대규모의 공공사업을 벌이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시장을 통한 우대나 장려책, 개인적인 선택 등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 개발의 경우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그린 테크놀로지를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냥 시장에 맡겨 두면 기후 변화와 싸우고 대처하는 데 필요한 수 많은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 말 것이다. 이는 민간 기업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고, 설상가상으로 이 압박은 금융 규제 완화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린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사용해도 그 혜택이 가시화되기까지는 몇십 년이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며 심지어 그보다 더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간 부문의 기업들은 몇 년은 고사하고 분기마다 가시화된 실적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기술 개발을 주저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민간 부문이 이러헥 근시안적으로 경영하는 경향이 심하기 때문에 신기술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나 그렇게 개발된 신기술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항상 정부가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이 방면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IT와 바이오테크놀로지 개발로, 둘 다 초기에는 미국 정부가 저의 전액을 지원했다. 실패할 위험이 매우 크고 수익을 내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부문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다수 국가, 중국, 브라질 등에서 태양 발전, 조력 발전 같은 저탄소 에너지 기술이 상당한 규모로 개발되어 사용되어 온 것은 정부 개입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온실가스를 최소한으로 배출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부작용에 대처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게 하는 공적 조치도 중요하다. 시장은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를 원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투자가 몰리기 마련이다. 이 말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들 - 농산물과 공산품 생산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후 변화 적응' 기술 등 - 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투자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기술의 개발과 개발도상국으로의 이전을 보조금으로 주거나 심지어 무료로 지원하기 위한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 변화를 초래한 장본인이 아닌데도 기후 변화의 여파로 훨씬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모든 조치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일부 개발도상국은 글자 그대로 해수면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까지 처해 있지 않은가.

 각 개인이 진정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 할 수 있으려면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부 정책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어떨 때는 개인적으로 행동을 바꾸고 싶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선행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외벽 단열, 이중 창문, 열펌프 설치 등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겠지만 당장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투자를 하는 데 정부의 보조금과 대출 정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후 변화와 같은 시스템의 문제를 시장 환경에서 개인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맡겨 두는 것은 불공평할 뿐 아니라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 '친환경 식생활greener eating' 운동이 아주 좋은 예다. 식품 판매업자에게 각 상품의 탄소 발자국을 완전히 공개하도록 요구해서 소비자가 '올바른 식료품 쇼핑'을 하도록 유도하고, 공해를 많이 발생시키는 식품을 시장에서 추출하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우선 그런 정보가 완전 공개가 된다 해도 소비자는 구매하는 식품 하나하나의 탄소 발자국 정보를 모두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선택을 할 만한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정부가 최소한의 환경 기준을 정립해 놓지 않으면 더 심한 오염을 유발하는 판매업자가 더 값싼 식품을 제공해서 경쟁 업체들은 시장에서 몰아내는 식의 '바닥치기 경쟁race to the bottom' 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p295. 자본주의 발달의 정점, 유한 책임 제도

 이제는 유한 책임제가 일반적 표준이 되었지만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왕 - 절대 왕정이 끝난 다음에는 정부 - 이 허락하는 특권이었고, 오직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위험 부담이 높은 장거리 교역이나 식민지 확장 같은 사업만 이런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하는데도 유한 책임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비판자 중 한 사람이었던 이른바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유한 책임 회사 제도가 경영자들이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하도록 허용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식으로 자금을 모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기업을 100퍼센트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과도한 모험을 하려는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흠잠을 데가 없이 완벽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한 책임제 덕분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때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을 모으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자본주의의 패망을 예상했던 카를 마르크스가 유한 책임 회사야말로 '자본주의의 발달이 정점을 찍어서 나온 제도'라고 칭송했던 것이다. 물론 이 발언에는 자본주의가 더 빨리 발전할수록 사회주의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그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달한 다음에야 사회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마르크스가 이런 선언을 한 직후, 대규모 투자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중화학 공업' - 제철 및 철강, 기계, 화학 공업, 제약 등 - 이 출현하면서 유한 책임 횟하가 더욱 절실해졌다. 장거리 항해나 식민지 사업뿐 아니라 주요 산업의 대부분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지면서 유한 책임제를 사례별로 심사해서 허용해 주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19세기 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유한 책임 회사 설립이 특혜가 아닌 권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때 이후 유한 책임 회사는 자본주의 발달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p296. 성장의 원동력에서 성장의 장애물로

 그러나 한대 경제 성장의 강력한 도구였던 이 제도가 최근에는 성장의 장애물로 변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금융 규제 완화로 인해 주주들은 자기네가 법적으로 소유한 기업에 장기 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방식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창출한 기회가 너무나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영국을 예로 들자면 주주들의 주식 보유 기간이 1960년대에 5년이었던 것이 요즘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투자한 돈을 1년도 되기 전에 거둬들이는 사람이 그 기업을 공동으로 소유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전문 경영인들은 배당금과 주식 환매(자사주 매입)등을 통해 기업 이윤 중 극도로 높은 비율을 주주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주주들에게 돌아간 기업 이윤 비율은 1980년대에는 절반 이하였지만 지난 10~20년 사이 이 수치가 90~95퍼센트로 치솟았다. 기업의 유보 이윤이 기업 투자의 주된원천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변화는 기업의 투자 능력, 특히 장기간을 기다려야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유한 책임제라는 제도를 개선해서 해로운 부작용은 제한하면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

 무엇보다 유한 책임 제도는 장기간 주식 보유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투표권을 주식 보유 기간과 연동해서 장기 투자를 한 주주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이라 부른다.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매우 희석된 형태에 그치고 있다. 이 테뉴어 보팅 제도를 훨씬 더 강화해서 주식을 보유한 햇수마다 1표씩 더 주는 방법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주주들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 여기에는 주식 장기 보유자들까지 포함된다. 대신 기업의 운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 부품 조달 업체, 기어비 위치한 지역의 지방 정부 등이 모두 해당한다. 주주들의 문제는 장기 투자자라 할지라도 언제든 주식을 팔고 기업을 떠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주주들보다 움직임이 훨씬 자유롭지 못한 주주 이외에 '이해관계자'들에게 일정 부분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이른바 기업의 '소유주'들보다 기업의 장기적 미래에 더 큰 관심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준다느 의미다.

 마지막이자 앞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주주들이 자기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장기적 미래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점이다. 투기 성향이 강한 일부 금융 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서 '치고 빠지는 식의 투자' 기회를 줄이고 장기 투자를 할 동기 부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308

 자동화로 일자리를 위협받는 건 딸기 수확 노동자만이 아니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어디서든 인간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체하고,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보도를 피할 수가 없다.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는 인공 지능AI 기술의 발달로 더 고조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손과 근육 뿐 아니라 두뇌마저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까지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불안감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예 중 하나가 <파이낸셜타임스>가 2017년 공개한 '로봇이 당신의 일을 할 수 있을까? Can a robot do your job?'라는 앱이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늘, 적어도 지난 2세기 반 동안은 항상 존재해 왔던 현상이다.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지면에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경제학자, 경제 전문가 등은 줄곧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절약하는 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것은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짓이라 꾸짖어 왔다. 그랬던 기자들과 논평가들이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일자리 자동화의 영향에 대해 걱정을 늘어놓는걸까?

 계급적 위선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오지 않는가? 전문가 계급에 속한 이들은 자기네 일이 자동화의 물결에서 안전하다고 확신할 때는 새 기술의 도입에 거부감을 보이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러다이트Luddite'라 쉽게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동화가 그들과 그들의 친구들 - 의사, 법조인, 회계사, 금융인, 교사, 심지어 저널리스트까지 - 이 속한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 심지어 로봇이 자기네 분야 전체를 완전히 대체해 버릴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뒤늦게 맛보고 있는 것이다.

 

p325

 스위스가 탈산업 경제post-industrial economy의 모범으로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고급 관광 상품 같은 서비스 산업을 통해 번영을 이룬 나라라는 것이다. 

 1970년대에 시작된 이 탈산업 시대 담론은 인간은 잘살게 될수록 더 세련된 것을 원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개념에 기초한다. 일단 사람들이 배를 채우고 나면 농업이 사양길에 접어든다. 옷과 가구처럼 다른 필요가 충족된 후에는 더 높은 차원의 소비재, 예를 들면 전자 제품이나 자동차 등으로 눈을 돌린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물건들을 가진 후에는 소비자의 수요가 외식, 공연, 관광, 금융 서비스 등의 서비스 부문으로 향한다. 이 시점이 되면 산업 분야는 위축되기 시작하고 서비스 부문이 경제의 주인공이 되면서 인류 경제 발달 단계 중 하나인 탈산업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탈산업 시대에 대한 이런 식의 시각은 1990년대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부자 나라 경제 체제에서 생산과 고용 어느 쪽으로 따져도 제조업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서비스 부문의 역할이 커지는 현상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탈산업화'라고 한다.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산업 국가로 부상하면서 탈산업 사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제조업은 중국과 같은 저기술, 저임금 국가가 담당하는 산업인 반면 금융, IT,  서비스, 경영 컨설팅 같은 고급 서비스에 미래가 있고, 특히 부자 나라들은 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논의에서 스위스는 가끔 함께 등장하는 싱가포르와 더불어 서비스 부문을 특화해서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증거로 제시된곤 한다. 이런 논리에 설득당하고 스위스나 싱가포르에서 영감을 얻은 인도, 르완다와 같은 일부 개발도상국은 산업화 과정을 아예 건너뛰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특화해서 이를 수출하는 방법으로 경제를 개발하겠다는 시도를 해 오기까지 했다.

 

탈산업 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위스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 정도가 높은 나라로,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세계 1위를 자랑한다. '메이드 인 스위스'라고 적힌 상품이 많이 보이지 않는 건 부분적으로 스위스가 작은 나라여서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생산재'라고 부르는 기계, 정밀 장비, 산업용 화학 물질 등 우리 같은 보통 소비자가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탈산업 사회의 성공담으로 꼽히는 또 다른 나라인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산업화된 국가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위스와 싱가포르를 예로 들어 서비스 중심의 탈산업 경제의 장점을 선전하는 것은 뭐랄까, 해변 휴양지를 광고하면서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모델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급격한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달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본 책. 저자가 샐러리맨에서 투자를 시작하면서 수백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책의 내용이 다른 투자서에 비해서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달러투자라는 단일 이슈로 된 책은 이 책이 유일한 듯 하다.

달러 실무적 투자에서 입문서로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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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

 여기서 해외여행을 위해 환전할 때 유용한 팁 하나를 주겠다. 우리나라에서 원화를 바로 현지 통화로 바꾸기보다 원화를 달러로 바꾼 뒤 현지에서 현지 통화로 환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로 여행할 때는 특히 그렇다. 베트남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원화를 베트남 동으로 바로 바꾸지 말고, 원화를 달러로 바꾼 후에 베트남에 가서 달러를 동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좋다.

 가뜩이나 귀찮은 환전을, 그것도 2번이나 해야 한다니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냥 원화를 가져가 현지에서 바꾸면 환전 수수료도 아낄 수 있으니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방법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한 이유는 2가지 때문이다. 첫째, 환전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원화를 달러로 환전할 때는 최대 90%의 환전 수수료 우대율이 적용되는데, 원화를 달러 이외의 외국 통화로 환전할 경우, 심지어 그게 엔화나 위안화, 유로화처럼 환전 수요가 많지 않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돈이라면 우대율이 50% 이하로 대단히 낮다. 둘째,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돈, 즉 원화보다 미국 돈, 즉 달러의 가치를 훨씬 높게 인정해준다. 

 

p18

 달러를 매수할 때는 약간의 거래 비용이 발생한다. 환전 수수료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현금 기준으로, 기준 환율과 살 때와 팔 때로 구분되는 데, 이 3가지 형태의 가격엔 보통 1.75% 정도의 차이가 있다. 즉, 기준 환율이 1,000원이라면, 살 때의 환율은 17.5언이 비싼 1,017.5원이고, 팔 때의 환율은 17.5원이 싼 982.5원이다. 돈으로 돈을 사면 제로섬이어야 하지만 환율이 변하지 않는다고 전제해도 사고파는 행위로만 살 때 1.75%, 팔 때 1.75%, 도합 3.5%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자의 세계에서 3.5%의 수수료는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라고 할 만큼 크다. 증권 거래세 0.3%와 비교하면 10배가 넘고, 2020년 기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 예금 이자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만약 이 무지막지한 크기의 환전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면, 차라리 투자를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도 양심은 있는지, 이 환전 수수료를 모두 챙기지는 않는다. '환전 수수료 우대율'을 적용해 주는 것이다. 만약 환전 수수료 우대율 90%를 적용받는다면, 환전 수수료는 3.5%가 아니라 0.35%가 된다. 이는 주식 투자시 증권사 거래수수료와 증권 거래세를 합한 수준과 비슷하다. 돈으로 돈을 사는 환전은 아무것도 사지 않은 것 같은 안전한 일이긴 해도 비싼 환전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면, 투자의 성공 확률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달러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시작은 이 환전 수수료를 가능한 한 낮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21

 원/달러 가격이 하락했다. 이런 결과가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일어난 것인가, 달러 가격이 떨어져서 일어난 것인가? 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2가지 원인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 달러의 가치가 하락해서

 2. 그냥 달러 가격이 하락해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달러의 가치 역시 다른 나라 돈과의 비율에 영향을 받아 정해지기 때문이다. 조금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원/달러 환율이 달러 대비 원화의 교환 비율을 뜻하듯 달러의 가치도 여러 다른 나라의 돈 대비 달러의 교환 비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달러 지수'다. '달러 인덱스 지수'라고도 불리는 달러 지수는 절대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기준으로 원화의 가치에 따라 원/달러 환율의 상승과 하락이 결정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원/달러 환율은 어떤 '값' 이 아닌 '비율'이라는 사실인데, 달러 지수 역시 '비율'이다. 달러 지수는 1973년 3월을 기준 100으로 하여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의 평균 가치를 비율로 산정해 지수화한 지표로, 미국연방준비제도에서 작성하고 발표한다. 이때 그 기준이 되는 통화의 비중은 유로화 57.6%, 일본의 엔화 13.6%, 영국의 파운드 11.9%, 캐나다의 달러 9.1%, 스웨덴의 크로나 4.2%, 스위스의 프랑 3.6%다.

 유로화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기에, 달러 대비 유로화의 가치가 상승하면 달러 지수는 하락하는 구조다. 따라서 달러 투자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경제 발전에 베팅하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달러 약세에 베팅한다는 것은 곧 유럽의 경제 발전에 투자하는 것이다.

  

p23

 

p64

 티끌 모아 티끌

 작은 돈을 열심히 모아봤자 여전히 작은 돈일 뿐이다. 자본가가 되려면 일단 자본이 있어야 한다. 티끌을 모아 자본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욕심이다. 나는 요즘 낮잠으로 하루의 절반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나날은 지난 시절 치열한 노력과 고생의 보상이다. 사회초년생 시절, 퇴근 시간은 분명 오후 6시였지만 내겐 저녁식사 시간일 뿐이었다. 밤 10시에 회사를 나설 때도 조기 퇴근처럼 느껴졌다. 새벽 5시에 퇴근해서 대충 씻고 다시 출근하는 경험이 쌓인 끝에 이제는 낮잠도 자는 행운을 얻엇다. 인생이든 스타크래프트든 '초반 러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미네랄을 캐는 고생과 입구를 막는 수고도 없이 배틀 크루저를 뽑아낼 수는 없다. 티끌로 태산을 만다는 건 적어도 한 판에 3,600% 수익률을 내는 카지노 도박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난 달러 투자로 약 0.3%의 수익률을 거두고도 만족할 수 있었는데, 이는 투자 원금이 300억 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눈덩이를 굴리면 비교적 쉽게 더 큰 눈덩이가 되지만, 티끌을 모으면 그냥 티끌일 뿐이다. 연 3%의 수익률로 10만 원의 자본 소독을 만들려면 300만 원의 자본과 1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 이틀의 노동이면 10만 원을 바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물론, 한 달에 1만원만 아껴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자본가가 되려면 일단 유의미한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재테크와 투자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돈 공부는 눈덩이를 굴리기 위한 것이지 티끌을 태산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티끌이 눈덩이가 되기 전까지는 작은 투자의 성공을 되도록 많이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나의 최소 투자 단위는 1만 달러이지만, 내게도 몇천원 수익에 기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첫술레 배가 부를 수는 없다.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며 작은 투자 성공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티끌이 눈덩이가 되어 마침내 태산이 되는 기적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행복한 낮잠 시간' 같은 건 결코 오지 않는다.

p70

 

p71

 성공적인 투자의 기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좋은 자산을 싸게 산다.

 둘째, 수익을 확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 간단한 원리를 지켜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자산을 구별해 낼 능력도 부족하고, 적정 가격도 모르며, 인내심과 멘탈 또한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한 것은 투자 대상을 나누고 투자 시점을 나누고 투자 금액을 나눈 것이다. 투자의 고수들은 실력이 더 좋은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승자의 게임'을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평범한 투자자들은 실수가 잦은 플레이어가 패하는 '패자의 게임'을 한다. 그러니 우리의 전략은 비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어야 한다.

 투자는 곱하기 게임과도 같다. 단 한 번의 '0'이나 마이너스 숫자만 곱해도 전체의 결과가 없거나 마이너스가 되는 게임 말이다. 그러니 성공적인 결과를 만드는 데 더욱 효과적인 것은 더 잘하려는 노력보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기득권의 성립기원과 그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왜 민주정부를 흔들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설명한다.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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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서구 사회에서 '보수'는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세력으로 상대적으로 부유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반면, '진보'는 현재 체제를 급진적으로 개혁하자는 논리로 상대적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한다. 근대 산업사회 이후에도 계급적 구분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서구 사회에서 계급적 이해관계의 차이로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자민족 중심주의 연장선에서 제국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서구 사회는 식민지 경험이 없다. 따라서 서구 사회에서는 보수가 유지해야 할 질서는 외세로부터 국가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밑에 깔려 있다. 국가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한 부유층(기득권자)의 이익도 보장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서구 사회의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이익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이 먼저 약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처벌에 보수와 진보의 견해차가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

 그러나 한국 사회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냉전체제와 그것의 산물로서 탄생한 반공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남한에서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공은 사실상 '국시國是'였다. 일본과 남한에서 반공은 민족주의 색채를 가진 보수도 일부 공유했으나, 기본적으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전범 집단인 극우세력이, 남한에서는 친일세력이 주도했다. 이들이 미국에 없었다면 일본과 남한에서 각각 '전범'과 '친일 부역자'라는 측면에서 청산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미국의 냉전 전략에 자신을 더욱 일체화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동북아에서 냉전체제는 (사라졌어야 할) 일본의 극우세력과 그것의 쌍생아인 남한의 친일세력을 정치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차이라면 일본에서는 극우세력이 공산주의 세력과 공존한 것이고, 남한에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등 좌파가 발을 붙일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후 한반도에서는 좌파와 우파(극우 친일세력)가 물리적으로 분리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후 민족주의적 색채를 갖는 보수와 극우가 절대적 지배 블록을 형성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은 기본적으로 극우세력이고, 그들을 이어온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민주주의 색채를 가진 보수와 극우가 결합한 정권이거나 극우세력이 주도한 정권이었다. 양자는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다.

 이처럼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본적으로 친일이라는 기원에 도달하게 된다.이런 이유로 엄밀하게 서구 사회를 설명하는 '보수'로 '한국 보수'를 정의할 수 없다.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서구 사회의 극우세력 등과도 또 다른 한국의 보수세력은 자신의 사익을 국익이나 공동체 이익보다 우선하는 매판적 성격을 띤 집단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공적 자원을 자신의 사익 추구에 스스럼없이 활용하거나 부정부패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이유도 친일세력의 후예라는 '원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p88

 한국 보수세력의 기득권은 박정희 정권에서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장기집권에 대한 박정희의 권력욕은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부패로 얼룩진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한일 수교와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얻은 수출과 경제성장,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재벌)의 유착을 동반한 경제성장은 한국 사회에 불공정을 공공하게 구조화했다. 손실은 사회화(국민에게 부담)시키고 이익은 사유화한 전형적인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였다.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위해 완벽한 국민 통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군사적 관점으로 국가와 사회를 재구성했다. 이른바 병영국가다. 병영국가의 효과적 작동을 위해서는 관료 통제가 필수였다. 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빨갱이'로 낙인찍는 등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을 비국민, 반국민으로 규정해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시켰다. 또한, 주민등록번호와 국민교육헌장 도입, 영화 상영시 애국가 제창 등 '국민의 의식과 정신 개혁'이란 목표 아래 국민의 자유를 통제 대상으로 설정했다. 사회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이나 정의감 등을 위축시켜 사회 공동체를 파편화시킴으로써 국민을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는 동물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심한 처벌을 매개로 한 집중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 방식은 독특함을 가진 고유한 존재들을 공장의 상품처럼 똑같은 인간으로 찍내는 방식이었다. 인간의 자발성을 완전히 거세해 지배하는 '총체적 지배' 방식이었다. 이렇게 국민은 파편화, 원자화됐다. 민주화 이후 꾸준히 개선됐다고는 하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협력, 타인에 대한 신뢰, 연대감, 창의적 아이디어, 차이와 다양성, 소통과 공감 역량의 빈곤이라는 문제의 기원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군사정권의 종언 후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 운용을 정부 주도에서 시장 주도로 전환하면서 '군부독재'(국가 통제)를 '시장독재'로 치환시켰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회 자산'인 재벌기업이 재벌총수라는 개인의 배타적 소유물로 전환됐다. 또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함ㅇ로써 경제관료의 권한을 크게 강화했고, 외환위기의 원인인 '자발적 금융화'(세계화)로 금융 자본의 세상이 되면서 (사실상 내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권한이 집중/강화된) 경제관료가 금융자본의 도구로 전락했다. 금융 자본의 논리가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이른바 '모피아 문제'가 부상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기원한다. 요컨대, 군부독재의 종언으로 (군부 권력의 목표를 실해하던 도구에서 벗어나 법치 공간의 '자율성'을 확보한) 경제관료 그리고 (국민과 여론 통제의 수단 역할을 했던) 검찰과 사법부, 언론, 하계 등이 (국가 통제에서 해방된) 재벌자본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배구조로서 재구성된 것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p124

 한국은 2020년 2분기에 -3.25%로 OECD 회원국 중 성장률 면에서 사실상 1등을 했다. 2020년 1분기 -1.3%에 이어 성장률이 곤두박질친 이유는 수출이 1년 전과 비교해 20.3%나 감소하며 성장률을 -6.3%나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이때 수출 급락을 방어한 것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중심이 된 내수였다. 민간소비 0.5% 증가를 바탕으로 내수를 1.1% 끌어올렸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소비-유통-생산 등으로 연결된 경제 생태계가 파괴되는 와중에 소멸성 지역화폐 방식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민간소비를 끌어올린 것이다.

 소멸성 지역화폐는 경제 효율성, 소득 재분배, 지역경제 활성화등 '일석삼조' 효과를 만들어냈다. 특히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소상공인의 매출(수입)을 지원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대하며 선별 지급을 주장하는 이들의 대표적 논리가 피해를 본 계층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정의롭다는 주장이다. 

 

 소멸성 지역화폐에 의한 전 국민 지원금은 최종적으로 소상공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자영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선별 지원 효과도 강화한다. 게다가 선별 지원도 충분하지 않았다. 소상공인은 영업 제한으로 임대료 등 비용 측면과 매출 감소라는 수입 측면에서 양쪽의 손실이 발생하지만, 정부의 선별 지원금은 비용 측면의 지원에만 집중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지역에서 기한 내 소진해야 하는' 소멸성 지역화폐에 의한 전 국민 지원금은 모두 소상공인의 수입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소상공인의 손실에 대한 지원 효과가 확실하다.

 

p125. 전 국민 재나지원금을 막으려는 '그들'의 진짜 속내

 사실 지역화폐 자체는 우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소멸성 지역화폐는 사실상 우리가 처음이다. 유례없는 팬데믹에 대응한 새로운 경제 문법으로 이재명 전 지사에 의해 경기도에서 최초로 시행된 정책이다. 소멸성 지역화폐의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경제 전문가들은 팬데믹 이전 세상과 이후 세상이 전혀 다르다고 떠들면서도 여전히 팬데믹 이전 세상을 위해서 만들어진 고릿적 경제정책의 관점으로 소멸성 지역화폐를 바라본다. 21세기형 재난에 따른 경제충격을 20세기 경기침체 때 처방책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경기침체 처방책이 효과가 있었다면, 이를테면 천문학적 재정지출과 중앙은행의 통화량 공급 등에도 2020년 2분기 전통적인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곤두박질친 것을 뭐라 설명할 수 있는가?

 이처럼 효과가 검증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부패 기득권세력은 왜 반대하는 것일까? 바로 K-방역을 무너뜨리려는 이유와 정확히 같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다수 국민에게 보편복지나 기본소득의 효용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본질적으로 '돈의 배분'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구 사회에서 1970녀대 후반부터 복지국가는 위기를 맞았다. 금융자본의 논리로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려는 금융자본은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경제적 효용성이 좋다는 논리를 도덕적으로 포장해) 선별복지를 전면화했다. 그러나 선별복지의 진짜 목적은 정부 재정지출의 최소화에 있다. 인류 역사에서 어려운 사람에 대한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진 적은 없다. 정부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면 세금도 줄일 수 있고, 그로 발생한 감세의 혜택이 부유층에게 집중된다. 즉, 선별복지는 경제적 약자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부유층에 대한 지원을 없애자는 논리지만, 역설적으로 부유층에 대한 혜택을 크게 늘려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보편복지로 부유층이 입는 혜택보다 보편복지의 재원 마련에 부유층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공적 자원조차 사익 추구에 활용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보편복지를 싫어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개혁 정부의 재정자원 사용을 싫어하는 논리와 똑같다.

 전 국민 지원금을 (부유층을 배제하고) 선별해 지원하자는 말은 논리적 정당성도 없다. 선별 지원을 내세우는 쪽은 소득이 높거나 부유한 사람까지 왜 국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일편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는 기만적인 주장이다. 핵심은 현실 세계에서 코로나19 재난 이전에도 소득이나 자산 불평등은 존재했고, 재난이 끝난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재난 이후에도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지원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할 것인가? 또한 선별 지원의 기준이 되는 88% 혹은 심지어 80% 수치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왜일까? 이들의 진짜 목적이 수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별복지 논리가 무너지지 않게 방어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별 지원 기준에 포함되는 사람 중에는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도 소득 감소가 없는 대기업 정규직-공무원-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포함돼 있다. 선별 지원 논리에 따르면 이들에게 왜 지원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심지어 선별 지원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 중에 코로나19 재난 상황으로 오히려 소득이 감소한 사람이 있는데, 이들의 소득이 조금 높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도 설명을 하지 못한다. 선별 기준이 갖는 모호함이나 기술적 어려움, 지급 후 소득의 역전 등 무수한 문제가 있음에도 '선별'을 방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재명 전 지사의 "재원이 문제라면 지원 기준의 문제가 있는 88%에게 25만 원 지급하는 것 말고 모두에게 22만 원 지급하자."라는 제안이 무시된 이유다. 요컨대, 전 국민 지원과 선별 지원이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선별 지원이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또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어느 면으로 보나 효율적임에도 반대하는 이유는 보편복지나 기본소득의 논리가 강화되고, '재정지출 최소화'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세금을 거두어 납세자인 국민에게 바로 돌려준다는 점에서 재정자원의 독점 권한을 갖는 재정 관료의 이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기득권층에게 부유층의 부담이 증가하는 보편복지가 달가울 리 없다.

 

p130

 일본에서 아베노믹스(구로다의 양적/질적 완화)가 시작될 때 일본 은행의 자산은 GDP 대비 32.8%였던 데 비해, 2021년 2분기 132%까지 증가했다. 2018년부터 일본은 줄곧 돈을 찍어내도 경제 규모가 성장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져 있다. GDP 대비 정부채무의 이자 부담만 해도 이미 경상성장률(=실질 성장률+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미국 연준의 자산 규모도 금융위기 전 GDP 대비 5.9%에서 팬데민 직전인 2019년 말 19.5%로, 그리고 팬데믹 이후 2021년 2분기에 36.7%까지 증가했다. 만약 한 번 더 새로운 감염병이 발발한다면 연준 자산 규모는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까? 문제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아무리 풀어도 보통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동원할 자원이 고갈된 상황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의 진짜 이유도 군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약 한 번 더 새로운 감염병이 유행한다면 급전직하하는 성장률로 정부채무의 이자 부담을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p158

 금융과 재정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금융의 영역에서는 '1원 1표'의 시장원리가 작동하기에 사회적 통제가 없으면 공공성(자금중개 기능)이 약화하고, 빈익ㅂㄴ 부익부를 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한다. 게다가 금융과 달리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는 재정이 선출 권력에 의해 작동하지 않을 때 금융의 탈선과 불평등 열차는 폭주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재정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기재부의 권한을 재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재부는 사실상 모든 권한을 장악하고 있다. 기재부 권한으로 규정돼 있는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은 기재부가 사실상의 청와대임을 의미한다. 내치를 담당하는 국무총리의 손발 노릇을 하는 국무조정실장(차관급)을 항상 기재부 출신이 장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권한이다. 재정자원 확보의 핵심수단인 세금 업무와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인 예산과 기금에 대한 모든 권한(편성, 집행, 성과 관리)을 갖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절대적인 부동산 세제나 공공임대주택 관련 기금이 모두 모피아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한 집중은 군부독재가 종식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군부 독재 체제에서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이원체제였다. 경제기획원은 국가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종합계획의 수립,운용과 투자 계획의 조정,예산의 편성과 그 집행의 관리, 중앙행정기관의 기획 조정과 집행의 심사 분석, 물가안정 시책 및 대외 경제정책의 조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이와 비교해 재무부는 화폐,금융,국채,정부 회계,조세,외국환,대외 경제협력,국유 재산 및 전매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경제기획원(1994년 12월 폐지)과 재무부가 재정 경제원으로 통합됐다. 문제는 청와대로 가야 할 경제기획원이 재무부로 넘어간 것이다. 단일한 경제관료 세력이 공적 자원과 권한을 사유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권한을 독점한 경제관료는 자신의 사익 추구를 위해 시장의 자본과 결탁했다. 한편,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기획원 폐지와 더불어 한국은행 독립성 강화도 동시에 진행됐는데, 이는 한국은행을 시장자본에 넘긴 것이다. 한국은행의 권한을 가진 금융통화위원 7인 중 3인이 기재부 그리고 1인이 자본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한국은행 역시 시장자본에 넘어간 것이다.

 공적 자원과 권한이 엘리트의 사익 추구와 시장자본의 소유물로 전락하면서 재정자원은 기업(자본) 중심으로 배분되고, 조세체계는 부유층에 대한 혜택이 집중되는 한편, 금융 시스템에서 공공성은 사라져 오직 수익성만 추구하는 등 보통사라의 삶을 피폐화시켰다. 여기에 한국 은행은 재벌과 금융 자본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왔다. 금융 안정(금융 불균형)의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소득 불평등에 관심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경제관료 엘리트에게 집중된 권한은 정부조직의 장악으로 이어지고, 퇴임 후 민간 금융회사나 로펌이나 재벌기업 등에 재취업해 로비스트로 활동한다. 실제로 이들은 퇴임 후 은행연합회, 저축은행중앙회, 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한국거래소 등에 재취업해 사실상 정책 로비 및 외풍 차단기 노릇을 수행한다. 삼성전자나 대형 로펌 등에도 마찬가지로 진출한다. 따라서 기재부와 금융위 그리고 한국은행 등이 본래의 공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재정 및 금융 민주화의 출발점이고, 이를 통해 보통사람이 재정 및 금융자원에 접근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없는 한 경제적 취약계층이 채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 뿐 아니라 가계채무와 부동산시장의 경착률은 불가피하다.

 

p162

 2019년 기준 토지를 소유한 법인기업의 상위 1%가 기업이 소유한 전체 토지의 73.3%를 가졌다는 것만 봐도 이 형태가 잘 드러난다.

 이 같은 부의 축적 방식은 가계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혁신 역량의 부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의 높은 기대수익으로 상위층 가계도 부동산에 뛰어든다. 상위 1% 가계가 전체 토지의 30%, 상위 5%가 전체 토지의 절반이 넘는 55.4%를, 그리고 상위 10% 가계가 전체 토지의 69.1%를 차지할 정도로 토지 소유의 불평등은 절망적이다. '절망적'이라 표현한 이유는 하위 약 40%는 토지 1평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의 지니계수만 0.8이 넘어선 지경이다. 토지 소유의 불평등은 토지 소유의 집중이 심했던 19세기 조선 말 사회보다 훨씬 심하다. 지속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p181

 기재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사반대하는 것은 대한민국 특권층의 뿌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팬데믹 재난 상황에서 일회성으로 그쳤다면 한국 사회의 특권층이 결사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기본 소득으로 발전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ㅇ다. 기본소득은 보편복지의 성격을 갖는다. 보편복지는 (부유층이 지지하는) 재정지출 최소주의와 항상 충돌해왔다. 금융화와 신자유주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에 보편복지가 공격을 받으면서 서구의 복지국가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국 차원의 기본복지인 '21세기형 보편복지'가 한국에서 부활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여러 장점 중에서도 최저임금 인상률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사회임금(정부이전소득)이 턱없이 낮고 시장임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저임금노동자의 생계 조건을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 인상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영업을 포함한 저임금에 의존하는 저부가가치 사업장이 광범위한 상태에서 높은 최저 임금 인상은 이들의 어려움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저임금노동자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최저 임금 인상률을 완화할 수 있는 효과를 불러온다.

 둘째, 기본소득이 21세기형 보편복지인 이유는 기본소득 자체가 재정 민주주의와 조세 시스템의 개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재정은 중앙집중식 배분 시스템에 기초한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등이 거둔 세금을 정부나 의회 등이 배분을 결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재정자원의 배분은 기재부의 권한이었고, 이 권한으로 기재부는 정부조직에서 가장 힘이 강한 조직이 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지역구 예산 배정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까지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징수한 세금을 모두 국민에게 균등하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재부의 과도한 재정자원 배분 권한을 줄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기재부의 기득권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을 국민이 회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도입은 세계 최초의 재정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지역사회의 소상공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는 재벌(유통) 자본의 이익과 충돌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시장에서 힘이 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모피아에게 지역사회의 소상공인은 구조조정의 대상일 뿐이다. 자본보다 더 자본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모피아에게 지역화폐는 거추장스러운 대상일 뿐이다. 실제로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을 때 대형유통업체는 매출이 감소했다. 2차 지원금이 1차와 같은 방식으로 지급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던 사실상의 이유다. 반면에 자영업자 단체는 적극 지지했다. 기존의 어느 골목상권 보호 대책보다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는 기재부나 한국은행 등에서도 기피한다. 기재부는 기존에 사용하는 온누리상품권이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온누리상품권보다 사용 범위가 넓은 지역화폐 사용이 확산할 경우 온누리상품권 사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온누리상품권에 애착을 갖는 것일까? 온누리상품권과 지역 화폐의 차이의 본질은 중앙정부 발행의 상품권이라는 점에 있다.중앙정부가 발행하는 한 그에 필요한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을 장악하고 있는 기재부의 권한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온누리상품권 발행 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의 준정부기관이지만 현재의 조봉환 이사장은 기재부 국장 출신이다. 온누리상품권 예산 배분 권한을 이용해 타 부서(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 자리까지 챙기는 기재부의 권한을 보여주는 사례다.

 무엇보다 지역화폐의 효능감이 확산할수록 지역사회의 부가 지역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 공공은행 같은) 지역 금융의 수요가 증대할 수 있다. 이는 (지역에서 금융자원을 추출해 서울 등 대도시에 투입하는) 기존 금융자본의 이익 축소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한국은행의 통화공급 독점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기재부가 조세재정 연구원이나 한국개발연구원 등 산하 국책기관에 기획용역을 발주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체감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많은 국민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팩트다.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단기간 내에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p188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또다시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겁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외환위기를 당했던 1997년 국가채무, 정확히 표현하면 정부채무는 GDP 대비 10%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전후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S&P기준으로) AA-에서, 투자를 권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매우 투기적인 수준의 B+로 추락했다. 무려 10등급이 하락한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신용등급은 AA로 위에서 3번째 등급까지 상승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가신용등급이 11단계나 올라가는 동안 정부채무가 거의 5배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국가신용등급과 정부채무 간 상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주요 선진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같은 개방도가 높고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에도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정부채무가 급증했으나 항상 최고등급인 AAA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채무는 1990년대 70% 미만에서 현재는 거의 2배 수준인 130%대까지 증가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지속하고, 외환보유고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 관점에서 볼 때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이유는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적자 부분을 금융시장 개방으로 유입된 외화로 막았는데, 그렇게 금융시장에 투자했던 외국인이 자금을 일시에 회수하면서 외화 유동성에 급격한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p192

 매년 5월에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열린다. 재정은 국가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핵심 자원이다. 국정 방향이나 목표 등에 따라 재정 운용이 결정된다.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이 '과감한 재정정책'을 주문하자 이 자리에서 홍남기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마지노선을 40%로 본다."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에서는 장관이 대통령에게 '고언'을 드렸다고 두둔했는데, 특권층 카르텔의 공동전선을 펼친 것일 뿐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은 107%, 일본은 220%, OECD 평균이 113%인데, 우리나라는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OECD 평균 수치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미국과 일본 등은 기축통화국이라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며 반박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질문은 합리적이었다. 40%라는 수치는 경제학의 족보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용한 적이 없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마지노선이라 완강하게 주장했던 40% 선이 일찍이 무너졌는데 대한민국에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p199. '나랏돈'이 쌓인다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모피아는 왜 재정지출 최소화에 목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피아의 탄생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고동성장기는 군부독재의 통치 기간이었다. 당시 경제 엘리트 관료는 군부독재라는 물리적 폭력에 기반한 권력의 도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런데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면서 구도에서 주요한 3가지 변화가 발생했다.

 첫째,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문민화를 진행하면서 국가 주도를 '악'으로 규정하고, 경제의 국가 주도를 시장 주도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자산인 재벌기업을 재벌총수의 배타적인 개인 소유물로 전락시켰다. 재벌기업은 대주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도성장에서 정책금융이 결정적 역할을 했듯이) 사회 전체가 키운 것이었다. 기업경영이 부실화될 때 재정이나 한국은행의 특별융자 등이 투입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군부 권력이 공공연히 재벌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할 수 있던 것이다. 재벌이 재벌 총수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권력이 만들어주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던 것이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재벌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포기하고, 권력을 시장에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삐가 풀린 재벌자본이 시장 권력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자본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향이지만, 한국의 자본은 기존의 주요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과 비교해 부의 축적에서 정당성이 부족하다. 실제로 선진국의 자본은 '혁신'이 부의 축적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꽤 있으나, 한국의 자본은 재벌을 생각하면 '정경유착' 이미지가 연상되듯이 혁신보다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사실이다. 불공정은 국민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재벌 중심 경제 시스템의 특징을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로 규정하는 이유다.

 둘째, 세계화로 알려진 '자발적 금융화'를 추진했다. 미국 월가와 워싱턴이 추진한 자본자유화와 그에 따른 금융시장 개방 압박이 한국에도 1980년대 후반부터 밀려왔다. 압박을 받은 군부 정권에서는 점진적 개방을 추진했는데, 김영삼 정부에서는 '압박'에 의한 개방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적극적 개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자발적 금융화'라고 표현한 이유다. 당시 추진했던 OECD 가입도 적극적 금융시장 개방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지나치게 금융에 대해 무지했고, 그 결과로 외환위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자발적 금융화와 더불어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으로 한극의 금융 부분은 월가(자본) 논리로 재구성됐다. 시장 권력이 국내 재발자본과 해외 금융자본으로 재편됐다.

 셋째, 김영삼 정부는 국가 주도로 경제를 운영할 때 군부 권력의 목표를 기획할, 즉 국가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경제기획원을 해체하고, 재무부에 통합시켰다. 중장기 발전전략부터 예산과 기금 배분, 세제, 화폐와 외환 등 경제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가진 공룡 경제관료 조직인 재정경제원이 등장한 것이다. 경제 중심의 국가 운영에서 재정경제원은 사실상 내치와 관련된 대부분 권한을 장악했다. 군부 권력처럼 자신들을 통제했던 국가권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새롭게 부상한 시장 권력인 재벌자본 및 금융자본과 결합했다. 재벌 대기업과 금융자본 등의 이해 논리가 경제관료에게 내재화됐고, 이들이 바로 '모피아'로 발전한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 재벌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던 경제관료는 퇴임 후 재벌 대기업이나 민간 금융기관 그리고 이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대형 로펌 등으로 이동해서 로비스트 역할을 수행한다. 은행자본의 이익단체인 은행연합회 회장, 2금융권의 대표적인 저축은행 이익단체인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카드회사들의 이익단체인 여신전문협회 회장, 손해보험협회 회장, 심지어 자본시장 이해관계자들을 회원사로 가진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이 모두 기재부 혹은 기재부와 사실상 한 몸인 금융위원회 출신이다. 재벌 대기업도 다를 바가 없다. 김영삼 정부 때 재정경제원 장관을 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한 한승수나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원 장관을 한 한덕수 등은 김앤장의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고문직을 수행한 것을 상기하면 된다. 김영삼 정부에서 재경원 출신으로 강만수와 더불어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외환위기 주범 중 한 명으로 지목됐던 윤중현은 김앤장 고문으로 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으로 화렿게 돌아왔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노동부 장관, 기재부 장관을 하며 이명박과 처음과 끝을 같이 했던 박재완은 공직을 떠난 후 (이건희 사면의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모피아는 새로운 권력인 재벌 및 금융자본과 사실상 한 몸이 되어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구조의 중심에 있다. 모피아가 재정지출 최소주으(재정안정주의)를 추구하는 이유도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제 생태계에서 대한민국은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라는 최배근의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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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유럽연합은 한편으로 국경을 없애고 평화와 협력과 화합을 진전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부문 축소, 해고, 긴축 경제, 기업의 자유를 방해하는 규제 철폐, 금융자본가들의 천국등 만인의 만인을 위한 무한경쟁의 유럽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즉, 협력이나 연대의 빈곤은 유럽연합의 구조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유럽연합이나 유로존은 불완전한 통합체였다.

 

p35

 예를 들어, 의료 파업 와중에 SNS에 회자됐던 어느 의사의 글은 많은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길지만 최대한 옮겨본다.

 

 곧 big5 병원 문 닫고 한번 지옥을 경험해볼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가 얼마나 좋았다는 것을... 너희가 의대 들어가는데 돈을 대주었냐? 의대등록금을 대주었어. 용돈을 주었어? 레지던트 수련 받을 때 월급 줬어? 병원 차리는 데 돈 보내줬어? 공공재? 공공재라고 하는 것은 육군사관학교처럼 등록금 다 대주고 학생 때부터 용돈도 주고 하는 사람들한테... 우리도 그렇게 했다면 그냥 찍소리 않고 따라가... 의료보험으로 해주었다? 의료보험 안 받고 우리 마음대로 가격 정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 지금 얼마나 좋아? 그래도 정말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지 않나? 우리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야. 그 밑바탕이 뭔 줄 아냐? 국민을 위하는 마음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최고로 똑똑한 아이들이 big5 병원 스탭으로 있으면서 피 터지게 경쟁해서 나는 2등을 해본 적이 없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렇게 된거다. (...) 왜 국가가 의대교육부터 레시던트 수련, 병원 건립까지 하나 보태준 것도 없으면 xx인지. (...) 업무개시명령을 하고 법적 조치를 할려고 해? 안그래도 우리는 의료를 지킨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는데... 구속시키고 다 짤라... 상관없어 그래도 나중에 취직하고 일할 데 많아... 걱정하지 마라 기술직이거든...

 

 

 국가가 의사 교육, 병원 건립에 하나 도와준 것도 없이 왜 난리냐고 하고, 의료보험 안 받고 우리가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며 협박을 한다. 이에 대해 국민은 이렇게 응답했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의료보험 받지 말고 니들이 맘대로 정해서 받으세요. 그래서 떼돈을 벌어보세요. 대신, 국가는 이렇게 합니다. 의대 정원을 관리하지 말고 무제한으로 풀어 의사들을 무제한으로 배출하세요. 의대 교수들이 반발하면 외국에서 의사들을 교수로 초빙하고, 어느 나라든 의대를 졸업했으면 의사면허증을 줍시다." 전교 1등만 하고 빅5 병원의 의대교수가 된 분(?)이 의료서비스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시장 자유'를 외치고, '자유'라는 개념을 '내 맘대로'와 동의어로 이해하는 '전교 1등'의 수준을 확인하였다. 자신들의 기술(?)을 믿고 국민을 협박하는 '오만함'을 보고, 이들을 더는 '선생'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까지 국민의 분노는 들끓었다. 그동안 '마취 후 성폭행하는 의사', '리베이트 받고 대리 수술을 맡기는 의사', '의료사고로 환자가 여러 번 사망했지만, 면허 유지하는 의사' 등이 일부 의사의 모습인 줄 알았는데 대부분 의사가 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대두되었다.

 의사 스스로가 자신들은 그냥 '천박한 엘리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이미지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의사협회가 정부 및 여당과의 합의안에 서명하기에 이른 상황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지도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 개편'과 관련한 내용이 빠져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공공 의대 문제 등으로 파업을 하며 요구해온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건정심 구조 개편 문제를 꺼내듦으로써 의사들(대전협)이 국민 건강권을 볼모로 사익을 추구하는 싸움을 해왔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의사단체가 건정심 위원회 내 의사 위원 몫을 늘려서 의료수가 등 이익과 관련한 각종 현안 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고 한 것이다.

 이처럼 의료파업으로 드러난 의료진의 민낯은 우리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사망 신고를 보여준 것이다. 의사와 판,검사 등 전교 1등의 '엘리트 괴물'을 양산하는 학교교육시스템이 정통성이 없는 한국 사회 권위 체계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p136

 게다가 비정규직, 파견직 직원 중에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못하고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이른바 산업재해(산재) 사망노동자의 수가 2018년 2,415명에 달할 정도로 OECD국가 중 대한민국의 산재사망률은 1994년 이후 통계가 제공되는 2016년까지 23년 동안 21회나 1위를 차지했다. 위험업무를 저임금 노동력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해를 낮춰 산재보험료를 감면받고, 이에 따르는 책임까지 회피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원청 기업의 이해에 따라 위험업무가 외주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는 수차례 하도급 단계까지 거치면서 노동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특히 비용 절감을 꾀하는 하청 업체들이 숙련공이 아닌 초보 기술만 익힌 저임금 (간접고용)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산업재해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처벌강화 입법보다는, 선진국처럼 사전예방 기조로 산업안전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비용 절감 때문에 위험을 외주화하는 원청 기업이 안전에 대해 투자하리라 기대하기 어렵고, 안전 투자를 할 역량이 없는 하청 업체에게 떠넘기면 노동조건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기업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10월 권고한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노동장의 노동3권 보장 등"을 수용해야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고용노동부 등 정부(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가 소극적인 이유도 기업의 비용 부담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p162

 그런데 경제활동 지원서비스는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의료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GDP 대비 미국의 의료서비스 시장 규모는 1970년 6.9%에서 2016년에는 17.9%로 성장했고, GDP 대비 미국의 건강비용 지출은 1960년 5.0%에서 2013년에는 17.4%로 지속해서 증가하였고, 미국민의 1인당 건강비용도 1970년 335달러에서 2018년 1만 1,172달러로 31배 증가하였다. OECD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 국민 1인당 연 의료비는 1만 586달러로 2위인 스위스의 7.317달러, 3위인 노르웨이의 6.187달러를 크게 앞지르고, 우리 나라는 3,192달러로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65세 노인인구 및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라는 공적 의료보장체계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백인 중심 사회인) 미국은 '전국민 의료보장체계가 없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즉 보험시장이 발달한 미국에는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방식의 민간 의료 보험이 존재하며 미국 전체 인구의 60% 정도가 이 같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 보험의 대부분이 고용주를 통한 보험으로 '실업'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즉 고용상태에서는 고용주가 보험료의 80%, 근로자가 나머지 20%를 각 부담하지만, 실업상태가 되면 고용주는 더는 이 같은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근로자는 아예 해당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도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민 의료비 지출이 (기대수명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할 정도로) 건강 증대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이다. 참고로 2017년 미국의 기대수명은 78.6세로 한국의 82.7세는 물론이고 그리스의 81.4세나 포르투갈의 81.5세보다 낮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이후 3개월도 되지 않아 미국에서는 5,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 의료보험체계 상으로는 민간 의료보험제도의 적용을 더는 받지 못하면서도 공적 의료보장도 받지 못하는 '무보험자' 숫자가 급증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막대한 의료비용으로 인해 무보험자들은 이를 진단받거나 치료받는 것을 꺼리게 되고, 여기에 마스크 착용이나 사회적 거리 두기, 기본 위생 등에 철저하지 못한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맞물려 코로나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미국은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미국은 의료를 공공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 여전히 산업과 서비스로 보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미국은 자국의 정체된 의료산업 패러다임을 "원격 의료, 소셜 네트워킹,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예외적 의료 개입, 셀프서비스 진단 및 자가 관리, AI 및 정보 채팅봇, 유비쿼터스 접근법" 등을 통해 의료의 변화를 촉진하고 결국은 비용 증대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비용은 국민과 환자들에게 청구서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결국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는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

 

p220

 1997년 11월~2018년 12월까지 공적자금지원 총액은 168조 7,000억 원이며 이 중 116조 8,000억 원이 회수되었다. 즉 회수되지 않은 돈이 약 52조 원이었다. 서민금융의 채무불이행율이나 채무불이행 금액 규모를 문제로 삼는 사람 중 기업이나 은행 지원에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p221

 지역공공은행은 중앙정부의 권한만 분산시키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주요국들과 달리 중앙정부에 권한이 집중된 한국의 경우 지역공공은행 설립의 최대 장애물은 기재부가 가진 승인권이다. 중앙정부 독점권의 약화 때문에 민간 지역은행은 허용하면서 지역공공은행의 설립을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 사수와 다름없다. 지역공공은행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국가의 조세권이 뒷받침되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신용)가 법정화폐가 될 수 있었듯이, 지방정부가 가진 조세권을 바탕으로 지역공공은행을 만들 수 있다. 즉 지방정부 및 지역주민의 출자금을 자본금으로 하고, 지자체 예산과 지역주민 예금으로 신용을 창조하며, 지역주민이 직접 관리하고 통제하면 중개수수료와 운용비용도 낮출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지역공공은행이 뿌리는 내리는 이유도 신용평가 역량이나 운용비용 등에서 상업은행보다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역공공은행은 주민을 위한 공공사업, 예를 들어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과 혁신에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의 금융 약자들을 위한 자금 수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지역공공은행의 장애물을 해결하려면 중앙정부의 허가가 필요하기에, 이는 결국 지방분권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IMF 금융위기, 미국발 경제위기등을 겪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는 이미 폐기되고 있는 80년대말의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경도되어 있다. 

 최근 들어 조금씩 그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문제점들에 대해 심층분석하고 한국의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대중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반갑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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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연결의 세계는 분리된 세계와 달리 통합 효과(이득)와 전염 효과(피해)라는 새로운 효과를 수반한다. 그리고 연결이 강화될수록 통합 효과 뿐 아니라 전염 효과도 커지므로, 전염 효과의 피해도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 코로나19 재난, 기후위기형 재난 등은 모두 전염 효과의 대규모 피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는 (세계가 금융을 매개로 촘촘히 연결된) '금융네트워크'의 산물이다. (투자은행은 헤지펀드를, 상업은행은 투자은행을 모방하는 등) 개별 금융회사는 분산투자를 했지만, 모든 금융회사가 같은 자산 보유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자산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모든 금융회사가 손실을 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p22

 2000년 이후 우리가 경험한 제조업의 쇠퇴(탈공업화), 9.11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후쿠시마 방사능 피해, 호주 산불 사태나 코로나19 재난 등은 서로 관련성이 없을까? 탈공업화와 금융위기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고, 양쪽을 매개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소득 불평등의 심화인데, 소득 불평등은 9.11 테러나 코로나19 재난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국가 내, 국가 간)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인간의 생태계 개입을 증대시킨다. 땔감을 구하기 위한 나무 헤손, 경지 확보를 위한 방화, 더 저렴한 자원을 확보하려는 자본의 논리, 개도국의 개발 정책 등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 결과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로부터 사람에게로 인수공통감염병이 전파될 '개연성'을 높인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단백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야생동물고기의 소비는 포식자-먹이 균형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에이즈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에이즈바이러스나 코로나바이러스 등은 이른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자연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동물이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결과이다.

 또한 (기후변화와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인과관계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재난은 자연 파괴의 결과이고, 자연 파괴와 기후변화의 상관성을 고려할 때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재난 역시 무관하지 않다. 즉 기후변화는 가뭄, 홍수, 태풍, 지진 등으로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자연 재난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다시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산불,가뭄,홍수 등의 이상 기후로 숲이 파괴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훼손돼 이들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왔고, 또 숲이 줄어들면서 숲이 저장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더 많이 배출되어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처럼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재난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한 살람이나 사회 혹은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 혹은 자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나 관련성이 커짐에 따라 정규분포의 평균치 근처가 아닌 양극단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큰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작은 현상이 일어날 확률은 크다'는 것을 설명하는 팻테일, 롱테일, 블랙스완 등이 회자되는 배경이다. 연결이 강화되면서 대규모 피해나 재난 같은 '새로운 처음'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처음'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는 계속 '새로운 처음'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인류 사회가 '변화'할 때이며, 그에 따라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될 것임을 의미한다.

 

p35

 코로나19 재난은 미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의 의료산업 규모와 의료진은 세계 최고다. GDP 대비 미국의 의료서비스 시장 규모가 1970년 6.9%에서 2016년에는 17.9%로 성장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인 의료비 지출이 (기대수명이 OECD 국가 중 최하의 그룹에 속할 정도로) 미국인의 건강 증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란 사람은 코로나19로 10만 명이 사망한다면 "매우 잘하 일(Very good job)"이라고 말해 구설에 오를 정도다. 워싱턴,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주 등에서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지급을 연방정부에 독촉하고 있는데, 인공호흡기 3만 개를 원하는 뉴욕주에 400개밖에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적인 우려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또 하나 시선을 끌었던 것이 미국 독감 사망자 수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해 3만 명 이상이 독감으로 사망하고 있는데, 2020년에는 이를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2017~18년 독감 시즌에는 6만 1,000명이 숨지고 4,500만 명이 감염되기도 했다. '독감'은 '코로나19'와는 달리 이미 백신이 개발되어 예방할 수 있음에도, 미국에서 독감으로 매해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곤 한다. 하지만 미국의 열악한 의료시스템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의료버험이 민간보험사에 맡겨져 있고, 보험료가 비싸 저소득층은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설령 보험이 있다 해도 본인 부담금이 많게 책정된 경우 병원 문턱을 넘어서기가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비싼 의료비로 인해 독감 예방접종을 쉽게 받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질병 취약 연령대인 65세 이상 인구의 독감 예방 백신 접종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2017~18년 독감 시즌 기간 18세 이상 성인의 독감 예방접종률이 37.1%로 2016~17년보다 6.2% 포인트나 낮아졌다. 65세 이상 인구의 독감 예방 백신 접종률 역시 59.6%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저조한 수치다. 반면 한국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자에게는 무료 독감 에방접종을 시행하고 있으며, 2017년 기준 독감 예방접종률이 82.7%였다. 이처럼 미국 의료산업의 사례는 의료산업 규모와 국민의 의료서비스 혜택 간의 상관성이 낮음을 보여준다.

 

p38

 정권 말기에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터지자, 부시 정부는 '글로벌 불균형'을 해결할 목적으로 (세계적 규모의 문제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협동관리를 의미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형태로서 'G20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2010년 G20 서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이 제안한 것은(각국의 경상수지 흑자 또는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 대비 4% 이내로 제한하자는) '경상수지 목표제'였다. 그러나 인위적인 수치 설정에(독일,일본,중국 등) 주요국들이 반대하면서 미국의 목표는 관철되지 못했다. 이에 오바마 정부는 무역보복을 위한 법을 강화해 통화전쟁도 불사할 각오를 내비쳤다. 이른바 '2015년 무역강화 및 무역촉진법' 그것이다.

 2015년 범안의 제7장, 즉 환율조작 부분을 지칭하는 (환율 분야의 '슈퍼 301조'로도 불리는) '베넷-해치-카퍼' 수정 법안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늘어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미국 정부가 환율조작국에 직접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에 '주요 교역 대상국의 환율정책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는데, 이 법안에 따라 2016년 보고서부터 환율조작 의심국도 포함하여 발표했다. 미국 재무부가 '환율조작국'으로 분류하는 '심층분석대상국'의 요건은 1)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을 내고 있고, 2)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3% 이상이면서, 3) 달러를 연간 국내총생산 대비 2% 초과 순매수 또는 12개월 중 8개월 이상 순매수한 경우 등 3가지다. 이 3가지 요건 중 2가지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으로,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된다.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재무부의 감시 대상이 되며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이처럼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4% 이상에서 3% 이상으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나머지 기준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이나 국내총생산 대비 2%를 초과하는 달러 매수 규모 등도 이론적 근거가 없다. 트럼프는 이러한 조치도 효과가 없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직접 무역보복을 하고 2019년부터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국내총생산 대비 3% 이상에서 2% 이상으로 다시 강화한다.

 그리고 3가지 기준 중 1가지만 위반한 중국을 2019년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국제 경제질서에서 '규칙'은 사라진 것이다.

 

p120

 교육의 어원이 에두케레Educera(끌어내다), 즉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듯이, 주입식 교육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아니다. 진정한 '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창의성은 오랜 훈련을 통해서 서서히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서 생겨나는 문제 해결능력이기 때문이다. 즉 자유와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학생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문제를 찾아내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시간과 자유시간이 감소하는 한국 교육은 시대를 역주행하는 것이다.

 

p127

 먼저, '이기적 개인'을 다수결고 '지배'하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로는 협력과 호혜성을 발현시키기 어렵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일찍이 민주주의가 단순한 대중의 지배 이상의 것이 되려면 (과도한 개인주의에 경도되고 국가에 대한 수동적 자세, 정치적 무관심을 낳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적 상호부조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협동할 줄 아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토크빌이 간파한 민주주의의 본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문제는 협력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집단행동의 딜레마'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때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일탈행동을 하거나 무임승차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무임승차 문제는 구성원의 자발적 협력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 '집단행동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나 개인적 자유의 제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책임의식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율적 인간 Homo Autonomous'에 적합한 정치제제로 민주주의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다행히 디지털 생태계와 연결의 세계에서는 협력과 네트워크, 관계의 지속이 개인의 이익 극대화에 부합하기에 협력과 관계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 즉 기회주의적 태도의 잠재적 이득은 협력이 중단되면 소멸하기에 협력은 하나의 규칙이자 규범으로 정착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 배타적 소유권, 위계제 등을 특성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이익 공유와 협력을 특성으로 하는 플랫폼 경제와 연결의 세계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문화적 기반인 개인주의는 자발적 참여를 어렵게 한다.

 

p166

 연결성이 강해지면서 개인주의 문화의 한계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모습은 자신이 속한 문화가 무력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부 유럽인과 미국인 등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코로나'로 부르며 조롱해도 코로나 조롱은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치안 당국의 모습은 이들이 최고 가치로 여기는 '개인의 존엄'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준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한국의 방역 성공을 서구 우월주의 관점에서 깍아내리고 사고와 태도는 여전히 '새로운 처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또 다른 위기'가 도래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서구의 위기는 일회서 위기가 아님을 의미한다. 이처럼 서구 사회가 한국의 방역 성공 원인을 개인의 자유 침해에 익숙한 문화 혹은 독재 경험의 산물 등에서 찾는 것은 자유와 자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자율성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p168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큰 고통을 치뤘던 중국은 1분기 성장률 -9.8%(전 분기 대비, 연율 -6.8%)로 한국의 1분기 성장률 -1.4%(전 분기 대비, 연율 1.3%)와 크게 비교된다. 코로나19는 베이징 모델이 새로운 세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해주었다. 이는 중국인의 무치無恥 문화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코로나19의 원인 제공을 부인하는 등 국제 사회의 눈총을 무시했다. 이는 치욕 자체를 외면하는 무치 문화에서 비롯한다. 2019년 12월 중국 의사 리원량이 사스증후군 의심환자 7명을 발견하고, 이를 의대동문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며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리원량을 소환했다. 즉 입을 틀어 막는 통제(비밀주의) 방식으로 접근하며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이는 중국 사회의 투명성 결여를 상징한다. 게다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2008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뤼크 몽타니 박사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위적 실험을 통해 생성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서방 세계는 중국 정부에 바이러스 기원과 초기 확산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코로나19에서 드러난 전체저의적 감시체제와 시민의 자율성 제약, 자민족 중심주의와 민족주의적 고립 등은 중국 사회가 새로운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p236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는 한국 사회의 공정성 확립에 필수적 과제다. 부의 대물림으로 인해 기회의 공정성이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위 10%는 신분이 거의 대물림되고 있다. '금수저-흙수저'는 괜히 떠도는 얘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세대까지 포함한 개인토지의 2018년 지니계수는 0.809로, 현재 토지 소유의 불평등은 조설 말기 토지를 가장 많이 소유했던 지역보다 불평등하다. 2018년 현재 개인 토지는 상위 10% 세대가 68.7%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불평등한 소유 구조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이 발생하면서 신분을 대물림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최저임금 인상을 빠른 속도로 진행한 결과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다소 개선됐지만,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따른 주거비용의 상승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대부분 소멸했다.

 

 왜 사람들은 주택과 토지 등을 많이 소유하려고 할까? 높은 기대수익 때문이다. 기대수익은 토지나 주택등을 보유하는 동안 해당 부동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자본이득(임대소득, 지대소득 등)과 해당 부동산을 처분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으로 구분된다. 두 소득 모두 기본적으로 불로소득이다. 한 추정에 따르면 2007~2016년 10년 동안 해마다 450~510조 원의 부동산 소득이 발생하고, GDP 대비 비율로는 10년 평균이 무려 37.1%에 달했다. 이 중 다른 자산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평균 수익을 공제한 나머지를 불로소득이라고 했을 대 그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해마다 GDP의 22% 이상(264.6~374.6조 원)이었다. 이러한 높은 불로소득의 발생으로 부동산 집중이 심화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불로소득이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하 하위 계층에서 이전된 소득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비효율성을 야기할 뿐 아니라 부도덕하다는 점이다.

 

 

 40년에 걸쳐 무역에 종사한 경험과 금융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현상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저자의 최대의 미덕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는 현재의 투자전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괜찮은 내용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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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1971년 닉슨쇼크로 금과 달러의 고리가 떨어져 나간 이후 미국은 근원인플레이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달러를 무제한으로 발행해 왔다. 이로 인해 노동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GDP보다 금융자산으로 부를 늘리는 자산소득이 서너 배 앞서가는 금융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와 부를 주도해 왔다.

 1970년만 해도 세계 금융자산의 규모는 세계 총생산 규모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0년 마다 2배씩 증가하여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금융자산 규모가 세계 총생산 규모의 거의 4배에 육박했다. 심지어 헤지펀드가 주로 운영했던 파생상품 중 신용부도스와프 시가총액은 2007년 말에 62조 달러에 달해 당시 세계 총생산액 54조 달러보다도 커졌다. 인간의 속성이 투기로 치달아 단일 파생상품의 규모가 세계 총생산액보다도 커진 것이다. 이로 인해 터진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은 약효가 떨어진 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폭증하자 투기 거래가 급등했다. 2017년 연말 기준 세계 파생상품 시가총액은 무려 544달러에 달해 세계 총생산액 규모 78조 달러, 세계 주식시장 규모 81조 달러, 세계 채권시장 규모 215조 달러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 인간의 탐욕, 특히 월가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p43

 '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60년에서 1970년대 공중화장실마다 붙어 있던 안내문이다. 학교, 예비군 훈련장, 버스터미널 등의 남자 화장실에는 이런 안내문과 함께 흰색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바로 오줌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의 오줌 속에 있는 우로키나아제라는 성분은 뇌졸증 치료제를 만드는 주원료다. 당시 우로키나아제는 1kg에 2,000달러였다. 마땅히 수출할 길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오줌을 모아 화학처리를 한 뒤 일본에 팔아 돈을 벌었다. 그 돈은 1973년에는 50만 달러, 1974년에는 150만 달러에 달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1,000달러 남짓하던 시절, 우로키나아제는 상당히 매력적인 고가의 수출품이라 수집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었다. 훌륭한 수출품이었던 소변은 88올림픽으로 화장실 대부분이 수세식으로 바뀌며 수거하기 어려워졌다.

 참고로 우리 녹십자의 경우 중국 소변을 수입해 약을 만들었으나 품질이 낮아 북한 평양에 합작 공장을 설립해 문제를 해결했다. 북한은 에이즈 등 비뇨기성 질환이 거의 없어 좋은 품질의 소변이 수거되었다.

 

p45

 이런 일화도 있다. 담배의 국내 소비를 조금만 줄이면, 그러니까 담배 길이를 1cm만 줄이면 잎담배 1,400만 달러를 수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길이를 1cm를 줄이면 국내 소비자가 싫어한다는 의견에 결국 7mm만 줄여 6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한 적도 있었다.

 

p62. 비극의 시작 '자이테크', 일석삼조 돈놀이

 일본 기업의 기세는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출보다는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일본 기업들은 '자이테크'라는 자산운용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자이테크 수익이 크니 자연히 영업에는 소홀하게 되었다.

 자이테크 투기가 본격화된 것은 일본 기업들이 역외시장인 런던 유로본드 시장에 접근하면서부터였다. 역외시장이란 자국의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시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표적인 역외시장으로는 유로통화시장과 유로채권시장이 있다.

 1981년 일본 대장성은 금융자유화 조치의 하나로 일본기업들이 유로본드시장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란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채권을 말한다. 일본 기업들은 자사 주가가 오를수록 BW채권 값이 따라 올랐기 때문에 아주 낮은 이자율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엔화 가치 상승이 지속되는 점을 이용해 달러 표시 BW를 발행한 뒤, 스와프(swap)시장에서 엔화 표시 채무로 바꾸어 엔화 자금을 일본으로 끌어들였다.

 '통화스와프'는 만기에 계약 당시 환율로 원금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매매하는 거래이다. 이에 따라 가치가 떨어지는 달러 대신 가치가 올라가는 엔화를 조달해 만기시점에 환차익까지 덤으로 얻었다. 그리고 통화스와프는 통화의 교환 외에 금리의 교환도 수반되어 양국 간의 금리 차이를 계산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자금 조달 과정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이자를 지급했다. 곧 돈은 돈대로 빌리면서 오히려 이자를 받았다. 더 나아가 조달할 자금을 주식시장이나 연 8%를 보장하는 증권사 투금 계정에 투자해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돈을 빌리면서 되레 이자까지 받고 또 빌린 돈을 예치하고 이자를 받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었다. 더구나 만기 때 엔화를 달러로 바꾸어 갚으니 환차익까지 남았다. 일석삼조였다.

 게다가 당시 미국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대의 고금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일본 우대금리인 6%보다 3배나 높았다. 일본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국 채권에 투자하면 일본에서보다 3배 이상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이로써 일본 기업가들 사이에선 돈 놓고 돈 먹는 일명 '자이테크' 열풍이 분 것이다.

 재테크로 번 돈은 다시 일본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투자되어 활황 장세를 이루었다. 그러자 자산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버블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수출로 번 돈을 기업에 재투자하지 않고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마침내 일본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1987년 미국을 앞섰다. 땅값도 마찬가지였다. 버블이 한창일 당시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었다. 1988년이 되자 세계 10위권 은행은 모두 일본 차지가 되었다.

 버블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누구도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이렇게 형성된 거품이 붕괴하면서 시작됐다.

 

p95

 '워싱턴 컨센서스'는 1990년 전후로 등장한 미국의 경제체제 확산전략이다. 한마디로 외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빗장을 강제로라도 열어 미국 자본의 활동무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외환위기 같은 위기발생을 제3국의 구조조정 기회로 삼아 미국식 시장경제체제인 신자유주의를 심겠다는 미 행정부와 IMF, 세계은행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의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거세경제안정화, 경제자유화, 사유화, 민영화'가 그 뼈대이다. 개발도상국들이 시행해야 할 구조조정 내용은 '정부예산 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인하,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 우량기업 합병/매수 허용, 정부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등이다.

 그런데 이런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이를 방치함으로써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관철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3세계의 외환위기를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아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조지 소로스조차 이를 '시장근본주의'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그때부터 유럽과 동남아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각개격파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는 미국의 해외시장 개척의 선발대가 되었으며 특히 헤지펀드가 그 선봉장 노릇을 했다. 소로스 등 헤지펀드가 중남미를 시발로 1992~1993년 유럽통화 위기 때 핫머니로 유럽 중앙은행들을 유린하고, 1997년 7월 아시아 외환위기 때 먼저 태국을 초토화시켰다.

 

p140

 무자본 특수법인인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는 달리 연준(FRB)은 자본금이 있는 주식회사로 그 지분은 민간은행들이 나누어 갖고 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유대계 은행들이 대주주라는 것이 통설이다.

 제이피모건을 위시해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 로스차일드 가문의 런던과 베를린의 로스차일드은행, 그리고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의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도 연준의 주요 주주다. 그 외에 파리의 라자르브라더스은행, 이탈리아의 이스라엘모세시프은행, 그리고 연준 창립위원장을 역임한 폴 워버그 가문의 바르부르크은행 등이 연준의 주주로 알려져 있다. 1917년 제정러시아를 대체할 새로운 임시정부가 결성되는데 2,000만 달러를 지원했던 쿤뢰브은행도 연준의 주주로 알려져 있다.

 다행스럽게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주무하는 기관의 대주주는 세계 각국에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

 

p142

 미국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연준 본점에는 이를 대표할 7명의 이사진을 선출해 여기서 추대된 대표 1명에게 관리책임을 맡겼다. 연준 본점에 있는 7명의 이사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에서 인준하도록 되어 있다. 임기는 14년 단임이고, 일단 임명된 이사와 대표는 누구도 해고할 수 없다. 이는 이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새 이사의 임명 터울은 2년이다. 창립 초기 이사진에는 미국 재무부장관과 감사원장이 7명 이사에 속했다. 그러다 그나마도 민간이사로 교체되면서 연준은 미국 정부와는 완전 별개의 독립적인 기구가 되었다.

 연방준비은행이 생기기 전에는 뉴욕의 은행가들이 뉴욕 지역의 자금만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 전체의 은행 준비금을 주관할 수 있게 되었다.

 

p166

 미국은 전통적으로 채무국가다. 그들은 호황기에는 빚을 내서 소비하고 수입해 즐긴다. 그리고 빚이 턱밑에 차오르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누적된 외상값, 곧 국제 채무의 대대적 탕감으로 덕을 본다. 이렇든 남의 빚으로 살아가는 국가는 약달러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빚 탕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의 고민이 있다.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달러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강달러란 돈의 실질 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국제 결재 통화로서 강한 지배력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이 달러를 요구하게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특히 위기의 징후가 보이면 세계의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달러로 회귀하는데, 유럽 재정위기가 좋은 예이다.

 미국 곧 세계 기축통화국의 입장에선 세계 경기 위축과 통화 경색을 막기 위해 우선 달러를 많이 풀어야 한다. 그래야 기축통화의 장악력이 유지된다. 미국이 유럽의 재정위기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이유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의 권력이 주는 엄청난 시뇨리지 효과를 양보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내 재정정책상의 약달러 정책과 국제 기축 통화로서의 강달러 정책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어느 나라가 약한 통화를 외화보유고로 보유하겠는가? 이 모순된 딜레마를 가능한 한 눈치채지 못하도록 끌고 나가는 과정이 '교묘한 달러 곡예의 역사'이다. 이 모순이 바로 암호화폐가 화폐혁명의 불을 지피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2008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

p212. 과도한 주택 경기 진작 정책

 

 미국은 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 내외로 소비가 활발하게 살아나야 성장하는 나라다. 따라서 역대 정권들이 가장 손쉬운 부동산 경기 진작을 통한 경기부흥에 열을 올렸다.

 자기 집을 갖는 것은 모든 미국인의 꿈이었다. 소득세가 도입된 이래 주택 모기지 이자는 소득세 공제대상이라 혜택이 컸다. 그래서 대부분 급여생활자는 소득세와 주택임차료 대신 이를 모기지 이자로 활용해 집을 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자동차 구입과 신용카드 대출이자에 대한 소득세 공제는 폐지하면서 주택 모기지 이자만은 소득세 공제를 유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주택을 담보로 모기지를 얻어 자동차 등을 사는 편법을 쓰기 시작해 1994년 주택담보의 68%가 자동차 구입 등 다른 목적에 사용되었다.

 게다가 1997년 빌 클린턴 정부는 경기부양의 하나로 주택건설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부부 합산의 경우 50만 달러 한도로 양도소득세를 폐지했다. 그러자 그때부터 미국인들은 주택을 투기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2001년 IT 거품 붕괴와 9/11 테러 이후 연준은 불황을 우려해 금리를 열세 차례나 급격하게 내려 2001년 6.5%였던 기준금리를 2003년 7월까지 1%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저금리 정책의 지속은 당연히 유동성 과잉을 불러왔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대출을 늘렸다. 그러자 부동산 수요가 늘면서 주택 가격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p213. 돈 한 푼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4년 10월 재선운동에서 연거푸 내집 마련을 강조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정책지원이 뒤따랐다. 주택이 투자대상으로 떠오르자 2005년에 구입한 주택의 40%는 1가구 2주택이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종잣돈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50만 달러짜리 집을 사기 위해서는 적어도 10~15만 달러 정도의 자기 돈이 있어야 했지만 2006년 이런 규정 자체를 아예 없애버려 보증금 없이 집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은행은 집값만 올라가면 된다는 이유로 주택구매자의 신용조사도 약식 처리하거나 생략했다.

 

p214.  대출채권의 증권화로 거의 무한대의 대출 여력이 생기다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풍부한 은행권은 대출경쟁에 혈안이 되었다. 게다가 장기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한 주택담보부증권(MBS)이 개발되었다. 이는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로써 은행들은 주택대출자금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대출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이러다 보니 소득, 직업, 재산이 없어도 대출이 되는 NINJA(No Income, No Job or Asset)대출, 이른바 '묻지마 대출'이 기승을 부렸다.

 

p215. '묻지마 대출'을 부추긴 파생상품의 등장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하든 데다 금리가 낮아 중산층과 서민들이 내 집 마련 대열에 대거 동참해 여러 해 동안 주택건설 호황으로 이어졌다. 이때 머리 좋은 유대금융인들이 대출은행의 불안을 덜어줄 파생상품을 개발했다.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신종 파상생품이었다.

 제이피모건의 블라이드 마스터스가 1995년 발명한 신용부토스와프는 금융시장 지형을 바꿔놓았다. 그녀가 개발한 신용부도스와프는 금융시장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 곧 돈 떼이는 두려움을 해소시킨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한 금융사가 한 기업의 회사채를 구입한다고 치자. 문제는 리스크다. 기업이 망하기라도 하면 채권매입 금융사는 막대한 손실을 본다. 이럴 때 다른 보험사나 은행이 보험료를 받고 원금을 보장해주는 상품이 바로 신용부도스와프이다.

 집값이 계속 올라가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떨어지면 연쇄적으로 대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은행들은 위험을 덜어 주는 파생상품 덕분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단지 그 위험을 떼어내어 위험에 투자하는 제3자에게 전가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파생상품 덕분에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지자 은행들은 앞다투어 신용등급이 낮은 사라들, 즉 프라임급 이하 비우량급에 해당하는 '서브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에게까지도 담보가치 100%로 주택 대출을 해주었다. 이로써 수요가 폭증하면서 투기로 이어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 나타나 5년 사이에 집값이 무려 75%나 올랐다.

 

p216. 급격한 금리인상의 부작용, 서브프라임 사태

 

 그때서야 연준은 무언가 시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졌다. 과잉유동성에 의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게 된 연준은 2004년 6월 이후 정기적으로 금리를 올려 2006년8월 5.25%까지 인상했다.

 금리를 내릴 적에도 쫓기듯 서둘렀는데, 이번에도 단기간에 급격하게 끌어 올렸다. 이것이 실책이었다. 당연히 부작용이 뒤따랐다.

 먼저 시장이 놀라 기준 금리 인상 이상으로 모기지 금리가 올라 주택 수요가 줄어들며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출받아 주택을 사서 다시 팔아 이윤을 얻으려 했던 사람들이 대출금조차 갚을 수 없을 만큼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낮았던 서브프라임 대출에서부터 문제가 터졌다.

 

p217. 파생상품 남발이 일으킨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도화선에 불붙인 건 파생상품이었다. 2007년 장외거래 파생상품 중 신용부도스와프 거래 규모만도 약 62조 달러로 무려 그 무렵 세계 GDP 총액 54조 달러보다도 많았다. 이를 그린스펀은 점잖게 '비이성적' 과열이라 불렀으나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장외에서 거래되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얼마나 팔았는지 알 수 없어 금융기관 간에 불신으로 돈거래가 막혔다. 곧 신용경색이 일어나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이 금융위기의 첫 단계였다.

 

-2008년 신용위기의 실체, 과잉유동성

 모든 금융위기의 원인은 '과잉유동성'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부르는 용어만 조금씩 달랐다. 1907년 공황의 원인은 '과잉자본' 때문이라 했고, 1929년 대공항 원인은 과도한 '통화팽창' 정책의 결과라 했다. 결국 과잉유동성이 버블을 불러 도가 지나치자 터진 것으로 '과잉유동성'은 1907년, 1929년, 2008년 공황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또 유동성으로 막았다.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못하고 돈을 살포해 봉합한 것이다. 금융권에 돈을 풀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 자산 가격을 부풀려 나락에 떨어졌던 부실한 은행들과 한계기업들을 구해낸 것이다.

 

p24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선진국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통화량을 증가시켜왔다. 또한 각국 금리도 사상 최저수준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이 풀렸음에도 물가가 안정되어 있었고, 일본과 유럽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했다.

 양적완화 곧 금융권을 통한 돈 풀기는 담보력이 있는 상위계층에게 흘러들어가 자산 가격을 올린 반면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는 흘러가지 않아 소비자 물가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경제위기에는 더 많은 유동성이 풀렸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화폐수량설'로 물가변동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물가수준은 결국 화폐량과 유통속도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생산품 가격을 P, 생산품 거래총량을 T, 화폐량을 M, 화폐유통 속도를 V라 한다면, 'MV=PT'라는 것이다.

 지금은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한 돈이 중앙은행 금고나 은행에서 자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좋아지면 문제는 달라진다. 잠자고 있는 돈들이 투자처를 찾아 쏟아져 나오면 통화량의 유통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면 시중 유동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여기에 놀라 중앙은행이 급격한 계단식 금리인상을 서두르면 탈이 날 수 있다.

 그때는 기업부채 등의 부도사태가 터지면서 시장이 망가지거나 아니면 인플레이션의 쓰나미가 밀려올 가능성이 있다.

 

p251

 이란이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란의 핵보유 의지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다. 이는 이스라엘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또한 이란에 이러한 기술개발을 공여할 수 있는 나라로 북한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 역시 악의 축으로 불렸던 이유이다. 미국의 북한 견제는 이스라엘 측의 사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p256

 지난 10여 년 중국의 M2 공급량은 세계 최고였다. 그들의 GDP 대비 M2 비중은 2.1배에 달하지만, 미국은 제로 금리에 이어 4차례나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풀었음에도 0.9배에 불과하다. 중국이 얼마나 많은 돈을 풀었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지금의 중국 경제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의 고민이 있다. 인민은행은 2019년 초부터 버블이 만연해 있는 중국 사회의 '거품' 빼기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고 공격적인 긴축정책을 펴왔다. 그러던 차에 무역전쟁이 터지자 순식간에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지 않아도 긴축으로 인한 자금난에 수출마저 급감하게 되자 상당수 기업이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최근 인민은행이 정책을 바꾸어 시중 은행에 기업들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적극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한 것은 중국 정부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무역전쟁이 격화되자 중국 대기업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중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신용등급이 무려 AAA였던 '상하이화신국제' 회사도 부도를 냈다. 중국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이 관세 폭탄으로 사실상 시장을 축소하자 상당수 중국 기업이 자금 압박에 휘청거리다 부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p261. 워싱턴 컨센서스의 목표, 중국의 온전한 개혁

 무역전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은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한 말 그대로 무역전쟁인줄 알았다. 그런데 무역전쟁이 진행될수록 전선이 다각도로 펼쳐지는 걸 보고서야 이게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중국 시장을 자유경제체제 곧 개방경제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의도와 더불어 중국 굴기의 꿈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패권전쟁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을 온전한 자유 시장체제 곧 개방경제로 바꾸어 놓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WTO 가입 때 약속했던 사안들을 포함해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와전개방이 미국의 목표다.

 우선 미국은 보복관세율 부과로 2019년 중국 수입품을 600억 달러어치 줄인 데 이어 올해는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 제조업에 미국 시장을 맡기지 않고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귀환 독려와 더불어 제조기지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이의 추진이 더 빨라지고 있다.

 이뿐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인터넷 개방 요구 등 중국의 민주주의를 고양시켜 자유민주주의 사회체제로의 전환을, 군사적으로는 중국의 팽창전략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중국의 공산당 1당 독재 체제를 끝장내고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것이 목표다.

 

p278

 금융자산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화폐의 본원적 기능인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폐 수요 증가보다는 투기적 수요가 많이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일 평균 외환거래액이 2004년 3조 달러가 넘어섰다. 이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의 무역거래와 장기투자에 필요한 외환은 하루 300억 달러로 1%에 불과했다.

 

p307. 연준의 간접 통화정책

  유동성을 줄이더라도 가능한 일반인들이 눈치 못 채게 연준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시중 은행들로 하여금 국채를 사들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지금 연준이 하고 있는 일을 반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연준의 자산 곧 본원통화 발행액은 6월 10일 7조 1,689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오히려 줄고 있다.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약한 양적완화를 안하는 것은 아니다. 매월 국채와 모기지 증권을 사들이고는 있으나 그 보다 더 많은 돈을 레포 시장과 외국 중앙은행 계좌로부터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긴축으로 돌아섰다면, 인플레이션 진행과 달러 하락세가 멈춰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다, 연준은 지금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동성을 늘리고 있다. 대형 은행들로 하여금 시중에 돈을 풀게 하는 방법이다.

 연준에는 은행들의 지불준비금이 보관되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법정 지불 준비금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준이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이를 '초과지급준비금리'(IOER)라고 한다. 이를 기준금리 범위 내에서 운용하고 있다. 지금 연준은 현재 초과지급준비금리를 0.1%로 낮게 운용하고 있다. 은행들이 그 이상의 수익을 원한다면 돈을 연준에 쌓아두지 말고 밖으로 들고 나가 수익을 거두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연준은 대형은행들의 위험 감수를 억제하는 '보충적 레버리지 비율(SLR)' 곧 자본요건을 2021년 3월31일까지 1년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연준은 이를 완화해주면서 한마디 보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돈으로 자사주 매입 등 엉뚱한 곳에 쓰지 마라.'는 경고였다. 즉 초과지불준비금으로 국채를 사라는 이야기다. 실제 위 그래프에서 보듯 대형 은행들이 6월 이후 초과지불준비금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시중에 돈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p320. 레이 달리오의 추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이런 상황을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레이 달리오는 지금 단계에서 "현금은 쓰레기."라고 단언하며 '물가 연동체와 금 그리고 원자재'에 나누어 분산투자 할 것을 권한다.

 

p349

 이래저래 투자자들은 혼란스럽다. 지금은 유동성 장세인 만큼 주자자들은 연준의 다음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달러 가치 하락, 광의의 통화 M2의 가파른 상승, 인플레이션 예상, 외환시장 우려, 버블 붕괴의 위험, 연준의 애매한 스탠스 등'의 혼란 속에서 투자자들은 자기 자산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포트폴리오에 안전 자산인 금, 은을 필히 추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p375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금과 은은 쓰임새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금은 장식용 수요가 전체의 절반이고 투기용 수요는 24% 정도, 산업용 수요는 10% 안팎이다. 그런데 은은 산업용 수요가 절반을 넘는다. 전기 전달능력이 뛰어나 컴퓨터, 전자부품, 의료기기 등의 재료로 쓰인다. 항균 능력도 뛰어나 항균제 성분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경기불황이 예상되면 산업용은 수요가 줄어들어 은값이 금값보다 더 빨리 내리고 경기회복이 예상되면 반대로 더 빨리 올라간다. 그래서 은값은 금값보다 가격 변동성이 크다.

 

p398

 듀크대 캠밸 하비 교수는 "비트코인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돈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며 종이화폐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거래 내역이 정부의 블록체인에 기록될 수 있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돈을 숨기거나 세탁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이야 말로 국가 암호화폐의 장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방코인을 "연방정부가 모든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디지털화폐"라고 정의하면서 초기에 자유주의자들이 정부통제를 벗어날 수단으로 생각했던 블록체인기술이 국민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p405

 각국 중앙은행이 추진 중인 디지털화폐는 추적 가능한 중앙집권형 화폐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계좌가 추적 당한다고 생각하면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은 디지털화폐의 운영체계를 이원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곧 중앙은행에서 상업은행으로 디지털화폐를 보낼 때는 추적 가능한 디지털화폐를 보내지만, 상업은행과 개인 또는 기업 간 거래에는 추적 불가능한 익명성이 보장된 암호화폐 시스템과의 연동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주도 블록체인 서비스 네트워크(BSN)에 '허가형' 블록체인 하이퍼레저 패브릭과 이더리움, 이오스 플랫폼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화 시스템을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앙은행이 초당 30만 건 이상 거래되는 소매시장까지 관여할 경우 통화관리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액 거래에서 개인의 익명성을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다만 이는 무제한의 익명성 보장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익명성' 보장을 의미한다. 곧 일정액 이상의 큰 금액의 거래는 실명 전자지갑을 통해 거래되어야 하며, 마약, 도막 등 불법거래 자금으로 의심될 경우 정부는 영장을 발부받아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 정부는 가능한 국민들의 거래 익명성을 최대한 존중하지만 필요시에는 개인의 거래내역을 추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빅브라더 사회의 본격적 도래이다.

 

 야마다 아키오라는 이름이 십몇 년 전쯤에 회자되던 적이 있었다. 미라이 공업의 창업주로서 유토피아 경영이라고 이름 붙여진 매우 독특한 경영방식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이름표를 날려서 가장 멀리 날라간 이들을 승진시킨다던가 하는 괴짜스러운 방식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에 다큐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데, 꽤 재밋었다. 2014년에 돌아가셨는데 최근에 도올 김용옥의 노자 강의를 들으면서 문득 이 분이 생각났다. 어찌 보면 야마다 사장의 경영 철학은 노자의 사상과 닮은 부분이 많다.

 

 이 책은 2004년 당시 야마다 사장이 화제가 되면서 그 시류를 따라 나온 책으로 보인다. 책의 내용을 보면 의외로 괴짜라기보다는 탄탄하고 성실한 경영철학과 방법론을 보여준다. 제비뽑기로 사람을 뽑는다라는 선정적인 내용이 화제가 됐지만 근저에는 그의 녹록치 않은 인생철학과 경험이 녹아 있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즐겁게 벌자!(楽して 儲ける!)이다. 원제가 그의 철학을 잘 반영한다. 요즘 감각으로 봐도 원제를 그대로 사용하는게 책의 판매에도 더 도움이 되었을텐데라는 생각이다.

 

 미라이 공업과 야마다 아키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생각의 원점을 알 수 있을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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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

 

 일본은 나라 전체의 구조를 크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즉 예전처럼 다시 톱다운(top-down)으로 구조개혁을 한다고 해서 나라의 본질까지 변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국민 대부분은 여전히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구조체계만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의식 또한 개혁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닛산자동차는 카를로스 곤의 지도 아래,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V자 회복을 이루어냈다. 이 카를로스 곤은 닛산자동차에 막 들어왔을 때 이 말을 강조했다.

 

 "일본의 노동자는 섬세하고 치밀하며 근면하다. 이것은 정말 귀중한 재산이다. 하지만 일본에 없는 것은 매니지먼트다. 사원들은 닛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 문제가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곤은 극심한 톱다운으로 말미암아 '관료주의에 빠져있던 닛산의 조직을 과감하게 개선을 했고, 그 덕분에 닛산의 기업체질은 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곤만 존재했다면 닛산의 V자 회복은 무조건 가능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곤의 '전략'이 큰 도움은 되었지만 사원 개개인의 의식이 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원의 의식이 변화했기 때문에 회사도 변할 수 있었고, 따라서 닛산은 극적인 V자 회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사장이 먼저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냥 남들과 똑같이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경영한다면 실적을 늘리기는커녕 살아남는 일조차 불안하다. 어떻게 좋은 '전략'을 세우고, 회사를 '차별화'해 가는가. 그것이 명운을 정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사장과 함께 사원도 변해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변하기 시작한다. 사장이 변하면 사원도 변한다. 개인이 변하면 회사가 변하고 나라도 변해간다.

 

 즉 이 나라의 미래는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을 맺혀가며 열심히 일하는 국민 각자의 노력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미라이그룹의 사원들도 마찬가지다.

 

2019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의 부동산 시장의 상황에 대한 인사이트와 함께, 부동산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돕는 책이다. 

 

부동산에 대한 내용이긴 하지만 조금만 그 내용을 음미해보면 주식 등 일반적인 투자의 기본에 대한 인사이트에도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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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

 

 이제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규제하는 거라는 얘기다. 그럼 대한민국 최초의 부동산 규제책은 언제 나왔을까? 박정희 정부 때인 1967년이다. 보수 정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다. 그때 발표한 정책이 '부동산 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었다. 양도 차익의 50%를 세금으로 걷어가는 정책이었다.

 그때 박정희 정부는 이런 선언을 한다. "이제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 그 정책으로 인한 시장의 결과는 어땠을까? 매도자들은 매물을 모두 수거했고 부동산 시세는 1년 동안 80% 폭등했다.

 

 

p109

 

 부동산 상품 중에 실수요만으로도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임대 주택 정도를 제외하면, 사적 재산이라고 판단되는 물건은 모두 가수요가 있다. 그래서 시세 전망을 하려면 가수요의 규모를 항상 눈여겨봐야 한다.

 가수요가 실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이 더 많이 오른다. 가격을 올리는 거래 빈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p124

 

 먼저 대량 입주로 일어날 만한 문제를 정리해 보자. 특정 지역에 신규 아파트 공급이 많아지면 지역 수요만으로 입주 물량을 소화하기 어렵다. 그럼 준공 후 미분양, 장기간 미입주 물량이 쌓이게 되고 신규 아파트 가격이 내려간다. 이어 주변 구축 아파트 가격도 내려간다. 결국 시장 전체의 주택 가격이 폭락한다.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매우 간단하다. 가격이 폭락한 준공 후 미분양, 미입주 물량 중 입지가 좋은 곳을 선별한다. 폭락 혹은 하락한 가격으로 매매한다. 입주 대란에 대한 전략으로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하지만 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장 참여자 모두 똑똑한 소비자다. 좋은 물건을 시장에 방치한 채 내버려 둘 리가 만무하다. 헛된 기대를 하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

 

 입지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보자. 주택 보급률이 200%라 해도 공급이 늘 부족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주택 보급률이 50%밖에 되지 않아도 신규 입주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지역이 있다. 기존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입지가 있고, 구축 아파트 수요는 없고 신규 아파트 수요만 있는 입지도 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사를 하는데, 어떤 조건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입지 조건만으로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는지, 상품 조건까지 고려해야 하는지 반드시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지역별, 입지별로 입주 대응 전략을 짜는 게 부동산 입지를 공부하는 이유다. 입지 공부를 하다 보면 그 입지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까지 알 수 있다. 상품에 대한 적정 가격도 이해된다. 입지, 상품, 가격 모두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래를 모두 예측하고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되는 미래에는 대응할 수 있다. 우려되는 리스크는 낮추고 희망하는 확률은 높일 수 있다. 공급 과잉은 우리가 활용해야 할 부동산 현상이지,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p172

 

 매수 · 매도 타이밍에 절대 법칙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투자할 때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적용된다. 어떤 경우라도 바닥 가격에 사서 머리 가격에 팔 수는 없다. 그건 투기고 욕심이다. 그런 기준으로 투자하면 백전백패한다.

 부동산 차트를 활용하면 부동산 바닥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그게 바닥인지 아닌지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 2년 이상은 지나야 바닥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머리 시점은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다. 부동산 시세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겠지만, 결국 양호한 입지의 경쟁력 있는 상품이라면 우상향 곡선으로 가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한 그렇다. 머리 시점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언제 매도할 것인가라는 판단의 문제가 관건이다. 그리고 정답은 없다.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매수 · 매도 시점을 어떻게 선정해야 할까? 먼저 선호하는 입지와 실거주할 만한 상품 수준을 고려해 매수 대상 아파트 단지를 선정해 보자. 인플레이션만큼은 상승할 수 있는 양호한 입지 조건과 경쟁력 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 아파트 단지의 시세를 정기적으로 체크해 보자. 가격이 오를 것이다. 내릴 것이다 등의 판단 자체는 금지다. 그저 주변 아파트 혹은 주변 시세 대비 조금 쌀 때 매수하고, 조금 비싸다는 인식이 생길 즈음에 매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p175

 

 주의할 점이 있다. 복기를 하면 바닥과 머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바닥에서 산 뒤 머리에서 매도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모의 투자 시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금 싼 듯한 시점과 조금 비싸다고 판단되는 시점을 찾는 것이다. 바닥에서 사서 머리에서 팔 수 있다고 제안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거래만 성사시키고 수수료만 챙기려는 업자일 가능성이 100%다.

 

 매수 · 매도 시점에 대한 의사 결정은 무조건 본인이 해야 한다. 모든 투자의 기본은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파는 것이다. 이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안전하고 확률 높은 매수 · 매도 시점의 선정 기준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

 

 

p177

 

 2010년 이후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신축이든 구축이든 대부분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다. 2010년 이후에는 재건축 가능 아파트를 제외하면 20년 차 미만 아파트만 올랐다. 2020년 이후에 10년 차 미만 아파트 위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신축 아파트에 대한 로열티를 상승하고, 기축 아파트는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2000년 이전 부동산 시장처럼 지역별, 상품별 격차가 크지 않은 시장이라면 재건축 연한 연장이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축과 구축의 수요가 급격하게 벌어지는 시장에서는 신축 공급을 줄이면 신축 아파트는 물론 준선축 시세까지 폭등으로 이어진다.

 

 '팩트 폭격'을 하나 더 한다면, 과거 공급 제한으로 2012~2014년 입주 물량이 급감했고 이후 서울 부동산 가격은 상승했다. 2017~2018년 서울 아파트 시세 폭등은 말 그대로 새 아파트 위주였다. 입지 좋은 곳에 새 아파트가 공급됐으니 시세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신축과 구축의 가격 차가 두 배 가까이 나는 시장에서 강남 신축 시세를 잡아 타 지역까지 공급을 축소하는 정책은 이후 시장 전개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역별 상한선은 존재한다. 현재 강남구는 3.3㎥ 당 5,100만 원 전후, 도봉구는 1,400만 원 전후다. 강남구가 1억 원이 되면 도봉구는 3,000만 원이 되리라는 예측은 현재의 시장을 너무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은 질적인 시장이다. 입지, 상품, 지역 위상, 입주민에 따라 넘어갈 수 없는 가격대가 있다. 지역마다 지불할 수 있는 가격대가 다르다.

 

 현재 시장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실수요층'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서울은 전년 대비 거래량이 4분의 1로 줄었다. 투자 수요가 아니라 실수요가 감소했다. 이건 시장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여전히 서울 부동산 시장을 투자층이 주도한다고 판단한다. 지난 50년간 부동산 시장에서 성공한 정책은 실거주층을 위한 정책이었고, 실패한 정책은 대부분 투자자를 타깃으로 했다. 두 집단의 비율 자체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게다가 시장을 입지마다 세부적으로 쪼개 보지 않는다. 강남권을 제외하면 서울에서도 시세가 상승하는 지역보다 조정받는 지역이 더 많다. 지방은 상승하는 지역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정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재건축 연한을 연장하면 공급이 줄어든다. 기존 입주 물량이 많으니 괜찮다는 전문가도 있다. 그래 봤자 2022년까지다. 이후에는 분명 공급량이 급감한다. 세대수가 증가하는 만큼 공급이 늘지 않으면 공급 축소와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단독주택, 다세대 빌라, 오피스텔도 주택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 주택까지 포함하면 절대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국토교통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라. 현재 거주 유형에 관계없이 아파트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고, 특히 신규 아파트 선호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필요한 건 비아파트도, 구축 아파트도 아닌 신축 아파트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수요 대비 공급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를 부정하는 건 억지일 뿐이다. 그래서 서울 공급을 축소함으로써 서울에 몰린 수요를 비서울 지역으로 분산하려는 정책도 나온다. 하지만 서울 수요층 중에는 비서울 지역으로 절대 가지 않을 수요도 있다.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격은 상승한다. 이게 서울 시세 상승의 이유다.

 

 수요 · 공급 문제를 떠나, 강남 집값이 오른다고 그 자체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단기적인 전략이다. 재건축 가능 연한 연장은 궁여지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역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 예상된다.

 

 재건축 가능 연한이 연장되면 신규 아파트 시세는 더욱 상승하고, 수요가 빠지면 조정장에 진입하던 서울의 기축 아파트까지 오를 수 있다. 아울러 이미 조정장이던 비서울 지역 중 입지 좋은 곳의 부동산도 뜬금없이 상승 전환될 수 있다. 서울의 핵심 지역 대비 시세가 낮은 부동산이 오르면 줄어든 소액 투자 수요가 다시 증가하게 된다.

 2006~2007년과 2015년 전후의 투자, 투기, 거품 시장이 오버랩된다.

 

 가격을 규제하기 위한 정책보다는 수요가 필요한 곳에 공급을 늘려 수요를 분산하고, 교통망을 확충하는 것이 정부의 진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p194

 

 지금 서울 · 수도권에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상품 경쟁력이 있는 아파트다. 서울은 상품 경쟁력이 있는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을까? 그렇다.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40년 전의 대규모 공급, 30년 전의 대규모 공급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공급되는 시장이다.

 

 40년 전 서초구 반포동, 강남구 압구정동, 개포동, 대치동, 용산구 이촌동, 강동구 고덕동, 송파구 잠실동에 대량으로 공급되었던 상품들이 이제야 새 아파트로 변경되고 있다. 30년 전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에 대량으로 공급되었던 상품들이 이제야 새 아파트로 변경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입지 좋은 지역에 걸맞은 좋은 상품을 희망하는 수요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서울에 질적인 상품이 없어서 20년 전 떠났던 수요들도 복귀하고 있다. 이제 1기 신도시가 상품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서울 아파트 시장은 실수요 시장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시장은 말이다.

 

 최근 준공된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실수요층, 건설 중인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될 실수요층, 향후 10년 동안 분양될 새 아파트를 기다리는 실수요층, 이것이 현재 서울이라는 부동산 시장의 주요 구성원이다.

 

 이 서울이라는 지역의 새 아파트를 희망하는 수요들이 투기 세력인가? 적폐인가? 서울에 존재하고 있는 이 수요가 투자 수요일까, 실수요일까?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 보기 바란다. 지금부터는 무조건 상품 경쟁력을 따져 봐야 한다.

 

 

p255

 

 수요가 고정된 지역은 더 어렵다. 가격 상승은 공급 대비 수요가 많을 때 발생한다. 추가 실거주 수요가 유입되지 않는 상태에서 특별한 이슈 없이 가격이 상승하면 대체적으로 투자 수요층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실거주 수요층이 고정된 상태에서 투자 수요층이 유입되면 가격은 오른다. 절대 가격이 낮은 지역일수록 더 ㅋ큰 폭으로 오른다. 해당 지역의 적정 가격을 모르는 상태에서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들은 상승장 초기에 당황한다. 결국 상승장 후반에 불안한 심정으로 참여하게 된다. 소위 상투를 잡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상품은 실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든 하락하든 거주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어설픈 투자로 상투에서 매수한 투자자에게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투자 메인 지역인 서울 · 수도권의 투자 환경이 어려워지자 지방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꽤 많아졌다고 한다. 지방은 대기 수요가 적고, 실거주 수요도 감소하는 지역이 많아 투자 대상으로 부적합한 지역이 많다.

 

 '묻지 마 투자'는 투자가 아니다. 투기꾼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p259

 

 규제 강도가 높은 투기지역은 수요가 차고 넘치는 곳으로 해석할 수 있고, 투기과열지구는 투기지역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곳으로 판단하면 된다. 조정대상지역은 수요가 많은 듯한데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곳이다. 기타 지역은 정부도 알수 없으니 개인 스스로 판단하라는 뜻이다.

 

 투기지역은 다른 말로 하면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입지가 가장 좋다고 인정받는 곳이다. 수요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공급으로 수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곳의 적정 가격은 소비자가 정할 수밖에 없다. 3.3㎡당 3,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거품 가격이라는 말을 쓰는 게 의미 없다. 소비자가 받아 주는 한 그 금액이 시장 가격이다. 구입할 만한 가격이라고 판단해 매수하는 것이다.

 

 투기지역을 단순히 '가격이 높은 곳'으로 분석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앟는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싸니 무작정 하락하리라 기대하는 건 난센스다. 3.3㎡당 1,000만 원 시장의 시각으로 5,000만 원 시장을 조정하려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시장이 왜 5,000만 원이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다른 지역보다 비싼 지역이라고 인정하면 된다. 그게 오히려 투기지역 시장에 대한 전략을 짜는 데 유리하다.

 

 

p293. (6장. 정책 의 서문에 해당하는데 어찌 보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에 대한 필자의 가장 궁극적인 인사이트가 담겨있다라고 보인다)

 

 

 강남을 중심으로 한 주요 지역 아파트 시세가 다시 상승 기미를 보이자 또다른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지방 시장 상황은 많이 어렵다. 가격 하락과 거래 감소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렇게 양극단의 모습을 보이는 시장과 관련해서 많은 언론사와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다음 정부 정책은 어떤 방향일지... 그럼 그저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하다. 이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모두들 관심을 거두었으면 한다. 정부가 어떤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에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다. 이번 정부에서는 부동산 규제 위주의 정책만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완화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바란다.

 

 이전의 어떤 정부와 비교해도 적어도 부동산 쪽으로 이번 정부만의 철학이 확실하다. 철학대로 정책을 만드는 경우 단기적인 시장은 보지 않는다. 결국 지금 시장의 가격이 상승하든 하락하든 이번 정부는 아마도 그동안 생각해 왔던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펼쳐 놓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정책들에 대해 단기적인 의견을 이야기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해 두고 싶다. 단기적으로 보면 시장이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10년 동안 시세 상승만 놓고 보면 대체적으로 인플레이션 전후로 시세의 증감을 보였다.

 

 다만 지역별로 상품별로 사이클이 조금 다르다. 2009년부터 상승했던 부산 시장은 2016년 조정장이 시작됐다. 경상남도 대부분의 지역이 같은 사이클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전국 대세 상승기 때도 움직이지 않던 대전 시장은 최근 들어 조금씩 상승 기운을 보이고 있다. 서울은 2014년 까지 조정장이었다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서울이라는 시장도 너무 많이 올랐다 싶으면 조정장이 시작될 것이다. 부산이 그랬고 울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샀는데 내리면 어떡하느냐고, 안샀는데 다시 오르면 어떡하느냐고...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의 방향성과 시장의 움직임이 자꾸 엇박자가 나는 것 같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모두 다르다. 도대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단기적인 시장을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생각해보자고 말이다. 단기적인 가격 상승과 하락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지금 매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아파트가 10년 후에도 수요가 있을지만 따져봐야 한다.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결국 주택 관련 고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무주택자로서, 임차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주거 불안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다. 결국 내 집 마련을 하는 순간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다.

 

 샀는데 부동산 시세가 빠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다. 빠질 것이 예상되면 매수하지 않으면 된다. 평생 임차로 살아도 된다. 안 샀는데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올라서 결국 또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그러니 내 집 마련을 하라고 수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입지 좋고, 상품 경쟁력 있고, 남들도 살 만한 가격이면 사도 된다.

 

 부동산 정책 때문에 의사 결정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현재의 부동산 정책은 내 집 마련을 지금 하라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집을 사지 못하게 하고 있는 동안 내 집 마련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투자하는 사람들은 걱정이 없고 실수요 주택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이 걱정이 더 많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은 그냥 배우자의 의견에 따르면 된다.

 

 만약 재테크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예금을 하는 것이 좋다. 연금보험 나쁘지 않다.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니까 말이다. 무주택자가 거주용 집 한 채 사는 것도 투자다.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면 집을 살 이유가 없기 대문이다. 그저 전세나 월세 등의 임차 형태로 집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이런 부동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걱정하는 것은 집값이 빠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안 샀는데 집값이 더 오를까 봐 걱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안 사고 남은 샀는데 집값이 오르는 것처럼 속상한 일이 없다.

 

 결국 내 집 마련도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투자이기 때문이다. 투자에 100% 확실한 것은 없다. 부동산을 매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집 한채를 매수할 때도 하락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다. 그런 리스크조차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파트를 매수하면 안 된다. 아무리 소형 주택이라도 말이다.

 

 정부는 공짜로 집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나의 보금자리는 나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활용의 대상이지, 경쟁의 대상, 의지의 대상이 아니다. 정책에 대한 확실한 인사이트를 가져야 한다.

 

 

 

p311

 

 역대 정부들은 보수, 진보 의견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법인세를 낮추거나 종부세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보수 세력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모습이다. 그로 인해 부족해지는 세금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세율을 높이려고 한다. 공공주택을 끊임없이 공급하려고 하면서 민간임대주택도 활성화하려고 한다.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과 각종 개발 계획이 필요한데, 그런 지원이 가능한 세력은 일반인이 아니다. 결국 대기업 등 특정 집단의 원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정부가 친기업적인 정책을 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반면 기득권 세력에 반대하는 진보 집단이 많다. 이들은 서민층을 지지 기반으로 한다. 집을 가진 사람들보다 집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이 계층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정책을 많이 제안한다. 기초연금, 무상급식 등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진보의 한계는 부동산 정책에서 보수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대 진보 정권도 결국 보수 정권과 같은 방법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제안하기보다 보수 진영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진보 진영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을 하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 많다. 모든 신규 주택을 공공주택으로 제공한다든지, 저렴한 전세를 제공하기 위해 임대 보증금 인상을 억제한다든지 하는 식의 정책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 정책들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저렴한 전세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능할까? 집주인의 사회복지 인식이 뛰어나 시세 차익을 볼 수 없는 집을 잔뜩 사서 저렴하게 전세로 공급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개인 재산권을 제한해 강제로 그렇게 하려는 것인가? 대부분 실현이 불가능한 제안이다.

 

 매매든, 전세든, 월세든 당장 내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일반 국민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따져 봐야 한다. 양 진영의 대립은 부동산 문제를 더 어렵게 한다.

 

 정부는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의 집단이다. 직접 투표로 선출되었던 선출된 사람이 임명했든 정치인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정권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투표로써 평가받아야 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철엔 정책이 남발된다. 대부분 실현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투표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뉴타운 정책이 그랬고, 공공임대주택, 행복주택 등의 공공주택 공약이 주요 공약을 차지했다. 선심성 정책은 추진이 잘 되지 않는다. 된다 하더라도 계획만큼 큰 규모로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부는 예산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국민이 바라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정부는 만능이 아니다. 경제 생활은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다. 정부에 많은 제안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제안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 낫다.

 

 정부에 요구하려면 구체적인 요구를 하자. 실현 가능한 내용을 요구하자. 그래야 정부도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허황된 주장만 하면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추진 가능성이 높더라도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정책에 반영될 수 없다.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마찬가지다.

 

 

p316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경기 흐름에 선행하는 패턴을 보인다. 부동산 완화 정책이 지속되면 부동산 거래는 활성화되고, 부동산 규제 정책이 지속되면 부동산 거래는 축소된다. 정책이 처음 발표되고 추진되는 시기는 그 반대 문제가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 결국 정책을 통해 현재의 부동산 시장과 미래의 부동산 시장을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주택 소유자 또는 주택 구매 의향자의 정책 활용 포인트를 정리해 보자. 규제 정책이 나왔다면 부동산 시세는 상승하고 있을 것이다. 상승 추세를 추종해 부동산을 구매하면 '상투'를 잡을 확률이 높다. 주택을 구입할 바람직한 시기가 아니다. 반면 주택을 매도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완화 정책이 나왔다면 매도자보다 매수자가 시장 주도권을 가질 확률이 높다. 따라서 실수요층이라면 급매로 구입하거나 매도자와 금액 할인의 협상을 주도할 여지가 크다. 적극적으로 구매하기에 좋은 기회다.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임차 계층의 경우, 부동산 급등 시기에 매매가는 상승하지만 전세가는 안정될 확률이 높다. 시세 하락기에는 역전세 현상이 생길 수 있으므로 집주인의 경제적 능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깡통주택' 수준의 대출이 많은 주택은 더 조심해야 한다.

 

 임차 세대들은 대규모 택지개발지구를 노릴 필요가 있다. 택지개발 지구 내 주택이 한꺼번에 많이 공급될 경우, 초기 임대 시세가 낮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저렴한 가격에 새집에서 거주할 기회가 많다.

 

 이렇듯 시장 판세, 특정 지역의 수요 · 공급에 관심을 가지면 여러모로 좋다. 임차 계층 중 주택 구매 의향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주택 시세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시세 추이를 알면 가격이 싼지 비싼지 감이 생긴다. 그 감은 어떤 전문가의 판단보다 정확한 지침이 된다. 실거주 수요라면 어떤 시기라도 구매해도 좋다.

 

 만약 투자자라면 위에서 설명한 규제 강화와 완화 시기를 구별해야 한다. 규제 판세가 장기간 지속되면 시세가 하락할 확률이 높다. 장기적인 완화 정책이 지속된다면 입지가 좋은 지역은 가격이 상승할 확률이 높다. 이렇듯 시장 예측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거나 매도를 하면 된다.

 

 사실 투자자를 어떤 시기든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 투자 수익이 은행 금리보다 높고, 여러 공제금(세금, 부대 비용)을 제외하고도 예 · 적금보다 수익률이 높다면 언제든 구입해도 된다. 이는 실거주 세대와는 다른 투자자만의 방법이다. 그래서 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지역과 금리에 관한 지식도 많이 쌓아야 한다.

 

 부동산 정책을 활용하는 수준의 사람들은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지는 말자. 우리 부모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 지역 부동산은 그 지역민들이 가장 잘 안다. 어떤 전문가도 그 지역 토박이만큼 알 수 없다. 특정 지역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그 이유는 현지 주민이 가장 잘 안다. 현지엣허 오래 산 우리 부모, 선배들이 정책을 잘 활용할 확률이 높다.

 

 정책 방향대로 움직이는 사람들 중 이익을 본 사람과 손해를 본 사람,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정책은 부동산 경기에 선행한다'는 말에 정답이 담겨 있다.

 

 박정희 정부 때 강남으로 진출한 사람들, 전두환 정부 때 목동 · 과천으로 진출한 사람들, 노태우 정부 때 분당으로 진출한 사람들, 김대중 정부 때 임대사업자가 된 사람들, 노무현 정부 때 지방에 투자했던 사람들,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주택을 매수했던 사람들, 박근혜 정부 때 신규 아파트에 투자했던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정부 정책대로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은 규제 쪽이다. 규제 정책이 지속되면 시세는 조정받는다. 과거 김영삼, 이명박 정부 때처럼 모든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지는 않겠지만, 수요가 업는 비인기 입지의 시세는 조정 폭이 클 것이다. 임대사업자 등록이 보편화될 것이다. 일반 매매 물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결국 실거주 매수든 임차 거주든 현실에 맞게 구입 여부, 임차 여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모르는 건 미덕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은 알면 알수록 도움이 된다. 정보는 돈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동산 관련 정보는 정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p339

 

 어떤 강력한 규제가 나온다 해도 원인 진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처방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더 올라갈 시세를 그나마 정책으로 저지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부분은 나의 지난 20년의 경험을 걸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조급해도, 가치 대비 너무 비싸다고 판단되면 매수하지 않는다. 시장과 소비자들을 너무 만만히 보면 안된다.

 

 규제 정책이 투기 세력을 확실하게 억제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2016년 11·3 대책 이후로 서울에 갭 투자 세력은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매매가와 전세가의 갭이 전세 레버리지 투자를 할 만한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제거 대상으로 지정했던 투기 세력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대로 규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규제 정책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정말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억만장자인 주식 투자자이자 투자사의 회장, 그리고 애널리스트이다. 이 책은 상당한 인사이트가 녹아있다.

 이 책을 보면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들은 성공의 비법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왜 꾸준히 실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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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요즘 사람들이 이렇게 장기 비관론에 빠진 것은 언론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기자가 중량감 있는 직업이었다. 기자가 되려면 좋은 학교를 나와 인턴 과정을 거치면서 6하 원칙(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을 배워야 했다. '털사시에서 개가 꽃등심 스테이크를 훔쳐가자 사람이 개를 물었다'라고 쓰고 세부 내용을 서술하면 편집자들이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군살을 제거한다. 7번째 단락에 적히 개의 품종과 상태(꼬리와 다리 하나가 없는 자주색 페키니즈)가 꼭 필요한 표현인가? 아니라면 삭제한다. 5번째 단락에서 그 남자가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꼭 언급할 필요가 있는가? 아니라면 삭제한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잡지의 발행인란에 전속 기자 명단이 실렸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노련한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직의 핵심을 구성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들이었다. 젊은 기자가 "와! 이번 기술주 거품이야말로 사상 최대 규모네요. 세상이 끝장나겠어요!"라고 말하면 반백의 베테랑들은 대답한다. "자네는 아는 것이 없어. 1980년 에너지 거품은 그 이상이었다네!" 이들은 경험이 풍부했다.

 이제 전통 언론은 죽어가고 있다. 인터넷 탓이든 케이블 TV 탓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통 언론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신문이든 잡지든 발행인란이 사라졌다. 전속 기자는 아마 소수에 불과할 것이며 경력도 대부분 5년 미만일 것이다. 언론은 반백의 베테랑들을 이미 오래 전에 내보내고 지금은 저임금 기자들을 쓰고 있다. SNS에서 공짜로 얻는 금도 부지기수다. 터무니없는 글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짜 SNS 글을 실으면서 양념 삼아 가끔 사설을 긷거나, 통신사 기사를 실으면서 가끔 외부 필자의 글로 구색을 맞추기도 한다.

 요즘의 기자 대부분은 경험이 부족하다. 그래서 큰 흐름을 보는 눈이 없다. 과거의 유사 사례를 경험해본 적이 없으므로 이 난관을 과연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물론 베테랑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언론은 최근의 사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 결과 언론마저 비관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애송이 언론 탓에 사람들은 잠시 숨을 돌리면서 '내가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지 않았던가?'라고 자문하기가 어려워졌다.

 

p45

 이는 이례적인 시장 흐름이 아니다. 거의 항상 반복되는 지극히 정상적인 흐름이다. 주식은 악재를 선반영해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가 시작되지 전에 하락하다. 시장은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최악의 결과만을 상상한다. 이러한 착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의해, 주식은 경기가 회복되기 전에 바닥을 치고 급등하기 시작한다.

 표1-1은 이러한 현상을 정확히 보여준다. 약세장과 경기 침체 기간이 항상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겹친다. 대형 강세장과 약세장에서, 주식은 경기보다 앞서서 움직인다. 주식은 경기가 침체하기 전에 하락하고 경기가 회복되기 전에 상승한다. 약세장과 경기 침체가 겹칠 경우 주식은 거의 예외 없이 먼저 상승하며, 그것도 대폭 상승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p46

 역사가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약세장과 경기 침체 기간이 겹치면, 경기 침체가 끝나기 전부터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강세장이 시작되어 경기 침체가 공식적으로 끝날 때까지 평균 수익률이 무려 27.5%에 이른다. 이는 경제 성장의 기미가 보이기 전부터 다가오는 경기 회복이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세장이 오랜 기간 진행되고 나서 경기가 회복기에서 확장기로 접어들 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번에는 다르다"라고 말한다. 경기가 이미 회복 중인데도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것도 정상적인 모습이다.

 

p50

 가격은 예상 못했던 사건이 발생할 때만 큰 폭으로 움직인다.

 

p52

 썰물 뒤에 밀물이 오듯이 경기 침체 뒤에는 경기 확장이 온다. 경기 확장은 경기 침체보다 거의 예외 없이 기간도 길고 강도도 높다. 곤경이 두려워서 평생 웅크리고 산다면 훨씬 더 자주, 더 길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기 확장과 강세장을 놓치게 된다.

 

p88

 표 2-3은 미국 강세장 초기의 3개월 수익률과 12개월 수익률을 보여준다. 강세장 초기의 3개월 수익률 평균은 23.1%였다. 단 3개월에 나온 수익률이다! 1년 수익률 평균은 46.6%였다. 강세장 초기 1년 수익률은 강세장 평균 수익률의 약 2배이며, 그 1년 수익률의 절반이 흔히 초기 3개월에 나온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강세장 초기 흐름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약세장에서 입은 손실 대부분을 일거에 만회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p93

 그렇다고 약세장 이후 V자 반등 출현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의미가 전혀아니다. 장기 성장 투자자라면 손익분기점, 고점, 특정 지수대 등 자의적인 기준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지난주, 지난달, 지난해 주가 흐름에 주목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전략이 장기 성장 투자에 타당한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V자 반등을 보면 주식시장에서 평균 수익률 따위는 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약세장 기간에는 시장에서 빠져나왔다가 정확히 바닥 시점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면, 그러한 생각을 접기 바란다. 시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서 무섭게 급등하므로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강세장 전반의 수익률은 평균보다 높아서, V자 반등을 놓치더라도 약세장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은 기억하기 바란다.

 

p108

 수익률은 변덕스럽다는 사실만 뼛속 깊이 명심해도 공포나 탐욕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장기 시장 수익률이 평균 약 10%이고 강세장 수익률이 이보다 더 높으면 연 수익률 10%를 달성하기는 쉬워 보인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쉽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지극히 어렵다.

 사람들은 흔히 시장 초과수익률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초과수익률은커녕 시장 수익률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장수익률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장기적으로 실적을 개선해갈 수 있다.

 "나는 초과 실적을 내고 있소"라고 말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투자자들도 대부분 자신의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믿는다.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정확한 수익률 평가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독자 대부분은 아마 시장 수익률 근처에도 미치치 못할 것이다.

 

p124

 보통 선물 트레이더들을 투기꾼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미래의 가격에 돈을 걸기 때문이다. 선물을 거래하는 합당한 이유는 수없이 많다. 기업은 변동성이 큰 상품의 구매 원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선물 계약을 이용한다. 항공사는 운항 비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름을 선물로 구매한다. 농부는 사료, 비료 등을 구매하는 데 선물을 활용한다(우리는 농부의 선물 거래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고 있다).

 투기꾼 없는 세상이 궁금하다면, 양파 파동만 봐도 충분하다. 1958년 양파 농가들은 투기꾼이 양파 가격을 후려친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을 믿은 미시간주 하원의원 제럴드 포드(나중에 대통령이 된)는 양파에 대한 선물 계약을 금지했다. 자유시장을 신봉해온 포드가 말이다. 이 금지는 지금도 해제되지 않았다. 포드와 농부들은 투기꾼들이 유동성과 투명성을 제공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시장 참여가 실제로는 변동성을 작게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유가의 변동성이 크다고 생각하나? 그림 3-2에서 유가와 양파 가격을 비교해보라. 양파 가격이 유가에 비해 등락 빈도가 더 잦고 골과 마루의 진폭도 더 크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안 된다. 표준편차를 계산해보면 2000~2010년 유가는 33.8%였고 양파는 211.4%였다. 주가 변동성의 10배다. 만약 주가 변동성이 이렇게 컸다면 당신은 좋아했을까? 이러한 상황이라면 변동성을 줄일 투기꾼들을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무지와 오만으로 투기를 금지하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은 내버려 두자.

 

p155

 약세장 '권위자'가 되는 편이 훨씬 쉽다. 그러나 투자 전문가이자 다른 사람의 돈을 운용하는 직업인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강세론자가 되는 것이 수익성에 유리하다(회사에도 그렇고 고객에도 그렇다). 왜 그러한가? 역사적으로 주가 상승률이 플러스인 때가 마이너스인 때보다 더 길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주가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기간에 '곰'처럼 버틴다면 손실을 보고 고객의 대다수를 잃을 것이다. 대형 운용사에서 약세장 권위자가 적은 이유다. 물론 약세론을 취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붙박이 곰은 결국 뒤처지고 자산운용업계에서 퇴출된다. 약세론을 택할 장세가 있지만 강세론을 택할 장세가 더 많다.

 

p220

 이 때문에 어느 한 범주를 영원히 사랑하면 성과를 얻지 못한다. 특정 범주가 장기에 걸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양상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긴 기간말이다. 그 기간은 대개 장세가 방향을 뒤집어 약세로 돌아서기 직전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당신의 특정 범주에 대한 선호(전체적으로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 속의)는 향후 12~18개월, 길게는 24개월 동안 그 범주의 펀더멘털이 왜 좋을지를 내다본 평가의 결과여야 한다. 그 범주가 '단지' 더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에 따르면 안 된다.

 

p224

 인류에 대해 나보다 어두운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윤 동기가 환경 개선을 비롯한 사회 복리를 달성할 강력한 엔진이라고 믿는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환경을 더 깨끗하게 유지해왔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부유해지면서 더 창의력을 발휘했고 '더 깨끗해졌다'. 엄청난 양의 똥을 치워야 하는 교통수단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까지 상상하지 못한 온갖 혁신이 세계를 더 깨끗하고 빠르고 강력하게 만들어준다는 비전에 고무될 것이다. 그들은 산업을 두려워하는 대신 끌어안을 것이다. 산업이 사회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더 풍요로운 사회가 환경을 더 잘 보살폈다.

 투자자가 장기 예측을 시도할 때 저지르는 근시안적인 실수도 이와 똑같다. 그들은 현재의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장기 투자를 하는데, 그 가정은 바뀔 수 있고 급변할 수도 있다. 런던은 누군가가 차를 발명한 덕분에 똥으로 뒤덮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20년 뒤의 다양한 주식시장에 무엇이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p248

 역사를 살펴보면 약세장 바닥을 벗어나는 시기에는 소형주가 좋은 투자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약세장 바닥의 타이밍을 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타이밍을 알아채는 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소형주로 범주를 좁힐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약세장 끝 무렵과 새로운 강세장 초기에는 대개 소형주가 초과수익률을 올린다.

 여기에는 다른 측면이 있는데, 강세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투자자들이 대형주를 보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강세장이 진행될수록 강해진다. 물론 어떤 강세장이 초기인지 아니면 성숙기인지는 역사를 살펴보아도 알 수 없다. 강세장의 기간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에 소형주를 보유하다가 강세장이 진행된 다음에 대형주를 보유하는 투자 경향은 역사적으로 선례가 많다.

 역사가 알려주는 또 하나의 사실은 많은 투자자들이 약세장의 끝 무렵에 주가가 크게 떨어진 주식을 보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식은 강세장의 초기에 크게 반등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 6-8과 6-9는 각 주식 섹터가 지난 두 차례의 약세장 바닥 전후에 보인 수익률을 나타낸다. 약세장 바닥 전 6개월 동안 실적이 최악이었던 섹터가 이후 6개월 동안 최고 수익률을 기록했다. 따라서 약세장의 말미에 있다고 정말 믿는다면 어느 섹터 주식을 매수할지 알 수 있다.

 역사(그리고 펀더멘털)를 돌아보면 일반적으로 수익률 곡선이 평행해질 때, 즉 장기 금리와 단기 금리의 격차가 좁아질 때 성장주가 가치주보다 더 나은 수익률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반대 상황이면, 즉 이전보다 장단기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면(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지면) 가치주가 대개 성장주보다 더 괜찮은 수익률을 보인다.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진다는 것은 장기 금리와 단기 금리의 스프레드가 커진다는 것이고, 이 경우 은행은 대출로 더 많은 이윤을 올릴 수 있다. 스프레드가 커질수록 잠재 이윤도 커지기 때문에 은해은 더 빌려주려고 한다. 은행의 대출 성향이 강해지면 가치주가 수혜를 본다. 가치주 기업은 대개 주식 발행보다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본을 더 조달하는 것은 성장해서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다. 가치주 기업은 이것을 선호한다.

 수익률 곡선이 상대적으로 평평해지면 은행은 빌려주고자 하는 의욕이 줄어든다. 가치주 기업은 이 상황을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투자은행들은 (당연히) 기업의 주식 밣생을 통한 자본 조달을 기꺼이 돕는다. 이 상황에서는 성장주가 유리한데, 왜냐하면 차입이 가능하더라도 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 조달이 더 용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의 대출 성향이 약해지면 성장주가 수혜를 보는 경향이 있다.

 

p304

 '인플레이션 벌레'와 경제학자들은 'MV=PQ' 공식을 알 것이다. M은 화폐 공급, V는 화폐의 유통 속도, P는 가격, Q는 거래 횟수다. V는 경제에서 돈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달리 말하면 1년에 얼마나 많이 회전하는지를 표시한다. P는 인플레이션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이 공식에 실제 수치를 넣으려 하지 말라. 이 이론은 순수한 이론일 뿐이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이 "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인 현상이다"라는 말을 하게 한 이론이기도 하다. 이 말의 의미는 인플레이션이 '활폐 공급이 너무 많거나, 화폐 유통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또는 이 둘의 조합'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여러 기묘한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말하며 유가, 무역 적자, 재정 적자 등을 거론한다. 이들 중 어느 것도 화폐 공급이나 유통 속도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요약하면 인플레이션은 너무 많은 돈이 시끄럽게 돌아다니지만 경제 활동으로 흡수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대다수 통화주의자들은 상품보다 화폐를 더 많이 만들어내면 '속도'가 결국 정상으로 느려지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p316

 해외 주식을 고를 때는 이미 한참 전에 달궈져 뜨거우진 것을 좇으면 안 된다. 그 주식이 언제나 뜨거우리라는 법은 없다. 정말 사야 하는 범주는(템플턴 경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뜨거워지지 않은 것이다.

 

 요즘들어 개인적으로 인구감소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간다. 더 자세하게는 인구감소의 영향이 경제성장을 저하시킬까 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인구의 감소는 노동력 손실로 이어져 경제하강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 같다는 선입견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항상 있어왔는데, 이 책은 꼭 그렇지는 않다라는 것을 데이터와 현재까지의 경제적 발전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人口と日本經濟 長壽,イノベ-ション,經濟成長"   "인구와 일본경제 : 장수, 이노베이션, 경제성장"으로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요약하자면 인구는 경제성장의 하나의 요인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은 인구, 즉 노동력 자체보다는 이노베이션에 의해 노동생산성의 향상 혹은 경제(생산,소비) 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 더 크다는 내용이다.

 200페이지 남짓의 짧은내용(저자도 이론서라기보다는 에세이라고 표현했다)이라, 경제적 이론보다는 직관적인 그래프와 상식적인 내용 위주로 쉽게 풀어나간다.

 세계 최저 출생율로 인한 인구감소가 점차 가시화되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서도 많은 참고가 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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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인구 억제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맬서스는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심과 그로 인한 만혼화, 비혼화가 인구를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억제는 분명 사회적으로 가난한 계층에서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남녀 하인들이 미혼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미혼자 수를 전체 인구로 나눈 '미혼율'을 밝혀내면 그 나라의 인구가 증가하는지 혹은 감소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어디까지나 미혼율은 인구의 '증감'과 연관된 것이지 인구의 많고 적은 '수준'과는 관련이 없다고도 했다.

 여기서부터 구빈법 개혁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구빈법을 개혁해 급부 수준을 인상하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맬서스는 급부 수준이 인상되면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일시적으로는 향상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효과가 크면 클수록 인구가 증가하고, 결국 이들의 생활은 이전과 변함없는 비참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득을 재분배한들 식량의 총공급량이 변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그들의 생활은 개선될 리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맬서스는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증가해 인구가 늘어나면 결국에는 굶주림, 질병 등으로 인해 인구가 억제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계속해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애초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족 부양의 어려움을 자각하고 결혼을 포기함으로써 인구가 억제되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맬서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논리는 『인구론』의 중반부에 요약되어 있다.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식량에 의해 제어된다. 식량이 많아지면 인구도 늘어난다. 인구 증가를 부추기는 힘을 억제하고 현실 속 인구와 식량의 공급 수준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는 건 빈곤과 악덕이다." 이러한 맬서스의 논의는 이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에 의해 매도당한다.

 

p50

 번영의 시대였던 19세기에 부의 불평등은 저축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만약 한 나라가 창출하는 부를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한다면 사람들은 이를 전부 소비해버리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저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부자들이 저축을 하고 그것이 자본 축적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사회가 진보한다. 즉 불평등은 인간 사회가 진보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것이 19세기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이었다.

 

p90

 우선 공급의 측면을 보자. 노동자 수가 감소하면 만들 수 있는 제품의 수도 감소한다. 이는 이해하기 쉬운 이론이자 부정할 여지가 없는 '불변의 논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사실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한 국가에서 1년간 생산되는 모든 물건 및 서비스 가치(정확히는 '부가가치')의 총계를 나타내는 것이 GDP(국내총생산)인데 그 성장률은 결코 노동력 인구의 증가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표2-6>은 1870년부터 100년간 일본 인구와 실질 GDP의 변화를 비교한 것이다. 전후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표의 오른쪽을 보면 상승세가 두드러지는데, 축적을 바꾸어 왼쪽만 보면 전전戰前에도 GDP와 인구 성장 사이에 매우 큰 괴리가 보인다. 메이지 시대(1868~1912)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150년 동안 경제 성장과 인구는 겨의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경제 성장률과 인구 증가율의 차이야말로 '노동 생산성'의 성장과 다름이 없다.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대략 '1인당 소득'의 성장을 의미한다.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즉 노동 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 성장률은 플러스가 된다.

 

 

 한 국가에서 노동 생산성 상승을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새로운 설비와 기계를 투입하는 '자본 축적'과 넓은 의미에서의 '기술 진보', 즉 '이노베이션'이다.

 

p108

 2012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제3차 산업 혁명'이라는 특집 기사를 냈다. 선진국의 제조업 현장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되었으나 이제는 3D 프린터 등이 등장하면서 물건을 만들 때 필요한 인간의 노동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 특집에서는 애플의 아이패드 소매가격 499달러 중 제조 비용(판매료 및 인건비)은 187달러이며, 그중 중국에서의 노동 비용은 8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물론 산업에 따라 생산량에서 노동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쨋든 간에 21세기에는 '값싼 노동력'이 별다른 이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팔 시장과 가까운 곳에서 만들 때의 이점이 더 커진다. 이로써 제조 현장은 또다시 선진국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한다.

 

p194

 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밀은 자신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간에게 최선의 상태란 아무도 가난하지 않을뿐더러 누구도 부유해질 생각이 없고, 부유해지려는 타인의 노력을 보고도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태다. -정치 경제학 원리-

 

 

 인간에게 있어서 항상 다른 인간과 접촉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 즉 때때로 혼자가 되는 일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 및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없어선 안 될 부분이다.

 

p213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 경제는 퇴영적退嬰的이다 <표4-5>는 저축, 즉 수입과 지출 차액의 추이를 가계, 기업, 정부 등 부문별로 살펴본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가계를 넘어 일본 경제에서 가장 큰 순 저축 주체가 되었다. 이를 자본주의 경제 본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마이너스 저축, 즉 빚을 내어 투자했다. 기업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뀐 것은 시대가 아니라 기업이다.

 슘페터는, 이노베이션을 떠맡아야 할 주체는 본질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물론이거니와 미래를 향해 스스로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인스 역시, 기업의 설비 투자란 아문센이 개썰매를 타고 남극을 향했듯이 결국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한 것이라며 건전한 낙천주의를 잃어버리고 합리적인 계산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쇠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는 일본 기업이 '인구 감소 비관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서도 아마 비슷한 자료를 찾을 수 있을것 같긴 한데 찾지는 못했다. 경제지 기사를 참고해보면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예상된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3/146682/

 

저축 많이 하는 기업들…작년 기업예금 증가율, 가계의 갑절 - 매일경제

기업예금 비중 2000년 26%→작년 30.5% vs 가계 59.8%→44.3% 투자의 주체로 알려진 기업의 예금 증가율이 저축 주체인 가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예금은행의 기

www.mk.co.kr

 

 

경제전문 기자 박종훈과 애널리스트이자 경제전문가 홍춘욱의 대담집. 밀레니얼 세대가 맞이할 경제환경에 대해 교육, 취업, 재테크 - 저축, 주식, 보험, 부동산 -, 2명의 전문가의 의견을 교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춘욱 씨의 책은 몇 권 읽어봤는데, 현업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현상의 분석과 미래 예측에서는 배울 바가 많다. 이번 대담집의 파트너인 박종훈 기자도 홍춘욱 씨 못지 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두 사람이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결의 해석을 보여주면서 균형이 잘 잡힌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경영서들이 잘못하면 꽤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2명의 대담자는 현재 밀레니얼 세대가 처한 여러가지 경제상황의 딜레마들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상호보완을 통해 구체적인 방향과 전략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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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기술이 노동생산성을 압도하는 시대로의 전환

 

 홍춘욱 :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입한 최근에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사람을 압도하기 시작햇어요. 지난 20~30년간 저희 세대가 축적해온 지식과 생산성을 현재의 세대가 따라잡기 힘들어진 거에요. 학계에서는 이런 시대를 '숙련편향적 기술 진보Skill-Biased Technical Change-SBTC' 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숙련편향적 기술 진보로 인해 기존의 단순노무나 사무직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등의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게 됩니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저숙련 노동자들, 특히 일반 사무직이 실직과 임금 하락이라는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되었어요. 2006년 데이비드 오토 매사추세츠공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의 유명한 논문에서 1990~2000년 숙련 수준을 기준으로 양극단의 일자리는 모두 증가하고 중간 단계의 숙련도를 보이는 사무직 일자리만 줄어들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2000년대 미국 중산층의 붕괴 원인으로 작동했다고도 하죠.

 증권 업계만 봐도, 예전에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출신을 많이 뽑았지만 지금은 공과대 출신을 굉장히 선호해요. 파이썬, R 같은 통계 프로그램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 기업에서 앞다투어 데려간다는 말이죠. 이런 분들이 가는 대기업, 금융권, IT기업들은 20년 전에 비해 생산성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당연히 연봉도 높겠죠. 그런데 이런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아주 일부죠. 이런 인재가 되려면 준비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거든요.

 예전에는 웬만한 대학의 졸업장만 가지고 있어도 기업을 골라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 이후에는 빠르게 회사내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여갈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보통신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데 왜 한국의 대학 졸업자들은 어려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공급 과잉'에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대학 정원의 확대, 더 나아가 새로운 대학의 설립으로 인해 대학 진학률이 60%까지 치솟았거든요.

 그 결과 대졸 임금 프리미엄은 계속 떨어지는 중입니다. 임금 프리미엄이란 고졸자에 비해 대졸자가 얼마나 많은 임금을 받는지를 측정한 것인데 최근에는 30% 이내로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졸업장보다는 숙련편향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 더 나아가 쉽게 습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죠.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에 취업의 문이 좁아졌습니다. 더불어 취업 준비가 기간과 비용도 높아졌고요. 밀레니얼 세대가 갖는 압박감과 박탈감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의 특혜 또는 채용 비리 등에 정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그토록 부르짖는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로서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자라났지만 마찬가지로 가장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그들의 부모 세대는 경험한 적이 없는 레이싱을 치르고 있죠. 그래서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국가 전체가 '3배' 더 잘살게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눈앞의 냉혹한 경쟁 사회가 더욱 실감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던 시기에 사회에 진입한 부모 세대, 혹은 저희 같은 2차 베이비붐 세대는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 너희들은 그러면 안 돼'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꼰대'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p70

 홍춘욱 : 내년에는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5%를 넘어설 거에요. 왜냐하면 2018년 단 한 해에만 외국인 순이동(유입-유출)이 무려 15만 6,000명에 이르렀거든요. 이들이 주 40시간씩 연 52주 연속으로 일했다고 치고, 최저 임금을 적용해보면 퇴직금까지 포함해서 약 2만 달러의 연 소득이 나와요. 최저 임금 인상의 수혜자는 역설적이게도 외국인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아에서 이 정도 소득이면 한국, 일본, 대만 다음 가는 수준이거든요. 결국 한국의 저숙련 노동시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p95

 박종훈 : 이런 점을 생각하면 국내 IT 산업의 미래가 상당히 밝을 것 같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바로 신규 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IT 산업과 관련해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2007년에 제정된 '파견 근로자 보호법'입니다. 이 법의 취지는 '3D 업종'의 파견 근로자들을 보호하자는 것인데, 이 파견 근로자에 해당하는 업종(대통령령이 정하는 업종)에 희안하게도 IT 업계의 꽃이라는 '컴퓨터 관련 전문가'가 들어가 있어요. 이상해 보이죠?

 이렇게 된 원인은 간단합니다. 2007년 법이 제정될 당시 각 기업들에서 컴퓨터 관련 전문가, 특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이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그러자 관련 업계에서 정부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어요. 파견 근로 업종에 이들을 포함시켜달라고요.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법으로 인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인력들의 임금 수준이 박스에 갇히게 됩니다. 저임금 3D 업종이 되어버린 거죠. 이들이 파견 근로가 가능한 업종이 되면서 기업은 낮은 임금으로 인재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의 살인적인 업무시간에 대해선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에요. 오죽하면 엔지니어를 '갈아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이나 구글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연봉은 평균 15만 달러에서 많게는 30만 달러를 훨씬 상회합니다. 근무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선 프로그래밍 인재를 조기에 양성하겠다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 열풍이 불었는데, 정작 우수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모두 한국 기업을 떠나고 싶어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국내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관행도 문제입니다. 제가 수년간 기업 취재를 해왔잖아요. 그런데 제조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을 하거든요. 열심히 상품을 제작해서 납품을 하면 대기업이 설계도까지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상황이 적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설계도를 해당 대기업의 자회사에 넘겨서 생산하게 하는 것입니다. 애써 개발한 중소기업의 독자 기술이 헐값에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거죠. 이런 불공정 거래 행위가 발각되면 미국의 경우 징벌적 배상제도를 통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상당히 부실해요. 현장에는 정말 안타까운 상황들이 많습니다.

 

p173

 박종훈 : 그리고 저는 이 지점이 이전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구분 짓는 특징적인 성향이라고 봅니다. 이들에게는 소비든 취향이든 '주류'가 없어요. 그래서 국내 기업의 마케팅이 어려워지는 거죠. 뭔가가 '대세'라고 규정되는 순간, 그에 대한 열기가 가라앉죠. 대중적인 것을 선호하지 않는 '구별짓기 distinction'가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거든요.

 예전에는 '골프 붐'이라고 하면 모두가 골프 연습장에 등록하고 골프채를 사서 필드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만이 알아보는 어떤 취향이 대중에게 번지는 걸 본 순간 오히려 그걸 그만두죠. '휘소가치揮少價値'가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희소가치가 아니라 휘소가치, 즉 휘발되어버리는 가치를 더 선호하죠. 아무리 경리단길이 '힙'해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곳을 찾는다 싶으면 익선동으로 발길을 옮기고요.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인기 있는 제품이나 분야가 생기겠지만 유행 주기가 짧기 때문에, 어느새 다른 쪽으로 인기가 넘어가요. '600만 명의 밀레니얼이 있으면 600만 개의 취향이 있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고요.

 

▶이러한 밀레니얼의 심리의 원인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럴 것 같다.

1. 자신들만이 발견한 힙한 곳이란 일단 가성비와 가심비가 높은 곳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아지트. 하지만 대중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가격이 올라간다. 그러면서 가성비와 가심비는 떨어진다. 그러면 밀레니얼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된다.

2. 경리단길 등 소위 힙했던 곳도 대중이 몰리면서 대형 마케팅의 대상이 되버린다. 그러면 원래의 아기자기했던 그곳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왁자지껄한 메트로폴리탄의 화려하고 값 비싼 마케팅의 대상이 되버리면서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본래 그 장소의 가치를 힙하게 만들었던 가게들이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특히 밀레니얼 들은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p175

 홍춘욱 : 개별화된 취향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일종의 취향 공동체 같은 비즈니스가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돈을 내고' 함께 책을 읽는 커뮤니티인 트레바리죠. 이제는 동창회도, 동기 모임도 없는 시대인데, 나이, 출신 지역, 직업, 결혼 여부 등과 관계없이 오로지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 그것을 비즈니스 모토로 삼은 것이 정확하게 먹힌 겁니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일종의 '살롱 문화'를 발견하는 시각들도 많거든요. 그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찾는 세대라는 거에요. 독서 커뮤니티 스타트업인 트레바리는 창업 3년 차인데 벌써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앞으로도 취향 기반 비즈니스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거에요.

 

p185

 박종훈 : 미국 최최의 사회보장제 수혜자로 기록된 이다 메이 풀러Ida May Fuller는 1939년 은퇴한 다음 1975년 100세로 사망할 때까지 연금으로 생활하셨다고 해요. 이분이 납입한 사회보장세는 단 24.75달러였지만, 평생 받은 혜택은 총 2만 2,889달러였다고 합니다. 본인이 낸 돈의 무려 924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결론적으로 예측과 설계가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의 연금제도는 연방보험료법에 따라 세율을 정했는데 이 연방보험세율이 1930년에는 2%였습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1%씩 분담하는 구조였죠. 2013년에는 이 세율이 15.3%까지 인상됩니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적연금은 첫 세대가 가장 큰 이득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1928년생 여성의 경우 수익비가 무려 72배, 즉 자신이 낸 돈의 72배를 가져간다고 합니다. 1948년생의 국민연금 기대 수익률은 27.2%로,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24%)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1990년생 여성으로 내려오면 수익비가 3.14배로 뚝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1990년 남성은 1.62배로 다시 반토막이 납니다.

 모든 국가가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것은 무엇보다 처음에 연금구조 자체를 후하게 설계한 탓도 있고,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측한 탓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설계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8년 1월 전두환 대통령은 선심성 국민연금을 내놓았습니다. 고작 소득의 3%, 직장인의 경우 1.5%만 내면 기존 소득의 무려 70%를 60세 이후 평생 보장하겠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세대에게 베푼 선심성 정책의 부메랑을, 밀레니얼 세대, 더 나아가 Z세대를 포함한 미래 세대가 맞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웠겠죠. 지금 우리나라는 합계 출산율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고 예전과 같은 경제성장도 어려워졌지만, 당시의 정부와 국민연금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었던 거죠. 현재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에 의하면, 2060년에는 소득의 29.3%를 납입해야 지금의 국민연금 체제가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추계는 합계 출산율을 1.05로 계산한 것입니다. 2019년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은 0.977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소득의 30%를 납입해야 하는 시기는 2060년보다 앞당겨 질 거라는 추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소득의 30%까지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세금도 내야 하고 건강보험료도 내야 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본인이 연금과 건강보험료를 100% 부담해야 하는 자영업자들 같은 경우, 돈을 벌어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다가 끝난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거죠. 게다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건강보험료도 갈수록 가파르게 오를 겁니다. 끔찍한 예측이지만 2060년대에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연금 납부 대상자들은 소득의 3분의 2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내는 시대를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예측들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터져 나오는 겁니다.

 결국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어야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연착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현재 소득의 20% 수준으로 연금을 납입합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타협을 통해 현재의 9%대 납입률을 독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죠. 그게 아니라면, 소득 대체율을 기준의 40% 수준에서 25% 수준으로 낮출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연금구조의 현실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2000년대 이후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한 수차례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매번 정권들은 민심 이반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2007년 노후연금 지급액을 소득 대체율 60%에서 40%(2028년 기준)로 낮춘 덕분에 그나마 밀레니얼 세대의 미래 부담을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 대가로 노무현 정부는 당시 386 지지층에게 외면당했습니다. 결국 정부와 국민연금 개혁 당사자들이 보험료율 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사회적인 대타협을 이루는 일이 시대적 과제로 남았습니다.

 앞머리에 밀레닝ㄹ 세대 역시 국민연금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그렇다"라고 답했는데요, 이 대답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전 세대보다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은 덜 받게 되겠지만, 어쨋든 연금을 받을 수는 있다"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입니다. 혹시라도 이 대답이 실망스러워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독자들에게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국민연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이자 가장 안전한 금융상품입니다. 장기적으로 어느 민영 금융 회사가 국가보다 안전할까요? 심지어 연금이 일부 줄어들어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민영 연금보다 월등히 높거든요.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가입이 유리합니다. 회사가 절반을 부담해주기 때문에 납입 금액 대비 혜택의 비율이 더 높은 셈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유의하실 점은, 현 제도가 소득 대체율 40% 수준을 보장하지만 이마저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40년인 분들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요새 같은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길어야 25년 정도 연금을 납부하거든요. 그럼 소득 대체율은 25%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100만 원을 벌던 사람이 25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국민연금으로만 노후 자금을 계획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러므로 밀레니얼 세대는 국민연금과 함께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이라는 삼각 포트폴리오를 꾸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p227

 홍춘욱 : 제가 서울의 아파트를 구매하고 싶어하는 후배들한테 종종 해주는 이야기인데요, 일단 주택시장이 하나의 단일한 시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제가 보기에 아파트 시장은 네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지금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시장이에요. 대표적인 곳이 강남입니다. 용산 일부 지역까지도 포함되죠. 왜냐하면 앞에서 박기자님이 언급했듯이 좋은 일자리가 모여 있는 곳에 고소득자들이 살거든요. 일종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강남(반포, 압구정, 도곡 등)이 180만 명, 광화문이 60~80만 명, 용산~마포가 30~40만 명 정도의 고소득자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요. 당연히 그 주변은 최고의 거주지가 됩니다. 시장의 원리상 가격 또한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는 굉장히 좋았는데 미래 상황은 다소 불투명해 보이는 시장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동탄 등과 같은 1,2기 신도시들입니다. 현재는 매우 살기가 좋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커뮤니티가 잘되어 있고, 교육 여건도 좋습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가 결혼도 적게 하고 아이도 적게 낳는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특히 맞벌이 비중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비교적 도심과 멀어서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긴 힘든 거죠. 비록 광역철도 등으로 접근성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말이죠. 게다가 일산이나 분당 같은 1기 신도시는 이미 주택 노후화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재건축이 가능할까요? 변수가 너무 많고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사업이 되겠죠.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저는 밝지는 않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과거에는 저평가되었지만 지금부터는 괜찮아질 수도 있는, 미래 가치가 비교적 높은 시장입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30년이 넘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재건축 대상자들입니다. 목독, 상계동, 좀 더 확장하면 마포구와 금천구의 노후 아파트들이 여기 해당됩니다. 생각보다 이 지역들이 교통이 좋습니다. 신도시들과 다르죠. 게다가 재건축 사업의 조건이 준공 40년 이상의 아파트로 까다로워졌어도 상대적으로 그 기간에 임박한 지역들입니다. 그래서 미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주거 환경이 개선되면 교통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가치가 뜁니다. 비록 지금은 노후 지역이지만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가 이 유형의 아파트 단지들을 공략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과거에도 좋지 않았고 미래에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시장입니다. 이 케이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유형의 아파트만 고르지 않으면 됩니다.

 당연히 제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은 시장은 세 번째가 되겠죠. 

 

 

p233

 박종훈 : 소위 '특공'이라고 부르는 신혼부부특별공급은 무주택 신혼부부가 일반 공급과의 청약 경쟁 없이 별도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항간에 신혼부부 특공을 '부잣집 막내아들 특공'이라고 부르거든요. 왜냐하면 신혼부부 특공의 신청 자격이 너무나 비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혼인신고한 날로부터 만 7년 이내의 부부들 중에 전 세대원이 무주택자이면서 부부합산 소득이 전년도 기준으로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00%, 맞벌이의 경우 120% 이하를 충족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선공급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2018년 3인 이하 가구의 평균 소득은 세전 540만 1,814원(맞벌이 648만 2,177원)입니다. 연봉으로 게산할 겨우 외벌이는 약 6,500만 원, 맞벌이는 합산하여 약 7,600만 원 이상이면 신혼부부 우선공급을 신청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현재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이 평균 3,200만 원 정도이고, 요새 결혼들을 늦게 하니까 결혼할 당시의 연봉은 당연히 더 올랐을 겁니다. 이런 분들이 맞벌이를 하면 소득 구간을 훌쩍 넘어버려서 청약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 가격이 어지간히 비싼 게 아니거든요. 7억 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는다고 가정해보죠.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만 7년 동안 열심히 벌어서 아이도 한 명 낳고, 부부 합산 소득이 월 600만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칩시다. 그중 절반만 쓰고 7년을 모은다고 해도 자산이 2억 6,000만 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럼 7억 원짜리 아파트 청약을 받으려면 대체 대출 비율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리고 대출은 어떻게 갚아나가죠? 제도의 취지를 생각할 때 상식적이지 않은 설계라는 거죠. 결국 누가 혜택을 볼 수 있을까요?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자산이 있는 부잣집 아들이나 혜택을 보는 특공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홍춘욱 : 이 청약제도의 신청 자격 조건을 설계한 정책입안자들은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2019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서울 인기 지역의 당첨 가점은 70점을 넘어섰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제도에요. 과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제도 자체가 '꼰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는 최소 조건만 갖추면 모두 신청할 수 있게 해서 '추첨방식'으로 선정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리고 소득으로 조건을 만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산 조건을 걸어야죠. 적어도 이런 특공에 '금수저'들이 당첨되는 건 사회 정의에 맞지 않잖아요.

 그리고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에 대한 조건도 조금 풀어줘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동거 커플이 늘어나고 비혼을 결심한 분들도 많아졌는데, 이들을 배제할 어떤 법적 근거도 없잖아요. 다만 이렇게 당첨되어서 아파트를 구매한 경우, 전매 제한 기간을 장기로 설정하면 투기나 시세 차익 우려도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자격을 갖춘 분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그래서 실제로 '로또'처럼 지금보다 더 심한 광풍이 일 수도 있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정부가 공공 분양 아파트를 더 많이 건설하면 되는 거죠. 그건 결국 건설 경기를 호전시키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겠지요.

 조건이 되면 청약으로 집을 구매하고 싶은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렇게 허들을 잔뜩 높여놓으면 다들 포기하고 구축 아파트 시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부가 그토록 붙잡고 싶어하는 서울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멉추지 않았던 겁니다. 참 답답한 제도에요.

 

p247

  홍춘욱 : 한국의 부문별 부채 흐름을 살펴보면, 한눈에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명목 GDP의 74%에서 2018년에는 98%까지 늘어났죠.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단순히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부채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하하며 경지 부양 신호를 보냈더니 가계 부문만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고 기업이나 정부는 별로 돈을 안 썼다는 거죠. 결국 2015~2018년에는 집값 상승, 그리고 가계부채 증가로 경기의 급격한 위축을 막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경제 전체의 부채 규모가 급증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별 부채 규모를 살펴보면 한국은 높은 편이 아닙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나라는 중국이죠. 중국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2008년 142%에서 2018년 254%로 급증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IMF는 다음번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가장 취약한 곳으로 중국의 기업 부문과 은행 부문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부채나 기업부채와의 밸런스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시장의 숨통을 터줄 재정 정책을 펴는 동시에 기업의 투자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경기 부양을 위해 경직성 예산, 즉 매년 증액되는 공무원 호봉과 같은 비용 말고 비경직성 예산, 즉 경기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줄이고 늘릴 수 있는 예산을 더 키워야 한다는 거에요. 최근에 국토부가 경기도 신도시에 추진하고 있는 GTX 사업이 그런 예가 되겠죠.

 

p253

 홍춘욱 : 특히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입니다. 1달러에 대한 중국 위안화 환율이 7을 넘어서면서, 아시아 통화가 동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인상(위안화 평가절하)한 이유는 '무역 분쟁' 때문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대규모 무역 흑자에 항의해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환율 조정으로 맞선 것이죠. 예를 들어 관세를 10% 부가했다면, 미국에서 중국산 제품의 가격은 10% 오르게 됩니다(물론 수입 업체가 제품 가격의 인상을 허용하지 않고 마진을 축소할 수도 있다). 이때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10% 인상해버리면, 중국 기업들은 관세 부과분만큼 달러로 표시된 제품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될수록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한국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밀레니얼 세대에게 권하는 것은 일정 비율의 해외 투자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달러를 사두는 거죠. 매달 일정 금액을 사둘 수도 있고, 은행에서 달러예금을 가입할 수도 있습니다. 

 

p267

 박종훈 : 그런데 기본적으로 암호화폐가 갖는 장기적인 약점은 상속이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당연하게도 부동산은 물론, 예금이나 보험금 등 대부분의 자산은 얼마든지 상속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처럼 대부분의 나라가 돌아가신 분의 재산을 상속할 방법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암호화폐는 가상지갑에만 넣어둔 경우 완전히 공중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사례도 많고요.

 2013년 8월, 26세의 매슈 무디라는 청년이 경비행기를 타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아버지인 마이클 무디는 아들이 생전에 비트코인 채굴에 열중했음을 알고 있었고, 수십,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자산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비트코인을 끝까지 차지 못했습니다.

 또 2018년 4월에는 저명한 암호화폐 투자자인 머튜 멜론이 사망했는데요, 그는 사망 직전 <포브스>지가 선정한 암호화폐 억만장자 순위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포브스>지가 추정한 그의 암호화폐 자산은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2,000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암호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이 돈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암호화폐 전문 분석 회사인 체이널리시스는 이 같은 이유로 이미 비트코인의 25%가 영원히 사라졌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았죠.

 비트코인은 64자리에 이르는 복잡한 키파일이 한 번만 발급됩니다. 다른 사이트처럼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할 때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재발급을 받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또한 생전에 가족등 타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암호만 알려주면 암호화폐의 특성상 언제든 돈을 빼갈 수 있고, 추적이나 반환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암호화폐는 그 이름처럼 암호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암호를 알려주는 순간 사실상 증여를 해준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결국 예고된 죽음이 아니면 상속이 매우 까다롭고 암호화폐 자산은 영원히 가상세계에만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보완책을 연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암호화폐가 세대를 넘어 영속적인 자산으로 계속 계승되어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p299

 박종훈 : 정년제도라는 것이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독일의 명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고안한 제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의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1880년 당시 독일은 100만 명이 넘어가던 극빈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거든요. 그런데 가난한 고령층이 계속 일을 하면서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비스마르크 재상이 정년을 65세로 제한하는 대신 연금을 지급하고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당시 독일의 평균 수명이 65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이 제도의 설계에는 약간의 정치적 술수가 담겨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죠. 박근혜 정부 시절 정년을 60세로 늘린 것이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정년이 적용되는 직장은 공기업과 대기업 생산직 정도라고 합니다. 일부 경제연구소나 언론에서 이전 세대는 주로 구산업에 종사하고, 청년들은 첨단IT기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으로 청년들의 손해는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정년이 보장되는 '그 직장'들이 청년들이 원하는 직장이잖아요. 그런 직장은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을 적게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정년 연장으로 청년들의 손해는 없다는 주장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죠.

 사실 정년 연장이 현실화되면 2차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고 공기업에 근무하는 저는 제일 수혜를 받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겠죠. 그런데 그 대가로 제 자녀 세대의 미래가 희생당할 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기성세대가 정년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을 계속 독점하게 되면, 결국 청년들의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정년 연장에는 치열한 세대 갈등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저는 정년 연장이나 연금 지급 시기 문제가 앞으로 유럽처럼 첨예한 사회 갈등 요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은 일본의 미래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과 대담을 모은 책.

일본의 인구감소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한국보다 20년 앞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미 현실로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대부분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맨 마지막인 뜨거운 근대는 끝났다에서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매우 편협하고, 일본 중심적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본 주도의 외교전략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일본의 근시안적 사고는 2019년부터 본격화된 남북 화해와 북미협상의 장에서 일본이 표면적으로나 물밑으로나 협상의 훼방을 놓은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동아시아의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즉, 일본은 진보나 보수나 북한 핵문제와 이와 관련한 외교적 해법에 있어서,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는 아집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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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9  서론 문명사적 규모의 문제에 직면한 미래 예측 _ 우치다 타츠루

p47. 1. 인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로 살펴보는 인구동태와 종의 생존 전략 _ 이케다 기요히코

p77 2. 두뇌자본주의가 온다 - 저출생보다 심각한 인공지능시대의 문제 _ 이노우에 도모히로

p107 3. 인구 감소의 실상과 미래의 희망 - 간단한 통계수치로 '공기'의 지배에서 탈출할 수 있다 _ 모타니 고스케

p135 4. 인구 감소가 초래하는 윤리 대전환의 시대 - 무연의 세계에 유연의 장소를 만들자 _ 히라카와 가쓰미

p159 5. 축소사회는 하나도 즐겁지 않다 - 유럽의 사례로 보는 미래 세대를 위한 대책 _ 브레디 미카코

p183 6. 건축이 도시와 지방을 살릴 수 있다 - 따뜻하고 번잡한 거리 만들기 프로젝트 _ 구마 겐고

p201 7.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자치단체는 사라진다 - 문화를 통한 사회포섭의 권유 _ 히라타 오리자

p225 8. 도시와 비장, 먹거리로 연결되다 - '관계인구'를 창출한 공동체 혁명 _ 다카하시 히로유키

p253 9. 인구 예측 그래프의 덫 - 저출생을 둘러싼 여론의 배경에 존재하는 '경영자 시선' _ 오다지마 다카시

p271 10. 뜨거운 근대는 끝났다 - '사양의 일본'을 위한 현명한 안전보장 전망 _ 강상중

 

 

p19

 "파국적 사태(catastrophe)가 과거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파국적 사태가 미래에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명제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 이후) 분명히 영미 지성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연성에 불과합니다. 개연성의 전망에 주관적인 희망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앵글로 · 색슨 문화권의 지성인이 생각하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상식이 아닙니다. 일본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일어날 확률이 낮은 파국적 사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가 일본의 전통입니다.

 

p23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25명의 피고인 전원은 "나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주사변에 대해서도, 중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도, 태평양전쟁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다른 선택안이 없었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는 만주사변, 중국에서의 군사행동, 3국 동맹,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부 개인적으로는 반대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에 기가 막힌 검찰관은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본인이 반대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에서 잇달아 중요한 직위로 나아갈 수 있었냐고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고이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일본인의 방식은 자신의 의견은 의견, 논의는 논의입니다. 만약 국가정책이 결정되었다면, 그 국가정책에 따라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과된 종래의 관습이며 또한 존중받는 방식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이 증언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현실'이라는 대상을 진행형으로 만들어내거나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지 것,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피고인들은 전쟁지도부라는 중요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천재지변처럼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압도적인 현실에 적응하는 것 말고는 "선택 안이 없었다"고 변명한 것입니다.

 전쟁이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라면, 어떤 이념과 계획에 의거하여 전쟁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천재지변과 같은 종류의 파국이라면, 누구에게도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저는 패색이 짙어진 이후에는 전쟁지도부 사람들은 오히려 '전쟁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주력 부대를 잃어 이미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그 시점에서 강화교섭을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였습니다(실제로 기도 고이치木戶幸一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등은 평화공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강화 조건으로 일본제국의 존속을 인정해주는 대신, 만주 · 한반도 · 대만 등 식민지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누가 무엇을 위해서 이런 무모한 전쟁을 시작했는가? 국익을 손상시킨 자는 누구인가?" 라는 엄중한 책임추궁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통치기구가 제대로 기능하고, 국민 생활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언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전쟁지도부에게 책임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피고석에 세워진 사람의 상당수는 일본인이 직접 재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제어불능 상태가 되고, 통치기구가 와해되고,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우왕좌왕 도망가고, 정치적 의견을 논할 기회나 대화의 기회도 사라지면 사태가 너무나 파국적이기 때문에 일본인이 직접 전쟁 책임을 추궁할 기회는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일단 파국적 현실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 이상, '자신의 의견은 의견, 논의는 논의'로서 한쪽으로 치워둔 채, 살아남은 사람끼리 손을 맞잡고 국가를 재건하는 사업에 착수하는 것이 '부과된 종래의 관습이며 또한 존중받는 방식'이 됩니다. 일억총참회一億總懺悔'는 그런 의미입니다. 지금의 파국은 천재지변이니 그런 아수라장에서 "누구의 책임이다"라는 천박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직접 패전 처리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는(책임을 추궁당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천재지변과 같은 파국이 찾아올 때까지(또는 '가미카제神風'의 도움으로 지도부의 무위무책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승리가 찾아올 때까지) 손을 쓰지 않고 기다립니다. 이러한 병적인 심리기제는 태평양전쟁 패전 무렵에만 나타난 특징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대로 일본 사화에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일본의 지도층은 인구 감소가 어떤 '최악의 사태'를 초해라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미래를 생각하면 사고가 정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근거 없는 이상행복감에 가까운 망상에 빠져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할 뿐입니다.

 낙관적인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통계자료를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위험 가능성을 낮게 예측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지혜'가 잘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적당한 거짓말이나 변명이 생각나는 한, 얼마 동안 자기 자신은 지위를 보전할 수 있고 이익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하고 입에 담는 순간, 그때까지의 실패와 부작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울 것을 강요당합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그런 일을 떠맡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비관적인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사회 전체에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노력한 인가에게 오히려 책임을 추궁합니다. 집중적으로 비난 공격을 쏟아 붓고, 사죄와 해명을 요구하고, '확실하게 책임'을 지라며 위협합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의 방식입니다.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을 했지만 개인에게는 전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패는 인정하지 말고, "모두 최상의 상태입니다"라고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책임을 뒤로 미루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거품경제 시절의 은행경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은행경영자는 불량채권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재임 기간에 사건화되어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제를 뒤로 미루고 퇴직금 전액을 받아 도망쳐 은행이 파산할 때까지 문제를 방치했습니다.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를 파국적으로 만드는 편이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모든 사화에는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이런 인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이 통치기구의 요직을 차지하는 체계는 분명히 병들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일본 사회는 심각하게 병들어 있습니다.

 

p53

 재미있는 사실은 살아남아 현대인의 선조가 된 것은 호모사피엔스 여성과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혼혈이라는 점이다. 호모사피엔스 남성과 네안데르텔인 여성의 혼혈 계열과 순수혈통을 유지한 호포사피엔스 집단(만약 실제로 존재햇다면)은 멸종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이유는 현대인에게 당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흔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는다. 현대인의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도 네안데르탈인 여성은 나오지 않는다.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호모사피엔스 여성에게 귀착된다. 한편 핵 DNA에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인자가 들어 있는 것은 우리 조상에게 네안데르탈인 남성과 호모사피엔스 여성의 혼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갓난아이는 어머니가 소속된 집단에서 자랐을 것이다. 호포사피엔스 남성과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혼혈로 태어난 자손은 네안데르탈인의 멸망과 운명을 함께했음에 틀림없다.

 

p68

 자본주의는 비용과 이익의 차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노동자의 임금은 가장 중요한 비용이기 때문에 자본가는 가능한 이것을 싸게 억제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얻은 이윤은 자본가의 부로 축적된다. 결과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한 소수의 자산가와 대다수의 가난뱅이라는 사회구조가 진행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권력은 자본가와 결탁해 이러한 과정을 추진하는 정치제도를 정비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성립되고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조금이라도 갖춰진 국가에서는 선거권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체계는 상당한 통제를 받게 된다. 당연히 자본가는 국민국가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생략하고 간단히 요약하면 그 결과 세계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국가체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본을 움직여 자원과 노동자를 최저 비용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구와 자원이 계속 증가해야 한다. 자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이다.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력과 물자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풍족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농업도 어업도 제조업도 에너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자본주의는 에너지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구는 어떨까? 싼 노동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노동인구가 많을수록 좋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 정권은 세계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세계자본주의에게 봉사하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이 "저출생이 진행되면 일본은 소멸한다. 원자력발전을 중단하면 에너지 부족으로 생활이 불가능해진다"고 국민을 협박하며 세계자본주의의 연명을 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국가 또는 국민을 지킨다는 표어 아래 실은 국민과 함께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계자본주의에 팔아넘기기 위한 정교한 속임수가 진행되고 있다.

 

p94 순수 기계화 경제와 제2의 대분기

 제4차 산업혁명은 벽에 부딪힌 성숙 단계 국가의 경제 성장을 해결해줄지 모른다. 범용 인공지능을 비롯해 인공지능 · 로봇 등의 기계가 인간 노동의 대부분을 대체하면 <도표 4> (인공지능과 로봇에 기술을 입력하여 기계를 운용하여 생산하고 이 생산품이 소비되는 공급 체인, 즉 인간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 와 같은 생산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투입요소는 인공지능 · 로봇을 포함한 기계뿐이며 노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러한 경제를 '순수 로봇 경제'라고 불렀지만 여기에서는 '순수 기계화 경제'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기계만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상품과 기술의 개발, 생산 활동의 경영관리 등은 여전히 인간의 일로 남아 있다.

 

 순수 기계화 경제에 대한 수리모형(AK모형)을 만들어 분석해보면 성장률 자체가 매년 상승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기계화 경제의 정상定常상태에서는 매년 거의 일정한 비율로 1인당 소득이 성장하지만,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성장률 자체가 매년 성장한다.

 따라서 만약 범용인공지능을 도입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다면 <도표 5>(인공지능 도입국가의 경제 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점점 높아지게 되는)에 나타난 것처럼 경제 성장률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분기를 '제2차 대분기'라고 부르겠다. 

 

p97 제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는 위험성

 최초의 대분기에서 일본은 늦게나마 상승노선을 걸을 수 있었다. 덕분에 20세기를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제2의 대분기에서도 상승노선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앞서 나가는 다른 국가들에게 선두를 뺏긴다면 경제적 수탈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제3차 산업혁명에서 일본은 열세에 몰렸다. 그래서 일본인은 현재 구글이나 MS,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미국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많은 수익이 미국 기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더 많은 수익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 공업과 서비스업 등의 모든 산업에서 인공지능 · 로봇이 이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탈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군사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일이다. 일본의 제2의 대분기에서 정체노선을 걷고 주변 국가들은 상승노선을 걷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군사력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국토와 국민을 방어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지력이 관건이다. 

 

 딥마인드Deep Mind는 원래 영국 회사였지만 2014년에 구글이 4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사들였다. 

 

2014년 당시 딥마인드의 사원은 100명도 되지 않았다. 보유한 공장이나 자산도 없었다.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를 비롯한 사원들의 두뇌에 4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p126

 첫째, ①이 ② 보다 작아진 국가는 일본만이 아니다. - ① 2010년 시점에서 살고 있던 10~14세 인구, ② 2010년 시점에서 살고 있던 60~64세 인구, 새로 태어나는 인구가 고령화 인구에 비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 다음에 제시하는 통계수치는 국제연합 인구부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세계 각국의 2015년 인구추계와 향후의 예측(중위 추계, 이민을 받는 사례)에 준거해 조사했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거느린 중국도 몇 년 전부터 동일한 상태에 돌입했다. 한국과 대만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도 동북아시아 정도로 급속한 전개는 아니지만 저출생 경향이 시작되고 있다. 여전히 명확하게  ①이 ② 보다 큰 국가는 인도에서 중근동, 아프리카에 걸친 지역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 유럽이나 동북아시아처럼 변해갈 것이다.

 

 참고로 2020년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고령자 절대인구수의 증가가 멈춘다(수도권은 유일하게 계속 증가하지만 지방은 일제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 구미 국가들은 여전히 증가하고 중국, 한국, 대만은 구미 국가들의 규모를 크게 상회하는 급증이 계속된다. 한편 생산연령인구의 경우 일본은 세계 다른 국가들보다 20년 이상 일찍 1995년에 정점을 맞이했지만, 중국, 한국, 대만도 2015년을 정점으로 감소로 전환되고, 구미 국가들도 증가가 거의 정지한다. 일본만 상황이 나쁘다는 말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사실과 연동되어 개선될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세상에는 "이민을 받아들이면 아이가 늘어날 것이다"라는 공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량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과 싱가포르에서도 이미 어린이의 절대인구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육아에 돈이 드는 출생률이 낮은 지역으로 이민을 온 이민자는 그곳의 선주자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쿄에서 저출생이 진행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왠지 "이민자는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서도 아이를 낳아 수가 늘어난다"는 공기 같은 선입견이 존재한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그릇된 견해를 고치도록 주의해야 한다.

 세계는 자동적인 저출생,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인류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승자는 지구환경과 그것에 뿌리를 둔 미래 세대, 패자는 인구 증가에 의존하며 불로소득을 늘려온 금융투자가가 될 것이다.

 

p129

 이번에는 2015년 국세조사의 실제 수치를 살펴보자. 먼저 일본 전체의 차세대 재생력은 68퍼센트다(각 지역에 1~2퍼센트 미만으로 존재하는 연령미회답자는 연령회답자의 비율에 따라 나누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는 대략 신세대의 3분의 2 정도만 아이가 태어난다. 매년 출생수는 현재 약 100만 명이다. 신세대가 30퍼센트 감소하는 30년 뒤에도 이러한 출생 상황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출생수는 70만 명 미만이 된다는 계산이다. 대단히 대략적인 계산이지만, 70만 명의 출생자의 평균수명을 80년으로 가정하면 70만 명 X 80년 = 5,600만 명. 다시 말해 출생자수 70만 명/년이라는 것은 일본의 총 인구가 6천만 명 이하로 줄어드는 수준이다. 참고로 단카이 주니어가 태어난 1970년대 전반에는 매년 2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현재 상태는 딱 그 절반, 30년 이후에는 3분의 1이라는 계산이 된다.

 

 <도표 4>에는 각 행정구역의 차세대 재생력을 나타냈다. 오키나와의 93퍼센트를 필두로 명확히 서쪽지방이 높고 동쪽지방이 낮은 모습을 보인다.

 도표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대도시 가운데 가장 상황이 나은 곳은 히로시마시(75퍼센트)로 기타큐슈시가 뒤를 잇고 있다. 그 밖의 도시는 60퍼센트 전후의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다. 도쿄특별구는 52퍼센트다.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절반 정도 다음 세대를 남기지 않는 진정한 블랙홀 상태다.

 그러나 도쿄가 망해도 일본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 재생력이 100퍼센트가 넘는 지역자치단체, 다시 말해 신세대의 인구수와 비슷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아이들이 태어나는 지역이 일본 전국에 오키나와현을 중심으로 40곳이나 있다. 차세대 재생력이 90퍼센트라도 당장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24세 이하와 40세 이상도 출산하기 때문에 합계특수출생률은 2에 가깝다). 90퍼센트까지 기준을 내리면 110곳의 지역이 해당된다. 그런데 그 상당수는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나 산간과소지역이다. 과소지역은 아이들이 적다는 안이한 선입견이 있다. 물론 그런 과소지역도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다시 말해 아이를 키우는 젊은 세대를 소중히 여기는 과소지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똑같은 일본인이 만들어가는 현대 일본 사회 속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일본인의 DNA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활방식과 생활환경의 변화다. 생활환경만 바로잡으면 아이는 다시 늘어난다. 왜냐하면 DNA는 원래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DNA 본래의 잠재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 감소를 불필요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생활환경의 개선이라고는 했지만, 오키나와처럼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는 지역도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고 24시간 영업점도 많다. 모든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종종 오해를 받는 부분인데 "여자는 결혼해야지"라는 사회적 압박 정도의 경우, 아키타현을 필두로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여겨지는 동북지방은 출생률이 낮고, 결혼에 대한 압박이 적은 오키나와는 수치가 높다. 이런 사실에서도 추론할 수 있듯이 사회적 압박은 관련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고쳐야 할 부분만 개선해나가면 자유와 인권도 완전히 지키면서 다음 세대가 성장할 환경을 부활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차세대를 재생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해결책은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우는 부모가 늘어나도 차세대 재생력은 올라간다. "모든 여성이 아이를 두 명씩 낳는다"가 아니라 세 명이라도 네 명이라도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늘어나는 것이 평균 출생률을 끌어올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아이들을 키울 때 생기는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남서지역 섬들을 필두로 서일본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차세대 재생력이 높은 자치단체에는 다자녀가정을 성심껏 도와주는 사회적 기풍이 남아있다. 아무래도 도시지역과 동일본은 이와 같은 서로 돕는 전통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추론된다.

 도쿄의 차세대 재생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후기고령자의 절대인구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폭적인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력도 예산도 잉여토지도 전부 고령자 의료복지 쪽으로 돌리고 있는데다가, 처음부터 식비와 집세와 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아이를 한 명 더 낳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유요한 방법은 원하는 만큼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생활비가 저렴하고 서로 돕는 기풍이 남아 있는 지방으로 아이를 원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을 많이 보내는 것이다. 이것만이 일본의 소멸을 가능한 뒤로 미룰 수 있으며, 언젠가는 역전의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비책이다.

 

p143

 인구 감소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귀결로 이해해야 한다.

 

p147

 결혼 연령의 상승과 태평양전쟁 이후에 전개된 가족 형태의 변화(권위주의적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및 시장화의 진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장화의 진전이야말로 가족 형태의 변화를 초해란 요인이었다. 시장화와 핵가족화는 결혼해서 가족을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일본인의 가족관을 바꿔놓았다. 돈만 있으면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안전보장이었다. 그러나 시장화의 진전으로 많은 사람들은 돈이야말로 안전보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시장화의 진전을 통해서 권위주의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개인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다. 시장화는 일본 민주주의의 진전을 후원한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혼화는 자유와 발전의 대가라고 볼 수 있다.

 시장화는 무연화無緣化이기도 하다. 이는 유연有緣 공동체의 윤리 개념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 확장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기패해서 결혼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포함한 유연공동체에서 자청해서 도망가고 있는 것이가. 그 결과 유연공동체인 일본의 권위주의적 직계가족의 해체가 진행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소비사회의 진전으로 결혼의 득실을 계산하는 윤리가 정착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글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이해타산만 생각하면 주부는 타산이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해타산만 따지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학비와 식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결혼 연령의 상승은 태평양전쟁 이후에 전개된 발전(무연화 · 시장화)의 귀결이다. 나는 결혼 연령 사승에 대한 대책으로 일본의 권위주의적 직계가족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설령 그럴 생각이 있어도 그것은 불가능한 논의다.

 하지만 결혼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주부'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이해타산적 윤리는 바꿀 수도 있다.

 

 

저출생 대책

 

 만약 만혼화에서 조혼화로 방향을 전환하기 어렵다면 가능한 저출생 대책 정책은 하나밖에 없다.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저출생을 둘러싼 상황을 저출산이 개선되지 않는 일본과 한국, 어느 정도 제어에 성공한 유럽을 비교해 살펴보면 현저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혼외자녀의 비율이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혼외자녀 비율은 50퍼센트가 넘는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 일본과 비슷한 가족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독일의 경우도 35퍼센트다.

 이에 비해 일본의 혼외자녀 비율은 아예 자릿수가 다르다. 겨우 2.3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은 더 낮은 1.9퍼센트다. 다시 말해 유교적 윤리에 사로잡힌 아시아에서는 법률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일이 거의 금기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일본의 저출생 대책은 혼인장려와 육아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저출생 대책은 일본과 한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따. 법률혼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어도 동등한 법적보호와 사회적 신용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혼인장려와 육아지원과 같은 개인생활 분야에는 정치권력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히려 인권확대와 생활권 확보 쪽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럽 선진국이 혼외자녀의 출산을 장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법률혼으로 묶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법률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족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사회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랑스 다음으로 혼외자녀 비율이 높은 스웨덴에서는 1987년 시점에서 동거인을 보호하는 동거법Sambolagen이 성립되었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경우 모두 결혼 연령이 내려가서 인구 감소가 멈춘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여성 초혼 연령은 30세가 넘으며 계속 떨어지지 않고 있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외적인 강제 또는 촉진을 통해서 결혼 연령을 끌어내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정치권력이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외자녀 비율이 50퍼센트가 넘어가면 출생률과 결혼의 상관관계는 지극히 희박해진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처럼 혼외자녀 비율이 대단히 낮다면 출생률은 평균 결혼 연령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게 된다.

 일본의 경우, 가족형태는 유교적 가치관이 농후한 권위주의적 대가족이 붕괴되고 핵가족화되었지만, 혼외자녀를 낳는 것을 금기시하는 가치관만은 계속 남아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나 부부별성夫婦別姓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과 비슷한 문제다.

 

 일본과 한국에서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거나 또는 정상화된 사회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육아지원이나 육아급부금처럼 대중요법적인 대처(이런 대처를 추진하는 자체는 두 팔 벌려 찬성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구조(가족구성)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윤리의 변화가 바로 그 열쇠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와 윤리의 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저출생이라는 현상 그 자체가 사회 구조를 바꾸고 윤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연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출생과 고령화는 생산성의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타산에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효율화를 위해서 사회를 분석해 비효율적인 부분을 잘라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비관용적인 격차사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p154

 현대 사회의 문제는 원래 유통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돈이라는 부富가 한 곳으로 집중되어, 국가에 의한 분배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전미 하위 50퍼센트의 총 자산이 최고소득자 세 명의 합계자산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확실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전계게의 하위 50퍼센트의 자산이 최고소득자 여덟 명의 자산과 거의 비슷하다는 상황 역시 화폐경제의 혹독하고 무자비한 폭력성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 화폐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화폐경제의 윤리와 교환경제의 윤리가 부의 편재偏在(쏠림 현상)를 촉진하고, 사회를 분단시키고, 사람을 고립시키는 벡터를 갖는다면, 부를 편재遍在(널리 퍼짐)하게 만들고, 사회를 포섭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벡터로 대치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간단한 해답은 없지만 문제를 풀 열쇠라면 있다. 열쇠는 화폐경제 이전의 윤리다.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증여론Essai sur le don>에 따르면 화폐경제 이전의 경제 윤리는 현재의 등가교환의 윤리와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체적인 급부체계를 채용하고 있는 문명화 이전의 부족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은 자신의 것이라는 윤리, 증여를 받으면 등가물로 답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가 일반적이었다. 오늘날에도 국가가 없는 로마족(집시)은 타인의 물건은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누이트족은 등가교환적인 개념보다 잡은 사냥감을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사유제와 등가교환성이 만들어내는 윤리는 통용되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화폐경제 이전의 전체적인 급부의 윤리가 현대 일본 사회에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남은 윤리'가 미래 세계의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현대 사화에서는 통용되는 등가교환의 윤리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 또는 "빌린 것은 갚아야 한다" 등이다. 그러나 부모자식 관계나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이러한 윤리가 채용되지 않은 채 답례 없는 증여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피를 나눈 가족 사이에 등가교환의 윤리를 채용한다면 부모 자식 관계는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렇지 않게 생전증여를 한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무상으로 양육하는 것은 의무다. 현대인은 이러한 무상증여의 윤리를 등가교환의 윤리와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부모자식과 형제라는 혈연가족이나 강한 동료의식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내부에서는 무상증여의 윤리가 일반적이고, 외부와의 교환에는 등가교환의 윤리를 사용한다. 실은 우리는 우리가 어째서 윤리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것은 '관계'다. '빚'을 진 상태는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청산될 때까지는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의미다. 꺼꾸로 말하면 청산이 끝났다는 것은 관계가 끝났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관계의 청산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다. 관계의 청산은 상품과 화폐의 거래이며, 이 거래를 늘려나가는 것이 경제적 성장이기 때문이다. 대차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거래의 정지를 의미한다.

 

 

 공동체의 운영기준은 득실이 아니라 규칙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배제되어 공동체 밖으로 추방당한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시장市場이었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도피처였던 시장의 가치관이 유연有緣의 장소를 잠식해버렸다는 것이다. 오래된 규칙을 해체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근대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때의 합리성은 바로 금전합리성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최적화하는 합리성이 아니다. 금전합리성을 추구하면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그 자체를 훼손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해와 온난화는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시장화는 무연화와 거의 같은 뜻이다. 공동체 내부에는 시장이 생기지 않는다. 인간사회는 원래 공동체적이고 상호부조적이었다. 공동체적이라는 것은 이해타산이 아닌 다른 가치관에 의해서 운영된다는 뜻이다.

 무연의 세계의 유연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 인구 감소 사회의 유일한 사회 설계일 것이다. 우선은 민영화되면서 파괴된 사회공통자본을 재생시킨다. 도시지역에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 공생장소를 만든다. 인류사적인 상호부조의 윤리를 다시 세운다.

 이것들이 이루어진다면 인구 감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닐 것이다.

 

p174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국가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토마 피케티의 말과도 호응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부 정치가들은 '투자보다는 지출 삭감'으로 나랏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

 폴 크루그먼은 그것이 단순한 착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크루그먼은 "가정 형편이 어려울 때는 가계 씀씀이를 줄이듯이, 국가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도 재정을 줄이는 것이 왕도"라고 일반인은 물론이고 지식인까지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금융완화와 재정지출을 실시하면 고용이 창출되어 수요가 확대된다"는 것은 경제학적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쓰는 것보다 모은 것이 경제적으로 좋은 상태"라는 가계 씀씀이 감각으로 국가 재정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치가는 설사 그 생각이 잘못됐다고 알고 있어도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재정의 균형을 맞춰서 나랏빚을 갚는다"라는 듣기 좋은 표현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구실이 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작은 정부)를 추진하기 위한 그럴듯한 핑계다. 대부분의 영국 경제학자가 긴축재정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대기업의 지도자들은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가능한 정부가 작아져서 시장의 일은 시장에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 대기업의 본심이기 때문이다. 긴축재정을 추진하는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부유층과 대기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왠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게 보이는 빚을 갚기 위한 정치'는 사실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빚을 남기지 않기"는 커녕 반대로 늘리고 있다는 모순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p176

 1929년 월가의 대폭락이 불러일으킨 세계대공황을 접한 두 나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경제정책을 실시했다. 독일의 바이마르 정부는 불황으로 세수가 감소하므로 재정균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맹신하고 계속 재정지출을 삭감했다. 따라서 불황이 멈추지 않고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냈다. 그런 상황에서 대규모 정부지출로 국민의 고용을 창출할 것을 약소하는 나치스가 등장해서 국민을 열광시켰다. 어째서인지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치스를 낳았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바이마르 정권이 지폐를 지나치게 많이 찍어내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1920년대 중반쯤 진정되었다. 나치를 낳은 것은 디플레이션과 긴축재정이었다.

 한편 미국은 같은 시기에 금융정책과 재정지출로 경제를 확대시키는 뉴딜정책을 실시했다. 불황이라고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고, 반대로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서 국민의 고용을 창출하는 대담한 반 긴축적 정책을 취했다. 나치스의 경제정책과 뉴딜정책의 유사성은 세계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다시 말해 독일의 바이마르 정권이 불황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에 실패했기 때문에 파시스트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p188 1970년대의 반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장 확대의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는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1960~1975)이 20세기 체계의 종언을 상징했고, 일본에서는 오사카 만국박람회(1970)가 종언의 지표가 되었다. 1970년을 경계로 다양한 사회적 지표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 곡선이 반전되고, 저출생 · 고령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제조업을 대신해 서비스업이 대두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 현대의 저성장 · 저출생 · 고령화 사회는 이미 1970년대에 조짐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다른 전개를 맞이했다. 미국에서 중후장대산업은 일찌감치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와 조연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곳은 과거 시대를 선도한 주역을 언제까지나 대접해주는 미적지근한 곳이었다. 무사를 온존하는 풍토가 그래도 20세기가 되도록 잔존하고 있었다.

 일본의 건설한업은 1970년대 이후에도 조연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경제의 주역이었던 그들은 정치와의 결탁을 통해서 70년대 이후에도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사집단의 결속력과 집단주의는 강력한 득표장치로 기능하며 1970년대 이후의 일본 정치에서 주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득표장치가 장기적으로 계속 가능하려면 건축공사를 끊임없이 발주해야만 한다. 이것이 1970년대 이후로 일본 정치의 숨겨진 목표가 되었다.

 건설을 위한 명목은 시대와 함께 변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 성장과 주택공급이 명목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복지, 환경, 안전, 안심이었다. 각각의 시대에 걸맞은 듣기 좋은 명목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득표 체계의 존속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명목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 명목으로 무엇인가를 건설하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다면 무사는 행복할 뿐이다. 무사는 그렇게 성장과 확대의 시대가 종언된 1970년대 이후에도 에도시대의 무사가 정치와 결탁한 것돠 마찬가지로 시대의 정치와 성공적으로 공모하면서 사회 지도자라는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우연까지 무사의 셩명 연장을 도와주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두 번의 대지진이 일본을 덮쳤다. 대지진 피해의 복구와 부흥이 국가 목표가 되면서 무사는 새로운 활약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게다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겹쳤다. 우연이 몇 번이나 무사의 편을 들고 있다.

 

 

p209

 선진국의 노숙자는 태어날 때부터 노숙자인 사람은 없다. 어떤 이유 때문에 사회에서 도중에 낙오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노숙자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생활보호를 받으면 된다. 어떤 정신적 이유가 더해져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노숙자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 예술이나 운동을 접하고 1천 명 가운데 세 명이나 다섯 명이라도 살아갈 기력과 노동의욕을 되찾는다면, 이것은 대단히 저렴한 노숙자 대책이다. 무료급식만으로는 당장의 목숨을 구할 수는 있어도 발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는다. 노숙자를 만들어내는 원인의 하나가 인간 정신적인 측면에 있는 이상, 그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노숙자 프로젝트는 내 주변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례도 있다.

 내가 경영하는 고마바 아고라극장은 몇 년 전부터 고용보험 수급자에게 대폭적인 할인을 실시하고 있다. 실은 이것도 유럽의 모든 극장과 미술관에서 당연히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다. 학생 할인과 장애인 할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업자 할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용보험 수급자가 평일 낮에 극장이나 영화관을 찾으면 구직활동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고용보험 지급을 중단해 버리는 정책. 또는 생활보호세대의 구성원이 극장에 가면 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사회 분위기.

 

p212

 그렇기에 우리는 사고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실업 중인 사람이 평일 낮에 영화관이나 극장에 찾아주면 "실업 중인데도 극장을 찾아줘서 고마워요.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어서 고마워요. 그렇게 하는 편이 최종적으로 행정과 사회의 비용도 위험요소도 경감되니까요"라고 말이다. 또한 생활보호세대가 콘서트홀에 오면 "생활이 어려운데도 음악을 들으러 와줘서 고마워요. 집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서 고마워요"라고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 편이 최종적으로 사회전체의 부담이 경감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문화를 통한 사회포섭'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예로부터 지연과 혈연이 강한 사회였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체계는 태평양전쟁 이후에 붕괴되었고 기업 사회가 그것을 대체했다. 사택에 살고, 사원운동회에 참가하고, 사원여행을 즐기고, 기업연금의 보장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일생을 마친다고 믿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기업은 이제 노동자를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기업사회 또는 그에 대한 믿음은 붕괴되었다. 뒤돌아보면 옛날의 좋았던 지연 · 혈연형 사회(라는 것도 역시 환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때의 유행어였던 '무연사회'의 정체다.

 게다가 일본에는 마지막 안전망인 종교도 없다. 유럽의 노숙자는 정말 힘들 때는 교회를 찾을 수 있지만 일본에는 그런 종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본은 세계 선진국 중에서 가장 인간이 고립되기 쉬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p229

 애초에 지금의 먹거리 가격이 적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먹거리의 생산 현장에서는 1차 산업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농부와 어부가 점점 줄고 있다.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없다니, 정말 이상한 이야기다. 식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싼 가격을 강요당하자, 생산자가 충분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상태가 오래 이어졌다. 먹거리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자에게는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산자가 계속 줄어든다면 결국 일부 부유층만이 일본 국내산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먹거리 가격이 지나치게 내려가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도 위협받게 된다. 끊이지 않는 식품 위조 문제의 근원에는 1엔이라도 저렴한 음식을 선택하는 소비 행동이 생산과정이 보이지 않는 먹거리의 대량 제조를 초래한다는 부분도 부정할 수 없다. 2007년 식품가공회사 미트호프의 가공육 위장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회사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반액 할인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싼 냉동식품을 좋다고 구매하는 소비자도 나쁘다"고 말해 세간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했다,

 확실히 위조는 나쁜 일이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미트호프 사장의 발언은 우리가 먹거리를 선택할 때 '저렴함'을 판단기준으로 삼은 것이 생산과정의 블랙박스화를 초래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먹거리의 안전을 위한 비용을 소비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식품 위조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2017년 구마모토에서 만난 여의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를 줄이기 위해서 채소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현대인은 평소 식생활을 신경 쓰지 않고, 안전을 위한 돈도 쓰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병에 걸려 거액을 의료비로 쓰다가 결국 병상에 누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도 많다. 이왕 같은 돈을 쓴다면 부정적 비용이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구매하는 긍정적 비용을 선택해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 자신의 소비 행동을 바꾸는 것은 백세시대에 걸맞은 저비용의 의식동원醫食同源 사회 만들기로 이어진다.

 

p238

 내가 태어나기기 얼마 전인 1970년 1,035만 명이었던 농업종사자는 2016년에 19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참고 대한민국 현황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41226.html)

 

192만 명 가운데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125만 명, 39세 이하는 겨우 12만 명 뿐이다. 또한 연령별로 살펴봤을 때, 이농비용이 가장 높은 연령은 39세 이하다.

 내가 현의원으로 재직하던 때부터 이러한 감소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수치가 눈앞에 제시하는 현실을 현장에서 보고 들으면서, 지금까지 먹거리의 생산에 관한 문제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자신을 깨달았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알갈 수 없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은 식생활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1차 생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먹거리가 없어져 곤란한 쪽이 소비자라면, 생산자 혼자 머리를 싸매고 후계자 부족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도 당사자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격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소비행동을 해온 우리는 1차 산업을 쇠퇴시긴 간접적인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낙농과 쌀농사 등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영향력 아래서 생며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통감했다. 생물이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죽기도 한다. 악천후로 인해 그동안의 막대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농부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경외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농부는 자연에서 배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 기술 ·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지역 사람들이 지금까지 축적한 지혜 · 기술 · 판단력이라는 경험치는 일종의 과학이기도 하다. 농부의 경험치를 활용한 생산활동은 자연을 인간의 먹거리로 바꾸기 위한 작은 과학small-science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본인은 농촌을 떠났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자연과 타인, 지역사회 등의 번거로운 관계를 버리고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는 대신, 자연이나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혜 · 기술 · 판단력을 포기했다. 생활의 풍요로움을 원자력발전과 유전자공학 등의 거대과학big-science에 맡기고, 행정 · 과학기술 · 경제에 모든 것을 일임한 채, 관객석 위에서 강 건너 불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런 삶에는 공동체의 생활을 자신의 지혜와 창의적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기쁨과 감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 지역의 과제를 해결하는 마음가짐을 잃고, 사회를 만들어가는 당사자가 아니라 '손님'이 되어버렸다.

 주인 의식을 상실한 1억 총관객사회에 활력이 생겨날 리가 없다.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수요부족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세수입도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행재정 자원이 축소되고, 고령자 부양이라는 부담이 핵가족을 덮치던 그때, 풍요의 기반이었던 원자력이라는 거대 과학이 폭주해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성장을 추구한 결과, 오히려 근원적 위험요소를 구조적으로 떠안아버리는 사회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는 '위험사회'의 개미지옥 자체다.

 지역과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1억 총관객사회는 '고비용 사회'이기도 하다. 고립이 진행될수록 1인당 생활유지 비용이 증가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경제와 과학기술의 힘에만 의존한다면, 좀더 심각한 '위험사회'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활과 사회에서 '관계의 힘'을 되살려야 한다.

 자연과 타인,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가 관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와 각자 생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힘으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쪽으로 돌아간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편이 훨씬 즐겁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주체적으로 참가하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직접 생활을 만들어나가는 기쁨과 감동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찾는 일임과 동시에 재해 · 경제 위기 · 질병 등의 요소에 취약한 '위험사회'에 대비하는 일이다. 생산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그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p277

 19세기 중반 에도시대 말기의 인구는 약 3,000만 명, 1870년대 메이지시대 초기는 약 3,500만 명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 동안, 전쟁으로 인한 감소가 있었지만 일본의 인구는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같은 기간에 약 1.5배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일본의 인구 증가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알 수 있다. 일본과 비슷한 근대화 과정을 거쳤으며 전쟁도 체험한 독일의 경우도 영국과 프랑스보다는 증가율이 높지만 일본 정도는 아니다.

 미국은 이민국이기 때문에 일본의 단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본의 증가율을 월등히 상회하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러나 한국은 '압축 근대'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뜨거운 근대'를 단기간에 편파적인 형태로 통과했다. 그러다보니 출생률은 일본보다 낮아 저출생 · 고령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결국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 동안, 세계적으로도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은 인구 감소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

 

 애널리스트가 쓴 근현대의 주요 경제적 사건에 대한 기록과 그 해석. 책의 목적은 주요 경제 이벤트에 대한 근본적이고 간략한 경제적 해석에 있는 것 같다. 내용이 깊진 않지만 핵심을 짚는다는 점에서 경제 인사이트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외환위기 등 현대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던지는 화두에 대해 핵심원인을 짚어나가는 부분은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논의에 사용된 참고문헌들을 바로 그 챕터 말미에 소개하는데 이 도서들을 보면 경제적 지식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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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

 15세기에 유럽에서 산출된 금은 당시 수요에 비해 매우 부족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1400년에 유럽 내부의 금 산출량은 4통을 넘지 않았다. 게다가 동방 무역으로 지속적으로 금이 유출되고 있기에, 이 정도 생산량으로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돈의 공급량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쓰는 돈을 절약하려 노력하고, 그 결과 물가가 내려간다.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 등 수많은 모험가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향하고, 인도를 찾아 대서양을 횡단했던 데에는 금을 비롯한 귀금속의 가격 상승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p242

 특히 1979년 2월,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새롭게 들어선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부가 반미 노선을 강화하면서 국제 유가는 폭등했고, 나아가 이라크의 후세인 정부가 1980년 9월 이란을 침공하면서,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9년 1월까지만 해도 석유 가격은 배럴당 14.8달러 내외였지만, 1980년 4월 39.5달러까지 급등했다. 

 그런데 제2차 석유파동의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3년 2월 석유 가격은 배럴당 29.0달러로 떨어졌고, 급기야 1986년 3월에는 12.6달러까지 폭락하고 말았다. 세계 2위와 4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란과 이라크의 석유 생산이 1988년까지 사실상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유가는 폭락했을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미국의 금리, 특히 실질금리가 인상된 것이다. <도표 5-4>에 나타난 것처럼, 미국의 실질 정책금리가 1980년대 초반 8%포인트까지 상승하면서, 달러 자산을 보유할 실익이 확대되었다. 실질 정책금리란, 정책금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것인데 인플레를 감안하고도 수령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은행 예금 이자율을 의미한다. 따라서 달러로 수출 대금을 받는 산유국 입장에서는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원유 가격의 인상을 위해 노력할 동기가 사라진다.

 나아가 달러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때, 상품을 비롯한 이른바 비非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71년 닉슨 쇼크에서 확인되듯, 금을 비롯한 전 세계 상품 가격이 폭등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치가 흔들린 데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달러의 위상이 다시 예전처럼 굳건해지면, 원유나 금처럼 변동성이 큰 이른바 '위험자산'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1980년을 고비로 국제유가의 급등세가 진정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실질금리가 하락하던 1983년부터 유가가 하락 흐름을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상품시장의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p273

 이 대목에서 잠깐 '버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자산가격이 어떤 수준에 도달해야 버블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다. 이때 활용하기 좋은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부자 입장에서의 판단이다. 내부자 입장에서 주식을 매수하기보다 매도할 유인이 훨씬 강해지는 때가 바로 '버블'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어느 기업가가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주가수익비율(PER)이 4배에 불과하다면 주식시장에 공개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이유는 결국 자본을 조달하기 위함인데, 회사 한 주의 기대수익률(주당순이익/주가)은 25%인 반면, 당시 일본의 은행 금리는 2.5%에 불과하니 주식을 상징하는 것보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식시장이 침체되어 상장 기업들의 PER이 낮을 때에는 기업의 증자나 상장이 크게 줄어든다. 

 반면 주가가 높아지면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1989년 일본처럼, 돈도 제대로 못 버는 별볼일없는 기업의 주식도 PER이 100배에 거래되고 채권 금리가 6%를 넘어선다고 생각해보자. 이 기업 주식의 기대수익률은 1%에 불과한데 채권 금리는 6%를 넘어서고 있다면, 최고경영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자명하다. 부지런히 증자를 해서 조달한 돈을 채권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가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지난 2000년 코스닥 버블 때, 많은 정보통신기업이 증자로 유입된 돈을 빌딩 매입에 투자했던 것은 매우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까지 상승한 상황에서 주식의 PER이 급격히 상승하면 주식 공급은 무한히 증가하게 되고, 주식 공급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주식시장은 점점 더 상승 탄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p288. 자산가격 하락이 장기불황으로 이어진 이유는?

 

 1988년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만 공격적으로(200bp 이상)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추진했던 재정정책이 경기 하강을 억제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을 주긴 했지만, 통화정책과 함께 진행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나친 저금리로 인플레가 발생하면 긴축으로 전환하여 해결할 수 있지만, 경기 부양이 너무 늦거나 규모가 약해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게 되면 경제를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방법이 마땅찮다. 따라서 자산가격 버블이 붕괴될 때는 일단 시장 참가자들의 미래 경제에 대한 예상을 바꿔놓을 정도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이 필요하다.

 

 왜 디플레이션은 퇴치하기 힘들까? '통화정책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라는 게 미 연준 이코노미스트들의 지적이다.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금리를 아무리 낮춰봐야, 실질금리가 더 떨어지지 않는다. 그 단적인 예가 <도표 6-6>의 1994~1995년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짐에 따라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인하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재정정책을 충분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장기불황의 위험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표 6-6>에서 1997년을 보면, 갑자기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에서 2%까지 뛰어오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 하면, 당시 하시모토 정부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세를 기존 3%에서 5%로 인상했기 때무이다. 1937년 루스벨트 행정부가 재정 건전화를 위해 재정지출을 삭감한 후 심각한 불황을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정책 시행으로 일본 경제는 돌이키기 어려운 장기 불황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고 볼 수 있다.

 

p311. 토지개혁, 번영의 초석을 놓다!

 

 낮은 임금과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토지 소유 분포, 그리고 저학력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던 우리나라는 어떻게 산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미 군정이 추진한 두 가지 핵심 정책, 강력한 통치기구 조직과 점진적인 토지개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45년 8월 말,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들어섰을 때, 이미 토지 소유 집중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에서 온 지주와 토착 대지주들이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반면,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산업 노동자로 전락했다. 문제는 일제 패망으로 원료 공급이 끊기며 제조업 생산이 중단됨에 따라, 도시의 산업 노동자들이 다시 농촌으로 복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지주들은 전통적인 토지 집중적인 농업, 즉 소작 제도를 시행했고, 그로 인해 전체적으로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경제는 침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국민의 관심사는 토지 분배에 집중되었다. 미 군정은 이 부분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들은 1946년 소작인이 토지 경작 대가로 지주에게 지불해야 할 소작료를 그해 생산량의 1/3 수준으로 낮추는 한편, 조선 총독부가 보유하고 있던 대규모 토지를 농민에게 팔아넘겼다. 특히 미 군정은 조선총독부뿐만 아니라 일본인 지주들이 보유하던 약 2,780제곱킬로미터의 토지를 인수했는데, 1948년 초에 이 토지를 농민에게 매각함으로써 59만 7,974가구, 즉 농업 인구의 24.1%에 해당하는 농민이 새롭게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당시 미 군정이 불완전하나마 '토지개혁'을 실시했던 이유는 공산화의 위험을 퇴치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토지개혁을 주도했던 울프 라데진스키(Wolf Ladejinsky)는 다음과 같이 당시의 일을 회고한다.

 "나는 1921년 초에 러시아를 떠나기 전에 얻은 교훈 덕분에 이 일(=토지개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돌려줌으로써 단호하게 토지 문제를 해결했다면, 공산주의자들이 절대 권력을 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교훈 말입니다."

 

 1952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극단적인 반공주의자들이 세력을 얻으면서 울프 라데진스키를 비롯한 토지개혁론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운 좋게 한국전쟁 직전에 토지 개혁이 완료되어 공산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참고로 1950년 3월 이승만 정부가 통과시킨 토지개혁법은 '소유주가 직접 경작하지 않는 모든 토지와 3만 제곱미터(약 9,180평)가 넘는 모든 토지'를 재분배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 법안에 따라 정부로부터 토지를 구입한 농민이 지불해야 할 금액은 해당 토지에서 산출된 연간 생산량의 150%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정부가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이수하며서 지급한 대금의 상당 부분이 미국의 원조로 충당되었다.

 이 대목에서 잠깐, 토지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토지개혁이 가져온 첫 번째 변화는 바로 '경제 성장'이었다. 지주들은 '고리대금업'만으로도 충분히 소득을 얻고 있었기에, 기술 투자에 열의가 없었다. 반면 소작농들은 관개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거니와, 소작 '계약 연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비료를 구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토지개혁 이전에 우리나라는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업국가'였음에도 식량 자급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식량 자급이 이뤄지지 못하니, 미국의 원조가 없을 때에는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토지개혁이 이뤄지며 농업생산성이 극적으로 향상된 것이다.

 <도표 7-2>는 1954년 이후의 농림어업 성장률과 경제성장률이 관계를 보여주는데, 1954~1963년 연평균 농림어업 성장률이 5.1%에 이르러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6.0%)에 근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1953년 전체 국내총생산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8%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이 농업 생산성의 향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63년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수출 중심의 공업화에 힘입어 고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농업 주도의 경제 성장이 '토대'가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토지개혁 이후 농업생산성이 극적으로 개선된 이유는 '동기 유발'에 있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봐야 대부분의 수확물을 지주에게 빼앗기는 상황에서 수확량을 늘리려는 동기가 생기기는 어렵다. 그런데 당시 5인 혹은 6인 이상으로 이뤄진 가족들은 십수 마지기의 토지를 일구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노동력이 넘쳐 흐르는 개발 초기 단계의 개발도상국에게 중요한 것은 '효율'이 아니다. 어떻게든 남아도는 노동력을 활용해 최대한 생산을 짜내는 것이다. 1인당 수확량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만 토지개혁의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다. 타이완도 1949년 토지개혁 이후 10년 만에 식량 생산량이 75%나 늘어났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산성 향상은 곧 농가 소득 증가로 연결되었고, 이는 경제 전체에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어쨋든 우리나라는 소득 증가에 힘입어 자녀를 교육시킬 여유를 가지게 되어, 1944년 말 조선의 15세 이상 인구 중 무학력자 비중이 남자의 경우 80%, 여자의 경우 94%였던 것이 1955년에는 남성 50%, 여성 80%로 줄어들었다.

 이후 선순환이 이어졌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농촌의 여유 노동력이 도시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기업들은 이들을 고용해 내수시장에서 물건을 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더 만족되어야 했다. 그것은 제조업의 적극적인 육성이었다.

 

p321

 이상의 사례에서 보듯, 공장을 차리더라도 언제 이익을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제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제조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기업가들은 많지 않았다. 이때 우리나라 정부는 아주 효과적인 전략, 즉 '채찍과 당근'을 함께 사용했다. 먼저, 기업가들이 달려들지 않을 수 없는 매혹적인 당근으로 '저금리'를 제시했다. <도표 7-3>은 1960년대 우리 나라의 금리 수준을 보여주는데, 사채금리가 높을 때는 60%, 낮아도 40%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농촌에서 잉여생산물이 생겼다고 해서, 이게 다 저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기에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항상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수출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대출금리를 1966년부터 1972년까지 6%로, 이후 인상되었어도 1976년까지 8%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이는 수출 실적을 내기만 하면, 시장금리보다 50% 포인트 이상 낮은 저금리로 자금을 장기가 대출해준다는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겉으로 수출용 공장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저금리를 이용해 지대를 추구하는 기업인들도 있었다. 실제 1972년 8.3조치(경제 내에 존재하는 사채에 대한 원금 및 이자에 대한 지급을 동결하는 긴급재정명령) 때, 사채 전주의 30% 이상이 기업의 주주나 중역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기업이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이를 다시 다른 기업에 대출해주어 엄청난 차익을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는 이 기업이 수출만 제대로 한다면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이들 기업이 수출 실적을 내지 못한다 싶을 때는 강력한 철퇴를 가했다. 이 대목에서 '철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공장 건설 이후 수출 실적이 나오지 않고 원하는 기준에 미달한다고 판단될 때, 성공적인 기업에 강제로 합병시키거나 국영 금융시스템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파산이라는 궁극적인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조치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중화학공업 합리화' 조치다. 물론 이런 일은 우리 정부만 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일찍이 1930년대 독일의 관행을 연구한 후 합병을 통해 여러  제조업 부문을 '합리화'했으며, 2차 대전 이후에는 이를 더욱 가속화했다.

 박정희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운에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과 물류혁명이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공업국에게 거대한 시장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p342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건전해지고, 경제 전체의 이자율이 낮아지는 등 긍정적인 면이 크다는 이야기에 반감을 가지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이후 우리나라 내수경기는 제대로 된 호황을 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들의 이익이 개선되었음에도 내수경기는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바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있다. 우리나라 경상수지 흐름을 보여주는 <도표 7-7>을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단 한 번도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2010년 이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거의 4~8%의 흑자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듯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할 때, 내수경기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의 구성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GDP = 소비 + 투자 + 수출 - 수입 (1)

GDP - 소비 = 투자 + 수출 - 수입 (2), 여기서 GDP - 소비 = 저축, 우변의 수출 - 수입 = 경상수지 이므로

저축 = 투자 + 경상수지 (3)

저축 - 투자 = 경상수지 (4)

즉, 대규모 경상수지가 발생하고 있다는 뜻은 저축보다 투자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져서이다. 한보, 기아, 한양 등 위세를 떨치던 대기업마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수많은 실업자가 양산되는 것을 본 '트라우마' 때문에 소비와 투자를 줄인 결과,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소비는 다른 사람의 '매출'이라는 점이다. 결국 만성적인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한다는 것은 내수 비중이 높은 기업의 영업 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최근 겪었던 고용 부진 사태의 원인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 주체의 적극성이 약화된 탓이라고 볼 수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심리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기에 확실한 처방을 제시하기는 힘들다. 다만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정책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기준 우리 정부의 GDP 대비 재정수지는 1%대 중반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GDP 대비 정부 부채도 12.2%에 불과하다. 이렇듯 건전한 재정을 활용해서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만드는 한편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유발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간접자본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 때문에 건전 재정에 대한 집착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나날이 늘어나는 등 내수경기의 부진이 장기화되는 것을 방치하면 장기적으로 세수의 기반이 더 축소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데이터 분석에 관한 에피소드 집.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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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9

 사람들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에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상이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부모는 백식을 접종하지 않았을 때 아이가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될 경우 느끼는 책임감보다, 백신에 접종했는데 아이가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되었을 경우 느끼는 책임감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죠. 그래서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을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또는 '무편향 편향'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선 이러한 부작위 편향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는데,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의 다음 경구가 이를 잘 웅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동의 오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기업은 실패의 비용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하지만 실패는 비싼게 아니다.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기업에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은 무행동의 오류다."

 

p178

 시카고 대학과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경제학자들은 이와 관련해서 2015년 <젠더 정체성과 가족 내 상대 소득>이라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미국 부부를 대상으로 배우자 간 상대 소득을 조사했더니, 예상대로 남편의 소득이 높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남편이 아내보다 약간 더 버는 경우는 매우 많았으나, 반대로 아내가 남편보다 약간 더 버는 경우는 이례적으로 적었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은 교육,, 직업 등을 고려할 때 아내가 의도적으로 남편보다 적게 벌려는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실증했습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더 많이 벌 기회가 있더라도 아예 취업을 하지 않거나 노동시간을 줄여 대응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남편보다 아내가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아내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남편은 노동시간을 줄여 가사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 행동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보다 더 벌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자리 잡고 있는 탓에 아내가 소득이 높을 경우 남편은 불편해하고 아내는 미안함을 느껴 오히려 아내가 가사에 쓰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 리어나도 버스틴(Leonardo Bursztyn) 교수가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들과 함께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다니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수행한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이들이 2017년 발표한 <아내처럼 연기하기 : 결혼시장 인센티브와 노동시장 투자>라는 논문에 의하면, 미혼 여학생들은 시험이나 숙제성적에 있어서는 기혼 여학생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으나 사례연구 경쟁 등 공개된 참여형 과제에선 기혼 여학생에 비해 성적이 낮았다고 합니다. 미혼 여학생들의 경우, 능력과 야망이 시험이나 숙제로는 주변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개 참여형 과제에서는 모두에게 드러나게 되므로 동료 남학생(연인 또는 배우자후보)에게 나쁜 신호를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혼 여학생들은 이런 시그널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고, 남학생들은 시험이든 공개 참여형 과제든 모두 미혼과 기혼 간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연구자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경력개발센터에 본인의 희망 연봉, 노동시간, 포부 등을 등록하게 하면서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작성한 내용을 경력개발센터 가이드만 볼 것이라고 알려줬고, 다른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가이드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회람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남학생 및 기혼 여학생들의 경우 회람 공개를 기준으로 나눈 두 그룹이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혼 여학생들의 경우, 가이드만 회람하는 그룹에 비해 다른 학생들도 함께 회람하는 그룹은 희망 연봉을 평균 1만 8,000달러 낮추었고 희망 주당 노동시간도 네 시간 줄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보면 유리천장은 우리의 일상 의식 속에도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리천장이란 법과 제도만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고, 남성과 여성 모두가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218. 팩트체크가 오히려 가짜뉴스를 부각시킨다?

 

 미국 마트머스대학의 브랜던 나이핸(Brendan Nyhan)과 영국 엑서터대학의 제이슨 라이플러(Jason Reifler) 교수는 팩트체크가 별 효과과 없고 심지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0년 <사실 교정이 실패하는 경우>라는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두 사람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험을 막기 위해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가짜뉴스)를 보여준 뒤, 이 중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당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보고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효과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랐습니다. 애초 이라크전쟁에 더 회의적이었던 진보 성향 사람들의 경우, 예상대로 팩트체크를 통해 가짜뉴스를 신뢰하는 비율이 낮아졌지만(18→3퍼센트), 보수 성향 사람들한테서는 반대로 가짜뉴스를 신뢰하는 비율이 오히려 높아졌습니다(32→64퍼센트). 이외에 '세율 인하가 세수를 더 늘렸다는 주장(가짜뉴스)'과 오히려 '세수를 대폭 줄였다는 사실(팩트체크)'를 놓고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p221. 팩트체크보다 중요한 건 언론의 신뢰 회복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짜뉴스 확산의 가장 큰 자양분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공영방송의 공정성 하락, 끊이지 않는 '기레기 논쟁'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가짜뉴스 확산에 대해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제 비교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의 '뉴스 신뢰도 국제비교'에 의하면, 한국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그리스와 더불어 최하위였고,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미디어 만족도 조사에서도 37개 대상국 중 36위였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표 21-4]에서 보듯이 전문 언론기관(기존 언론사, 온라인 언론사 등) 신뢰도와, 내용의 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플랫폼(SNS 및 각종 검색 서비스 등) 신뢰도 사이의 격차도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한국이 낮은 편입니다.

 

p224. 국가의 정책은 부자의 선호도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1인 1표'라고 하는 보통 · 평등선거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신분, 성별, 재산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하여 자신을 대변할 정치인 선출에 참여합니다. 만약 불평등이 심해진다면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된 다수의 유권자들은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을 내놓는 정치인을 선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불평등은 끝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선에서 규율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민주주의의 1인 1표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모든 사람의 이해가 균일하게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헌법학자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 1961년 그의 저서 《누가 지배하는가(Who Governs?)》에서 "모든 성인이 투표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지식, 재산, 사회적 신분, 관료와의 관계 등 모든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나라, 과연 이런 나라는 누가 지배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이 분야 연구에서 최근 화제가 된 인물은 미국 프린스턴대하긔 마틴 길렌스(Martin Gilens)와 노스웨스턴대학의 벤저민 페이지(Benjamin I. Page) 교수였습니다. 이들은 1981~2002년 미국에서 시도된 중요 정책 1,779건 중 현실에서 구현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여 어떤 요인이 정책의 실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했습니다.

 

 [표 22-1 Ⓐ]를 보면 일반인(중위소득 집단)들의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는 정책의 실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이 거의 지지하지 않는 정책이나,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이나 모두 30퍼센트 정도 실현되었습니다. 반면 부유층(소득 상위 10퍼센트 집단)의 지지가 높은 정책일수록 실현되는 정도가 뚜렷이 높아졌습니다. 이들이 거의 지지하지 않은 정책의 실현 비율은 5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은 실현 비율이 60퍼센트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의 선호에 반응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렌스와 페이지 교수는 미국의 중요한 이익단체들이 각 정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도 조사했습니다. [표 22-1 Ⓑ]를 보면 지지하는 이익단체가 많고 반대하는 이익단체가 적을수록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재계의 이익단체(예를 들면 미국총기협회)와 대중 이익단체(노조 등)을 구분하여 살펴보았는데, 전자가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에는 이익단체의 영향이 작동하며 그 핵심에 재계 이익단체가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p228

 

 [표22-3]의 기부자 항목을 보시면 상원의원의 정책 성향과 해당 상원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부자의 정책 성향 사이의 거리가 0에 가깝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원과 기부자의 정책에 대한 성향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 즉 의원이 기부자의 정책 성향에 따라 의안 투표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원들은 심지어 자신의 지역구에서 실제로 자신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정책 성향보다도 기부자의 정책 성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전체 투표자(즉 다른 후보를 찍은 경우를 포함)의 정책 성향에 대해서는 반영도가 매우 낮아서(즉 거리가 멀어서), 전체 국민의 정책 성향과의 거리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정치학자들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에서 부유층의 돈이 정치에 더 많이 흘러들어 가고 있고, 이를 통해 의원들이 부자들의 의견을 더 많이 따르게 되며, 그 결과 최종적으로 부유층이 원하는 대로 정책이 결정되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미국만의 일일까요? 유럽의 경우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돈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텍사스대학의 데릭 엡(Derek A. Epp)과 포르투갈 리스본대학의 인히쿠 보르게투(Enrico Borgehtto)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유럽의 불평등과 임법 의제>라는 연구에 의하면 유럽에서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불평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이슈들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것이 부유층의 정치적 영향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의 정치 기부금을 제한하라

 

 한국에서는 금권정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데, 정치자금이 과거에 주로 불법적인 방식으로 모집되었기에 연구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벌들이 저마다 수백억씩 현금을 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에 전달한 초유의 '차떼기' 사건이 있었던 게 2002년이었고, 금액은 크게 차이가 났지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도 불법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정치자금은 음지에서 움직였습니다.

 그 후 2003년 여야 합의로 대대적인 정치자금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정치자금 모금의 한도가 대폭 축소되었고,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습니다.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2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경우 공식 통계상으로는 금지된 것으로 분류되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민간단체인 슈퍼정치위원회(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얼마든지 법인 자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정치자금법은 대체로 양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법적인 경로로 전달되는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2018년 노회찬 의원이 안타깝게 세상을 뜬 뒤 일부에서 진보 진영에 불리한 정치자금법을 개혁하자는 얘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현재 법이 원외의 정치 신인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국고보조금 배분 시 비교섭 단체를 소홀히 다루기 때문에 손을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혹시라도 정치자금법 개혁을 빌미로 정치자금 총액 한도가 대폭 늘어나거나, 부유층과 기업이 정치 기부금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재산과 소득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는 일이고, 아마도 고 노회찬 의원께서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강남에 30년간 거주중인 50대 주부의 재테크와 인생 경험이 담긴 책. 책 제목은 원색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강남에 집을 사고 싶었던 이유들을 이야기하면서, 현재 강남에 집을 사고 싶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강남과 신도시를 오가며 살아왔던 인생의 경험 - 주로 집 장만과  관련되는 - 이 주된 내용이다.

웬만한 부동산 투자 입문서보다 생생하다. 저자가 살아온 삶과 연결지어서 집을 투자라는 목적만이 아닌, 주거와 생활이라는 실질적인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접목한 부분이 다른 부동산 관련 도서와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보이는 번득이는 비유에서 저자가 쌓아온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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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다음 사람 먹을 것도 남겨둬야 한다

 '안 팔리는 집은 없다.'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 주변에서 집이 안 팔린다고 울상인 분들 보면, 자신이 세운 기준에서 꼼짝도 안 하고, 상대가 와주길 기다리며, 버티느라 못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급지로 갈아타려고 할 때, 내 집은 비싸게 팔고 상급지는 싸게 사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상승기에 팔아서 돈을 들고 있다가 하락기에 다시 사면 좋은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서 집을 팔아서 돈을 들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갈아타려고 하면, 상승기에 비싸게 팔고 비싸게 사거나, 하락기에 싸게 팔고 싸게 살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하락기에 싸고 팔고 싸게 사는 게 좋습니다. 상승기에는 매물을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돈을 들고 있어도 좋은 매물을 잡기가 어렵고, 상급지는 상승폭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값 하락기에는 집이 팔리지 않아서 갈아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수자의 요구에 맞추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집값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양이 3센티면, 수술 부위는 더 넓게 4~5센티 이상 잘라야 안전하듯이, 집 파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락기에는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하고 관망하는 매수자가 대부분이라 그들의 기대 수준에 맞춰서 적당히 타협을 해야 합니다.

 부부싸움에서도, 아쉬운 사람이 먼저 다가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비위 맞출 수밖에 없듯이, 집을 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버티다 보면 하락이 가속화되어 5000만원 싸게 팔면 될 것을, 1억을 낮춰도 안 팔리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결국 상승기까지 버텨야 원하는 가격에 근접해서 팔게 되지만, 이미 그때는 상급지가 더 빨리 더 많이 올라서 갈아타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집을 사는 시기는 내가 정할 수 있지만, 파는 시기는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은 사는 것보다 파는 게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집을 사는 건 기술, 파는 건 예술'이라는 말이 생겨난 겁니다.

 집을 팔 때는 인도주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악착같이 내가 다 먹고, 다음 사람에게는 빈 껍데기만 넘겨주려 하지 말고, '난 이만큼이면 됐다'는 마음으로 다음 사람에게도 먹을 걸 남겨줘야 합니다. 팔고 난 뒤에 자꾸 돌아보면, 이미 판 집 오르는 걸 아까워하면, 나에게 들어오던 복도 도로 나간답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

 '다음 사람 먹을 것도 남겨두어야 한다.'

 

 부동산 고수였던 첫 직장의 선배 동료로부터 들은 말인데, 부동산 초보 시절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넣었던 말이라, 나의 투자 마인드의 일부로 굳어진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집을 잘못 사서 고생한 적은 있지만, 집을 못 팔아서 고민한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부동산 매매가 전혀 되지 않던 IMF 때, 인기 없는 수도권 임대주택용 아파트 3채도 원할 때 팔았습니다. 물론 손절매였습니다. 그것도 분양가의 -10%에 복비를 2배 주고 팔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손절매로 생긴 돈으로 몇 배 더 수익이 나는 곳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해 놓은 가격에 상대가 맞추길 바라는 대신, 상대가 원하는 가격으로 내 기준을 낮춰서 파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 고생에서 벗어나고, '시간'과 '기회비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을 사다 보면, 판단을 잘못해서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부동산 초보뿐만 아니라, 투자 이력이 많은 부동산 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솔루션입니다.

 내 기준만 고집하며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돌아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은 넓고 사야 할 부동산은 많다'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잃었어도 다른 곳에서 만회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싸게 팔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야 합니다. 집을 팔 때도, 최선보다는 차선이 최선이라는 원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62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은,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계획대로 안 될 거니까, 그리고 괜히 계획 세웠다가 또 다른 실망을 낳을까봐, 무계획으로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장면, 희망이 없어 보이는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밖을 향해 신호를 보냅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타전합니다.

 

p92

 "사람들이 공포감에 빠져 있을 때 욕심을 부려라. 꺼꾸로 사람들이 탐욕을 부릴 때에는 공포를 느껴라. 그러나 자신이 시장보다 더 똑똑해 보인다는 오만함은 버려라." 워렌 버핏의 유명한 명언입니다.

 

p179.  세금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

 최근에 재건축 아파트 이주를 앞두고, 아파트를 매도하신 분이 양도세 폭탄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새로운 주택의 매수 시점이 양도세 중과에 걸리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매도한 아파트가 대형 평형이어서 1+1을 받는 거였는데, 이사 갈 집을 1년 전에 미리 사두고 이주 시점에 맞춰서 매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1은 관리처분 이후 2주택으로 봐서, 일시적 2주택의 비과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중과세가 적용된 경우입니다.

 최근에 세금 정책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해서 기존에 알고 있는 기준으로 집을 사고팔았다가는, 위와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금에 대해 관심 갖게 되는 건,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인데, 사실은 다주택자가 되기 전에 미리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집을 사는 순서나 시기 및 지역에 따라 세금이 많이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다주택자 중에는 보유세 부담 때문에 팔고 싶지만, 중과세 때문에 팔지 못하고 진퇴양난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주택자인데도 세금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금 공부가 선행되어 그에 맞춰서 매매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장 집을 소유하거나 팔지 않더라도, 부동산에 관심 있는 분들은, 세금에 관련된 책을 쉬운 거로 두 권 정도 사서 읽으시길 권합니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자신에게 적용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서 서서히 세금에 밝아지게 됩니다. 이것이 다주택자가 되기 위한 선행 과정입니다.

 

p258

 학군 지역 대치동의 분위기를 잘 알려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은마상가 2층에 있는 서점입니다. 거기에서 요즘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교재가 뭐냐고 물어보면, 그 시기에 가장 핫한 교재를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주인 몇 분이 목장갑을 낀 채 바쁘게 오가며, 손님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무심히 원하는 책을 쓱쓱 빼주는 데 단 10초도 안 걸리는 곳, 그곳이 바로 교육의 1번지 대치동입니다.

 

p348. 슈퍼 상승 사이클의 중심에 있는 강남 아파트

 작은 규제, 내성이 생겨버렸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집값 안정을 목표로, 특히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수많은 규제책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올 4월만 해도 부동산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정부 규제책을 이유로, 집값 하락을 점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강남 집값은 수년째 상승과 조정을 반복하며 '슈퍼 상승 사이클'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원래 뭐든 할 만큼 하면 싫증내거나 지치는 게 순리입니다. 집값 상승도 그렇습니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입니다. 그러나 이번 상승기는 좀 다릅니다. 한창 정점을 향해 달려갈 만하면 정부 규제가 나와서, 아직 덜 오른 상태에서 집값이 조정되고, 그 집값에 적응하게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르기 시작해서 전고점을 가볍게 찍고, 거기서부터 다시 신고가를 찍습니다. 이렇게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수요자(투자자) 사이의 쫓고 쫓기는 게임이 수년째 되풀이되며 상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그래프는 크게 보면 계단식으로 상승합니다. 즉, '상승'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하락과 조정'이라는 '휴식기'를 갖고, 다시 '상승'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집값의 추이는 급상승해서 마치 직상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추락을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근 몇 년간도 계단식 그래프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텀이 다른 시기보다 빠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급상승하다가 중간에 정부의 규제가 쉬어가는 타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번 상승기는 급격하게 부풀어올랐다가 한순간 꺼지는 거품이 아니라, 규제를 받아가며 내성을 키운 단단한 상승기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길게 상승기를 이어가게 만드는 데에 정부의 규제가 한몫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서 최근 몇 년간, 강남 아파트값은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예전처럼 2~3억에서 4~6억으로 오르던 것과는 달리, 18억짜리 아파트가 32억이 되고, 14억짜리 아파트가 28억이 되는 상황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고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이런 와중에 힘들고, 상실감과 허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번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 중에 '영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혼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라는 뜻으로, 돈을 모아서 사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최대한 융자를 받아서 집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주택 수요자에게 '실수요자'와 '투자자', 두 부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실수요자라 할지라도, 영끌해서 산 집이 다른 집보다 더 오르기를 바라는 투자자의 성격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둘을 명확하게 나누고, 규제의 칼날을 투자자에게 겨누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영끌해서 집을 사야 할 실수요자도 각종 금융규제로 집 사는 데 제약이 많아서 집 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부모가 돈을 보태주거나 빌려줄 수도 없는 흙수저들은 은행이 든든한 백이었는데, 이제는 그 사다리조차 걷어차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 분들이 비조정지역 재개발이나 분양권 등의 소액투자를 하기 위해 수도권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겁니다.

 

p351. 왜 강남 집값만 오를까

 이번 슈퍼 상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양극화입니다. 예전의 대세상승기에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집값이 적절한 폭의 차이를 두고 함께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상승기는 집값 상승의 폭에서 차이가 큽니다.

 서울 내에서도 강남과 비강남의 차이가 크고, 서울과 수도권의 차이가 크며, 신축과 구축의 차이가 큽니다. 올해만 해도, 강남 핵심지 아파트는 신축 구축 가릴 것 없이 대체로 3~5억 정도 올랐는데, 전혀 온기가 전달되지 않는 수도권 지역도 많습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상승폭의 차이가 나게 한 것도 정부의 규제가 또 한몫했습니다. 보통 상승 초기에는 강남 핵심지 아파트부터 오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그 온기가 차차 외곽으로 퍼져나가면서 식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강남 아파트에만 칼날의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강남 아파트값이 오르는 순간 규제를 쏟아냅니다. 그러면 퍼져나가려던 온기가 차단되어 외곽 지역은 집값이 오르지 않은 채로 정체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강남 아파트값은 10이 오르고 2가 내리는 상태로 조정되고, 그 사이 외곽의 아파트는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온기는 전달되지 않아도 냉기는 그대로 전달되는 겁니다. 그러나 정부는 소폭 조정된 강남 아파트값을 두고 부동산 규제책 성공을 운운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사람들이 규제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다시 덜 오른 지역부터 상승이 시작되고, 그에 맞춰 강남은 더 빨리 전고점을 찍으며 신고가를 경신하게 됩니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강남 아파트가 주인 노릇하는 격입니다.

 그러면 또다시 강남 아파트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시작되고 그러면 수도권 외곽으로 아직 온기가 퍼져나가지도 않았는데 상승은 멈추고 다시 조정이 시작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온기가 전달되지 않은 곳은 늘 발병 인자처럼 호시탐탐 상승 시기를 노리고 있고, 그것이 봉화처럼 상승 사인을 보내면, 강남은 더 빨리 뛰어가는 사이클을 반복합니다.

 쉽게 말해, 강남 아파트는 동물의 왕국에서 빨리 뛰는 사나운 동물입니다. 먹잇감이 나타났다 하면 남보다 빨리 뛰어가서 재빨리 낚아채 사라지고, 뒤늦게 나타난 녀석들이 사냥꾼의 총에 맞는 형상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강남 집값은 잡지 못하고, 집값의 양극화만 부추겼습니다. 예를 들자면, 강남 고가주택 소유주들을 잡기 위해 주택수에 따라 종부세 요율을 조정했는데, 이게 오히려 외곽의 집값만 잡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2주택 이상인 경우, 하급지 주택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양도세 요건이 강화되면서 장기보유의 형태로 방향을 잡는 다주택자들이 많아서 강남 아파트는 매물이 귀해져 더욱 아파트값이 오르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p354. 제2라운드 시작

 이 같은 슈퍼 상승 사이클이 오래 지속되면서 더 큰 문제는, '심리적인 제2라운드'로 옮아갔다는 점입니다. 즉, 영끌해서라도 핵심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야만 온기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급지로 갈아타려고 하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와 '정부의 규제'가 묘하게 박자를 맞추며, 상승곡선을 길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즉, 한 타임 놓친 사람들의 '좌절감과 불안감'이 '매수 에너지'로 바뀐 상태에서, 정부의 규제로 인한 '조정기'는 그들에게 시장참여자가 되게 하는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좀 늦게 참여해도 얻을 게 있다는 '학습효과'를 낳게 되었고, 여전히 망설이던 사람들도 다음 조정기에는 수요자로 바뀌게 됩니다. 이런 새로운 시장참여자들로 인해, 시장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대이동이 일어나고, 그 정점에 강남 아파트가 있는 겁니다.

 게다가 시중에 유동자금이 많은 것도 아파트값이 오르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경기가 나쁘다 보니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계속 돈을 풀고 있고, 앞으로 제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도 풀리면 시중에 통화량이 증가해서, 그 돈들은 주식 아니면 부동산으로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식시장이 좋지 않아서 안전자산인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는 상황이고, 특히 강남 아파트로 돈이 몰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쉽게 말해,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실물 가치를 반영하는 아파트값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요즘 주변의 주택 수요자들의 특징을 보면, 크게 세 가지 경우로 파악됩니다.

 첫째는, 무주택자 중에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껴서, 집값이 떨어지면 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영끌해서 집을 구입하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최근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집값 상승폭이 지역마다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기회가 되면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세금을 낼 때 내더라도 집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다주택으로 입장을 전환해서 기회만 되면 집을 사려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금융규제 등으로 인해 소액 여유자금밖에 없다 보니 소액 투자 쪽에 너무 많은 투자자가 몰려 있고 과열 현상을 보여서, 상승분을 미리 당겨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번 상승장 초기에는 투자자들이 많이 움직였던 반면, 뒤로 갈수록 금융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무주택 실수요자나 갈아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져서, 금융규제에도 불구하고 도니모처럼 집값 상승이 들불처럼 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p356. '이명래 고약'이 필요한 시기

 어릴 때, '이명래 고약'이란 게 있었습니다. '이고약'은 까맣고 진득한 고무찰흙같이 생긴 건데, 몸에 종기가 나면 붙이는 연고였습니다. 적당한 크기로 떼어내서, 성냥불로 살짝 달군 후, 넓게 펴서 종기 환부에 붙이고 기름 종이 같은 것으로 덮는 겁니다.

 

 이 연고의 역할은, 요즘 항생제와 치료 방법이 정반대입니다. 요즘 항생제는 강력한 힘으로 세균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고약'은 종기를 더욱 빨리 곪게 해서 터지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곪아 터지게' 만드는 거지요.

 '이고약'과 항생제는, 과정은 정반대인데 결과는 같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항생제는 복용하는 동안 종기를 생기게 하는 포도상균 외에 몸에 유익한 균도 한꺼번에 박멸해서 무균 상태를 만들고, 몸의 면역 환경을 바꿔버립니다. 그리고 위에도 부담을 줘서, 위염을 동반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내성'입니다. 잘 치료해서 나으면 되는데, 어설프게 치료해서 덧나면 강도를 높여서 처방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몸의 세균도 더욱 강한 슈퍼 세균으로 변해 버리고요. 쉽게 말해, 자기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거죠.

 이에 비해 '이고약'은 좀 지저분하고, 곪아 터지는 과정이 고통스럽기는 해도, 종기 외에는 몸의 다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은 없습니다.

 제가 종교인은 아니지만, 우리의 몸을 보면 신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신비합니다.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부분이 없고, 스스로를 지키는 힘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외부적인 힘에 의지하다 보면, 몸은 역기능이 나는 것 같습니다. 자기면역 능력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외부적인 힘에만 의지하려다 보니 나약해지는 겁니다. 반면 세균은, 강하지만 단순한 항생제의 종류를 감별해서 그에 대응할 준비를 갖춥니다. 사실, 우리 몸이 어떤 세균과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 넘어져서 상처가 난 아이 무릎에 처마 밑의 보드라운 흑을 약으로 뿌려주는 엄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물 그렁그렁한 채 잠든 아이 무릎은, 며칠 후면 까맣게 딱지가 앉고 시간이 지나면 깨끗하게 낫곤 했습니다.

 우리 몸이 이러하듯, 부동산시장도 자가며녁체계를 지니고 있는데, 어설픈 국가의 통제가 걷잡을 수 없다는 상황까지 이르게 만들었고, 이런 상태에서도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또 다른 부동산 규제책들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몇 년간 수없이 쏟아져나온 많은 부동산 대책들은 마치 약구에 즐비한 항생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생제를 쓰려면 정확한 처방으로 후유증까지 고려해서 깨끗하게 치료해야 하는데,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계속 덧나고, 약에도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듣지 않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어설픈 규제가 환경을 교란시켜서 변종이 발생한 건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고스톱 칠 때도 내 패만 보고 이기겠다고 하면 절대 이기지 못하듯이, 정부 정책도 역시, 가끔은 내 걸 버려야 이길 수 있다는 철학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p363

 얼마 전 만난 한 분은, '은마아파트를 지금 팔아야 하는가'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2006년 최고점에 은마 34평을 최고가를 경신하며 샀다고 합니다. 당시는 대치동 광풍으로, 매물 잡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약을 파기하려는 주인 때문에 힘들게 계약을 성사시켰답니다. 그래서 계약을 파기하려는 주인 때문에 힘들게 계약을 성사시켰답니다. 그런데 산 직후부터 가격이 주춤하더니 2010년 이후 긴 하락기를 겪다가 이제 겨우 전고점을 돌파하고 상승하고 있어서 고민이 된다는 겁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계약 파기를 원하는 매도인과 티격태격하며 무리수를 써서 계약을 강행했는데, 결론은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얻은 교훈은, '순리가 진리다'입니다.

 집착은 허탈감을 동반합니다. 결과까지 나쁠 경우엔 좌절감마저 듭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안 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고, 지금 놓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싸늘하게 식은 욕망덩어리만 부끄럽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쇼핑하러 가기 전에, 반드시 밥을 먹고 가라고 합니다. 배고픈 상태에서 쇼핑을 하면 과소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집을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사기 전에 마음의 관성을 제어하는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원할수록 원하지 않는 것처럼, 자기 자신과 밀당을 시작해야 합니다. 집과 나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순리대로 상황을 받아들일 여유를 지녀야 합니다.

 

 자동차의 구매(신차,중고차), 정비에 대한 기본 상식 및 카센터 선택에 대한 요령, 보험 상식 등 자동차 전반에 대한 입문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듯.

자동차를 몰기 시작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교보문고에서는 정치/사회로 분류되어 있던데, 이 책은 아무리 봐도 경제/경영 분야가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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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신차) 구매 방법은 현찰 박치기다. 현찰로 지불하고 차를 사는 것. 가장 고전적이고 깔끔한 방법이다. 추가로 이자를 내야 할 필요가 없으니, 별도의 부담이 없는 것이다. 가게에서 물건 사듯 물건값 지불하고 가져오는 것. 소비자에게 유리한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방법이다.

 물론 이 경우 영업사원에게서 추가 할인을 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할부로 팔아야 금융회사에서 수당을 받고 그 수당 한도 내에서 할인을 기대할 수 있는데 현금으로 차를 사는 고객에게는 할인을 해줄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의 한 수'가 있다. 이재에 밝아 땡전 한 푼을 허투루 쓰지 않는 세무사 출신인 후배가 있다. 자린고비까지는 아니지만 알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친구가 차를 샀다. 어떻게 샀을까. 현금으로 차를 사는 것과 같지만 영업사원에게서 기대할 수 없었던 추가 할인 효과를 내는 방법. 바로 카드 일시불이다.

 통장에 찻값을 지불할 만큼의 잔고를 채워넣은 뒤 카드로 가볍게 긁어준 것. 사전에 카드사에 연락해 자동차 구매 건으로 카드 사용한도를 풀어달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카드 일시불 결제가 현금 결제보다 더 유리한 이유는 바로 카드 포인트에 있다. 그냥 현찰로 가져다줬으면 생기지 않았을 포인트였는데 카드로 결제해 그만큼 이익을 본 것이다. 영업사원이 가격 할인을 해주지 않아도 할인받은 것과 같은 셈이다.

 차를 판매하는 입장에서 카드 일시불 고객은 최악의 경우다. 제값 받고 팔아도 카드 수수료만큼 카드 회사에 돈을 줘야 해 그만큼 손해이기 때문이다.

 돈을 가졌으면 이렇게 손해를 보지 않고, 추가 부담 없이 차를 살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돈을 가진 금융회사에 손을 벌려 찻값과 돈값을 함께 지불해야 한다. 돈 없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세상이다.

 

p42. 새 차 길들이는 방법

1. 사용설명서 정독

2. 고속주행은 하지 말자 : 2,000km 까지는 최대한 부드럽게, RPM은 2000전후로(최대 3000 이하)

3. 장거리주행시 변속기를 골고루 사용 : 수동은 1~5단을 골고루, 오토도 저,중,고속등을 골고루. 

4. 엔진오일 교환은 1000km 전후에 한번 : 초기에 엔진에 미세 쇳가루가 생김. 

5. 도장작업은 3개월 후에 하자.

새 차는 출고 후 3개월가량이 지나야 보디 페인트가 완전히 건조되고, 차의 도장이 안정된다. 이 기간에 광택작업(도장 표면을 얇게 박피해서 빤짝거리게 하는 것) 및 자동세차를 피해야 한다. 요즘은 광택작업으로 표면 박피가 아닌 코팅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도 3개월이 지나서 하는 것이 좋다.

 

p221

1. 휠베이스(축거)

차의 성능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길이보다 휠베이스다. 휠베이스는 앞바귀 중심과 뒷바퀴 중심 간의 거리다. 길이가 같아도 휠베이스가 길면 차의 움직임이 훨씬 안정적이고, 실내 공간도 더 넓어진다.

2. 트레드(윤거)

트레드와 휠베이스는 승차감에 영향을 준다. 트레드는 좌우측 바퀴 간의 거리로, 뒷바퀴굴림 방식의 스포츠카는 뒤트레드가 넓고, 앞바퀴굴림인 대다수의 차는 앞트레드가 더 넓다. 트레드와 휠베이스가 짧은 엑센트는 좁은 공간에서도 여유있게 움직일 수 있지만, 안정감은 떨어진다. 반면 트레드와 휠베이스가 긴 그랜저는 공간이 넓고 승차감도 우수하다. 다만 회전반경이 길어져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떨어진다.

3. 압축비

압축비는 실린더 안에서 피스톤이 공기를 압축하는 비율이다. 많이 압축되면 폭발력도 세다. 가솔린 엔진에서 압축비가 너무 높아지면 금속을 망치로 두드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는 현상(Knocking)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휘발유 엔진 압축비는 대개 11:1을 넘기지 않는다. 디젤엔진은 압축비가 훨씬 높다. 점화플러그가 없고 압축열에 의해 자연폭발시켜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디젤 엔진의 압축비는 15~22:1 정도가 된다.

 

90년대생들이 젊은 세대로 소비의 주체 및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 60~80년대생들과 본질적으로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낀 필자가 몇년 여에 걸쳐서 이 주제를 파고 들면서 준비한 책.

현재 진행형의 변화이기 때문에 정확히 이렇다고 정의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는  90년대생 이후 세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 책을 출간 당시에 한 번 봤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원들에게 권장도서로 추천하면서 다시 유명해졌기에 함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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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기간제 일자리는 물론 노동법의 규율에서 벗어난 각종 특수 고용 형태 일자리가 넘쳐나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전체 노동자의 46퍼센트가 비정규직인 기형적 고용 구조는 일상이 됐다. 지금 산업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일은 시키되 고용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유노동 무책임'이다. 그러니 1990년대 출생 취업 준비생들이 직업을 고를 때 안정성을 가장 큰 가치로 꼽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직업 안정성이 높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같은 국가기관이다.

 

 게다가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된 덕에 생애소득이 높아서, 기존의 인식과는 다르게 오히려 대기업보다 많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재학 중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퇴직할 때까지 사기업 취업자보다 최소 3억 3,605만 원에서 최대 7억 8,058만 원까지 더 많은 누계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임금인상율은 연평균 7퍼센트대 수준으로 대기업의 6.2퍼센트보다 높고, 공무원 퇴임 연령 역시 평균 56~59세로 대기업 평균인 52세보다 높다. 이제 공무원은 '가늘고 길게'가 아니라 '굵고 길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은 구조조정의 공포가 없다. 한국 정부가 수립된 1953년 이래로 단 한 번도 공무원 구조조정을 진행한 적은 없다. 정부가 가장 모범적인 고용주인 셈이다. 공무원으로서 특별한 결격 사유가 생기지 않는 한 직장을 잃을 걱정은 없는 것이다. 그 공포에서의 해방은 현대 사횡에서 최소한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p32.

 

 2008년 두산그룹을 새로운 재단으로 맞이하게 된 중앙대학교의 경우, 구조조정과 함께 교양 필수 과목으로 '회계와 사회'라는 회계학 수업을 개설했다. 학생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졸업을 위해서 회계학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덕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학문을 왜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배워야 하는가"라고 맹비난했다. 대학이 "학문적 가치가 아닌, 기업에 맞춰진 인재만을 양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당시 박용성 이사장은 "인문계든 자연계든 대학 졸업후 직장을 얻게 되면 처음 부닥치는 것이 현금 흐름에 대한 이해"라며 "회계학을 필수 교양 과목으로 한 것은 학생들의 장래를 위한 하나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사회 진출이 대부분 기업과 연계되지만, 모든 학생의 진로가 똑같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기업가의 성향과 입김이 학교 운영에까지 적용된 사례다. 하지만 여러 학내의 비판에도 대졸 실업자들의 지속적인 증가는 대학의 직업교육기관화를 부추기고 있다. '2015년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4년 청소년(9~24세)의 48.6퍼센트가 대학 이상 교육의 주목적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능력과 소질개발'은 36퍼센트, '인격이나 교양을 쌓는 것'은 1.8퍼센트에 그쳤다.

 

p43.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p53.

 

 국내에서는 현재까지도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을 하나로 묶어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한민국의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존 세대에 비해서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기존 세대에 비해서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은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비교해 굉장히 큰 차이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그 숫자를 바탕으로 강력한 소비층으로 성장한 것에 반해 한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세대가 이전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교체될 수 있을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바로 합계 출산율이다. 세대가 교체되는 데에 필요한 대체출산율은 선진국의 경우 2.1명이다. 하지만 미국이 2000년대 후반까지 2.05명 수준을 유지한 것에 반해, 한국은 1983년 2.06명을 나타낸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명을 넘어선 적이 없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출산 제한 정책 때문이다. 한국은 6.25전쟁 전후인 1955년 합계 출산율이 6.33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0년 합계 출산율이 4.53명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으로 한 가정에서 평균 4명 이상의 아이를 낳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을 폈다.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이마저도 다시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으로 바뀌었다. 1981년에는 인구증가억제 종합시책이 체택되었고, 1985년도에도 자녀 수에 따른 주민세, 의료보험료 등이 차등으로 부과됐다. 이런 정부 정책의 결과였을까? 지금은 현실은 OECD국가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부는 출산장려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판국이다. 1970년 이후 한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84년 최초로 합계 출산율이 2명 이하(1.74명)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1980년대생들은 둘 이상의 형제자매를 가진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생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강력한 소비층이 될 밀레니얼 세대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p67.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반세기 전, 청년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회를 전망했다.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배워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하리라는 것이었다. 증거는 당시 미국의 경험이었다. 미국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세대별로 상이한 적응력을 보였다.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하여 이주해온 기성세대(이주 1세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미국에서 성장한 자녀(이주 2세대)들은 부모보다 더 빨리 적응했다. 이런 사실에 착안하여 미드는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이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할 때가 올 것이라 전망하였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한겨례>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는 촌철살인으로 화제가 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오늘날이 '먼저 안 게 오류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농경 사회에서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라며,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 경험이 이젠 판단의 기초 혹은 가르침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p95.

 하지만 미래에도 책이 디지털 미디어 혁명에서 비켜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출판사와 유통업자들도 디지털 생산과 유통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다른 미디어 회사들이 그랬던 것만큼이나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득이란 잉크와 종이를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인쇄 비용이 들거나 트럭에 무거운 책들을 실어 보낼 필요도 없으며, 재고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은 곧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전자책이 인쇄된 책의 절반 가격에 판매되는 상황이 드문 일은 아닌데, 이는 일정 부분 전자책 리더기 생산 업체들에 주어지는 보조금 때문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할인 혜택은 사람들이 종이에서 픽셀로 옮겨 가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인 표준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 그룹은 2005년 <Annual Review of Sociology>에서 우리의 독서 습관에 있어 최근의 변화들은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가 우리 지적 역사에 있어 짦은 '예외'였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대중적인 독서는 예전의 사회적 기반, 즉 독서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소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2017년 국회에서 발표한 <독서와 시민의 품격>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 뇌는 본래 독서에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독서를 사람들이 계속하는 이유는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득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킨들을 소개할 당시 스스로를 찬향하는 듯이 말했다. "책과 같이 매우 진화한 물건을 택해 개선하는 것은 참으로 진취적인 일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읽는 방식까지 바꿀 것이다." 이는 거의 확실하다. 사람들이 읽고 쓰는 방식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바뀌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글이 인쇄된 종이에서 빠져나와 기술의 생태계 속에 정착됨에 따라 계속될 것이다.

 

p107.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슬로가 말년에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바꿨다는 사실을 모른다. 욕구단계설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던 매슬로는 말년에 인생 최고 경험을 '자기초월', 즉 자아보다 더 높은 목적을 위한 삶에서 찾았으며, 본인이 종전에 최고 수준의 욕구로 꼽았던 자아실현이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이야기했다.

 

p154.

 기존 세대에게 신입 사원들은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이고, 새로운 세대에게 기존 세대들은 이미 회사에 믿음을 상실했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충성하는 꼰대들로만 보일 뿐이다. 사실 이렇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관련한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90년대생들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갈등은 훨씬 이전부터 일어났다. 1965년 이후 출생한 X세대는 1990년대부터 회사에 진출하면서, 이전의 베이비붐 세대와 갈등을 보였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성공과 돈버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던 젊은(Young) 도시의(Urban) 전문직(Professional) 즉 여피 Yuppies과는 다르게 젊고(young), 개인주의적이며(Individualistic), 자유분방하고(Free-minded),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수도 적은(Few), 즉 이피족 Yiffie으로 불렸다.

 이들은 일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결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회사에 충성하려 하지 않아, 회사에 대한 충성을 높게 사는 기존 세대나 관리자들이 이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업들은 이때부터 기존의 전통적인 HR정책에 변화를 두고 새로운 세대에 맞는 인재 관리 방법을 재정립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생들이 기업에 유입됨에 따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요구하는 기존 베이비붐 세대들과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많지만 애사심과 팀워크가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성과급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신세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원대한 기업 철학을 내세움으로써 이들의 관심을 최사로 돌리는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결국 회사에 충성을 하면 그 대가가 승진과 몸값 상승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가정했다는 것이었다.

 90년대생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공식을 배격한다. 새로운 세대는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인터넷상의 '직장 계명'에 동의하고, 이를 넘어서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찰스 핸디는 <코끼리와 벼룩>에서 오늘날의 충성심이란 것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것,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p157.

  믈론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가난한 나라를 지금과 같이 일으킨 건 성실한 노동자의 헌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회사가 열심히 일한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로 열심히 일해온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내팽겨쳐졌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그러니 90년대생들에게 근명, 성실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p169.

 2012년에 회사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배모 씨(1990년생)는 2012년부터 2년간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휴가를 빠지지 않고 모조리 사용했다.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연차 수당과 같은 돈이 아니라 인생의 여유였다.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 않고 휴가를 다녀오지 않은 것이 마치 더 일을 열심히 한 듯이 으스대는 선배들을 볼 때면 얼간이같이 느껴져요. 내 휴가를 내가 사용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얼마 전에 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휴가가 너무 잦은 거 아닌가?'라고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죠. 지적하려면 업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페이스북에 '젊은 사원의 휴가 사유'라는 이름의 짤이 떠돌았다. 사원이 적은 휴가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어서." 이처럼 이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 기간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만약 황금연휴가 아닐지라도, 징검다리 휴일이 있다면 그들은 휴가를 붙여서 자체적으로 황금연휴를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에 맞춰서 최근 기업들은 징검다리 연휴가 있는 주는 조직 전체 사원에게 연차나 월차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p176.

 조직학의 대가 아미타이 에치오니 Amitai Etzioni가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안을 검토하는 하급자는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거듭하며 불확실성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필요 이상의 복잡한 결재 단계에서 시간을 끌기도 한다. 이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급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 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격언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의사결정은 없다'라는 격언을 압도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쉬는 것은 아니다. 모두 정보를 수집하며 바쁘게 뛰고 있다. 보고서 버전은 끝없이 올라간다. 그렇게 돌다리를 두드리던 순간 경쟁사는 이미 그 돌다리를 건너 신제품을 내놓는다. 남은 것은 완벽한, 그러나 이미 쓸모 없는 보고서와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씁쓸한 자위뿐이다.

 

 p180.

 지금은 종용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2013년 '무도를 부탁해' 에피소드에서 개그맨 박명수는 이렇게 말한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이는 기성세대, 즉 꼰대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꿈은 크게 꿔야 된다'는 말에 대한 반발과 같았다. 90년대생들은 이제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꼭 꿈이 있어야 되나?'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 씨는 본인의 2008년작 <무한동력>의 명대사로 꼽혔던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가 이제는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꿈이 꼭 없어도 되는데 너무 꿈을 강요한 건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새로운 세대는 꿈을 좇으라는 기성세대의 충고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p215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은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하다. 취학 전 어린이들을 상대로 작은 책상에 마시멜로 두 개와 종 하나를 올려놓고 인내심과 순간의 욕구, 성공과의 관계를 알아본 실험 말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실시된 2차 연구에서, 마시멜로의 유혹을 이겨낸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몸매가 날씬하고 사회 적응을 잘하게 됐을 뿐 아니라, SAT에서 210점이나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다 보니 마시멜로 이야기는 회사 생활에서 가장 흔한 조언인 '참고 견디라'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로 쓰인다. 그런데 정말 마시멜로 이야기가 '참을성이 강하면 성공한다'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일까? 마시멜로 이야기가 잘 알려진 건 어떠졈 사람들이 재밌어하면서도 가장 궁금해하는 문제, 즉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단순한 공식으로 환원했기 때문일 수 있따. 여기서 단순한 공식이란 '성격은 타고난 것'이며 '인내는 미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3년 로체스터대학교의 홀리 팔메리Holly Palmeri와 리처든 애슬린 Richard Aslin 은 잡지 <코그니션Cognition>에 <합리적 간식 먹기Rational Snacking>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에 의하면 "첫 번째 마시멜로를 빨리 먹은 아이들 중 일부는 참을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돌아오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연구원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좀 더 오래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많은 연구자가 미셸의 실험 결과를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복잡한 이야기를 읽으려 하지 않고, 동기부여 강사들이 하는 단순한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동기부여 강사들은 마시멜로 실험을 들먹이며 여전히 '네 살짜리도 인생의 성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참을성이다'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오랫동안 참은 대가로 두 번째 마시멜로를 먹은 어린이들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들이 선천적으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자질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로체스터대학교의 연구진이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어린이는 단지 연구자의 말을 믿지 못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는 그날따라 배가 고팠을 수도 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참을성이 인생의 성공 비결일 수는 없다. 세상의 수천 가지 요인들이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p220

 

 80년대와 그 이전 출생 세대들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하는,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 그러나 90년대생들은 지금의 인생이 어떤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이와 함께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오로지 '흥미'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흥미가 중요한 90년대생들에게 회사는 어떠한 의미일까?

 

 "회사에서도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잉기를 회식 시간에 팀원들에게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대리님이 '즐거움은 돈을 내고 찾아. 회사는 엄연히 돈을 받고 일을 하러 오는 곳잉. 그런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말이 되니?'라고 답하더군요. 회사에서 일을 안 하고 높고 싶다는 뜻이 아니에요. 단지 어차피 할 일이면, 즐겁게 하고 싶다는 말이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잘도 하면서 왜 회사를 즐겁게 만들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죠?"

 

 얼마 전까지 회시에서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말은 임금을 받고 근무하는 회사원의 입장에서 일종의 반동과 같은 것이었다. 즐거움은 돈을 내고 사는 것이고, 이와 반대로 돈을 받은 곳은 절대 즐거움의 장소가 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물론 90년대생들에게도 회사란 노동을 하러 오는 곳이다. 다만 그들은 어디에서라도 '유희'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유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회사는 일터로서의 매력을 잃게 된다.

 

p236

 

 글로벌 전자상거래가 점차 발달하면서 2000년대 초에 다나와, 에누리 같은 최저가 비교 사이트들이 등장했다. 가격 비교의 맹점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최저가 사이트가 소비자의 생산자 간 정보의 비대칭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당시 소비자 모두가 최저가로 합리적인 구매를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기업들은 온라인에서조차 소비자의 가격 비교를 방해하는 장치를 마련했기 대문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사이트에 일부러 제품을 혼란스럽게 설명하고,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버전의 모델을 등록하여 가격 비교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가 하면, 저가형 미끼 상품을 검색 상위에 올리거나 광고 창에 게시하여 소비자를 자기 웹 사이트로 유인한 다음 결국 더 비싼 제품을 사게 만들었다.

 

p241

 

 보드리야르는 1970년에 발간한 <소비의 사회 La societe de consommation>를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산업 자본주의를 지나며 생산수단과 생산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과잉생산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갖게 된다. 끊임없이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은 멈추게 되고 자본주의 역시 멈추게 될 운명을 맞는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소비'가 필요하게 된 소비 자본주의는 '고객의 니즈를 창출해야 한다'는 구호를 만들어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없는 소비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마케터는 소비를 꿈꾸게 하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되었다.

 

p246

 

 하지만 이러한 고객만족도가 곧바로 고객충성도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75,0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매튜 딕슨Matthew Dixon, 캐런 프리먼Karen Freeman, 니컬러스 토먼Nicholas Toman의 201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객만족과 브랜드 로열티는 상관관계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기 위한 각종 서비스는 충성도 제고에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할 경우 오히려 고객의 기대수준을 높여 충성도를 약화할 수 있다. 나아가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제품의 질이나 가치와 같은 핵심 편익이지 부가적인 서비스가 아니며, 고객들이 지닌 핵심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줄 때 고객충성도가 강화된다고 하였다.

 

 연구자들은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 "고객을 기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라 Stop trying to delight your customers"에서 고객충성도 제고를 위한 새로운 측정 지표로 '고객노력지수Customer Effort Score, CES'를 제안했다. 기존 기업들이 관리하고 있는 '고객만족도 지표Customer Satisfaction, CSAT'는 고객의 재구매 및 지출 증가에 대한 예측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2000년대 중반 제너럴일렉트릭 등의 기업들이 체택하면서 인기를 끌고 기존의 고객만족도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순추천지수Net Promote Score, NPS'는 보통 수준의 예측력을 보여주었다. 

 CES는 '당신이 처한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었느냐?'라는 질문의 답을 5점 척도로 측정해서 관리한다. '거의 노력이 들지 않았다'면 1점을,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면 5점을 체크한다. 점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고객이 브랜드와 관련하여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노력이 적은 것이다. 이는 고객충성도 제고에 이바지하게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력을 적게 들인 사람들의 94퍼센트가 재구매 의향을 드러냈다고 하니, 고객 충성도에 대한 예측력이 꽤 높은 지표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와 같은 개념이 반드시 90년대생에게만 해당하는 조사 결과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번거로움의 제거와 최소화는 누구보다 90년대생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요소다.

 

p248

 

 HMR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는 반대로, 시장이 겹치게 된 패스트푸드와 패밀리 레스토랑은 점차 HMR 제품과의 경계가 사라짐과 동시에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80년대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성시대를 열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이후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한 청년 실업 증가와 혼인율, 출산율 저하 등으로 인구구조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생들의 소비 패턴 양극화는 몰락의 결정타가 되었다. 연인이나 가족과의 기념일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즐기던 80년대생들과 달리, 90년대생들은 평소에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특별한 날에는 호텔처럼 더 화려하고 고습스러운 곳을 찾게 된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90년대생들에게 더 이상 특별한 장소도 아니고,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게 된 것이다.

 

p300

 

 그런데 이렇게 배달앱 시장이 성장하게 된 것은 단순히 간편성 때문만은 아니다. 1996생 김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배달앱은 분명 간편성도 있긴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배달앱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달앱의 가장 큰 특징은 후기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화로 주문을 하면 서비스가 엉망인 경우가 많았죠. 쿠폰을 빼먹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이제는 꼭 후기를 남깁니다. 소비자인 우리의 피드백이 솔직히 반영된다는 것이 앱을 통한 주문의 이유입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바로 '인형뽑기방'이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인형뽑기방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2017년에는 전국에 2만 개가 넘을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인형뽑기방이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를 끈 데에는 적은 비용으로도 개업이 가능하다는 게 한몫을 했다.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 데다 대당 200~300만 원대인 경품 기계 몇 대면 손쉽게 창업이 가능했다. 1,000~2,000원이면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즐겨 찾으며 전국적인 열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불야성을 이루던 인형뽑기방은 이제 파리만 날리는 곳이 많아졌다. 빠른 성장세만큼 폐업도 빨라졌다. 이유는 바로 인형뽑기방에서 '확률을 조작'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든 인형뽑기방이 확률을 조작하지는 않았지만 인기는 급격히 식어버렸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2016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144개 뽑기방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01개소(70퍼센트)가 관련 규정 위반 업소로 적발됐다. 이 중 12개소(8.4퍼센트)가 기계 개,변조를 통해 뽑기 확률을 조작했다. 인형뽑기방의 주요 타깃 고객이었던 90년대생들은 이러한 확률 조작 사실을 알고 그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1992년생 김모 씨는 "인형뽑기방이 기계로 장난치는 것을 안 이후에 절대 가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런 호구가 되기는 싫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90년대생들은 직원으로 일하든 소비자로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뢰'를 꼽곤 한다. 배달앱의 후기처럼 신뢰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이 있으면 하나의 큰 성공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 많던 인기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광고를 차단하기 바쁘다.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커피 프랜차이즈다. 그렇다면 스타벅스의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 스타벅스의 2017년 매출은 1조 2,634억 원이다. 국내 2위에서 6위까지의 5개 회사(투썸플레이스, 이디야커피, 커피빈, 엔제리너스, 할리스커피)의 매출을 모두 합해도 스타벅스 한 곳에 턱없이 못 미친다. 2~6위 다섯 회사 매출은 모두 합해도 8,200억 원에 불과했다.

 이렇게 국내 1위의 커피전문점으로 성장했지만 스타벅스의 광고를 본 사람은 없다.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은 마케팅 예산의 대부분을 제품 광고와 프로모션에 쓴다. 지금까지 마케팅의 목표인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이거나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늘리는 데에 실제로 광고와 프로모션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90년대생 소비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를 차단하기 바쁘다. 어쩌다 노출된 광고 또한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스타벅스의 인사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담당자는 스타벅스의 성공을 광고와 프로모션이 아닌 브랜딩에 대한 투자와 내부 직원을 첫 번째 고객으로 두고 아끼는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고를 하지 않는 대신 브랜딩과 조직 관리에 힘쓴다는 것이다.

 

 

 

 

 

이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2009년부터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해가 바뀌면 항상 연초에 읽어야 할 필독서처럼 되어버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며 지나간 트렌드와 새로운 트렌드의 대비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인사이트를 키우려는 이들에게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듯 하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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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배송 서비스

 국내 새벽 배송 시장의 규모는 2015년 100억 원에서 2018년 4천억 원으로 3년 새 40배나 성장했다. 2019년은 2018년 대비 2배 증가한 8천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으로 포문을 연 새벽 배송의 판은 더욱 커져가는 중이다. 헬로네이처, 쿠팡 등 온라인 기반 커머스 업체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백화점, 홈쇼핑 등 전통적인 유통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새벽 배송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새벽 배송을 넘어 당일에 배송을 해주거나 시나 분 단위의 총알 배송까지 배송 서비스의 영역이 확장되는 모양새다. 이마트는 물류 스타트업 '나우픽'과 손잡고 30분 배송을 시작했다. 자체 간편식 브랜드인 피코크 상품을 나우픽의 도심물류센터에 보관했다가 고객의 주문이 떨어지면 문 앞까지 30분 내에 배송을 완료하는 것이다. 티몬은 1시간 배송을 내세웠고, 롯데마트는 오후 8시 전에 주문하면 당일 자정까지 배달해주는 야간 배송으로 차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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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에어프라이어와 삼신가전.

 2019년 가전 시장에서는 에어프라이어와 삼신가전(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의류건조기)이 단연 인기였다. ~~~

 

p38.

 하이트진로에서 병 모양과 색깔, 라벨 사이즈까지 과거 디자인을 복원해 내놓은 '진로소주'는 2019년 4월 출시된 지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천만 병을 넘겼다.~~~

 

p59. 유머로 승부하는 펀셉팅의 향연

 2019년 한국 소비 시장에서 발견된 컨셉팅의 마지막 현상은 바로 유머와 재미를 강조한 '펀셉팅funcepting'이다. ~~~

p100.

 이와 같은 비건 사회로의 진입은 자연스럽게 동물복지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복지 개념이 반려동물이나 야생동물의 범주를 넘어 가축과 물고기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으로까지 논란이 번져 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정읍시의 소싸움 대회다. 23회째를 맞이한 정읍민속 소싸움 대회에서 정읍시가 추경예산 1억1,360만 원을 편성하려다 무산된 것이다. 정읍시의회가 "소싸움은 동물 학대로 즐거움을 얻는 비윤리적 행위"라는 동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사단법인 한국민속소싸움협회는 "우리 조상의 혼과 숨결이 살아 있는 전통 유산을 왜 훼방 놓느냐"는 입장이고 동물보호단체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억지로 뱀탐과 개소주를 먹이고 훈련을 시키는 게 학대가 아니고 뭐냐"는 의견을 내며 팽팽하게 맞섰다.

 강원도 산천어 축제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축제장을 찾아와 "산천어 집단 살상 현장"이라며 반대 집회를 연 것이다. 이들 보호단체는 강릉 주문진 오징어 축제, 양양 연어 축제, 영덕 대게 축제 등 수산물을 테마로 한 모든 축제에서 '맨손 잡기 체험'을 퇴출시키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찬반 논란이 있지만 환경과 동물에 대한 관심은 이전과는 확실하게 다른 양상의 논란과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p109.

 자신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것은 캐릭터뿐만이 아니다. 불편한 감정을 대해애주는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연인과 이별하려 할 때 당사자 대신 이별을 통보해주는 '이별 대행 서비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때 필요한 비용은 보통 5만 원에서 10만 원 선이다. 이름, 나이, 사귄 기간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주면 '이별'이라는 곤란하고 복잡한 상황을 정리해준다. 국내의 한 이별 대행 서비스 관계자는 "6년 넘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고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보통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의뢰하고 대다수의 고객들은 이 서비스에 만족했따"고 밝혔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사직서를 내는 것조차 두려운 직장인들을 위해 퇴사 과정을 처리해주는 '퇴사 대행 서비스'도 등장했다. 직장 생활 중 가장 불편하고 어려운 순간인 퇴사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로, 사직서만 대신 내주는 것이 아니라 퇴사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퇴사 이후의 생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관리해준다. 우선 고객과의 상담을 통해 희망하는 퇴사일을 정하고 퇴사 과정 중의 위험 요소를 미리 확인한다. 이후 회사의 인사 담당자에게 사직 의사를 전달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해준다. 회사 측이 사직서를 수리하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짐까지 집으로 배송해주며 전 과정에 걸쳐 고객의 퇴사를 세심하게 돕는다. 퇴사 대행 서비스 업체에 따르면 이 서비스의 주된 고객은 퇴사 과정 중에 회사 측과 마찰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직장인들이다.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가 이를 거부하거나, 타 회사에서 이직 제의를 받았으나 현 직장으로부터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끝내고 퇴사하라고 종용받는 경우 등이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과 퇴직이 잦아지면서 상사와 대면해서 퇴사 절차를 밟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20~30대 직장인들의 니즈를 반영한 비대면 대행 서비스 시장은 더 다양한 생활밀착형 콘텐츠로 무장해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p148.

 밀레니얼 가족은 가족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부부 개인의 니즈를 존중한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19년 8월 한국의 성인 남녀 4,8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서도 개인을 중시하는 밀레니얼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생의 밀레니얼 세대는 성공적인 인생의 모습을 '수입은 적지만 좋아하는 일, 취미 활동을 즐기면서 사는 삶'을 1순위로 꼽았다.(27.5%) 반면, 1970년대생인 X세대인 경우 '큰 걱정 없이 안정된 수입으로 가족과 화목한 삶'이 1위를 차지했다.(66.2%) 가족을 1순위로 두는 기성 세대와 달리, 가족 안에서도 개인이 존중받길 원하는 밀레니얼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p150.

 우선 이들은 외부 기기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사 노동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본인이 직접 처리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기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과거 필수가전으로 꼽혔던 TV나 대형 냉장고는 이제 선택가전이 된 반면, 집안일을 도와주는 의류건조기, 식기세척지, 로봇청소기는 신이 내려주신 가전이란 의미로 '삼신神가전'이라 불리며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실제로 이들 세 가전은 온라인 쇼핑 사이트 G마켓, 옥션에서 높은 매출 신장률을 보였는데 2018년 의류건조기의 G마켓 매출은 3년 전인 2016년 대비 934% 성장했고, 옥션의 경우 974%라는 놀라운 신장률을 기록했다.

 

p165.

 

 "손님은 왕이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처음 이 말을 한 사람은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리츠칼턴의 창업자 세자르 리츠라고 한다. 1898년 그는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을 모방해 만든 리츠호텔을 오픈했는데, 당시 이 호텔의 주요 고객은 진짜 왕족이나 귀족이었다. 그야말로 왕이 손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리츠는 "평민이라도 우리 호텔에 투숙하고 돈을 쓰는 고객이라면 그야말로 왕처럼 모신다"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서비스 정신을 담은 이 문구를 만들었다. 이후 이 표현을 많은 기업들이 고객만족 경영의 모토로 삼으며 현재까지 두루 활용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객을 평등하게 대하겠다는 이 좋은 의미가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왕처럼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서비스 종사자들을 향한 일부 고객들의 비매너 행동이 점점 심해지면서 현대사회의 또 다른 갑질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p171.

 

 일보에서도 노쇼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보고서에 의하면 무단 예약 취소로 인한 일본 음식 업계의 피해액이 연간 약 2천억 엔(약 2조2,600억 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에 무단 예약 취소에 따른 손해를 보증하는 회사가 등장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가르시아'는 지난 2017년부터 식당과 미용실 등을 대상으로 무단 취소 피해 보증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의 무단 취소가 발생했을 때 예약대금 전액을 가게에 보장한다. 2019년 기준으로 이 서비스에 가입한 음식점만 3만여 곳에 이른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월 1만 엔 미만의 비용을 내면 1건당 평균 5만~10만 엔 정도의 노쇼 피해 배상액을 받는다고 한다. 심지어 한 변호사는 무단 취소로 발생한 피해분을 직접 회수하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노쇼가 발생했을 때 변호사가 고객에게 직접 연락해 피해분을 받아내는 것이다. 시험 단계에서만 회수 성공률이 80%에 달했으며, 변호사 수수료는 30% 정도다. 이제 우리나라도 고객 노쇼를 막을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다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고객 스스로 노쇼가 음식점 업주뿐만 아니라 선의의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가는 비매너 행동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p182. 2020 나라 살림

 

 2019년 8월, 기획재정부는 2020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며 '국민중심, 경제강국'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도 국민의 생활과 복지를 증진하고 사회안전망을 보강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를 위한 총지출은 513.5조 원(작년 대비 9.3% 증가)으로, 2년 연속 9% 대 증가율을 유지하며 최대한의 확장적인 재정 운용을 계속 이어나갈 전망이다. 2020년 예산안의 세부 목표는 ①핵심 소재, 부품, 장비산업의 조기 공급 안정에 총력 지원, ② AI 사회로의 전환을 이끌 DNA+BIG3에 집중 투자, ③ 수출, 투자, 내수 보강 등 경제 활력 제고, ④ 사회, 고용, 교육 안전망 보강 및 취약계층 맞춤형 지원, ⑤ 국민 생활의 편의, 안전, 건강 증진 투자 확대다. 이는 일본 수출 규제 등 경기 하락의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핵심 소재, 부품, 장비의 수입 의존도를 낮춰 경제 제칠을 개선함과 동시에 미래 성장 동력을 확충하여 혁신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중점을 둔 목표라 할 수 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일자리 예산이 포함된 보건, 복지, 노동 분야의 예산이 가장 크게 증액되어 181.6조 원으로, 총지출 중 35.4%를 차지한다. 증감률로 보면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분야 예산이 작년 대비 27.5%로 가장 크게 증가하여 23.9조 원이 책정되었다.

 

 특히 2020년은 미래의 혁신 성장을 가속화하면서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할 전망이다. 일자리 창출에는 기존의 예산을 더욱 늘려 최대 규모인 25.8조 원이 투입되었다. 이는 전년 대비 21.3% 증가한 수치다. 소비자들의 편의와 안전을 증진하기 위한 예산을 살펴보면, 신기술을 위한 '스마트 인프라' 확충, 노후 시설을 보수하여 재난에 대비하는 '안전 투자' 강화, 그리고 미세먼지 저감 및 건강 증진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나갈 전망이다. 나아가 정부는 '포용국가'의 기반을 공고화하기 위해 보건, 복지 분야의 예산을 확대 편성했다. 이를 통해 사회, 고용, 교육 안전망을 보강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p196.

 

 그 해답으로서 현대인들이 다양하게 분리되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장에서의 정체성과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고, 평소의 정체성과 덕질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며, 일상에서의 정체성과 SNS를 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다. SNS도 그것이 카카오톡이냐, 트위터냐, 유튜브냐, 인스타그램이냐에 따라 모두 다른 정체성으로 메시지를 올린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정체성의 분리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큰 변화다. 과거에는 '지킬과 하이드'처럼 정체성이 분리되는 것을 해리성 '인격 장애'라고 불렀다.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취급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의 분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 됐다. 마치 중국의 변검배우가 가면을 순간순간 바꿔 쓰듯이 말이다. 이 가면을 학술적으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 - 칼 구스타프 융 -

 

 페르소나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지칭하는 용어다. 원래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구스타프 융이 이것을 심리학에 차용해 인간은 1천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바꿔가며 산다고 설명했다.

 페르소나는 오래된 용어지만, 현대사회처럼 복잡하고 개인화된 다매체 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새삼 떠오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최근 몇 년간 나타나고 있는 많은 트렌드를 관통하는 동인은, "사람들이 자기 상황에 맞는 여러 개의 가면을 그때그때 바꿔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복수複數의 가면을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 즉, '여러 개의 가면'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멀티 페르소나는 말하자면 본서의 여러 트렌드는 물론이고 최근의 사회 변화를 이해하는 '만능키'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개념과 배경, 그리고 시사점에 대해 알아보자.

 

p208. 멀티 페르소나의 여러 모습

 양면적 소비의 증가

 

 "앞으로는 초저가와 프리미엄만 살아남을 것이다."

 초저가의 '노브랜드 버거'와 프리미엄 가격대의 '자니로켓 버거'를 동시에 취급하는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소비의 양극화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다. 중요한 점은 "왜 그런가?"다. 예전에는 부유한 소비자는 비싼 프리미엄 상품을, 가난한 소비자는 초저가 상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사람의 소비자가 저가와 프리미엄 버거를 모두 소비한다. 간단하게 한 끼를 때워야 할 때는 가성비 버거를, 근사한 데이트를 할 때에는 프리미엄 버거를 구매하는 식이다. 이제 소비의 양극화보다는 양면화라는 표현이 더 적확해 보인다. 이들 두 얼굴을 가진 로마신화의 신, 야누스Janus의 빗대 '야누스 소비'라고도 한다.

 

 야누스 소비는 이름을 바꾸며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나타난다. 한 가지 명품에 집중하는 '일품명품주의' 혹은 '일점호화소비'도 자신이 좋아하는 한두 품목에서 럭셔리를 추구하고 나머지는 극도로 절약한다는 측면에서 양면적 소비의 한 예다. '가성비' 트렌드와 '프리미엄' 트렌드가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도 양면성의 반영이다. 이런 양면적 소비를 '멀티 페르소나' 개념을 사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비자가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고, 그 페르소나의 성격에 따라 가성비냐 프리미엄이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p215.

 

 젊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을 갈 때 자주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저녁마다 술과 노래가 있는 조촐한 파티가 열린다. 제각각 다른 곳에서 온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놀랍도록 솔직하고 내밀한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게스트하우스 파티효과'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익명이 보장되거나 느슨한 연대라고 느낄 때, 사람들은 훨씬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가 런닝 크루, 살롱, 소셜다이닝 등 오프라인의 '느슨한 취향 모임'에 빠지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온라인과 SNS 관계가 상대적으로 강화되면서 생겨나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p221.

 

 라스트핏 이코노미의 도래는 기존의 가격비교 중심의 의사결정이 바뀌고 있음을 예고한다. 소비자들은 이제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꺼려한다. 제품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면 그 이후의 행동은 '즉시 구매'로 이어진다. 가격이 조금이라도 더 싼 채널을 탐색하기 위해 투입하는 노력보다, 유료 멤버십에 가입한 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다음 날 새벽 대문 앞에 물건이 도착해 있는 편리성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한다. 소비자의 의사결정 기준이 가격 대비 효용에서 노력 대비 효용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2020 전망편, '편리미엄' 키워드 참조). 그래서인지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가성비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 기준이 상품의 효용에서 서비스의 질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고객의 최적화된 만족이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p223.

 

 마켓컬리의 경우 상품 카테고리는 많지 않지만 백화점 식품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일반 마트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상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돈코츠 라멘은 있어도 오뚜기 진라면은 없는 것이 마켓컬리가 내세우는 전략이다.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는 신선식품을 배송하는 데 꼭 필요한 냉장차량의 수요가 가장 낮은 시간대가 새벽이라는 사실과 30대 직장 여성들이 배송을 받기에 집을 비우는 낮 시간보다는 새벽이 더 좋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새벽 배송' 서비스를 내놓았다. 새벽이라는 시간대의 상업적 수요와 고객의 니즈에서 접점을 찾은 것이다.

 

p232.

 

 최근에서는 언박싱에서 진화해 '하울haul'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하울은 주로 특정 제품을 구매한 후 제작자 나름의 방식에 따라 소개하며 솔직한 사용 후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 브랜드나 물건명, 하울의 대상이 되는 카테고리 뒤에 '하울'을 붙여 '여행 기념품 하울', '스킨로션 하울', '명품 하울'등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하울은 영상 제작자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구매한 뒤 박스 개봉 과정을 분석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언박싱 영상과는 차이가 있지만, 포장을 풀고 제품을 처음 만지는 순간, 즉 라스트 터치를 간접 경험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p244.

 

 "뒷문으로 승차해도 괜찮습니다!"

 아침 등교 시간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내부로 진입하는 셔틀 버스의 줄은 언제나 길다. 버스기사가 승차 시간을 줄이고자 학생들에게 일부는 뒷문으로 타도 괜찮다고 외치지만, 어느 누구도 열린 뒷문으로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똑같이 줄을 섰는데 누군가가 뒷문으로 승차해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은 '극협(극도로 혐오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줄 중간에 아는 친구를 만나 뒷사람의 양해를 구하고 그 친구와 함께 중간에 서는 일도 학생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새치기'에 극도록 민감하다.

 

 이런 현상은 단지 위 인터뷰의 젊은 직원이나 줄 서는 대학생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 조작 논란, 모여고의 시험지 유출 논란, 교수 자녀의 논문 특혜 논란,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탄일팀 논란 등의 사례에서 보듯 요즘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경우는 모두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여길 때다.

 

p259.

 

 한국 사회 내의 불평등성이 과거에 비해 점차적으로 개선되어왔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인관, 박현준은 2019년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와 기회 증가로 부모의 계급이 자녀의 계급에 미치는 상관관계가 점차 감소해왔음을 밝히기도 했다. 1950~1984년 코호트를 거치며 부모 계급과 자녀 계급 사이의 사회적 지위 이동이 훨씬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객관적인 격차가 아니다. 객관적인 부의 격차가 점차 개선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체감하는' 공정성 결핍은 왜 점점 더 강해지는가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성이 낮아졌기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라는 역설적인 주장도 있다.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토크빌에 따르면 사회적 신분 차이가 정해져 있던 봉건시대에는 서로의 처지를 비교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반면 사회제도의 발달로 신분 차별이 없어지면 표면상으로는 누구나 상위층에 속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공정성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토크빌의 지적은 우리가 공정한 사회를 추구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모순을 들춘다. 만약 우리 사회가 완전하게 공정하다면, 빈민이나 실패자 등 하위계급에 놓인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사회 탓으로 돌릴 명분이 없어진다. 사회 시스템이 불공정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남들보다 열등하기 때문으로밖에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한 평가 기준이 있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이 공평하지 않다."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열등성을 부정할 수 있다. 평등을 추구할수록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더욱더 커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p265.

 

 한편 공정함 뒤에 숨어 있는 부정적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위계 조직과 달리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책임질 사람이 부재하다는 필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실제로 요즘 직장인들을 두고 소통은 수평적이길 원하지만 책임은 수직적이길 원하고, 업무에 대한 욕심은 많은데 정작 수행하는 방식은 잘 모른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높다. 전문성과 책임감을 보강할 수 있는 조직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p278.

 

 미국 스타트업 '후치Hooch'는 매달 9.99달러를 내면 수백 개의 맨해튼 술집에서 매일 칵테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비슷한 서비스로 국내에는 '데일리샷'이 있다. 한 달에 9,900원의 비용으로 제휴 술집에서 매일 술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이 서비스는 출시된 지 1년 만에 누적 회원 수 5천 명을 돌파했다. 집으로 배달되는 술 추천 스트리밍 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6월 설립된 '퍼플독'은 소믈리에 등 와인 전문가들이 고객 취향에 맞춰 선별한 와인을 매달 한 차례 배송한다. 와인 라벨과 원산지, 음용 방법, 관련 스토리 등을 담은 콘텐츠도 함께 보내준다. '술담화'는 전통주를 경험해볼 수 있는 서비스다. 월 3만9천 원에 한 달에 한 번씩 전통주 두 병을 골라 보내주는데, 론칭 7개월 만에 구독자 수가 1천 명이 넘었다. 술담화는 단순히 술을 파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온라인으로 유통 가능한 900여 종의 전통주 중에서 소비자의 취향과 계절에 어울리는 술을 추천해주고 이와 함께 술에 대한 정보, 어울리는 음식, 술에 얽힌 역사 등 다채로운 정보도 제공한다.

 

p285. 삶을 유영하는 노마드 가치관

 

 스트리밍 라이프의 배경에는 정주하지 않고 유동하는 노마드nomad, 즉 유목민의 가치관이 자리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가타리는 1980년에 출간한 『천 개의 고원』에서 홈 파인 공간과 매끈한 공간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홈 파인 공간이 정주의 공간이라면 매끈한 공간은 경계가 없는 유목의 공간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유목의 개념이 적용되는 공간을 노모스라고 칭했는데, 자유롭게 경계를 허무는 현대인의 삶은 노모스에 더 가깝다. 어디서나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되 언제든 다른 스트리밍으로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 시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스트리밍 라이프로의 전환을 더 가속화한다.

 

 유목적 삶의 관점에서 일하는 방식이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인터넷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한 공간에 모여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프리랜서 직군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거점으로 이동하는 주거 스트리밍이 성장하는 측면도 있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Z세대는 평생 17개의 직장과 5개의 직업, 15번의 주거지를 갖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노마드적 가치관이 일부의 특이한 취향이 아니라 현대인을 정의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p295. 초개인화 기술의 3단계

 

 초개인화 기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① 고객 접점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분석 가능한 형태로 데이터화하고, ② 해당 데이터를 AI의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며, ③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p311. 

 실상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수집과 인공지능의 활용은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GAFA ; Google-Amazon-Facebook-Apple, BATH ; Baidu-Alibaba-Tencent-Hwawei 같은 미국과 중국의 극소수 파워 유저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p354.

 국내 아웃도어 인구가 증가하면서 아웃도어 의류 시장이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유통의 두 강자,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의 엇갈린 실적이 눈길을 끈다. 남대문 시장에는 아웃도어 의류와 캠핑 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늘어났고, 반면 동대문 시장은 클라이밍 전문 장비에 주력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반 손님들로 장사를 이어가던 남대문에는 현재 관련 매장 3곳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객단가가 높은 마니아와 단골손님을 확보한 동대문에는 30여 곳이 성업 중이다. 크고 넓은 시장을 겨냥했던 남대문 시장보다, 전문 장비에 특화한 동대문 시장이 더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특화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p357.

 

 "한 우물을 파라. 샘물이 나올 때까지."

 

 슈바이처 박사의 유명한 이 좌우명은 특화에 몰입하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임을 시사하고 있다. 사람은 축적해놓은 것이 있으면 자신감이 붙는다. 한 우물을 집요하게 파는 일은 시간과 노력을 담보로 자신감을 키우는 일이다. 특화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p372.

 

 오팔세대의 일상적 시간을 공략하면 산업의 지형도까지 바꿀 수 있다. 일례로 가성비 좋은 시간 활용법을 찾는 신중년층 남성들이 죽어가던 당구 시장을 일으켰다. 회식 문화가 변화하면서 저녁시간 활용을 고민하는 중장년 직장인과 퇴직 후 여가 활동 거리를 찾는 남성들이 젊은 시절 자주 찾았던 당구장에 모인 것이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시간을 때우는 곳이 아니라 동문 간 교류와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게임을 즐기는 곳으로 거듭나면서 당구장마다 고교별, 대학별 동문친선대회가 열릴 정도다. 2016년부터는 매년 한 방송사 주도로 '고교 동창 3쿠션 최강전'도 개최되고 있다. 국민생활체육참여 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참여 활동이 있는 상위 10종목'에서 당구는 2016년 10위에서 2018년 7위로 세 계단 뛰어올랐다. 신중년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라고 할 수 있다.

 

p380.

 

 코글린 교수는 연구를 통해 남성은 노후를 바라볼 때 '독립,휴가,충족' 등을 떠올리며 결과지향적인 반면, 여성은 '계획,저축,보험' 등을 떠올리며 과정지향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이를 한국적인 사례로 생각해본다면 오팔 남성들이 언젠가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반면, 여성들은 베란다에 상추를 키울지언정 그러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오팔세대가 '바로 지금' 필요한 서비스나 개선점을 알고자 한다면 여성에게, 미래의 '로망'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남성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p383.

 

 편리성이 프리미엄의 요소로 편입되는 배경은 시대적이다.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의 젊은 소비자들은 다른 한편으로 그 시간을 다양한 경험과 자기성장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 더구나 옆집이나 친지에게 사소한 부탁도 할 수 없게 된 '약한 연대의 사회'에서는 작은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여러 이유로 소비자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일자리는 부족해지는 가운데 구직 청년은 물론이고 은퇴 후의 '가교노동'을 원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이들이 플랫폼화하는 노동시장으로 별 제약 없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p385.

 

 최근 변화 양상을 보면 소비자들이 시간 부족에 허덕이면서 생활의 효율을 극도록 중시하게 되었고, 인간관계의 유대가 약화되면서 삶의 문제를 모두 개인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원자화된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더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앱 경제는 그 확산 속도가 무척 빠르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2020년의 프리미엄은 소비자의 '편리'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가 원하는 '편리'를 잘 발굴해 이에 기반한 상품,서비스 전략을 기획한다면, 가격 상승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 의향을 이끌어내는 '프리미엄' 전략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에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편리가 프리미엄의 핵심 요소가 된다는 측면을 강조해 '편리미엄'으로 명명하는 트렌드를 제안한다.

 

p387.

 

 편리미엄의 첫 번째 전략은 소비자가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줄여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영상 재생 전에 나오는 프리롤pre-roll 광고 영상을 5초 후에 스킵할 수 있도록 만든 유튜브의 '건너뛰기' 광고 전략이다. 최근에는 연속으로 광고 2개를 시청해야 하거나 건너뛰기를 할 수 없는 15초 광고도 늘었다. 이러한 시간조차 아끼고 싶은 사람들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찾는다. 월 7,900원을 지불하면 광고 없이 바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유료 서비스다. 동영상 다운로드 등 다른 서비스도 이용이 가능하지만 이 서비스의 핵심은 광고 제거다. 건너뛰는 시간마저 아까운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광고 시청보다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p392.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도 고객의 노력을 덜어주는 신개념 서비스들이 프리미엄 셀링 포인트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파트 조식 서비스다. 국내 최초로 커뮤니티 시설에 조식 제공 서비스를 도입한 곳은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서비스 업체를 선정해 조식과 중식을 제공해왔다가 최근에는 저녁까지 제공하는 올데이 All day 다이닝 서비스로 확대했다. 조식 서비스 외에도 고급차 카셰어링이나 하우스 키핑 서비스, 비즈니스 라운지, 북카페, 사우나 등의 편의시설을 입주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또한 서울 반도퐁 반포리체,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서울 서초동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수원 광교 더샵 레이크파크, 성남 위례신도시 자연앤래미안e편한세상, 대구 수성구 SK리더스뷰 등도 식사 서비스를 잇따라 도입했다고 한다. 특히 서울 평창동 롯데캐슬로잔은 입주민에게 주 1회 세차 서비스와 월 1회 침대,소파,카펫의 살균 및 건식 청소 등 호텔식 룸 메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의 종류에 따라 특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각양각색이다. 개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수고를 덜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해줄 사람을 찾는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강아지를 돌봐주는 펫시터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들 수 있다. 반려견 돌봄 플랫폼인 '도그메이트'나 '와요'를 이용하면 '도그워커(전문 반려견 산책인)'를 1시간에 2만 원 내외의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다. 나물을 먹고 싶지만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움 때문에 꺼렸다면 이제 나물을 데쳐주는 나물 큐레이팅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세차와 같은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인스타워시' 앱을 이용해 세차 서비스를 예약하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세차를 받을 수 있다.

 짐 로저스가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초예측도 이 사람이 유명 작가들과의 대담을 엮은 것)와 대담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의 최신 세계 동향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고, 특히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한국에 대한 견해를 자세히 밝혀놓았다.

원제가 "お金の流れで讀む日本と世界の未來 世界的投資家は豫見する, 돈의 흐름으로 읽는 일본과 세계의 미래, 세계적 투자가는 예견한다." 로 책의 내용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는 상당히 어둡게 예상했고, 한국은 북한과의 통일이라는 이벤트가 진척된다는 전제하에 매우 밝게 묘사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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