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판데믹이라는 주제에 대한 시의적절한 내용. 이낙연 전 총리께서 이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서 읽게 되었다. 이미 판데믹에 대한 여러가지 대비를 전문가들은 준비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래리 브릴리언트의 TED강연은 현재의 상황과 맞물려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래 동영상의 내용은 책과 어우러지는 내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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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

 인플루엔자를 비롯한 많은 바이러스가 인간 숙주라는 환경과 타협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바이러스들은 신속하게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심지어 유전자 재편성reassortment이라 일컬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기들끼리 유전자를 교환하기도 한다. 

 2009년, 나는 물론이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유전자 재편성을 우려했다. H1N1 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에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동시에 사람이나 동물의 체내에서 H5N1을 만난다면 천지개벽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조기에 이런 가능성을 알아내어 돌연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들이 확산되는 걸 신속히 차단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나 동물이 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된다면, 그는 효과적인 혼합용기mixing vessel가 되어, 바이러스들이 유전자를 교환할 최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교환이 가능할까? 일종의 유성생식으로 H5N1과 H1N1이 생산하는 모자이크 딸-바이러스는 양쪽 모두의 유전자를 지닐 수 있다. 이런 유전자 재편성은 유사한 성격을 지닌 바이러스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감염된 개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모자이크 딸-바이러스가 H1N1에서는 확산성을 물려받고, H5N1으로부터 치사율을 물려받는다면, 결국 지독한 치사율을 지닌 채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판데믹에 대한 신속한 대응은 지난 100년 동안 세계보건정책의 핵심적 과제였다. 소수이지만 목소리가 큰 과학자들과 나는 백신을 확보하고 치료약을 개발하며 행동방식을 수정하는 정도로 판데믹에 대응해서는 안 되며, 그 이상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에서 확인되었듯이, 그런 전통적인 대응 방식은 실패작이라는 게 이미 입증되었다. HIV는 처음 발견되고 거의 30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확산되고 있으며,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3,300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HIV가 확산되기 전에 우리가 그 바이러스의 존재를 미리 알아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HIV는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50년 전부터 인간의 몸에 존재했었다. HIV는 확산되기 시작해서 25년이 지난 후에야 프랑스 과학자 프랑수아즈 바레 시누시Francoise Barre-Sinoussi와 뤼크 몽타니에Luc Montagnier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들은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만약 HIV가 중앙아프리카를 떠나기 전에 우리가 발견해서 그 확산을 억제했다면, 지금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p38

 새로운 생명체의 발견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새로운 생명체는 프리온이다. 프리온을 발견한 과학자는 그 공로로 199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프리온은 세포도 없고, 지금까지 알려진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청사진으로 사용하는 유전물질인 DNA나 RNA도 없는 기묘한 병원체이다. 하지만 프리온은 분명히 존속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광우병을 유발하는 병원균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이제 지상에는 더 이상 새롭게 발견될 생명체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보다 오만한 언행은 없을 것이다. 새롭게 발견되는 생명체가 있다면 십중팔구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한 생명체일 것이다.

 

p43

 바이러스가 언제 어떻게 행동을 개시하느냐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주변의 환경적 변수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게 거의 확실하다.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성인들 중 대다수는 스트레스가 입술 헤르페스의 원인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 임신이 감염의 원인인 듯하다고 경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주장들은 아직 추측의 수준에 불과하지만, 바이러스가 극심한 스트레스나 임신으로 인한 환경적인 변화에 활발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죽음의 가능성을 뜻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에게는 확산을 도모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숙주의 죽음은 바이러스에게도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임신은 출산 과정에서, 혹은 출산 후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입맞춤 과정에서 아기와의 접촉을 통해 바이러스에게 확산될 기회를 제공한다.

 숙주에서 숙주로의 전파는 어떤 감염체라도 본능적으로 바라는 것이며, 일부 감염체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예컨대 '플라스모디움 바이박스 히베르난스'라는 말라리아 원충은 계절까지 고려하는 듯하다. 단순헤르페스 바이러스보다 훨씬 큰 말라리아 원충을 비롯한 기생충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감염체이지만, 특히 이들은 진핵동물에 속한다. 따라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보다 동물에 훨씬 가깝다.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플라스모디움 바이박스 히베르난스는 극지방의 기후에서도 끈질기게 생존한다. 그런 추운 지역에서는 계절적으로, 즉 모기들이 부화하는 짧은 여름 동안에만 모기를 감염시킬 수 있다. 이 말라리아 원충은 일 년 내내 후손을 생산하려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인간의 간에서 잠복한 상태로 보낸다. 그러나 여름이 되면, 생기를 되찾아 후손으로 알을 낳고, 감염된 인간의 피를 통해 확산된다. 말라리아 원충을 깨우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모기에 물리는 순간이 말라리아 원충에게 확산의 계절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p64

 HIV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생태학적 상호작용에서 시작된다. 즉 중앙아프리카에서 침팬지가 붉은콜로부스 원숭이를 사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HIV가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약 800만 년 전 우리 유인원 조상이 사냥을 시작한 때부터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HIV의 역사는 두 종의 원숭이 - 중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붉은머리 망가베이와 큰흰코원숭이-로부터 시작된다. 두 원숭이의 겉모습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에이즈 판데믹의 중심에 있는 악당처럼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녀석이 없었더라면 에이즈 판데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붉은머리 망가베이는 뺨은 하얗고 머리에 붉은 털이 돋은 작은 원숭이로, 10여 마리가 무리지어 살며 과일을 주식으로 삼는 사회성을 띤 종이다. 또한 개체수가 크게 줄어 멸종위기에 처한 취약종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한편 큰흰코원숭이는 무척 작아서 구세계 원숭이Old World Monkey 중 가장 작은 원숭이 중 하나이다. 수컷 한 마리가 암컷 여러 마리로 구성된 작은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며, 포식자의 종류에 따라 경고음을 다른 식으로 낸다.

 두 원숭이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연 상태에서 원숭이면역결핍바이러스Simian Immunideficiency Virus, SIV에 감염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두 원숭이는 각각 이 바이러스의 고유한 변종을 지닌다. 그 원숭이와 조상들이 수백만 년 동안 품고 살았을 변종이다. 두 원숭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침팬지가 그들을 무척 맛있는 먹잇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숭이면역결핍바이러스는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이다. 달리 말하면 유전암호로 사용하는 DNA가 먼저 RNA로 바뀌고, 다시 우리의 살을 이루는 단백질 단위로 바뀌는 대부분의 생명체와 달리, SIV는 역으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 '레트로' 바이러스라고 불린다. 레트로바이러스군群은 RNA 유전암호로 시작하며, RNA는 DNA로 바뀐 후에야 숙주의 DNA로 들어갈 수 있다. 그 후에 레트로바이러스는 생명주기를 시작해서 후손을 생산하게 된다.

 다수의 아프리카 원숭이가 SIV에 감염된 상태이다. 붉은머리 망가베이와 큰흰코원숭이도 마찬가지이다. SIV가 야생 원숭이들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편이지만, SIV는 원숭이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SIV가 다른 숙주로 옮겨가면 그 숙주의 생명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2003년 베이트리스 한Beatrice Hahn과 마틴 피터스Martine Peeters의 연구팀이 침팬지 SIV의 진화를 역사적으로 추적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거의 10년 동안, 한과 피터스는 침팬지 SIV의 진화를 밝히기 위해 끈질기게 연구를 거듭했고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 그들은 침팬지 SIV가 실제로는 붉은머리 망가베이 SIV의 조각들과 큰흰코원숭이 SIV의 조각들이 뒤썩인 모자이크 바이러스라는 걸 밝혀냈다. SIV는 유전자 조각들을 재조합하거나 교환하는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에, 침팬지 SIV는 초기 침팬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라 침팬지에게서 생겨난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어떤 침팬지 사냥꾼 한 마리가 사냥한 두 원숭이들로부터 즉시, 혹은 바로 그날 SIV에 감염되면서 발단 환자patient zero-새로운 바이러스가 잠복하게 된 종의 첫 개체-가 되었을 것이란 가정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일찌감치 잡종으로 변한 붉은머리 망가베이 바이러스가 침팬지들 사이에서 성행위를 통해 확산되었고, 어떤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로부터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에, 사냥을 통해 큰흰코원숭이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발단 환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큰흰코원숭이 바이러스와 붉은머리 망가베이 바이러스, 둘 모두가 사냥을 통해 침팬지들에게 전달되고 한동안 침팬지들 사이에서 확산된 후에, 어떤 침팬지 한 마리의 체내에서 두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이 혼합되는 결과가 닥쳤을 수도 있다. 종을 넘나든 정확한 순서가 무엇이든 간에, 어떤 순간에 침팬지 한 마리가 두 바이러스 모두에 감염되었고, 두 바이러스가 유전물질을 재조합하고 교환하면서 망가베이 바이러스도 아니고 큰흰코원숭이 바이러스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모자이크 변종을 만들어냈다.

 이 잡종 바이러스는 망가베이 바이러스도, 큰흰코원숭이 바이러스도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침팬지들의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서쪽으로 코트디부아르부터 동쪽으로는 제인 구달이 1960년대에 연구를 시작했던 동아프리카의 서식지까지 침팬지들을 감염시켰다. 현재는 침팬지에게 별다른 해를 입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이 잡종 바이러스는 오랫동안 침팬지들의 체내에서 잠복해 있었지만,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어떤 시점에 침팬지에게 서 인간에게로 전이되었다. 침팬지가 사냥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다.

 

p89

 우리 조상이 병원균 청소를 거치는 시기 동안, 유인원 사촌들은 여전히 사냥을 계속하고 새로운 병원균을 받아들였다. 또한 인간 계통에서는 사라졌을 병원균들까지 여전히 보유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유인원 계통들은 인간에게서는 사라진 병원균들의 창고였던 셈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우리 혈통에서 사라진 병원균들을 보존한 노아의 방주라고 할 수 있었다. 오랜 세기가 지난 후 인간 세계가 확대되면서 이 거대한 창고가 인간과 충동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인간에게 중요한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p126

 지난 10년간의 연구에서 사람을 감염시키지만 특별한 질병을 야기하지 않는 듯한,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다수의 바이러스가 새롭게 발견되었다. TT바이러스는 감염된 첫 환자, 이름의 머리글자가 T.T인 일본인 환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금까지 TT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지만, 일부 지역에서 상당히 흔한 바이러스이다. 스코틀랜드의 유능한 바이러스 학자 피터 시몬즈Peter Simmond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병률이 스코틀랜드 헌혈자의 경우에는 1.9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아프리카 감비아 국민의 경우는 83퍼센트로 놀라울 정도로 높다. 다행히 TT바이러스는 인체에 해롭지 않은 듯하다.

 GB바이러스도 최근에 발견된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에게서 발견되지만 아직은 연구가 거의 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 바이러스는 외과의사 G.베이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그의 감염이 바이러스 탓이라고 잘못 진단되었다. 나는 TT바이러스와 GB바이러스를 찾아내는 무척 정교한 방법을 사용해서 두 바이러스를 빈번하게 확인했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위험한 요인을 포착해낼 수는 없었다.

 TT바이러스와 GB바이러스는 둘 다 흔하지만 모든 사람을 100퍼센트까지 감염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 문자에서 유래한 '판데믹'의 정의를 충족하지는 못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수만을 감염시키는 1단계 바이러스로부터 시작해서, 감염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경우인 6단계까지 판데믹을 모두 여섯 단계로 분류했다.

 세계보건기구는 2009년 H1N1을 판데믹으로 규정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H1N1은 누가 뭐라 해도 판데믹이었다. H1N1은 2009년 초 소수의 감염자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같은 해 말에는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H1N1이 판데믹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확산되는 병원균을 판데믹으로 규정하느냐 않느냐는 치사율과 관계가 없다. 판데믹은 확산력을 뜻할 뿐이다. 1장에서 논의했듯이 H1N1의 치사율이 50퍼센트에 이르지는 않는다고(실제로는 1퍼센트 이하) 말한 바 있지만, 그것이 100만 명을 죽이지고 못하고 중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솔직히 내 생각에는 판데믹이 세계를 휩쓸어도 우리가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TT바이러스나 GB바이러스처럼 외부로 나타나는 증상이 거의 없는 바이러스가 오늘 인체에 침입해서 전 세계로 확산되더라도 우리는 전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질병을 탐지하는 전통적인 시스템은 뚜렷한 증상을 나타내는 병원균만을 포착해낼 뿐이다. 따라서 즉각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바이러스는 놓치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물론 '즉각적'이란 개념이 '결코'라는 뜻은 아니다. HIV 같은 바이러스가 오늘 인체에 침입해서 전 세계로 퍼지더라도 수년 동안은 탐지되지 않을 것이다. 중대 질병들은 감염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HIV는 곧바로 확산되기 시작하지만,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징후로만 나타난다. HIV로 인한 중대 질병인 에이즈는 수년 후에야 나타난다. 따라서 판데믹을 탐지해내기 위한 전통적인 방법들은 주로 증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소리 없이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우리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파괴적인 수준까지 확산된 후에야 인간의 경갃김을 비로소 얻게 된다.

 제2의 HIV를 또다시 놓친다면 공중보건정책의 참담한 실패가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TT바이러스나 GB바이러스처럼 완전히 무해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확산된다면 철저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 1장에서 보았듯이 바이러스는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언제든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다른 바이러스들과 재조합되고 유전물질을 혼합함으로써 치명적인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체에 존재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된다면, 우리는 그 바이러스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내야 한다. 선과 악의 경계는 백지장 한 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132

 앞에서 지적했듯이, 향후에 인간을 위협할 새로운 판데믹의 가능성을 지닌 대부분의 병원균은 동물의 체내에 존재한다. 가축화된 동물들도 분명히 위협요인이다. 그러니 가축들에게 원래 존재했던 병원균의 대부분은 이미 인간에게 전이되어 인간의 병원균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역할을 끝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제 가축으로부터의 위협은 야생동물의 병원균을 인간에게 옮기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게다가 가축의 절대 숫자는 상당히 많지만, 우리가 동물의 세계에서 극히 일부만을 가축화했기 때문에 포유동물의 다양성에 비교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새로운 판데믹에 관한 한 야생동물이 기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p196

 1993년 6월 옴 진리교도들은 동경 동부의 가메이도 지역에 있는 8층 건물 옥상에서 탄저균Bacillus Anthracis의 현탁액을 살포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인구밀도도 높은 도시에 생물학적 테러를 감행한 것이었다.

 다행히 그들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2004년에 쓰인 분석에 따르면, 그들이 상대적으로 양성이었던 데다 세균포자의 밀도가 낮은 탄저균 변종을 선택했고, 살포 방식도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1993년의 사건은 용두사미격인 미풍으로 끝났다. 한 사람도 탄저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일부 애완동물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옴 진리교가 더 치명적인 탄저균 변종을 선택해서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살포했더라면, 내가 위에서 언급한 시나리오에 가까운 사건이 닥쳤을 것이다. 실제로 그 종말론자들은 탄저균만을 배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수의 실험실을 차려놓은 채 보툴리누스 독소, 탄저병, 콜레라, Q열 등 다양한 병원균을 배양하고 있었다. 1993년 그들은 다수의 의사와 간호사를 데리고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들어갔다. 표면적으로는 의료봉사를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분리한 샘플을 반입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p198

 생물학적 테러의 위험을 과소평가한다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테러집단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판단에 따르면, 생물학 무기가 인간에게 사용될 가능성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토록 치명적인 병원균이 합법적인 연구소에서, 혹은 무책임한 테러집단의 작업장에서 배양될 수 있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판데믹의 가능성에 또 다른 위협요인이다.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테러집단이 현재 극소수만 남아 있는 천연두 바이러스 샘플을 손에 넣는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천연두는 자연상태에서 박멸된 지 오래인 반면에, 천연두 바이러스는 단 두 세트만이 안전한 곳에 철저하게 보관되어 있다. 하나는 미국 애틀랜타의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다른 하나는 러시아 콜초보의 국립 바이러스학 및 생물학 연구센터VECTOR에 보관되어 있다. 두 곳은 생물학적 안전성에서 최고등급인 4단계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때 이곳에 남아 있는 재고마저 없애려는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백신과 치료제의 생산에 이 살아 있는 바이러스의 잠재적인 필요성 때문에 지금까지 결정이 미뤄지는 있는 실정이다.

 흥미롭게도 2004년에 천연두로 의심되는 부스럼 딱지가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발견되었다. 예방접종으로 생긴 부스럼 딱지라고 쓰인 봉투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어떤 실험실의 냉동고나 다른 어떤 곳에 상당한 천연두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였다. 천연두 바이러스가 의도적으로, 심지어 사고로라도 살포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천연두는 박멸되었기 때문에 천연두를 예방할 백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연두가 어떤 형태로든 방출된다면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이고,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또 다른 위험은 '바이어에러bioerror'이다. 생물학적 테러bioterror와 달리 바이오레어는 인간의 실수에 의해 병원균이 우연히 방출되어 널리 확산되는 경우이다. 2009년 박사후과정의 지도교수였던 돈 버크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의 발생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에서 버크는 인간 세계에 확산된 다양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을 분석했다. 특히 눈에 띄는 사례 중 하나는 1977년 11월 소련과 홍콩 및 중국의 남동부를 강타한 유행성 독감이었다. 문제의 바이러스는 20년 전에 집단 발병했던 유행성 독감의 바이러스와 거의 똑같았지만 그 이후로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가 없었다. 버크와 그의 동료들은 문제의 바이러스를 초기에 추적한 결과, 실험실에 보관되었던 바이러스가 우연히 실험실 직원의 몸에 침입하여 그로부터 확산되었을 거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일반대중도 상세한 생물학적 정보와 기법에 접근해서 단순한 병원균들을 배양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생물학적 테러와 바이오에러가 급증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물학적 실험은 주로 안전한 연구실에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2008년 뉴욕 시에 사는 두 명의 10대 소녀가 한 연구소에 초밥 샘플을 보내왔다. 이 연구소는 유전자 검사를 단순화하고 표준화하려는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곳인 DNA바코드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 센터였다. 두 소녀는 고가의 초밥이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알아냈고, 동시에 당시 과학자들에게만 허용되던 유전정보를 얻어내는 방법까지 알아냈다.

 요컨대 두 학생은 초밥 연구를 통해서 뉴욕 시의 초밥 장사꾼들이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사실만을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두 소녀의 초밥 연구는 비과학자가 유전정보를 읽어낸 가장 유명한 초기 사례 중 하나였다. 정보기술IT 혁명의 초창기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만이 HTML 같은 코드를 읽고 쓸 수 있었다. 그 후에는 프로그래머가 아닌 일반사람들도 코드를 읽고 쓰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누구나 블로그와 위키 및 게임에서 무리 없이 코드를 읽고 쓴다. 정보를 공유하는 모든 시스템이 그렇듯이, 고도로 전문화된 것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보편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멀지 않은 미래에는 직접 생물학적 실험을 시도하는 소규모 집단이 보편화될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에서는 바이오에러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필요성이 실질적으로 대두될 것이다. 영국왕실협회의 전 회장 마틴 리스Martin Rees 경은 유명한 예언에서, ".... 2020년쯤에는 바이오에러나 생물학적 테러가 현실화되어 수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파이프 폭탄이나 필로폰 제조공장을 만들던 화학이 바이러스 폭탄을 제조하는 생물학으로 바뀌고 있다.

 

p212

 가축의 수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많지만, 가축이 도축되어 고기로 가공되는 과정도 가축화가 시작된 이후로 행해지던 방법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역사적으로 한 마리의 동물을 도축하면 한 가족, 많으면 마을 사람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가공육이 등장하면서부터 우리가 야구경기를 보면서 먹는 핫도그는 다수의 종(돼지, 칠면조, 소)으로 이루어지며, 수백 마리의 동물에게서 얻은 고기로 만든 것일 수 있다. 따라서 그런 핫도그를 먹으면, 수십 년 전이었다면 농장 전체에서 뛰놀던 동물들을 골고루 맛본 셈이 된다.

 다수와 동물 고기를 혼합한 가공육을 만들어 사람에게 유통시키면서 부작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수천 마리의 동물 고기를 수많은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오늘날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면 평생 수십억 마리의 동물에서 얻은 고기를 조금씩 먹는다는 뜻이 된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소비자가 한 마리의 동물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제는 동물의 고깃덩이들과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고기가 요리되는 과정에서 많은 위험이 제거되는 건 확실하지만, 무수한 숫자로 구성된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못된 병원균 하나가 인체로 전이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양의 뇌가 광범위하게 파괴되어 스폰지처럼 구멍이 뚫리는 신경질환인 스크래피scrapie,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광우병으로 주로 알려진 우해면양뇌증BSE 에서 바로 위의 현상이 일어났던 것으로 여겨진다. BSE는 1장에서 언급했던 프리온으로 알려진 감염균들 중 하나이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와 기생충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여느 생명체와 달리, 프리온에는 생물학적 유전자지도(즉 RNA와 DNA)가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전물질과 단백질의 결합체가 아니라 프리온에는 단백질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어떤 유기적인 역할을 못할 듯하지만, 프리온 역시도 확산될 수 있고 더구나 중대한 질병을 야기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BSE는 1986년 11월 처음 확인되었을 때, 이 병에 걸린 소들의 특이한 증상 때문에 소에게 발생하는 신종질환으로 여겨졌다. 병에 걸린 소들은 제대로 서 있거나 걷지도 못하고, 수개월이 지나면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죽어버린다. 아직도 광우병이 소에게 발생한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연구에 의하면 오히려 양이 그 기원으로 여겨진다. 1960년대와 1970년에 소의 사료 제조가 산업화되었을 때, 죽은 양들을 육분과 골분으로 만든 사료가 있었다. 양은 스크래피로 불리는 프리온 질병을 지닌 것으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죽은 양을 소의 사료로 가공했기 때문에 그 병원균이 소에게 전이되어 적응한 것으로 여겨진다.

 소에게 전이된 BSE는 다시 사료를 통해 확산된다. 죽은 양처럼 죽은 소도 소의 사료를 만드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리온이 양에서 소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에 그 감염된 소를 이용해 가공한 육분과 골분을 통해 다음 세대의 소들에게로 전이된 듯하다. 프리온의 확산은 상당히 놀라웠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에 100만 마리 이상의 소가 감염되어 먹이사슬에 유입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프리온들이 모두 소에게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BSE가 처음 확인되고 약 10년 후, 영국 의사들은 프리온에 감염된 쇠고리를 먹어쓸 것이라 판단되는 사람에게서 치명적인 퇴행성 신경질환neurodegenerative disease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치매와 격심한 근육경련 및 근육협응 퇴화 등의 증세를 보였다. 환자들의 뇌가 감염된 소들의 뇌와 정확히 똑같은 식으로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감염된 인간의 뇌 조직을 이식 받은 영장류들에게도 이 질병에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인간 환자들도 BSE에 감염된 것이지만, 똑같은 질병이 인간에게서 발견되면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곱병vCJD이 된다.

 지금까지는 vCJD 환자가 24명밖에 확인되지 않았지만, 확정적인 진단이 어렵기 때문에 분명히 더 많은 환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vCJD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감염된 사람들은 감염된 소의 조직에 접촉한 것이 확실하며 치명적인 뇌장애로 이어지는 유전적 감수성을 지니는 것으로 여겨진다. 건강한 환자에서 추출한 편도선과 충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에서 광우병이 유행하던 동안 그런 소와 접촉한 4,000명 중 한 명꼴로 질병의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는 보균자가 나왔다. vCJD는 장기이식을 통해서도 전이되는 것으로 이미 입증되었고, 수혈을 통해서 전이될 가능성 또한 있기 때문에 위의 결과는 무척 우려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p218

 현재 피츠버그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인 돈 버크는 바이러스들의 재조합으로 새로운 판데믹이 발생하는 과정을 경고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버크는 그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창발적 유전자emerging gene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역사적으로 바이러스 학자들은 새로운 유행병에 대하여 동물에서 인간에게 전이되는 병원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HIV와 인플루엔자와 사스에서 보았듯이, 유전자 재조합과 재편성이 새로운 유행병의 근원인 경우가 더 많다. 

기존의 병원균 하나와 새로운 병원균 하나가, 즉 두 병원균은 하나의 숙주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할 때 서로 영향을 미치며 유전물질을 교환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변형된 병원균은 확산되어 완전히 새로운 판데믹, 따라서 전혀 대비되지 않은 판데믹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판데믹의 원인은 새로운 병원균이 아니라, 새로이 교환된 유전정보, 즉 창발적 유전자를 지닌 병원균이다.

 앞으로 우리는 판데믹의 위협에 더욱 시달리게 될 것이다. 새로운 병원체가 확산되어 질병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가 열대우림으로 더 깊이 들어가, 전에는 국제교통망과 단절되어 있던 병원체들과 접촉함에 따라 새로운 판데믹이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다. 높은 인구밀도, 전통음식들, 야생동물 거래 등이 복합되면 이 병원체들이 때를 만난 듯이 확산될 것이다. HIV로 인한 면역결핍으로 새로운 병원체들이 약해진 인간의 몸속에서 쉽게 적응할 위험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유행병의 충격은 더욱 클 것이다. 우리가 동물들을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세계 어느 곳으로든 운송하게 되면서 동물들은 어디에나 새로운 유행병의 씨를 뿌릴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서로 만난 적조차 없던 병원균들이 어디에서든 만나 새로운 모자이크 병원체를 형성하기도 하며, 부모 세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방식으로 확산될지도 모른다. 요컨대 우리는 앞으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유행병들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닥칠 유행병들을 더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유행병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p296

 

 대부분의 사람은 병원균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과 세균의 전쟁이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만 창의적으로 생각하면 병원균들 간의 전쟁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게다가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우리는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병원균들이 형성한 공동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 공동체에서 병원균들은 자기들끼리, 또 우리와 싸우고 협조하며 살아간다.

 

 우리 몸을 생각해보자. 머리부터 발끝 사이에서 10개의 세포 중 하나만이 인간이다. 나머지 9개는 우리 피부를 뒤덮거나 우리 내장에서 살아가며, 우리 입안에서는 번성하는 박테리아 덩어리들이다. 유전정보의 다양성을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 피부와 체내에 존재하는 1,000개의 유전정보 중 하나만이 인간의 것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수천 종에 달해 어디에서나 수적으로 인간 유전자를 훌쩍 넘어선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모든 병원균을 합해서 미생물상microbiota이라 칭하고, 그 병원균들의 유전정보를 모두 합해서는 미생물군계microbiome라 칭한다. 5년 전부터 인간 미생물군계를 연구하는 새로운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수천 종류의 병원균을 개별적으로 배양하는 거의 불가능한 일을 건너뛰게 해주는 새로운 분자 기법들의 등장에 힘입어, 과학자들은 우리 몸 전체에서 인간 세포와 병원균 세포를 구성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속속 밝혀지는 결과들은 흥미진진하다. 우리 내장은 병원균들의 복잡한 군집들로 가득하고, 대다수의 병원균들이 비유해서 말하면 '장기 거주자'들이다. 그 병원균들은 무임 승객들이 아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식물성 물질이 소화되려면 박테리아와 박테리아 효소가 필요하다. 인간 효소만으로는 식물성 물질을 소화할 수 없다. 병원균 군집이 어떻게 구조화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미국의 생물학자 제프 고든Jeff Gordon은 제자들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들(그들 중 다수가 지금은 똑ㄱ교수로 활동하고 있따)의 도움을 받아, 우리 내장에 존재하는 병원균 군집들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입증해냈다. 예컨대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라는 특수한 박테리아군群의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과 관계가 있다는 걸 밝혀냈다.

 

 고든 연구팀은 비만자들의 미생물상이 똑같은 음식에서 얻을 수 있는 열량을 증가시킨다는 것도 입증했따. 게다가 정상적인 생쥐의 장내 미생물상을 비만인 생쥐의 미생물상으로 교체하면, 정상적인 생쥐의 체중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내장에 기생하는 박테리아가 비만과 중대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자궁경부암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어떤 만성질환의 원인이 병원균이면 그 질환을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는 활생균probiotics과 항생물질을 결합함으로써, 우리 내장의 미생물상을 신중하게 교체해서 건강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치명적인 병원균들에게 영향을 받는 정도에서도 우리 내장에 우글거리는 미생물 군집들이 적잖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식중독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인 치명적인 박테리아, 살모넬라균에 의한 식중독의 경우, 가장 큰 위험인자는 안전하지 않은 달걀의 섭취와 항생제의 사용으로 한동안 여겨졌었다.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닭은 달갈까지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달걀의 섭취가 위험할 수 있다고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항생제의 사용이 위험인자로 꼽힌 이유는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장내 미생물군계에 대한 최근 연구에서 그 미스터리가 조금이나마 풀릴 듯하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저스틴 소넨버그Justin Sonnenburg 교수가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중요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무균 생쥐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 무균 생쥐들은 완전히 멸균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녀석들은 압력솥에서 살균되어 병원균이 완전히 제거된 음식만을 섭취한다. 따라서 미생물들이 숙주의 장내에서 다양한 미생물상을 만들어내는 정확한 결정요인들을 찾아내기에 완벽한 표본들이다.

 항생제 사용이 이로운 병원균을 죽이며, 우리의 장내의 병원균들이 살모넬라균처럼 새로운 파괴적인 세균을 대비하는 자연방어막을 허물어뜨린다는 의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소넨버그의 실험실에서 시도되는 작업이 조만간 그 해답을 우리에게 전해주리라 믿는다.

 우리를 돕고 지켜주며, 체내에서 조용히 살면서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친절한 병원균들이 있다. 물론 우리 몸밖에도 선량한 병원균들이 있다. 우리 몸 안에, 혹은 자연 환경에 존재하는 어떤 병원균이 우리에게 이롭고, 어떤 병원균이 악당인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면 대부분이 뜻밖에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해로운 병원균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중보건이 완전히 멸균된 세계를 목표로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해로운 병원균을 찾아내서 통제하겠다는 목표이면 충분하다. 음흉하고 해로운 병원균들을 척결하는 지름길을 이로운 병원균들을 왕성하게 키워내는 것일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체내에 기생하는 병원균들을 죽이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런 병원균들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악랄한 병원균들로부터 우리 몸을 지킬지도 모른다.

 

p303

 H1N1 인플로엔자(돼지독감)가 판데믹으로 발전한 초기에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글로벌 질병탐지 및 응급대응팀 침장인 스콧 두웰Scott Dowell의 도움을 받아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상황실을 둘러보았다. 당시 팀원들은 멕시코에서 봇물처럼 밀려드는 보고들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또 세계보건기구가 판데믹을 비롯해 화급하게 대응해야 할 보건 문제가 닥쳤을 때 사용하는 상황실도 살펴보았다.

 내가 운영하는 조직 '글로벌 바이러스 예보Global Virus Forecasting, GVF'는 세계보건기구 산하에 조직된 집단발병 경보 및 대응을 위한 네트워크Global Outbreak Alert Response Network, GOARN의 일원이다. 안타깝게도 관료주의적인 절차, 불충한데다 들쑥날쑥한 지원, 먹이사슬에서 위에 있는 사람들의 변덕에 따라 걸핏하면 수정되는 목표 때문에 질병통제 예방센터와 세계보건기구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조직들이 더 강해져야 한다.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더 좋은 장비로 무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때가 오더라도 항상 더 많은 지원과 장비가 필요할 것이다.

 

p305

 생물의 역사에서 초기에 일어난 몇몇 사건들로 바이러스 폭풍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졌다. 예컨대 사냥의 도래로 우리의 생물학적 계통에서 어떤 종이 동물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새로운 병원균들이 인류 이전의 조상에게 침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멸종에 가까운 사건이 있은 후로 우리가 병원균들에 대처하기에 미흡한 상황이 닥친 듯하다.

 또한 인구가 증가하고 세상이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폭풍의 중심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도 말했다. 동물들의 가축화, 나날이 확대되는 도시화, 경이로운 교통 시스템으로, 지상에서 생명이 탄생한 이후로 모든 개체군이 전례 없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상이 되었다. 특히 인간은 장기이식과 주사요법을 발명하면서, 병원균이 확산되어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통로를 열어놓았다.

 

 

 

 미생물학 전문가로서 나는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행동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첫째로, 귀찮더라도 내 예방 상태에 허점이 없도록 유지한다. 예컨대 말라리아 지역에서 지낼 때는 말라리아 예방주사를 고박꼬박 맞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된 홍역을 치른 후에야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겨울철에는 호흡기 질환의 전염경로를 항상 염두에 두고,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으려 애쓴다. 대중교통은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때문에 무척 위험하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는 손을 씻거나, 알코올을 기반으로 한 간단히 손세정제를 이용한다. 또한 많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면 곧바로 손을 씻거나, 쓸데없이 코나 입을 만지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한다. 언제나 깨끗한 음식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하지 못한 섹스로 인한 위험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진다. 깨끗한 물과 백신, 효과 있는 말라리아 약과 콘돔이 안타깝게도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 이 정도의 안전장치는 모두를 위해서라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 발병이 발생할 때, 뉴스 보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위험 정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자주 받는 편이다. 유행병의 몇 가지 특징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면 적절한 대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병원균이 어떤 식으로 확산되고 있는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파되는가? 감염된 사람들의 치사율은 얼마나 되는가? 치사율이 무척 높더라도 확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이는 반대로 일반적인 치사율이지만 꽤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판데믹보다는 덜 걱정스러운 일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병원균이라고 항상 전세계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 유두종 바이러스HPV처럼 유순한 바이러스가 때로는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릴 수 있다. 다행히 확산성과 치사율 같은 기본적인 사실만 파악해도 유행병의 위험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당신이 한 곳에서 양질의 삶을 산다고 해서 판데믹의 위험에서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HIV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감염시킨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라 부자도 HIV를 피해가지 못했다. HIV는 건강관리를 거의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주었지만, 세계에서 최고의 건강관리를 받는 사람들, 특히 혈우병 환자들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로 이어진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p310

 미래의 판데믹을 저지하려는 우리 노력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걸림돌은 위험에 대한 대중의 어설픈 판단이다. 판데믹 에방 분야에서 초석을 놓은 학자 중 한 명이며, 지금도 여전히 판데믹 예방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래리 브릴리언트가 2010년 스콜 세계포럼에서 '위험 판단능력risk literacy'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미래의 판데믹을 저지하는 데 작은 도움을 주려는 바람' 덕분에 권위 있는 TED상을 수상한 브릴리언트는, 과거 구글에서, 그리고 지금은 스콜 세계위협요인기금에서 뛰어난 리더십으로 판데믹 예방운동을 출범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천연두 박멸 프로그램에서도 핵심적 팀원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위험 판단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브릴리언트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다.

 '위험 판단능력'이란 무척 중요한 개념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대중이 판데믹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적합하게 해석할 수 있게 만들자는 개념이다. 따라서 판데믹 예방을 위해서는 대중의 위험 판단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양한 수준의 위험을 구분하는 능력, 즉 위험 판단능력은 정책결정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재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무엇보다 대중이 침착성을 유지하며 지시를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언론이 끝없이 쏟아내는 위협적인 소식에 대중은 만성적인 위험 불감증에 걸린 듯하다. 이런 불감증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모두가 위험을 정확히 인지하고, 여러 형태의 재앙들이 어떻게 다른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각 재앙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 판단능력이 일반화되면 판데믹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데 필요한 정부의 막대한 비용을 국민에게 지원 받기에도 유리할 것이다. 또한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최적의 방법인지 판단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2001년 4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전세계에서 약 8,000명이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이 기간에는 9·11 테러까지 있었다. 2009년 4월부터 2010년 8월까지, 8년 후이지만 같은 기간 동안 H1N1 판데믹만으로 1만 8,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따. 그런데도 대부분이 H1N1을 시시하게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1만 8,000명이란 숫자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위협에 대비할 때 고려해야 할 유일한 변수가 사망자 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수조 달러가 실제 위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라는 생각을 지우긴 힘들다.

 

p314

 우리가 어떤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현장 정보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따라서 우리 작업의 근간은 세계 각지의 현장에서 실시되는 노력들이다. 현재는 동물에게 기생하지만 인간에게 침입할 가능성이 있는 병원균을 찾아내는 것이 현장의 목표이다. 또 우리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방식으로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지닌 병원균들, 특히 이미 인체에 침입한 병원균들을 추적하는 것도 GVF의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덧붙이면, 새로운 집단 발병과 유행병이 전통적인 보건기구와 미디어 조직의 레이더망에 걸리기 전에 먼저 포착해내는 것도 우리의 과제이다.

 이런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 병원과 진료소의 상황을 정기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또한 우리 판단에 '파수꾼' -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거주지나 고유한 행동 습관 때문에 병원균이 널리 확산되기 전에 남보다 먼저 감염되는 사람 - 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한다. 수렵꾼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한 덕분에 우리는 과거에 알려지지 않은 상당수의 병원균을 발견한 성과를 거두었다. 힘들게 수집한 이런 감시 자료들을 활용해서, 우리는 인간파보 바이러스 4 human parvovirus 4 처럼 기존에 알려진 바이러스들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는 증거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동물 병원균이 판데믹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돌입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파수꾼을 연구하는 우리 모델은 무척 성공적이었다는 게 입증되었다. 미국국제개발처의 EPT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협력 조직들, 국방부와 다른 협력 조직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현재 20여 개에서 '파수꾼 모델'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파수꾼 모델을 진행 중인 나라들에서도 동물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동물로부터 새로운 병원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더 폭넓게 감시해야 하고, 더 넓은 지역에서 감시 활동을 펼쳐야 한다. 또한 지금보다 더 많은 나라로 파수꾼 모델을 확대해야 한다. 판데믹의 가능성을 감시하는 작업은 더 큰 관점에서 봤을 때 이제야 첫걸음을 때었을 뿐이다.

 병원균이 동물로부터 인체로 침입하는 지점, 즉 파수꾼을 연구할 뿐 아니라, 병원균이 확산되는 네트워크에서 중추적인 위치에 있는 중요한 개체군을 광범위하게 감시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예컨대 정기적으로 수혈을 받는 사람들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그들 중 일부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백 번의 수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질병이 나타난다면 그들이 가장 먼저 감염되어 그와 관련된 징후를 보여줄 것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어 새로운 병원균에 가장 먼저 감염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들이 많다. 의료 종사자와 항공기 승무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이런 직업군들을 하나씩 꾸준히 우리 감시 시스템 안에 끌어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물들도 무척 중요하다. 9장에서 간략하게 설명했듯이, 나는 GVF의 생태학팀 팀장 매슈 르브르통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서 실험실 여과지를 이용해서 동물들로부터 혈액 표본을 다량으로 신속하게 수집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요즘에는 이 방법 이외에 동물의 급격한 사멸animal die-off 까지 면밀히 감시한다. 카메룬에서 유인원들이 탄저병에 쓰러지며 죽어갔듯이, 지상 어딘가에서 매일 일군一群의 야생동물이 죽어간다. 동물세계에서 소규모로 일어나는 집단 발병은 자연계에 어떤 병원균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동물의 급격한 사멸은 인간에게 곧 닥칠 어떤 집단 발병의 전조일 수 있다. 남아메리카를 휩쓴 황열이 대표적인 예이다. 열대우림에서 원숭이가 죽은 후에 인간 정착민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건이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요즘에는 동물의 급격한 사멸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세계 전역에서, 특히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숲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냥꾼들의 도움으로 동물의 급격한 사멸 현상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어떤 동물이 떼죽음할 때마다 우리가 빠짐없이 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재는 그런 중요한 정보를 거의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GVF의 대다수 현장에서는 새로운 병원균을 찾는 데 열중하는 반면에, 일부 현장에서는 이미 알려진 병원균 하나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예컨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는 GVF의 현장 작업과 실험실 작업을 지휘하는 바이러스 학자이자 현장 유행병학자인 조지프 페어Josepth Fair 가 라사열Lassa Fever로 알려진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첨단 방법을 동원해 힘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라사 바이러스는 설치동물이 인간에게 옮기는 위험하고 흥미로운 바이러스로, 주로 오염된 음식을 통해 전이된다.

 라사 바이러스는 에볼라 바이러스나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못지않게 파괴적인 증상을 야기한다. 조지프 페어가 시에라리온의 라사열 현장에서 개발한 모델은 라사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까지 파악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런 바이러스들을 예측해서 대처하기에 최적인 모델이다. 라사열 이외에 모든 출혈열 바이러스들 -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도 여기에 속한다 - 로 인한 전염병은 서아프리카에서 간헐적으로만 발생한다. 그러나 라사열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간헐적으로만 발생하는 바이러스들까지 철저하게 감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페어는 시에라리온의 곳곳에 설치한 현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이런 바이러스들이 확산되기 전에 그 바이러스들을 포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을 연구하며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전염병의 집단 발병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에라리온의 현장은 흥미진진한 영화처럼 보일 수 있다. 생물학적 오염도가 무척 높은 곳인데다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도외시한 채 세계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에라리온은 그런 의미에서만 중요한 곳이 아니다. 우리가 이곳의 현장에서 라사열을 예측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법을 알아낸다면,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같은 출혈열 바이러스들까지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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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중앙아프리카에서 함께 일하는 야생동물 사냥꾼들에게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법을 찾아ㅐ고자 한다. 중앙아프리카는 HIV가 처음 출현했던 곳이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새로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중앙아프리카에 처음 들어가 연구를 시작하며, 사냥꾼들에게 야생동물의 사냥과 도살에서 비롯된 위험을 언급했을 때 그들이 보인 반응을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 부모와 조부모도 똑같은 식으로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많은 것들만큼 사냥과 도살이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연구했던 모든 곳에서 사냥꾼들은 내게 그런 식으로 반응했다. 그들의 설명은 틀린 데가 없었다. 말라리아, 비위생적인 물, 빈약한 영양공급 등으로 죽음이 일상사인 환경에서, 동물을 통해 침입하는 새로운 병원균은 사소한 위험에 불과한 듯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사소한 위험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비극이다. 생계형 사냥꾼들이 사냥을 포기할 때 감수해야 할 영양 부족과 그 밖의 대가에 비하면, 새로운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위험은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지극히 다양한 병원균들로 뒤범벅인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사냥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병원균의 출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셈이다. 온 세상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는 병원균이 출현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위의 문제는 사냥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사냥에서 비롯되는 위험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진정한 적은 가난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이 만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냥의 위험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가난한 지역 주민들이 영양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데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들이 위험한 사냥을 대신할 대안을 찾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들이 자기 가족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사냥한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는 '건강한 사냥꾼 프로그램'을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 및 식량지원조직들과 연대해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주려고도 노력한다. 

 중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아마존 분지 등과 같이 바이러스가 극성인 지역에서 생존을 위한 사냥을 근절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야생동물의 사냥은 판데믹의 위험을 고조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구의 생물학적 유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재생 불가능한 동물성 단백질원을 주식으로 삼는 가난한 집단의 식량 확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비용을 아깝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판데믹을 저지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려는 부유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목적도 충족시키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합리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야생동물고기 문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멋에 겨워 제기하는 문제가 아니다. 야생동물고기가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 문제를 간과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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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즈로 인해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새로운 병원균들이 인체에 침입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따라서 사냥으로 야생동물들과 자주 접촉하는 오지의 사람들에게까지 에이즈를 억제하는 항레트로 바이러스 제제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면역학 전문가인 데비 벅스Debbie Birx와 이 분야의 몇몇 선구자들과 함께 이런 작업을 해왔다. 벅스는 월터리드 육군연구소WRAIR에서 성과가 좋은 연구팀을 감독하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왔지만, 지금은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글로벌 에이즈 프로그램을 주도하며 항레트로 바이러스 제제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들에게까지 공급하는 기초적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 각자가 이 과정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정책결정자들과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하며, 판데믹 예방을 위한 장기적인 접근 방법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특정한 위협에 단순히 집중하는 방식보다 미래의 판데믹을 통제하려는 포괄적인 접근방식에 더 많은 연구기금을 지원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지금 이 세계가 매우 이상적인 세계라면, 아마도 최근에 판데믹이 있은 직후에 몇몇 선각자들이 제안한 변화를 우리는 받아들여야 했다. 2009년 롱비치에서 열린 TED 회의에서, 엔터테인먼트 법전문가 프레드 골드링Fred Goldring은 우리에게 '안전한 악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손을 맞잡는 대신에 팔꿈치를 맞대는 식으로 악수법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하면 손바닥보다 팔뚝에 대고 재채기를 하는 셈이기 때문에 감염성 질환의 확산을 막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악수 대신에 한국이나 일본처럼 허리를 굽히는 인사법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학자는 한 명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분명 한국식의 인사법이 감염성 질환의 확산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또 독감에 걸리면 수술용 마스크를 쓰는 관습도 병원균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 물론 습관을 바꾸기는 무척 어렵겠지만, 현재의 습관을 유용한 방향으로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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