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초반을 읽다가 상당히 오랜기간 그냥 냅뒀다. 그 이유는 재미가 없기도 하고, 이 뻔한 얘기를 계속 읽어야 하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너무 피상적이기도 하고 알맹이가 없는 얘기를 군더더기처럼 반복하는 탓에 집중을 유지하기 힘들다.

 다행히 6장에서 8장까지는 내용이 괜찮다.

 이 책을 읽는데는 한 3시간쯤이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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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0. 국민 평균 독서량 166위라는 성적표

 학제 공표가 있고 나서 약 14년 뒤인 1886년 3월, 일본은 '제국대학령'을 반포했다. 한 달 뒤에는 '소학교령'도 반포했다. 이로써 일본은 1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혹시 당신은 일본에서 누가 서양식 교육혁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또 완성시켰는지 알고 있는가?

 이토 히로부미다.

 이쯤에서 또 묻고 싶다. 혹시 당신은 누가 21세기 일본 교육혁명을 시작하고 또 완성시키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아베 신조다.

 아베 신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이다. 참고로 요시다 쇼인은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모토, 가쓰라 다로 등을 길러냈다.

 아베 신조가 정치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군사 대국으로 만들어서 '대동아 공영권'을 다시 실현하자는 주장을 펼친, A급 전범이다.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평화헌법'을 개정,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대동아 공영권을 회복하고자 한다. 혹시 당신은 대동아 공영권의 시작이 무엇인지 아는가? 한반도 재식민지화다.

 아베의 대표적 망언은 다음과 같다.

 "아베 내각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는다."

 "침략의 정의는 국가 간 관게에 따라 다르다."

 "도쿄 전범 재판은 일본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연합군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한 것이다."

 "(A급 전법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고귀한 생명을 바친 영령들에게 존숭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아베 신조가 제2의 이토 히로부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

 지금으로부터 약 165년 전, 일본은 서양의 흑선을 만나고 교육 혁명을 일으켜서 1차 산업혁명이 만든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이내 군사 대국으로 변신, 대한제국을 멸망시키고 강제 지배를 시작했다.

 이쿠코 츠보야 뉴우에루 일본 국제 바칼로레아 대사는 일본 문부과학성 교육 재건 자문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고, 국제 바칼로레아를 일본 공교육에 도입하는 전반적 계획을 입안 추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좋은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의 주입식 · 획일식 교육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 일본에서는 국제 바칼로레아를 19세기에 개항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이라고 봅니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흑선을 끌고 도쿄만에 나타나서 개항을 요구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흑선은 일본에서 외부 충격을 기회로 삼아 내부 혁신을 성공시킨 상징으로 인식됩니다. 흑선이 오지 않았다면 일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단시간 내에 개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국제 바칼로레아는 현 일본 교육의 대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흑선입니다.

 이쿠코 츠보야 뉴우에루 일본 국제 바칼로레아 대사는 21세기 일본 교육혁명을 가리켜서 일본이 다시 한번 서양의 '흑선'을 만난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도 그녀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세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다.

 앞으로 인류는 두 계급으로 나뉜다고 한다.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계급과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받는 계급.

 일본은 전자에 속하는 국민을 최대한 많이 배출해서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대동아 공영권을 회복하고자 한다. 아베 신조가 이토 히로부미를 본받아 2013년 교육혁명을 일으킨 이유다.

 일본의 국민 평균 독서량은 1년 기준 약 60권으로 미국, 유럽 다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 국가가 서양의 바칼로레아를 받아들여서 국민 독서의 질을 싱귤래리티대, 하버드 의대, 애드 아스트라 수준으로 올리려고 하고 있다.

 UN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민 평균 독서량이 세계 166위다(2015년 기준). 16위가 아니다. 166위다. 게다가 우리의 독서 문화는 '단순히 눈으로 읽는' 정도다. 아니 이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미래를 맞이하고 싶기에 이렇게 살고 있는가.

 

(개인 감상) 물론 독서량도 중요하지만, 현재 일본의 정책 기조는 역사적으로 부담되는 것은 모두 묻고 가자는 주의다. 후쿠시마도 그렇고,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도 그렇고. 제 아무리 바칼로레아라는 교육 시스템이 훌륭하다고 해도 진실을 숨기는 부도덕함이 정당함을 이길 도리는 없다. 공부를 잘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들여와도 철학과 비전이 글러먹은 낡아빠진 메이지의 망령에 사로잡힌 아베 신조와 그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한 일본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p69

 다시 알파고 이야기로 돌아가자. 도대체 서양은 왜 한국에서 알파고 쇼를 벌었던 걸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답을 얻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에도 인공지능 지식과 기술을 파고 싶어서다. 한국이 국가의 부를 인공지능에 쏟기 시작하면 철도 · 전기 · 자동차 · 선박 · 비행기 · 컴퓨터 · 스마트폰 때 그랬던 것처럼 동남아시아 · 중앙아시아 · 중동 · 아프리카 등도 국가의 부를 인공지능에 쏟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독자들은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 내용을 쓰면서 기분이 좋지 않다. 아니 피눈물을 흐르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설령 욕을 먹더라도 작가가 사실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독자들로 하여금 냉정하게 현실인식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독자들이, 아니 우리나라가 잠에서 깰 수 있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나라가 잠에서 깨어난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거인이 될 것이다. 자동차 · 선박 · 반도체 등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런 심정으로 앞의 내용을 썼다. 나의 이 마음이 부디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

 

(개인감상) 알파고 쇼를 한국에서 벌인 이유는 바로 "이세돌"때문이다. 당시 세계 1위는 중국의 "커제"였으며, 세계 랭킹 2위이자 당시 한국 랭킹 1위는 박정환이었다. 당시 이세돌의 한국 랭킹은 3위였으며, 세계 랭킹은 5위에 불과했다(이세돌이 바둑을 그들보다 못둔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둑도 일종의 스포츠라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성적이 떨어진다. 랭킹은 못했어도 당시 이세돌이 세계바둑팬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기사라고 생각한다).

만일 작가의 논리대로 알파고의 개발사인 딥마인드(모기업은 구글이다)가 보유한 인공지능 기술의 판매라는 시장성을 생각했다면 시장이 작은 한국보다는, 당시 바둑 기사 세계 랭킹 1위인 커제를 파트너로 선정하는게 중국이라는 시장을 감안한 훨씬 합리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돌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가진 바둑 스타일 때문이다. 이세돌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아무리 중요한 기전이라도 자기류를 고집했기 때문이고 그런 자기류로 계속 승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자기류는 다른 기사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신수,묘수가 많이 나온다. 

딥마인드가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완료하고 이제 인간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이세돌을 선택한 이유는 기존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그의 천재성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때문이다. 그리고 이세돌의 그러한 천재성이 4국에서 신의 한수라 불리는 78수를 통해 발휘된다(여담이지만 78수도 나중에 프로기사들의 집중적 검토를 통해서 안된다는 것이 밝혀진다. 하지만 대국 당시에는 알파고도 그 대처법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당시 전세계 어떤 인간 프로기사들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실 자체로 이세돌의 천재성이 다시 한 번 더 증명된 셈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세돌이 한국의 기사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하면 되고, 알파고의 상대로 이세돌이 선정된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 된다. 전혀 기분이 상할 필요가 없다.

 

p228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할수록 윤리 · 도덕적 판단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인공지능 기술 발달에 따른 윤리 ·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공지능 산업을 크게 일으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구글이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차를 보자. 사실 자율주행차 기술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안정성 등에 있어서도 인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윤리 · 도덕적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첨언) 윤리/도덕적 문제도 물론 심각하지만 자율주행은 자동차만 인공지능이 된다고 되는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지원할 도로 인프라를 모두 새로 깔아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의 유도 시스템, 고층 빌딩 사이에 있는 도로들에서 GPS신호가 방해받는 것을 보정해 줘야 할 중계기 등. 이런 인프라 건설에는 돈만 드는게 아니다. 기존 도로 시스템 전체를 갈아엎고 건물에 중계기를 설치하는데는 기존에 거기 살고 있는 주민들과 건물주의 이해 관계가 걸려있다(그래서 북한같은 1인 독재체제인 북한의 평양같은 도시가 자율주행이 가장 먼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도시로 꼽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윤리/도덕적 문제는 보험사가 내어줄 (사망)보험금을 어느 정도로 책정하면 되는가라는 경제적 관점의 대중적 합의로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궜던 논문, "인공지능 자율주행차가 누군지를 살해하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에 나오는 문제를 보자. 이 논문은 영국의 윤리 · 도덕 철학자 필리파 풋이 제안한 '트롤리 딜레마 Trolley dilemma'를 자율주행차에 적용했는데, 다음 세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1. 직진하면 열 명을 치고, 급히 방향을 틀면 한 명을 친다.

2. 직진하면 한 명을 치고, 급히 방향을 틀면 운전자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3. 직진하면 여러 명을 치고, 급히 방향을 틀면 운전자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첨언) 물론 딜레마지만, 지금 이탈리아에서 60세 이상의 노인들은 코로나19의 치료에서 암묵적으로 제외되어 있다. 인간은 위기가 닥치면 결국 생명의 경중을 어떤 기준을 가진(보통 역사적으로 합의되어온) 관례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자율주행의 시대에 우리는 어쩌면 차에 탑승할 때, 우리의 성별, 나이등이 차량 관제시스템에 입력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탄 사람의 생명의 중요도가 나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상황 앞에서 인공지능은 각각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여기에 대해 많은 석학들이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세 가지 상황이 마주한 윤리 · 도덕적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 자율 주행차는 이 문제의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도로를 주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제조사들이 여기에 대해 완벽한 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수준의 답들을 훌쩍 뛰어넘는 어떤 훌륭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인공지능 자율주행차가 전 세계의 도로를 뒤덮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의 윤리 · 도덕적 문제를 철저히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철학(윤리 · 도덕적)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한편으로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마주할 윤리 · 도덕적 문제를 미리 헤아려 짐작하고, 이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기업과 인재가 인공지능 산업의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글 · 마이크로소프트 · 애플 등 세계적인 인공지능 윤리연구소등을 세우고 인공지능의 윤리 · 도덕적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의 미래형 학교들이 윤리 · 도덕 철학을 교육 과정의 핵심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산업의 1인자를 키워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일론 머스크의 애드 아스트라는 아예 교육 과정 전체를 인공지능 중심의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윤리 · 도덕적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한 판단 능력을 기르는 내용으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문학은 윤리 · 도덕적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한 판단 능력을 기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탠퍼드대 D스쿨의 공동창립자 버나드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가, 스탠퍼드대 D스쿨에서 진행하고 있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문학 수업을 보자. 버나드 로스의 《성취습관 The Achievement Habit》에 따르면, 그는 수강생들에게 미국 대공황기에 평범한 미국 가정들이 빈민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 발췌한 '트랙터 경작'을 읽게 한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이 감옥에서 나와 집에 돌아와보니 가족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다들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주地主인 은행이 대리인들을 보내서 앞으로는 기계로 농사를 지으면 되기 때문에 소작농이 필요 없으니 떠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은 트랙터 한 대를 보내서 농사를 짓게 하는데, 이 트랙터가 소작농 100명이 하는 일을 해낸다. 한마디로 마을 사람들은 새롭게 발명된 기계 한 대 때문에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씁쓸하게도 트랙터의 운전수는 같은 마을 사람이다. 이에 분노한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트랙터 운전수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지자, 그는 이렇게 변명한다.

 "하루에 3달러를 주거든요. 나도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식구들이랑 먹고 살아야지요."

 마을 사람이 기막혀 하면서 "자네가 하루 3달러를 버는 통에 스무 집 식구들이 굶고 있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서 길거리를 헤매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하니까, 트랙터 운전수는 냉정하게 대꾸한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시대가 바뀌었다고요. 이제 트랙터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시대라고요."

 그러고는 트랙터를 몰고 가서 "당신 집을 무너뜨리고 농지로 만들겠다. 그러면 일당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협박한다. 마을 사람이 "그러면 난 널 총으로 쏘겠어!"라고 하자 트랙터 운전수는 "그래봤자 소용없다"며 "당신만 살인죄로 교수형을 받을 것이고 은행은 다른 트랙터 운전수를 보내어 당신 집을 무너뜨릴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연대하라!"고 외친 것이다) 

아무튼 마을은 이렇게 트랙터 한 대로 초토화되고, 사람들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자 타지로 간다. 주인공도 가족과 함께 일자리가 넘친다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하지만 막상 캘리포니아에 도착해보니 또 다른 생존 지옥이 펼쳐진다.

 버나드 로스 교수는 D스쿨 학생들에게 '트랙터 경작'을 읽게 한 뒤 이렇게 질문한다.

 "만일 당신이 소설 속의 트랙터 운전수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러니까 트랙터를 운전하는 것 말고는 가족을 부양할 더 나은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꺼이 트랙터를 운전하겠습니까? 아니면 트랙터를 운전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갈팡질팡하고만 있을 수도 있겠지요. 어떻습니까? 당신은 이 세 경우 중 어디에 해당될 것 같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윤리 · 도덕적 문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트랙터 운전수는 자신이 하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트랙터를 모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를 선택합니다. 자신이 트랙터를 몰지 않더라도 토지의 소유자인 은행은 다른 누군가를 보내서 트랙터를 운전시킬 거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식의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인간의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를 윤리 · 도덕적으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미국 명문 대학의 토론식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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