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데이타와 선입견에 사로잡힌 우리의 잘못된 상식을 교정할 수 있는 책.

최신의 통계를 바탕으로 이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내용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스웨덴 태생의 의사 겸 통계학자로서 20년 이상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양인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가지는 선입견에 의한 왜곡과 그로 인해 발생한 오해와 무지가 얼마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과거에 유럽이 산업발전을 거치면서 이미 지구에 끼쳐왔던 환경파괴와 같은 해악들을 이유로 중국, 인도와 같은 개발국들에게 하는 무리한 요구의 뻔뻔스러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선입견과 뻔뻔함을 밝히는 수단으로서 데이터의 수집과 정합성 있는 통계적 해석에 힘써왔다.

 2017년 2월에 사망한 저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으로 평생의 역작이라 할만하다. 아마도 더 사셨으면 좋은 책을 더 많이 썼을텐데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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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간극본능(Gap Instinct)

 

2장. 부정본능(Negativity Instinct)

 

p95. 부정본능

 그런 식의 생각은 대개 부정 본능 때문이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p102. 나쁘지만 나아진다

 부정적 뉴스를 볼 때 더 긍정적 뉴스로 균형을 맞추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기만하고, 안심시키며, 반대 방향으로 호도하는 편향일 뿐이다. 마치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갔을 때 소금을 잔뜩 넣어 균형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좀 더 강렬한 맛을 내겠지만 건강에는 좋지 못하다.

 내게 효과 있는 해법은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유지하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황이 점점 좋아진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 마, 안심해'라거나 '신경 안 써도 돼'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상황이 점점 좋아진다고 말할 때는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를 외면하자는 뜻이 아니라, 상황이 나쁠 수도 있고 동시에 좋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세상을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미숙아라고 가정해보자. 아기의 건강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 호흡, 심장박동 같은 중요한 신호를 꾸준히 관찰하며 아기를 보살핀다. 일주일이 지나자 상태가 훨씬 좋아진다. 모든 지표에서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태라 계속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가 좋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경우, 만사 오케이니 마음 푹 놓고 걱정하지 말라는 뜻일까? 전혀 아니다. 상황이 나쁜 것과 나아지는 것 중 선택을 해야만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둘 다 옳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이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세계의 현 상황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3. 직선 본능(Straight line instinct)

4. 공포 본능(Fear Instinct)

p163

 2011년 3월 11일, 일본 해안 근처 태평양의 약 29km 해저에서 '지진 단층 파열 현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일본 본토가 약 2.5m 동쪽으로 이동했고, 이때 발생한 쓰나미가 1시간 뒤 일본 해안을 덮쳐 약 1만 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쓰나미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놓은 장벽을 넘었다. 후쿠시마는 온통 물로 넘쳤고, 전 세계 뉴스는 신체 손상과 방사능 오염의 공포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후쿠시마를 탈출했지만 이후 1,600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방사능을 피해 도망쳤지만, 방사능 때문에 사망했다고 보고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1,600명은 탈출 과정 또는 탈출 후에 사망했다. 이들은 대개 노인이었고, 피난 그 자체나 대피소의 삶에서 오는 정신적 · 신체적 스트레스가 사망 원인이었다. 한마디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이 아니라 방사능 공포였다.(1986년 체르노빌에서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사람들은 사망률이 크게 증가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예상을 확신할 근거는 없었다).

 

5. 크기 본능(Size Instinct)

 

p177.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

 

 1980년대 초, 젊은 의사로 모잠비크에서 일하던 나는 매우 힘든 셈을 해야 했다. 죽은 아이를 세는 일인데, 특히 나칼라Nacala에 있는 우리 병원에 입원했다가 죽은 아이들을 우리 활동 지역 내 가정에서 죽은 아이들 수와 비교해야 했다.

 당시 모잠비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내가 나칼라 지방에서 활동한 첫해에 30만 명이 사는 그곳에 의사는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두 번째 의사가 합류했다. 스웨덴 같으면 의사 100명이 맡았을 환자를 우리 둘이 돌봤고,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 자신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의사 50명 몫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해마다 상태가 심각한 아이들 약 1,000명을 이 지방의 작은 병원 한 곳에 입원시켰다. 하루에 약 3명꼴이다. 나는 이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려 애썼던 일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모두 설사, 폐렴, 말라리아 같은 심각한 질병에 시달렸는데, 빈혈과 영양실조도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20명 중 1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매주 1명씩 죽는 셈인데, 자원과 인력이 더 많았다면 거의 다 치료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치료는 가장 기초적 수준인 물과 소금을 이용한 방법과 근육주사였다. 정맥주사는 놓지 않았다. 정맥주사를 놓을 간호사도 없고, 의사가 주사를 놓고 감독하기에는 시가이 너무 많이 걸렸다. 산소통도 거의 없고, 수혈 능력도 제한적이었다. 극도로 빈곤한 나라의 의료 수준은 원래 그랬다.

 한번은 주말레 친구가 우리 집에 묵으러 왔다. 300km 넘게 떨어진 더 큰 도시에 있는,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은 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는 스웨덴 친구였다. 토요일인 그날 오후 나는 응급실 호출을 받았고, 그 친구도 동행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한 엄마가 겁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설사를 심하게 했는데, 힘이 너무 없어 젖을 빨지도 못했다. 나는 아기를 입원시켰고 아기에게 튜브를 끼운 뒤 경구 수액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소아과 친구가 내 팔을 붙잡고 나를 복도로 끌고 나갔다. 그는 수준 이하의 내 처치법에 크게 화를 내며, 집에 가서 저녁 먹을 생각에 치료를 건성으로 한다고 나무랐다. 그러면서 정맥주사를 놓으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해 부족에 화가 났다. "여기서는 이게 우리 표준 치료법이야. 아이한테 정맥주사를 놓으면 30분은 걸릴 텐데, 그러면 간호가 일을 엉망으로 만들 확률이 높다고. 그리고 맞아. 나도 더러는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나도, 우리 가족도 여기서 한 달 이상은 못 버틸 테니까."

 친구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했다. 그는 혼자 병원에 남아 아기 정맥에 바늘을 꽂느라 여러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그가 집에 돌아오자 토론이 이어졌다. 친구가 주장했다.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한테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해."

 내가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 내 시간과 자원을 이곳에 찾아온 사람을 살리는 데 모두 소진하는 건 비윤리적이야. 내가 병원 밖 서비스를 개선하면 더 많은 아이를 살릴 수 있으니까. 이 지방 '모든' 아이의 죽음이 다 내 책임이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는 아이들도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과 똑같이."

 대부분의 의사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어쩌면 대부분의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친구는 동의하지 않았다. "네 의무는 네가 돌보는 환자한테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거야. 다른 곳에 있는 아이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은 냉정한 이론상의 추측일 뿐이라고." 나는 몹시 피곤해 언쟁을 그만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수를 세기 시작했다.

 나는 분만 병동을 관리하는 아내 앙네타 Agneta 와 함께 셈을 했다. 그해 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총 946명이고, 대부분이 다섯 살 미만이며, 그중 52명(5%)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 수를 나칼라 지방 전체에서 사망한 아이들의 수와 비교해야 했다.

 모잠비크의 아동 사망율은 당시 26%였다. 나칼라 지방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어 우리는 그 수치를 이용했다. 아동 사망율은 한 해에 사망한 아이 수를 그해 태어난 아이 수로 나누어 구한다.

 따라서 그해 나칼라 지방의 신생아 수를 알면 아동 사망률 26%를 이용해 사망한 아이가 몇 명인지 추정할 수 있었다. 당시 최신 인구조사에 따르면, 나칼라시의 신생아 수는 연간 약 3,000명이었다. 나칼라 지방의 인구는 시 인구의 5배이므로 신생아 수도 약 5배인 1만 5,000명으로 추산했다. 따라서 나는 해마다 26%인 3,900명의 죽음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었고, 그중 52명이 병원에서 죽었다. 내가 맡은 아이들 중 고작 1.3%의 죽음을 직접 지켜보는 셈이다.

 이는 내 육감을 뒷받침하는 수치였다. 설사, 폐렴, 말라리아를 초기에 치료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공동체 기반의 기초 의료를 조직, 지원, 감독한다면 죽음에 임박해 병원을 찾아온 아이에게 정맥주사를 놓을 때보다 더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구 다수가 기본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죽어가는 아이의 98.7%가 병원에 와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병원에 더 많은 자원을 쏟는 건 정말로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 의료 인력을 훈련해 최대한 많은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고,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을) 엄마가 걸어서도 쉽게 갈 수 있는 소규모 의료 시설에서 가급적 초기에 처리하도록 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외면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는 익명의 아이들 수백 명에게 주목한다면 언뜻 비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빈층 국가에서의 냉정한 계산법이다.

 콩고와 탄자니아에서 선교하며 간호사로 일하다 내 멘토가 된 잉에게르드 로트Ingegerd Rooth의 말이 생각난다. 로트는 내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좋은 곳에 쓸 자원을 훔치는 꼴이니까요."

 수치보다 눈에 보이는 피해자 개개인에게 지나치게 주목하면 우리 자원을 문제의 일부에만 모두 쏟아부을 수 있고, 따라서 훨씬 적은 목숨을 구할 뿐이다. 이런 원칙은 부족한 자원을 어디에 쓸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목숨을 구하는 문제나 삶을 연장 또는 개선하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자원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원이 무한하지 않은 한(자원은 절대 무한하지 않다) 머리를 써서 지금 있는 것으로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게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다.

 5장은 죽은 아이들과 관련한 데이터로 가득하다. 아이들 목숨을 살리는 것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은 아이의 수를 세고, 아이의 죽음과 비용 효과를 한 문장에서 동시에 언급하는 것이 매정하고 잔인해 보인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최대한 많은 아이의 목숨을 살릴, 비용 효과가 가장 뛰어난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덜 매정한 행위다.

 내가 앞에서 통계 이면에 있는 개별 이야기를 보라고 다그쳤듯, 이번에는 개별 이야기 이면에 있는 통계를 보라고 다그쳐야 겠다. 수치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며,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다.

 

p184

 1, 2단계(1일 소득수준으로 나눈 단계, 1단계 1달러 이하, 2단계 4달러, 3단계 16달러, 4단계 32달러 이상) 나라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은 의사나 병실 침대가 아니다. 병실 침대와 의사의 수를 세기 쉽고 정치인은 병원 개원식을 부척 좋아하지만, 아이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병원 밖에서 해당 지역 간호사, 산파 교육받은 부모 등이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특히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보면 세계적으로 아동 생존율 증가의 절반은 엄마들의 탈문맹에서 나왔다. 지금은 아동 생존율이 더 높아졌다. 처음부터 아에 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훈련받은 산파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돕고, 간호사는 아기에게 면역력을 심어준다. 아기는 잘 먹고, 부모는 아기를 늘 따뜻하고 청결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아기 주변 사람들은 손을 씻고, 엄마는 약통에 붙은 지시사항을 읽을 줄 알게 되었다. 따라서 1,2단계에서 보건 의료 발전에 돈을 투자한다면 초등학교, 간호 교육, 예방접종에 투자해야 한다. 휘황찬란한 대형 병원은 조금 미뤄도 상관없다.

 

p187. 큰 전쟁

 베트남전쟁은 내 세대로 치면 시리아 내전 정도에 해당한다.

 1972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박마이BachMai 병원에 폭탄 7개가 떨어져 환자와 의료진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나는 스웨덴 웁살라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스웨덴에는 의료 장비와 노란 담요 등이 풍족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이런 것들을 수집해 상자에 담아 박마이 병원으로 보내주었다.

 15년 뒤, 나는 스웨덴 원조 프로젝트를 평가하기 위해 베트남에 갔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베트남 동료 의사인 니엠Niem과 밥을 먹으며 그의 과거를 물었다. 그는 폭탄이 떨어질 때 박마이 병원에 있었고, 그 후 세계 각지에서 온 보급품 상자를 뜯는 일을 했다고 한다. 나는 혹시 노란 담요를 기억하느냐고 물었고, 그가 노란 담요의 무늬를 말하자 소름이 돋았다. 순간 우리 둘이 마치 평생의 친구였던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 주말에 나는 니엠한테 베트남전쟁비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가 물었다. "'대미항전' 말하는 거죠?" 나는 그가 '베트남전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니엠은 나를 태우고 도시 중앙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거기에 황동 판이 붙은 1m 정도 높이의 돌이 있었다. 나는 농담이겠지 싶었다. 서양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활동가 세대를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할 정도였다. 내가 담요와 의료 기구를 보낸 것도 거기에 자극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전쟁에서 150만 명 넘는 베트남인과 5만 8,000명 넘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가 그런 대재앙을 기억하는 방식이 고작 이런 식이라니! 내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니엠은 나를 차에 태우고 더 큰 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3.5m가 넘는 대리석 비로,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니엠은 내게 비다운 비를 볼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를 태우고 조금 더 가더니 창밖을 가리켰다. 나무 꼭대기 너머로 금색으로 덮인 거대한 돌탑이 보였다. 100m 가까이 되어 보였다. "여기가 전쟁 영웅을 추모하는 곳이에요. 멋지죠?" 베트남이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을 기리는 비였다.

 중국과의 전쟁은 싸움과 휴전을 반복하며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프랑스가 점령한 기간은 200년이었다. 대미항전은 고작 20년 지속되었다. 비의 크기는 그런 기간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나는 여러 개의 비를 비교한 뒤에야 비로소 지금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작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p190. 결핵과 신종플루

 뉴스가 비율을 왜곡하는 경우는 곰과 도끼만이 아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발생해 전 세계 인구의 2.7%가 목숨을 잃었다. 백신이 나오지 않은 독감이 발생할 가능성은 지금도 여전히 위협적이어서 모두가 이를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2009년에는 처음 몇 달 동안 신종플루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2주일에 걸쳐 그 소식이 뉴스를 도배했다. 그러나 2014년의 에볼라와 달리 신종플루 사망자는 2배로 증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직선으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신종플루는 처음 경고가 나왔을 때만큼 공격적이진 않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언론은 여러 주 동안 공포심을 계속 자극했다.

 마침내 나는 이런 언론의 히스테리에 신물이 나서 뉴스 보도와 실제 사망자 비율을 계산해보았다. 2주일 동안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은 31명, 구글에서 검색한 관련 기사는 25만 3,442건이었다. 사망자 1명당 기사가 8,176건인 셈이다. 같은 2주일 동안 결핵 사망자는 대략 6만 3,066명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1, 2단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치료 가능한 이 병이 1,2단계 나라에서는 여전히 주요한 사망 원인이다. 하지만 결핵은 전염성이 있고 결핵 균주는 약제에 내성이 생길 수 있어, 4단계 사람도 많이 죽을 수 있다. 그런 결핵을 다룬 뉴스는 사망자 1인당 0.1건이었다. 신종플루 사망자가 결핵으로 똑같이 비극적 죽음을 맞은 사람보다 8만 2,000배나 많은 주목을 받은 셈이다.

 

6장. 일반화 본능(Generalization Instinct)

 

p211

 임신하면 대략 2년 정도는 생리를 하지 않는다. 생리대 제조업자에게는 우울한 뉴스다. 따라서 이들은 세계적으로 여성 1인당 출생아 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해야 한다. 집 밖에서 일하는, 교육받은 여성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발전은 현재 2,3단계에 살면서 생리를 하는 여성 수십억 인구 사이에서 지난 여러 해 동안 생리대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세계적 생리대 제조업체에서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나는 서양 제조업체 대부분이 이런 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들은 4단계에서 생리를 하는 여성 3억 명에만 매몰된 채 거기서 새로운 욕구와 새로운 고객을 찾으려 했다. "비키니를 입을 때 사용하는 더 얇은 패드를 내놓으면 어떨가? 라이크라 스판을 입을 때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패드는? 복장마다, 상황마다, 스포츠마다 각각의 경우에 맞는 패드를 만들면 어떨까? 등산용 특수 패드도 좋지!" 모두 패드가 워낙 작아서 하루에도 몇번씩 갈아야 한다면 제조업체에는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부유한 소비자 시장이 대부분 그렇듯 기본 욕구는 진작 충족되었고, 생산자는 가뜩이나 작은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드느라 헛된 싸움을 할 뿐이다.

 반면 2,3단계에서는 생리를 하는 약 20억의 여성이 생리대를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이들은 라이크라 스판을 입지 않으며, 울트라 슬림 패드에 돈을 쓰지도 않는다. 이들은 밖에서 일할 때 하루 종일 갈지 않고 쓸 수 있는, 믿을 만하고 값싼 패드를 원한다. 그런 제품을 찾을 수 있다면 아마도 평생 한 가지 상표만 고집하면서 딸에게도 같은 상품을 추천할 것이다.

 이런 논리는 다른 많은 소비재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업계 지도자를 상대로 수백 회 강연을 하면서 이러한 점을 누차 강조했다. 세계 인구 다수에서 삶의 단계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3단계에 사는 사람은 현재 20억에서 2040년에는 40억까지 늘것이다.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소비자가 되고 있다. 세계 인구 대다수가 물건을 전혀 살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가난하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기회를 놓친 채 유럽 대도시에 사는 부유한 힙스터에게 특수 '요가' 생리대를 파는 데 마케팅 비용을 쓸 것이다. 사업 계획을 전략적으로 세우는 사람이라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미래의 고객을 찾아야 한다.

 

p215

 한번은 한 여학생이 2단계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큰 대가를 치를 뻔한 적이 있다. 인도 케랄라주에 있는 8층짜리 멋진 현대식 사립 병원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복도에서 아직 오지 않은 학생을 기다렸다. 15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우리끼리 움직이기로 하고 복도를 따라 내려가 대형 승강기를 탔다. 병원 침대가 여러 개 들어갈 정도로 매우 큰 승강기였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집중치료실 실장이 6층 버튼을 눌렀다. 문히 닫히는 순간, 금발의 젊은 스웨덴 학생이 병원 복도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뛰어, 뛰어!" 그 모습을 본 학생의 친구가 소리치며 발을 내밀어 승강기 문을 멈추려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승강기 문은 여학생의 발을 조이며 계속 닫혔다. 학생은 고통과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승강기는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학생은 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이러다가는 다리가 부러지겠다 싶을 때, 우리를 안내하던 실장이 뒤쪽에서 튀어나와 빨간색 비상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내게 화난 말투로 도와달라고 했다. 우리는 문을 강제로 열어 피가 흐르는 학생의 다리를 빼냈다.

 나중에 그 실장이 내게 말했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 봐요.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학생이 의과대학에 있을 수 있죠?" 나는 스웨덴 승강기에는 자동 감지 장치가 있어 문 사이에 무언가가 끼면 닫히던 문이 저절로 다시 열린다고 설명했다. 인도 의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그런 고도의 기술이 매 순간 작동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죠?" "그냥 늘 작동해요. 엄격한 안전 규칙이 있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니까 잘 작동하겠죠." 좀 어리석은 대답 같았다. 실장은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흠, 그렇다면 스웨덴이 워낙 안전해서 해외로 나가면 위험하겠군요."

 나는 그 여학생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어리석게도 4단계 나라에서 승강기를 타던 자신의 경험을 다른 모든 나라 승강기에 일반화했을 뿐이다.

 

7. 운명 본능(Destiny Instinct)

 

p248

 여성 1인당 출생아 수가 역사상 가장 빠르게 감소한 현상은 자유로운 서양 언론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이란은 1990년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콘돔 공장이 들어섰고, 신부와 신랑 모두에게 혼전 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다. 국민의 교육 수준도 높고, 발전한 공공 의료 시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부부는 피임으로 자녀 수를 적게 유지하고, 임신이 어려우면 불임 치료 전문 병원을 찾는다. 적어도 내가 1990년에 테헤란의 한 병원에 가봤을 때는 그랬다. 그때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이란의 가족계획 기적을 설계한 열정적인 호세인 말레크아프잘리 Hossein Malek-Afzali 교수였다.

 오늘날 이란 여성은 미국이나 스웨덴 여성보다 아이를 더 적게 낳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서양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서양인의 언론의 자유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권이 들어선 나라의 발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걸까? 적어도 자유로운 언론이라고 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문화적 변화를 보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거의 모든 종교가 전통적으로 성생활에 관한 규범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특정 종교를 믿는 여성은 아이를 더 많이 출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쉽게 이해는 간다. 그러나 종교와 여성 1인당 출생아 수의 관계는 곧잘 과장된다. 사실은 소득과 여성 1인당 출생아 수가 훨씬 관계가 깊다.

 

p250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 다음의 물방울 도표는 종교에 따라 세계를 기독교, 이슬람교, 그 밖의 종교로 나눈 것이다. 그런 다음 각 종교에 따라 여성 1인당 출생아 수와 소득을 표시했다. 이번에도 물방울 크기는 인구를 나타낸다. 기독교 인구가 모든 소득수준에 얼마나 고루 퍼져 있는지 보라. 또 1단계 기독교 인구가 아이를 얼마나 많이 낳는지 보라. 그리고 나머지 도표2개를 보라. 유형이 매우 비슷하다. 한마디로 종교에 관계없이 1단계 극빈층 여성이 아이를 많이 낳는다.

 

소득수준 및 종교에 따른 출생아 수

(설명)이 그림은 책의 도표가 종교별로 3개의 그래프로 나뉜 것을 gapminder에 들어가서 한개의 그래프로 통합한 그래프로 대체했다. 물방울이 파란색이 기독교, 녹색이 무슬림, 빨간색이 기타(인도, 중국, 일본등이 포함된 eastern religion, 불교, 유교, 도교등의 동양적 종교 모두를 의미) 종교이다. 

위 그래프는 하기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gapminder.org/tools/#$state$marker$axis_x$domainMin:null&domainMax:null&zoomedMin:null&zoomedMax:null&scaleType=genericLog&spaceRef:null;&axis_y$which=children_per_woman_total_fertility&domainMin:null&domainMax:null&zoomedMin:null&zoomedMax:null&spaceRef:null;&color$data=data_fasttrack&which=main_religion_2008&spaceRef=entities;;;&chart-type=bubbles

 

Gapminder Tools

Animated global statistics that everyone can understand

www.gapminder.org

 

오늘날 이슬람 사회 여성은 아이를 평균 3.1명 낳고, 기독교 사회는 2.7명 낳는다. 세계의 주요 종교별 출생률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p252

 오늘날 스웨덴 사람은 거의 다 여성의 낙태 권리를 지지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는 것이 이제 우리 문화가 됐다. 내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1960년대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입을 딱 벌린다. 그때까지도 낙태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 말고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비밀자금을 모아 임신한 여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 무사히 낙태 수술을 받도록 했다. 내가 그 여학생들이 찾아간 곳은 다른 아닌 폴란드라고 말하면 학생들의 입은 더 크게 벌어진다. 폴란드라니? 폴란드는 기독교 국가 아닌가. 그리고 5년이 지나 폴란드는 낙태를 금지하고, 스웨덴은 낙태를 합법화했다. 그러자 젊은 여성들이 정반대로 이도했다. 요컨대 지금 상황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화는 변한다.

 나는 아시아를 여행할 때면 늘 구스타브 할아버지 같은 완고한 노인의 가치와 마주한다. 한 예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많은 여성이 자녀 돌보는 일을 전적으로 책임질 뿐 아니라 시부모도 부양한다. 이런 상황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자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이것을 '아시아의 가치'라고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는 많은 여성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런 문화를 참을 수 없어 하고, 그런 가치 때문에 결혼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말한다.

 

남편 상상하기.

 홍콩에서 열린 금융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저녁 만찬 때 젊고 똑똑한 전문 금융인 옆자리에 않게 되었다. 37세의 꽤 성공한 여성으로, 식사를 하면서 아시아의 현재 이슈와 추세에 관해 내게 많은 것을 얘기해주었다. 얼마 후 우리는 사적인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족을 꾸릴 계획이신가요?" 내가 물었다. 무례하게 행동할 뜻은 없었다. 우리 스웨덴 사람은 (요즘) 그런 주제를 즐겨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여성도 내 솔직한 질문을 문제 삼지 않았다. 여성은 웃음 띤 채 내 어깨 너머로 바닷가의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날마다 생각해요."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남편을 상상하면 참을 수가 없어요."

 

나는 그런 여성들을 위로하면서 앞으로 달라질 거라는 확신을 주려고 애쓴다. 최근에는 방글라데시 아시아 여성대학 Asian University for Women에서 젊은 여성 400명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문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항상 탈바꿈하는지, 극빈층 탈출과 여성 교육 그리고 피임이 어떻게 잠자리 대화는 늘리고 자녀 수는 줄였는지 이야기했다. 매우 가슴 벅찬 강의였다. 색색의 히잡을 쓴 젊은 여성들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강의가 끝나자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은 내게 자기 나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그런 변화가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미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도 문제고 빈곤도 문제지만, 우리 같은 많은 젊은이가 현대적 삶을 계획하고 있어요.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이고, 이슬람 여성이에요. 그리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우리 말에 귀 기울이고 함께 계획을 세우는 남자 말이에요. 아이는 둘만 낳아서 모두 학교에 보내고 싶고요."

 오늘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마초적 가치는 아시아의 가치도, 아프리카의 가치도 아니며 이슬람의 가치도 아니고, 동양의 가치도 아니다. 스웨덴에서 6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 가치이며, 스웨덴에서 그랬듯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라질 가치다. 불변의 가치가 결코 아니다.

 

 p255

 사회와 문화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소하고 더뎌 보이는 변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축적된다. 연간 1% 성장은 더뎌 보이지만 70년간 축적되면 2배 성장이 되고, 연간 2% 성장은 35년 뒤 2배 성장이 되며, 연간 3% 성장은 24년 뒤 2배 성장이 된다.

 기원전 3세기에 스리랑카의 데바남피야 티샤 Devanampiya Tissa 왕은 세계 최초로 자연보호구역을 공식적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후 웨스트요크셔의 유럽인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고, 그로부터 다시 50년이 지난 후에 미국에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생겼다. 그리고 1900년에는 지표면의 0.03%가 보호구역이 되었고, 1930년에는 그 수요가 0.2%로 늘었다. 천천히, 천천히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면서 한 번에 숲 한 곳씩 보호구역이 늘었다. 연간 증가율은 너무 작아서 거의 감지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지표면의 무려 15%가 보호구역이고, 그 수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를 불변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연간 변화가 1%에 그쳐도, 너무 적고 느리다는 이유로 무시해서는 절대 안된다.

 

p258. 내게는 어떤 비전도 없다

 앞에서 잘 차려입은 무지한 남성 이야기로 7장을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비전이 부족했던 남성이다. 이제 비슷한 이야기로 7장을 마무리하려 한다. 

 2013년 5월 12일, 나는 '2063년의 아프리카 르네상스와 어젠다'라는 제목의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학술회의 때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모인 여성 지도자 500명 앞에서 강연하는 특권을 누렸다. 대단한 영광이었고, 굉장한 설렘이었으며, 내 인생 최고의 강연이었다. 아디스아바바 Addis Ababa에 있는 아프리카연합 본부의 플리너리 홀Plenary Hall에서 나는 30분 동안 소규모 여성 농업인에 관해 수십 년간 진행한 연구를 요약해 말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20년 안에 극빈층이 사라질 수 있는지를 이 막강한 의사 결정자들에게 설명했다.

 아프리카연합의 사무국장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Nkosazana Dlamini-Zuma가 강단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 말을 꽤나 경청하는 듯싶었다. 강연이 끝나자 그는 내게 다가와 감사를 표시했다. 나는 강연이 어땠냐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가히 충격이었다.

 "글쎄요, 도표도 훌륭하고 말씀도 잘하시는데, 아무런 비전이 없네요." 자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게 나한테는 더욱 충격이었다.

 "네? 비전이 부족해요? 아프리카 극빈층이 앞으로 20년 안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거라고 말했는데요?" 나는 기분이 상해 되물었다.

 은코사자나는 어떤 감정이나 동작도 섞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극빈층이 사라질 거라고 말했어요. 그게 시작이었고, 거기서 끝났죠. 아프리카 사람들이 극빈층이 사라지는 걸로 만족하면서 적당히 가난하게 사는 정도로 행복해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러곤 내 팔을 힘주어 잡고 나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지도 않고, 웃음기도 없었다. 내 단점을 깨닫게 해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은코사자나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교수님 손주들이 우리가 건설할 새로운 고속열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여행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어떤 비전인가요? 유럽의 낡은 비전과 뭐가 다르죠? '우리' 손주들도 '교수님' 대륙에 가서 '교수님 나라의' 고속열차를 타고 여행하며, 스웨덴 북쪽에 있다는 이국적인 얼음 호텔에 갈겁니다. 물론 오래 걸리겠죠, 아시다시피. 현명한 결단도, 대규모 투자로 많이 필요할 거고요. 하지만 내 50년 비전으로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에서, 원치 않는 난민이 아니라 관광객으로 환영받을 겁니다." 은코사자나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그래도 도표는 정말 멋졌어요. 자, 가서 커피나 한잔합시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내 실수를 가만히 되새겨보았다. 33년 전 내 첫 아프리카 친구인 모잠비크의 광산 기술자 니헤레와 마셀리나 Niherewa Maselina 와 나눈 대화가 기억났다. 그도 은코사자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때 나는 모잠비크 나칼라에서 의사로 일했는데, 하루는 니헤레와 함께 해변으로 가족 나들이를 갔었다. 모잠비크 해안은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고, 아직 개발되지 않아 주말에 가면 거의 우리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1.5km 모래 해변에 15~20가족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오늘은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그때 니헤레와가 은코사자나처럼 내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 "한스, 난 정반대 느낌이 들어. 나는 이 해변을 보면 정말 괴롭고 서글퍼. 저기 멀리 있는 도시를 봐. 저곳에 80만 명이 살아. 아이가 4만 명이라는 얘기지. 오늘은 주말이야. 그런데 겨우 40명이 이곳에 왔잖아. 1,000분의 1이야. 내가 동독에서 채굴 교육을 받을 때 주말이면 로스토크Rostock 해변에 가곤 했는데, 사람들로 가득 찼었어. 아이들 수천 명이 재미있게 놀더라고. 나칼라도 로스토크 같으면 좋겠어. 일요일에는 아이들이 들판에서 부모를 도와 일하거나, 슬럼에 앉아 있지 말고 모두 해변으로 나왔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그게 내 소원이야." 그러고는 내 팔을 놓고 자동차에서 우리 아이들의 수영 장비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지금, 아프리카의 학자 및 단체와 일생일대의 공동 연구를 마친 뒤 아프리카 연합에서 강연을 하면서, 내가 그들의 위대한 비전을 공유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알아본 몇 안 되는 유럽인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강연을 한 후, 내가 여전히 낡고 정적인 식민지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프리카 친구와 동료들이 여러 해 동안 가르쳐줬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우리'를 언젠가는 따라잡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모든 사람, 모든 가족, 모든 아이가 그 목표를 성취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해변 나들이를 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여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8장. 단일 관점 본능(Single Perspective Instinct)

 

p285. 민주주의도 단일한 해결책이 못된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나는 자유민주주의가 국가를 운영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를 비롯해 그렇게 믿는 사람은 민주주의에서 평화, 사회 발전, 보건 의료 발전, 경제성장 같은 좋은 것이 나오고, 심지어 그런 것이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인정하기 어려운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증거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경제와 사회가 크게 발전한 나라라고 해서 다 민주국가는 아니다. (산유국도 아닌)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빨리 1단게에서 3단계로 넘어갔고, 그 시기는 줄곧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2012~2016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열 곳 중 아홉 곳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았따.

 경제성장과 보건 의료 발전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와 모순되는 현실에 부딛히기 쉽다. 따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민주주의가 우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민주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지지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다른 모든 발전을 가늠하는 단 하나의 척도는 없다. 1인당 GDP도, (쿠바에서처럼) 아동 사망률도, (미국에서처럼) 개인의 자유도, 심지어 민주주의도 단일한 척도가 될 수 없다. 한 국가의 발전을 측정하는 단일한 척도는 없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계는 수치 없이 이해할 수도,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국가는 정부 없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지만,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공공 부문도, 민간 부문도 늘 정답일 수는 없다. 좋은 사회에서 나온 척도라도 단일 척도가 모든 사회 발전을 이끌 수는 없다. 이것 또는 저것을 아주 택할 게 아니라, 사안에 따라 이것과 저것을 두루 택해야 한다.

 

9장. 비난 본능(Blame Instinct)

 

p295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할 때가 많다.

 비난 본능은 일이 잘 풀릴 때도 발동되어 칭찬 역시 비난만큼이나 쉽게 나온다.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아주 쉽게 그 공을 개인이나 단순한 원인으로 돌리는데, 이때도 대개는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된다.

 

p298. 언론인

 지식인과 정치인 사이에서는 언론을 손가락질하며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게 유행이다. 어쩌면 나도 이 책 앞부분에서 그랬을지 모른다.

 우리는 언론인을 손가락질하기보다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언론은 세상을 왜 그렇게 왜곡해 보여주는 걸까? 의도적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뉴스는 논의하지 않겠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저널리즘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나는 가짜 뉴스가 우리 세계관을 왜곡하는 주범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를 단지 오해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항상 오해하고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는 2013년 갭마인더 무지 프로젝트 Gapminder's Ignorance Project의 결과를 인터넷에 올렸다. 두 방송사는 우리가 제시한 문제를 자사 사이트에 올려 사람들이 직접 풀어보게 했는데, 살마들의 정답률이 눈 감고 찍은 것보다도 못한 이유를 분석한 수천 개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그중 우리 주의를 사로잡은 글 하나는 이랬다. "언론 종사자 중 이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우리는 이 생각이 퍽 흥미로워 정말 그런지 알아보려 했지만, 여론조사 회사들은 언론인을 집단적으로 접촉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언론사 경영주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이해는 간다. 자신의 권위를 의심받는 게 달가울 사람은 없다. 진지한 뉴스 방송사가 침팬지보다 지식수준이 나을 게 없는 언론인을 고용했다고 알려지면 몹시 당혹스럽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걸 해보고 싶은 충동이 샘솟는다. 그해 일정에 언론 학술회의가 두 번 잡혀 있었는데, 그때 설문 조사 장비를 챙겨 갔다. 20분이라는 강연 시간은 준비한 질문을 다 던지기에 턱없이 짧았지만, 몇 가지는 물을 수 있었다. 여기에 그 결과를 소개한다. BBC, PBS,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즈니 등 주요 다큐멘타리 제작자들이 참석한 학술회의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그 결과 역시 함께 소개한다.

  

 이들 언론인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지식수준이 일반인보다 나을 게 없고, 침팬지보다 못한 것 같았다.

 만약 언론인과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전반적으로 이런 수준이라면(다른 기자들은 이들보다 지식수준이 높다거나, 이들에게 다른 문제를 냈더라면 더 나은 결과가 나왔으리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 이들에겐 죄가 없다. 언론인과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세계를 극적으로 가르거나 '자연의 역습 또는 '인구 위기'라는 식으로 극적인 보도를 하면서 안타까운 피아노 음악을 배경 삼아 심각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그들이 거짓말을 하며 우리를 의도적으로 호도하는 것은 아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대부분의 언론인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사실은 세계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을 악마화하지 마라.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계를 크게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언론은 자유롭고 전문적이며 진실을 추구하겠지만, 언론의 독립성과 그들이 보도하는 사건의 대표성은 다르다. 모든 보도가 그 자체로는 전적으로 진실이라도 기자가 세상에 알리기로 선택한 진실 이야기를 여럿 모으면 오해할 만한 그림이 나올 수 있다. 언론은 중립적이지도 않고, 중립적일 수 없으며, 그걸 기대해서도 안 된다.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는 심각한 재앙이다. 항공기 추락 사고에 견줄 만한 지식수준이다. 하지만 언론인을 비난하는 것은 졸았던 기장을 탓하는 것만큼이나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언론인이 세계를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유(답  그들도 극적 본능을 지닌 인간이라서)와 언론 시스템의 어떤 요소가 그들로 하여금 왜곡되고 과도하게 극적인 뉴스를 내보내게 하는지(부분적인 답  소비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경쟁을 해야 하고, 직장을 잃지 말아야 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이해한다면 언론을 향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이런저런 식으로 변하라고 요구하는 게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실 반영은 언론에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언론이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보여주길 기대하지 말고, 차라리 베를린의 휴일을 찍은 사진 여러 장을 GPS 삼아 그 도시를 둘러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게 좋다.

 

p302. 난민

 2015년 난민 4,000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에서 익사했다. 휴양지 해변에 떠밀려온 죽은 아이들 모습은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는가. 유럽 등지에서 4단계의 안락한 삶을 즐기던 우리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누굴 비난해야 하나?

 우리는 곧 비난 대상을 찾아냈다. 절박한 가족을 속여 1인당 1,000유로를 받고 사람들을 죽음의 고무보트에 태운 잔인하고 탐욕스루언 밀입국 알선자들이 죽일 놈이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을 멈추고, 거친 물살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유럽 구조선의 모습을 보며 안도한다.

 그런데 난민은 편안한 비행기나 여객선을 타지 않고 왜 육지로 리비아나 터키로 가서 다시 저런 부실한 고무보트에 목숨을 맡기는 걸까? 유럽연합 회원국은 모두 제네바 협약에 서명한 터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리아 난민에게 망명 자격을 부여할 의무가 있다. 나는 언론인과 지인에게 그리고 난민 신청 접수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에 대해 물었지만, 가장 현명하고 자상한 사람조차 매우 이상한 해명을 내놓았다.

 비행기표를 살 돈이 없어서? 다들 알다시피 난민은 소형 고무보트의 한 자리를 얻으려고 1,000유로를 지불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터키에서 스웨덴, 리비아에서 런던으로 가는 항공권은 50유로 미만으로 나온 게 많았다.

 그렇다면 공항까지 갈 수 없어서? 그렇지 않다. 그중 다수가 이미 터키나 레바논까지 왔으니 그곳 공항을 가기는 쉬웠다. 항공권을 살 형평도 되고,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탑승 수속 카운터에서 항공사 직원에게 제지당해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왜 그럴까? 유럽연합 회원국이 불법 이민에 대처하는 규정을 정해놓은 2001년 유럽 이사회 지침 European Council Directive 때문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적절한 서류를 갖추지 않은 사람을 유럽으로 들여보내는 모든 항공사와 선박 회사는 그 사람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물론 제네바 협약에 따라 망명 자격을 갖추고 유럽으로 들어오려는 난민에게는 그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오직 불법 이민자에게만 적용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큰 의미가 없다. 탑승 수속 카운터에서 항공사 직원이 45초 만에 제네바 협약에서 인정하는 난민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는가? 대사관에서 최소 8개월이 걸리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지침은 언뜻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에서는 비자 없는 사람은 절대 탑승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이 비자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터키와 리비아에 있는 유럽 대사관은 비자 신청을 처리할 자료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리아 난민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유럽으로 들어갈 권리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 결국 바다를 건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위험한 배를 타야 할까? 사실 이 역시 유럽연합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유럽연합에 도착하는 난민의 배는 무조건 압수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배는 한 번밖에 쓸 수 없다. 결국 밀입국 알선자들은 1943년 유대인 난민 7,220명을 며칠 사이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이동시킨 데 동원한 어선처럼 안전한 배에 난민을 태우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못 된다.

 유럽의 여러 정부는 전쟁에 짓밟힌 나라의 난민에게 망명 자격을 신청 및 획득할 자격을 주도록 한 제네바 협약을 존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민 정책은 그런 주장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밀입국 알선자가 활동하는 운송 시장을 만들어낸다.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어서 생각이 아주 없지 않는 한 이를 모를리 없다.

 우리는 비난할 사람을 찾는 본능이 있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자상한 사람도 난민 익사 사고는 우리의 이민 정책에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을 유발하는 끔찍한 결론을 내놓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p305. 외국인

 5장에서 인도와 중국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비난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반박한 인도 관리를 기억하는가? 나는 1인당 수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그 이야기를 꺼냈지만, 비난 대상을 찾다 보면 전체 시스템에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인도와 중국을 비롯해 소득수준이 올라간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으며, 그 나라 사람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빈곤한 삶을 살 수밖에는 없다는 주장이 서양에서는 놀랍게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밴쿠버에 있는 테크대학 Tech University 에서 세계 추세에 관한 강연을 하던 중 한 학생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당돌하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살 수 없어요. 그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도록 놔두면 안 돼요. 그렇게 배출하다가는 지구가 죽고 말 거에요." 서양인이 마치 자기 손에 리모컨이 있어 버튼만 누르면 다른 수십 억 인구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정말 기겁할 일이다. 가만히 둘러보니 그 여학생 주변의 학생들은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오늘날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 대부분은 현재 4단계 삶을 사는 나라들이 지난 50년간 배출한 것이다. 캐나다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중국보다 여전히 2배 많고, 인도보다는 8배 많다. 전 세계 연간 화석연료 사용량 중 가장 부유한 10억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절반이 넘는다. 그리고 두 번째로 부유한 10억 인구가 그 나머지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또 절반, 또 절반으로 이어지면 가장 가난한 10억 인구는 겨우 1%를 차지할 뿐이다.

https://www.gapminder.org/tools/#$state$marker$axis_x$domainMin:null&domainMax:null&zoomedMin:null&zoomedMax:null&spaceRef:null;&axis_y$which=co2_emissions_tonnes_per_person&domainMin:null&domainMax:null&zoomedMin:null&zoomedMax:null&scaleType=genericLog&spaceRef:null;;;&chart-type=bubbles

 

Gapminder Tools

Animated global statistics that everyone can understand

www.gapminder.org

 

위 그래프는 책에 나온것과는 좀 틀린데 이야기하는 바는 동일하다. 연두색의 아메리카 대륙과 노란색의 유럽대륙이 소득수준이 높으며,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CO2 배출량이 많다. 즉 선진국일수록 CO2배출로 인한 환경파괴의 책임이 크다.

 

가장 가난한 10억 인구가 1단계에서 2단계로 올라가기까지는 최소 20년이 걸릴 테고, 그동안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 증가한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3단계, 4단계로 올라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인이 자신의 책임을 아주 쉽게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현상은 비난 본능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우리는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우리처럼 살 수 없다"가 맞다.

 

외국질병

신체의 가장 큰 기관은 피부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기 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피부병은 매독이었다. 가려운 부스럼으로 시작해 뼈가 드러날 정도로 피부가 썩어 들어가다가 결국 골격이 훤히 드러난다. 이처럼 혐오스러운 모습과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유발하는 질병은 장소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질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질병, 독일에서는 프랑스 질병,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질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은 비난의 화살을 돌려 프랑스 질병이라고 불렀다.

희생양을 찾으려는 본능은 인간 본성의 핵심이어서, 그 피부병을 스웨덴 사람이 스웨덴 질병이라 부른다거나, 러시아 사람이 러시아 질병이라 부르리라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우리에겐 비난할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외국인 한 명이 그 병을 옮겼다면, 그 외국인이 속한 나라를 주저없이 통째로 비난하곤 한다. 자세한 조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p311. 사회 기반.

 사회 발전과 경제 발전이 제자리걸음인 국가는 지도자가 대단히 파괴적이고 무력 충돌이 잦은 몇몇 나라뿐이다. 그 밖의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아무리 무능해도 사회와 경제가 발전한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아마도 '아니다'일 것이다. 사회를 꾸려나가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인 다수의 사람들이다.

 나는 아침에 세수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마술처럼 따뜻한 물이 나오면,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한 배관공을 소리 없이 칭송할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감사해야 할 수많은 사람이 떠올라 종종 가슴이 벅차오른다. 공무원, 간호사, 교사, 변호사, 경찰, 소방관, 전기 기사, 회계사, 안내 데스크에 있는 사람 등등. 모두 사회 기반을 구성하는, 그물처럼 얽힌 서비스를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며, 일이 잘될 대 우리가 찬양해야 할 사람들이다.

 2014년 에볼라 퇴치를 돕기 위해 라이베리아에 갔었다. 서둘러 손쓰지 않으면 전 세계에 빠르게 퍼져 10억 인구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제까지 알려진 그 어떤 유행병보다 심각한 해를 끼칠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은 영웅적 지도자도, 국경 없는 의사회나 유니세프 같은 영웅적 조직도 아니었다. 공무원과 지역보건 의료 종사자들이 나서서 묵묵히 공중 보건 캠페인을 벌여 오랫동안 내려오던 장례 관습을 단 며칠 만에 바꿔놓고 죽어가는 환자를 목숨 걸고 치료하고,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격리하는 성가시고 위험하고 복잡한 작업을 해냈다. 인내심을 갖고 사회를 움직이는 용감한 사람들, 좀처럼 언급되지 않지만 이 세계의 진정한 구세주들이다.

 

p314. 누구를 비난해야 할까?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질병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 현실과 관련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사장도, 이사도, 우주도 아니다. 그들을 손가락질해봐야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언론이 내게 거짓말을 한다거나(대개는 사실이 아니다), 삐딱한 세계관을 심어준다며(맞는 이야기지만, 대개 고의성은 없다) 매체를 비난할 생각은 버려라. 전문가가 자기들만의 관심과 해당 분야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다거나 상황을 악화시킨다며(그럴 때도 있지만, 대개는 나쁜 의도는 아니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도 버려야 한다. 한마디로, 개인이나 집단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난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쁜 사람을 찾아내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항상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이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10장. 다급함 본능(Urgency Instinct)

 

p336

 멀리뛰기 선수더러 자신이 뛴 거리를 직접 측정하라고 해서는 안 되듯이, 문제 해결 기관더러 어떤 데이터를 발표할지 직접 결정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늘 더 많은 돈을 원하기 마련이라 그들이 개선 정도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잘못된 수치를 내놓을 수 있다.

 내게 에볼라 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준 것은 데이터였다. 의심 사례가 3주마다 2배로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데이터다. 내게 에볼라와 싸우기 위한 조치들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도 데이터였다. 확정 사례가 줄고 있음을 알려준 데이터. 데이터는 절대적인 열쇠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어서 데이터의 신뢰성과 그 데이터 생산자의 신뢰성을 보호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p338.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세계적 위험 다섯 가지

 우리가 대처해야 할 절박한 세계적 위험이 있다는 걸 나도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를 핑크빛으로 보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다. 문제에서 눈을 뗀다고 해서 마음이 안정되지는 않는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다섯 가지는 전 세계를 휩쓰는 유행병, 금융 위기, 제3차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이 문제들이 왜 가장 걱정되는 것일까?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의 세 가지는 예전에 일어났고, 나머지 두 가지는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다섯 가지 모두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인간의 발전을 여러 해 또는 수십 년간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막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거대한 살인마여서 가능하다면 모든 힘을 모아 한 단계씩 차근차근 행동하는 식으로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 (이 목록에 오를 여섯 번째 후보가 있다. 바로 미지의 위험이다. 우리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 발생해 심각한 고통과 황폐화를 초래할 가능성이다. 생각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가 손쓸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걱정한다는 게 사실은 무의미하지만, 새로운 위험에도 늘 호기심과 경각심을 유지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 유행병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전 세계에 퍼진 스페인 독감은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4년 동안의 전쟁으로 몸이 쇠약해졌다고는 해도, 독감이 전쟁보다 더 많은 피해자를 내다니! 그 결과 세계 기대 수명이 10년이나 줄어들어 33세에서 23세가 되었다. 이는 2장(83쪽) 도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염병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새로운 지독한 독감이 여전히 전 세계인의 건강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 이유는 독감의 전염 경로 탓이다. 독감은 아주 미세한 물방울에 섞여 공기중에 날아다닌다. 감염자 한 사람이 지하철을 탔을 때 그 안에 있는 사람과 전혀 접촉하지 않고도, 심지어 같은 곳을 만지지 않고도 모두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 독감처럼 매우 빠른 전파력을 갖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질병은 에볼라나 HIV/에이즈 같은 질병보다 인류에 더 큰 위협이 된다. 전염성이 대단히 강하고 그 어떤 방어막도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바이러스로부터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우리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쉽게 말해 그만한 가치가 있다.

 세계는 독감에 대처할 준비가 과거보다는 잘되어 있지만, 1단계 사람들은 무섭게 퍼지는 질병에 재빨리 대처하기 어려운 사회에 여전히 살고 있다. 누구나 어디서든 기초적인 의료를 받도록 해서 질병이 발병하면 빠르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를 건강하고 강한 조직으로 유지해 전 세계의 대응을 조율하도록 해야 한다.

 

금융 위기

 지구촌 시대에 금융 거품의 영향은 치명적이다. 나라 전체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대량 실업 사태를 일으켜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과격한 해결책을 찾게 만든다. 대형 은행이 무너지면 2008년 미국의 주택 담보대출 사태가 촉발한 세계적 참사보다 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해 세계경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

 경제 시스템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워낙 복잡해,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도 지난 금융 위기와 이후의 회복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다. 따라서 붕괴를 예측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경제가 무너지지 않겠거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이 더 단순하다면, 시스템을 이해하고 금융 붕괴를 피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으련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제3차 세계대전

 나는 평생 국적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맺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재미도 재미지만 폭력적 보복을 원하는 인간의 끔찍한 본능에 맞서, 그리고 모든 악 중에 가장 사악한 악인 전쟁에 맞서 세계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올림픽, 국제무역, 교육 교류 프로그램, 자유로운 인터넷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안전망을 강화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계 평화 없이는 우리의 지속 가능성 목표 중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 과거 폭력 전력이 있는 나라가 현재의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잃었을 때 자만심과 향수에 빠져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상황을 막는 데는 엄청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구시대적 서양이 새로운 세계에 평화롭게 통합될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기후변화

 기후변화의 거대한 위협을 알아본다고 해서 최악의 시나리오만 살펴볼 필요는 없다. 공기처럼 지구가 공유하는 자원을 관리하려면 세계가 존중하는 권위가 있어야 하고, 국제적 기준을 준수하는 평화로운 세계라야 한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전 세계는 이미 오존 파괴 물질과 휘발유에 첨가하는 납을 관리해 지난 20년 동안 그 둘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췄다. 여기에는 제기능을 다하는 강력한 국제 공동체(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엔)가 필요하다. 그리고 소득수준이 다른 사람들의 여러 요구와 필요를 인정하는 국제적 연대 의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 공동체가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1단계 10억 인구의 전기 사용을 막는다면 그런 연대를 바랄 수 없다. 지금까지는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이니 다른 나라를 압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부터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극도의 빈곤

 이제까지 언급한 위험은 미래에 어느 정도는 알 수 없지만 고통을 초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극도의 빈곤은 가능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이며, 지금 당장 날마다 일어나는 고통이다. 에볼라가 발생한 지역도 그런 곳이어서, 초기 단계의 의료 서비스도 받기 힘들다. 내전이 일어나는 곳도 마찬가지다. 먹을거리와 일자리가 절실하고 잃을 것도 없는 젊은이들은 잔인한 게릴라 조직에 적극 가담하곤 한다. 악순환이다. 가난이 내전을 불러오고, 내전은 다시 가난으로 이어진다.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그 지역의 다른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들이 모두 중단된 상태다. 테러리스트들은 몇 군데 남 극도로 빈곤한 지역에 숨어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코뿔소가 내전이 일어난 지역의 한가운데에 갇혔다면, 코뿔소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오늘날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서 세계는 좀 더 번영할 수 있었다. 극빈층은 그 어느 때보다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8억 인구가 극빈층이다. 기후변화와 달리 이 문제에서는 예측이나 시나리오가 필요치 않다. 지금 당장 8억 인구가 빈곤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해결책도 알고 있다. 평화, 학교 교육, 보편적 기초 의료 서비스, 전기, 깨끗한 물, 화장실, 피임, 시장의 힘을 가동할 소액 대출 등이 필요하다. 가난을 끝내는 데 혁신 따위는 필요 없다. 다른 모든 곳에서 효과를 본 방법을 쓰면 그만이다. 그리고 빨리 행동할수록 해결할 문제는 더 작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극빈층에 머무는 한 대가족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식구 수는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약 10억 인구에게 삶다운 삶에 필요한 기본 요건을 빨리 충족해주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우선순위로 볼 때 시급한 과제가 분명하다.

 도움을 주기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정부의 힘이 약한 나라에서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무장 범죄 조직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하려면 안전된 군대가 필요하다. 무장한 경찰관은 죄 없는 시민을 폭력에서 보호해야 하고, 정부 당국은 교사들이 평화롭게 다음 세대를 교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가능성 옹호론자다. 다음 세대는 매우 긴 계주 경기의 마지막 주자와 같다. 극도의 빈곤을 끝내는 경기는 1800년에 출발 총성이 울린 긴 마라톤이다. 다음 세대에게는 이 일을 마무리할 둘도 없는 기회가 주어졌다. 바통을 건네받고 결승선을 통과한 뒤 두 팔을 치켜들 기회다.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완수한 뒤에는 성대한 파티를 열어도 좋다.

 무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내게는 위안을 준다. 이제까지 말한 다섯 가지 위험은 우리가 힘을 집중해야 할 분야다. 냉철한 머리와 확실하고 객관적 데이터로 접근해야 하며, 국제적 협력과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 극적 조치가 아니라 아기 걸음마 같은 조치와 꾸준한 평가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명분이든 모든 활동가는 이 위험을 존중해야 한다. 너무나 막중한 위험이라 양치기 소년의 실수가 끼어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걱정할 대상을 제대로 알자는 뜻이다. 뉴스를 외면하라거나 행동을 촉구하는 활동가의 말을 무시하라는 뜻도 아니다. 소음을 무시하고 중요한 세계적 위험에 주목하자는 뜻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냉철함을 잃지 말고, 그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지지하자는 뜻이다. 다릅한 본능과 모든 극적 본능을 억제하라. 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으로 바라보고 상상 속에서 문제를 만들어 스트레스받기보다 진짜 문제와 해결책에 좀 더 집중하다. 

 

11장. 사실충실성 실천하기(Factfulness in Practice)

 

p360

 영업 또는 마케팅과 관련해 유럽이나 미국에서 대기업을 운영하는 사람과 그 직원은 미래에 시장이 성장할 곳은 그들 나라가 아니라,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채용과 관련해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직원을 고용할 때 유럽 기업이나 미국 기업이 우위를 누렸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하며 '미국다움'을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그들이 채용한 아이사와 아프리카 직원들은 진정한 국제기업의 일원이길 바라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구글의 최고 경영자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경영자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모두 인도에서 태어나고 인도에서 교육받았다.

 나는 유럽 기업에서 강연할 때면 유럽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고("로고에서 알프스를 빼세요"),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생산과 관련해서는 세계화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십 년 전, 서양 기업은 제조업을 2단계 국가, 이른바 신흥 시장에 아웃소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품질의 상품을 절반의 인건비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꾸준한 과정이다. 여러 해 전,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가 2단계로 진입할 때 유럽의 직물업계가 그곳으로 이전했는데, 두 나라가 한 단께 더 부유해지면서 3단계로 진입하자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아프리카로 이전한다면,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는 사업을 다각화하지 않을 경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투자 결정과 관련해서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그리고 언론 탓에 오늘날까지도 이어진)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을 버리고, 오늘날 최고의 투자 기회는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업계는 조만간 철자 실수보다는 사실 오해를 바로 잡는 데 신경을 쓰고, 직원과 고객이 세계관을 반드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길 바라지 않을까 싶다.

 

p362

 궁극적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언론인의 역할도, 활동가나 정치인의 목표도 아니다. 이들은 항상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극적인 서사로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경쟁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항상 흔한 것보다는 색다른 것에, 느린 변화보다는 새롭고 일시적인 것에 집중한다.

 양질의 뉴스 매체조차 통계 기관처럼 세계를 중립적으로, 그리고 극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그렇게 보도해야 맞겠지만, 그러면 너무 지루할 것이다. 언론에 그 수준까지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소비자인 우리가 뉴스를 좀 더 사실에 근거해 소비하고, 뉴스가 세계를 이해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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