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작.

2020년 2월 현재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COVID-19)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를 보던 중이다.

미국 플로리다에 의료장비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남성이 중국 출장을 다녀온 후 기침,고열 증상이 나타나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검사 비용으로 3,270달러가 청구되고, 이중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금액 1,400달러를 개인비용으로 지출했다는 뉴스였다.

그래서 갑자기 미국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식코(Sicko)가 생각났고, 뒤이어 이 영화 존큐가 생각났다.

개봉 당시에는 이 영화가 재밋긴 했지만, 그리 감동적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상당히 감동적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이 비정한 상황을 정말로 비장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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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생각을 한 부분.

 

존 아치볼트의 아들(10살쯤?) 마이크 아치볼트가 야구 경기 도중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기절한다. 병원에 가보니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 영화에서 나오는 호프 메모리얼 병원의 심장외과 과장 터너 박사는 건강한 심장을 이식 받지 않으면 길어야 몇 달, 짧으면 몇 일내로 아들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행정을 책임지는 원무과장 레베카 페인은 존에게 심장이식을 받기 위해서는 대기자 명단에 마이크를 올려야 하고, 심장이 생길 때까지(결국은 누군가 심장을 줄 사람이 생겨야 하는데 보통 사고사로 죽는 사람이 생전에 기부자로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자로 올리더라도 언제 심장 이식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며, 마이크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가서 하고 싶은것을 하게 해주고 남은 생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존의 아내 데니즈는 충격에 오열을 하고, 존은 터너 박사에게 "당신의 자식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묻자, 터너 박사는 "물론, 심장을 이식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존은 터너 박사와 레베카 페인에게 그렇다면 내 아들을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심장 이식을 해달라고 얘기한다.

그러자, 레베카 페인은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하면서, 존의 직장 보험이 아들 마이크의 심장 이식에 대한 비용을 커버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며, 보험이 안되는 상황에서는 병원의 규정상 심장이식 수술비 25만 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고, 일단 대기자 명단에 올리려 해도 수술비의 30%인 7만 5천달러를 미리 병원에 지불해야만 한다고 얘기해준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존은 원래의 직장에서 마이크의 심장이식에 필요한 경비를 보장받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상황이 악화되면서(아마도) 존이 정규직에서 파트타임업무로 보직이 변경되고, 회사의 규정으로 파트타임 업무를 보는 직원에게는 최대 2만 달러까지만 병원비를 부담하는 보험으로 변경이 된 상태이다.

아마 영화의 극적인 긴장을 높이기 위해 그러한 배경을 설정하겠지만, 미국의 보험 제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존의 아내 데니즈도 마트에서 비정규직 캐셔로 근무하는 상태기 때문에 보험혜택이 없는 상태이다. 또한, 존은 파트타임으로 바뀌면서 수입이 줄어들어, 집과 자신의 차와 아내 데니즈의 차를 살 때 은행에서 빌린 융자금의 월 상환금을 은행에 지불하는데 문제가 생긴 상태이다. 이 때문에 월 상환금의 일부를 지불하지 못해서 영화 초반에 아내인 데니즈의 차가  압류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존과 아내는 마이크를 살리기 위해 관청과 보험사, 그리고 관련 정부 기관을 수없이 찾아다니며 아들의 병원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만다.

결국은 최후의 방법으로 다니던 교회에 사정을 알려서 이웃으로부터 모금을 받고, 가지고 있는 차와 가재도구를 팔기 시작한다. 그래도 선금인 7만 5천달러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아들 마이크는 서서히 심장의 박동이 약해지면서 쇠약해진다. 

그렇게 돈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던 어느날 아침, 집에 있던 존에게 병원에서 아들을 간호하던 데니즈로부터 전화가 온다.

"마이크는 죽을거에요", 당황한 존은 아내에게 "무슨 일이야? 여보"라고 묻자, 데니즈는 오열하며, "마이크를 병원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어요.", "존, 당신은 무언가 해야 해요, 제발 무어라도 당장 해봐요." 라며 울부짖는다.

 

아들을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은 고뇌하고, 결국은 총과 커다란 쇠사슬로 된 자물쇠를 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서 터너 박사를 만난 존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자료를 통해 터너 박사가 1년에 300건의 심장 이식 수술을 한다는 사실을 안 존은 터너 박사에게 단 1건의 수술만 그냥 해주면 안되냐고 눈물로 호소하고,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평생 일을 해서 갚겠다며 오열한다. 터너 박사가 끝내 거절하자, 존은 터너 박사를 총으로 위협하고 응급실로 들어가서 응급실에 있는 경비, 직원, 의료진과 찾아온 환자(총 8명쯤?)를 인질로 잡고 응급실을 폐쇄한다.

 

이 영화가 묻고 있는 부분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만든 제도와 시스템이 도리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때 과연 개인이 제도에 맞서는 것이 부당한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영화의 결말은 그러한 물음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답을 주긴 한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불가항력의 상황에 처한 개인을 구제할 방법이 자력구제밖에 없다면 그 사회는 어딘가 잘못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제도는 허점과 불완전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이 약점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이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소홀히 한 부분에서 발생하거나, 다수의 이해가 상출할 때 그것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한 상황에 처한 개인들에 의해 드러나게 되면서 개선되는데, 그 개선과정에서 그 상황에 처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댓가를 치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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