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 역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직장인이 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젊은이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은 "아 회사에 늦게 간다고 전화해야 하는데" 였다고 한다. 그는 불과 죽기 수 십초전에도 그가 내려야 하는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 출입구와 스크린도어의 불과 한뼘 정도 되는 공간에 갖힌 채 죽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걱정보다는 회사에 늦는게 더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출입구에 몸이나 옷, 가방이 끼어서 나는 사고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한다. 나도 회사에 다니던 때에는 1년에 서너번씩은 출퇴근길에 실제로 그런 사고상황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일은 겪어 본 적은 없다.

 실제로 이번 사고도 그 정황을 살펴보면 1,2가지의 에러와 이 회사원이 스크린 도어가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그 회사가 있는 김포공항역에 내리려 고집하지 말고 지하철 문이 열렸을 때 지하철로 다시 들어가서(어차피 회사 좀 늦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다음 역까지 가는 여유만 가졌어도 충분히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고였다. 그렇다고 이를 회사에 늦으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스크린도어가 열리겠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이 젊은이가 미련했던 탓이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지하철을 모는 기관사의 입장에서 보면 승객의 신고가 들어온 시점에서 지하철 출입구를 30여초간 열어놨으며, 이미 스크린 도어가 닫혀있는 상황에서 승강장을 모니터링하는 CCTV는 정상으로 보이니, 당연히 승객이 지하철안으로 다시 들어갔겠지라는 마음으로 문을 닫고 지하철을 운행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점이다.(운행 매뉴얼상 실제 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을 실제로 기관사 혹은 역무원이 가서 확인을 해야 하는 지침이 있느냐 하는 것은 확인중이라 한다.)


 기관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승객이 타고 있는 러시아워시의 지하철 운행이라는 측면과 CCTV를 통해서는 이상이 없다는 부분을 확인하고 출발한 부분에서도 내 개인적으론 충분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지하철이 계속 확장되고 서울지하철 공사(요즘은 이것도 복잡해서 어디는 도시고속철도 공사라는데서 관리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는 지하철공사의 재정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어서(지하철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 비용에 대한 이자를 내느라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실상 믿을 순 없는 이야기다), 이러한 재정상태의 개선을 위하여 그간 20년간 이상의 구조조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 결과, 주로 인원감축 및 외주화, 비정규직 증가(우리나라의 대부분이 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를 통한 인건비 절감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돈은 절감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출퇴근 러시아워시 승강장에 보이던 역무원들은 다들 사라지고, 그 자리를 스크린도어라는 것으로 대부분 대체한 상태이다. 그나마 있는 역무원들도 대부분은 승객의 안전을 위한 승강장의 순찰 같은 업무가 아닌, 부정승차에 대한 감시를 위해 개찰구에서 누가 태그 안하고 그냥 출입하는 사람들은 없나를 보기 위해 가뜩이나 피곤한 눈에 핏대를 세워 사람들을 두리번 거릴 따름이다.

 즉, 이번 사고는 현대의 기업화된 모든 조직에서 최상의 명제가 된 "효율적인 운용" - 여기서 효율이란 결국 최소비용에 의한 최대의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경제적인 효율을 의미한다. - 이라는 시스템의 철학(?)하에서 인간의 목숨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화일 뿐이다.

 1년에 1,2명 죽는 사람의 목숨보다는 기업의 이익 수십억이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비정한 현대사회의 현실이다. 그러한 한 가정의 가장이 사망한다면 그가 운좋게도(?) 그에 대한 대안으로 보험회사의 생명보험에라도 가입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의 남은 목숨값 10~20여억원이 그 가족에게 전달되는 것이 자본주의가 개인의 사망에 보내는 최대의 조의가 되버린 것이다.

이것은 한,두사람의 최고 권력자 혹은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시스템을 인정하고 그러한 철학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한 바로 우리 모두가 그에 대한 책임자이다. 나도 이러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 하나의 개인으로서, 지하철에서 뜻하지 않게 운명을 달리하게 된 그 젊은이에게 심심한 조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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