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는 급격하게 심신이 성장하는 기간이다. 대부분은 성장통을 겪게 된다. 신체적으로 몸이 커지고, 동시에 성장, 성 등에 대한 호르몬이 휘몰아치면서 심신이 왕성해지면서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고민도 많아지고,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도 하고, 살이 트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음식 섭취를 골고루 하고, 적절한 휴식, 적절한 운동, 적절한 교우와 대화, 독서, 음악/영화 감상 등과 같은 다양한 개인/사회/문화적 활동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심신의 균형을 잡아나가며 사회적으로 균형 잡힌 성인으로서 성장해나가게 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제 성인의 문턱에 다다랐는데, 여기저기 불안정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화두가 연대와 공존을 통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조국 장관의 생각을 담고 있다.

 조국 장관의 가족의 현실을 감안할 때 참 가슴이 아프고, 그런 와중에 이런 책을 쓰셨다는 점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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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나는 박 의장이 던진 질문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이 된 것일까?"에 대하여 긍정의 답을 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사회권'을 강화하는 사회 경제적 제도 개혁이 긴급함을 말하고자 한다.

 사회권은 우리나라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헌법학에서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 근로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주거권, 보건권 또는 건강권 등을 사회권으로 분류한다. 국제적으로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에 규정되어 있는 권리다. 풀어 말하면 노동, 주거, 복지, 생계, 의료 등의 분야에서 사회/경제적 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회권은 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국가의 '시혜'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박태웅 의장과 다른 측면에서 선진국 대한민국이 부족한 면을 지적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p21

 선진국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급/계층/집단의 희생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고,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칭호는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미리 당겨 받은 칭호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가불 선진국'이다. 나는 교수로 재직하던 2017년 <사회권의 현황과 과제>라는 책을 엮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OECD와 G20 가입 국가로서 복지국가를 실현할 물적 토대를 이미 다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OECD 가입 국가 중 한국의 복지 수준이 가입 국가의 최저 수준인바, 한국은 '복지 저개발 국가', '사회권 저개발 국가'라 불러 마땅하다.

 선진국이 되었다고 시쳇말로 "국뽕이 차오른다!"라고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그대로 두면 선진국 한국의 지속 가능성은 약해진다.

 

p22

 20세기 초중반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부국에 속했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렸는데, 화려한 바로크식 건물이 즐비했으며 1913년에 지하철이 운행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유럽 여러 나라 노동자들이 이민 가고 싶어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비델라 군부 정권이 반대파 탄압을 위해 벌인 '더러운 전쟁'과 최저임금 폐지, 해고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 1989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발생한 경제 위기 등으로 아르헨티나는 선진국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식민지,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후 선진국이 되었음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충분한가? 아니다 '외연적 발전'을 넘어 '내포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 '국뽕'을 넘어 선진국 대한민국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제도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심각해지는 자산 및 소득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지속적 발전과 국민 통합은 어렵다. 확보된 '자유권' 보장은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권' 보장을 '자유권' 보장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가불'했던 '빚', 그래서 여전히 남아 있는 '빚'을 갚을 수 있다.

 

 p29

 문재인 정부 말기가 되니, 보수 야당과 언론은 문재인 정부를 폄훼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그랬다. 임기 내내 나라가 망한다고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는데, 임기 종료 후 비로소 그 성과를 인정하는 것이 이들의 행동 유형이다. 그들에게는 죽은 김대중과 죽은 노무현만 좋은 김대중, 좋은 노무현이다. 지금은 두 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하는 보수 야당과 언론이 두 분 생존시에 내뱉었던 비방, 악담, 저주를 생각해보라.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에 기초하여 국정을 운영했고 대한민국을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킨 정부다. 문재인 정부의 최고 성과는 외교, 안보, 방역에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 정부의 발언권도 강해졌다는 것,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최소화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사라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21년 독일잡지 <투리투에디션turi2edition>은 2021년을 결산하는 특집 기사로 '2021년의 승리자들'을 뽑았다. 국가로는 유일하게 한국을 선정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시아의 선도적인 문화국가 한국은 2021년을 접수했다. K-팝은 세계를 정복했고 <서바이벌> 잔혹극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의 모든 신기록을 깼다. 이것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듯, 한국은 판데믹 방역에서도 진정한 모범국이다.

 코로나 위기 이후 한국 보수 야당과 언론은 백신 효능에 의문을 제기하고 문재인 정부의 방역을 줄기차게 비난했지만, 한국의 방역은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미국의 방역학자 빈센트 라즈쿠마는 2021년 11월 7일 트위터에 다음의 글과 표를 올렸다. "한국은 역학의 교과서적 원칙을 따랐다. 인구의 75퍼센트가 백신을 완전히 접종할 때까지 사망률을 40배 낮게 유지했다. 이것이 성공이다."

 2020년 12월 국제표준화기구는 한국의 감염병 진단 기법을 국제 표준으로 지정했다. 2021년 11월 23일 <블룸버그>는 한국과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다, 아랍에미리트, 캐나다, 스위스 7개국을 "코로나 19 방역 MVP"라고 평가했다. 또한 2021년 12월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은 'C19 국가 비상 시기 국가 위기관리 능력 순위'를 발표했는데 1위 뉴질랜드, 2위 대한민국, 3위 스웨덴, 4위 덴마크, 5위 독일, 6위 아일랜드, 7위 캐나다, 8위 스위스, 9위 그리스, 10위 핀란드 순이었다.

 그러나 2021년 12월 한국에서 코로나 발생자가 급증한 반면 일본에서는 급감하자, 한국의 일부 교수와 저자는 "K-방역은 실패했다", "J-방역을 배워야 한다"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 그러다 2022년 1월 초 일본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60배 폭증하여 하루 6,000명을 돌파하자 이들은 침묵했다. 이들은 2019년 아베 정권이 무역 전쟁을 선포했을 때 한국 정부와 대법원을 비난했다. 이들에게는 '넘버 원 일본' 하고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p32. 연성 독재? - 완전한 민주주의

 보수 야당과 언론, 그리고 일부 자칭 '진보' 지식인은 문재인 정부를 "연성 독재", "파시즘으로 가는 단계" 운운하며 비판했다. 예컨대 윤석열 후보는 "총과 칼만 안 들었을 뿐 연성 독재, 연성 전체주의를 시도"한다고 비난했다. '좌파' 지식인 중 진중권 씨는 문재인 정부를 "연성 독재"라고 비방했고, 권경애 변호사는 "문재인 정권은 나치즘과 거의 흡사하다"라고 매도했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정부로 인하여 한국이 "전체주의 국가가 되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모두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완전한 민주국가'다. 문재인 정부 동안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민주주의는 최고 수준으로 보장되었다. 단적인 예가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부른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대법원이 명예훼손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문재인은 간첩", "문재인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시도했다"라고 연설한 전광훈 목사에게 1.2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저열하고 극단적인 비방조차 형사처벌에세 사실상 자유로워졌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는 2016년 180개 국가 중 70위였으나, 2018년 43위, 2019년 41위, 2020년 42위, 2021년 42위를 기록하여 3년 연속 아시아권 1위를 지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언론에 대하여 어떠한 개입이나 압박도 하지 않았다. 현재 언론이 정부가 무서워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 개혁 법안을 준비하자 보수 야당과 언론은 거칠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고의,중과실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것일 뿐이다. 영국 옥스포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언론의 신뢰도는 2017년 이후 2020년까지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한국 언론은 누리는 자유만큼 책임도 져야 하지 않을까.

 한편 대한민국 건국 후 70여 년 동안 유지된 권력기관의 구조가 개혁되었다. 불법적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을 금지하기 위해 업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 정보를 삭제하고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국가정보원 개혁이 이루어졌다. 댓글 공작, 세월호 민간인 사찰, 계엄령 문건 작성 등 불법을 범했던 기무사령부를 순수한 방첩 보안 기관으로 바꾸는 안보지원사령부 신설도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과거 정권하에서 음습한 공작을 일삼던 정보기관의 행태는 자취를 감추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자행한 민간인 사찰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평범한 시민이 국정원이나 안보지원사령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반면 2021년 12월 14일, 윤석열 후보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원과 검찰 등을 동원하여 인사 검증을 하겠다는 경악스러운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하 국정원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북한, 간첩, 산업스파이 등과 관련된 민간인 외에는 국정원의 인적 정보 수집이 금지되었다. 국정원 국내 정보담당원도 모두 철수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가 이를 재개하겠다고 한 것이다.

 수사, 기소 기관의 구조 개혁도 이루어졌다. 해방 후 계속 유지되어온 검찰의 권한 독점과 압도적 우위가 해체되었다. 검찰과 경찰 간의 견제와 균형을 보장하는 검경수사권 조정이 성사되었고, 검사의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독립적 부패 수사 기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개혁에 대하여 검찰과 이를 후원하는 보수 야당과 언론은 막무가내로 비난했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들은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지면 형사사법체계가 붕괴하고 중국식 공안 경찰이 탄생하여 세상을 쥐락펴락할 것이라고 흑색선전을 벌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수처 관할 사건 외에는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특수 수사 분야에 대한 직접 수사권을 보유한 검찰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공수처는 원래 시민단체나 법무부가 제시했던 구도에 비하여 현저히 적은 규모(현재 광주지검 순천지청 규모)로 출범했다. 법 제정 당시 패스트트랙에 법안을 올리기 위해 보수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인력과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공수처가 존재 이유를 입증할 수 있었던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실망감이 커졌다. 이에 윤석열 후보는 공수처 폐지를 주장했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검찰 개혁의 상징물인 공수처를 없애고, 자신과 관련된 수사도 막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는 '보강'해야지 '폐지'할 조직은 아니다. 검찰의 범죄를 철저히 수사하고 막강한 검찰 조직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이 공수처다. 비판은 하되 재정비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전/물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1차적 수사권을 보장받는 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국가수사본부(국수본)도 설치되었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가 보장되기에 국수본 수사의 효율성과 완결성에는 미흡함이 있지만, 국수본은 빠르게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경찰 조직의 비대화를 막기 위하여 광역 단위에서 자치경찰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자치경찰은 생활 안전, 교통, 경비 등 주민밀착형 치안 서비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경찰은 국가경찰, 국수본, 자치경찰 등 3개로 분립되었다.

 공수처, 국수본, 자치경찰 등 세 기구는 이제 갓 걸음마를 내디뎠다. 일정 기관 뒤뚱거림과 넘어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기관의 분산과 상호 견제라는 대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기부터 공유되었던 검찰 개혁의 최종 목표인 '수사와 기소의 분리(검찰청의 '기소청'으로의 개편)'는 다음 정부의 과제로 미루어졌지만, 이상과 같은 권력기관의 구조 개혁은 역대 어느 정부도 이루지 못한 역사적 성과였다.

 그런데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공수처 관할 사건도 검찰이 수사하도록 하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폐지하며, 검찰총장에게 독자 예산권을 부여하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검찰 권력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비유하자면 국방부 장관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육군참모총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폐지된 적이 없으며, 검찰총장이 독자 예산권을 가진 적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으로 '검찰 공화국'이 약화되자, 윤 후보는 아예 '검찰 왕국'을 건설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국회에서 법률이 통과되어야 가능하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동의할리 만무하다. 그러나 윤 후보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집요하게 검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음양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p39. 인사 실패에 대한 변명

 2017년 촛불혁명은 적폐 청산과 국민 대통합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문 대통령은 정부가 출범한 후 포용적인 인사 선택을 했다. 예컨대 2017년 5월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기획비서관으로 일한 홍남기 씨를 초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했다. 2018년 3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연임시켰다. 1978년 이후 40년 만에 이루어진 연임 사례였다. 문 대통령은 야당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합리적 보수 인사를 내각에 포함하려고 진지한 노력을 했다. 예를 들면 비극적으로 고인이 된 정두언 의원이 있다. 인사 문제는 공개해서는 안되지만, 대상자 스스로 고사를 했다고 생전에 밝힌 바 있다.

 장관급 후보자의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본인은 물론 전 가족의 신상이 다 털리고 망신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어, 적임자라고 판단된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고 고사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툭하면 야당은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체택을 거부했다. 특히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의 대권 출마 사태 이후 진보,개혁 진형 내에서는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 또는 불만이 나왔다. 그런데 당시 문 대통령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이 '태극기 부대' 수준의 사고를 가진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당시 인사 검증을 맡았던 청와대 민정 수석실은 두 사람에 대하여 비판적 의견을 냈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이 확보한 자료로는 두 사람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 판단하지 못했다. 민정수석실 책임자로서 이 점에 대한 비판을 달게 받을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에는 진보,개혁 인사 대부분이 당시 윤석열 검사를 호평하고 있었다. 그는 박영수 국정농단 특별 검사팀 수사팀장으로 활약하였기에 촛불혁명의 '공신' 또는 '우군'으로 인식되었다. 예컨대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민주정책연구원장을 여러 번 만났고, 총선 출마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양 전 원장은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우호적 평가를 하고 있었기에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2017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는 대선 공약 1호로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윤 검사에게 검찰총장을 넘어 대통령을 노리는 야심이 있었음을 어찌 감지했겠는가. 단, 당시 최강욱 전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밝혔듯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윤석열 총장 후보자에 대한 불가 보고서를 세 번이나 올렸다. 검증 보고서 작성 시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부분은 붉은색으로 표시하는데, 윤석열에 대한 보고서는 온통 빨강이었다. 윤석열 검찰은 최 비서관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후 검찰과 국민의힘 합작으로 최 의원에 대한 고발사주를 감행했다. 그 결과 최 의원은 세 개의 사건에서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받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리고 애초부터 윤석열 검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던 한상진 기자 등 <뉴스타파>팀은 인사청문회에서 윤 후보자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윤대진 검사의 친형)의 변호인 선정에 도움을 주는 육성 녹음을 공개한 후, 진보층으롭터 공격을 받고 많은 후원 회원이 탈퇴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런 사람이 정말 모든 주변 사람을 속이고 이렇게 한 거 아니겠어요? 어떻게 보면 배신의 칼을 가슴속에 품고 세상을 속였다. 저는 이제 그런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요.

 검찰총장 면접 당시엔 윤석열 후보가 4명의 후보 중에서 공수처의 필요성 등 검찰 개혁에 가장 강력하게 찬성했는데, 취임하자마자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때 거짓말을 했다.

 윤석열 검사의 마음속에 권력욕의 씨앗을 심어준 '마녀'는 누구였을까? '대호 프로젝트' 운운하며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이들은 누구였을까. 서울중앙지검 시절 만났다는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포함될 것이다. 윤석열 개인에게 충성했던 '윤석열 라인' 전현직 정치 검사 등도 유사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홍 회장과의 만남에서 동석한 관상가, 김건희 씨와 연을 맺고 있었던 건진 법사 등 여러 주술가도 바람을 잡지 않았을까 싶다.

 

p134. 사법 기관을 지방으로

 국민의힘은 사법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고 과거 '신행정수도' 건설에도 반대했기에 이 정책에 반대할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로서의 세종시를 건설하는 역사적 업적을 쌓았다.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사법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하거나 '사법수도'를 신설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나는 여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의 획기적 제안에 주목한다. 2021년 7월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김승원, 김용민, 문정복, 민병덕, 민형배, 윤영덕, 이수진, 장경태, 최혜영, 홍정민, 한준호, 황운하 의원과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대표는 검찰/사법 개혁의 정점을 찍는 방안으로 사법기관의 지방 분산 배치를 제안했다. 처럼회는 "사법 선진국 독일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수도에 있지 않고 전국에 분산, 사법 권력과 정치권력의 분리를 통해 실질적 권력분립을 ㅣ루고 있다"라며, "대법원을 대구로, 헌법재판소를 광주로, 대검찰청을 세종으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효과를 가져옴과 동시에, 사법 권력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는 곳으로 떨어뜨려 놓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그리고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대법원 재판은 법리 판단만 하므로 당사자의 출석이 필요 없다. 대검찰청은 검찰청장을 보좌하고 지검의 수사와 기소를 지휘하지 직접 수사를 담당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하위 기관이 없는 단출한 기관ㅇ다. 따라서 세 기관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 대법원 이전을 위해서는 법원조직법 개정이 필요하고, 헌법재판소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대검찰청 이전은 대통령령 개정으로 족하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대권 후보였던 김두관 의원은 헌법재판소, 대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을 지방 도시 한 곳에 이전하여 사법 수도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법안을 제출했다. 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를 참조한 것인데, 남아공의 행정수도는 프리토리아, 입법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수도는 블룸폰테인으로 나누어져 있다.

 김 의원은 2021년 6월 28일 자신의 SNS에 "법조 카르텔의 지리적 기반"인 서울 서초동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과 법원으로 이뤄진 법조 세력의 최상층부는 권위주의 정부 이후에 정치까지도 사법의 영역으로 포섭해 영향력을 발휘했다"라며 대법원 주변의 수많은 변호사, 법무사 등 관련 업계가 세력을 형성하면서 이들이 부동산, 교육, 소비 등 모든 면에서 '강남공화국'을 굳건히 떠받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법조 카르텔의 시스템, 즉 구고적인 해체도 필요하지만 거점의 해체와 재구성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비법률가 정치인의 날카로운 통찰이었다.

 처럼회 안과 김두관 안 중 어느 것을 택할지는 국회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지역 균형의 관점에서 사법기관을 한 개 도시에 모으는 것보다는 분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기에 처럼회 안에 동의한다.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면 메가시티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p148. 노동시간 단축 - 주 4.5일 노동제를 도입할 시간이다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한국도 '주 40시간 주 5일 노동제'가 법제화되었다. 단, 당사자 합의에 따라 주 최대 12시간 '연장 근로'가 허용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합의하는 경우 주 40시간 - 주 5일 노동제의 원칙에 대한 예외가 허용된다. 지금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주 40시간 주 5일 노동제가 시행되기 전 경제계와 보수 언론은 이 제도를 실시하면 생산성이 저하하고 임금이 상승하여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2021년 8월 OECD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OECD 38개국 중 세 번째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은 1,687시간이다. 한국 노동자가 OECD 국가 평균보다 221시간 더 많이 일하고 있다. 연장 근무나 야근 수당을 받아 노동 소득을 올리기 위하여, 또는 제시간에 퇴근하기가 쉽지 않은 조직 문화 때문에 '연장 근로' 또는 '탄력적 근로'를 하게 된다. 1970년 영미권에서 사용된 용어인 '워라벨'이 근래 한국에서도 회자했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다.

 노동운동가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 '하루 8시간 노동제'는 20세기 초 국제 노동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는 최소 기준이다. 이후 OECD 나라에서는 노동시간을 더 줄이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의 예를 보자.

 먼저 독일은 1967년 주 40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는데, 1995년부터는 전 산업군에 걸쳐 '주 38.5시간 노동제'를 시행했다. 자동차, 기계, 철강 등 제조업 직군에서는 '주 35시간 노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초과 노동시간을 저축해서 휴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도입했다. 벤츠, 보쉬 등 독일의 대표적인 세계적 기업이 모여있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2018년부터 '주 28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 이 주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희망에 따라 최대 2년간 주 28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

 프랑스는 2000년 '주 35시간 하루 7시간 노동제'를 통과시켰다. 연장 근로는 연간 총량 220시간으로 제한되며, 이를 초과하는 경우 직업별 단체협약 또는 근로감독관의 사전 승인이 있어야 한다. 2004년 프랑스 노동부는 이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35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스페인은 2021년 3월 200~400개 기업의 신청을 받아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 노동제를 시험 도입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이후 3년간 실시하고 있다. 제도 도입으로서 발생하는 기업의 비용은 정부가 첫해에는 100퍼센트, 2년 차에는 50퍼센트, 3년 차에는 33퍼센트를 보전해준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기업들은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스웨덴의 디지털 미디어 제작 회사인 백그라운드AB,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인 필리문두스, 토요타 서비스 센터, 살그렌스카 대학 병원 등이 6시간 노동제를 시행 중이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유치원 교사, 회사원, 사회 복지사, 병원 종사자 등 여러 직군을 대상으로 주 4일 노동제를 국가 차원에서 시범 운영하는 실험을 했다.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 인구 중 1퍼센트가 이 실험에 참여했는데, 실험 종료 후 참가자 10명 중 8명이 근무 시간이 더 짧은 회사로 이직했다.

 미국의 경우 1930년대 초 켈로그사의 소유주 켈로그와 사장 루이스 브라운은 기존 8시간 3교대 대신 6시간 4교대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작업장 사고율이 50퍼센트 줄었고, 5년 뒤에는 40퍼센트에 달하는 인력이 추가 고용되었으며, 여가 확보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달라졌다. 그러나 켈로그가 경영에서 물러난 후 새 경영진은 1985년 8시간 노동제를 복구시켰다.

 사실 하루 6시간 노동제의 원조는 토머스 모어다. 그는 명저 <유토피아>에서 지금 봐도 놀라운 비전을 제시했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중 여섯 시간만 일에 할당합니다. 이들은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두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나머지 세 시간 일을 하러 갑니다. 그 후에 식사를 하고 8시에 취침하여 여덟 시간을 잡니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나라 특히 스페인이 이렇게 산다. 내 개인적으로 겪기도 했고, 주변인들에게 들어본 것이니 그리 특별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9시에 업무시간이 시작되면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눈다. 10시쯤 업무를 보기 시작하고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칼처럼 밥을 먹으러 간다. 급한 업무가 있는 사람들은 회사내에 있는 스낵바같은데서 햄버거나 간단한 스낵으로 끼니를 떼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마드리드 같은 대도심의 다운타운은 건물이 밀집해있어서 한국의 일반도시처럼 주변에 걸어서 갈 거리에 식당들이 많이 있지만 차로 30분 정도만 나가도 5층 이하의 건물이 펼쳐친 광활한 배후지역이기 때문에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식당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점심도 느긋하게 먹다 보면 1시간은 훌쩍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로 돌아오면 거의 2시 남짓이 되고 또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5시가 되면 하나둘 퇴근을 시작하고 보통 사무실에 남는 사람은 일이 남아 있는 한국사람들 뿐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칭찬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왜 저렇게 살까?라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평일에는 퇴근 후 식구들과 저녁 식사와 담소를 나무며 2시간 정도를 보내고, 보통 10시쯤에는 잠자리에 든다. 금요일에는 가까운 친지 혹은 이웃들을 초청해서 새벽까지 파티를 하거나, 젊은이들의 경우는 시내로 나가서 친구,연인과 새벽까지 불금을 즐긴다.

 이런 여유로운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이 인간들은 정말 행복하게 사는구나 싶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2021년 12월 미국 민주당 소속 마크 타카노 하원 의원은 13명의 민주당 의원과 함께 '주 32시간 근무법'을 공동 발의한다. 1938년 시행된 공정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표준 근로시간을 현행 주 40시가에서 32시간으로 단축하고, 이 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경우 시간당 근무 수당을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느 것이 요지다. 타카노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노동시간을 주 32시간으로 줄이기 위해 이 법안을 제출한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임금이 정체된 상태에서 더 긴 노동시간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우리의 현실로 계속 받아들일 수 없다. 주 4일 노동을 실험해본 많은 나라와 기업은 이 제도가 압도적으로 성공적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생산성은 높아졌고 임금은 증가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유행병이 수백만 명의 미국인을 실업 상태 또는 일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놓은 후, 줄어든 주 노동시간은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임금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아랍에미리트는 세계 최초로 2022년 1월 1일부터 주 4.5일 노동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아랍에미리트의 모든 정부 기관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평일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8시간 근무하고, 금요일은 오전 7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정오에 마치게 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농부 철학자 윤구병 대표가 경영하는 '보리 출판사'가 선도적으로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시행했다. 연장 근무를 너무 오래 허용하게 되면서 6시간 근무제가 의미 없어지니, 연장 근무 시간을 월 18시간 이내로 제한했다.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월급은 줄이지 않았다. 보리출판사는 주 5일 노동제가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도입되기 3년 전인 2001년부터 주 5일 노동제를 이미 실시했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가족 관계와 사회 공동체가 개선되고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윤 대표의 철학이 구현된 것이다. 윤 대표는 말한다.

 

 노동시간이 길어지면서 한 식구가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 식사할 시간도 없어지고 가정생활이 깨졌다. 국가정책으로 6시간 노동제가 시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소수 부자에게 부를 집중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고루 나누는 데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부모들 중엔 자식을 교육시키고, 먹고 살려고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게 역설적으로 자녀들 일자리를 뺏는 결과로 나타났다.

 2022년 1월에는 대기업인 CJ에서 큰 변화를 시작했다. CJ ENM 엔터테인먼크 부문은 2022년 매주 금요일 오후를 사무 공간 밖에서 자율적으로 외부 활동을 하는 '비아이 플러스Break for invention plus'를 시행한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주 4.5일(36시간)만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된다. 매주 금요일 4시간의 오전 업무가 종료되면 별도의 신청 없이 일괄적으로 업무용 PC가 종료된다.

 

p159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었다(상시근로자가 50인 미만이거나 공사 금액이 50억 원 미만이면 3년 뒤인 2024년 1월 27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기업은 삼표산업이 되었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소재 삼표산업 양주 사업소에서 발생한 노동자 매몰 사망 사고를 '중대재해처벌법 1호'로 적용 사고로 판단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는 중대 재해 발생 등 산재 예방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장 1,243개소의 명단을 공개됐다. 명단에 포함된 곳은 중대 재해 발생 등으로 산업안전감독관이 수사,송치해 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사업장, 산재 은폐 또는 미보고로 과태료가 부과된 사업장, 중대 산업 사고 발생 사업장 등이었는데, 절반 이상이 건설업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여러 기업은 대응을 마련하여 시행했다. 예컨대 현대건설은 안전 관리 우수 협력사에 포상 물량을 총 5,000억 원 규모로 확대하는 '안전 보건 인센티브 5,000억 원' 제도를 실시했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도 2021년 우수 제보자 포상, 위험 발굴 마일리지 적립 등 6개월간 1,500명, 약 1억 6,600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고, 공사에 차질이 빚어지면 협력사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제도를 운용 중이다. 포스코건설은 2021년부터 '무재해 달성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는데, 상반기 중에 전사에 중대 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 직원들에게 50만 원을 지급하며, 하반기에도 중대 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추가로 100만 원을 지급한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덕분이다.

 한편 주요 기업들과 일부 건설사들은 대표이사인  CEO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앞다투어 '최고안전보건책임자 Chief Safety Officer CSO'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CSO는 대표이사에 준하는 안전 보건에 관한 조직과 인력, 예산을 총괄하고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예컨대 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삼성물산 건설 부문, 한화건설 등은 안전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임원급 CSO를 선임했다. 호반건설은 안전 담당 대표이사를 신설했다. CEO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 '빨간 줄 임원'을 선임한 속셈이 엿보이지만, 이러한 조직 구도 속에는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CSO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되므로 CSO는 산업재해 예방에 진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162

 둘째,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확대해야 한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노동자가 산업재해 또는 중대 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다.

 2021년 2월 포스코의 최정우 회장은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사용되도록 할 것을 지시했고, 포스코건설은 노동자에게 '위험작업 거부권'을 부여했다. 이는 노동자가 현장에서 안전시설이 미비하거나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해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작업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 권리는 협력사와 모든 현장 근로자를 포함해 누구라도 현장의 안전 담당자에게 연락해 즉시 행사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전혀 없다. 2021년 12월에는 서울시설공단이 산하 24개 사업장 근로자에게 위험작업 거부권을 전면 보장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설공단은 서울어린이대공원, 지하도상가, 고척스카이돔, 청계천, 서울월드컵경기장, 공공자전거 따릉이 등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 3월 삼성물산은 '작업 중지 권리 선포식'을 열고, 이를 확대해 '급박한 위험'이 아니더라도 근로자가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나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2021년 8월 삼성물산은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한 이래 월평균 약 360건의 작업중지권이 행사됐다고 밝혔다. 국내외 84개 현장에서 총 2,175건의 작업중지권이 행사됐으며, 이 가운데 98퍼센트(2,127건)가 작업 중지 요구 후 30분 내 조치가 이뤄졌다.

 

p168

 그렇지만 향후 기본소득의 범위와 신복지의 범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재현될 것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제도의 취지를 기존 복지 제도를 확충해 실현할 수도 있다. 가령, 월 10만 원의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면 소요되는 재원은 60조 원인데 이는 2021년 복지,보건,노동, 부분 예산 199조 원의 30퍼센트 수준을 차지할 정도의 큰 규모다. 이와 비슷한 규모의 재원이 있다면 기존 복지 제도를 충분히 두텁게 하고 중산층 및 청년 세대에게 돌아갈 혜택을 크게 늘리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 보장 확대에 15조 원, 전국민고용보험제도 도입에 15조 원 등을 투입할 경우 현행 복지 제도의 포용성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김두관 의원의 '기본 자산' 제안이 잊혀 아쉽다. 김 의원은 신생아 때부터 1인당 3,000만 원의 기본 자산을 지급하고, 기본 자사 예금액에 대한 예금이자 금리는 연 4퍼센트 단일 금리를 적용하도록 하는 '기본 자산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방법은 다르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청년 기본 자산 지원에 관한 법률'도 같은 취지다. '청년 기본 자산' 기획의 내용은 출생 시점부터 청소년기까지 월 20만 원을 국가가 적립하고, 적립금 통합 기금 운용을 통해 성인(18세)이 되었을 때 약 6,000만 원의 기본 자산을 마련하며, 고등교육, 주거, 창업 등 용도에만 한정 지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자산 제도가 안착되면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서게 되는 출발선이 상당 수준 같아질 것이고, 청년 빈곤이나 저출산 문제도 크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기본소득, 신복지, 기본 자산 등의 구상과 계획을 상호 배제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현 단계 국민의 필요와 국가 재정을 고려하여 적정하게 절충, 조합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p182

 협력이익공유제는 2020년 6월 법안까지 마련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협력이익공유제에 대하여 국민의힘과 재계는 위헌이라고 반대했고, 정의당은 한계가 있는 제도이므로 부자 증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협력이익공유제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박근혜 후보를 도우면서 제창했던 경제민주화의 일환이다. 현행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교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조항은 더 구체화하여 개헌안에 담았다. 즉, 경제민주화는 경제 주체 간의 조화뿐만 아니라 상생을 통해서도 실현될 수 있으므로 경제민주화 조항에 '상생'을 추가했고,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등 공동 이익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상호 협력과 사회 연대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국가에 사회적 경제의 진흥 의무를 부과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독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상생과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제125조 제2항)

 국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 육성하고, 협동조합의 육성 등 사회적 경제의 진흥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제130조 제1항)

 개헌안도 법안도 통과되지 못한 상황에서 남양유업은 2020년 1월 협력이익공유를 시행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리점 대상 물량 밀어내기와 수수료 갑질로 손가락질을 받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던 남양유업이 상황 타개를 위해 자진 시정 방안으로 시작한 것이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동의 없이 제품을 강매하고 영업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붓는 등 갑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사가 주문 시스템을 조작해 대리점주가 주문한 양의 두 배를 대리점에 떠넘겼고, 대리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처리하기 위해 '1+1 행사'를 하거나 자체 폐기 처붆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고 불매운동이 벌어지지, 남양유업은 물러섰다.

 

p200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중 제일 예민한 것은 '동성혼' 인정 여부다. 현행 법률과 판례는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동성 커플은 법적 혼인을 할 수 없고, 일상생활에서 이성 커플이 공기처럼 누리는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예컨대 가족수당, 세금, 연금, 보험, 병원 면회권, 상속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2021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던 소성욱 씨는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차별했어'라고 따져 묻는다. 하지만 당연히 누리는 그들의 권리가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우리는 평생을 같이 살아도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 절차에 개입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유산상속도 안되고, 임차인 승계권도 없다. 모든 권한은 (법적) 원가족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동성 커플은 유언장, 사전 의료 지시서, 임의 후견인 제도 등 '3종 세트'를 준비해야 한다. 레즈비언 작가 김규진 씨가 2019년 발표한 에세이집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에서 밝혔듯이, 국내 항공사 마일리지의 가족 결합도 동성 커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김 씨가 미국 맨해튼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이 혼인 증명서를 국내 항공사에 제출하여 가족 결합 혜택을 따냈다는 점을 읽으면서 쓴웃음이 났다. 해나 아렌트의 유명한 개념을 빌리자면, 동성애자는 시민임에도 '권리들을 가질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보수적 유교 전통이 자리 잡고 있고 보수적 기독교의 발언권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동성혼 합법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는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2001년)을 위시한 서구의 여러 나라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대만 등의 예가 있다. 하지만 동성혼을 당장 인정하는 것이 부담된다면, 미국 버몬트주, 뉴욕주 등 6개 주와 워싱턴D.C. 및 다수의 유럽 국가처럼 '시민 결합'이라는 별도의 제도를 도입하여 동성애 커플의 삶을 보호해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법률은 아니지만 이바라키현 등 다섯 군데 광역자치단체에서 조례로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있다.

 2022년 1월 7일 서울 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앞에서 언급한 김용민, 소성욱 커플의 소송에 대하여 패소판결을 내리면서 이렇게 밝혔다.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개별 법령의 해석만으로 곧바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 간 결합으로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 - 호주나 유럽연합 여러 나라가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고,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가 동성 동반자 제도를 두는 등 세계적으로 혼인할 권리를 이성 간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 점진적 추세다. 결혼 혼인 제도 인정 여부는 개별 국가 내 사회적 수요와 합의에 따라 결정될 일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입법의 문제다.

 그런데 노동운동 차원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2021년 12월 국내 최대 산업별 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가 회사 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을 포함하는 모범 단체협약안을 승인한 것이다. 이 안은 '배우자'를 '법률상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및 동거인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했고, '가족'도 법률상 혼인에 국한되지 않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고려한 여러 가족 형태를 포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본인과 배우자 경조사 휴가, 가족 돌봄 휴직등이 사실혼 동거 관계에 있는 동성 커플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에게 적요외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범 단체협약안 개정 이후 주한민국대사관은 2021년 12월 22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한국 내 다양한 가족 형태의 고용주로서, 금속노조가 모든 조합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는 것을 지지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라는 글을 올리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금속노조는 시민 결합 제도를 노조 차원에서 수용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동성애는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자신의 도덕관, 종교관과 별도로, 동성애 시민도 이성애 시민이 누리는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인권의 기본 원칙이다. 인권의 '인人'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갈라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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