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로도 책을 낼 수 있구나, 그리고 이런 책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구나라는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브랜드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지극히 가벼운 소품류의 글이다.

 이제 하루키 옹(이제 그도 옹翁이라는 접미어가 어울리는 나이대에 접어들었다)은 더 이상 소설을 내지 않을 작정인가? 싶다. 현재 일본에서 그는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라디오 방송을 부정기(약 2달에 한번 정도 한다고)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기사단장 죽이기를 포함해서, 그의 최전성기로 보이는 시기에 발표한 태엽감는 새 이후의 작품은 모두 태엽감는 새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쭈욱 읽다보면 아! 무라카미의 작품세계는 태엽감는 새 이후에서 더 나아가질 못하고 있구나라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

 사실 더 나아기지 못한다는 표현은 하루키와 같은 대작가에게는 무례한 표현이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감상은 그렇다. 뭐랄까 밥도 더 맛있어지고, 반찬도 화려하고 풍성해지고 있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은 화식(和食, 와쇼쿠)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까?

 이젠 하루키가 만들어주는 갈비찜, 짜장면, 돼지불백, 쌈밥 같은 것도 먹고 싶어지는데 그런 음식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밥이라도 맛있게 지어주는 게 어디냐? 라며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배 부른 소리를 하고 있구나 싶긴 하다.

 어찌 보면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소설에 비하면 간식 혹은 가벼운 스낵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단편소설들은 분식 정도?

 이 책을 그런 기준에서 보면, 영화를 보면서 먹는 팝콘 쯤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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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5

 갈라파고스에는 바닷물에 들어가 해초를 먹는 진기한 종류의 이구아나가 있는데 이분들은 한 시간 동안 호흡을 하지 않고 바닷속에 머물 수 있다. 체온을 낮춰 혈류를 멈추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구아나는 초식이지만, 살고 있는 섬에 식물이 자라지 않아서 그렇게 진화했다. 다윈이 그 '바다 이구아나'를 연구해 '진화론'의 한 예시로 삼았다.

 이분들이 한 시간 동안 바다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고 실증한 사람도 다윈이다. 다윈은 십 분 단위로 이구아나를 물속에 넣었고, 칠십 분까지 갔을 때 죽자 "오, 육십 분은 잠수할 수 있구나" 하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칠십 분 동안 물에 잠겨 있던 이구아나가 너무 불쌍하다. 과학이란 얼마나 비정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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