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건축, 경제, 인문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최근 동향이라든가 현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 유툽의 내용을 책으로 옮겼다.

 

개인적으론 유현준 교수과의 건축 및 부동산에 관한 내용이 새로웠다.

 

각 분야에 대한 수준높은 담론보다는 입문의 소양을 갖추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좋은 내용이다.

---------------------------

첫번째 만남 x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p53

 

제동 : 그런데 그게 의도적인 것인지, 최선을 다했는지 실수한 건지 어떻게 확인하나요?

상욱 :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서 과학계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다뤄지는 실수가 아니면 아예 검증에 안 들어갈 때가 많아요. 그래서 모든 과학자가 다 성실하게 과학의 방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얀 헨드린 쇈(Jan Hendrik Schoen)이라는 과학자는 2000년부터 2001까지 불과 2년 사이에 유명한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연구 논문이 무려 16편이나 실렸어요. 보통 과학자라면 평생 논문 한 편 실리기도 쉽지 않은 저널인데 말이죠. 분자로 된 트랜지스터에 관한 논문이었는데,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곧 들통났죠. 가설에 실험 결과를 꿰맞춘 거였어요.

 그의 논문 수십 개가 다 취소됐어요. 논문에 "철회되었다(retracted)"라고 아주 확실하게 박아놨어요. 문제가 된 논문을 삭제한 게 아니라 그대로 놔두고서 논문이 연구 부정으로 쓰였다고 박제를 한 거에요. 이 사람에게 박사학위를 준 독일의 콘스탄츠 대학교에서는 학교의 수치라며 이 친구의 학위를 박탈했어요.

 연구 부정이 밝혀지면 그 당사자는 과학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과학자 집단은 동료가 진행한 데이터를 믿고, 그 결과가 옳다는 것을 전제로 그 실험을 재현한 다음에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니까요. 동료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그 한 사람 때문에 누군가는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허비학 되잖아요.

 지금도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백신 개발을 하고,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잖아요. 공유된 정보만 믿고 거기에 맞게 개발하고 있는데, "미안한데, 거짓말이었어." 이렇게 말한다면 인류의 노력이 그냥 물거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용서를 못 하는 거에요.

 

p55

상욱 : 민감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게 지적재산권이잖아요. 백신을 개발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개발했을 거에요. 물론 지금 분위기에서는 과학자들도 선뜻 특허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걸 강요할 수 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번에 강요하는 전례가 만들어지면 또다른 바이러스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백신을 개발하려고 할까요?

제동 : 사실 저는 당연히 적당한 보상 원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위급할 때를 대비해 얼마만큼의 기반 시설을 닦아 놓느냐의 측면에서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상욱 :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죠.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우리가 의사들, 간호사들, 질병관리청에 계신 분들에게 박수 보내면서 정말 훌륭한 분들이라고 칭찬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분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휴가도 못가고 아마 추가 근무까지 했을 텐데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 없이 말로만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p57

상욱 : 서로 논의를 하고 시스템을 구축해나가야 하는 거죠. 이때 시스템이란 완벽한 제도를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끊임없이 논쟁과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p63

제동 : 다만 인간으로 살면서 자기 기준을 갖는다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기준이 있어야 일관되게 살 확률이 커지고, 논리적 모순 없이 살기만 해도 다른 사람한테 예측 가능성을 주기 때문에 훨씬 더 믿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쉬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이때 자기가 세워놓은 기준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거에요. 이 사실을 알면 자기 기준에 따라서 살다가 뭔가 좀 이상하면 '이게 틀렸나?' 하고 바꿔볼 수 있거든요. 인간의 문제는 오히려 답이 틀릴 수 있다는 것, 내가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것, 나아가 본래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자기 기준을 만들어서 그 기준과 모순 없이 일관되게 살도록 노력하되 끊임없이 점검해나가는 것, 그게 최선이 아닐까 싶어요.

 

p65

제동 : 아, 그래요? 지금 상욱 쌤 얘기가 되게 인상 깊은게, 과학에서는 검증할 수 없다거나 그것은 우리 영역이 아니라고 말하지, 틀렸다고 얘기하지는 않는군요. 지금도 "그런 실험은 좋은데, 문제는 그 실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렇게 얘기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도 사람 마음이 희안하게 "영혼의 무게 21 그램이 빠져나가면 어디로 가는 걸까? 이런 데 끌리긴 해요. 저는 그런 쪽에 마음이 더 가요.

 

p67

상욱 :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문의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어요. 서양의 근대과학이 1600년대쯤에 탄생했다고 믿어지는데, 그전까지는 철학과 신학이 과학의 역하로 담당했어요. 종교적 질문, 우주에 대한 질문,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온 학문은 철학과 신학이었어요. 중세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서양 문화에서 철학과 신학의 공통점이자 특징은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 거죠.

제동 : 아, 무오류라고...

상욱 : 오늘날 우리의 감각으로 신학은 주로 인간의 도덕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지만 그 당시 신학자들이 별을 이야기하고, 천문 현상과 기상 현상을 이야기했거든요. 심지어 물질을 이루는 근원도 이야기 했잖아요. 누가 무엇을 묻든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어." 이렇게 말해야지, 성경에도 답이 없는 게 있다고 하는 순간 이단이 되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어요. 반면 과학은 시작부터 명확하게 무지를 인정해요. 그리고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근거를 기반으로 얻은 증거로만 이야기하거든요. 그걸 일반화시킨 게 귀납법이죠.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라는 건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입 다물라는 뜻이죠. 실제로 입 다물어요. 갈레리오는 한 번도 인간의 도덕에 관해 책을 쓴 적이 없어요. 뉴턴도 예술에 대해서 이론을 만든 적이 없고요. 자기가 진행한 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만 가지고 이야기하라는 뜻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라는 의미에요. 그래서 우리 과학자들은 모르는 게 많아요.

 

p113

제동 :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게, 양자컴퓨터로 뭘 할지도 모른다면서 왜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거죠?

상욱 : 왜냐하면 군사적 장점이 있거든요.

제동 : 그럴 것 같더라. 그럴 것 같았어.

상욱 : 이게 기존의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어요. 지금 가장 널리 쓰이는 암호체계는 RSA라고, 인터넷뱅킹 등에도 쓰이는 건데 이것을 무력화할 수 있어요. 처음에 그것 때문에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죠. 거꾸로 양자역학을 이용해 암호를 만들면 절대 안깨져요. 양자역학을 이용한 암호를 사용하면 절대로 도청당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앞서 얘기한 검색 알고리즘은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데이터베이스가 커지면 너무 힘들어지거든요. 하지만 암호 관련한 것은 군사적 이점이 엄청나니까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거죠. 만약 어느 나라가 이것에 먼저 성공하더라도 얘기를 안 할 거에요.

제동 : 다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거네요. 마음만 먹으면 교란할 수도 있고. 혹시 통장에서 돈도 빼갈 수 있어요?

상욱 : 그럴 수도 있겠죠.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테니까.

 

두번째 만남 x 건축가 유현준 교수

 

p122. 인구가 감소해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

 

제동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준 :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보통 많은 분들이 인구론으로 부동산과 집값 문제에 접근하죠. "인구가 줄어드니까 집값이 내려갈 거다." 이런 얘기 많이 들어보셨죠?

제동 : 네. 일본처럼 집값 절벽이 다가올 거라고. 근데 제가 알기로는 일본도 도시 외곽의 집값은 떨어졌지만 도심은 오히려 올랐잖아요.

현준 : 맞아요. 인구가 도심으로 몰리면서 더 올랐죠. 물론 거품이 있던 시절만큼 회복되진 않았지만,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중심부의 얘기지, 주변은 별로 안 좋은 상태거든요. 그래서 주택 수요를 볼 때는 인구 중심으로 보면 안 돼요.

제동 : 아, 그래요?

현준 : 인구보다 세대를 고려해야 해요. 베이비붐 세대 언저리, 그러니까 인구가 많이 늘었던 세대는 대한민국 사회가 도시화와 핵가족화되는 것을 경험했어요. 시골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대부분 서울로 이사를 갔어요. 농업경제 시대에는 도시 인구가 15% 정도밖에 안 됐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전국민의 91%가 도시에 살고 있거든요.

제동 : 굉장히 높네요

현준 : 네, 90%가 넘는 도시화 비율은 전세계에서 딱 세 나라, 홍콩과 싱가포르, 대한민국밖에 없어요. 대단히 독특한 사례죠. 엄청난 인구가 도시로 이동을 했어요. 예전에는 집이 조부모, 부모, 자식 3대가 사는 공간이었다면, 도시로 이동하면서 이제 2대가 사는 공간으로 바뀐 거죠.

제동 : 예전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던 그런 구성이었다다가 4인 가족이 된거네요.

현준 : 네. 정부 정책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방향으로 바뀌기 때문에 4인 가족이 대한민국 중산층의 전형이 된 거죠. 우리나라 5,000만 인구가 4인 가족으로 살려면 집이 1,250만 채가 필요해요. 실질적으로는 4인 가족만 있는 게 아니라, 2인 가족도 있고 7인 가족도 있으니까 대략 2,000만 채가 필요한데, 문제는 1990년대부터 1인 가구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거든요. 지금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30%는 1인 가구고요, 2인 가구까지 합하면 거의 60%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수요는 늘어나는데 집은 아직도 4인 가족이 기준이라고 생각하고 공급을 안 늘린 거에요.

제동 : 아, 주택 수요를 잘못 계산해서 공급에 오류가 생겼다는 얘긴가요?

현준 : 맞아요, 혹시 '쉐어링 하우스'라고 들어보셨어요?

제동 : 네, 같은 집에 살면서 방만 따로 쓰는 그런 주거 형태죠?

현준 : 맞아요. 집값이 너무 비싸니까 많은 젊은 세대들이 내 집을 소유하지 못하고, 오피스텔에서 함께 월세로 살든지, 방은 따로 쓰고 부엌은 같이 쓰는 형태가 나오는 거에요.

제동 : 요즘 1인 가구는 수요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건설사에서 그런 집을 안짓는 이유는 뭘까요?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인가요?

현준 : 그렇죠. 아파는 짓는 분들이 청년들을 위한 주택, 그러니까 1,2인 가구를 위한 괜찮은 집을 안 짓는 이유 중 하나는 젊은 친구들이 돈이 없어서에요. 대신 방 3개까지 30평대 아파트를 짓는 거죠. 그래야 오래된 30평대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그 집을 파고 새 아파트로 이사 갈 테니까요.

 결국에는 지금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만 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죠. 그러다보니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고요. 공급이 필요한 곳에는 돈도 없고 공급도 없는데 특정 지역, 예를 들면 서울 중심부나 강남 일대의 부동산 가격은 기형적으로 계속 올라가고, 그 주변 지역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어요.

 어쨌든 좋은 의도로 집값을 잡기 위해서 15억 원을 초과하는 집을 살 대는 아예 대출을 막았잖아요. 그랬더니 대출을 받아서 16억, 17억 원짜리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15억 원 이하의 집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는 거에요. 결국 수요가 늘어나면서 15억 원 이하의 집값이 더 올라가게 됐어요. 한 7억, 8억 원 정도면 살 수 잇던 집이 10억 원이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집 없는 사람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지는 거죠.

제동 :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네요.

 

p132

현준 :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갖게 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점이 있어요. 바로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에요. 1950년대에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프루이트아이고(Pruitt-igoe)라는 아파트 33개 동을 지은 후, 사람들을 이주시켰어요.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슬럼화가 된 거에요. 마약 밀매와 살인 같은 범죄의 온상이 돼서 지은 지 겨우 20년 만에 다이너마이트로 다 폭파해버렸어요.

제동 : 아니, 왜요?

현준 : 다큐멘타리에서 소개된 자료에 따르면 그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 대부분이 월세였던 거에요. 그러다보니 자기 집에 대한 애착이 없거나 적었던 거죠. '돈 벌면 여기서 나가야지' 하는 생각밖에 안 하니까 공동체가 형성이 안 되고 점점 더 슬럼화됐던 거에요. 그런데 똑같은 아파트 형식을 대한민국 강남에 적용했을 때는 부의 상징이 됐잖아요.

제동 : 그건 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인가요?

현준 : 그렇죠. 칠레의 경우처럼 비록 절반만 완성된 집이라더라도 내 집이 되면 정착할 계획으로 주변을 꾸미게 되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들과도 친해져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자긍심이 생기게 되겠죠. '돈 벌면 떠나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활을 하게 되는 거에요.

 

제동 : 전세만 하더라도 2년 있다가 나가야 하니까 고치기도 그래요. 괜히 손 댔다가 원상복구 해놓으라고 할까봐 걱정도 되고요. 우리 촌에서도 석양이 뉘엿뉘엿 질 때까지는 논밭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주인이거든요. 이건 내 논이고, 내 밭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죠. 내 소유의 공간을 가꾸는 건 재미가 있잖아요.

현준 : 그렇죠. 사실 그건 인간의 본능이죠. 저도 전에 월세로 살 때 집주인 아주머니가 그러셨어요. "나가라고 안 할 테니까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사세요." 그런데 어떻게 월세를 내는 집이 내 집이겠어요? 그건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공유경제'라는 말을 싫어해요. 저는 그 말이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을 소작농으로 만들어놓고서 "한 달에 몇십에서 몇백만 원만 내면 좋은 집에서 호텔 같은 서비스를 받고 사는데 굳이 네 집을 가질 이유가 뭐가 있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해요.

제동 : 아, 그렇구나!

현준 : "이제는 회사 차릴 때 사무실 안 사도 돼. 사옥 없어도 돼. 그냥 월세만 내고 써. 그럼 적은 돈으로 어디서든지 창업할 수 있잖아. 좋지?" 이때 누가 돈 법니까? 공유 오피스 같은 회사만 돈 벌어요. 결국 공유경제는 내가 부동산 자산으로 돈 벌 기회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프루이트아이고 사례처럼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동 :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도 동물이니까 비슷할 것 같은데, 동물은 자신의 서식지가 안락하거나 먹고살 만큼 기본적인 것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번식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현준 : 네, 본능적인거요.

 

p138

제동 : 맞아요. 엄마나 아빠가 밥 먹으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그 작은 사회 안에서 놀았던 공통의 추억 때문에 그렇게 전학 가기가 싫고 그랬죠. 지금은 아이 때부터 그런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더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자기만의 좁은 공간에 점점 더 갇히게 되고 사회로 나가면 더 불안하고..

현준 : 그렇죠. 강 건너편 사람과 이쪽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할 수 있는 중간지대,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커먼그라운드(Common Ground)'가 필요해요. 제동 씨도 아침에 현관문 열고 나오면 알겠지만, 지금 우리 주변엔 계속 이동해야 하는 공간밖에 없거든요.

제동 : 맞아요. 멈추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죠.

현준 : 인도를 걷든지 차를 타고 이동을 하든지 움직이는 공간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어디 가서 않으려면 돈을 내고 카페에 들어가야 해요. 대한민국 서울이 전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카페 수가 가장 많거든요. 공원도 적고, 벤치도 없고, 공짜로 않을 데가 없으니까요.

제동 : 유럽에 여행을 가보면 걷다가 아무 성당에나 들어가 앉아 있어도 참 좋잖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은 편의점 앞에 있는 의자 정도인 것 같아요.

현준 : 그렇죠. 우리는 그런 공간이 없으니까 별다방에 가든, 빽다방에 가든, 자판기 커피를 마시든 이 사회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돈을 내야만 쓸 수 있잖아요.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죠. 돈 많은 사람은 비싼 데로 가고, 돈 없는 사람은 싼 데로 가니까 서로 다른 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공통의 추억을 만들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 서로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지거든요.

 

p141

현준 : 코로나가 이 사회의 기본 구조를 많은 부분 흔들어놓고 있거든요. 지금까지 해오던 관성이 깨진 거잖아요. 이 얘기는 공간 체계도 그동안 관성으로 해오던 것들이 어느 정도는 와해될 거라는 의미에요. 그러면 '헤쳐 모여'가 되겠죠.

제동 : 충격을 주는 거네요.

현준 : 그렇죠. 예를 들어 그전에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지만 직장 상사가 싫어해서 안 했잖아요. 온라인 예배도 가능했지만 교회에서 별로 안 좋아하니까 계속 꼬였던 건데, 지금은 전염병 때문에 좋든 싫든 온란인으로 해야 하니까요. 그러면 공간을 통해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권력을 내려놓게 되고, 그 구조가 해체되면서 재배치가 될 거에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빨리 공통의 목표를 정하고, 그 꿈을 이루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를 재구성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동 : 쉽사리 내려놓지 않았던 기득권을 어쩔 수 없이 내려놓게 되겠네요.

현준 : 그렇ㄹ죠. 유럽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흑사병이 돌았던 탓에 중세사회를 끝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죠. 흑사병이 없었다면 교회의 권력은 계속 유지됐을 거에요.

제동 : 마녀사냥 하고, 문자와 신을 독점하고...

현준 : 그렇죠. 1,000년 넘게 문자와 신을 독점해온 그 시스템을 종식한 게 흑사병이에요. 전염병 창궐에 무기력했던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죠. 코로나 사태 이후 어쨋든 우리의 생활방식이나 공간 구조를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재배치 하느냐, 이것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인 거죠.

 

p147

제동 : 우리나라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깨끗하고 의료체계도 잘 갖춰져 있잖아요.

현준 : 저는 해외에서도 오래 생활했지만,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상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정말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나라가 발전하려면 제대로 된 도시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번에 코로나 방역에 잘 대처했잖아요. 전염병에 강한 도시는 제대로 된 도시 모델이거든요. 도시 모델이라고 하면 복잡하게 많은 요소가 있을 것 같지만 제일 기본적인 게 물 공급이 잘 되고 전염병이 없는 거에요.

제동 : 아, 과거에 로마와 파리가 발전한 것처럼 상하수도 문제가 해결된 도시군요.

현준 : 그렇죠. 거기서 더 나아가 19세기부터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전염병을 상당 부분 통제하기 시작했어요. 예방주사라든지 항생제가 없었다면 인구가 1,000만 명이나 되는 도시는 나올 수 없었을 거에요. 잉카문명이나 마야문명이 멸망한 것도 다 전염병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전염병에 강한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드는 것이 국가 경쟁력과도 연결돼요.

 

p148

제동 : 누구나 공기 좋고 물 좋은 데 살고 싶어하잖아요. 집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집을 고를 땐 주변에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찾게 되잖아요.

현준 : 그렇죠. 그런 곳으로 모이죠.

제동 : 수도권 집값이 너무 올라가니까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도시는 복잡하니까 거기로 모이면 안 돼."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현준 쎔 얘기는 오히려 사람이 살고 싶은 곳에 더 많은 집을 공급하고,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건강한 공간을 늘려가야 한다는 거죠?

현준 : 맞아요. 거기서 꼭 필요한 것이 다양성이에요. 예를 들어 강남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렇다고 강남의 인구 밀도만 높이면 삶의 질이 높아질 거라고 보지는 않아요. 밀도가 어느 정도 이상 올라가면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겠죠. 그때쯤 누군가가 부산이나 목포처럼 바다가 보이는 어느 지역에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죠. 이때 사람들이 그곳을 보고 '저기에는 서울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이 있어'라는 생각 들게 할 수 있다면 또 그쪽으로 이동해가겠죠.

 

p151

현준 : 지난 한 10년간의 도시 재생 사례를 보면 다양성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곳이 어딘 줄 아세요? 바로 익선동이에요. 낙후돼서 사람들 발길이 뜸했던 동네가 젊은이들이 몰리는 활기찬 동네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중정(中庭)을 지붕으로 덮어 실내 공간으로 바꿨기 때문이에요.

 이게 원칙적으로는 불법 점유인데, 어차피 나중에 철거될 거니까 관청에서 벌금만 좀 받고 눈감아줬어요. 만약 법대로 건폐율(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 면적의 비율)을 적용하면 다 철거해야 하거든요. 그러면 돈 가진 사람만 새 건물을 지을 수 있겠죠. 그런데 중정에 지붕만 덮으면 공사비가 많이 안 들잖아요. 그러니까 자본이 많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창업할 수 있는 공간 구조가 된 거에요. 약간의 아이디어를 보태고 시스템을 조금 바꾸면 되는 거였어요.

제동 : 아,, 그래서 가보면 골목마다 개성이 살아 있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나봐요.

현준 : 앞서 제가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는 했는데, 다양성이 나오려면 핵심은 소자본 창업이 쉬워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해요. 지금 있는 규칙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창업하라고 하면 결국 대자본이 들어와 기존 건물을 다 밀고 쇼핑몰 거리를 만들겠죠. 그러면 소자본 창업 기회는 또 없어지는 거에요.

 

p153

제동 : 현준 쎔 얘기처럼 선택지가 많고 다양성이 있는 공간이 우리 주변에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안 되는 이유가, 사람들은 저마다 살고 싶은 곳들이 있고 꿈꾸는 데가 있는데 그 꿈마저 다 꺽여버린 세상이 됐기 때문이잖아요. 어디서 봤는데, 싱가포르는 원래 모든 국민이 자기 소유의 집을 갖는 1가구 1주택을 목표로 출발했다던데, 맞나요?

현준 : 네. 싱가포르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거의 다양성이에요. 싱가포르에서는 똑같이 생긴 아파트 단지를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똑같은 형태의 주거지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처럼 서울, 대전, 대구, 판교, 세종 할 것 없이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주거지부터 획일화가 되니까 점점 더 가치관이 정량화되는 것 같아요.

제동 : 선택지가 몇 개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네요.

현준 : 그렇죠. 그러니까 그다음부터는 가치를 부여할 데가 돈밖에 없는 거에요. 제동 씨 집이나 저희 집이나 거의 다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그러면 자기만의 독특한 가치가 없어요. 내 집의 가치는 결국 집값밖에 안 남는 세상이 되는 거죠. 그리고 아파트를 똑같은 모양으로 지으면 물물교환이 쉬워지면서 아파트가 화폐 기능을 갖게 되요.

 우리나라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각 분야에서 생각해야겠지만, 건축가로서 제가 제안할 수 있는 부분은 이거에요. "집을 다양하게 만들어라. 도시도 다양하게 디자인해라. 다양성을 키워라."

제동 : 그래야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리지 않고,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니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해지겠네요.

현준 : 그렇죠. 만약 100명이 있는데 선택지가 딱 하나밖에 없으면 99명은 경쟁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다양성을 10배 늘리면 행복한 사람이 10배 늘어나는 거에요. 우리 주택 문제를 단순 공급으로만 해결하겠다고 하면..., 전 답이 없다고 봅니다. 공급도 당연히 늘려야 하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도 물론 좋지만,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동 : 맞아요.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한강뷰도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지겨울 수 있거든요.

현준 : 서울이 엄청 넓잖아요. 그러면 정말 살고 싶은 동네가 100군데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특하고 좋은 동네가 100군데 정도 생기면 주택형태도 다양해지고 인구도 좀 분산되겠죠.

 

 

세번째 만남 x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

 

p244

채경 : 지금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달 궤도선에 주어진 기회가 단 한 번뿐이거든요. 그 한 번의 기회를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제동 : 기회가 왜 한 번밖에 없나요?

채경 : 달 탐사 프로젝트에 돈이 많이 들어요. 제가 알기로는 예산이 2,000억 원 이상 되는데, 국민들의 세금으로 얻은 그 기회를 달 과학자들이 함부로 낭비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이번에 실패 했는데 2,000억 원 한 번만 더 지원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기도 어려운 거죠. 누군가 "너희가 하고 있는 달 탐사 프로젝트가 그 정도의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거든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아무런 기여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당장 달 탐사 못 한다고 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요.

제동 : 제가 물어보고 싶었는데 채경 쎔이 먼저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사실 '지금 당장 달에 가서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도 있긴 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국가 예산 500조 원 중에 2,000억 원 정도 들어가는 거잖아요? 물론 GDP 규모가 다르지만 다른 나라에서 투자하는 비용에 의하면 그렇게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2,000억 원이면 그게 얼마야?" 싶은 거죠.

 

채경 : 예전에 미국과 구소련이 한창 우주 경쟁을 할 때는 2년 동안 달 탐사선을 20대씩 보냈어요. 그러면 그게 다 성공했느냐? 그렇지 않았거든요. 10대 보내면 2대 성공하던 시절이었죠.

제동 : 그때는 미국과 구소련이 누가 세계를 선도하느냐를 두고 자존심 대결을 하던 때니까요.

채경 : 네. 당시에는 열 번을 실패해도 계속해보라는 분위기였을 거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달 과학자들에게 60,70년이 뒤처진 상황에서 딱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거에요. 우주 미션은 변수가 많아서 실패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렇다고 실패해도 좀 봐달라고 합리화하려거나 밑밥을 까는 건 아니고요.

제동 : 밑밥 좀 까세요. 괜찮아요. 실패 경험도 쌓여야 성공 확률도 높아지고, 채경 쌤의 후배들도 그 실수를 토양 삼아서 또 도전할 수 있는 거잖아요.

채경 : 네. 그래야 다음 세대 친구들도 용기를 내서 '달 연구 재밌겠네. 달 탐사해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이 길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그렇게밖에 못해? 왜 자꾸 지연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만큼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있구나!' 이런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주시면 큰 힘이 되고 감사하죠.

 

 

네번째 만남 x 경제전문가 이원재 대표

 

p375

제동 : 솔직히 저 같은 사람은 신호(기본 소득을 의미함) 안 받아도 삽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웃을 여유가 없으면 제 직업도 의미가 없거든요. 사람들이 분노해 있는데 코미디가 되겠어요? 오히려 어떤 재밋는 얘기를 해도 돌을 던질 가능성이 커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사람들과 웃으면서 얘기하는 거에요. 사실 돈 받지 않고 강연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럼 안 웃겨도 되거든요. 희한한 게 그렇게 할 때가 저도 재밋고, 사람들도 훨씬 재밌어하는 것 같아요. 원래 돈 받고 하면 다 노동이고, 돈 내고 하면 놀이잖아요. 하지만 요즘은 돈 받고 노동도 하고 싶네요.

 

p378

제동 :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갈등이 첨예한 이유 중엔 축제가 적다는 것도 있어요. 축제라고 하면 거창한 것 같지만, 마을의 크고 작은 경조사도 사람들이 모여 오해와 갈등을 푸는 축제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마을의 자잘한 축제들이 모두 대규모 축제에 잠식당하고, 경조사가 다 기업화돼 버렸어요. 지금은 장례식도 다 상조회사에 맡기잖아요. 예전에는 누가 돌아가시면 동네 주민들이 다 함께 했거든요. 뭐가 더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렇게 바뀌었다는 거죠.

 그때 사흘간 밤새워 음식 하고 상여 메고 하면서도 돈을 받지 않았어요. 그냥 남은 음식 싸 가고, 상여 메시는 분들에게 막걸리 대접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섯 번째 만남  x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

 

재승 : 뇌과학적으로 보면 우리 뇌에 인슐라(insula)라는 영역이 있어요. 뇌섬이라고도 하는데, 역겨움을 표상하고 공정함을 측정하는 뇌 영역이에요.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거나 그런 상황을 보면 분노 반응을 일으키는 곳이죠.

제동 : 아, 뇌섬이라는 곳에서 분노를 느끼게 하는군요?

재승 : 네, 시상하부와 함께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부모님이 형이나 언니에게만 잘해주거나 막내만 예뻐해서 화가 날 때가 있잖아요. 그 분노의 반응을 만들어내는 뇌 영역이 바로 인슐라에요. 어미 새가 벌레를 물고 와서 딱 한 마리 새끼한테만 계속 벌레를 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 나머지 새끼 새들의 뇌섬은 난리가 나요. 어미가 첫째에게만 계속 먹이를 준다면 나머지 새들은 자기도 달라고 지저귀어야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잖아요.

 만약 "제가 봐도 첫째가 예쁘니 첫째만 주세요." "먹이가 남거든 그때 주세요." "전 안주셔도 되요" 이렇게 쿨하게 반응하면 굶어죽어요.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 반응은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으려는 전략이기도 한 거죠. 안 그러면 굶어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차별과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내가 되었든 내 주변 사람이 되었든 그것에 분노하는 뇌가 있는 거에요.

제동 : 그게 생존과 관련된 아주 원초적인 욕구인 거네요.

재승 : 그렇죠. 그래서 부모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딨어? 다 똑같이 대했어"해도 아이들은 다 기억하고 있는 거에요. 부모가 언제 나를 차별했고 상처를 줬는지를,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걸 너무나 잘 기억하는 뇌 영역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여섯 번째 만남 x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

 

p497

정모 : 네, 처음에는 저도 과학자와 신앙인 사이에서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괜찮아졌어요. 복음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과학적인 사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신앙인들이 과학적인 사실에 두려움을 갖는다면, 그건 성서에 대한 신뢰가 약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신뢰가 있으면 얼마든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바꿀 수도 있거든요.

제동 : 그래요? 좀더 자세히 말해줘봐요.

정모 : 예를 들면 옛날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었잖아요. 지동설로 바뀔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천동설, 지동설로 고민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동 : 그렇죠.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과학자들 덕분이죠.

정모 : 1992년 10월 31일이 아주 중요한 날이에요. 혹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제동 : 1992년이면 제가 대학교 1학년인데, 분명 술 먹고 있었을 거에요.

정모 : 그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갈릴레오와 후손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합니다. "360여 년 전 우리 로마 교황청이 당신들의 조상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선생님을 부당하게 핍박했습니다. 알고봤더니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닌 태양계 변방의 작은 행성에 불과하더군요. 용서해주십시요. 그리고 전세계 만방의 카톨릭교도들에게 알려드리오니, 오늘부터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인정합니다."

제동 : 1992년에 그런 발표를 했군요.

정모 : 네, 물론 그전에도 알았지만 그들의 잘못을 고백하면 카톨릭과 교황청의 권위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만약 교황청에서 아직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면 누가 교황청의 권위를 인정했겠어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느냐면 지동설뿐 아니라 빅뱅이론과 진화론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자고 진지하게 권유를 하십니다.

 

p502

제동 : 앞에서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정모 : 그렇죠. 그 공통 조상은 침팬지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에요. 그 조상의 자식 중 하나는 침팬지의 조상이 되고, 다른 자식 중 하나는 인간의 조상이 된 거죠.

제동 : 그러면 침팬지나 오랑우탄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네요? 저는 이게 항상 헷갈렸어요.

정모 : 전혀 없죠. 심지어 교과서에 그런 그림 있었잖아요. 네 발로 걷던 침팬지가 점점 두 발로 걷는 사람이 되는 그림이요. 그게 아주 큰 오류인 거에요. 지금이라도 교과서 내용을 바꾸면 후세가 공부하기 편할 텐데, 못 바꾸고 있어요.

 그 그림을 보면 침팬지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되고, 그게 호모에렉투스가 되고, 네안데르탈인이 된다고 그러는데, 우리는 그렇게 직선으로 진화한 게 아니라 계속 갈라서고, 갈라서고, 갈라선 거에요. 나무에서 가지들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져 쫙 뻗어나간 것처럼 그 나뭇가지 끝에는 사람, 침팬지, 원숭이, 지렁이, 풍뎅이 들이 있는 거죠. 지금 살아 있는 생명체는 다 진화의 끄트머리에 있는 거에요. 이제까지 우리는 지렁이는 진화가 덜 된 하등한 생물이라고 생각했잖아요. 우리가 진화에 대한 개념이 없다보니까 다른 동물들을 하찮게 여기는데,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면 다른 생명들이 우리와 함게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동반자라는 걸 알게 돼요.

제동 : 듣고보니까 정말로 겸손해지네요.

정모 : 그렇죠. 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됐어요. 빅뱅의 순간에 수소가 생겨났어요. 또 별에서 다양한 원소가 생성되고,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이 원소들이 다 흩어졌는데 그중 어떤 건 단백질이 되고, 어떤 건 지방이 되면서 우리 몸에 들어와서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거죠.

제동 : 과학을 제대로 알면 차별하는 마음이 사라지겠네요. 특히 인종차별은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정모 : 과학 논문에서는 'Race'라는 단어를 쓰면 안 돼요. 과학적인 단어가 아니에요. "인종(Race)은 없다. 인종주의(Racism)만 있을 뿐이다." 이런 말도 있죠.

제동 : 와, 좀 멋있는데요? 있어 보이고, 사실이어서 더 좋고요.

정모 : 생물학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단일 종인 호모사피엔스에 속한다고 표현하면 되죠. 하지만 찰스 다윈도 'Race'란 단어를 썼어요. 물론 1800년대 얘기죠. 찰스 다윈도 어마어마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찰스 다윈을 비난하기는 힘들어요. 그 당시 과학 상식의 기준으로 용인됐던 부분이니까요. 당시의 본능과 지식의 한계였던 거죠. 그렇지만 지금은 그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그랬다고 나도 그런 태도를 가지면 안 되겠죠.

 

p520

정모 : 의심할 때 중요한 게 숫자에요. 숫자로 의심해야죠.

제동 : 숫자요?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정모 : 2017년에 '살충제 달걀 파동'이 있었잖아요. 일부 양계장에서 피프로닐(Fipronil)이라는 살충제를 막 뿌렸던 거에요. 피프로닐은 간, 신장, 갑상선을 손상시킬 수도 있는 독성 물질이에요. 그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달걀이 피프로닐에 오염돼서 큰일이다'라는 식의 보도를 했어요. 그리고 2018년 말에는 신생아들이 맞는 결핵 예방용 백신에서 비소 성분이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전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백신을 안 맞히려고 했던 일도 있었어요. 비소가 뭐냐면 사약의 주성분이에요. 그런데 따져봐야죠. 설마 멀쩡한 백신에 비소를 넣었을 리는 없잖아요.

 알고보니 전에도 비소가 있었는데 너무 적은 양이라 있는지도 몰랐다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그것을 검출할 수 있게 된 거에요. 그만큼 적은 양이었어요. 우리가 매일 먹는 밥에도 비소가 들어 있거든요. 백신에는 밥 한 숟가락에 있는 양만큼의 비소가 들어 있었어요. 제가 지금 50대 중반이고 50년 동안 밥을 먹었지만 아직 비소에 중독되지 않았거든요.

제동 : 대신 밥에 중독되셨잖아요. 

정모 : 그렇죠. 밥에는 중독됐지만, 비소에는 중독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중요한 건 숫자인데, 피프로닐도 마찬가지였어요. 60g짜리 달걀에 0.002mg쯤 검출됐던 것 같은데, WHO가 정한 일일섭취허용량, 급성독성참고량에 따르면 체중이 60kg인 사람이 평생 매일 5.5개 먹어도 되는 양이에요.

제동 : 하루에 5.5개를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요?

정모 : 네, WHO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체중이 60kg인 사람이 하루에 246개를 먹으면 문제가 생겨요. 그러면 간이나 신장, 갑상선에 독성이 생긴다는 거에요. 그런데 실제로 하루에 달걀 246개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제동 : 배불러서 죽을 것 같아요.

정모 : 네, 해부학적인 문제가 생겨서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배 터져 죽는 거죠.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달걀이 오염돼도 괜찮다는 게 아니에요. 문제가 생기면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고 얼른 조치하면 되지,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서 달걀값은 치솟고, 빵집이 망하고, 수십 개의 양계장이 파산해서 그걸 다시 살려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세금을 쏟아부을 필요는 없었다는 거죠. 우리가 숫자로만 계산해보면 문제를 좀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불필요한 혼란을 줄일 수 있어요. 물론 돈도 절약할 수 있고요.

 이렇게 과학적 태도의 시작은 의심인데, 의심은 모두에게 해야해요. 좋은 사람도 의심하고 좋은 말도 의심하는 거에요. 이때 그 의심에 답해주는 과학자의 태도는 겸손함인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정말 겸손하거든요.

 

p526

제동 : 그런데 호모사피엔스가 잘못하는 것도 많잖아요. 특히 요즘은 자연과 환경 분야에서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저번에 관장님이 북극 빙하가 녹는 것과 해수면이 높아져서 도시가 물에 잠기는 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걸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건 확실한 겁니까?

정모 : 이런 거에요. 빙하는 해수면 위로 요만큼만 나와 있고, 그 아래 더 많은 부분은 물에 잠겨 있잖아요. 신기하게도 다른 물질은 고체가 되면 부피가 줄어드는데, 물은 고체가 되면 부피가 커져요.

제동 : 그래서 물을 꽉 채워서 얼리면 그릇이 터지죠?

정모 : 네, 터져요. 그러니까 생각해보세요. 대부분의 빙하는 물속에 잠겨 있잖아요. 얼음이 해수면을 높여놨는데 빙하가 녹으면 부피가 줄어들겠죠?

제동 : 그러면 오히려 해수면이 낮아진다는 얘기에요?

정모 : 낮아져야죠.

제동 : 그런데 왜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면 저지대 국가들이 침수된다. 자연재해가 생긴다, 하는 말들이 나올까요?

정모 : 북극 바다에 있는 빙하가 다 녹으면 해수면은 낮아집니다. 문제는 빙하가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육지에도 어마어마한 빙하가 있고 남극 빙하는 다 육지에 있어요. 그린란드나 캐나다도 마찬가지에요. 이게 녹으면 그대로 바다로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남극 대륙에 있는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지고,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오히려 해수면이 낮아지는 거에요.

 

일곱 번째 만남 x 대중문화평론가 김창남 교수

 

p595

창남 : 아,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이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공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나 싶어요. 학생들 역시도 대학에 다니는 기간을 그런 시간으로 인식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대학이 삶의 연습을 마음놓고 해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동 :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창남 : 그렇지. 우리는 학생 때 만화책이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너 인마, 공부해야지, 왜 쓸데없는 짓 하고 있어?" 이런 얘기를 들어왔잖아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밥벌이 외에 다른 걸 할라치면 또 같은 얘기를 듣게 되요. "왜 일은 안 하고 쓸데없는 짓을 해?" 바로 그 쓸데없는 짓을 맘껏 해볼 수 있는 때가 대학시절인 거죠.

제동 : 그 쓸데없는 짓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할 수도 있잖아요.

창남 : 맞아요. 그런데 요즘 보면 많은 대학에서 총학생회도 구성되지 않고, 동아리 활동도 잘 안 돼요. 그런 것들이 당장 토익시험 보고 취업 면접 준비하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 그 도로의 논리에서 보면 쓸데없는 일이 돼버린 건데, 진짜 대학의 의미는 바로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대학에 있는 동안 비교적 자유롭게, 커리큘럼이나 세속적인 스펙이 요구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거든요.

제동 : 우리가 경쟁사회에서 살다보니까 '이러다 낙오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알면서도 쉽게 시도를 못하는 것 같아요.

창남 : 사회 시스템 자체가 다 함께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쉽지 않죠. '어떻게 하면 두려움 없이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어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서의 대학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나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동 :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금 그렇지 않다는 말씀인데, 이것이 젊은이들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이 되면 또 안 되는 거잖아요.

창남 : 당연하죠. 한국 사회가 그렇게 몰고 간 거니까. 그래서 대학의 기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저는 가끔 캠퍼스에서 기타를 메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반가워요.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건 그 친구의 전공이나 스펙과 무관한, 소위 말하는 '쓸데없는 일'일 거에요. 그래도 그 친구는 그것을 하는 거죠.

 

 

 

제동 : 보통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캠퍼스에서 술 먹지 마시오!" 하잖아요. 그런 얘기 들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캠퍼스의 낭만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될라고...

창남 : 맞아요. 그러니까 요즘 대학생들을 탓할 수가 없는 거죠. 사회 전체가 그렇게 움직여왔고, 대학에 그런 기능을 강요했으니가. 2006년 서울대 입학식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대학시절에는 그릇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릇 자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먼저 그릇을 비우고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동 :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당장 실천하기는 쉽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 맞는 말 같아요.

창남 : 내가 이만큼 살아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내가 가지고 있던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건 굉장히 힘들죠. 대학에서 그러한 과정을 만들어가고, 그 이후에 그릇을 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신 건데, 요즘 내가 느끼는 안타까움은 학생들이 자기가 가진 그릇을 비우고 좀더 크고 새롭고 튼튼한 그릇으로 키우는 과정을 잘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은 데서 와요. 그냥 가지고 있는 그릇을 빨리 채우려고 드는 것이 요즘 대학생의 모습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제동 : 사실 학생들이 그럴 수 있으려면 사회에 나갔을 때 어느 정도 안정적인 요건들이 갖춰져 있어야 하잖아요. 앞서 쌤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이 사회에서 버림받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어야 불안이 해소되고 그릇을 키우는 그런 경험들을 해나갈 텐데, 또다시 패배주의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우리가 그런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은 많은데 왜 안 될까요?

창남 : 글쎄요. 내가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동 씨가 말한 것처럼 이 사회와 국가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사회구성원들에게 심어주는 게 핵심이겠죠. 그게 기본소득의 형태가 됐든 보편적 복지 형태가 됐든 어쨌거나 이 사회가 각자도생의 정글이라는 인식을 안 가져도 될 만큼의 최소한 신뢰라도 심어주는 거에요.

제동 : 이 사회가 정글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말라'는 게 아니고, '안 가져도 되게끔' 한다는 게 중요하네요.

창남 : 그렇죠. 불안한 사람에게 "불안해하지 마."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제동 :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만 있어도 힘이 좀 될 텐데 그게 없으니까 더 불안한 거죠.

창남 : 예컨대 기본소득만 해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건 안 될 거야'하는 인식을 먼저 심어주잖아요. 언론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이 사회의 담론구조를 장악한 권력 집단,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건 아닌가. 내가 그래서 젊은 친구들에게 제일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였어요. "두려워하지 말자." 두려움은 나 혼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거잖아요.

제동 : 맞아요.

창남 : 내 친구가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같이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잖아요. 언젠가 우리 학생한테 들은 사례인데, 나 혼자 살면 월세 50만 원을 내야 하지만 친구와 같이 살면 절반만 내도 해결할 방법이 있는 거죠. 그런데 각자 해결하려다보니까 친구도 경쟁자가 되고 승부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죠. 신영복 선생님 말씀처럼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날 거예요. 그렇게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또한 대학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제동 : 저처럼 불안감이 많은 사람도 쌤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듯이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학이 될 수 있겠네요.

창남 : "친구가 되지 못하는 스승은 좋은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되지 못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해주신 말씀이에요. 명나라 때 이탁오라는 사상가가 했던 말을 현대식으로 말씀해주신 것인데, 저한테는 굉장히 깊이 남아 있어요. 거의 마지막에 해주신 말씀이거든요. 요즘 친구들을 만나거나 학생들과 대화할 때 이 얘기를 꼭 해요. 결국 가장 좋은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자 스승이 되는 관계인 거죠.

 

p608

창남 : 신영복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부란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로의 여행"이에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하는 것은 대상을 타자화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걸 의미해요. 공감하는 거죠. 이해에서 공감으로, 이게 아주 힘든 과정이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