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베스트셀러로 라틴어와 관계된 에피소드 중심의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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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6

 

 저는 소통의 도구로서 언어는 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되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항구를 떠나 먼 바다로 나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해요. 어쩌면 그것은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물거품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배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물거품을 보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죠. 이는 정작 메시지를 읽지 않고 그 파장에 집중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오해가 쌓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p56

 

 언어 학습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것은 학습의 방향성이 다른 학문들에도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 즉 '어떤 것에 대해 아는 것' 그 자체가 학문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공부의 길이 될 겁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학교와 집에서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대답을 지금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공부해서 남을 줘야 할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일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착취당하며 사회구조적으로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는 무신경해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의 신음소리는 모른 척하기 일쑤입니다.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들여 공부를 한 머리만 있고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에 그 공부가 무기가 아니라 흉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p85

 

 공부하는 과정은 일을 해나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부든 일이든 긴장만큼이나 이완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순간에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죠. 그러자면 스스로의 리듬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 중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두뇌나 남다른 집중력보다 더 중요한 자세입니다.

 

 

p87

 

 삶이 그런 것인데도 사람들은 종종 착각해요. 안정적인 삶, 평온한 삶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요. 이것은 착각입니다. "지금 사정이 여러모로 안 좋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 일을 혹은 공부를 할 수 없어. 나중에 좀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런 시간은 잘 오지 않아요. 아니,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필요가 없거나 늦을지도 모르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갈등과 긴장과 불안의 연속 가운데서 일상을 추구하는 것이 삶이기도 하고요. 결국 고통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음의 표시입니다. 산 사람,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끼는데 이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모순이 있는 소망이겠지요. 존재하기에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갑니다.

 

 

p96

 

 그리스도교는 스토아 학파와 키케로 등 로마의 법사상가들의 주장처럼 모든 인간이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다만 스토아 학파가 인간이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여 도덕적 평등을 주장하였다면, 그리스도교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에 근거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p106

 

 1555년 유럽에서 이루어진 종파 간의 화해 원칙인 '아우크스부르크 평화 회의 Pace di Augusta'이든, 1789년 북미 지역에서 행해진 여러 종파의 공존 원칙인 '미국 연방 헌법 제정'이든 역사적으로 최초로 인정된 권리는 바로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였습니다. 즉 이 권리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종교의 자유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양심의 문제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는 양심의 자유로 확대되고, 이윽고 출판 및 표현에 대한 자유, 집회 및 결사에 대한 자유에까지 그 범위가 넓어지게 되죠. 다시 말해 우리가 오늘날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향유하는 권리는 그 출발이 종교의 자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법, 국가와 종교에 대한 개념은 다소 절대적인 일원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법률이란 마호메트가 전파한 종교적, 사회적 교리의 실천적인 면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슬람교에서 인권은 자유로운 이슬람교도 성인에게만 온전히 존재합니다. 비이슬람교도와 노예는 부분적인 보호만 받거나 어떠한 법적(행위) 능력도 갖지 못합니다. 이슬람교도가 이슬람교 원칙에 반대하여 활동하거나 이슬람교 신앙을 포기하면 이슬람 국가의 국적을 잃을 수도 있어요. 배우자와 자신의 종교를 변경하는 일은 그 자체로 혼인 해소, 상속의 포기와 시민권 상실morte civille을 가져올 수도 있고요. 이슬람교는다른 모든 종교의 개종 권유를 거부하면서도 자신들은 타인에게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열렬히 권유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은 유엔 비정부기구를 통해 세계 인권선언 제18조와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협약' 제9조 1항에 있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선언의 내용은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할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선교, 신앙실천, 예배 및 의식에 따라서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규정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이슬람 국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국가 다음에 괄호로 표기한 것은 "이슬람법이 입법의 주요 원천이다"라는 내용이 각 나라 헌법 몇 조에 실려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알제리(헌법 제4조),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헌법 제1조), 모리타니(헌법 제2조)가 있고, 수단도 이슬람 국가에 포함해야 합니다. 아시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헌법 제5조), 이라크(헌법 제13조), 이란(헌법 제1조), 요르단(헌법 제2조), 말레이시아(헌법 제3조), 파키스탄(헌법 제1조), 시리아(헌법 제2조와 3조)와 예멘(헌법 제3조)이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이슬람은 국교입니다. 이슬람교가 가진 국교로서의 영향력은 신정神政 체제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남예멘에서 최고조에 달하죠. 입법, 교육, 국가의 경영과 정치적 입장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고요. 이슬람 국교의 근본 요소는 "이슬람법이 입법의 주요 원천이다"라고 정의하는 데 있습니다(시리아 헌법 제2조).

 

 

p127

 

 어떤 사람의 성취는 그 자체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니까요. 결국 누군가의 생각이나 성취를 인정하더라도 그의 태도에 상처를 받거나 불쾌감을 느낀다면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들을 더는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리게 됩니다.

 

 

p134.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그가 말한 이 문장은 법의학뿐만 아니라 종교학에서도 사용되는데, 그 의미는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개인적, 사회적인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실존과 마주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외되고 고독한 인간, 특히 윤리적 인간이 비윤리적 사회에서 고통받고 방황하는 모습에서 인간은 영적인 동물로서 이성적 인간homo sapiens이자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을 지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학에서 이 명문을 해석한 내용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각하고 난 뒤부터 신을 경배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이 단순히 강력한 절대자에게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하는 냉혹한 체제와 부조리한 가치관으로부터 고통받는 삶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즉 초기의 인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신神적인 것에서부터 '유추analogia'하려고 했던 것이죠.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Deus non indiget nostri, sed nos indigemus Dei.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p208

 

 무솔리니 건축물의 특징은 파시즘을 상징할 수 있도록 웅장하고 위압적이라는 겁니다. 건축가이자 도시 계획자인 마르첼로 피아첸티니와 함께 바티칸 광장에서부터 콜로세움에 이르는 거대한 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준비하여 바티칸 광장과 콜로세움 두 부분에서 동시에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그 시대 바티칸 광장 팡에는 여러 건물들이 있어서 광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골목들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었는데, 무솔리니는 광장 앞에 있는 건물을 모두 허물고 도로를 내기 시작했어요. 독재자가 사유재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덕에 오늘날 바티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광장에 이르는 '화해의 거리'라는 뜻의 '비아 델라 리콘칠리아지오네Via della Riconcilazione'를 볼 수 있습니다.

 

 

p220

 

 스피노자는 "예속적인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그저 운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거나, 자신보다 강한 능력을 지닌 개체에 압도되어 수동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속적일 수록 무엇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을 잃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증대시킬 적합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욕망은 그저 맹목적인 채로 남아 있고, 자신의 능력이나 활동을 확대시키지 못한 채로 무수한 단절과 실패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에티카> 4부 정리 60 증명)"라고 말합니다.

 

 p244

 

 중세 시대의 대학은 어떻게 설립되었을까요? 대학이 설립되기 이전의 중세 교육은 여러 신학적 주제와 더불어 사도 바오로(바울)의 사상이 지배했습니다. 바오로의 사상에 바탕을 둔 중세의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편으로는 믿음과 책임감을 강조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심어주었습니다. 앞서 8강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바오로의 사상과 긴밀하게 관련되는 또 다른 문제는 로마서 13장의 '그리스도인과 권위'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 초창기 교회와 나라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현세의 권위는 신이 정해준 것이므로 그리스인들은 합법적인 모든 일에 대해 국가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주장의 영향으로 교회의 법령이 일반 시민법보다 더 상위에 자리하게 됐습니다. 그와 동시에 성경이 법률적 차원의 공동 유산이자 공통 규범이 됐고 점차 모든 것의 근원이 되기에 이르죠.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성경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절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믿는 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국 중세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를 변함없이 인정하고 유념하면서도 세속의 학물과 연계해서 문제를 풀고자 했어요. 이것이 유럽에서 대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p282

 

 Letum non ominia fini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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