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에세이와 소설이 혼재해있다.

어떤 에피는 완전히 소설이지만, 어떤 에피는 에세이로 시작해서 거의 에세이로 끝날뻔 하다가 한 패러그래프 정도가 소설로서의 체면치례를 하고 있다.

 

전반부 작품들은 모호하지 않고 꽤 명확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친절한 느낌마저 든다.

 

뒤의 3개의 작품(사육제,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일인칭 단수)은 조금은 모호하다.

 

지금까지 봐왔던 하루키의 여러 작품들에서 어디선가 삐져나온 단편들을 모은 듯, 이거 어디선가 봤을듯한 느낌인데 하는 소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의, 음악이 몇 개 등장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사육제'편에 등장한 슈만의 사육제이다. 잠시 유툽으로 들어봤는데 그리 인상적이진 않다.

헤드폰으로 조용히 제대로 함 들어보면 다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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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

 그럼에도 그들은 증인석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정직하고 공정한 증인으로서. 그러나 그렇게 인내심 강한 말들을 갖춰서, 혹은 찾아내서 훗날에 남기기 위해 사람은 때로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의 마음을 조건 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의 목을,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p169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볼 줄 알았어 - 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 살던 사람이니까."

 

 그녀는 사실은 '추한 가면과 아름다운 민낯 - 아름다운 가면과 추한 민낯'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필시 자신의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사이 얼굴에 들러붙어서 뗄 수 없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네."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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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네번째 작품인 위드 더 비틀즈(With the Beatles)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톱니바퀴'의 일부 구절이 나온다. 그래서 그 작품을 읽어봤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쓴 작품같은 인상이다. 이 작품을 쓴 후 얼마 안있다가 아쿠타카와는 자살을 했다는데 작품 자체에 상당히 쫓기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그 소설에 이런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수릉여자(壽陵如子)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유행하는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자신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서 귀향했다는 <한비자>속의 청년 수릉의 고사 '한단지보(鄲之步)'와 관련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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