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도 기후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전혀 없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큰 이슈가 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 내용이 과장이 섞인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2020년인 지금에선 이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현실(그 당시로는 다가올 미래)을 너무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있기까지 하다.

 코로나19로 전세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이지만, 다가올 미래에(그것이 100년 후, 혹은 1만년 후든) 인류가 겪게 될 가장 큰 위기는 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에 대한 대책은 어떤 개인이나 한 국가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며, 오직 인류의 연대와 공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이미 인류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파멸은 이미 정해진 미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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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온난화의 급습으로 가장 먼저 티핑포인트를 넘어설 곳은 북극이다. 지금 북극의 기온 상승폭은 지구 전체의 상승폭보다 두 배나 높다.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의 온난화 속도가 특히 빠르다. 이들 지역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수은주가 2~3℃나 상승했다.

 그로 인한 영향은 이미 심각한 상태이다. 알래스카 배로의 경우 해빙(解氷) 시점이 1950년대에 비해 평균 열흘 정도 빨라졌으며, 이끼 말고 별로 나던 게 없던 툰드라 지대에서 관목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 있는 과학자들은 노스슬로프 일대 지하의 얼음쐐기(ice wedge)가 갑자기 녹으면서 곳곳에 연못이 생겨나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것들은 적어도 지난 3,000년 동안 얼어 있었다. 이는 이전에 비해 지금의 기온 변화폭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말해준다.

 

 

p59

 티핑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다. 흰 눈에 덮인 얼음은 햇빛의 80퍼센트 이상을 반사한다. 반면 푸른 빛깔의 바다는 햇빛의 95퍼센트를 흡수한다. 그러면 지구의 대기온도는 상승하고, 그 결과 다시 얼음이 녹는다. 일단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그 과정은 빠르게 자기강화적이 된다. 즉 얼음이 녹아 바다 면적이 넓어지면 그만큼 더 많으 햇빛을 흡수하게 되고, 그러면 기온의 상승폭이 커져 다음 겨울에 얼음을 만들기가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북극해 얼음의 티핑포인트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기후 모델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온난화의 일정한 단계를 넘어서면 북극해 얼음이 완전히 붕괴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예측이 일치한다.

 

p60

 그렇다면 북극해의 얼음이 왜 그리 중요할까?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얼음이 없다면 북극의 상징적인 동물인 북극곰이나 바다표범도 멸종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극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집에도 그 영향이 있을 것이다. 콜로라도에 있는 국립빙설자료센터(Snow and Ice Data Center)의 수석연구원 테드 스캠보스의 말처럼 "북극해의 얼음이 사라지면 지구 전체의 날씨도 크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세계 기후의 작동 방식 때문에 불가피한 변화이다. 대부분의 중위도권 날씨는 추운 극지방과 더운 적도지방의 기온 격차에 영향을 받는다. 영국이 1년 내내 비가 오는 것은 두 상반된 기단(氣團)의 불안정한 경계인 극전선(polar front)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미국 동쪽 해안에 몰아치는 강한 북동풍도 비슷한 경우이다. 그런데 북극이 따뜻해지면 이런 기온의 격차가 줄 것이다. 그리고 북반구의 경우 기후대들이 극지방 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온 격차가 일어나는 구역도 북상할 것이다. 그러면 비바람이 잦은 영국의 콘월이나 웨일스 같은 지역이 몇 주 혹은 몇 달씩 무풍지대인 건조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 스코틀랜드만이 비가 많고 습한 날씨를 무기한 견뎌야 할 가능성이 높다. 2장에서 다루겠지만, 미국 서부에도 가문 날씨가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인류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추측으로만 치부될 게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위성관측 자료에 의하면, 남반구와 북반구의 제트기류가 1º 씩 각각 남극 쪽과 북극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고위도의 이런 풍도(風道:대륙권 상층부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바람의 좁은 통로)가 두 기단 사이의 경계를 나타낸다고 할 때, 그것이 점점 이동한다는 것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세계의 전형적인 기후대의 위치가 이미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p88

 이산화탄소는 물에 녹으면 탄산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탄산수를 마실 때 톡 쏘는 느낌을 받는 것은 바로 그 탄산 때문이다. 그런 탄산수가 바다 전체에 녹아든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인간은 이미 바다의 알칼리성을 0.1pH만큼 줄여놓고 말았다. 카네기 연구소의 지구생태분과 교수 캔 칼데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이산화탄소 유입량은 정상치보다 50배 정도 많습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0년 안에 해양의 pH가 8.2에서 7.7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수치 같지만 pH가 0.5 떨어진다는 것은 산성도가 다섯배 올라간다는 뜻이다. 더구나 바닷물은 아주 느리게 순환하기 때문에, 설령 - 온난화의 파급효과에 대한 인류의 자각으로 - 대기의 이산화탄소 수치가 안정되더라도 그 영향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p94

 그런 점에서 2003년 여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 전역을 모니터링한 결과, 높은 기온과 심한 가뭄의 이중 스트레스 때문에 광합성 작용이 약화되면서 대륙 전역의 식물성장 속도가 30퍼센트나 떨어졌다고 한다. 북유럽의 너도밤나무 숲에서 지중해 연안의 소나무와 참나무 숲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식물 성장은 더뎌지거나 중단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신, 그것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유럽의 식물들이 추가로 약 5억 톤의 탄소를 내뿜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구의 화석연료 전체 배출량의 12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중요한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현상'이다. 기온이 올라감으로써 - 특히 폭염으로 인한 재난 발생 시에 - 숲과 토양의 탄소 배출량도 늘어나 온난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유럽과 광범위한 지역에서 장기간 지속될 경우 지구 온난화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p105

 그러나 IPCC의 예상보다 빨리 빙상들이 붕괴될 수 있다는 핸슨의 주장에는 탄탄한 물리학적 근거들이 있다. 지난 빙하기 말미에 빙상이 빠르게 해체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핸슨은 '알베도플림(albedoflip)'이라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 과정을 오늘날 다시 겪을 경우, 세계의 빙상은 기존의 예측보다 훨씬 빨리 파괴될 수 있다. 알베도플립은 간단하게 설명된다. 눈과 얼음은 녹으면서 촉촉해지는데, 이때 그 표면은 빛깔이 더 짙어지면서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한다. 그러면 표면의 온도가 상승하고, 전형적인 양의 되먹임에 따라 녹는 면적도 크게 늘어난다. 핸슨의 주장에 따르면 알베도플립 때문에 빙상의 해체가 - 수천 년이 걸리는 보다 장중한 과정이 아닌 - "폭발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실제로 그린란드와 남극 서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여름철에 엄청난 양의 얼음이 녹고 있는 것을 볼때, 눈의 입자가 녹아서 짙어지는 이러한 "격발 메커니즘(trigger mechanism)"은 벌써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핸슨은 말한다.

 

p107

 북극의 온난화를 모든 사람이 꺼리는 것은 아니다. 그린란드 빙상이 흘러내려 지구 최북단의 기후가 변해야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팻 브로도 그런 기대를 품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미국의 사업가인 그는 1997년 캐나다 북부의 황량한 마을 처칠의 항구를 7달러에 사들였다.

 이 마을은 '북극곰의 수도'라 불리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1,000명 정도의 마을 주민들의 삶은 혹독한 것이었다. 하지만 브로가 보기에 호황기가 목전에 다가와 있었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면 보잘것없던 작은 마를 처칠은 아시아와 유럽과 북아메리카 사이를 연결해주는 항로의 중요한 허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항로가 열릴 때쯤이면 북금곰의 수도 처칠은 새로운 경제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p133

 생물다양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미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생물다양성에서 고유의 가치를 찾는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인간사회는 근본적으로 자연 생태계에 의존하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TV 앞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퍼먹는 도시거주민들에게는 낯선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생선에서 땔나무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관대하게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다. 세균이 유기물을 분해하지 않으면 흙에서 농작물이 자랄 수 없다. 나무나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하지 않으면 공기는 우리가 숨 쉴 만한 것이 못된다. 우리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많은 약들은 식물과 동물에서 나는 천연물질을 원료로 한다. 그런 물질들 중에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게 더 많다. 생명은 지구의 영양분이 순환하는 것을 조절하기도 한다. 예컨대 바다에 사는 유기물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여분의 탄소를 분비하여 석회암이나 백악층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오래전에 금성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금성은 대기의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지표면의 기온이 자그마치 500℃ - 납이 녹을 정도 - 나 되기에 생명이 살 수 없다.

 이러한 생태계의 역할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과학기술로 대체할 수도 있다. 일례로 수경재배를 들 수 있다. 이는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진짜 흙 대신 합성수지와 각종 화합물질을 이용하여 식물을 재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생태계는 너무나 복잡한 그물망이어서 우리는 생태계 내에서 벌어지는 살아 있는 것들의 상호작용을 다시 만들거나 대체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커녕, 그런 것들의 상당수를 이해조차 할 수 없다. 한때 과학자들은 바이오스피어투(Biosphere-2)라는 밀폐된 인공의 세계를 만들려고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애리조나 사막에 짓는 거대한 온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실패했다. 밀폐된 온실 속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갔을 때 바이오스피어투의 주민들은 숨을 헐떡이며 나름의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생태계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명은 우리가 계속 살 수 있도록 해주는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며 생명을 파괴한다.

 

p149

 이번 세기의 온난화는 산업혁명의 태동 이후 배출된 온실가스가 누적된 결과이다(스티븐슨의 '로켓호' 같은 초기의 증기기관차가 석탄을 때면서 방대한 탄소를 발생시켰는데, 그 탄소가 아직도 지구를 덥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만약 내일 당장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지구가 전보다 더워진 상태에서 다시 열평형에 도달하려면 여러 세기가 걸릴 것이다. 지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플라이오세 수준이라고 해서 기온도 그때와 같기를 기대한다면, 주전자 물이 당장 끓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일이다.

 희망은 있다. 만약 우리가 이산화탄소 주전자 물의 불을 당장 끌 경우, 적어도 한 세기 동안은 지구기온이 3℃까지는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지금의 수치대로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2050년에 지구기온은 3℃ 이상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며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p150

 엘니뇨는 기압의 진동(oscillation)에 의해 태평양 해류가 따뜻해지는 현상으로, 세계의 날씨에 대혼란을 가져온다. 엘니뇨는 '그리스도의 아이'라는 뜻으로 페루의 어민이 붙인 이름이다. 평균 이상의 따뜻한 해수로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현상이 크리스마스 무렵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엘니뇨의 출현이나 그것이 끼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를테면 1,000년 전 페루의 해안 사막지대에 있던 모체 문명은 엘니뇨로 인한 가뭄 때문에 멸망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2년의 엘니뇨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타이타닉 호가 최고속도로 운항을 하고 있을 때, 빙산들은 평소보다 훨씬 남하하여 항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엘니뇨로 생긴 폭풍우가 빙산들의 위치를 이동시켜 놓았던 것이다.

 엘니뇨는 태평양의 날씨 패턴을 역전시켜버렸다. 이를테면 페루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홍수를 일으키고,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가뭄을 일으킴으로써 지구 전체에 '원격상관(teleconnection: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생긴 현상들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경우)'이라는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긍정적인 점으로는, 미국 북동부의 겨울이 온화해지는 것과 대서양 적도권역의 윈드시어가 커지면서 카리브 해의 허리케인의 기가 꺽이는 것을 들 수 있다. 반면 아마존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이르는 삼림지대에서는 가뭄이 닥치면서 파멸적인 화재가 발생하고, 남아프리카에서는 비가 너무 안 내리면서 식량 수확량이 줄어 기근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엘니뇨가 촉발한 가뭄으로 19세기 영국령 인도에서는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130년 동안의 강수량 기록을 보면, 인도에서 몬순이 약해지면서 생긴 심각한 가뭄들이 늘 엘니뇨와 상관있었음을 알 수 있다.

 

p157

 해들리 센터의 기후 모델은 아마존 일대에 엄청난 가뭄이 닥치리라고 예고한다. 하지만 일부 다른 모델들은 변화가 덜할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모델들은 강수량이 증가할 것이라고도 한다. 무엇이 옳은가는 더 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곳 생테계의 면적은 700만 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생물다양성의 보고로서 전체 생물권의 1차 생산자-식물의 광합성 생산물-중 10분의 1의 양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과 계절에 따른 계절에 따른 억수 같은 비(지역에 따라 한 해 강수량이 2.5미터가 넘기도 한다)가 흘러내려 이루어진 아마존 강은 바다 전체로 흘러드는 물의 20퍼센트를 품고 있다. 이는 미시시피 강 강수량의 열 배에 달하는 양이다. 이러한 물이 갖는 에너지는 전 지구적 날씨의 순환에 막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과학 저술가 피너 버냐드가 설명하듯이 "수력 엔진으로서 아마존 유역이 하는 기능은 오늘날 기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아마존은 온난화와 상관없이 이미 곤경에 처해 있다. 프랑스 국토 면적과 맞먹는 50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숲이 소를 방목하거나 콩을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해 벌채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숲을 잠식하며 터전을 잡은 인구수가 열 배는 늘었으며, 브라질 정부가 원시림을 파고 들며 도로를 낼 때마다 그 주변에서는 생선뼈 모양으로 숲이 잘려나갔다. 땅에 굶주린 50만 명의 농민들이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브라질의 마지막 거대 야생지에 몰려들면서 화전 농업을 하는 것도 심각한 위협이다. 벌목꾼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횡행하자 그린피스가 아마존 벌목 행위의 80퍼센트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항의했다. 그러자 브라질 정부는 사실을 부인하는 대신 두 손 들고 인정해버렸다.

 해들리 센터의 모델에 따르면 모든 파괴가 내일 당장 멈추더라도 지구 기온이 2℃ 상승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으면 아마존 우림지대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한다. 세상이 이 중대한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면 아마존 북동부 지역에서 파멸의 해일이 시작되어 대륙의 남부와 서부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2100년이면 강수량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기온은 사하라 사막 수준인 평균 38℃까지 상승할 수 있다. 생태계 전체가 붕괴되면 아마존 유역에는 대표적 식물이 하나도 남지 않는 사실상의 사막이 될 것이며, 가장 자리에 풀밭과 초지만이 조금 남을 것이라고 한다.

 

p172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마야의 붕괴를 생태적 과잉의 고전적 사례로 든다. 고도로 발달한 사회가 자원적 기반 이상으로 발전을 추구할 경우 가뭄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p228

 한국에서는 강수량이 4분의 1 정도 증가하겠지만 육지의 기온도 6℃ 정도 높아지면서 물 증발량도 크게 늘어나 땅이 전보다 더 건조해진다고 한다.

 4℃ 상승의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다름 아닌 뜨거운 날씨이다. 상상도 못할 정도의 열파가 육지를 휩쓸면 인류는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무더위를 맛보게 될 것이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그 무렵 유럽의 기온은 지금의 중동과 비슷해진다. 사하라 사막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심장부를 관통하여 북상할 것이다. 경작지가 남아 있더라도 폭우 때문에 침식이 가속화되어, 한때 비옥하던 땅이 텍사스 평원 같은 협곡 많은 황무지로 변할 수 있다. 세계의 식량공급 능력이 곤두박질치면서, 인류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할 것이다.

 

p230

 현재 북극의 얼어붙은 토양에는 약 5,000억 톤 정도의 탄소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북극의 땅이 녹기 시작하면 탄소의 상당량이 배출될 수밖에 없다. 호수나 습지의 물이 빠지면서 흙이 말라붙는 곳에서는 흙 속의 세균이 분해를 시작ㅎ라면서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올라오고, 흙이 많이 젖어 있어서 산화성 분해가 어려운 곳에서는 혐기성(嫌氣性) 세균이 침투하여 막대한 양의 메탄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메탄이 기후변화에 단기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이산화탄소보다 강력하다. 다른 곳에서는 탄소가 물속으로 바로 녹아들어가 강, 호수, 북극해에서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배출될 수 있다. 캐나다의 영구동토층이 녹는 속도를 연구한 미국의 생태학자 필 캐밀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북극 냉장고의 플러그를 뽑아버렸습니다. 이제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전부 썩기 시작할겁니다.

 

p266

 다량의 탄소는 바다 밑바닥에서 썩어가는 플랑크톤 잔해의 형태로 퇴적되는 짙은 유기물 진흙의 층을 이룬다. 이런 탄소의 일부는 지질학적 과정으로 '요리'되고, 암석의 작은 구멍을 통해 압착되어 저장되는데, 이것은 현대의 인류에게 아주 친숙한 물질이다. 바로 석유이다.

 이러한 고대의 탄소순환 작용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오래전 지구는 대기의 지나치게 높은 이산화탄소 수치를 낮춰 지구기온을 견딜 만한 정도로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물 중 많은 양이 인류가 지금 에너지를 얻기 위해 석ㄷ탄, 석유, 가스를 태움으로써 대기 중으로 돌려보내려고 애쓰는 바로 그 탄소이다(화석연료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더구나 인류는 홍합이나 굴, 플랑크톤에 비해 탄소의 위치를 옮기는 데 훨씬 더 효율적인 동물이다. 말하자면 백악기의 생명체들이 수천만 년 동안 격리시키느라 애쓴 것보다 100만 배는 빨리 탄소를 배출시킬 수 있는 것이다.

 

p303

 1인당 탄소 배출량이 국가별로 크게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감축 비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예컨대 인도는 지금 1인당 약 1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며, 중국은 4톤을, 미국은 12톤을 배출한다. 이들 국가가 전부 똑같이 60퍼센트 감축을 받아들인다면 기본적으로 불평등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인도는 0.4톤을, 중국은 1.6톤을, 미국은 8톤을 배출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불평등을 고착시키면 불공정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성공적인 배출협약의 기초를 다지기가 힘들다.

 

 그러면 어떤 협약이 일률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유일한 논리적 해답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인류공동자산협회(Global Commons Institute)가 제안한 '축소수렴방식(Contraction and Convergence)'이다. 즉 부유한 나라들이 기후협약에 참여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불평등했던 만큼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축소수렴방식에 따르면, 모든 국가들은 약속한 날까지 1인당 배출 할당량이 일치하도록 수렴해야 하며, 지구 전체의 배출량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축소한다는 맥락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부유한 나라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생존하면서 가난한 나라가 평등을 얻는 이러한 거래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1인당 탄소 배출량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미국에서는 지구 평균에 비해 감축 비율이 훨씬 높아야 하며, 축소수렴방식의 성격에 따라 2030년까지 85퍼센트는 줄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배출 허용량에 관한 국제시장이 형성되어 가난한 나라들이 사용하지 않은 할당량은 부유한 나라들에게 팔도록 함으로써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탄소 배출권 거래로 인한 수익은 빈곤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이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발전 방식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p307

 

 유타 대학교의 제프리 듀크스는 화석연료 의존도와 관련된 계산으로 처음으로 해본 이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얻어낸 수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휘발유 1미국갤런, 즉 3.78리터가 태곳적 바다에서 만들어지기 위해서 식물성 재료가 90톤 정도 필요하다는 계산을 해냈다(기름을 넣을 때마다 생각해보도록 하자). 지구 전체로 계산해볼 때, 인류 사회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통해 매년 그 옛날 태양열 400년 치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인류가 태양 에너지만을 소비할 수 있었다면, 에너지 사용량을 엄청나게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문명이 과거에 마련한 단 한 번의 에너지 보조금(수백만 년에 걸쳐 식물의 광합성으로 형성된 화석연료의 형태)에 의존해 살고 있으며, 그 의존도가 얼마나 큰지를 드러내준다. 우리가 지금 1년마다 사용하는 화석 연료의 양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으로 따질 때 100만년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 동물들 중에 특이하게도 인류는 석유, 석탄, 가스의 형태로 저장된 화학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매년 한정된 태양 에너지 예산이 부과하는 생태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이 매년 한정되게 내려주는 보조금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석유를 먹고 사는 셈이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인류에게 오늘날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다른 동물들은 먹이와 포식자 등의 관계에 따라 수가 조절되는 생태계의 제약 내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는 이러한 생태적 구속을 벗어던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들판에서 기르는 것이나, 숲에서 캐내는 것에서 식량자원을 제한받지 않는다. 기계화된 농경과 장거리 수송을 통해 화석연료를 먹을 것으로 전환한다. 천연가스를 써서 질소비료를 만들고, 석유의 힘으로 트랙터나 콤바인을 움직여 사람이 하던 노동의 대부분을 대체한다. 사과술을 마셔가며 근육의 힘으로 일하던 수백 명의 몫을 석유를 먹는 콤바인 단 한 대가 해낸다. 사과술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바이오 연료인 셈이다.

 

p312

 기후변화는 고전적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개인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지만, 이를 모두가 되풀이하면 사회적인 차원에서 재앙이 되는 것이다. 이 개념을 주창한 개릿 하딘은 목초지를 공유하는 소 치는 사람들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한다. 소 치는 사람 각자는 공유지에서 소 한 마리를 추가함으로써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식으로 행동한다면, 과잉방목을 초해라여 공유지는 절단난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부인이 필수적이라고 하딘은 말한다. "개인이 일부로서 몸담고 있는 사회 전체는 피해를 보더라도, 개인은 사실을 부인하는 능력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이익을 본다."

 

p314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지금 서구사회의 경제 시스템 전체가 부인이라는, 특히 자원의 유한성에 대한 부인이라는 바탕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지구가 제공해주는 모든 자원이 자유재(free goods)라는 범주에 든다는 듯이, 경제과정의 시초부터 거의 마술처럼 나타나는 것이라는 듯이 가르친다(노벨상 수상자인 교수들도 그렇게 믿는 것 같다). 인류라는 종을 지탱해주는 생태계의 모든 서비스를 포함하는 이 자유재들은 경제적으로는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며, 기존 경제의 계산에서 제외된다. 국민경제 성공의 잣대가 되는 표준적인 국민총생산(GDP)은 그런 과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생산과 소비의 가치를 합산한다. 그래서 기존의 경제학 이론은 창조적 회계라는 절묘한 솜씨를 발휘하여 자원의 고갈을 부의 축적으로 계산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자기 계좌에 든 돈을 다 써버리면서 그것을 소득으로 계산하는 것과 흡사하다. 어리석은 짓 같지만 그것이 우리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논리이다.

 이런 사회적 역기능을 염두에 둔다면, 경제와 사회 전체가 행하는 방해를 무릅쓰고 개인이 기후변화에 맞서 뭔가를 하지 않는다고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 가수 밥 딜런은 1963년 흑인 인권운동가 메드거 에버스를 쏴 죽인 남부 백인이 "그들 게임의 일개 졸(卒)일 뿐"이라고 노래했다. 우리 모두도 그렇다. 각자가 지구온난화라는 게임의 졸이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다. 완전히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졸들을 움직이는 집단적인 손은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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