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 소설은 영화로만 봤기 때문에 실제로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몇몇 작품을 언급하는데, 살렘스 롯이나 미래의 묵시록 같은 책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읽어본 글쓰기에 대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있는데,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작법에 대한 생각은 놀랍도록 동일하다(물론 표현은 틀리다). 

이 2명의 작가 말고도, 창작에 대한 생각은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도 동일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으로 조각을 만들어낼 때, 그는 조각상의 원형을 미리 생각하고 대리석을 깍아나가면서 형태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대리석 원석 속에 숨어있는 형태를 드러내게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티븐 킹의 표현으로는 내용을 낚아올린다고 쓰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의식속에서 꺼낸다(일상의 1층, 무의식의 지하, 그리고 더 깊은 무의식의 지하 2층을 그런식으로 이야기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어떤 경지에 이른 이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지게 되며 그 정수를 그들만의 표현으로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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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그렇듯이 작가도 처음에는 등장 인물에 대하여 그릇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에 버금가는 깨달음은, 정서적으로 또는 상상력의 측면에서 까다롭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작품을 중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형편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p124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p129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여루분은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흥분이나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절망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을 결코 완벽하게 종이에 옮겨적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여러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때려눕힐 태세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어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경박한 자세는 곤란하다. 다시 말하겠다. '경박한 마음으로 백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

 

p182

 재능은 연습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들어주는 (또는 읽어주는, 또는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밖에만 나가면 용감하게 공연을 펼친다. 창조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환희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야구공을 때리거나 400미터 경주를 뛰는 일뿐만 아니라 독서나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정말 독서와 창작을 좋아하고 또한 적성에도 맞는다면, 내가 권하는 정력적인 독서 및 창작 계획도 - 날마다 4~6시간 -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벌써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라.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 (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여가는 (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ㅇ르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p228

 소설의 다른 요소들이 모두 그렇듯이, 좋은 대화문의 비결도 진실이다. 등장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솔직하게 쓸 때 여러분은 상당량의 비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매주 빠짐없이 최소한 한 통씩의 (대개는 그 이상의) 성난 편지를 받는다. 입이 더럽다느니, 고루하다느니, 동성애를 혐오한다느니, 흉악하다느니, 경솔하다느니, 혹은 아예 미친 놈이라면서 나를 비난하는 편지들이다. 그 사람들이 열받는 이유는 대부분이 대화문 속의 어떤 말 때문이다. 이를테면 '쓰벌, 이 차에서 빨리 내리자니까' 라든지, '우리 동네에서는 깜둥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단다'라든지,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염병할 새꺄!' 따위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부디 편히 잠드소소> 욕설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다. '무식한 사람들이 쓰는 말' 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고기를 태우거나 망치질을 하다가 엄지손가락을 회되게 내리치거나 하면 대뜸 '이런 제기랄!' 하고 소리치셨다. 마찬가지로 개가 비싼 카펫에 구토를 하거나 지나가는 자동차가 흙탕물을 튀기거나 할 때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비슷한 말을 내뱉게 될 것이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많은 것이 진실에 담겨 있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붉은 손수레에 대한 시에서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점잖은 사람들은 '제기랄' 같은 단어를 싫어할 테고, 아마 여러분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쓰게 될 때가 있다. 세상의 어떤 아이도 엄마한테 달려가서 여동생이 욕조 안에서 '배변했다' 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응가했다' 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똥 쌌다' 고 말하기가 쉬울 것이다(아이들에게도 듣는 귀는 있으니까).

 

p242

 언젠가 헤밍웨이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옳은 말이다.

 

p247

 소설을 쓸 때 여러분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일이 다 끝나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숲을 보아야 한다. 

 

p253

 이같은 일들은 폭력을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인간의 뿌리 깊은 본성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미래의 묵시록》의 주제가 되었고, 수정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그 생각은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p333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모든 것이 차츰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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