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약사가 쓴 재밋는 약 이야기. 후속작인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먼저 보고 나서, 

이전작인 이 책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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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사람은 엽산 Vitamin B9을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해 잎이 무성한 채소, 간, 효모, 밀, 쇠고기 같은 식품을 먹어서 보충한다. 하지만 세균은 스스로 엽산을 만들 수 있다. 세균은 파라아미노벤조산PABA을 원료로 엽산을 만드는데, 설파제가 PABA와 구조가 유사하다. 설파제가 엽산을 만드는 세균의 효소에 결합하면,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엽산을 못 만들어서 세균이 죽는다.

 설파닐아마이드는 에탄올에 녹지 않아서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시럽이나 액상으로 만들 수 없었다.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설파제가 다이에틸렌 클라이콜 Diethylene glycol 에 녹는다는 것을 알아내 딸기향이 나는 시럽제로 만들ㅇㅆ다. 당시에는 규정이 엄격하지 않아 독성검사와 임상시험 없이 발매되었고, 약은 즉시 영업사원들에 의해 병원과 약국에 공급되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시럽제를 먹은 아이 107명이 사망한 거서이다. 사망한 아이들을 검사해보니 신장이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신장 독성이 원인이었다. 시럽 개발자는 경찰이 오기 전 권총 자살을 하고 말았다.

 원인은 설파제가 아니라 다이에틸렌 글라이콜이었다. 이 용매가 신장을 망가뜨렸다. 이 사태로 인해 1938년 미국은 FDA 규제 법안을 발표해, 모드 의약품은 독성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시중에 팔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안전성이 강화된 미국 의약제도는 1961년 유럽에서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고를 막는 초석이 되었다.

 

p54. 슈퍼세균의 반격

 

 항생제 덕분에 인류는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치명적인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최근의 일이다. 항생제는 감염증을 치료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 예기치 못한 역풍을 만났다. 슈퍼세균이 등장한 것이다.

 슈퍼세균이란 항생제 오남용으로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되면서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할 수 없는 균을 말한다. 의학용어로는 다약제 내성제균 multi drug resistant bacteria 으로 정의한다.

 1960년대에 항생제 메티실린 Methicillin 에 내성을 가진 세균(MRSA, 메티실린 내성 황생포도상구균)이 나왔다 이 내성균은 반코마이신 Vancomycin 이 나와 잡았다. 1980년대 말 반코마이신 내성균 VRE 이 나왔고, 1990년대 중반에는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VRSA 이 발견되었다. 아직은 VRSA균이 세계적으로 창궐하지 않지만, 위험을 예방하고자 반코마이신 처방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다행히 카바페넴 Cabapenem 이 1990년대 개발되어 반코마이신 내성균을 박멸할 수 있었다.

 카바페넴은 VRE균이나 VRSA균 같은 중증 세균 감염 치료에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카바페넴 항생제 사용이 늘면서 병원 감염의 흔한 원인균인 녹농균과 아시네토박터 Acinetobacter 균에서 카바페넴 내성률이 높아졌다. 이제는 카바페넴을 무력화시키는 장내 세균이 미국과 유럽에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내성 유전자를 가진 세균이 우리나라에도 이미 들어왔다. 초기에는 일부 병원이나 특정 지역에서 발견되었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카바페넴 내성균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인류가 보유한 마지막 카드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1년에 70만 명이 내성균 감염으로 사망한다. 2050년이 되면 1,000만 명 정도가 약제 내성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생제 내성균이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는 10년 동안 3,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개발한 항생제가 시장에 나와도 3~4년 내로 내성이 생기기 일쑤다. 문제는 제약회사가 어렵게 약을 개발해도 항생제는 치료 기간이 1~2주로 아주 짧다는 게 문제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꾸준히 먹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 사용하고 끝내기에 지속적인 수익이 되지 않는다.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꺼리는 이유다. 최후의 사태를 대비해 비축하는 항생제는 기존 항생제가 모두 듣지 않는 환자에게만 사용하기 때문에 처방될 기회가 적다.

 2000년 의약 분업을 도입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항생제의 오남용 근절이었다. 항생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처방을 받아야만 복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항생제를 처방받으면 반드시 마지막 한 알까지 연속적으로 먹어야 한다. 항생제 복용을 자의적으로 중단하면 정상 세균들에게 내성을 일으키는 기회를 준다.

 슈퍼세균은 치료가 어렵기에 예방이 최선이다. 불필요한 항생제 복용을 피하고 손 씻기를 잘하는 등 개인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더불어 국가적 차원의 새로운 항생제 개발로 슈퍼세균을 잡는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균과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p131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 James Simpson(1811~1870)은 우연히 클로로폼이 마취작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클로로폼은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 Justus von Liebig(1803~1873)가 1831년에 처음 합성한 물질이다. 에테르보다 마취 속도가 빠르고 인화성이 적다. 심프슨은 클로로폼으로 임신부를 마취시킨 다음 출산 수술을 했는데, 고통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종교계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신앙심 깊은 신자들이 성경 창세기 3장 16절을 가지고 심프슨을 공격했다.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하나님이 여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더했는데, 클로로폼이 통증을 줄여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출산의 고통을 통해 산모가 아이에게 헌신하는 모성애가 자라고 믿음이 강해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클로로폼으로 산고를 줄이는 것은 신의 명령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었다. 심프슨은 창세기 2장 21절로 대응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해서 갈빗대를 떼어내는 최초의 외과수술을 할 대 아담에게 깊은 잠을 자게 했다는 말로써 클로로폼 사용의 정당성을 펼폈다. 논란이 지속되다가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1853년 레오폴드 왕자와 1857년 비어트리스 공주의 출산 때 클로로폼으로 마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빠르게 보급되었다.

 

p142. 수면마취 3총사

 

 케타민 Ketamine, 프로포폴, 미다졸람 Midazolam 은 간단한 수술을 할 때 사용하는 전신 마취제다. 이들을 수면마취 3총사라고 한다. 주사하면 빨리 잠이 들고 수면에서 깨는 시간도 빨라, 성형수술이나 내시경에 많이 사용한다. 그렇지만 환각을 일으키기도 해서 오남용되는 약이다.

 1962년 나온 케타민은 흰색 가루약으로 냄새가 없다. 수면을 유도해 치과 치료, 분만, 어린이 마취에 사용한다. 일반 마취제와 달리 뇌에 강하게 작용해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이 빨라지는 특징이 있다. 환각작용이 있어 미국 클럽에서 마약으로 쓰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서도 속칭 '스페셜 케이 Special K' 라고 불리며 마약으로 쓰인다. LSD보다 효과가 강해 주사하면 30~45분, 코로 흡입하면 45~60분 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정신이 몽롱해지고 수면을 유도해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분류한다.

 1983년에 나온 프로포폴은 불안감을 없애면서 편안하게 잠들게 한다. 정맥주사하면 1분 안에 마취되고 약을 끊으면 2분 이내에 의식이 돌아온다. 마취에서 깨어나도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움 같은 증상이 거의 없다. 내시경과 성형수술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마취제다. 하지만 프로포폴을 맞으면 피로감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져 환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 중독자가 많다 수면마취제임에도 마약류로 지정되었다.

 1976년 출시된 미다졸람은 주사 후 5분 정도 지나야 잠이 들어 수면 유도 시간이 느리다. 잠이 들면 15~80분 정도 수면이 유지된다. 근육주사도 가능하지만 보통 위내시경 검사 전에 정맥에 주사한다. 미다졸람은 수면, 불안 해소, 최면 등의 효과가 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당일 진료받는 외래환자 수술은 부드럽고 빠른 회복이 중요하다. 수면내시경 같은 짧은 마취에는 미다졸람이 좋다. 프로포폴 남용이 사회문제가 되자, 일부 성형외과는 프로포폴을 사용하지 않고, 환각 작용이 덜한 미다졸람을 사용한다고 광고한다.

 마취제 개발은 인류를 통증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따라서 세 살 이하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전신 마취제를 반복 사용하거나 3시간 이상 장시간 쓰는 것은 피해야 한다. 어린이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p157

 보틀리눔톡신 Botulinum Toxin 은 상한 통조림에서 생기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Clostridium Botulinum 세균이 만드는 독소다. 보툴리놈톡신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주요 물질로, 중독되면 호흡근 마비를 일으켜 사망할 수 있다.

 어른과 다르게 첫돌이 안 된 갓난아기는 면역력이 낮아 클로스트리디움 세균이 매우 위험하다. 이 세균이 아기의 장내에서 증식해 독소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꿀에는 클로스트리디움 세균이 있는 경우가 많아 아기에게 먹이는 것은 금기다. 보툴리눔톡신 중동이 영아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꿀 속에 있는 보툴리눔균은 열에 강해 100℃에서 6시간 이상 가열해야 죽는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균을 없애기가 매우 어렵다.

 보툴리눔톡신은 1970년대 후반, 사시 치료에 처음 사용되었다. 치사량의 1,000분의 1 정도의 양을 주사하면 신경세포의 활동이 적당히 억제된다. 그러면 눈 근육이 마비되어 사시의 비정상적인 운동이 멈춘다. 보툴리눔톡신의 특징을 이용해 1989년 보톡스가 나왔다. 극소량의 보툴리눔톡신을 사람에게 주사하면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막아 근육이 퍼진다. 얼굴의 주름을 없애는 용도로 사용하면서 독이 약이 되었다.

 

p161. 베카론 살인사건

 

 베카론 Vecuronium은 수술에 사용하는 근이완제다. 호흡할 때 꼭 필요한 횡격막도 이완시키는 강력한 약으로, 수술하는 의료인만 취급하는 아주 특별한 약이다. 이런 베카론이 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2017년 3월 충남 당진에서 아내가 호흡 마비를 일으켰다며 남편이 119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구급대가 도착하니 의사였던 남편이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아내는 심정지로 사망했다. 병사로 처리되었던 이 사건을 아내의 언니가 경찰에 재조사를 요구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남편이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의대를 졸업한 남편은 병원을 운영하다 여러 불법을 저질러 폐업하고는 이혼을 한 상태였다. 그런 남편과 죽은 아내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나 재혼했고, 10억 원 가까운 재산을 가졌던 아내를 설득해 당진에 다시 성형외과를 개업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급기야 남편은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베카론 주사로 살인을 시도했으나 처음에는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 살인에 성공했다. 수면제로 아내를 잠들게 한 뒤 주사기로 아내의 팔에 베카론을 주사한 다음 밖으로 나가 외출한 것처럼 위장하고 30분 뒤 집으로 돌아와 119에 신고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대원들이 출동했을 때, 태연히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연기를 했다.

 베카론을 투여하면 환자는 2~3분 안에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해져 목을 졸린 것처럼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심장이 멎는다. 그래서 베카론을 주사할 때는 인공호흡기나 안전장치가 준비된 상태에서만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사형집행에 사용하기도 한다. 베카론은 투여한 후 4~5시간 지나면 분해돼 흔적이 남지 않아 병원에서도 의심하지 못했다. 법원은 남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살인 전 이미 한 차례 살인미수가 있었던 데다, 의사만 구할 수 있는 약을 이용해, 의사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23일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구매한 의약품 목록이 공개되었다.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베카론 주사제를 구매한 내용이 나왔다. 청와대는 응급처치용 약품이라고 해명했지만, 수술에만 사용하는 약을 왜 구매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수술용 외에는 다른 용도가 없는데도 사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베카론은 고위험 약물이다. 이렇게 위험한 약들은 훨씬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마약류처럼 관리할 방안이 필요하다. 사건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으로 베카론으로 인한 사고가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p176

 힘들 때 단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장에 탈이 나기도 한다. 전혀 별개인 것 같은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장은 사람의 감정도 조절한다.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분비된다. 행복은 뇌에서 느끼지만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이 모자라면 우울증이 생긴다.

 세로토닌은 장 속 신경세포의 일종인 장 크롬화 친화성 세포에서 합성된다. 세로토닌을 만드는 원료물질이 많아 크롬염에 노란색으로 염색되는 세포다. 세로토닌을 만드는 장은 제2의 뇌라고 할 수 있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좋게 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우울증을 예방한다. 장 내부의 정보는 주변 신경세포에 전달돼 뇌로 간다. 장과 뇌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장-뇌 연결축'이라고 한다. 장과 뇌 사이에는 생체신호를 주고받는 축이 있다. 아직 장-뇌 연결축 간의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장내 물질 세로토닌은 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 및 대사 체계를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친다. 대장이 감정까지 조절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최근 들어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육류 소비량이 급증해 대장암 발생이 높아졌다. 장이 심하게 나빠진 것이다. 육식을 많이 하면 소화되고 남은 단백질 찌꺼기가 장을 통과하여 점막을 손상시킨다. 지속적인 자극으로 장세포가 변형되고 용종이 발생해 심하면 암이 된다. 대장에 서식하는 유산균은 대장균 같은 부패세균 수를 감소시켜 암 발생을 낮춘다. 암을 일으키는 효소를 감소시키고 젖산을 만들어 pH를 낮춰 유해균을 몰아낸다.

 대부분의 암처럼 대장암도 3기, 4기로 갈수록 완치가 어렵기에 예방이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아 암을 초기에 발견하고, 암이 될 수 있는 용종을 미리미리 제거해야 한다. 검사만 잘 받아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 사망률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또한 식생활도 중요한데, 육식을 줄이고 신선한 채소에 고기를 싸서 먹으면 식이섬유가 장을 보호한다.

 

p178

 러일전쟁(1904-1905)은 조선을 차지하려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다. 전쟁은 랴오둥반도와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났다. 청일전쟁 후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1905)에는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차지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러자 일본의 중국 진출을 반대한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이 일본을 압박해(삼국 간섭) 랴오둥반도를 중국에 반환하게 만들었다. 그 후 1896년 러청밀약으로 랴오둥반도는 다시 러시아에 넘어갔는데, 러시아가 만주로 남하하는 것을 경계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붙게 되었다.

 전쟁은 랴오둥반도 남단 여순항에 있던 러시아 함대를 일본 함대가 공격하면서 일어났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를 침공했다. 1905년 랴오둥반도의 중심지 선양에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났는데, 막대한 물자와 수십만 인력을 투입한 일본 육군에서 갑자기 배탈, 설사가 유행했다. 만주의 나쁜 수질이 일으킨 것이다. 일왕은 효과적인 정장, 지사제를 공모했다. 여러 제약회사가 앞다투어 응모했는데, 다이코 신약에서 1902년 개발한 약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이 약이 군인들의 배탈, 설사를 치료했다. 전쟁 후 러시아를 정벌한 약이라 하여 정로환征露丸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정로환의 주성분은 크레오소트다. 크레오소트는 숯을 태워 나오는 페놀계 혼합물의 일종이다. 살균력이 강해 장 속의 세균을 죽여 배탈, 설사를 멈추게 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도 배탈, 설사 환자가 많았는데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고생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 당시 일본은 정로환을 가정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을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동성제약 창업주는 정로환을 국내에서 생산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성분 표시를 보고 그대로 제조했으나 잘 안 되었다. 그는 다이코 신약에 기술 제휴를 의뢰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고민 끝에 은퇴한 다이코 신약의 전임 공장장을 찾아갔다. 70대 노인이었던 전임 공장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말했다. 노인은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평생 일만 해왔고. 동경 유곽에 한 번 데려다주면 원하는 것을 주겠고." 1주일 후 유곽에서 나온 노인은 정로환 제조법이 자세히 적힌 문서를 건넸다.

 

p188

 우리나라에서는 백미를 먹어도 반찬으로 김치가 빠지지 않는다. 김치 속에 들어 있는 마늘이 티아민을 보충해주어 각기병에 걸리는 경우가 없었다. 요즘도 피곤하면 마늘 주사를 맞는 경우가 있는데, 주성분이 티아민이다.

 

p233. 좁은 혈관은 어떻게 해서 넓어지는가?

 

 니트로글리세린은 그 후 수십 년간 협심증 치료제로 사용되었지만 어떻게 혈관에 작용하는지는 몰랐다. 1977년에야 니트로글리세린이 인체에서 산화질소 NO 를 만들어 혈관을 확장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UCLA 약리학 교수 루이스 이그나로는 혈관 세포 속에서 산화질소가 나와 혈관을 넓혀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혈관 속의 산화질소는 수 초 안에 사라지는 불안정한 기체다. 산화질소는 세포, 조직, 장기 등 모든 인체 시스템에 신호를 보낸다. 

 산화질소이 발견은 획기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생체 내에 작용하는 기체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자동차 배기가스나 담배 연기 중에 들어 있는 공해 물질도 산화질소의 일종이다. 공기 중에 있을 때는 해롭지만 혈관에서는 아주 유익하다. 산화질소는 모든 혈관에 작용한다. 협심증, 동맥경화증, 심부전, 뇌졸증, 당뇨병, 발기부전 및 기타 혈관 합병증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

 산화질소는 1992년 과학 잡지 <시이언스>에 '올해의 분자'로 선정되었다. 이그나로는 1998년 산화질소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산화질소는 혈관 유연성을 높여 혈류를 개선한다. 산화질소가 부족하면 혈관이 손상되고 혈액덩어리가 생겨 혈관이 막힌다. 그러면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심장마비, 당뇨에 걸리기 쉽다. 뇌의 특정 부위에 산화질소가 결핍되면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잘 걸린다. 혈액순환은 모든 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혈액순환이 잘 되려면 혈관이 튼튼해야 하는데, 혈관이 막히지 않으려면 산화질소가 필요하다. 산화질소의 발견 덕에 발기부전 치료제가 나올 수 있었다

 의료용 니트로글리세린은 아주 작은 흰색 알약이다. 심장에 통증을 느끼는 협심증이 있을 때는 입으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혀 밑에 넣어 사용한다. 그러면 삼키는 것보다 효과가 신속히 나타난다. 혀밑 침을 통해 전신에 흡수되는데, 간을 거치지 않고 속도가 빨라 위급상황에 유용하다. 이런 약을 설하정이라 한다.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은 절대 삼키면 안되니다.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을 사용하면 협심증을 앓는 환자 가운데 75%가 3~5분 이내에, 15%는 5~15분 이내에 가슴통증이 가라앉는다. 그래도 흉통이 있으면 5분 후에 다시 투여하고, 다시 흉통이 오면 5분 후에 세 번째 투여한다. 15분 이내 최대 3회 투여해도 통증이 지속되면 즉시 응급실에 가야 한다. 심장에 있는 관상동맥이 심하게 좁아진 상태이므로 니트로글리세린만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는 응급상황이다.

 산화질소는 건강한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산화질소를 만드는 영양소 섭취를 통해 양을 늘릴 수 있다. 산화질소의 공급은 아미노산을 통하는데, 아르기닌과 시트룰린이 있다. 아르기닌은 단백질 분해로 생긴다. 그래서 질 좋은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다. 수박, 멜론 같은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시트룰린도 좋다. 운동도 효과적인데 숨이 찰 만큼 유산소운동을 하면 산화질소의 발생을 증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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