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인문

서균렬 교수의 인문핵

lachezzang 2024. 11. 4. 18:53

 

핵공학자. 전문가의 관점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를 자세하고 알기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핵폐수가 안전하다는 도쿄 전력의 기만성을 낱낱이 밝혀준다.

원자력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 읽어두면 좋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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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2

 우리가 1973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으면서 단단히 약속한 게 있어요. 바로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나온 핵연료봉은 그냥 그대로 둡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365일 24시간 밀착 감시를 해요. 문제는 과연 다른 나라도 약속을 잘 지킬 것인가 하는 겁니다. 유혹이 크잖아요. 연료봉만 재처리하면 되는데, 그러면 플루토늄으로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데, 눈앞에 뻔히 보이는 걸 그냥 두고 있어야 합니다.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 등이 핵을 개발했습니다. 나중에 협상을 통해 비핵화에 동의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러기까지 여러 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나라가 일본이에요. 이 나라는 현재 플루토늄 생산 기지인 '롯카쇼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만 기 정도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이에요. 미국이 이를 통제하고는 있습니다만, 미국 패권이 서서히 저물고 있지 않습니까? 기회를 틈타 핵무장을 추진할지 몰라요.

 

p137

 일본도 패망 직전까지 핵폭탄을 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1945년 8월 6일엔 히로시마에, 8월 9일엔 나가사키에 각각 핵폭탄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1년 뒤 미국의 한 신문에서 일본이 핵을 맞은 며칠 뒤인 8월 12일에 우리나라 함경남도 흥남 앞바다에서 핵시험을 했다는 기사가 실려요. 

 

p163

 핵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는 있는데 안전 문제가 걸려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비용 대비 편익이 일정 수준 이상 나오는 발전소, 잠수함 이런 것들만 살아남은 거에요. 나머지는 구상 차원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수익이 나는 부분에서는 지금도 민영기업들이 핵으로 돈을 벌고 있어요. 미국의 핵발전소 사업은 웨스팅하우스,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사기업이 해요.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하던 도쿄전력도 사기업입니다. 일본은 전기 생산 및 관리를 모두 사기업이 합니다. 국가는 안정성을 검증하는 역할만 합니다.  미국과 일본 모두 원자력규제위원회라는 곳에서 통제해요. 우리나라는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의 계열사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핵발전을 관리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통제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핵이 개발되고 전쟁 무기에서 전기 생산 도구로 바뀌면서 여기에 자본이 개입되는 거에요. 국가가 주도하다가 사기업이 들어가면서는 '사업'으로 탈바꿈합니다. 이들 기업은 기업을 이전박더나 나라의 지원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다가 '안전'이라는 장벽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거에요. 그 기점이 앞서 말씀드린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입니다.

 그전까지 미국의 핵발전 사업자들은 정부의 보호 아래 성장을 거듭 하고 있었어요. 경제 논리가 아닌 국가 주도 사업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사업자가 손해를 보지 않게끔 보조금, 세금 혜택 등을 줬어요. 그러다 사고가 나자, 이 시스템이 멈춥니다. 더 이상 국가 차원에서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해요. 그러면서 원전 사업이 자본주의 경재 체제 안으로 편입되요. 화력이나 수력 같은 다른 발전과 비용 대비 수익에서 앞서 나가야 하는 거에요. 하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돈도 많이 드는 데다가 사고 위험까지 있다 보니 사업성이 떨어져요.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납니다. 그래서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2023년 신규 원전을 허가하기 전까지 미국 내에서 단 한 기의 원전도 들어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를 개발하던 미국 뉴스케일파워같은 기업이 지금 파산 직전이거든요. 이유가 물가요. 재생 에너지가 더 싼데, 가스가 더 저렴한데 굳이 왜 원전을 짓느냐는 거에요. 2023년 11월에 뉴스케일파워가 유타 주 아이다호에 건설하려고 했던 SMR 발전소 계획이 최종 무산됩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데다 그 돈을 내고 전기를 사갈 사람도 없었던 거에요. 문제는 여기에 삼성물산과 두산에너빌리티 같은 한국 기업이 투자했다는 점입니다.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게 생긴 거에요. 이게 오늘날 원전 산업의 현실입니다.

 

p205

 후쿠시마 지역에는 핵발전소가 두 군데에 있습니다. 하나는 1제 원자력발전소(원발)로 여기에는 모두 여섯 기의 원자로가 있었습니다. 제1원발에서 남쪽으로 11km쯤 아래에는 제2원발이 있어요. 여기에도 여섯 기의 원자로가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제1원발입니다. 제2원발은 지대가 좀 더 높아서 지진해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어요.

 제1원발에서 폭발사고는 1~4호기에서 났습니다. 5~6호기는 당시 계획 예방 정비로 핵연료를 다 빼버리고 원자로 격납고에 들어가 있어서 다행히 화를 면했습니다.

 지진이 나면 핵발전소는 기본적으로 운전을 멈춥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원자로 내부 방사성 붕괴 때문에 잔열이 엄청나거든요. 작동을 멈췄어도 끝난 게 아니에요. 당시도 지진이 발생하자 노심에 정지봉이 들어가 핵반응이 멈춥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자로는 증기발생기가 원자로 바깥에 따로 붙어 있는 국내 원전 방식과 달랐어요. 원자로 내부에서 물을 끓이는 비등경수로입니다. 그래서 정지봉이 위에서 들어가지 않고 아래에서 올라와요. 좀 어리석은 설계죠.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잔열이 남아 있어서 이걸 식혀주지 않으면 핵연료는 물론 원자로가 과열됩니다. 보통 원자로가 정지되도 (핵연료의 핵분열로 인한 열때문에) 온도가 높아서 반드시 물로 지속적으로 식혀야 합니다. 후쿠시마의 원전은 그러지 못했어요. 정전으로 펌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진해일이 밀려들어 송전 시설이 다 무너지고, 전력 공급이 끊겨버렸잖아요. 그렇다면 원자로를 어떻게 식혀야 할까요?

 주요 시설에는 어디든 비상 발전기가 있습니다. 정전에 대비해서 전원 공급 시설을 만들어놔요. 후쿠시마 원전에도 있었습니다. 비상 디젤 발전기, 축전기 등이 갖춰져 있었어요. 문제는 이런 장비들이 죄다 지하에 있었다는 거에요. 시끄러우니까 지상에 안 둔 겁니다. 잘못된 설계죠.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이 부분도 지적했지만 반영이 안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지점이에요. 물에 잠긴 발전기나 축전기는 무용지물입니다.

 허둥지둥하는 사이 원자로 내부가 끓기 시작ㅎ요. 결국 물이 잠겨 있던 4m짜리 핵연료봉 다발이 모두 공기에 노출되고 맙니다. 평소 650도쯤 하던 내부 온도는 1000도"까지 올라가죠. 이 정도 온도가 되면 열분해 현상이 일어나서 물이 수소와 산소로 갈라집니다. 산소는 원자로 금속과 결합하면서 산화 현상을 일으키고 가벼운 물질인 수소는 원자로의 틈과 미세 균열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갑니다. 게다가 열분해 자체가 온도를 상승시킵니다. 악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원자로 내부 온도는 계속 높아집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핵연료봉이 약 12시간 이상 완전히 노출된 상태로 있었을 겁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던 거에요.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때 노출된 시간이 129분으로 2시간이 조금 넘어요. 그러는 동안 원자로의 3분의 1이 녹았단 말이에요. 그러니 12시간이면 내부 상태가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제가 KBS, YTN 같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원자로가 다 녹았을 거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책임자인 도쿄전력은 사고 후 두 달여 동안 노심용융 사실을 숨겼죠. 그러다 5년 뒤인 2016년이 되어서야 은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합니다. 그렇지만 사과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사고 당시 바닷물 냉각 외에 모래, 진흙, 납, 붕소 등으로 차폐하는 방안을 실행했어야 합니다.

 당시 책임 당국이 핵연료가 녹아내렸다는 걸 모른 체하면서 사고가 더 커집니다. 예전 체르노빌 원전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군인들로 구성된 결사대가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가서 원자로 아래를 콘크리트로 막았습니다. 그런 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거에요. 그걸 하는 순간 원자로가 녹았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게 될 테니까요.

 모든 사고에는 '골든 타임' 즉 수습의 황금 시간대가 있잖아요. 핵발전소는 사흘이에요. 그러니까 큰 사고가 났을 때 사흘 동안 신속하게 작업이 이루어져야 해요. 72시간, 이 소중한 시간을 후쿠시마는 모두 놓쳐버렸어요. 부정하느라, 은폐하고 축소하느라 사고를 키운 거에요.

 제가 그때 방송에서 콘크리트로 벽을 쳐야 한다고 했던 이유는 그 아래 지하수가 흐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다 연구했던 내용이에요. 하루에 1000t 정도가 흐르는데 그중에 400t 정도가 1,2,3,4호기 원자로 아래로 흐릅니다. 5,6호기는 조금 떨어져 있었어요. 적지 않은 양입니다. 400t의 지하수가 엿새 동안 흐른다면 2500t인 올림픽 규격 수영장 하나를 채울 만한 양이에요. 오염된 지하수로 주변 지역이 방사능에 노출되는 걸 막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도쿄전력은 사고가 난 지 무려 3년이 지난 2014년에야 '동토차수벽'을 설치합니다. 발전소 주변을 빙 둘러서 1m 간격으로 냉각관을 박아서 땅을 얼린 겁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이때도 무용지물이니 늦었어도 콘크리트로 막아야 한다고 외쳐댔지만 마이동풍이었어요. '지록위마'하는 자국 내 전문가들의 말만 경청하다가 적지 않은 비용을 공상과학영화 같은 처방에 투자하고 빈손으로 나온 꼴이죠. 그러는 사이 쉬지 않고 지하수가 흘러 나옵니다. 결국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그러지 말고 지하수를 퍼내라고 요구합니다. 사실상 그동안 핵폐수가 계속 유출되었던 거에요.